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51화 (51/366)

51화

[죄를 심판하겠다!]

[죄를 심판하겠다!]

[죄를 심판하겠다!]

[체력 : 3,781/10,000]

음파를 방출하며 시체들을 이리저리 피할 동안 다양한 공격들이 터져 나왔다. 나무줄기가 시체의 연약한 사지를 비틀어 부수고, 시뻘건 불길이 해일처럼 시체들을 집어삼켰다.

‘슬슬 시체가 다 떨어질 때가 됐는데…….’

‘기울어진 천칭’은 접시에 있는 시체 더미를 전부 파괴하면 본체의 형태가 바뀌는 몬스터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공격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빠르게 처리해 줘야 하고.

콰직!

작살총으로 바꾼 자아로 시체와 빠르게 거리를 벌렸고, 눈앞에 뜨는 녀석의 상태창을 읽었다.

“체력 3,700 정도 남았어요! 시체 다 잡으면 몬스터 형태 바뀌니까 조심하세요!”

“가자, 두심아!”

휘요오오오―

먼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두심이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 날카로운 바람이 천칭에 달린 실을 끊어냈다. 저울판이 뒤집히며 땅으로 처박혔고 밑에 있던 시체들이 그대로 깔려버렸다.

끼에에에엑!!

시체들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저울판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쇠판을 들어 올리기엔 시체들의 팔이 너무나 가늘었다.

[이런, 이런, 이런!]

[일어나서 싸워라!]

[체력 : 3,257/10,000]

애타게 외쳐봤자 이미 땅속에 묻혀버린 시체는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한쪽 저울판이 사라진 천칭은 꼭 망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 필요 없다. 이젠 내가 직접 상대한다!]

[체력 : 3,000/10,000]

[편집 괴수 ‘기울어진 천칭’이 ‘부패 판사의 판사봉’으로 진화합니다.]

내 예상대로 상태창이 뜨는 동시에 천칭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고 저울대가 굵은 손잡이로, 얇은 저울판이 거대한 쇳덩이로 바뀌었다.

[편집 괴수 ‘부패 판사의 판사봉’이 심판을 내립니다.]

[‘강세빈’, 무죄를 선고합니다.]

[‘최민’, 무죄를 선고합니다.]

[‘하미준’, 무죄를 선고합니다.]

[‘김민숙’, 무죄를 선고합니다.]

[‘한진우’, 무죄를 선고합니다.]

[‘신지의’, 사형을 선고합니다.]

‘젠장할.’

콰과과광!!

“윽!”

빠르게 피했지만 망치가 빙글빙글 돌며 나를 맹렬히 쫓았다.

콰지직.

나무줄기와 그림자 손이 녀석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모래성’이 녀석의 진로를 방해했다. 덕분에 몇 번 넘어지고도 부패 판사의 판사봉과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냥 계속 공격해 주세요! 저 몬스터는 저만 죽어라 쫓을 거예요!”

[구원자, 너는 도대체 왜 다시 나타난 거지?]

[체력 : 2,191/10,000]

빠드득.

망치가 자신을 옥죄는 모든 것들을 뿌리치며 머리를 높이 쳐들었고 이내 내 쪽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쾅!

지면 전체가 강하게 울렸다. 땅을 딛고 서있던 사람들이 크게 휘청거리고 나도 옆으로 한 번 더 구를 뻔했다.

쉬익.

컹!

“녹두… 억?!”

그때 갑자기 튀어나온 녹두가 내 옷깃을 물고 왼쪽으로 끌어당겼고, 덕분에 보기 좋게 몸이 넘어갔다.

아까까지 얌전히 있던 애가 왜 그런 거야!

쿵!!

동시에 커다란 바위가 내가 있던 곳에 떨어졌다. 아까 부패 판사의 판사봉이 땅을 내리치면서 튀어 올랐던 바위 중 하나였다.

“이거 때문에……?”

컹! 컹, 컹!

녹두는 초록색 눈을 빛내며 내 주위를 뛰어다녔다. 칭찬을 바라는 털 뭉치의 코끝에 입을 맞춘 후 곧바로 자세를 잡아 판사봉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빠르게 날아간 탄환이 아슬아슬하게 부패 판사의 판사봉의 손잡이를 스쳤다.

[감히 나르을!!]

[체력 : 1,462/10,000]

그때 하미준 헌터가 뽑아낸 나무줄기가 망치를 다시 옭아맸고, 세빈이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 두 개가 짐승의 입처럼 쩍 벌어지더니 망치의 머리를 잡았다.

콰과과광!

부패 판사의 판사봉이 불길에 삼켜졌다.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었고 시커먼 연기가 녀석의 몸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그리고 그 연기 속으로 하미준 헌터의 도끼가 초록빛 궤적을 남기며 날아갔다.

쨍그랑!

도끼가 제대로 맞았는지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체력 : 0/10,000]

[심판을 하는 게 내 역할…….]

[구원자, 넌 도대체 왜 이 세상에 온 거지……?]

[편집 괴수 ‘부패 판사의 판사봉’이 ‘기울어진 천칭’으로 돌아옵니다.]

[편집 괴수 ‘기울어진 천칭’이 ‘하미준’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드디어…….”

나를 맹렬하게 쫓던 세 마리의 몬스터가 사라지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저릿한 다리에도 힘이 빠진 바람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우우!

“고마워, 우리 녹두.”

컹!

꽤 커진 녹두의 목을 벅벅 긁어 주었다. 그 바위에 정통으로 맞았으면 못해도 갈비뼈 몇 개는 나갔을 것이다. 녹두는 칭찬받은 게 기쁜지 헤벌쭉 웃으며 내 다리 위에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다.

바스락.

차가운 나뭇잎이 팔랑거리며 내 쪽으로 날아오더니 이내 몸 이곳저곳에 착 붙었다.

“힘드셨죠!”

“힘들긴 하네요…….”

“쉬지 않고 뛰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헌터들이 하나둘씩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한진우 헌터는 ‘행운의 토끼발’에서 내려와 내 다리를 살폈고 ‘약손’을 파스처럼 몇 장 더 붙여놓았다. 김민숙 헌터는 내게 기력 회복제 한 병을 건넸고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흐음… 나머지 두 마리가 전혀 안 보이네요.”

“일단 강세빈 헌터가 정찰하러 갔어.”

한진우 헌터의 중얼거림에 하미준 헌터가 대답했다. 소멸 조건이 따로 있는 몬스터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숨어있을 확률이 높다. 대충 어떤 몬스터였는지라도 기억이 나면 훨씬 수월할 텐데.

‘응?’

아무것도 뜨지 않는 허공을 노려보고 있을 때쯤 인파 저 너머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도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을 바라봅니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조용히 돌아갑니다.]

‘잠깐, 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고개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신지의 헌터? 무슨 일이야?”

‘젠장할, 목소리도 안 나와!’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해봐도 보이지 않는 힘이 더욱더 나를 옥죌 뿐이었다.

♬♪♩

시야에 들어왔던 작은 빛은 빙글빙글 돌면서 점점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시체를 매단 모빌이란 걸 알아차렸다.

‘정신계 스킬인가?’

눈동자만 겨우 옮겨 주변을 살폈지만 사람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을 뿐 저 시체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

자장가를 들려주는 오르골 소리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집어삼키고 시체들을 달고 있는 귀여운 유니콘 인형이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당신의 정신을 꿈 세상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의 꿈 오르골을 부숴야 꿈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의식이 멀어집니다.]

* * *

“허억! 컥! 쿨럭, 쿨럭. 켁!”

물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폐부에 숨이 가득 들어찼다. 미처 삼키지 못한 숨을 토해 내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고 습관적으로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

정신만 끌려왔는데 자아가 있을 리가 없지.

머쓱한 팔을 내리고 일단 주위를 살폈다.

분홍색 하늘을 부유하는 분홍색 구름, 분홍색 카펫이 깔린 바닥 위에 피어 있는 분홍색 나무. 분홍색 사과에 분홍색 침대, 분홍색 장미, 분홍색…….

“정신 사나워.”

사방팔방이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단 여기가 ‘시체 모빌’의 꿈 세상이란 건 확실한데…….

‘여기서 꿈 오르골인지 뭔지를 어떻게 찾냐.’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뾱뾱거리는 소리가 났고, 하늘에선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귀여운 유니콘 인형이 날아다녔다.

이곳에서 탈출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꿈 밖의 상황도 문제다. 정신만 끌려온 거면 몸은 그대로 있는 건데, 내가 죽었다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최대한 빨리 꿈 오르골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

지이익.

침대 매트리스도 털어 보고 나무도 흔들어 보았다. 혹시 카펫 밑에 있을까 봐 온 힘을 다해 뜯었지만.

[‘시체 모빌’의 꿈 세상을 부수면 안 됩니다.]

제법 정중한 부탁이 돌아왔다.

휘이잉―

“어, 너……!”

그때 망할 인형 뽑기로 뽑았던 단두대 인형이 솜사탕 같은 구름을 타고 둥실 날아왔다.

[축복 ‘행운의 당첨자!’]

[편집 괴수 ‘행운의 인형 뽑기’를 소멸시킨 생명체에게만 내려지는 특별한 축복]

‘여기까지 쫓아올 필요는 없는데.’

자아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간다면 좀 위험하다.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두대 인형은 구름에서 내려와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편집 괴수 ‘행운의 인형 뽑기’가 ‘시체 모빌’을 설득합니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동요합니다.]

“설득?”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좋은 일해 주려나 본데?

“야! 이번엔 진짜 잘하자? 어?”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설득당했습니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꿈 오르골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

아득하게 어떤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르골 소리다!

“대박, 생큐!”

퍼엉!

자신의 사명을 마친 단두대 인형이 터졌다.

후드득.

“아, 으…….”

시뻘건 피는 덤이었다.

분홍색 카펫을 물들이는 검붉은 피를 피해 자리부터 옮겼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유니콘 인형이 피웅덩이 주위로 모여 그것을 열심히 핥아 마셨다.

진짜 역겨운 상황이 끊이지가 않는구나.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의 꿈 오르골이 돌아갑니다.]

[당신이 어느 순간 한 번 바랐던, 아름다운 꿈이 흘러나옵니다.]

일단 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얼른 가서 오르골을 부숴야겠네.

후웅―

바로 ‘발 없는 말’과 함께 빠르게 달려 나갔다. 가까이 갈수록 노랫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야. 걱정…….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사진―게… 봐!

말소리 맞네.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오르골의 노랫소리에 섞여 들렸다.

‘근데 왠지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언니!

턱.

말소리가 정확히 귀에 꽂혔다. 10년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니 들을 수 없던 목소리였다.

“…지유야?”

* * *

경계 내부.

“신지의 헌터?”

“지의 양, 무슨 일이야?”

멍하니 앉아 있는 지의를 향해 민숙과 미준이 허리를 숙여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털썩.

곧바로 지의의 몸이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

아우―!

녹두가 지의의 머리 밑으로 몸을 날려 제 주인을 보호했고 천천히 빠져나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지의는 잠들어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 최소한의 숨을 뱉으며 겨우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의 양!”

“신지의 헌터, 신지의 헌터! 정신 차려!”

탁.

“나머지 두 몬스터는 전혀 안 보이…….”

그리고 정찰을 끝내고 마지막에 합류한 세빈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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