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63화 (63/366)
  • 63화

    【냥냥】

    “저… 이젠 못 버티겠어요.”

    “신지의 헌터, 정신 차려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흙바닥에 쓰러지듯 눕기가 무섭게 내 몸 위에 올라탄 몬스터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동시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내 다리에서부터 고고하게 걸어오더니 이내 내 가슴팍을 꾹 눌렀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아, 진짜 죽을 것 같다.’

    몬스터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본 채로 입을 쩍 벌렸다.

    이야~옹!

    진짜…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 * *

    열두 시간 전.

    “다들 여권 챙기셨죠?”

    내 물음에 모든 사람들이 비장한 얼굴로 가방 속에서 여권을 꺼냈다. 평소 수다스러운 김현욱 헌터도 지금만큼은 진지했고 나른한 인상인 곽민호 헌터의 눈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총기가 깃들어 있었다.

    다 큰 헌터들이 공항 한복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신기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 갔고, 그중 몇 명은 나를 알아봤는지 ‘저기 신지의 아냐?’라는 말도 귀에 꽂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오늘 ‘기적’ 클랜의 공략 던전은 다름 아닌 일본의 고양이 섬, 아오시마 섬에 있는 C급 고양이 던전이다. 일반 몬스터, 중간 보스 몬스터, 그리고 최종 보스 몬스터까지 전부 고양이인 던전이다.

    관광용 던전이라고 생각하는 헌터들이 많지만 사실 그곳은 소환수 성장용 던전에 더 가깝다.

    ‘고양이에 정신 팔린 동반자들 때문에 소환수의 질투심이 폭발하다 보니까 그렇겠지.’

    “신지의 헌터 덕분에 입장권 구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딱 그 시간 예약이 비는 걸 아셨어요?”

    “하하, 어디서 좀 들었거든요.”

    이것도 회귀 덕분에 알게 된 정보 중 하나다. 난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얼버무렸고 김현욱 헌터도 더 캐묻지 않고 그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무사히 스킬이 열렸으면 좋겠네.

    * * *

    다시 현재.

    야―옹.

    애옹. 옭.

    미약!

    평생 들을 고양이 울음소리는 다 듣는 것 같네.

    내 가슴팍 위에서 식빵을 굽는 턱시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눈만 굴려 주위를 살폈다. 곽민호 헌터는 신들린 것처럼 고양이용 장난감을 흔들고 있었고 김현욱 헌터는 간식을 꺼내 고양이들에게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던전은 몇 번을 와도 심장이 남아나지를 않아.’

    “요즘 젊은이들 고양이 참 좋아해.”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김민숙 헌터는 팔짱을 낀 채로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보았고 송윤 헌터도 한 손으로 새끼고양이와 놀아주며 그에 동조했다.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저게 어른의 여유인가?’

    “자, 슬슬 소환수들 소환하고 본격적으로 공략 좀 해볼까?”

    김민숙 헌터가 주의를 환기시키며 가장 먼저 두심이를 소환했다.

    먀―

    귀여움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 내 위에 있던 턱시도 고양이가 온갖 짜증을 내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금방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신의 몸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슬슬 녹두를 소환할까.’

    “후우… 녹두야?”

    투웅.

    “어, 엉?”

    녹두의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연두색 빛이 맹렬한 속도로 고양이를 들이받았다.

    먉!

    고양이가 뒤로 나동그라지더니 깜찍한 비명과 함께 발자국 모양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노, 녹두야?!”

    꺄웅?

    빛을 모두 털어낸 녹두가 그제야 나를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먀옹!

    컹! 컹!

    퍼버벙!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녹두는 내 주변을 맴돌던 고양이를 모두 몸으로 박고 앞발로 후려치며 발자국 연기를 사방팔방에 피워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입에선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고, 위풍당당하게 내 앞에 서있는 녹두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이게 우리 언니한테 어디 꼬리를 쳐!!’

    녹두가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고, 숨을 몰아쉴 때마다 등뼈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우― 꺄웅!

    그러더니 얼마 안 있어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같은 애 맞아?’

    아까의 기세는 어딜 갔는지 녹두는 나를 향해 배를 드러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순식간에 애교쟁이가 되어버린 녹두를 벅벅 긁어 주자 기분이 좋았는지 낮게 으르릉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인가?’

    허리를 펴 곽민호 헌터와 김현욱 헌터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쉬이이이―

    ‘아, 이 연기는…….’

    손바닥만 한 장미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고, 연기를 마신 고양이들은 서로의 목을 물어뜯더니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형한테 개수작 부리지 마라. X발, 뒈지기 싫으면…….’

    장미는 붉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비쳤다.

    “저기도 마찬가지군.”

    “그러게요…….”

    김민숙 헌터가 싱긋 웃으며 상황을 지켜볼 무렵, 노란색 치즈 고양이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휘요오오―

    “아이구, 두심아.”

    고고하게 날아다니던 두심이도 조바심이 났는지 입을 쩍 벌려 고양이 몬스터를 향해 칼바람을 날렸다.

    “앗, 호양아!”

    쿠와아앙!

    이번에는 김현욱 헌터네 호양이가 질투에 눈이 멀었다. 호양이는 고양이를 향해 펄쩍 뛰어 그대로 공격했고 육중한 몸을 피하지 못한 고양이들은 한 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호양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김현욱 헌터를 향해 샐쭉 웃어 보였다.

    ‘같은 고양잇과한테도 가차 없구나.’

    “그, 그럼 이동할까요?”

    “네에…….”

    곽민호 헌터가 입술을 비죽이며 아쉬운 듯 뒤를 돌았다. 그의 팔 안에서는 여전히 화가 난 장미가 입에서 뿍뿍 소리를 내며 심통을 내고 있었다.

    아웅?

    “왜 그래, 녹두야?”

    아우우―!

    한참 게이트를 향해 나아갈 때쯤 갑자기 녹두가 길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돌연 걸음을 멈췄다.

    쿠구궁.

    땅이 요동치고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 그러고 보니 중간 보스 있었지.’

    소환수들을 앞에 둔 채로 모두 그 자리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웅장한 소리를 냈다.

    콰광!

    섬광이 일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샛노란 구체가 빛을 뿜어대고 있었고, 지면에 닿자마자 모래바람이 불었다.

    ‘어떤 고양이였더라…….’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갈 때쯤 모래가 서서히 걷혔고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먉.

    “와아아악!!”

    아기 고양이?! 그냥 고양이도 아니고 아기 고양이?!

    끽해야 내 손만 한 사이즈의,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인절미처럼 노란 털을 가진 그 작은 고양이는 김현욱 헌터의 비명을 듣고 꼬리가 펑 커지더니 그대로 하늘로 튀어 올랐다.

    “앗. 도망간다!”

    “두심아, 가라!”

    아기 고양이는 빛과 같은 속도로 수풀로 들어갔고 두심이가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악! 사진 못 찍었는데!”

    “괜찮아요, 제가 찍었슴다!”

    “곽민호 헌터… 나중에 꼭 공유해 주셔야 해요?”

    곽민호 헌터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김현욱 헌터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온몸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어디로 간 거지?’

    두심이가 하늘을 날며 살피고 녹두와 호양이가 수풀을 뒤져보았지만 아기 고양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지의 헌터!”

    “네?”

    곽민호 헌터와 김현욱 헌터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내 발을 보고 있었다.

    “왜, 뭐, 뭐예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내 신발 위에 얹힌 노란 조랭이떡 같은 것이 보였다.

    미약.

    “허억……!”

    아―우!

    콰과광!

    숨을 들이켜자마자 새하얀 빛줄기가 아기 고양이를 덮쳤고, 그대로 귀여운 털 뭉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잠깐, 이 공격은?’

    잠시 벙쪄서 빛줄기가 튀어나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 잔뜩 위협적인 얼굴을 한 우리 녹두가 있었다.

    [소환수와의 교감도가 상승]

    [소환수 스킬 개방]

    [S급 공격계 스킬 ‘언니는 내 거!’]

    [울음소리로 빛을 만들어 적을 공격한다. 동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공격이 가능하다.]

    ‘…이거 ‘섬광’ 아니었나?’

    지난 시간선에서, 녹두가 성체가 되고 나서 열렸던 공격계 스킬이 지금 개방되었다. 이름은 내가 기억하는 거랑 달랐지만, 아무튼 공격계 스킬이 드디어 열렸다.

    <사명>

    [늑대의 동반자]

    [동반자를 성장시켜라.]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70%]

    전과 마찬가지로 ‘늑대의 동반자’까지 상승했다.

    어쩌면 기억을 전부 되찾는 것보다 녹두가 성체가 되는 게 더 빠르겠는데.

    “오오! 새 스킬이 열린 겁니까?”

    “아, 네! 이렇게 갑작스럽게 생길 줄은 몰랐네요.”

    “와하하! 신지의 헌터네 녹두가 제법 질투쟁인가 봅니다!”

    송윤 헌터가 큰 소리로 웃으며 자신의 어깨 위에 얹은 덕배의 턱을 긁었다.

    끼잉, 꺙!

    녹두는 전보다 두툼해진 앞발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고 안아달라는 듯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읏차.”

    팔에 힘을 주고 녹두를 안아 올리는 동시에 상태창을 켜 녹두의 스킬을 다시 살폈다.

    [S급 공격계 스킬 ‘언니는 내 거!’]

    [울음소리로 빛을 만들어 적을 공격한다. 동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공격이 가능하다.]

    ‘근데 이름이… 좀 이상하다?’

    자아도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스킬 이름이야 뭐가 됐든, 일단 공격계 스킬이 열렸다는 게 중요하지, 뭐.’

    ‘그건 그렇지.’

    상태창을 끄고 고개를 내려 녹두를 다시 보았다. 녹두는 혀를 내민 채 내 손길을 즐기고 있었고, 목 깊은 곳에서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 공략 끝!”

    “네? 벌써요?”

    뭘 했다고 벌써 클리어야? 방금 잡은 아기 고양이가 중간 보스 아니었나?

    김민숙 헌터가 두심이에게 몬스터고기를 먹이며 유유히 걸어왔다.

    “아까 중간 보스 찾다가 두심이가 게이트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곧장 처리했어.”

    “아, 어떤 몬스터인지 보고 싶었는데…….”

    “하하, 엄청 커다란 검은 고양이였지.”

    “아, 부럽다~ 저도 한번 보고 싶으븝.”

    아쉬운 기색을 비치자마자 녹두가 냅다 내 얼굴로 달려들더니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유, 알았다. 이 녀석아.’

    녹두를 겨우 내 얼굴에서 떨어트려 지면에 내려놓았다. 이 질투심 많은 털 뭉치는 뒷발로 목을 긁으며 태평하게 굴었다.

    녹두의 이동계 스킬 ‘공중 도약’, 공격계 스킬 ‘언니는 내 거!’. 이제 남은 건 방어계 스킬이다.

    이름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실드를 방출하는 스킬이었지, 아마?

    우웅―

    그때 인벤토리에 넣어둔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보나마나 파견 업무 연락이겠지.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에 접속하자 역시 알림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

    파견 업무가 아닌, 헌터넷 내 메신저 알림이었다. 그리고 발신인은…….

    [내일 잠깐 뵐 수 있습니까? ―최민 헌터]

    최민 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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