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49화 (49/366)
  • 49화

    [편집 괴수 ‘오늘의 날씨는 맑음입니다’가 ‘신지의’를 타기팅합니다.]

    [편집 괴수 ‘기울어진 천칭’이 ‘신지의’를 타기팅합니다.]

    [편집 괴수 ‘날지 못하는 종이학’이 ‘신지의’를 타기팅합니다.]

    [편집 괴수 ‘시체 모빌’이 ‘신지의’를 타기팅합니다.]

    [편집 괴수 ‘괴조의 호수’가 ‘신지의’를 타기팅합니다.]

    ‘망할, 또 이런 일이.’

    두근, 두근.

    그때의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몬스터들에게 쫓기며 아득바득 버텼던 그 기억이.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기억을 되찾으며 지난 시간선의 업을 청산하라.]

    [달성도 : 42%]

    이 사명의 달성도가 많이 오른 탓인가. 내 상태창을 닫자마자 또 다른 상태창이 눈앞에 튀어나왔다.

    [축복 보너스!]

    [‘행운의 당첨자!’를 타기팅하는 몬스터들의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이번엔 몬스터들의 방어력까지 상승한다고?

    끔찍한 상황의 연속에 정신이 멍해졌다.

    화르륵.

    “읏!”

    그때 얼굴 위로 열기가 훅 끼쳤고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최민 헌터!”

    “…….”

    최민 헌터는 나를 안아 든 채로 날아올랐고 지면에 떨어진 몬스터 덩어리들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콰드드득.

    그리고 곧바로 검은 그림자가 몬스터 덩어리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 모든 몬스터가 신지의 헌터를 쫓는다는 거죠?!”

    한진우 헌터가 크게 소리쳤다. 난 최민 헌터의 목에 팔을 두른 채 일단 주위부터 살폈다.

    아직 완전한 형체가 되기 전의 경계 몬스터들을 막는 세빈이와 하미준 헌터, 몬스터 쪽으로 두심이를 날려 보낸 김민숙 헌터. 그리고 ‘행운의 토끼발’ 위에 올라탄 한진우 헌터까지.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두 빠르게 제 역할을 찾아 수행하고 있었다.

    “최민 헌터! 지의 양을 ‘방공호’ 안에 두는 건 어때? 그게 안전할 것 같은데?”

    밑에서 하미준 헌터가 소리쳤다. 최민 헌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방공호의 안과 밖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경계 몬스터의 공략 방법이나 체력 수치를 알기 위해선 신지의 헌터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최민 헌터가 제법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뚜두둑.

    그때 몬스터 덩어리가 나무줄기와 그림자를 끊고 세 마리의 몬스터들로 분리됐다.

    [편집 괴수 ‘괴조의 호수’]

    [체력 : 5,000/5,000]

    [편집 괴수 ‘기울어진 천칭’]

    [체력 : 10,000/10,000]

    [편집 괴수 ‘날지 못하는 종이학’]

    [체력 : 12,000/12,000]

    [편집 괴수 ‘시체 모빌’]

    [체력 : 50/50]

    [편집 괴수 ‘오늘의 날씨는 맑음입니다’]

    [체력 : 5/5]

    인터넷 뉴스를 가리는 불쾌한 광고처럼 눈앞에 상태창이 와다다 떴다. 시체 모빌이랑 오늘의 날씨는 맑음입니다는 소멸 조건이 따로 있는 몬스터였고, 나머진 일반적으로 공격해서 해치워야 하는 몬스터다.

    콰득.

    나무줄기와 그림자가 또다시 녀석들을 옭아맸다. 하지만 붙잡아 놓는 게 전부일 뿐 유의미한 공격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제가 미끼가 될게요!”

    “괜찮겠어? 다른 놈들도 아니고 경계 몬스터야.”

    “이동계 스킬도 없잖아. 너무 위험해.”

    지난 시간선에서 겪은 작은 소란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번엔 다르다.

    철컥.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미끼가 될 테니까 그 틈에 공격하세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 했지만 몬스터들이 날뛰는 소리에 전부 묻혀버렸다.

    “최민 헌터, 절 최대한 먼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괜찮겠습니까?”

    최민 헌터가 내리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걱정하는 건가……?’

    무감정한 그의 눈에 약간의 불안이 서려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피이이잉―

    “큿.”

    최민 헌터가 대답을 마치기 무섭게 날카로운 송곳들이 그와 나를 추격했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오른손으론 자아를 조준했다.

    퍼버버벙!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공기가 진동했고, 음파에 닿은 송곳들은 힘없이 터져 나갔다.

    찌익.

    “윽!”

    음파의 범위에서 벗어났던 송곳 하나가 내 종아리를 스쳤다. 살짝 찢긴 바지 틈으로 피가 배어 나왔고 옅은 쓰라림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펑!!

    최민 헌터가 폭발을 일으키며 더 먼 곳으로 날아갔고 우리는 몬스터의 형체가 점이 될 정도로 멀어졌다.

    [내 파트너가 되어줘. 파 드 되를 완성하려면 네가 필요하단 말야!]

    [체력 : 4,700/5,000]

    [죄인은 심판을 받으라.]

    [체력 : 10,000/10,000]

    [기껏날개를만들어줬으면날수있게해야하는데왜나는날수없는거야튼튼한두다리가있어봤자날지못하면무슨의미가있어]

    [체력 : 12,000/12,000]

    ‘이제야 말하기 시작하는군.’

    이미 체력이 깎인 녀석이 있는 걸 보니 다른 헌터들도 전투를 시작한 것 같다.

    [내가지금너를쫓아가지못하는이유도내가날수없어서그런거겠지완전최악이야이렇게태어나고싶지않았어]

    [체력 : 12,000/12,000]

    [노래는 준비되어 있어. 너만 오면 돼. 내 파트너가 되어줘.]

    [체력 : 4,672/5,000]

    불규칙적으로 뜨는 상태창 때문에 눈앞이 다 어지러웠다. 상태창 보다가 역으로 공격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밑을 내려다보니 어느 정도 몬스터와 거리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제 내려주셔도 될 것 같아요.”

    탁.

    최민 헌터가 고개를 끄덕인 후 지면을 향해 빠르게 착지하더니 날 빤히 쳐다보았다.

    “조심하세요.”

    “최민 헌터도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뭐야, 내 말에 의문을 느낄 게 어디 있다고.

    최민 헌터는 약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땅 위로 내려주었다.

    ‘위험한 인물은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했다.

    두두두두두.

    딴생각할 때가 아니네.

    난 자아를 고쳐 쥐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 무리를 살폈다.

    털이 숭숭 난 사람 다리가 붙은 커다란 종이학은 날지 못하는 종이학, 발레복에 눈 없이 부리만 세 개 달린 새는 괴조의 호수, 그리고 한쪽 저울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가 얹어져서 완전히 기울어진 채 하늘을 떠다니는 천칭이 기울어진 천칭이었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본격적인 전투로 잡을 놈부터 해치워야겠어.

    삐이익.

    “아, 아아. 와 씨, 엄청 크네.”

    자아에 대고 말을 하자 내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크게 퍼져 나갔다.

    “발레복 입은 괴물새 체력 5,000, 천칭 10,000, 종이학 12,000입니다! 일단 계속해서 공격해 주세요!”

    휘요오오오―

    내 목소리에 화답하듯 두심이의 울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세빈이와 하미준 헌터처럼 상대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스킬이 있는 헌터를 상대로 여기까지 날 쫓아온 걸 보면, 확실히 지난 시간선에 비해 방어력이 상승한 것 같다.

    ‘작전을 짜야 해.’

    [쟤는날개가있고날수있어근데나는왜날수없는거야분명쟤도날지못하는나를비웃으러온거겠지아열받아다죽어버려]

    [체력 : 11,040/12,000]

    날지 못하는 종이학의 말이 눈앞에 떴다. 녀석은 빠른 기동력과 넓은 범위 공격을 갖춘 몬스터였다. 범위 공격으로 대형을 흐트러트린 후 부리로 직접 공격하는 게 기본적인 패턴이었다.

    후우웅―

    “윽!”

    멀리서 날지 못하는 종이학이 한 번 날갯짓을 하기가 무섭게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고, 덕분에 몸이 붕 떠 앞으로 굴렀다.

    펑!!

    자아를 곧장 작살총 형태로 바꿔 멀리 있던 나무 기둥을 향해 쏘자 두꺼운 날붙이가 나무를 제대로 맞혔다.

    쾅!!

    땅에 발을 딛는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 나무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넘어졌던 곳에 커다란 부리가 꽂혔다. 조금이라도 늦게 피했다면 그대로 몸이 꿰뚫렸을 것이다.

    [왜이렇게땅이딱딱한거야빨리빼고싶어뭐야이게괴로워]

    [체력 : 11,040/12,000]

    날지 못하는 종이학은 공격력 자체는 파괴적이지만 한 번 부리가 박히면 다음 공격을 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탕, 탕, 탕.

    자아를 다시 원래의 형태로 바꾼 후 소리 탄환을 발사시켰다.

    끼기기긱.

    “뭐야?!”

    날지 못하는 종이학이 부리를 땅에 박은 채 힘차게 날개를 휘젓자 내 탄환이 경로를 바꿔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이번엔 하늘에서 천칭 접시가 떨어졌다. 뒤로 피하는 동시에 허공에 떠있는 기울어진 천칭을 향해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녀석도 가만히 맞아 주진 않았다. 그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탄환을 피했고, 그럴 때마다 접시 위에 있던 고깃덩어리들이 바닥에 처박혔다.

    ‘금방 포위되겠군.’

    기울어진 천칭은 이미 하늘에서 내 움직임을 전부 관찰 중이었고, 나머지 몬스터 두 마리도 점점 더 빠르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철컥.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길게 당겼다.

    우웅, 우웅, 우웅.

    조용히 퍼지는 소리의 파도가 모든 몬스터들을 훑었고 녀석들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구원자다!]

    [구원자다!]

    [구원자다!]

    “어, 어?”

    그리고 세 개의 똑같은 말이 내게 돌아왔다. 그 상태창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내 앞으로 들이밀어질 뿐이었다.

    ‘그걸 얘네가 어떻게…….’

    퍼버벙!

    “읏!”

    최민 헌터의 불꽃이 내 앞을 가로막았고, 그와 동시에 파드득, 하고 종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뜨거워뭐야나한테왜그러는데]

    [체력 : 9,821/12,000]

    콰지직.

    이번엔 시커먼 그림자 손이 괴조의 호수의 목을 잡아 하늘로 던졌다. 녀석은 유유히 날아다니던 기울어진 천칭에 부딪혔다.

    [구원자! 어떻게 온 거야! 또다시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체력 : 4,200/5,000]

    [구원자맞아?그럼지금당장내목숨을뺏어가줘더이상이렇게비참하게살수는없단말이야제발]

    [체력 : 9,821/12,000]

    [구원자,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체력 : 9,204/10,000]

    ‘쟤네 왜 이렇게 개소리를 한대?’

    자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개소리 아닐 거야.’

    ‘내가 쟤네랑 초면인데 개소리가 아닐 리가 있냐.’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아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자아의 말이 틀릴 가능성, 경계 몬스터들이 나를 기억하는 이유, 두 가지 모두가 성립하는 가정이 하나 있다.

    ‘내 회귀가 한 번이 아니라는 것.’

    쿵,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다 못해 몸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크게 진동했다. 만약 진짜로 내가 회귀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자아는 왜 이전 시간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이것마저 기억을 방해하는 녀석의 짓인가?

    “끄, 어어어어…….”

    “헉.”

    경계는 잠깐의 사색도 허락하지 않았다. 천칭 접시에서 떨어진 고깃덩이, 아니 정확히는 시체가 땅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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