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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77화 (77/366)

77화

【마시멜로 실험】

[마시멜로 실험]

[지령 : 지령을 받은 시점부터 24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한 후 전주 A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라.]

[공복 상태 : 31시간 51분째]

‘아, 씨… 생각보다 힘드네.’

하루하고도 반의 반나절을 꼬박 굶는 건 제대로 미친 짓이긴 했다. 물이라도 마셨다가 공복 상태가 깨질까 봐 아예 입에도 안 댔더니 목구멍이 뻐쩍 말랐다.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합… 악!”

쿵!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고꾸라졌다.

“시, 신지의 헌터님?! 괜찮으세요?”

“아, 무릎이야. 네, 네. 괜찮아요…….”

“아까부터 안색이 되게 안 좋으신데 꼭 혼자 던전을…….”

“하하… 걱정 마세요.”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했지만 쫙쫙 갈라진 목소리가 나와서 그런가, 기사님의 얼굴이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무릎을 털고 일어나 컨테이너 박스 앞으로 갔다.

‘여기가 전주 A급 던전.’

전주 A급 던전은 전동 성당 옆에 있었다. 미사 중에 갑자기 게이트가 생겨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지만 클리어는 빠르게 된 편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때 내가 수습 팀으로 갔기 때문에 던전 내부가 대충은 기억난다.

뭐, 일직선으로 쭉 뻗은 야외였던 것 같은데.

끼익―

컨테이너 박스 안을 열고 들어가니 스캔 담당 직원이 나를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스캔하겠습니다.”

직원이 내 아이템을 읽는 동안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전주 A급 던전의 게이트를 살폈다.

[전주 A급 던전]

[수십 년 전 있었던 먹자골목을 배경으로 한 던전]

[몬스터가 음식 형태]

[중간 보스 있음]

[공격력이 높은 편은 아니나 방어력이 높아서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 있음]

‘아, 미친.’

음식 형태라는 걸 보자마자 상태창이 굳이 이 던전을 고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꼬르륵.

이 눈치 없는 배 속이 천둥소리를 냈다. 분명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스캔 직원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태블릿PC를 들여다보기만 했다.

“네, 완료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철로 된 게이트를 쭉 밀며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쿵!

“와… 지옥이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공기에 스며있는 고소한 기름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잘 닦인 길 양옆으로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메뉴판에는 처음 보는 음식들의 이름과 가격이 붙어있었다. 불판 위에서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군침을 돌게 하는 짭조름한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안 그래도 배고파서 어지러워 죽겠는데…….’

배 속이 텅 비어서 그런가, 심장 박동이 너무 선명하게 잘 느껴졌다.

이대로 전투에 들어가면 분명 어이없게 당할 거야.

“녹두야.”

키이이이잉―

녹두를 부르자 초록빛 구체가 팔찌에서 튀어나왔고 곧바로 늑대의 형체가 되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언니!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너무 오랫동안 못 본 것 같아. 그동안 왜 나 소환 안 한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언니가 미안해.”

‘엥. 나 언니 사과받으려고 그런 거 아닌데.’

녹두가 볼멘소리를 마구 쏟아냈다. 머리가 살짝 울렸지만 녹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초록색 눈동자와 조용히 시선을 맞췄다.

“녹두야, 언니가 이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해야 하거든. 근데 지금 배고파서 집중이 안 되는 상태야.”

‘왜 굶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렇게 만들었거든…….”

치지직.

상태창이 할 말이 많은지 잠깐 눈앞에 노이즈가 떴다 다시 들어갔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 녹두가 전투 보조 좀 해줘야 할 것 같아. 할 수 있지?”

‘당연하지!! 나만 믿어!!’

녹두는 우렁차게 대답한 후 늑대처럼 울음소리를 길게 뺐다.

철컥.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자 녹두도 공중으로 날아올라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가자.”

아우우우―!

‘길을 비추는 자’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따라 쭉 걸어 나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진해졌고 달짝지근한 양념 냄새가 뇌까지 주무르는 것 같았다.

전주 명물 피자바게트, 배달도 됩니다!

탕후루(딸기, 키위, 사과)

추억의 떡꼬치 2,000원!

치즈폭탄! 문어꼬치 있음! → 50m

그나저나 언제부터 전주의 명물이 피자바게트였던 거지? 탕후루는 또 왜 있는 거고?

주변에 바닷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치즈폭탄 문어꼬치를 파는 것도 좀 이상했다.

수십 년 전엔 이런 먹자골목이 전주에 있었던 건가? 기묘하네.

컹! 컹!

그때 녹두가 오른쪽에 있던 문어 가판대를 보며 맹렬하게 짖었다.

콰과광!!

자아를 꺼내 그쪽을 겨누자 곧바로 포장마차가 앞으로 쏟아지더니 꼬챙이에 꽂힌 거대한 문어다리가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위에 얹힌 가쓰오부시가 팔랑거리며 흩날렸다.

파바박!

문어다리가 갑자기 쭉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내 몸 주위를 에워쌌다.

펑!!

문어다리에 직접 자아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바다 향기와 함께 터져 나갔다. 녀석의 몸체가 뒤쪽으로 밀려나는 동안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 대신 창조자의 짭권능으로 문어꼬치를 비췄다.

[A급 몬스터 문어꼬치―치즈맛]

[불 속성]

[휘감기, 찌르기, 허기]

[특이 사항 : ‘문어꼬치―치즈맛’을 먹은 생명체는 즉시 ‘허기’ 상태에 빠진다.]

아까 그 공격이 휘감기였을 거고, 나머지는 공격은 찌르기와 허기 상태이상. 어차피 먹을 일은 없으니까 그냥 조준 잘해서 해치우기만 하면 된다.

우우우웅―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공기가 진동하고 문어꼬치의 전신을 휩쓸었다. 녀석의 몸이 파르르 떨렸고 아까보다 이동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언니!!’

“어? 커흑!”

쾅!!

그때였다. 포장마차 하나가 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왔고, 들이받히기 직전에 녹두의 공격 스킬이 포장마차를 꿰뚫었다.

“어흑!”

‘따가워 미치겠네!’

안 들이받힌 건 다행이지만 포장마차 안에 있던 뜨거운 오뎅 국물이 내 쪽으로 쏟아졌고, 덕분에 오른쪽 팔이 완전히 축축해졌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진짜 위험하구나.

충분히 기습에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너무나도 어이없게 당했다.

쾅!!

‘일단 얘부터 끝내야지.’

날카로운 꼬챙이 끝이 내가 서있던 곳에 꽂혔다. 난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녀석의 뒤로 발을 옮겼고 반쯤 날아간 문어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벙!

거대한 문어꼬치가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겼고 살 위에 발라져 있던 치즈가 바닥에 떨어졌다. 치즈는 바닥에 닿자마자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얼결에 입으로 들어갈까 봐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문어꼬치의 잔해와 거리를 벌렸다.

방어력은 높지만 공격 패턴이 어렵지는 않았다.

체력 관리만 잘해서 끝까지 가면 돼.

콰과과과광!!

그때 또다시 포장마차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내 키만 한 컵 떡볶이부터 시작해서 칼날이 달린 꽈배기까지, 분명히 음식은 맞는데 도저히 입에 댈 수는 없는 분식들이다.

꼬르르륵.

‘저거라도 먹고 싶어 하는 내가 밉다, 진짜…….’

칼날이 달린 꽈배기가 사방으로 설탕 가루를 흩뿌리자 흰 가루가 날붙이가 되어 내 목숨을 노렸다.

투두두둥.

칼날은 내 실드에 닿자마자 유리처럼 깨져서 없어졌다. 꽈배기를 향해 실드를 던졌다. 실드는 부메랑처럼 날아가 꽈배기와 컵 떡볶이를 차례로 맞혔다.

우우우웅.

실드가 깨지는 동시에 주변에 있던 공기를 울렸다. 덕분에 꽈배기와 컵 떡볶이의 형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42%]

자아에서 뽑아낸 실드로 공격을 하자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의 달성도가 올라갔다.

조금 더 다듬어서 아예 새로운 무기 형태로 고정시켜야지.

아우우우―!

콰과광!

녹두가 녀석들을 향해 입을 쩍 벌리자 새하얀 빛줄기가 뻗어 나가 그대로 녀석들의 몸에 구멍을 냈다. 다치지 않은 왼쪽 팔로 자아를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오케이, 명중.’

새하얀 탄환이 녀석들을 동시에 꿰뚫었고 파편만이 처참하게 남아 바닥 위로 추락했다.

후두두둑.

“하아, 하… 윽!”

상황이 종료되니 그제야 오뎅 국물에 당했던 팔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축축한 점퍼 소매를 걷자 시뻘겋게 익어 있는 오른쪽 팔이 보였다.

‘외상 치료제를 하나 정도 사두었던 것 같은데…….’

인벤토리를 열어 수십 개의 박스를 눈으로 쭉 훑었다.

쿵.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상 치료제 대신 노란색 포장지의 에너지바만이 눈에 들어왔다.

뻑뻑하게 메말라 가는 목구멍과 뭐라도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텅 빈 위장. 의미 없이 끓어오르는 위산 때문에 가슴까지 쓰렸다.

‘굳이… 그 축복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축복을 받고 그리스 S급 던전에 간다고 해서 100% ‘아이테르의 로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일주일 내로 그 던전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내가 굳이 여기서 이 고생을 하면서 이 던전을 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아이테르의 로브만큼은 아니지만 성능이 괜찮은 S급 빛 속성 방어구야 또 있을 것이다. 이렇게 힘들 거면 차라리…….

할짝.

“허억……?!”

‘언니?’

그때였다. 갑자기 녹두가 내 볼을 핥았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던 의식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이성이 마비가 되는구나.’

인간의 3대 욕구에 식욕이 들어가는 이유를 몸소 실감하고 있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숨을 길게 내쉬고 나서야 에메랄드 같은 눈을 빛내며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녹두가 보였다.

“고마워. 하마터면 별것도 아닌 걸로 망칠 뻔했네.”

‘내가 뭐 잘한 거야?’

“응. 녹두 덕분에 정신 차렸어.”

녹두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자 따뜻한 온기가 몸까지 전해졌다. 녹두는 갸르릉거리며 헥헥대다 이내 다시 게이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달칵.

인벤토리 구석에 박혀 있던 외상 치료제를 꺼내 팔에 들이부었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함께 화상을 입었던 팔에 조금씩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빈 병을 다시 집어넣은 후 길을 비추는 자를 바라보았다. 포장마차 행렬의 가장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른 끝내고 나가자마자 아무거나 먹어야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길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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