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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78화 (78/366)
  • 78화

    퍼엉!

    자아의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몬스터들이 하나씩 터져 나갔다. 전투가 길어지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해 탄환을 아예 크게 뽑아내니, A급 몬스터들이 소리 탄환에 닿자마자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DF가 S5로 괜히 나온 건 아닌가 보네.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지금 상황에서도 A급 몬스터들을 이렇게 쉽게 해치우다니. 어쩌면 전투 감각이 거의 다 돌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아아우―!

    녹두가 울음소리를 길게 뺐다. 녹두의 하울링은 흰 빛줄기가 되어 허공을 갈랐고, 덕분에 하늘을 날아다니던 버터구이 오징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쾅!!

    버터구이 오징어가 길게 늘인 다리를 녹두에게 내리꽂았다. 녹두는 재빨리 옆으로 피했고 나는 자아로 녀석의 다리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달큼하고 짭조름한 버터 냄새가 얼굴에 훅 끼쳤다.

    일하던 옷가게 맞은편이 영화관이라 저 냄새 많이 맡았지…….

    퇴근할 때마다 하나 사서 가고 싶어서 미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딴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포장마차 거리의 끝이 보였다. ‘길을 비추는 자’를 내려다보자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한옥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작은 샛길이었다.

    후우웅―

    저렇게 좁은 샛길은 기습당하기 좋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낮말을 듣는 새’로 높이 도약했다. 음식 냄새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등 뒤로는 포장마차 거리, 앞으로는 한옥마을 같은 기와집. 조금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공간이 한눈에 보였다.

    어디 보자, 이 구불구불한 샛길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고 있는 거지?

    미로 찾기를 하듯이 손끝으로 골목길을 짚고 길을 따라 천천히 손가락을 옮겼다.

    길게 줄지어 선 담벼락은 커다란 대문을 향하고 있었고 예쁜 정원이 딸린 한옥으로 이어졌다.

    ‘느낌상 저기서 중간 보스 몬스터를 만날 것 같네.’

    계단을 내려오듯 허공을 조심스럽게 내려왔고 담벼락보다 살짝 높은 곳에 착지했다.

    ‘언니! 저기 몬스터!’

    “어? 어디?”

    ‘저기, 저기 정원!’

    녹두가 담벼락 끝에 있던 정원에서 뭔가를 봤는지 나를 향해 달려와 펄쩍펄쩍 뛰었다.

    내 눈엔 아직 안 보이는데 어디 숨은 건가.

    티잉.

    공중을 디디며 정원을 향해 뛰었다. 해가 높게 떠있는 상태라 낮말을 듣는 새의 이동 속도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최민 헌터 같은 비행 스킬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스킬이다.

    정원에 도착하자 음식 냄새 대신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이름 모를 꽃나무가 한가득 피어 있었고 구석에 있는 연못 주변으로도 잘 가꿔진 분재가 놓여 있었다.

    “녹두야, 몬스터 어디 있었어?”

    ‘연못!’

    철컥.

    자아를 연못을 향해 겨눈 채로 숨을 죽였다. 여차하면 튀어나오자마자 쏴버릴 생각으로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투쾅!!

    땅이 강하게 울렸다. 연못에도 파동이 일더니 이내 엄청난 굵기의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물보라가 정원 전체에 흩뿌려지고 하늘엔 쌍무지개가 떴다.

    “큿!”

    무지개 사이로 황금색의 물고기가 튀어 올라왔다. 녀석은 눈부신 빛을 뿜어대며 입을 쩍 벌렸고, 동시에 새하얀 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실드를 펼쳐 공격을 막자 새하얀 덩어리가 실드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갑네.’

    후두둑.

    실드를 지탱한 손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땅에 닿자마자 질퍽하게 녹은 새하얀 덩어리는 꼭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트린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실드를 집어 던진 후 권능을 들자 황금 물고기 주위를 맴도는 보랏빛 글자가 보였다.

    [A급 몬스터 아이스크림 붕어빵]

    [물 속성]

    [꼬리치기, 몸통 박치기, 빙결]

    [특이 사항 : ‘아이스크림 붕어빵’의 아이스크림에 닿으면 빙결 상태에 빠진다. ‘아이스크림 붕어빵’ 소멸 시 효과는 사라진다.]

    지금 다시 보니 황금색 물고기가 아니라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붕어빵이었다.

    저게 붕어빵이라는 걸 의식하고 나니까 괜히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네. 아이 씨, 더 배고파졌어.

    후우웅.

    붕어빵은 허공을 헤엄치며 나와 녹두 사이로 맹렬하게 날아왔다.

    “훕!”

    타앙―!!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녀석을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몸을 살짝 스친 것만으로 붕어빵의 지느러미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저 부분 퐁신퐁신해서 맛있는데. 밀가루 맛이 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배어있어서…….

    아우우―!

    “헉.”

    쿵.

    허기에 잡아먹힐 뻔한 정신이 녹두 덕에 다시 돌아왔다. 녹두의 하울링에 바닥으로 추락한 붕어빵이 사방팔방으로 아이스크림을 뱉어냈다.

    콰그작!

    자아를 작살 총으로 바꿔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새하얀 소리 작살이 붕어빵의 몸을 꿰뚫었다. 녀석이 퍼덕거리며 작살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몸에 생긴 상처가 벌어져 아이스크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녹두야!”

    컹!

    퍼버버버벙!!

    녹두가 입을 벌려 공격을 준비하더니 이내 새하얀 구체를 뱉어내 붕어빵을 반 토막 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아이스크림 붕어빵은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중간 보스치곤 시시한 몬스터다. 오히려 인간형 몬스터가 나오는 감천 B급 던전이 더 위협적인 것 같은데.

    “후우… 윽.”

    지면으로 내려오자 다리에 힘이 풀려 순간 휘청거렸다.

    [마시멜로 실험]

    [지령 : 지령을 받은 시점부터 24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한 후 전주 A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라.]

    [공복 상태 : 35시간 7분째]

    절대 시간으로는 35시간 7분. 던전에 들어왔을 때가 거의 32시간 정도였으니까 던전 밖 시간으로 계산하면 거의 40시간째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이다.

    던전 밖으로 나가면 몸이 급속도로 피곤해지는데 허기도 갑자기 몰아칠까 봐 걱정되네. 나가기 전에 손에 물이랑 에너지바를 쥐고 있어야겠어.

    정원을 지나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라 유유히 공중을 밟았다.

    우우웅―

    그때 길을 비추는 자가 오른쪽을 가리켰다. 화살표의 끝으로 고개를 돌리자 ‘전주역’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이 보였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게이트까지.

    타닥.

    사뿐히 착지하며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옛날 전주역의 모습인가? 아까보다는 그나마 현대적인 건물들이 역 주변에 솟아있었다.

    일반 몬스터는 포장마차 음식에, 중간 보스는 아이스크림 붕어빵. 보스 몬스터로 비빔밥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던전이다.

    “녹두야, 준비됐어?”

    ‘당연하지!’

    녹두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게이트 주위를 뛰어다녔다.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텁.

    차가운 쇠창살이 손바닥에 닿았다. 위산이 올라와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주위의 변화에 집중했다.

    철그럭, 철그럭.

    쇠붙이끼리 맞닿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쇠사슬? 가위?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날카로운 것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뒤 소리가 멈추더니 갑자기 나와 녹두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꼈다.

    쾅!!

    그림자를 피해 옆으로 몸을 날리자 거대한 돌덩이 같은 것이 지면 위로 떨어졌다.

    “뚜, 뚝배기?”

    한정식 집에나 있을 법한 본격적인 뚝배기였다. 공중으로 도약해서 위에서 내려다보자 뽀얀 국물이 뚝배기 안에 담겨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 철그럭거리는 소리는 어디서 계속 나는 거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뚝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국물 안에 식칼들이 밧줄처럼 엮여 있었다.

    진짜 별게 다 나오는구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리며 손가락을 원으로 말아 뚝배기를 향해 가져다 댔다.

    [A급 몬스터 칼, 국수]

    [물 속성]

    [베기, 찌르기, 조르기]

    [특이 사항 : 칼이 국물 안에 있는 동안 칼의 개수가 늘어난다.]

    “…피곤하다, 진짜.”

    배고픈 것도 배고픈 건데, 기가 막힌 센스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국물 안에 있으면 면이 불어나니까 이 ‘칼’국수는 칼이 늘어나는 건가.

    철컹!!

    ‘칼, 국수’의 칼이 뚝배기에서 튀어나와 크게 원을 그렸다. 뱀처럼 꾸물거리던 식칼들이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날아왔다.

    끼기긱!

    실드를 뽑아 녀석의 경로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칼, 국수가 몸을 둥글게 말아 나를 칼날 안에 가뒀지만, 날이 내 몸을 파고들기 전에 지면으로 빠르게 착지했다.

    우우웅.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기 전체를 진동시켰다. 식칼끼리의 이음새가 불안하게 삐거덕거리더니 순식간에 반쪽이 뚝, 하고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우우―!

    녹두의 울음소리가 새하얀 빛을 뽑아내 식칼과 뚝배기를 집어삼켰다.

    쩌엉!

    식칼은 이가 나갔고 뚝배기에는 커다란 금이 갔다. 틈새로 국물이 줄줄 새어 나왔고, 뚝배기 안에서 열심히 몸집을 불리던 칼, 국수의 나머지 부분이 용처럼 공중으로 치솟았다.

    컹!

    “조심… 윽.”

    칼, 국수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녹두가 중심을 잃고 바닥 위로 추락할 뻔했다. 다행히 금방 자세를 잡긴 했지만 문제는 나였다.

    녹두 쪽으로 고개를 잠깐 튼 것만으로 현기증이 인 바람에 결국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칼, 국수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차자자작―

    지금 내 상태로는 빠른 공격은 불가능하다. 묵직하게 한 방을 뽑아낼 수 있는 공격 형태가 필요했다.

    자아의 기본 형태로도 충분히 큰 탄환을 뽑아낼 순 있지만, 어쨌거나 내가 직접 조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선 괜히 탄환을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딘가에 설치해서 탄환을 쏠 수 있다면…….’

    손안에 든 자아를 내려다보았다.

    두근, 두근.

    그동안 자아라는 이름으로 내 손에 들렸던 수많은 무기들을 떠올렸다. 둔기부터 대검, 총, 그리고 석궁까지.

    소리를 다루는 고유 스킬 때문에 소리를 탄환으로 사용하는 사출형 무기가 제일 파괴력이 좋았다. 그래서 이 확성기 형태로 제일 많이 사용했다.

    컹!

    녹두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동시에 빛줄기를 쏟아냈고, 공격을 채 피하지 못한 식칼 사슬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츠츠츠츠―

    식칼 사슬은 뱀처럼 똬리를 틀기 시작하더니 다시 녹두를 향해 날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도 머릿속으로 한 가지 무기를 떠올렸다. 지금 이 상황을 완벽하게 타개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콰그작!!

    자아를 땅에 냅다 집어 던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아가 살짝 위로 튀어 올랐다.

    ‘제3 형태, 박격포.’

    철컥, 철컥, 철컥.

    자아의 몸체가 쭉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원통형의 포구가 되었다. 손잡이 부분은 세 갈래로 갈라져 포구를 단단히 지탱하는 모양새가 됐다.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56%]

    [달성도 보상 : 제3 형태 ‘박격포’ 해금]

    펑!!

    공기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새하얗고 단단한 소리 포탄이 박격포 형태의 자아를 통해 빠져나왔다. 소리 포탄은 맹렬한 속도로 대기를 가르다 정확히 칼, 국수의 식칼 사슬에 닿았다.

    콰과과광!!

    공기가 진동할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다. 소리 포탄에 맞은 칼, 국수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고, 본체인 뚝배기마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부서졌다.

    “으, 골 울려…….”

    폭발음에 머리가 아파 바닥에 냅다 엎드렸다. 이렇게나마 머리를 어딘가에 기대고 있으니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난 바뀔 의지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그때 자아가 중얼거렸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습이 바뀐 게 이번이 두 번째라 그런지 영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하긴, 그렇겠지. 분명히 무기 설명에는 원하는 대로 탄환을 쏠 수 있다고만 나와있는데, 아예 본체의 모습까지 바뀌고 있으니까.

    ‘내 몸이 지난 시간선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너도 지난 시간선의 영향을 은근하게 받고 있나 보지, 뭐.’

    ‘날 어지간히 험하게도 썼구나.’

    ‘사상 최강의 무기면서 엄청 툴툴거리네.’

    내 말에 자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사상 최강의 무기라는 타이틀은 좀 마음에 들긴 했나 보다.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마시멜로 실험]

    [지령 : 지령을 받은 시점부터 30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한 후 전주 A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라.]

    [보상 : 축복 ‘심마니’ 일주일간 유지]

    [*축복 ‘심마니’를 받은 자는 최상급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데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이제 만족하냐, 이 미친놈아…….”

    치지직.

    상태창을 향해 험한 소리를 하자 노이즈와 함께 상태창이 반응했다.

    뭘 잘했다고 투덜대.

    그래도 다행인 건 게이트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도 클리어로 인정이 됐다는 점이다.

    이런 건 좀 융통성 있네…….

    [축복 ‘심마니’가 일주일간 유지됩니다.]

    [축복 ‘심마니’ : 나타났다 하면 최상급 아이템을 쏙쏙 뽑아내는 심마니의 축복. 심마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던전에서 최상급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대폭이 얼마나 대폭일까. 던전만 돌았다 하면 무조건 아이템을 얻고 갈 수 있는 정도인가?

    탱그랑.

    천천히 몸을 일으킬 무렵 하늘에서 잘 갈린 식칼 하나가 떨어졌다.

    후드득.

    “우왓.”

    곧이어 부산물과 한복 두루마기 같은 것도 떨어졌다.

    하나하나 주워 인벤토리에 넣자 아이템 획득 상태창으로 눈앞이 어지러웠다.

    “죄다 A급 방어구, 무기에… 부산물도 상급 부산물이네.”

    ‘심마니’의 축복이 확실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축복을 가지고 그리스 S급 던전만 들어가면 된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전설의 아이템 아이테르의 로브가 벌써 내 눈앞에 다가온 기분이다.

    ‘언니! 언니, 괜찮아?’

    녹두가 컹컹거리며 공중에서부터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왔다. 성체가 되기 직전의 커다란 털 뭉치가 잔뜩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피로와 허기가 조금은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응. 녹두 덕분에 멀쩡해.”

    ‘얼굴이 안 멀쩡해 보이는데…….’

    “괜찮아. 나가서 뭐 좀 먹으면 돼.”

    녹두의 목덜미를 긁어주며 코끝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녹두가 만족한 듯 다시 내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저 게이트를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후들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고 일어섰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피로는 물론 허기까지 휘몰아칠 것이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아있을 때 상태창이 준 에너지바를 입에 쑤셔 넣어야…….

    “…어?”

    없다. 없다! 노란색 봉지에 ‘에너지바’라고 투박하게 쓰인 그 물건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배고파서 시야가 좁아졌나 싶어 한 칸 한 칸 일일이 들여다봤지만 에너지바는커녕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었다. 아무래도 돌발 지령이 수행되면서 자동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클리어 인정을 빨리 해줬군.’

    어차피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굶어 죽으면 전부 끝이니까.

    까득.

    이를 꽉 물자 어금니끼리 맞닿았다.

    그래, 뭐 일주일 굶은 것도 아니고 끽해야 이틀 좀 안 되게 굶은 건데. 정신력으로 버티고 던전에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뭐든 먹으면 된다.

    “후웁.”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게이트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쿵!

    “신지의 헌터님?!”

    ‘아 씨. 진짜 장난 아닌데…….’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머리가 꽝꽝 울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결국 앞으로 고꾸라졌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한 번에 일으키질 못하니 오히려 속이 뒤집혔다.

    “그냥 냅두…….”

    “구, 구급차 불러드릴게요!”

    “아, 뇨…….”

    구급차까지 부르면 일이 커진다. 기자들이 몰려올 수도 있고, 내가 왜 굳이 혼자서 전주 A급 던전을 돌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괜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냥 물 좀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뻑뻑하게 마르고 온몸에 힘이 빠져서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왔다.

    바스락.

    ‘뭐야.’

    그때 몸이 위로 붕 뜨는 게 느껴졌다. 결국 어이없게 이번 생을 마감하나 싶어 눈동자만 굴려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작은 불꽃을 품고 있는 것 같은, 검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최민 헌터…….’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가,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고 잠에 빠져들듯 천천히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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