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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67화 (67/366)

67화

“드디어 이동했군! 처음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틀어.”

차도윤 헌터와 함께 미로 안쪽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이잉―

‘길을 비추는 자’는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건 아마 최종적인 게이트의 위치일 것이기 때문에 하미준 헌터가 말한 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정말 까다로운 던전이네요.”

“네.”

‘대화가 안 되는구만.’

오늘의 차도윤 헌터는 평소보다도 더 가라앉아 있어서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쿵.

그때였다. 왼쪽으로 돌자 곧바로 하늘에서 묵직한 돌덩이가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실드를 뽑아냈다.

쨍그랑!

“큿.”

녀석의 공격을 흘리는 덴 성공했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한 실드가 산산조각 났다. 돌덩이는 미로 안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이내 우뚝 섰다.

그냥 돌덩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돌하르방이었다. 차도윤 헌터의 눈치를 살짝 본 후 권능을 들었다.

[A급 몬스터 돌하르방]

[대지 속성]

[돌주먹, 은폐, 솟아오르기, 슈.슈슉.피했지롱]

스킬 하나가 이상하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회피 스킬 같다.

휘이이잉―

그때 오른쪽 팔이 들렸다. 차도윤 헌터는 내 팔을 대롱대롱 단 채 나팔꽃의 시위를 당겨 돌하르방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쿠구구궁.

돌하르방이 갑자기 잔상을 남기며 옆으로 피했고 굉음과 함께 땅 밑으로 들어갔다.

진동하는 지면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차도윤 헌터와 나는 숨을 죽이고 언제든 피할 수 있게 다리에 힘을 주었다.

콰과광!!

돌하르방이 정확히 나와 차도윤 헌터 사이로 솟구쳐 올랐다. 우리 둘은 맞춘 것처럼 동시에 뒤쪽으로 피했고 내가 먼저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왼손으로 쏘는 거라 확실히 조준이 어려웠지만 다행히 녀석의 이마 한가운데 박혔다.

파지직.

내가 서포트를 요청하기도 전에 차도윤 헌터의 ‘천재지변’이 구멍 뚫린 이마를 파고들었다.

콰그작!!

번개가 얼굴을 날려버리자 돌하르방이 양팔을 허우적댔고, 난 그 틈에 탄환 세 발을 더 박아 넣었다.

“후…….”

좁은 곳에서 싸우려니 힘드네.

폭삭 무너져 내린 돌하르방의 잔해를 앞에 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호흡 괜찮은데요?”

또다시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내 말을 부정할 순 없었는지 그는 돌하르방의 파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투라도 했나 보군. 안 다쳤어?”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고, 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가시죠.”

차도윤 헌터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보폭에 맞추느라 나도 빠른 걸음으로 미로를 따라 걸었다.

‘도윤이 기분 안 좋은 거 맞지?’

‘응. 뭐 때문에 그런 거지?’

자아가 은밀하게 말을 걸었다. 이번 시간선에서 날 별로 안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심통 낼 사람도 아니다.

분명히 뭔 일이 있는 거야.

“차도윤 헌터, 혹시 어디 안 좋아요?”

“…아뇨. 멀쩡한데요.”

“평소보다 기분이 많이 가라앉으신 것 같은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혼란]

진짜로 뭔 일이 있긴 한가 보네.

‘지난 시간선에서 이랬던 적이 있었나?’

비록 이 던전은 처음 생긴 것이어도 차도윤 헌터의 심기를 건드린 일은 이미 내가 아는 걸 수도 있다.

“신경 끄세요.”

“전투에 집중 못 하고 다칠까 봐 그렇죠.”

“…오지랖은.”

“저 오지랖 넓은 거 어떻게 아셨어요?”

말을 전부 맞받아치자 그가 우뚝 서더니 나를 쏘아보았다. 올라간 눈꼬리 때문인가, 성격 나쁜 고양이 같다.

“어디 보자, 이제 슬슬 세 갈래길 나오거든? 가장 오른쪽 길로 가면 돼.”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기묘한 정적을 깼다. 그의 가이드대로 미로를 빠르게 통과했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돌하르방들은 자아와 나팔꽃으로 적당히 처리했다.

“팔이 왜 이렇게 무거워…….”

“그래서 제가 같이 활 들어 주고 있잖아요.”

“그럴 필요 없거든요?”

실랑이는 좀 있었지만…….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거기가 중간 보스 포인트야.”

하미준 헌터의 말에 나와 차도윤 헌터가 걸음을 멈췄다. 덤불 벽으로 만들어진 원형 광장. 꼭 중세시대 콜로세움 같다. 예전에 갔던 이탈리아 던전 같기도 하고.

“빠르게 끝냅시다.”

“방해나 하지 마세요.”

“허.”

진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전엔 꽤 다정한 구석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내가 어이없어하건 말건 그는 화살을 만들어 나팔꽃의 시위에 살짝 걸어놓았고, 나도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광장 쪽으로 발을 들였다.

저벅, 저벅.

천천히 광장의 중앙을 가로질렀다. 바짝 긴장한 채로 정확히 정중앙에 도착하자…….

콰드드득.

커다란 귤나무가 땅에서 튀어나왔다.

탕!!

피잉―

약속이라도 한 듯 새하얀 탄환과 초록빛 화살이 동시에 나무를 향해 뻗어갔다.

쿠구궁.

“쳇.”

귤나무는 순순히 우리의 공격을 맞아 주지 않았다. 녀석은 땅속으로 다시 몸을 숨겼고 두더지처럼 광장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왜 여기 몬스터들은 죄다 땅속으로 들어가나 몰라.’

쿠르릉.

“조심해요!”

땅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차도윤 헌터의 손을 잡아 내 뒤로 당겼다.

탕!!

“큿……!”

차도윤 헌터가 서있던 곳에 귤나무가 치솟았고, 우린 간발의 차로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거리부터 확보하죠!”

차도윤 헌터와 함께 뒤로 물러나 한껏 거리를 벌렸다.

콰드득.

귤나무는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 나무줄기를 계속해서 뽑아냈다. 귤나무 본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지만 줄기 때문에 공격하기가 영 까다로웠다.

“실드 만들 수 있죠.”

“네? 네.”

차도윤 헌터가 나무줄기를 폭풍으로 날려버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실드 지탱할 테니까 그 틈에 공격하세요.”

“괜찮겠어요?”

“제가 못 미더우면 그쪽이 실드 들든가요.”

‘까칠하긴.’

말은 그렇게 해도 아마 내 공격의 파괴력을 믿기 때문에 하는 소리일 것이다. 보통 두 등급 이상 차이가 나면 공격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능하니까.

콰지직.

나무줄기가 또다시 땅에서 솟아났다. 우리는 맞춘 것처럼 둘 다 뒤로 물러나 피했고 날카로운 바람이 줄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이 녀석의 공격 자체는 단순한 편이니 제대로 된 거 한 방만 들어가면 돼.

퉁!

자아로 두꺼운 소리 실드를 만들어 차도윤 헌터에게 건넸다. 그는 실드에 양손을 댄 채 나를 향해 눈짓을 했다.

탕!!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얗고 커다란 탄환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진동시키며 귤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녀석도 쉽게 당해주지 않으려는 듯 나무줄기 수십 개를 꺼내 우리 쪽으로 보냈다.

끼기기긱.

“읍!”

차도윤 헌터가 양손으로 실드를 지탱한 채 나무줄기들의 공격을 막았고, 난 그 틈에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콰과과광!!

“됐다!”

차도윤 헌터가 공격 타이밍을 만들어준 덕에 내 탄환들이 귤나무를 관통했고, 녀석은 보기 좋게 터져 나갔다. 귤나무가 가루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자 시큼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차도윤 헌터, 고맙……. 어어?!”

쿵.

차도윤 헌터가 갑자기 바닥 위로 쓰러졌다. 덕분에 내 몸도 같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차도윤 헌터를 내려다보았다.

“차도윤 헌터?!”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숨을 내쉬었고, 신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꾹 물고 있었다.

“하, 으윽……!”

‘외상은 없는데, 대체 뭐지?!’

내가 발견 못 한 상처가 있을까 싶어 그의 몸을 빠르게 살폈고, 딱딱하게 굳은 오른쪽 다리를 보고 나서야 원인을 알아냈다.

‘쥐가 났구나.’

아까 나무줄기 수십 개를 버티느라 다리 근육이 순간적으로 놀란 것 같았다.

“잠깐만 참아요!”

차도윤 헌터의 다리를 쫙 편 후 운동화를 벗겼다.

‘한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의존해서 육상 할 때 코치님이 가르쳐 주신 혈자리를 눌렀다. 종아리 혈도 온 힘을 다해 누르자 차도윤 헌터의 잇새로 새된 신음이 나왔다.

팔이 저릴 정도로 한참 누르니 돌처럼 딱딱하던 다리가 어느새 원래의 상태를 되찾았다.

“하아, 하…….”

“이제 괜찮으세요?”

“…네.”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은 차도윤 헌터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대충 옷소매로 닦은 후 고개를 홱 돌렸다.

‘어, 민망해한다.’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다시 운동화를 신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내 팔은 대롱대롱 들린 모습이 되었다.

“안 가실 거예요?”

“도와줬는데도 뭐라 그러시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치]

자기도 찔리긴 했나 보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쳐다보자 그는 입을 앙다문 채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다리 쥐 푸는 건 혼자 터득한 거예요?”

바지를 털며 일어날 때쯤 그가 화제를 돌렸다.

“코치님한테 배웠어요. 육상 하다 보면 쥐나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서.”

“운동을 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차도윤 헌터도 양궁 하지 않았나? 이 사람이랑 밥 한 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했을 때 비슷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차도윤 헌터도 운동하셨어요?”

“네……. 양궁을 조금.”

차도윤 헌터는 머쓱한 듯 말끝을 흐렸다.

“좋은 코치님을 만나셨나 보네요.”

“뭐, 괜찮은 분이긴 했죠. 저희 담임 쌤 소개로 만난 분이었…….”

“몬스터 다 잡았어? 오케이, 그럼 이제 오른쪽 길로 들어가.”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내 말을 뚝 끊었다.

‘조금만 늦게 나타나지.’

차도윤 헌터와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의 말대로 오른쪽 길로 발을 옮기자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좁은 미로가 우리를 반겼다.

“제가 앞장설게요. 차도윤 헌터는 후방을 맡아 주세요.”

도와준 사람에게 틱틱댄 게 미안했는지 차도윤 헌터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차도윤 헌터랑 다를 게 없네.

바스락.

흙길에서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푹신한 풀을 밟으며 조용히 미로를 걸어 나갔다.

“…신지의 헌터.”

“네?”

“신지의 헌터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으신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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