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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42화 (42/366)
  • 42화

    이고은 서장이 내게 인식 저해 스킬을 거는 동안 나는 카메라 목걸이를 찼다. 눈을 감은 채로 고리를 거느라 손이 몇 번 허공을 헤맸지만 그래도 금방 제대로 된 위치를 찾았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저보다 몇 살 많을 것 같은 남자랑 엄청 어린 여자아이요.”

    “아이가……?”

    이고은 서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네…….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였어요. 100% 학대입니다.”

    “상황이 종료되면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킬이 제대로 걸린 걸 확인한 후 이고은 서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4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지하철을 타고 가면 10분 만에 건물까지 갈 것이다.

    나도 내 모습을 다시 살핀 후 이고은 서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게이트에서 나오면 저희들이 바로 대기하고 있을 예정이니 시민들의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이고은 서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비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두드렸다.

    * * *

    “다들 모이셨죠? 우리 연우도 잘 왔고!”

    “연우야, 헌터님 따라서 잘 다녀와야 해?”

    “네에…….”

    부부는 연우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연우는 던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목 부근이 불편한지 자꾸 목을 긁었다.

    자기 자식이 소풍 간다고 생각하는 건가.

    연우에게서 시선을 떼고 부부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병든 눈빛이 보였다.

    부웅.

    그때 커다란 승합차가 건물 앞으로 거칠게 들어왔다. 운전석 쪽 창문이 내려가더니 그 안에서 사진으로만 본 한철민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 저분이 오늘 여러분들의 각성을 도와주실 저희 사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철민입니다.”

    모두가 정중하게 인사하는 동안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한철민을 들여다보았다.

    ‘저 새끼군.’

    사진보다 더 살이 찐 건지 안 그래도 연한 이목구비는 더욱 흐릿해져 있었고, 요즘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은 그 얼굴과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지만 저 자식은 이미 나쁜 놈이니까 이 정도 생각은 해도 되겠지.

    진상남이 차 문을 열어 주었고 나를 비롯한 비각성자들이 하나둘씩 올라탔다. 연우의 부모는 응원하듯 연우를 향해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차 문이 닫히고 우리를 태운 승합차가 도로를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대림역에 있는 D급 던전에 갈 예정입니다~ 과거 던전이고, 한 1960년? 그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 많이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 정말로 각성할 수 있는 거 맞나요?”

    “단언은 못 하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각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게으름뱅이들보다는 각성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김기진 씨의 물음에 한철민은 미리 녹음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말을 술술 뱉었다. 그러다 백미러를 슬쩍 본 후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어린 손님도 계신다더니 정말이었네! 이름이… 이연우 맞지?”

    “네…….”

    “각성하고 싶어서 온 거야?”

    “네…….”

    연우는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작은 손을 뻗어 에어컨의 바람 방향을 제 쪽으로 돌렸다. 땀 때문에 이마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안쓰러웠다.

    “우리 예쁜 손님은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에? 저요?”

    “그럼 여기 예쁜 손님이 그쪽 말고 어디 있어요?”

    ‘지금 주먹으로 뒤통수 갈기면 안 되겠지?’

    하미준 헌터가 아무리 소름 돋고 느끼한 멘트를 뱉어도 이 정도로 불쾌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로 생리적인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얼굴을 팍 구긴 채로 이를 까득거리자 한철민이 머쓱한 듯 괜히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 실례되는 말이었나? 아무튼 지희 씨도 던전이나 각성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요.”

    “던전에 간다고 해도 무조건 각성하는 건 아닐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요?”

    “던전 내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에요. 몬스터뿐만 아니라 굴러다니는 나뭇잎 한 장까지 비각성자들의 몸에 영향을 미치죠.”

    차가 코너를 돌자 옆에 있던 연우의 몸이 자연스럽게 내게 닿았다. 연우는 내 팔에 기대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몸에 힘을 주고 최대한 내게 닿지 않으려 했다.

    “기대도 돼.”

    연우에게 그렇게 속삭였지만 아이는 오히려 문 쪽으로 몸을 붙여 안 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작게 구겼다.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긴장하게 될 것이고 그 상황에서 몬스터를 마주하게 되면! 커피를 몸에 들이부은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가 나올 겁니다.”

    “결국 저희를 사지로 내몬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내 말에 한철민이 백미러로 나를 슬쩍 보았다. 그 역겨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한철민이 먼저 눈을 피했다.

    “에이, 말을 왜 그렇게 하시나~ 안전에 대한 건 정말 걱정하지 마세요!”

    차가 멈췄다. 창밖에는 꽤 그럴듯한 1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설마 여기 안에 게이트가 있는 건가?

    지금 보니 큰 건설 회사의 로고가 건물 겉에 박혀 있었다.

    ‘확실히 기업 소유라 그런가. 더 철저히 가려놓네.’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한가운데에 떠있는 커다란 철문과 함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예약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미 목소리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한철민이 내미는 출입증과 자신의 태블릿을 번갈아 보며 건성으로 스캔 작업을 끝냈고, 가도 좋다는 뜻으로 게이트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럼 들어갑시다!”

    한철민이 게이트의 빗장을 옆으로 밀고 문을 벌컥 열었다. 김기진 씨가 먼저 그를 따라 들어갔고 연우는 나와 게이트를 번갈아 보다가 결심을 했는지 힘차게 뛰어 들어갔다. 나도 그런 연우의 뒤를 따라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콜록, 콜록!”

    안 그래도 매캐한 공기에 기묘한 향신료 냄새까지 섞여서 숨 쉬기가 좀 힘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평범하고 낡은 상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이게 과거의 대림동 주변의 모습인가?’

    중국어가 쓰인 간판들과 조명이 고장 난 철물점, 그리고 들쑥날쑥한 판잣집. 분명히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도 들리고 그림자도 보이는데 사람들의 형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음?”

    그때 누군가 내 손가락을 잡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보니 연우가 내 검지와 중지를 꽉 잡고 있었고 내 다리에 거의 붙다시피 걸었다. 아까 내게 몸이 닿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애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연우야, 무서워?”

    “…네.”

    쪼그려 앉아서 아이와 눈을 맞추자 연우는 내 시선을 피하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 연우의 양손을 조심스레 쓸어주자 차갑던 손등이 조금씩 온기를 되찾았다.

    “괜찮아. 언니가 연우는 무조건 지켜줄게.”

    연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우는 입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지금은 한철민의 뒤를 따라야 한다. 다시 일어나 연우의 손을 고쳐 잡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한철민을 따라갔다.

    두근, 두근.

    ‘아, 또다.’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고 내장이 뒤집히는 것처럼 울렁거렸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입술을 꾹 물었다.

    “아아아아악!!”

    이번 기억은 나의 절규로 시작되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신지의 헌터 잘못 아니에요!”

    “제가 연우를 죽게 했어요, 제가 연우를 죽게 했다고요!”

    내가……?

    고개를 내려 연우를 쳐다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의 연우가 내 손가락을 꼭 잡은 채 열심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결국 또 지키지 못했어…….”

    “허억!”

    “지희 씨, 괜찮으신가요?”

    “네, 네…….”

    다 쉬어버린 내 목소리와 함께 과거의 기억은 끝이 났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천천히 걸었고 머리론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려 애썼다.

    내 실수 때문에 연우가 죽었다. 몬스터에게 당한 건 아닐 거고, 분명히 어떤 ‘실수’로 연우를 죽게 한 걸 것이다.

    ‘이번엔 지키겠어.’

    연우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이 업을 청산하기 위해 내가 여기 서있는 거니까.

    “사장님, 전 E급인데 혹시 각성하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

    “가능성으로 본다면야 S급까지 갈 수 있죠! 저희 선배도 몇 년 전에 저랑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그 선배 고객 중에 비각성자였다가 S급으로 각성한 사람이 있었어요!”

    ‘뻥을 쳐도 엔간히 쳐야지.’

    한철민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렸다.

    “그, 그럼 저희가 TV에서 보는 그 S급 중에 있다는 거죠? 대박 신기하다, 대박…….”

    김기진 씨가 박수까지 치며 놀라워하고 있을 동안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S급은 무슨, 잘 해봤자 C급이라고 했다. 저렇게 입에 침 하나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다니. 역겨워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람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희망을 갖기 마련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을 보면 언젠가 나도 당첨될 것 같아서 계속해서 복권을 사고,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희망을 갖는다.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동기 부여가 되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며 절망감을 맛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철민이 더 역겨웠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행동하는 것 같아서.

    쉬이익.

    “우와아악!”

    그때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 빠른 속도로 김기진 씨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한철민은 까마귀를 눈으로 좇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불로 휩싸이더니 또다시 날아오는 까마귀를 붙잡아 그대로 태워버렸다.

    자기 동족이 죽은 걸 눈치챘는지 새카만 연기 같은 까마귀 떼가 건물 뒤쪽에서 미친 듯이 날아왔다.

    연우는 내 뒤쪽으로 숨었고, 이 작은 소란이 끝날 때까지 내 허리에 얼굴을 완전히 묻었다. 김기진 씨는 손으로 까마귀를 쫓으며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에 바빴고 한철민은 그런 까마귀를 한 마리씩 일일이 잡아서 태우고 있었다.

    “개판이네.”

    마음 같아선 그냥 소리 한 번 지르고 다 끝내 버리고 싶다.

    까아악!!

    김기진 씨의 뒤를 쫓던 까마귀 하나가 갑자기 경로를 바꿔 내 목을 노렸다.

    “아아.”

    퍼엉.

    목소리를 내서 까마귀를 터트렸다. 스킬 쓴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터지기 직전 주먹으로 까마귀를 후렸다.

    “지희 씨, 혹시 지금 각성하셨나요?”

    “아뇨. 여전히 F급입니다.”

    “그런데 주먹으로 까마귀를……. 대단하시네요! 지희 씨는 재각성하시면 정말로 S급 되시겠어요.”

    “하하, 네~”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내 뒤에 있던 연우를 살폈다. 약간 긴장한 것 빼고 괜찮아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연우를 향해 웃어 보이자 연우도 쭈뼛거리며 내 옆에 섰다.

    “그러면 쭉쭉 가겠습니다!”

    한철민은 계속해서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 이후에도 날아오는 까마귀들을 한 마리씩 잡아 태웠다.

    아직까지는 예상한 것만큼 잔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네. 김기진 씨도 약간 놀랐지만 다친 곳은 없고…….

    브로커들은 사람들을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하고 원초적인 위협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한철민의 행동은 평범했다. 일반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곧바로 처리했고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우리가 잘 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스킬은 공격계 스킬밖에 없나?’

    한철민의 뒷모습을 향해 권능을 비추자 보라색 글자가 일렁거렸다.

    [한철민(43) C급]

    [불 속성]

    [C급 공격계 스킬 ‘불주먹’ : 손에 불을 두른다.]

    [D급 은신계 스킬 ‘아지랑이’ : 사용자의 모습을 숨기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완전히 몸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귀속 무기 : 없음]

    은신 스킬이 하나 있구나.

    손에 끼고 있는 저 장갑이 무기인 것 같은데 귀속 무기엔 표시되지 않았다.

    ‘귀속시키면 다시 못 팔아서 그런가?’

    권능을 내리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저, 언니…….”

    “응?”

    “언니도 언니네 엄마 아빠가 시켜서 온 거예요?”

    연우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내리자 연우는 나를 힐끔 봤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난 내가 오고 싶어서 왔어. 연우는?”

    “전 시켜서 왔어요.”

    진짜 최악이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고, 그 때문인지 되레 연우가 겁을 먹었다.

    “아, 인상 써서 미안.”

    “…이건 진짜 비밀인데요.”

    연우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까보다 목소리를 죽인 채로 입을 열었다.

    “저희 윗집에 헌터가 산대요. 엄~청 센 헌터래요.”

    “어? 어, 어…….”

    인식 저해 스킬이 걸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연우는 나한테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난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제가 그런 헌터가 되길 바라나 봐요.”

    “연우는?”

    “네?”

    “연우도 헌터가 되고 싶어?”

    연우는 입을 벌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레이스를 쭉 끌어내려 가슴께를 벅벅 긁었다.

    “어?”

    ‘가슴 쪽에 멍 같은 거 있지 않았나?’

    순간이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새하얀 원피스 밑으로 칙칙하게 푸른 멍이 있었다. 더운 날인데도 긴팔 옷과 긴바지를 입혔던 어제, 그리고 던전에 어울리지 않는 흰색 긴소매 원피스를 입힌 오늘.

    이건 명백한 학대의 증거다.

    “자! 여러분 여기가 이제 보스 몬스터가 나올 곳입니다.”

    “어, 아까랑 똑같은 문이네요?”

    김기진 씨가 흥미로운 듯 게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철민은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 띠며 갑자기 허공을 휘저었고, 얼마 안 있어 쇠붙이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가 인벤토리에 넣어둔 낡은 칼과 총, 쇠파이프가 아스팔트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혹시 모르니까 드리는 무기예요. 어쩌면 헌터가 될지도 모르는데 무기 쓰는 법들을 익혀야 하지 않겠어요?”

    자아가 총이랑 비슷해서 총을 잡을까 하다가 야구배트로 방향을 틀었다.

    진짜 총은 쏴본 적도 없으니까 차라리 둔기가 더 다루기 쉽겠지.

    연우는 무기 앞에서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잡지 않고 내 옆에 섰다.

    ‘이 애가 평생 저런 무기를 들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한철민이 게이트에 손을 대자 땅이 쿠구궁, 하고 울리더니 팔을 앞으로 뻗은 허수아비 같은 게 나타났다.

    “대림동 D급 던전 보스 몬스터, ‘강시’입니다~”

    아, 그 중국 요괴.

    지금 보니 허수아비는 중국 전통 옷을 입고 있었고 피부도 시체처럼 새파랬다. 한철민이 강시와 우리를 번갈아 보다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자, 그러면 알아서들 잘 해보세요~”

    “네, 네?!”

    “뭐?”

    한철민의 몸이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일렁거렸고, 이내 주변 환경에 완전히 묻혔다.

    ‘아지랑이……!’

    한철민의 모습이 사라지자 우리 쪽으로 몸을 튼 강시가 빠른 속도로 콩콩거리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한철민에게 분노를 느낄 새도 없었다. 강시의 긴 팔이 나와 연우 쪽으로 힘차게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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