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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70화 (70/366)

70화

산산이 조각난 컵, 고막에 때려 박히는 욕설, 싸늘해진 분위기.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불쾌한 순간이었다.

“여, 여보?”

“아까부터 니 자꾸 뭐 하는 건데. 어?”

차도윤 헌터 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고 거실로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제가 저 유자차를 마시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나 봐요?”

차도윤 헌터 어머니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배은망덕한 자식새끼 하나 X신 만들려고 했는데, 이상한 게 껴서…….”

“네?”

“여, 여보. 그게 무슨 소리야!”

표독스러운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차도윤 헌터를 바라보았다.

‘…충격 먹었네.’

그를 위로하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일단 저 인간의 속셈을 낱낱이 파헤쳐야 하니까.

“저 유자차에 독 탔죠? 몬스터 살상용 독극물.”

“…….”

“아까 차 타다가 떨어트렸잖아요. 주워 드리려 했는데 매몰차게 손등이나 때리시고.”

까득.

이를 세게 씹었는지 딱딱한 것끼리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자기 아들한테 왜 그런 거예요?”

“재능도 없는 새끼 사람 좀 만들어 보겠다고 몇억씩 들여가면서 각성시켜 놨더니, 냅다 집을 나가버렸잖아. 너 같으면 안 죽이고 싶겠냐?”

‘잠깐, 각성을 시켜 놨다고?’

내가 되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 모르셨구나.”

갑자기 그가 살가운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도윤이 브로커 통해서 각성한 잡종 새끼거든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뭔가가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사고 자체가 멈춘다는 걸 지금 처음 깨달았다.

“저희 선배도 몇 년 전에 저랑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그 선배 고객 중에 비각성자였다가 S급으로 각성한 사람이 있었어요!”

더러운 브로커 새끼, 한철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각성 브로커가 기승을 부렸던 시기가 5, 6년 전. 대대적인 소탕이 이뤄진 것도 그쯤. 차도윤 헌터의 각성 시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원래는 저 녀석한테 양궁을 시켰지. 근데 대회에서 1등을 단 한 번도 못 하더라고.”

차도윤 헌터 어머니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매섭게 떴다. 눈동자에 깃든 기묘한 광기가 왠지 모르게 누군가와 닮아 보였다.

‘연우의 부모.’

브로커의 손에 연우를 넘기던 그 부부의 눈동자와 닮아있었다.

“머리도 좋은 편이 아니고, 가진 거라곤 지 애비 닮아서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밖에 없지.”

“저기요!”

“어떻게 사람 만들어 놓나 했는데, 좋은 생각이 난 거야.”

그가 손을 내리자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최소 C급으로 각성시켜서 헌터로 만들기.”

“…….”

“괜찮은 방법이지?”

몸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차도윤 헌터를 슬쩍 보았다.

‘차도윤 헌터…….’

그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고작 각성 하나 시키는 데 5억이나 들었어. 한 번 갈 때마다 몇백을 처먹어서.”

“던전 안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거 몰라요?”

“알아. 나도 게이트 폭발 피해자니까.”

차도윤 헌터 어머니가 옷소매를 올려 보였다. 세로로 길게 쭉 찢어진 상처가 손목에서부터 팔꿈치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멀쩡하게 하던 양궁까지 관뒀어.”

“…….”

“저 녀석이 S급으로 각성했을 땐 인생 다 폈다고 생각했는데, 빚만 갚고 바로 집을 나가버리더라?”

“고작 그게 괘씸해서 차도윤 헌터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니가 나타나서 다 망쳤지.”

차도윤 헌터 어머니는 작게 욕을 내뱉은 후 주머니에 있던 빈 약병을 꺼내 나를 향해 집어 던졌다.

탁.

나는 그걸 한 손으로 가볍게 잡은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절대 섭취하지 마시오.

라벨에 붙은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시간선의 차도윤 헌터가 자신에게 이 약을 먹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리 없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 엄마를 지켜보려 한 것이다.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적당히 좀 하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차주연’이 동요한다.]

차도윤 헌터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

“차도윤 헌터는 잡종 새끼도, 재능이 없는 새끼도 아닙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진 솔직히 차도윤 헌터가 미웠고,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시간선에서 내 동료였고 착하다 못해 순진한 인간이었다.

“웬 또라이 같은 게……!”

“당신에겐 죽이고 싶은 자식일지 몰라도 적어도 저와 다른 헌터들에겐 소중한 동료라고요.”

[발언 결과 : 결심]

[연계 패시브 스킬 발동]

[‘말이 씨가 된다’]

[‘소중한 동료라고요’의 씨앗을 각성자 ‘차도윤’에게 심겠습니까?]

그리고 이번 시간선도 마찬가지다. 과정은 좀 험했을지 몰라도 난 차도윤 헌터를 동료로 만들어 함께 ‘지옥도’에 맞설 것이다.

‘예.’

[각성자 ‘차도윤’에게 ‘소중한 동료라고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업이 청산되었습니다.]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78%]

차도윤 헌터에게 벌어질 뻔한 사고를 막고 씨앗을 심자마자 업이 청산됐다.

목소리를 잃었던 차도윤 헌터가 우울감에 빠져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던 모습, 하급 몬스터에게 어이없게 부상을 당했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가세요.”

그때 침묵을 유지하던 차도윤 헌터가 입을 열었다.

“차도윤.”

“나가시라고요.”

그는 고개를 들고 자기 부모를 내려다보았다. 차도윤 헌터의 눈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글거렸다.

더 이상 자신을 상처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다시는 만나러 올 생각하지 마세요.”

“도, 도윤아……!”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제 눈에 띄지 마세요.”

차도윤 헌터가 고개를 돌려 독이 들었던 유자차의 잔해를 슬쩍 바라보았다.

“…죗값을 치른다고 하셨죠?”

“…….”

“조만간 치르실 겁니다.”

쾅!!

차도윤 헌터 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발로 거실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분에 겨운 듯 숨을 한껏 토해 낸 그는 이내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X발, 일이 안 풀리려니 이렇게 꼬여버리네…….”

“잠깐, 여보! 여보!”

그는 발소리를 내며 거실을 벗어났고, 차도윤 헌터 아버지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쿵.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차도윤 헌터의 집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후…….”

‘개판이네.’

테이블에 있던 컵은 다행히 깨지지 않았지만 바닥이 엉망진창이 됐다. 물론 제일 엉망진창인 건 지금 이 분위기겠지.

“저희 엄마가 절 죽일 거라는 걸 알고 온 거예요?”

차도윤 헌터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자 한껏 수척해진 그가 날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네. 차에서 떨어진 약병을 봤거든요.”

“그래서 되도 않는 거짓말까지 치면서…….”

차도윤 헌터는 뒷말을 삼킨 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저 인간들의 학대에 시달렸어요.”

“…그랬군요.”

“각성하고 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빚만 갚고 바로 뛰쳐나왔죠.”

그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말의 씨앗을 심은 덕도 있겠지만, 내가 자기 목숨을 살려 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훨씬 더 마음을 연 것 같았다.

“그때 절 도와주신 게 회장님이에요. 이 집도 회장님이 주셨고요.”

‘그래서 그렇게 돈독한 것이군.’

내가 봤던 모든 시간선에서, 차도윤 헌터와 회장님의 관계는 한결같았다. 회장님을 신처럼 섬기는 차도윤 헌터와 그런 그를 살뜰히 보살피는 회장님.

차도윤 헌터가 그러는 이유는 알겠는데, 회장님은 왜 그렇게 그를 특별 대우했던 걸까.

“신지의 헌터한테 유치하게 군 건 미안해요.”

“오.”

이번 시간선에서 차도윤 헌터한테 평생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이 귀에 꽂혔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자 그가 입을 비죽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또 부끄러워하네.

“회장님의 시선이 신지의 헌터한테 가는 게 솔직히 싫었거든요.”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부모한테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었을 텐데 회장님의 다정한 말이 위로가 됐겠지.

‘소중한 동료라는 말에도 반응했고.’

최민 헌터도 그렇고 차도윤 헌터도 그렇고, 의외로 ‘동료’라는 말에 크게 동요했다. 그동안은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라고 생각을 한 걸까.

“차도윤 헌터.”

“네?”

그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가 어깨를 파득 떨며 내 손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야 말하는 것도 좀 민망하긴 한데, 어쨌거나 동료니까 잘 해봐요.”

“…허, 참.”

텁.

그가 제법 세게 내 손을 잡은 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생각해 보고요.”

“아이 씨, 끝까지 이 난리네…….”

* * *

‘그나저나 말의 씨앗 꽤 많이 심지 않았어?’

샤워하고 나오자 자아가 말을 걸었다.

‘개화한 건 몇 개 없는데, 씨앗 자체는 많이 심었을 거야.’

‘한번 보자.’

이불 위에 털썩 앉으며 상태창을 켰다.

[‘말이 씨가 된다’ : 말로 상대방을 동요시켰을 때 상대방에게 강력한 암시를 담은 ‘말의 씨앗’을 심는다. 상대방이 시전자에게 ‘감화’되면 ‘말의 씨앗’이 개화하고 시전자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개화한 ‘말의 씨앗’만큼 고유 스킬의 파괴력이 증가한다.]

[이식한 씨앗]

<민아섭> ‘할 수 있어요!’

<최재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하미준> ‘동료잖아요’

<최민> ‘절 구하러 온 사람이니까’

<미나 아자디바르> ‘이 배리어는 분명히 세상을 구할 거예요’

<무하 아자디바르> ‘이 배리어는 분명히 세상을 구할 거예요’

<차도윤> ‘소중한 동료라고요’

[개화한 씨앗]

<민아섭> ‘할 수 있어요!’

<최재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하미준> ‘동료잖아요’

‘응? 이건 뭐지?’

상태창의 끄트머리에 못 보던 표시가 생겼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거렸지만 그것이 자아의 모양과 비슷하단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형체로 손을 뻗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사출 가능 탄환]

<긍정> 표적이 긍정하게 만든다.

<부정> 표적이 부정하게 만든다.

<애착> 표적이 애정을 갖게 만든다.

<자각> 표적이 상황을 자각하게 만든다.

‘아, 그때 파클에서 쐈던 그거.’

자아가 자기 모습까지 드러내며 탄환을 손으로 가리켰다.

상대방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탄환이라……. 전략적으로 잘 써야겠는걸.

우웅―

“어?”

갑자기 상태창이 크게 흔들렸다.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의 ‘이 배리어는 분명히 세상을 구할 거예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미나 아자디바르’는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의 ‘이 배리어는 분명히 세상을 구할 거예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무하 아자디바르’는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30%]

[세상을 구원하는 자]

[세상을 종말로부터 지켜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42%]

이 두 사람의 씨앗이 개화했다고? 잠깐, 그렇다는 건…….

“배리어 개발에 성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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