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이지희(21)]
[직업 : 무직]
[최종 학력 : 일반 고등학교 졸업(예체능)]
[가족관계 : 모, 부]
[경력 :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1년]
‘지금은 이게 나라는 거지?’
이력서처럼 보이는 종이에는 나와 미묘하게 닮은 사람의 사진이 붙어있었고 그 뒤에는 신분증도 있었다.
지의, 지희. 발음이 비슷하니까 바뀐 이름을 듣고서도 별문제 없이 대답할 수 있겠네.
“이걸 착용해 주십시오.”
“카메라가 달렸다고는 생각도 못 할 디자인이네요.”
연예인들이 할 법한 초커였다. 갈고리를 걸어 카메라를 목에 고정했고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한 번 살폈다.
음, 그냥 패션에 좀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네.
“맥박이 뛰는 이상 카메라는 계속해서 돌아갑니다. 아마 신지의 헌터께서 사무실에서 나누는 이야기, 각성을 위해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기록되겠죠.”
이고은 서장이 내 맞은편에 앉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지금부터 인식 저해 스킬을 걸겠습니다.”
파득.
이고은 서장의 손에서 흰 전류가 튀어나왔다.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나서야 조심스레 눈을 떴다.
“됐습니다.”
“된, 건가요? 딱히 달라진 건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아까 본 내 모습 그대로였다.
“본인이니까요. 엄청나게 가까운 사람들 눈에는 그대로 보이겠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긴가민가하게 보일 겁니다.”
“그렇군요.”
“지속 시간은 여섯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마 각성 상담 및 대금 지불만 하고 헤어질 테니 시간은 충분하겠죠.”
이고은 서장이 손을 털자 반짝거리는 가루가 공중에 흩어졌다.
“자, 이제 이동하시죠. 한철민에게 줄 돈은 이력서와 함께 넣어 놨습니다.”
이고은 서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고, 난 캡 모자를 눌러쓰며 밖으로 발을 옮겼다.
‘사진은 더 크게 나온 거였구나.’
한철민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당장 내가 발로 차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콘크리트 빌딩이었다.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했어도 숨길 수 없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분식집 옆으로 건물의 입구가 작게 나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높고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황수원 경위의 말대로 2층에는 세무사 사무소가 있었고 한 층 더 올라가자 ‘철새 직업소개소’라는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짓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보자. 나는 지금부터 무직에다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스물한 살 이지희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기최면을 걸었고 핸드폰 두 개를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저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만 안으로 빼꼼 내밀었다. 책상에 발을 올린 채 핸드폰을 하던 여자가 날 힐끔 보더니 턱짓으로 창문 바로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환대 한번 끝내주네.’
소파에 앉고 나서야 사무실의 모습이 조금 눈에 익었다. 출입문 옆에 비어 있는 책상 하나, 창문을 마주 보는 책상이 지금 여자가 앉아 있는 자리, 그리고 파티션으로 가려진 가장 안쪽 책상.
아무래도 저기가 한철민의 자리가 아닐까 싶은데.
“뭐 때문에 오셨어?”
“각성시켜 주세요.”
“뭐? 여기 직업소개소야, 애송아.”
“다 알고 왔어요.”
팔랑.
광고지를 던지며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고개만 쳐들어 여자를 바라보자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거 제법 맹랑하네. 짭이냐, 진짜 비각성자냐?”
“F급, 짭이요.”
피잉.
그때 물이 여자의 손끝에서 튀어나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자 물은 내 뒤의 창문에 맞고 그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스킬을 막 쓰네.’
여자를 쏘아보자 그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오, 반사 신경.”
“아무튼 각성시켜 줄 거예요, 말 거예요.”
“돈은 좀 있고?”
“퇴직금 받아왔어요.”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퇴직금이면 던전 한 번은 다녀오겠지.”
드르륵.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서 등을 돌렸다.
“여기서 한 10분만 기다려. 너랑 비슷한 애들 더 올 테니까 같이 설명해 줄게.”
약속 시간까지 정해 놨을 정도면 이미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 같은데.
가짜 신분증만 꼭 쥐고 있을 때쯤 문이 열렸고 웬 부부와 어린아이, 그리고 젊은 남자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잠깐, 저 남자…….’
“하인아, 빨리빨리 안 다니냐.”
“안 늦게 왔는데 왜 그러세요~”
‘그때 그 진상남!!’
나와 영화관 직원을 위협하고 결국 건물 경비한테 끌려 나갔던 그 멍청이다! 진상 짓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젠 브로커까지 하고 있어? 진짜 가지가지 한다.
진상남은 당연하게도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냥 바보같이 웃으며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진상남은 싹싹하게 웃으며 자기가 데려온 손님들을 소파로 이끌었다.
“많이 비좁지만 네, 네, 다들 앉으시고~”
“연우야, 똑바로 앉아야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아랫집 부부랑… 연우잖아.’
연우를 보자마자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랫집 여자는 제 아이의 자세를 교정시키곤 초췌한 얼굴로 진상남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앉은 연우의 아빠도 똑같이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한 채 제 딸과 사무실을 번갈아 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하나의 정제된 문장이 되었다.
‘기울어진 가세를 회복해 보려고 왔구나.’
이게 썩은 동아줄인 줄도 모르고.
“여기 오셨다는 건 다들 각성을 해서 헌터가 되길 원해서겠죠?”
나를 향해 날을 세우던 여자가 아까보다 훨씬 친절한 말투로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각성하는 원리는 사실 꽤 간단합니다. 각성하고 싶다는 진심을 갖는 거죠! 그냥 막연히 갖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각성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각성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럼 저희를 어떻게 각성시키실 건가요?”
“대림역 쪽에 있는 D급 던전에 갈 겁니다. 물론~ 저희 실력 좋은 C급 각성자가 함께하기 때문에 안전은 보장합니다!”
덜컹.
그때 가장 끝 쪽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여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충혈된 눈과 푹 파인 볼이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보여 주었다.
“일반인이 가도 되나요?”
“다~ 가는 방법이 있지요.”
여자는 가증스럽게 윙크를 한 번 한 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각성하고 싶죠?”
“네? 네……. 일단 헌터만 되면 지금보다는 나은 인생일 것 같으니까요.”
여자의 시선이 이번엔 아랫집 가족에게 꽂혔다.
“우리 가족분들도 각성하고 싶어서 오신 거죠?”
“당연하죠. 당연하고말고요.”
아랫집 부부는 여자의 말이 무슨 복음이라도 되는 양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아랫집 여자의 손이 연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이는 제 엄마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는 딱 지유 또래로 보였다. 작고 동그란 코에 쌍꺼풀이 없는 순한 눈. 동네 초등학교에서 자주 볼 법한 인상의 흔한 아이였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연우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누가 볼세라 얼른 눈을 피했다.
“그럼 다들 신분증이랑 갖고 오신 수수료를 좀 주실래요? 저희가 금액에 따라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판단해 보겠습니다~”
“이력서가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종이와 돈 봉투를 내밀었다. 나도 생글생글 웃는 진상남을 향해 위조된 신분증과 서류, 그리고 돈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건 서약서입니다. 대충 읽어 보시고 밑에 서명 부탁드릴게요.”
그들은 서약서 몇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파티션 뒤로 사라졌다.
어디 보자, 도대체 뭘 지키라는 건지 좀 보자.
[서약서]
1. 안전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
2. 해당 계약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는다, 누설할 경우 절대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며 이는 유사 업종의 다른 업체에 가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완전 쓰레기 새끼들이네, 이거.’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각성의 길은 막힐 것이다, 라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었다. 각성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황에서 이런 불리한 조항을 만들다니.
나는 초커 밑에 서류를 가만히 두었고, 그들이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올 때쯤 서명란에 ‘이지희’라는 이름을 적었다.
“수수료를 확인해 보니까 우리 연우는 두 번, 기진 씨와 지희 씨는 한 번씩 이용 가능하겠네요.”
“와!! 들었어, 연우야? 두 번이래, 두 번!”
“아이고, 일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
“지금 이 애를 던전에 보내겠다는 거예요?”
필터를 전혀 거치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던전에 가는 줄 알았더니, 연우를 보내? 이거 순 미친 새끼들 아니야?
소란스럽던 사무실은 찬물을 끼얹은 양 조용해졌고, 아랫집 부부는 할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입만 달싹였다.
“알 바 아니지 않아요?”
아랫집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이미 독기와 절박함으로 가득 차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어제 나를 보며 감격에 겨워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여기서 받아치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일단 참자.’
난 모자를 끌어내리며 얼굴을 더욱 단단히 가렸고 아랫집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지도 각성하러 온 주제에…….”
여자의 말이 꺼져 가는 불씨처럼 서서히 작아졌다.
까득.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물고 있었는지 이끼리 맞부딪쳐서 마찰음을 냈다.
참아라, 벌써부터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 적어도 무사히 던전까지는 들어가야 한다.
“그럼 여기 신분증 돌려드리겠습니다~ 이력서는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가 알아서 폐기할게요!”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진상남이 발랄하게 말하며 다시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주머니에 신분증을 쑤셔 넣으면서 눈동자만 살짝 굴려 연우를 쳐다보았다.
연우는 이리저리 엉킨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꽤 더운 날씨였음에도 연우는 긴소매 옷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짝!
브로커 여자가 손뼉을 치며 우리의 주의를 끌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말을 뱉었다.
“내일 저녁 다섯 시 반에 다 같이 던전에 갈 예정이니 다섯 시까지 이 건물로 와주셔야 합니다! 다섯 시에 칼같이 출발할 거니까 절대 늦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