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68화 (68/366)

68화

“신지의 헌터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으신가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고?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뒤를 돌아보자 그가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입 밖으로 내자마자 후회하는 눈치였다. 이마를 살짝 덮은 앞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지고, 그의 눈엔 순식간에 피곤이 들어찼다.

“제가 무슨 소리를…….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아뇨, 아뇨. 그럴 순 없죠.”

모처럼 차도윤 헌터가 말을 꺼냈는데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부모님과의 사이라…….’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과의 추억은 별로 없었다. 지유가 있었을 땐 나름 소풍도 가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지유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나면서 아득한 옛일이 되었다. 부모님이 운동회에 오거나 현장 체험 학습을 갈 때 도시락을 싸주는 일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병원 빚을 갚느라 어쩔 수 없었겠지. 부모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냥 나쁘지도, 엄청 화목하지도 않아요. 평범한 부모 자식 관계예요.”

“…그런가요.”

‘근데 왜 이런 얘기를 꺼낸 거지.’

내가 기억하는 한 차도윤 헌터는 부모님 얘기를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다. 아까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봤을 때도 그 기억이 정확히 있었고.

“차도윤 헌터는 부모님이랑 사이좋으세요? 말 잘 들었을 것 같은……. 윽?!”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질문을 하자 이번엔 차도윤 헌터가 걸음을 멈췄다. 덕분에 내 오른팔이 뒤로 당겨졌고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뒤를 도니 멍한 표정의 차도윤 헌터가 있었다.

“좋진 않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움의 대상인 내게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엄청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런 차도윤 헌터가 어딘가 모르게 측은해져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

쾅!!

‘아오 씨, 타이밍 되게 안 좋네!’

이번엔 테디베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차도윤 헌터가 날 뒤로 끌어당긴 덕분에 녀석의 몸에 깔리는 건 피했다.

탕!!

곧장 테디베어를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고, 새하얀 탄환이 녀석의 머리를 터트렸다. 별다른 저항이 없던 걸 보니 몬스터는 아니고, 함정의 일종인 것 같았다.

“제… 뭐요.”

“아, 그러니까 제가 위로는 잘 못해도 말은 잘 들어 주거든요.”

난데없이 떨어진 테디베어 때문에 영 신뢰감이 안 가는 말투로 대답해 버렸다. 차도윤 헌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은 누구한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될 때가 있잖아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고백]

“앞이나 보시죠.”

‘부끄러운가 보네.’

차도윤 헌터의 바람대로 다시 고개를 돌렸고 미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만약에 말이에요.”

그제야 차도윤 헌터가 운을 뗐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어렸을 때 신지의 헌터를 괴롭게 한 부모님이 지금에서야 용서를 구하러 온다면, 신지의 헌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뭐야, 이거.’

이건 확실히 처음 겪는 일이다. 지금 저 얘기만 들으면 차도윤 헌터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던 것 같은데……. 설마 부모 얘기를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이건가?

일단 차도윤 헌터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얼마나 괴롭게 했느냐에 달렸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지금 얼마나 뉘우치고 있는지도.”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제 얘기 아니에요.”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되게 못하는구나.

누가 들어도 자기 얘기인데 차도윤 헌터는 고집스럽게 부정했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그려진다. 입 비죽 내밀고 시선은 밑으로 내리깔았겠지.

“얘기는 해봤어요?”

“…….”

“진짜로 사과하려고 온 건지 사과 흉내만 내러 온 건지는 직접 얘기해 봐야 알잖아요.”

“흐음…….”

차도윤 헌터가 고민 섞인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그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얘기라…….”

탕!

차도윤 헌터가 중얼거릴 동안 땅에서 솟아오른 가시 덩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 탄환이 너무나 쉽게 덩굴을 찢어버리곤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진심으로 사과하러 왔다면 신지의 헌터는 용서하실 건가요?”

차도윤 헌터가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자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그가 보였다. 실전 훈련실에서 세빈이의 그림자에 눌려 꿈쩍도 못 하던, 무력한 그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변명이든 뭐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고 판단할래요.”

“…….”

“용서할지 말지는 그다음이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내리깐 눈꺼풀 위로 차도윤 헌터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그는 이미 부모와 만날 생각이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

[발언 결과 : 수용]

“생각은 해볼게요.”

그리고 그 역할은 내가 되었다. 차도윤 헌터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고 입을 비죽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제 일은 아니고 제 친구 일이니까 오해하지 마시죠.”

“네, 네.”

“제 친구 일이라고요.”

“알겠다니까요.”

‘으이구, 저 성질머리.’

딱히 의미 있는 조언은 아니었지만 차도윤 헌터와 부모님의 관계가 개선돼서 그가 나를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네.

“오케이, 이제 거의 다 왔어. 나오는 모든 갈림길에서 가장 오른쪽 길을 선택해.”

정말로 미로의 끝이긴 한 건지 하미준 헌터의 지시와 ‘길을 비추는 자’가 가리키는 곳이 일치했다.

“빠르게 가죠.”

내 말에 차도윤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미로를 빠져나가자 금방 갈림길이 등장했다.

‘이제 정말 다 온 것 같은데.’

숨이 약간 찰 정도로 달릴 때쯤 좁은 미로의 끝이 보였다.

펑!

“우왁!”

좁은 미로를 겨우 빠져나오자 차도윤 헌터와 나를 엮어뒀던 덩굴 수갑이 터졌고 반짝거리는 빛과 함께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 무래도 탈출한 것 같죠?”

“그런 것 같네요.”

차도윤 헌터도 자기 손목과 나를 번갈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로에서 탈출한 건 맞는데 게이트도 안 보이고 하미준 헌터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신지의 헌터.”

“네?”

차도윤 헌터가 가리킨 곳엔 종이 매달린 기둥이 있었다. 종 끝에 밧줄이 달려 있어서 흔들면 종을 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로 탈출에 성공하셨습니다! 승리의 종을 울려주세요!]

아, 이걸 울리면 뭐가 나오나? 밧줄을 잡고 밑으로 잡아당기자 줄이 묵직하게 당겨왔다.

뎅, 뎅, 뎅.

제법 큰 종소리가 던전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리고 동시에 지면도 울렸고, 갈라진 땅 틈새로 게이트와 익숙한 형체가 함께 나타났다.

“이야~ 용사님들, 구해 주러 오셨네요.”

“괜찮아요?!”

하미준 헌터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한 걸음 걸어왔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어디에 있었어요?”

“뭔 시커먼 공간에 커다란 모니터랑 같이 있었지.”

하미준 헌터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곤 미로 쪽으로 고개를 슬쩍 뺐다.

“몬스터 있었어? 전혀 보이지가 않으니 원.”

“있었어요. 대부분 신지의 헌터가 처리했고요.”

“일반적인 A급 던전 몬스터보다는 약했어요.”

‘말이 씨가 된다’ 덕분에 내 스킬의 공격력이 올라가서이기도 하겠지만, 이곳의 몬스터는 다른 A급 몬스터보다 훨씬 약했다.

“흐응, 그렇군.”

“이제 보스 몬스터 잡아도 될까요?”

차도윤 헌터가 나팔꽃을 꺼내며 게이트 쪽으로 먼저 발을 옮겼다.

“아, 그럴 필요 없어. 여기 보스 몬스터 없거든.”

“보스 몬스터가 없다고요?”

“응. 길잡이 안내사항에 나와 있더라.”

끼익.

“헐, 진짜네.”

차도윤 헌터가 게이트를 당기자 정말로 그대로 딸려 왔다. 내 감탄사에 하미준 헌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하미준 헌터의 날카로운 눈이 나와 차도윤 헌터를 향했다.

뭐야, 왜 이렇게 봐.

“어땠어? 몸이 가까워지면 정도 좀 들 텐데.”

“뭔…….”

“앗, 차도윤 헌터. 욕하는 거 아니지?”

뒷말을 삼키자 하미준 헌터가 윙크로 얼렁뚱땅 이 상황을 넘겼다.

‘뭐, 그래도 예전보다야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많이 얘기해 준 건 아니지만 가족 얘기를 살짝 꺼낼 정도면 조금은 마음을 열었을 것이다.

“할 말 있어요?”

“아뇨, 아무것도요.”

차도윤 헌터를 향해 씩 웃어 보인 후 그를 스치듯 지나가 게이트를 열었다.

‘오늘 진짜 이 사람이랑 뭐 있나?’

급하게 친해지려고 했다가 대차게 실패한 시간선이 있어서 좀 차근차근 다가갈 생각이었는데, 온 우주가 나서서 차도윤 헌터와 친구가 되라며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지의 헌터님 차량이 갑자기 사고가 나는 바람에…….”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죠, 뭘.”

미로 던전에서 탈출 후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와 리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이어가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차도윤 헌터의 리무진을 얻어 타고 협회 건물까지 가게 됐다.

‘이 눈동자로 호감도 같은 게 보이면 참 좋을 텐데.’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조는 차도윤 헌터를 오른쪽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호감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끼익.

“도착했습니다. 댁까지 모셔다 드릴 차량은…….”

“아, 괜찮아요. 여기서부턴 지하철 타고 갈게요.”

안전벨트를 풀자 차도윤 헌터의 시선이 내게 넘어왔다.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푹 쉬세요.”

“아, 네.”

먼저 건넨 인사에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입을 한참 달싹였다.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일부러 천천히 차 문을 열자 차도윤 헌터가 결심한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까 던전 안에서 제가 말한 거 그냥 전부 잊으세요.”

“친구분 일이요?”

일부러 친구에 힘을 주어 말하자 차도윤 헌터의 눈썹이 묘하게 움찔거렸다. 아까도 느꼈지만, 거짓말 진짜 못한다.

“알겠어요. 전부 없던 걸로 생각할게요.”

“…네.”

“대신 친구분한테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줘요.”

차도윤 헌터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 말이 자기한테 하는 소리란 걸 눈치챘나 보다.

“전해 줄게…….”

“도윤아!!”

그때 차도윤 헌터 쪽 창문에서 웬 남자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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