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69화 (69/366)
  • 69화

    【피는 물보다 진할까?】

    ‘뭐지? 아는 사람?’

    차 문을 닫은 후 반대쪽으로 고개를 쭉 빼자 사색이 된 채 차도윤 헌터 쪽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너 정말 우리 아예 안 볼 생각이었어?”

    그의 뒤엔 비슷한 연배의 여자도 있었다. 그도 창문을 두드리며 울상을 지었는데, 어지간히 정신이 없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잠깐, 왠지 모르게 좀 닮았는데?’

    중년 여자의 살짝 올라간 눈매와 남자의 날렵한 얼굴형이 묘하게 차도윤 헌터의 이목구비와 겹쳐 보였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차 안의 차도윤 헌터를 바라보았다.

    “…엄마.”

    진짜로 부모님이었다.

    “어렸을 때 신지의 헌터를 괴롭게 한 부모님이 지금에서야 용서를 구하러 온다면, 신지의 헌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의 이 사람들이 차도윤 헌터의 어린 시절을 망쳐 놓은 사람들이란 건데…….

    “정말 내가 다 잘못했어. 응?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지금 다 치를게.”

    “…….”

    “제발, 도윤아……. 네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정말 많이 반성했어.”

    그들은 처절하다 못해 비굴하게까지 보였다. 차도윤 헌터의 엄마는 아예 무릎까지 꿇었고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털컥.

    차 문이 열리고 차도윤 헌터가 내렸다.

    “…일어나세요.”

    “도, 도윤아?”

    차도윤 헌터가 양손으로 제 모친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집으로 가요.”

    “집? 집에 오는 거야?”

    “저희 집이요.”

    차도윤 헌터는 어머니의 무릎을 손수 털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슬쩍 보곤 다시 제 부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엄마랑 아빠가 하는 얘기 다 들어 볼게요.”

    “도윤아…….”

    “제가 용서할지 말지는, 그다음에 판단할 거니까.”

    ‘결심했나 보네.’

    차도윤 헌터가 용기를 냈다. 그의 부모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차도윤 헌터의 리무진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하아아…….”

    차도윤 헌터는 한숨과 함께 조수석에 올라탔다.

    얘기 잘 했으면 좋겠…….

    탱그랑.

    “응?”

    그때였다. 뒷좌석에 몸을 싣던 차도윤 헌터 어머니의 옷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이 떨어졌다. 난 곧바로 허리를 숙여 그 병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짝!

    “아!”

    날카로운 통증이 손등을 타고 퍼졌다.

    쿵.

    순간적으로 손을 거두자 커다란 손이 병을 먼저 낚아챘고, 곧장 차 문이 닫혔다.

    ‘방금, 뭐였지?’

    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다면 차도윤 헌터의 어머니가 내 손을 내리쳤고, 곧바로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을 주웠다.

    예민하게 반응할 상황이었나? 도대체 저 병이 뭐길래?

    부우우웅.

    리무진은 부드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협회 건물을 유유히 벗어났다. 차가 점점 멀어질수록 내 손등은 붉게 부어올랐다.

    손등이 아픈 것보다 이유 모를 불쾌감과 불안이 더 크게 다가왔다. 당연히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긴 하지만… 그것과는 결이 다른 불쾌감이다.

    ‘손등 괜찮아?’

    그때 자아가 제법 다정하게 걱정을 건넸다.

    ‘응.’

    ‘근데 그 여자 왜 그런 거지? 비싼 건가?’

    그건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건지. 겉보기엔 그냥 작은 약병 같았는데…….

    두근, 두근.

    “…약병?”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가슴이 크게 울렸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의 한가운데 차도윤 헌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차도윤 헌터를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보았던 순간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한 가지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독극물 때문에 죽을 뻔함. 성대를 심하게 다침. 집에 있었다는데, 왜지?]

    “설마!”

    [청산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위치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망할. 심증이 확신으로 변했다. 왜 그 사건을 잊고 있었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을?

    차도윤 헌터 독극물 중독 사건. 차도윤 헌터가 자기 집에서 몬스터 살상용 독에 중독돼 빈사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다. 던전도 아닌 자기 집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수사가 들어갔지만 결국 아무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었지만 성대가 심하게 타버려서 그는 목소리를 잃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단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야.’

    내가 기억하는 것만 네 번이다. 차도윤 헌터는 이 사고를 네 번이나 당했다.

    지금은 막을 수 있다. 차도윤 헌터를 구할 수 있어.

    “이동시켜…….”

    잠깐, 혹시라도 차도윤 헌터의 집 안으로 바로 이동된다면? 그럼 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텐데.

    잠시 숨을 고른 후 상태창을 향해 다시 말을 건넸다.

    “순간이동은 됐고, 위치 정보나 보내.”

    이 상태창이 나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을 던진 후 상태창을 노려보았다.

    [ㅇ ㅓ……]

    “뭐?!”

    명백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알리는 문장이 짧게 떴다 곧바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머릿속이 멍했고, 애써 정신을 차리려 양손으로 뺨을 내리쳤다.

    인격체였다. 그동안 내게 지령을 주고 업을 청산할 수 있게 힌트를 주는 놈은 100% 인격체였다.

    또 다른 절대자? 아니면 이 세상?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해당 위치 정보가 도착했습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XX―X]

    차도윤 헌터의 사고를 막는 게 더 먼저야.

    * * *

    “여기가 도윤이 집이구나.”

    “이 집도 김강희 회장이 해준 집이니?”

    도윤의 부모가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도윤은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거실 소파에 눕다시피 앉곤 눈을 감아버렸다.

    ‘대책 없이 데려왔네…….’

    그는 지의의 말을 듣고 어디서 용기가 생긴 건지 부모를 무작정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지 1분 만에 후회했다. 도윤은 아직 과거의 상처를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냉장고가 텅 비었네.”

    “열지 마세요.”

    “도대체 뭘 해먹고 사는 거야?”

    도윤의 아빠는 혀를 차며 냉장고 구석에서 말라비틀어진 유자청 병을 꺼냈다. 다행히 유통 기한이 6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도윤은 태연히 컵을 꺼내는 아빠를 보며 잠시 경악하다 이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다시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달그락거리는 컵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적막했던 집에 울려 퍼졌다. 이 집으로 도망쳐 나온 지 2년 만에 들어본 타인의 소리였다.

    ‘짜증 나, 진짜.’

    도윤은 촉촉해진 눈가를 옷소매로 벅벅 닦았다. 어느새 거실 테이블엔 세 잔의 유자차가 놓여 있었다.

    “이제 우리 얘기 들어 줄 준비됐니?”

    도윤의 엄마가 살풋 웃으며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도윤의 아빠도 부인의 옆에 앉더니 조심스럽게 김이 펄펄 나는 유자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네.”

    “미안해.”

    아까 처절하게 말했던 것보다 더 울림이 있는 한마디였다. 이번엔 도윤의 아빠가 입을 열었다.

    “나도 미안하단다. 옆에서 보기만 해선 안 됐는데…….”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었나.’

    분명 어렸을 때 본 부모의 모습은 너무나 컸는데, 지금 소파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무척 작고 야위었다. 도윤은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했던 건지 조금 허무해졌다.

    “사실 여기 와있는 것도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거 알아. 네가 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할 말 없고.”

    “…엄마.”

    “그래도 부모잖니. 너는 날 평생 싫어할 수 있겠지만 난 아니야.”

    도윤의 엄마는 픽 웃으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 도윤과 마찬가지로 긴 속눈썹이 눈 위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말을 하러 왔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

    “…….”

    “차 식겠다. 얼른 마셔.”

    도윤은 제 앞에 놓인 유자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달그락.

    컵을 들자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손에 퍼지고 상큼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도윤은 컵을 입으로 가져왔다.

    쿵쿵쿵쿵!!

    “헉!”

    그때 누군가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덕분에 집 안에 있던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고, 도윤은 들고 있던 컵을 놓칠 뻔했다.

    “아니, 어떤 인간이 문을 저렇게……!”

    “제가 나가볼게요.”

    도윤의 엄마가 발끈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도윤이 그를 겨우 앉히곤 현관 쪽으로 발을 옮겼다.

    쿵쿵쿵!

    “네, 나가요.”

    ‘성질 한번 급하네.’

    도윤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하, 하아… 안 늦었다.”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린 주인공을 보자마자 도윤은 흠칫 놀랐다.

    “신, 신지의 헌터?!”

    * * *

    “신, 신지의 헌터?!”

    차도윤 헌터가 보기 드물게 큰 소리를 냈다.

    ‘당연하지. 나 같아도 놀라겠다.’

    겨우 숨을 고르고 차도윤 헌터를 올려다보니 눈을 크게 뜬 채 상황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얼굴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혹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누던 중이었어요?”

    “그건 그런데……. 저희 집 위치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네? 전에 차도윤 헌터가 얘기해 줬잖아요.”

    “제가요?”

    물론 뻥이다. 자기가 한 말을 일일이 다 기억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담하게 거짓말을 해봤다. 있지도 않은 기억을 떠올리느라 고생하는 차도윤 헌터를 앞에 둔 채 난 그의 어깨 너머를 슬쩍 보았다.

    “도윤아, 무슨 일이…….”

    그때 차도윤 헌터의 어머니가 현관 앞으로 나타났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말을 뚝 멈췄다.

    “아, 차도윤 헌터 어머님 되시죠?”

    “저, 잠깐……!”

    “헌터 협회 소속 신지의입니다.”

    차도윤 헌터를 슥 밀고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악수를 청하자 그가 약간 떨떠름한 듯이 손을 내밀었다.

    ‘…손이 거치네.’

    차도윤 헌터 어머니의 손바닥엔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었고, 특히 손가락 끝은 거의 다 까져 있었다.

    운동했나? 그게 아니면 몸 쓰는 직업인가?

    “여긴 왜 온 거예요?”

    “아, 아까 어머님이 뭘 떨어트리신 것 같아서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차주연’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혼란]

    그가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아마 내가 자신의 약병을 주우려던 걸 떠올렸겠지.

    난 주머니에 쑤셔 박았던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핸드폰?”

    “아까 차 타실 때 떨어트린 것 같더라고요. 어머님 것 맞죠?”

    “아닌데요.”

    “아, 진짜요? 건물 바로 앞에 떨어져 있어서 어머님 핸드폰인 줄 알았는데…….”

    당연하다. 이건 내 일반 핸드폰이니까.

    “뭐야? 무슨 일 있어?”

    차도윤 헌터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현관 쪽으로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S, SS급 맞죠? 이름이 그…….”

    “신지의입니다. 차도윤 헌터 동료예요.”

    “뭔……!”

    차도윤 헌터가 옆에서 발끈했지만 뒷말을 잇진 않았다.

    “아, 그, 일단 들어오시는 게 어때요? 신지의 헌터님도 힘들어 보이시는데…….”

    그래도 아버지 쪽은 그나마 상식적인 편이었다. 온몸으로 적대감을 표하는 어머니와 다르게 날 손님 대하듯 맞이하는 걸 보니, 차도윤 헌터를 독살하려 한 건 이 인간의 단독 범행인가 보다.

    “그럼 물 한 잔만 마시고 갈게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내가 SS급 헌터한테 인사를 다 받아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예의를 갖추자 차도윤 헌터의 아버지가 가볍게 웃었다. 그가 부엌으로 들어간 틈을 타 거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소파 앞 테이블엔 반쯤 차 있는 컵이 두 개, 아예 손도 안 댄 것처럼 보이는 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차도윤 헌터 컵인 것 같은데.’

    그 컵이 놓인 자리에 털썩 앉자 멀리서 걸어오던 차도윤 헌터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무례한 행동 단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하기도 싫지만, 지금은 예외다.

    ‘조금이라도 물러섰다간 저 인간이 다쳐.’

    “정말 물이면 되겠어요? 유자차도 있는데.”

    “아, 그러면 유자차로 부탁드릴게요.”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의 아버지가 유자차를 만드는 동안 차도윤 헌터가 내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차도윤 헌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독이 들어있을 차도윤 헌터의 컵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냥 확 쏟아버려?’

    그렇게 하면 지금 당장은 차도윤 헌터가 다치는 건 막을 수 있지만, 저 여자가 똑같은 수법으로 그를 다시 해칠 수도 있다. 그의 어머니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만 한다.

    ‘상태창.’

    난 조용히 상태창을 켰다.

    <업적>

    [생명의 은인]

    [본인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업적]

    [업적 효과 : 누군가를 대신하여 물리적 공격, 또는 상태 이상에 걸릴 때 절대 사망하지 않는다. 단, 고통은 느껴진다.]

    ‘아주 확실하고 위험한 방법이 하나 있겠네.’

    난 상태창을 닫은 후 곧바로 내 바로 앞에 있던 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왔다.

    쨍그랑!!

    내 입에 닿기도 전에 저 멀리 날아간 컵이 바닥에 부딪히는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완벽한 정적,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이 공간에 내려앉았다.

    “…하.”

    내 손에서 컵을 쳐내고 이 소란을 만든 주범인 차도윤 헌터의 어머니가 짧게 숨을 토해 냈다.

    “야, 너 진짜 뭐 하는 X이냐?”

    내 시도가 헛되지 않게, 그가 본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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