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71화 (71/366)

71화

【천재들】

―어때요, 어때요?!

영상 통화 화면 너머로 보이는 아자디바르 남매의 얼굴엔 한껏 열이 올라있었다.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수십 분씩 쉬지 않고 얘기하려니 힘이 들었나 보다.

‘개발 시간을 거의 반으로 단축했어.’

아직 상용화하기엔 첨단 물질 추출 과정이 길고 추출량도 적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개발 시간을 줄인 건 엄청난 성과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인 것 같은데.

아직 미래 씨가 이 남매의 연구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이만큼 진행시킨 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개발했어요?”

―신지의 헌터님이 자신감을 주셨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무하의 말에 미나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길드원들은 저희 아이디어를 흥미롭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거든요.

―요즘은 나오미 박사님 연구 지원하느라 다들 미쳐있어요.

무하는 눈을 굴리며 서운한 티를 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입만 비죽거릴 뿐이었다.

“너무 풀 죽을 필요 없어요. 일단 제가 미래 씨한테 연락해서 연구에 관심 갖도록 만들어 볼게요.”

―아, 맞다! 안 그래도 그거 관련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딩동.

―인천으로 가는 DL 7391편 탑승객은 21번 게이트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뭐지?

귀에 꽂은 자동 통역기를 통해 안내 방송이 흘러들어 왔다. 그러고 보니 이 남매도 지금 밖에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 저희 오늘 비행기 타고 한국 가요!

“한, 엥, 뭐요?!”

쿵.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덕분에 부엌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저희 이제 비행기 타야 하니까 일단 끊을게요!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그럼 안녕~

“자, 잠깐만…….”

뚝.

메신저 영상 통화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나는 47분이라는 통화 시간 기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아자디바르 남매가 이쪽으로 온다는 거잖아?!’

진짜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다.

일단 협회에서 자동 통역기를 대여하고, 아니 그전에 미래 씨한테 연락해서 남매 아이디어 페이퍼를 보게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몰아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진정 좀 해.’

자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기왕 남매가 오는데 미래 씨랑 무조건 만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당연하지. 어떻게든 이 만남을 성사시켜야 해.’

미래 씨와 아자디바르 남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들은 활발히 교류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미래 씨가 던전 부산물에서 첨단 물질을 최초로 뽑아낸 천재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아자디바르 남매가 그를 모를 리는 없겠지.

‘문제는 미래 씨가 남매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미래 씨가 던전 부산물로 첨단 물질을 뽑아내서 자기부상 열차나 자동 통역기 같은 최첨단 기기를 만들기도 했고 기력 회복제를 제조하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든 적은 없다.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연구에 실패한 건지 모르겠네.

덜그럭.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켰다. 연락처 검색을 눌러 미래 씨의 이름을 검색하자 금방 프로필이 떴다.

‘뭐가 됐든 일단 부딪쳐 봐야지.’

짹, 째잭.

자연의 소리를 담은 연결음을 들으며 미래 씨가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평일 낮이니까 분명 출근했을 텐데.

―뭐냐?

“앗, 미래 씨!”

―아, X발. 깜짝아.

받았다!

본인이 귀찮으면 받지도 않는 위인이기 때문에 전화 한두 번 정도 씹힐 각오를 했는데, 다행히 한 번에 받아주었다.

“그, 제가 전에 보내드렸던 연구 기억하세요?”

―아, 니가 무작정 내 연구실에 쑤셔 박았던 그거?

핸드폰 너머로 종이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 봐도 어디 박아놓고 안 봤구만…….

―있는데, 왜. 돌려줘?

“돌려주긴 뭘 돌려줘요. 미래 씨 보라고 둔 건데.”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딴 걸 내가 왜 봐야 되냐?

“미래 씨, 혹시 배리어 연구에 관심 없어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안미래’가 동요한다.]

―배리어?

“네. 시카고 던전 컨퍼런스 갔을 때 만난 남매가 있는데 그 친구들 아이디어가 엄청나서요.”

―관심 없다.

말은 그렇게 해도 동요한 걸 보면 100% 관심 있는 것일 텐데.

“건물 전체를 감싸는 액체형 배리어예요. 사람들을 빠르게 대피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그 배리어가 있으면…….”

―액체? 니 지금 액체라 그랬냐?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안미래’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흥미로움]

나이스. 관심 있었구나.

“네. 액체요.”

스륵.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제야 읽나 보네.

―이 새끼들, 순 또라이 새끼들이네.

“어때요?”

―이딴 가설로 내가 뭘 판단하겠냐? 그냥 또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럼 그 친구들이 와서 직접 설명하면 판단 가능해요?”

미래 씨가 갑자기 입을 뚝 다물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자 핸드폰 너머로 미래 씨의 코웃음이 들렸다.

―경포대 던전에서 몬스터고기라도 처먹었나. 너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성격 X나 당돌해졌다?

“그, 그런가요?”

―아무튼 이거 쓴 또라이 새끼들이 직접 오면 한번 만나는 준다. 근데 딱 한 시간이야.

“고마워요, 미래 씨!”

―닥쳐, 끊어.

뚝.

미래 씨다운 반응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그래,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연구인데 당연히 가능성을 봤겠지.’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다시 넣고 시간을 살폈다.

남매가 내일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도착할 테니까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 * *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탓에 다행히 공항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새벽이라 사람이 얼마 없기도 하고.

[나오시면 말씀해 주세요. 출구 앞으로 가겠습니다 ^^ ―김자현 기사님]

협회 기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곧 아자디바르 남매가 나올 테니까 얼른 데리고 나가야지.

위이잉―

그때 입국 게이트의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이 카트를 끌며 나왔다. 대부분 피곤에 찌든 직장인과 유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점퍼 주머니에서 미나와 무하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냈고, 귀에 꽂았던 자동 통역기의 전원을 켰다.

드르륵.

한참 조용하던 게이트가 다시 열렸고,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얹은 카트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 어어?”

미나와 무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빠르게 카트를 밀고 나왔다.

“신지의 헌……!”

“쉬, 쉿!”

검지를 내 입술 앞으로 가져오자 그제야 남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는지 나를 사이에 두고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이렇게 좋아해 주니까 나까지 같이 들뜨네.

“뭐예요? 서프라이즈?”

“저희 지금 나오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헌터님은 최고예요!”

미나와 무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 후 그들에게 자동 통역기부터 내밀었다. 남매가 자동 통역기를 다 끼고 나서 그들의 말에 대답했다.

“영상 통화 했을 때 비행기 편명을 들었거든요.”

내 대답에 두 사람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아, 생각해 보니 말의 씨앗이 개화한 상태라서 내 말에 영향을 많이 받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한국에 올 생각을 한 거예요? 윈디 길드에서 보내준 거예요?”

“아, 그게 사실은…….”

♬♪♩

그때 미나의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손에 쥔 미나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귓가로 핸드폰을 가져갔다.

“여보세…….”

―미나, 무하! 너희들 제정신이니?!

‘와우.’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나한테까지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멀리 떨어트렸고, 덕분에 남자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내 귀에 꽂혔다.

―보호자도 없이 위험하게 단둘이 한국을 가? 그리고 뭐? 가서 안미래 소장을 만나고 오겠다고?

“렉스, 그러니까 그게…….”

―부모님께는 디X니월드 간다고 거짓말했다면서? 너희들 도대체 거기서 뭘 할 생각이니, 응?

같은 길드 사람인 것 같네.

미나가 한숨을 푹 쉬며 무하에게 핸드폰을 넘겼고, 무하는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주먹을 꽉 쥐더니 제법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렉스, 저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에요. 연구하러 온 거예요.”

―길드 안에서 하면 되잖아. 왜 굳이 한국까지 간 거야?

“길드에선 다른 박사님들 연구만 도와주잖아요!”

미나가 거들었다. 전화기 너머의 렉스라는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낼 동안 미나가 다시 몰아붙였다.

“여기서 저희랑 같이 연구할 사람을 찾을 거예요. 두고 봐요! 저희 이 배리어 꼭 개발 성공해서 돌아갈 테니까.”

―오, 제발. 너희들이 서운함을 느끼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

툭.

무하가 손가락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가벼운 소동에 우리 사이엔 기묘한 적막감이 흘렀고, 이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건 무하였다.

“…길드 사람들도 걱정할 테니까 하루에 한 번씩 사진이나 보내주자, 미나.”

“그래, 좋아.”

미나와 무하는 서로 주먹을 맞대더니 이내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럼 일단 협회 쪽으로 갈까요?”

호텔 방을 못 구해서 일단 부랴부랴 우리 집으로 데려와 짐을 풀게 했다. 남매는 그 허름한 집이 뭐가 그리 좋은지 이리저리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고 미국에서 가져온 기념품들―대부분 먹을 것―을 잔뜩 늘어놓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킨 아침을 먹으며 미래 씨와의 만남이 성사된 것을 말하자 남매는 소리도 못 지를 만큼 크게 놀랐다.

“기, 긴장돼서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미나와 무하를 데리고 미래 씨의 연구실 앞까지 왔지만 남매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긴장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미래 씨가 입이 험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저한테 말한 대로만 하세요!”

“못 할 것 같아요. 세기의 천재인 그 안미래 소장 앞에서…….”

이렇게 자신감 없는 남매의 모습은 처음이네.

두 사람은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앓는 소리를 내기만 했다.

‘최재윤 헌터한테 했던 것처럼 탄환을 한번 써볼까?’

미나와 무하 둘 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대상이기 때문에 탄환을 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어떤 탄환을 써야 하느냐인데…….

[사출 가능 탄환]

<긍정> 표적이 긍정하게 만든다.

이게 괜찮겠네.

상태창에서 탄환을 확인한 후 ‘긍정’을 누르자 또 다른 상태창이 떴다.

[귀속 무기 ‘자아’를 통해 사출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그래도 사출하시겠습니까?]

효과는 줄어들지만 굳이 자아로 쏘지 않아도 된다는 거구나. 나쁘지 않네.

‘네.’

우웅―

공기가 작게 진동하더니 미나와 무하의 등에 흰색 표식이 생겼다.

“미나, 무하. 전 두 사람의 배리어 연구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정말요?”

“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해봐요.”

[긍정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

[표적 :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

작은 소리 탄환이 그들의 등에 생긴 흰색 표식에 박혔고 그대로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자아를 통해 나왔던 탄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네. 은밀하게 사용하기 딱 좋겠다.

“하아… 맞아요.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이 있을 텐데 고작 여기서 무너질 순 없죠.”

“맞아요!”

[발언 결과 : 긍정]

“신지의 헌터님 말대로 평소처럼 잘해 볼게요!”

“가자, 무하!”

기운차려서 다행이다. 두 사람은 미래 씨의 연구실 앞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고, 얼마 안 있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왔냐, 머저리들아.”

그리고 안엔 평소와 같이 우릴 맞아주는 미래 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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