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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62화 (62/366)
  • 62화

    ‘길을 비추는 자’ 덕에 게이트 위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소환되는 일반 몬스터도 빠르게 해치웠고 이제 남은 건 보스 몬스터뿐이었다.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네.”

    쿠구구궁.

    조슈아가 게이트에 손을 올리자 위쪽으로 볼록 솟은 천문관의 천장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봤을 때 보스 몬스터도 위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드를 미리 뽑아 놓은 후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자…….

    쾅!!

    수십 개의 망원경이 동시에 떨어졌다.

    끼리릭, 끼릭.

    하늘에서 떨어진 망원경들은 스스로 조립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나로 뭉쳐져 성게 같은 모양이 되었다.

    ‘몸체가 크면 맞을 면적도 넓으니까 나한텐 유리하네.’

    “신지의 헌터.”

    그때 내 옆으로 슥 다가온 조슈아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나와 눈을 맞췄다.

    “혹시 5분만 저 몬스터 그냥 둬도 될까요?”

    “…설마 공략 때문인가요?”

    “네. 패턴을 알아 둬야 나중에 더 편해지니까요.”

    몬스터가 밖으로 유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공략부터 생각하다니……. 이 인간의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차하면 바로 끝내버리지, 뭐.’

    철컥.

    정적을 깨고 망원경 더미에서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퍼버벙!!

    그리고 동시에 검은색 별자리 모형들이 총알처럼 발사되기 시작했다. ‘낮말을 듣는 새’로 허공을 밟으며 모형들을 전부 피했고 터지지 않은 몇몇 별자리들은 자아로 부숴버렸다. 별자리가 산산조각 날 때마다 유리 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C급 중에서도 공격이 단순한 편이네요!”

    콰그작.

    조슈아가 짧은 평가와 함께 양손에 든 잭나이프로 망원경의 렌즈를 그었다. 렌즈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지만 이내 속에 있는 렌즈를 다시 뽑아내며 원상 복구 되었다.

    “회복이 되는 형태라……. 혼자 공략한다면 한 번에 공격을 쏟아 낼 수 있는 헌터가 적합하겠어요.”

    그는 마치 내게 공략법을 알려 주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이야기했다.

    퉁, 퉁, 퉁.

    망원경은 또다시 별자리를 뽑아냈고 이번에도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수가 너무 많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새하얀 음파가 그대로 이 공간 전체를 울려버렸다.

    끼기기기기긱.

    덕분에 망원경들에도 금이 갔고 이리저리 스파크가 튀었다.

    쿠구궁.

    별자리들이 바닥으로 다 떨어지고 나서야 나도 지면으로 내려왔다. 조슈아는 한 손으로 잭나이프를 돌리며 망원경을 흥미로운 듯 지켜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신지의 헌터만 따라가는 걸 보면 빛 속성 헌터를 먼저 공격하는 것 같네요.”

    “아, 어쩐지. 기분 탓이 아니었군요.”

    “다치신 곳은 없나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입꼬리가 위로 시원하게 올라갔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끝을 내주시겠어요?”

    조슈아가 정중한 태도로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난 그대로 자아를 들어 망원경을 조준했다.

    탕!!

    자아에서 발사된 새하얀 탄환이 망원경 더미의 정중앙을 뚫었다. 녀석은 단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터져 나갔다.

    푸쉬이이―

    망원경의 잔해가 던전 바닥에 깔렸고, 그 속에서 부산물처럼 보이는 작은 배터리들이 발 앞으로 굴러왔다.

    [아이템 획득]

    [다 쓴 배터리 / 중급 부산물]

    “이 정도 난이도에 중급 부산물이라, 나쁘지 않네요.”

    “어서 나가요. 게이트부터 닫아야죠.”

    쿵.

    부산물을 찬찬히 살피는 조슈아를 데리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게이트가 서서히 닫혔다. 시험 삼아 게이트를 다시 열어보니 시작 포인트의 풍경이 제대로 보였다.

    “빠, 빨리 나오셨군요!”

    “신지의 헌터가 빠르게 해결해 줬거든요.”

    ‘얼씨구?’

    게이트 앞에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우릴 맞이했고, 조슈아는 능청스럽게 나를 띄워줬다.

    “그럼 이제…….”

    조슈아가 몸을 빙글 돌려 다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길드에 관한 얘기를 좀 할까요?”

    “…하하.”

    이렇게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조슈아는 한껏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허리를 살짝 숙였다.

    “뭐부터 말씀드리면 될까요? 역시 보상부터?”

    “좀 급한 감이 있…….”

    “아니면 세상 모든 게이트 폭발과 경계의 기록?”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조슈아는 낮게 소리 내어 웃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던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요.”

    “없는 편은 아니죠.”

    ‘경계에 대한 정보는 조금 탐나긴 한다.’

    지난 경포대 A급 던전에서도 경계에서 기억을 조금씩 되찾았다. 비록 조슈아가 갖고 있는 게 경계의 기록일 뿐이더라도 그걸 통해 내 기억과 종말에 관한 걸 알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업을 청산할 수 있다면…….

    후욱―

    그때 몸이 뒤로 당겨지더니 내 어깨에 커다란 손이 얹혔다. 조슈아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고 난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살폈다.

    “게이트 잘 닫았나 보네? 다친 덴 없어?”

    세빈이다. 유출된 몬스터들을 전부 수습했는지 세빈이가 말끔한 모습으로 내 뒤에 서있었다.

    “흐흥.”

    조슈아는 살짝 숙였던 허리를 편 후 세빈이를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강세빈 헌터 맞죠?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네, 반갑습니다.”

    세빈이가 사무적인 말투와 함께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고, 조슈아는 세빈이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불릿 길드의 길드장, 조슈아 체스터입니다.”

    “강세빈입니다.”

    “신지의 헌터, 잘 갔다 왔어?”

    어색한 정적이 찾아오기 전에 다행히 하미준 헌터와 한진우 헌터가 나타났다. 그는 ‘나무꾼’을 다시 눈썹 피어싱으로 돌려놓으며 나와 조슈아 사이에 섰고, 한진우 헌터는 내 몸에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완전 없는 사람 취급이네.’

    조슈아는 눈앞의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다 옆으로 한 발짝 나와 내게 말을 걸었다.

    “신지의 헌터, 혹시 아까 드린 명함 잠깐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여기요.”

    조슈아에게 명함을 주자 그가 새끼손가락으로 명함 귀퉁이를 꾹 눌렀다.

    치이익.

    그러자 연기와 함께 그의 지문이 명함에 새겨졌다.

    “저희 길드 소유 던전을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에요. 언제든지 쓸 수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

    조슈아는 싱긋 웃으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조슈아 님, 차량이 곧 오는데……!”

    “괜찮아요! 날이 좋아서 산책을 좀 하고 싶네요.”

    조슈아는 직원에게 손을 흔들곤 호수길을 따라 쭉 걸어 내려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히 남아 있었다.

    “별일 없었지?”

    조슈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세빈이가 평소의 다정한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

    “응. 몬스터도 약했고 던전도 엄청 짧았어.”

    “저 사람이랑은?”

    “응?”

    검은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저 사람이랑은 별일 없었지?”

    세빈이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나와 거리를 더 좁혔다. 잘 깎은 조각 같은 얼굴이 갑자기 눈앞에 불쑥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놀라라.’

    뾰로통한 얼굴을 슬쩍 밀어내며 대충 얼버무렸다.

    “별일이 있긴 뭐가 있어. 오늘 처음 본 사람이랑.”

    세빈이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더 말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강세빈 헌터가 그러더라. 지의 양은 희생이 익숙한 사람이라고.”

    하미준 헌터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빈이가 날 그렇게 걱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차량이 도착하기 전까지 세빈이와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됐고,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세빈이가 고등학생 때 덜컥 각성을 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추억은 크게 없었지만, 다니는 동안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각성한 이후로는 지금이랑 비슷했다. 세빈이와 함께 던전을 클리어하고, 폭발을 수습하고, 지옥도를…….

    ‘…어라?’

    순간적으로 온몸이 차게 식는다. 이유 모를 불안과 공포가 고개를 든 채 내 발끝부터 야금야금 씹어대기 시작하고, 불쾌하게 뛰는 심장 박동과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목을 조른다.

    이내 내 불안이 하나의 정제된 문장이 되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세빈이에 대한 기억이 띄엄띄엄 비어 있지?’

    몸을 살짝 틀어 세빈이를 오른쪽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내 기억을 담은 눈동자라면 분명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많은 걸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다면…….

    [강세빈]

    [내 소중한 소꿉친구]

    ‘얜 대체 뭐야?’

    눈동자로 보이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제대로 엮인 적 없는 조슈아보다도 적었다. 분명 세빈이는 모든 시간선에서 S급 헌터였고, 내 친구였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왜?

    누가 세빈이에 대한 기억을 도려내 간 것처럼 특정 시간선에서의 세빈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같은 시간선에서의 최민 헌터, 하미준 헌터, 한진우 헌터 같은 다른 사람들은 기억나는데.

    “지의야?”

    “헉!”

    탁.

    나도 모르게 내 어깨에 올려진 세빈이의 손을 쳐내 버렸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고, 세빈이의 눈이 커졌다. 손을 든 그 상태로 굳은 세빈이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질식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일단 아무 말이나 뱉었다.

    “아니, 그…….”

    “괜찮아?”

    “그냥 놀라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세빈이는 핑계를 듣는 대신 내 이마에 손을 얹으며 온갖 걱정을 쏟아냈다.

    “신지의 헌터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얼른 호텔로 가자.”

    “약손 하나 더 붙여 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멀쩡해요.”

    하미준 헌터와 한진우 헌터의 걱정까지 샀다. 그들도 꽤 놀란 듯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킨 후 곧바로 세빈이의 손을 잡았다.

    “미안.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알고 있어. 원래 딴생각하다가 누가 건드리면 놀라잖아.”

    툭.

    세빈이가 고개를 숙여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적당한 무게와 함께 비누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괜찮아, 정말로.”

    세빈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미안함과 혼란스러움이 뒤죽박죽 섞여 내 목구멍을 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세빈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가 내 옆에 있음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 * *

    “야, 나와 봐.”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아를 불렀다.

    키이잉.

    자아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내 실루엣을 한 채 내 앞에 나타났다.

    ‘강세빈 때문에 그렇지?’

    ‘응.’

    자아가 이마를 짚은 후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내가 너 혼란스러울까 봐 계속 얘기 안 하고 있었는데.’

    ‘빨리 말해.’

    ‘나, 이번에 니 소꿉친구 처음 봤어.’

    쿵!

    “하… 망할.”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아예 맨 처음부터 없었어?’

    ‘응. 존재 자체가 없었어.’

    자아의 말대로라면 바로 지난 시간선에도 세빈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세빈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시간선을 기억하고 있다.

    ‘세빈이가 있던 시간선은 어땠더라?’

    세빈이는 최민 헌터처럼 죽지도 않았고 그저 한결같이 열심히 던전을 수습했다. 지옥도가 열린 이후 행방이 좀 묘연해지긴 했는데…….

    ‘지의야.’

    자아가 침대 쪽으로 허리를 숙이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너, 이번 시간선에서 나 처음 만났을 때 배신자가 누구냐고 물어봤지.’

    ‘응. 지금도 그게 누군지 기억은 안……. 잠깐.’

    설마 지금 자아가 하려는 소리가…….

    끼익.

    “세빈이가 그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잖아.’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자아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기억이 안 나는 게 배신자랑 니 소꿉친구 단둘뿐이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봐.’

    ‘강세빈이라는 인간 자체가 없는 시간선이야. 애초에 배신자가 될 수도 없다고.’

    ‘너가 배신자를 기억 못 하는 이유가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럴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아니야. 바로 지난 시간선의 나는 그 배신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빈이와 배신자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다. 분명 세빈이는 배신자가 아닐 텐데, 100% 확신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미웠다.

    ‘…일단 정보를 모으자. 나도 니 기억 삭제하는 놈이 누군지 빨리 알아볼게.’

    우우웅―

    자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아무것도 확인하고 싶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터질 것 같았다.

    우우웅―

    “하… 뭔데.”

    핸드폰을 켜 메신저에 들어가니 클랜 채팅방에 메시지가 한바탕 쌓여 있었다. 채팅방을 툭 누르자 김현욱 헌터의 채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김현욱 헌터>

    [ㅇㄹ버ㅜㄴ]

    [여러분!!!]

    [아오시마 고양이 던전 출입증 따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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