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82화 (82/366)

82화

―아~ 2페이즈 드디어 돌입했습니다!

―사실상 아까 신지의 헌터의 공격들이 크로노스의 현신 1페이즈 체력을 반 이상 깎아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공영 방송국의 아나운서와 파이트 클럽 MC 출신인 속사포가 송출 화면을 보며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리스 S급 던전 타임 어택을 처음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스 S급 던전은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해치우는 여정을 담은 던전이고요, 몬스터는 ‘크로노스의 현신’, ‘진(眞) 크로노스의 현신’, 그리고 ‘진(眞) 크로노스’가 나올 예정입니다.

라이브 화면에 그리스 S급 던전의 지도가 떴다.

―지금 신지의 헌터를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첫 번째 몬스터 크로노스의 현신 2페이즈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몬스터 수는 적지만 몬스터 한 마리당 2~3페이즈, 많게는 4페이즈까지 있죠.

―맞습니다, 맞습니다.

던전 지도가 사라지고 ‘절대신의 압도’ 상태에 돌입한 크로노스의 현신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다. 녀석의 뒤로 검푸른 빛을 내는 후광이 크게 생겨나 있었다.

―지금 저 후광은 크로노스의 현신의 정신계 스킬인 절대신의 압도입니다. 사람을 압도해서 멘털을 무너트리는 스킬이죠.

―이야~ 아니, 화면 너머로 보는 건데 저까지 막 긴장이 되고 그러네요. 아, 말씀드린 순간! 크로노스의 현신이 낫을 들었습니다!

쩌엉!

크로노스의 현신이 위에서 아래로 낫을 찍었다. 땅이 반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지면의 틈에서 수십 마리의 검은 뱀이 솟아나 용암처럼 땅 위에서 꿈틀거렸다.

―아~ ‘지옥의 구멍’이 열렸네요! 뱀 몬스터가 쉴 새 없이 나옵니다!

―광역 스킬이 없으면 힘들겠는데요. 신지의 헌터가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오히려 개미집을 쑤신 꼴입니다! 더 많은 뱀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카메라가 지의를 비췄다. 지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낮말을 듣는 새’로 도약한 후 뱀들을 피했다.

―아, 하미준 헌터가 뭔가를 지시하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지옥의 구멍 쪽은 하미준 헌터가 맡을 것 같습니다.

―옳은 판단이죠. 신지의 헌터처럼 폭발적인 파괴력을 가진 헌터는 소환 몬스터를 상대할 게 아니라 곧바로 본체를 공격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미준은 자신의 고유 스킬인 ‘대지의 보은’으로 뱀들을 한 번에 옭아맨 후 ‘나무꾼’으로 찍어 내렸다. 몸이 잘린 뱀은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미준의 등장에 중계 화면 옆에 위치한 라이브 채팅방도 소란스러워졌다.

[LIVE 실시간 채팅]

[방금 땅 차는 거 봄? ♡♡ 좋아 누나;;;]

[저 도끼 약해 보이는데 왤케 잘 드는거임]

[세주 뭐함ㅋㅋ]

[지의 까지마 ♡♡아]

[DF 랭킹이랑 실전은 ㄹㅇ로 차이 있는듯]

그때 화면 속 크로노스의 현신이 정확히 지의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재빨리 몸을 피해 곧바로 자세를 잡은 지의가 자아를 작살 총 형태로 바꾸어 크로노스의 현신의 쇄골 뼈에 정확히 박아 넣었다.

[LIVE 실시간 채팅]

[????]

[??무기 바뀐 거 아님 방금?]

[??ㅇ?ㅇ?]

[?]

쿵!

단숨에 크로노스의 현신과 거리를 좁힌 지의가 어깨에 착지하자마자 녀석의 목을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펑!

―사, 상반신의 절반이 터졌습니다!!

―크로노스의 현신에게 초근접 발포 공격 성고옹!! 신지의 헌터 대단합니다!

―크로노스의 현신! 맥을 못 추고 뒤로 넘어갑니다!

―아! 그 틈을 노린 차도윤 헌터의 폭풍우가 작렬! 화려한 연계 공격입니다!

[LIVE 실시간 채팅]

[지의 깐 ♡♡들 나와]

[ㄱㅈㅇ]

[ㄱㅈㅇ]

[ㄱㅈㅇㄱㅈㅇㄱㅈㅇ]

[ㄱㅈㅇ가 뭐임? 가즈아?]

[가즈아 ㅇㅈㄹㅋㅋㅋㅋ 갓지의라고]

[신지의 헌터, 응원.합니다 ^^ 대한민국의.자랑!]

[갓지의 지의갓]

[차도윤도 무난하게 딜 잘 넣는듯?]

크로노스의 현신은 쓰러지는 와중에도 낫을 든 팔을 앞으로 뻗어 그대로 지의의 목을 노렸다. 지의가 실드를 펼쳐 1차적인 공격은 막았지만, 크로노스의 낫이 다시 경로를 바꿔 이번엔 지의의 복부를 노렸다.

―잠깐! 이거 위험해지는데요, 신지의 헌……!

잠깐의 정적 후 화면에 연갈색의 트렌치코트 자락이 잡혔다.

―강세빈!!

―강세빈!!

아나운서와 속사포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화면 속 세빈은 지의를 안아 든 채 협곡 옆쪽 그림자에 안정적으로 착지했고, 크로노스의 현신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손을 뽑아내 녀석의 사지를 부러트렸다.

―가, 강세빈 헌터가 신지의 헌터를 낚아채며 슈퍼세이브!

―그림자로 크로노스의 현신을 완전히 제압합니다! 이건 찬스예요!

[LIVE 실시간 채팅]

[ㅁㅊ]

[야 나 설렜는데 정상이냐?]

[전투에 집중하라고 ♡♡들아 지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뭔;;]

[강세빈은 ㄹㅇ 다르다]

[ㅅㅂ 방금 신지의가 강세빈 팔 때리는 거 봄ㅋㅋㅋㅋㅋㅋㅋ? 커여워]

지의는 곧바로 세빈의 품에서 빠져나와 자아를 조준했고 바닥에 완전히 누운 크로노스의 현신을 향해 커다란 탄환을 뽑아냈다.

―신지의 헌터가 마무리를~

―했습니다!

―했습니다!

폭발과 함께 카메라 화면에 큰 노이즈가 꼈지만 금방 복구가 되었다.

카메라는 잔해가 된 크로노스의 현신을 내려다보는 지의를 비추었다.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난장판이 된 협곡을 바라보는 밤색 눈동자, 그리고 그의 주위를 떠다니는 새하얀 빛무리들. 모든 것들이 지의를 신비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LIVE 실시간 채팅]

[와 포스 오짐]

[이게 DF랭킹 1위의 「기개」다。]

[구세주 같음]

[다같이 줘팬 건 맞는데 SS급은 다르다 ㄹㅇ로…]

[지금 측정 다시 하면 S5 넘는 거 아님?ㅋㅋㅋㅋㅋ]

[나 미국 사는데 여기서 DF 랭킹 조회하면 신지의 닉네임 SAVIOR로 뜸 개간지ㅋㅋㅋㅋㅋㅋ]

지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 * *

콰과과과광!!

하늘이 무너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크로노스의 현신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조각상이 깨지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찔렀다. 희뿌연 먼지바람이 일더니 협곡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유일하게 형체를 유지한 검은 낫만이 공중에 둥둥 떴다.

탕, 탕.

낫을 향해 몇 발 더 발사했지만 공격이 통하진 않았다.

“고작 내 현신을 이겼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라, 어리석은 인간들. 그리고 나의 아들 제우스여.”

“기다리세요, 아버지!”

제우스는 낫을 향해 장창을 던졌지만 하늘로 날아가 버린 낫을 맞히기엔 제우스가 너무 연약했다. 떨어진 장창을 주우려 쫄래쫄래 뛰어가는 제우스를 뒤로한 채 하미준 헌터와 세빈이가 있는 곳으로 착지했다.

“어…….”

착지하고 보니 하미준 헌터의 모습이 생각보다 엉망진창이었다. 슬랙스 밑으로 드러난 복사뼈 주변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있었고 시커먼 액체와 붉은 피가 섞여 나왔다.

“아까 뱀 해치우다가 다친 거예요?”

“아, 이거? 최대한 막는다고 해도 녀석들이 워낙 재빨라야 말이지.”

하미준 헌터는 발을 슬쩍 들어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도윤 헌터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진우 헌터의 ‘약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은 액체는 웬만큼 빠지고 지혈도 확실하게 되고 있었다.

그의 발목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자 날렵한 눈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지켜보는 얼굴이 있었다.

“어~? 지의 양, 내가 걱정돼? 이거 감동인걸.”

“아니, 그럼 사람이 다쳤다는데 당연히 걱정하죠.”

하미준 헌터의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며 다른 사람들의 몸을 살폈다. 차도윤 헌터도 다행히 멀쩡한 것 같고 세빈이도 손등에 약간 생채기가 생긴 걸 제외하곤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자, 이제 이동하자!”

바위틈에 박힌 자신의 창을 겨우 뽑아낸 제우스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해맑은 제우스를 따라 협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험한 길이 우리를 반겼다.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바위 때문에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낮말을 듣는 새로 가볍게 넘었고 다른 헌터들도 도와주면서 협곡을 통과했다.

“다들 수고했어. 이제 이 길을 따라가면 아버지의 궁전이 나올 거야!”

구름을 향해 쭉 뻗은 계단 앞에서 제우스가 소리쳤다. 계단을 따라 시선을 쭉 올리자 구름 위에 신전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차도윤 헌터, 하늬바람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세빈이의 부탁에 차도윤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뜻한 바람이 우리의 몸을 감싸고 자잘한 상처들을 치료했다.

쿵, 쿵, 쿵.

“오는군.”

계단에서 온몸이 새카만 인간의 형체가 내려왔다. 멀리서 보았을 땐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나름 이목구비가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그리고 풍성한 수염. 그리스 신화 만화에 자주 나오는 남자 신의 모습이었다. ‘크로노스의 현신―뱀’과 같은 거인이었고 손에는 아까 보았던 그 낫이 들려 있었다.

“저 녀석이 진(眞) 크로노스의 현신이야.”

하미준 헌터가 나무꾼을 가볍게 손보며 입을 열었다. 기본적인 공격은 크로노스의 현신과 다르지 않지만, 불 속성이기 때문에 화염 공격을 쓴다. 그리스 헌터 협회에선 그 스킬을 ‘절대신의 화염’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불꽃은 저 녀석이 소멸할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지.’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진(眞) 크로노스의 현신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땅이 울렸다.

“아버지! 이제 그만 본모습을 드러내십시오!”

“네 이놈 제우스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느냐? 넌 아직 나를 직접 볼 힘이 없다.”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진 말투였지만 들고 있는 거대한 낫은 당장이라도 제우스의 목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두 신이 때 아닌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하미준 헌터가 녀석의 등 뒤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세빈이는 한 손으로 조용히 진(眞) 크로노스의 현신의 그림자를 조종했다.

나도 자아를 녀석의 급소 쪽을 향해 겨눴고 조금이라도 공격하려 하면 바로 쏠 자세를 취했다.

“이런 인간들의 힘도 빌리다니. 내 아들이라 할 자격이 없구나.”

“이들을 욕하지 마십시오!”

“하하… 그래, 알겠다.”

퍼버벙!!

“어차피 죽을 인간을 욕해 봤자 남는 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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