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특명! 브로커 소탕 작전】
“뭔 전단지가 이렇게 많아.”
잠깐 편의점에 갔다 온 사이에 우편함에 전단지가 한 뭉치 들어있었다. 마트 광고부터 시작해서 수상해 보이는 대출 광고지까지. 이 동네에 살면서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 난리인 것 같았다.
팔랑.
“음?”
이젠 문틈에도 끼워 넣냐.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워 무슨 광고인지 한번 읽어봤다.
각 세대주들에게 공지!
성능이 떨어진 에어컨
필수적으로 고치세요!
요번 여름이 아주 더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철새 직업소개소―
‘뭐야, 이게?’
내용엔 두서가 없었고 디자인은 컴퓨터를 처음 만진 사람이 한 것 같은 솜씨였다.
일단 직업소개소 광고인 것 같긴 한데 왜 에어컨을 수리하라고 하는 거지?
찝찝한 기분에 집에 들어가서도 광고지를 한참 뜯어보았다.
“각성 필요?”
문장의 첫 글자를 따서 읽어 보니 기묘하게 말이 됐다. 우연은 아닐 거다. 굳이 이 낡은 동네까지 와서 이런 광고지를 끼워 넣은 건 역시…….
‘직업소개소로 위장한 각성 브로커다.’
각성 브로커, 비각성자들에게 돈을 받고 각성을 도와주는 집단이다.
어떻게 각성을 시켜주는 건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몇 년 전에 대대적으로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설마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건가?
헌터가 되면 인생역전이다, 라는 말이 돌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사람 중에 돈을 꾸역꾸역 모아 각성 브로커에게 각성을 의뢰하는 케이스도 꽤 있었다.
끼익.
광고지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이야…….”
온갖 집에 다 붙여 놨구나.
앞집, 윗집에 아랫집까지, 전부 그 수상한 직업소개소의 광고지가 문틈에 끼어 있었다.
덜컹.
그때 아랫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쭉 빼 밑을 바라보자 계단을 오르내리며 몇 번 본 적 있는 젊은 여자가 광고지를 찬찬히 읽고 있었다.
남편이랑 어린 딸이랑 같이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기억을 되찾으며 지난 시간선의 업을 청산하라.]
[청산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위치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또 떴다. 난 아랫집에서 시선을 떼고 상태창을 향해 긍정의 표시를 했다.
‘이번엔 또 날 어디로 보내…….’
타닥.
“응?”
“어라?”
착지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아랫집 여자였다.
‘아래층이잖아?’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고 여자도 흠칫 몸을 떨며 날 바라보았다.
아, 일단 이 상황부터 정리하자.
“아, 안녕하세요! 마침 집에 오는 길이었는데 딱 마주쳤…….”
“시, 신지의 헌터님 맞으시죠?!”
텁.
아랫집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양손으로 내 손을 잡았고 나와 집 안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이거… 이거, 어… 잠깐만요!”
그는 문을 연 채로 고정한 후 갑자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누군가를 끌고 왔다.
“아아,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죠~? 저희 딸 연우예요. 이연우.”
몇 번 본 적 있는 여자아이다. 연우는 갑작스러운 소개에 놀랐는지 제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지유보다 어리려나.’
연우의 앞에 쪼그려 앉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연우야, 안녕?”
“안, 녕하세요…….”
빼빼 마른 몸과 부스스한 머리카락. 방금 자다 깬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 연우, 꼭, 꼭 기억해 주셔야 해요?”
“네? 아, 네…….”
아랫집 여자는 나사가 빠진 것처럼 실실 웃으며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퉁, 퉁.
그의 손이 연우의 머리에 닿을 때마다 아이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저, 그, 손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은…….”
“그럼 나중에 또 봬요. 하하하.”
쿵.
‘뭐야, 저 여자.’
닫혀버린 문을 보는데 이유 모를 불쾌감이 퍼졌다. 사명이 반응한 걸 보면 지난 시간선에서 확실하게 엮였을 것이다. 결정적인 실수도 했을 거고.
바스락.
주머니에 쑤셔 박았던 광고지를 다시 꺼냈다.
철새 직업소개소
아무래도 그냥 넘길 수 없겠어.
* * *
“정말 우연이군.”
“네?”
회장님은 내 말을 다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려 했던 일도 바로 그 브로커 소탕 건이었네.”
“아, 정말요?”
완벽한 타이밍이다. 각성 브로커 광고 전단지를 세빈이에게 알려 주자 세빈이는 곧장 회장님에게 연락했고, 마침 같은 이유로 나를 찾던 회장님과 만남이 성사됐다.
똑똑.
“아, 드디어 왔나 보군.”
그때 회장실의 문이 열리며 경찰복을 입은 중년 여자가 들어왔다.
“이쪽은 이고은 구로 경찰서장. C급 각성자이자 내 오랜 친구지.”
“처음 뵙겠습니다. 이고은입니다.”
“신지의입니다.”
서장이 내미는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고,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중저음의 목소리만큼이나 엄청난 분위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햇볕에 잘 그을린 피부 위로 쌍꺼풀이 깊게 파인 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있었고, 굳게 다문 입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것 같았다.
“신지의 헌터가 말한 대로 각성 브로커들이 활동을 재개했네.”
“5년 전쯤에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인해 브로커들의 수가 많이 줄었는데도 최근 들어 다시 급증한 것 같더군요.”
이고은 서장이 말을 덧붙였다.
“브로커들은 비각성자, 혹은 E급이나 F급 같은 예비 각성자들에게 돈을 받고 그들의 각성을 도와줍니다.”
“예비 각성자들도요?”
“극히 드물게 재각성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C급이 한계지만.”
그렇군. E급이나 F급으로 각성한 사람은 사실상 일반인에 가까워서 그들은 ‘예비 각성자’로 분류되었다. 뭐, 속된 말로 짭각성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브로커들은 어떻게 각성을 도와주나요?”
“그러고 보니 매스컴에 알려진 적이 없었지.”
회장님은 탁자 위에 올려진 미니 약과를 집어먹으며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다.
“브로커들은 자신의 고객들을 데리고 던전에 가거나 개인 소유의 건물로 데려가지. 그곳에서 원초적인 공포나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게 만들어서 강제 각성을 꾀하는 걸세.”
‘순 쓰레기 새끼들이네.’
아무리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 각성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극단적이잖아.
이고은 서장이 내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블릿 화면 위에는 서울 지도가 띄워져 있었는데 유독 한 지역에 깃발이 많이 꽂혀 있었다.
“이 깃발 표시는 뭔가요?”
“브로커들의 움직임이 관찰된 곳입니다. 최근엔 개인으로 활동하는 대신 사무실을 갖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더군요.”
“구로구, 영등포구, 동작구. 한곳에 밀집되어 있네요.”
“사기업 소유의 던전이 모인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협회 소유 던전보다 입장이 자유롭고 규제가 느슨하기에 브로커들이 자주 드나들죠.”
구로구에는 나랑 녹두가 자주 가던 그 던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기업이 소유하는 던전도 많은가 보다. 깃발 하나를 누르자 낡은 3층짜리 건물 사진이 떴다.
“철새… 직업소개소!”
우리 집에 광고를 끼워놨던 그 브로커 조직이었다.
“지금 보시는 그 건물이 가장 큰 브로커 조직이 있는 건물입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매주 금요일 저녁에 고객을 데리고 던전에 갑니다.”
“왜 하필 그 시간이죠?”
“퇴근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니까요.”
“아.”
부연 설명 없이도 단번에 이해했다.
그렇지, 집중력이 바닥 치는 바로 그 마의 시간. 내가 던전 관리 직원이어도 스캔 대충 하고 집에 갈 생각뿐일 것이다.
이고은 서장이 손을 뻗어 태블릿을 한 번 더 누르자 이번에는 웬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디 보자. 한철민, 나이 40세, C급 각성자에 헌터 자격은 4년 전에 박탈.’
나름 깔끔하게 가꾼 모습이었지만 딱히 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려는 건 고객으로 위장해서 한철민을 체포하는 일일세.”
“위장이요…….”
드르륵.
그때 이고은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건 서에 가서 말씀 나누시죠.”
* * *
영화에서나 본 경찰 사무실이다. 소파에 앉아 쭈뼛대고 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 경찰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고개를 숙여 대충 감사를 표한 후 한 모금 들이켰다. 저렴한 원두 향과 설탕 맛이 혀에 스미는 것 같았다.
“그럼 슬슬 이야기해 볼까요.”
“아, 네! 근데 이쪽은……?”
이고은 서장의 뒤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서장의 그림자에서 나와 내게 꾸벅 인사했다.
“그동안 잠복수사를 해왔던 황수원입니다.”
“황수원 경위는 두 달간 한철민네 건물의 청소부로 잠입해 조사를 해왔습니다.”
“우와…….”
고생깨나 했겠네.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선 황수원 경위가 신지의 헌터께 건물의 구조와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해 줄 겁니다. 그다음에 바로 작전 설명을 드리도록 하죠. 자, 황수원 경위.”
“네.”
황수원 경위는 비틀거리며 가방 안에서 커다란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달그락, 하고 커피잔이 흔들렸다.
조사일지
정직한 네임태그가 붙은 표지를 넘기자 사람들의 얼굴과 휘갈겨 쓴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건 나중에 보셔도 되고… 일단 한철민의 프로필부터 봐주세요.”
“네. 흠… 일단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전형적인 각성 브로커이긴 합니다만, 그냥 추접스러운 인간이에요. 건물 안에서도 막 담배 피우구우…….”
아, 청소부 입장에선 진짜 화나는 부분이겠네.
꿍얼거리던 황수원 경위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한철민의 프로필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놓았다.
“우선 이 사람은 사장인 한철민, C급, 불속성이고요, 나름 베테랑 헌터 중 한 명이었어요. 공격계 고유 스킬을 보유 중이고 헌터 자격을 박탈당한 후에는 파이트 클럽을 전전했다고 해요.”
“사람한테 스킬을 쓰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는 말씀이죠?”
“맞습니다. 스킬 이름은 불주먹인데, 우음… 그냥 말 그대로 주먹에 불이 붙는 스킬이에요.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황수원 씨가 서류 한 장을 넘기자 한철민이 파이트 클럽 필드에 피떡이 된 채 뻗어 있는 모습과 수상한 서류 뭉치를 들고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나왔다.
“한 몇 년 전쯤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 이 건물에서 직업소개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브로커 일을 시작하려고 했던 시기 같네요.”
“흐음… 성격은 어때요?”
“전형적인 사기꾼이에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죠. 그리고 자기 뜻대로 안 흘러가면 포악하게 굴어요.”
사락.
그다음 서류에는 건물의 구조가 나와 있었다.
“1층에는 분식집, 2층에는 세무사였나? 아무튼 개인 사무실이 있고 3층이 한철민네 사무실이에요. 어차피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던전을 도는 시간이 더 길 테니 그렇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에요.”
그때 개인 의자에 앉아있던 이고은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고, 동시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경찰 마크가 떴다.
“그럼 작전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화면에 ‘불법 각성 브로커 소탕 잠입 작전’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더니 한철민의 얼굴과 게이트 사진이 나타났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신지의 헌터께서 비각성자인 척 건물에 들어가 각성을 의뢰하고 던전 안에서 정보를 모아주시면 됩니다.”
“들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희 서장님이 인식 저해 스킬을 갖고 계시거든요.”
아, 내가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계속 까먹고 있었다. 집 아니면 던전밖에 안 돌아다니니까 별로 실감할 순간도 없었고.
황수원 경위를 향해 멋쩍게 웃어 보이자 그가 나를 향해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잠입 당일 목걸이형 카메라를 부착해 드릴 예정입니다. 스캐너에 걸리지 않는 최상급 아이템이므로 들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클리어 후엔 대기 중인 경찰들과 함께 한철민의 제압과 비각성자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좀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혹시 물어봐도 되나요?”
이고은 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간단한 일 같은데 그동안 못 잡았던 이유라도 있나요……?”
이고은 서장의 말만 들으면 굳이 복잡한 잠입수사를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내 말에 이고은 서장은 눈을 잠시 지그시 감았다 떴다. 마치 본인도 깊게 공감한다는 듯한 태도다.
“한철민에게 돈을 준 고객들이 수사에 협조해 주지 않아서입니다.”
“네? 왜요?”
“그들은 한철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각성을 해서 헌터가 되는 것만이 절망적인 현실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거구나. 한철민이 브로커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각성 길도 막힌다고 생각할 테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유 아플 때 자기 회사 약 써보라고 권하는 제약회사 사기꾼 새끼들 참 많았는데.’
사람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서 제 배를 불리는 새끼들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실제로 한철민의 고객 중 던전에 들어갔다가 큰 정신적 충격으로 완전히 폐인이 된 사람도 있어요. 팔다리 몇 개 부러지는 건 대수롭지도 않죠.”
핑.
이고은 서장이 리모컨을 눌러 스크린을 껐다.
“내일 오전 열 시에 여기로 와주십시오. 필요한 아이템과 스킬을 드리겠습니다. 그 후 바로 한철민의 사무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줄곧 무표정을 유지하던 이고은 서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가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자 그는 단단하게 내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