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9화 (39/366)
  • 39화

    “곽민호 헌터.”

    “네?”

    “혹시 장미 스킬 다른 것도 있나요?”

    대놓고 질문을 건네자 곽민호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장미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아, 정신계 스킬이 하나가 있긴 한데…….”

    정신계?

    장미를 슬쩍 보니 시뻘건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뭐임.’

    역시 까칠하네. 아무튼 이 정신계 스킬을 이용해서 장미가 성취감을 느끼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한 번도 안 써보셨어요?”

    “네. 사실 개방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좀 무섭기도 하고.”

    ‘곽민호, 이 멍청아.’

    답답해하는 장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장미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곽민호 헌터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위험한 스킬은 아닐 것이다.

    “게이트가 보입니다!”

    ‘벌써?!’

    송윤 헌터가 가리킨 곳엔 아까 우리가 열고 들어온 게이트가 있었다. 아직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소환수가 세 마리나 남았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2/5]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제한 시간 : 2시간 13분]

    돌발 지령의 시간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데…….

    ‘보스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그럼 지금처럼 유인은 녹두, 공격은 호양이와 저희 두심이가 하죠.”

    “덕배랑 장미는요?”

    “와하하! 저희 덕배는 공격 스킬이 없답니다!”

    송윤 헌터가 호탕하게 웃으며 덕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덕배는 치유 스킬과 향상계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게임으로 치면 버프 같은 거요!”

    ‘아유, 우리 오라버니. 또 나 비행기 태우네.’

    덕배는 우직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속으론 꽤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일부러 살짝 다쳐서 덕배한테 치료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 같네.

    “저… 곽민호 헌터.”

    “네?”

    “혹시 장미가 갖고 있는 정신계 스킬, 어떤 건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곽민호’가 동요한다.]

    곽민호 헌터는 잠시 망설이다 한 손으로 장미의 귀를 쓱 덮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생명체를 미치게 만들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스킬이래요…….”

    “오…….”

    “혹시라도 아군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봐 한 번도 못 썼어요.”

    설명만 들으면 무시무시한 스킬이긴 하다. 그동안 못 쓴 것도 이해가 된다.

    ‘우리 형 소심해서 미치겠네. 그 스킬은 내가 정한 놈들만 공격하는 거라고 몇 번 말했냐, X발.’

    장미는 답답하다는 듯 씩씩거렸고 곽민호 헌터는 화들짝 놀라며 장미의 귀에서 다시 손을 뗐다.

    스킬 주인인 장미가 직접 말하는 거니까 믿을 만한 정보일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 곽민호 헌터를 바라보았고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향해 천천히 말을 건넸다.

    “장미한테 직접 물어봐요.”

    “장미한테요?”

    “같이 지낸 시간이 있잖아요. 장미가 표현하는 것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곽민호 헌터와 장미의 눈이 마주쳤다.

    [발언 결과 : 자신감]

    “…장미야, 그 정신계 스킬 써봐도 될까? 써, 써도 무사한 거 맞지?”

    ‘말 한번 잘했다! 당연히 되지! 그 커피나무 새끼 오늘 내가 개박살 내준다.’

    걸걸하게 말하는 것치고 행동은 깜찍했다. 장미는 귀를 쫑긋 세운 채 곽민호 헌터를 향해 눈을 빛냈고, 그 눈을 한참 바라보던 곽민호 헌터도 뭔가를 느꼈는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러분! 저희 장미 새 스킬 써봐도 될까요?”

    “스킬?”

    “상대를 미치게 하는 스킬인데 보스 몬스터에서 한번 써보고 싶어요.”

    “오오! 좋슴다!”

    김현욱 헌터는 자기가 더 신나서 손을 번쩍 들었고 송윤 헌터와 김민숙 헌터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은은하게 웃어주었다.

    “그럼 제가 게이트에 손대고 올게요.”

    “조심해요, 신지의 헌터. 대자마자 지면에서 바로 튀어나오니까.”

    ‘그럼 나야 생큐지.’

    덕배에게 신세 지고 칭찬을 마구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김민숙 헌터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게이트 앞쪽으로 발을 옮겼다.

    ‘하나, 둘.’

    텁.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후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게이트에 양손을 올려놓았다.

    투콰콰쾅!!

    “윽!”

    “신지의 헌터?!”

    땅속에서 솟아난 굵은 나무줄기가 내 팔을 제법 깊게 스쳤다. 그냥 작은 생채기 정도만 낼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빨랐다.

    아우우우!

    녹두가 나무줄기를 들이받은 후 내 옷깃을 물고 뒤쪽으로 빠졌다.

    “괜찮으십니까?!”

    “네, 약간 긁힌 거예요.”

    고개를 들고 게이트 앞에 소환된 보스 몬스터를 살폈다. 굵고 커다란 나무가 사방으로 줄기를 휘두르며 위협했고 이따금씩 콩알탄 같은 걸 뱉어냈다.

    아까 장미가 커피나무 어쩌구라고 한 걸 보니 커피나무 같네.

    “장미야, 가자!”

    곽민호 헌터가 소리쳤다. 장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갔고 커피나무의 바로 앞까지 가자 온몸으로 검은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저게 장미 새 스킬이야?”

    “네. 연기를 들이마시면 미친다고 나오는데, 나무한테까지 통할지는 모르겠네요.”

    곽민호 헌터는 약간 긴장한 채로 장미를 지켜보았다.

    푸쉬이이이.

    연기가 커피나무를 완전히 에워싸자 움직임이 서서히 더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유유히 빠져나온 장미가 땅에 착지하자마자…….

    콰직!

    커피나무 줄기가 자기 몸통을 꿰뚫었다.

    “대박!”

    “오오!”

    김현욱 헌터와 송윤 헌터가 입 밖으로 소리까지 내며 놀라워했고, 나도 장미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쾅, 쾅.

    예상한 것보다 스킬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커피나무는 자기 몸을 찢어 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했어, 장미야!”

    ‘하~ 속 시원하다. 드디어 이 스킬을 다 써보네.’

    장미도 만족스러운 공격이었는지 아까보다 더욱 반짝거리는 붉은 눈으로 곽민호 헌터를 응시했다.

    투쾅!!

    “잠깐, 위험……!”

    “녹두!”

    “호양아!”

    그때 굵은 나무줄기 하나가 장미 쪽으로 맹렬하게 떨어졌고, 나와 김현욱 헌터가 동시에 소환수들을 불렀다.

    캬오!!

    호양이가 커다란 앞발로 줄기를 찍어 누르는 동시에 녹두가 장미의 목덜미를 물고 공중으로 뛰어 올라갔다. 녹두는 단숨에 거리를 벌리며 곽민호 헌터의 손 위로 장미를 무사히 옮겨놓았고 곧바로 호양이의 옆에 섰다.

    “두심아!”

    피요오오오!!

    공기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칼바람이 불었다. 나뭇잎 향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커피나무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화르륵.

    뒤이어 호양이가 입에서 불을 뱉었다. 바람을 탄 불길은 더욱 빠르고 거세게 커피나무를 집어삼켰다. 커피나무는 금세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갔고,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A급이 C급 보스 몬스터 상대로 너무한 거 아니에요?”

    “두심이는 살살 했어. 장미가 거의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김민숙 헌터가 씩 웃으며 곽민호 헌터 품 안에 있는 장미를 흘긋 봤다. 갑자기 몰린 관심에 약간 부끄러웠는지 곽민호 헌터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신지의 헌터 덕분이에요. 아니었으면 평생 이 스킬 묵힐 뻔했는데.”

    ‘그니까. 저 새끼 제법이야.’

    입이 걸어서 그렇지, 어쨌거나 칭찬이었다. 장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는데 눈앞에 상태창이 퍼뜩 떴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3/5]

    ‘호랑이 새끼랑 저 흰 강아지한테도 솔직히 좀 고맙고.’

    호양이와의 관계도 나아질 것 같네.

    순조롭게 진행되는 돌발 지령에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그러고 보니 신지의 헌터… 팔 상처는 괜찮습니까?”

    “아.”

    어쩐지 팔이 욱신거리더라.

    장미한테 정신이 팔려 팔이 찢어진 것도 까먹었다. 점퍼를 벗자 오른쪽 팔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상처의 틈으로 피가 살짝 흘렀다.

    “덕배야?”

    송윤 헌터가 덕배의 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덕배는 그제야 송윤 헌터의 어깨에서 일어나 내 팔 쪽으로 파드득 기어왔다.

    ‘아따, 언니. 실례 좀 헐게?’

    덕배는 구수하게 한마디 뱉은 후 내 상처 위로 긴 혀를 갖다 댔다.

    “읏.”

    덕배의 혀가 상처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효과는 꽤 괜찮았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서서히 새살이 돋았고, 핏방울은 금세 딱지가 되어 지면 위로 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치료됐네요!”

    “하하하! 저희 덕배가 좀 하죠!”

    “치유계 스킬 자체도 귀한데, 치유계 스킬을 가진 소환수라니……. 진짜 멋있어요.”

    괜히 더 호들갑을 떨며 덕배를 빤히 바라보자 덕배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거 되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네. 부끄럽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4/5]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구먼! 언니야, 울 오라버니랑 잘 지내봐라!’

    나이스, 덕배까지 내게 마음을 열었다. 목을 살살 긁어주자 덕배가 혀를 날름거리며 내 상처를 마저 치료하곤 다시 송윤 헌터의 어깨로 넘어갔다.

    “어! 아이템이다!”

    “진짜요?”

    “와, 이 던전에서 아이템 나온 거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때 김현욱 헌터가 커피나무의 잔해 밑에서 작은 커피컵을 찾아냈고 송윤 헌터와 곽민호 헌터가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신지의 헌터.”

    남자 헌터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김민숙 헌터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차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민숙 헌터와 그와 닮은 황금색 눈을 가진 두심이가 있었다.

    “미안해요.”

    “네, 네?”

    “사실 신지의 헌터가 처음 클랜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 좀 의심했거든요.”

    김민숙 헌터가 입꼬리만 올려 애써 웃었다.

    “이 인간이 과연 소환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뭐 그런 생각 때문이랄까?”

    “아…….”

    “제가 늙은 사람이라 그래요. 괜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어서.”

    국내 최초 소환계 스킬 보유자라고 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더라고요. 신지의 헌터는 소환수들에 대한 이해도 높았고 전략적으로 사용할 줄도 아는 사람이에요.”

    김민숙 헌터가 두심이와 이마를 맞대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두심이가 말해 줬어요. 신지의 헌터가 소환수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다고요.”

    “그, 그래요?”

    그냥 칭찬 삼아 한 소리일 텐데 괜히 찔려서 말을 더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민숙 헌터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다시 입을 열었다.

    “A급 이상의 소환계 스킬을 가진 헌터들은 소환수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거든요. 제 말 믿어도 좋아요.”

    “그렇군요…….”

    “아무튼 간에.”

    텁.

    김민숙 헌터가 나와 손을 맞잡았다.

    “클랜 ‘기적’에 온 걸 환영해요, 신지의 헌터.”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5/5]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어?’

    갑자기 상태창이 떴다. 화들짝 놀라 두심이를 바라보니 보석 같은 눈을 한 두심이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굳건한 저 눈빛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상승]

    [달성도 : 60%]

    [소환수 ‘태양을 삼킨 늑대’가 아성체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대폭 상승이었다. 달성도가 순식간에 60%가 되었고, 내 종아리 정도에 머리가 있던 녹두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허벅지까지 키가 컸다.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

    [달성도 상승]

    [달성도 : 6%]

    녹두가 성장하자 세상의 구원에도 조금 가까워졌다.

    “신지의 헌터?”

    “아아,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김민숙 헌터의 말에 허겁지겁 대답한 후 씩 웃어 보였다. 그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다른 헌터들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얼결에 클랜원이 돼버렸네.’

    녹두를 빠르게 성장시킬 목적으로 조금은 이기적인 선택을 한 건데, 김민숙 헌터와 다른 헌터들, 그리고 소환수들에게까지 신뢰를 얻었다.

    ‘나 쟤네들 좋아! 쟤네들이랑 같이 싸워 보고 싶어!’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강아지 같던 녹두가 이젠 어느 정도 늑대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녹두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까 클랜 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네.’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며, 녹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 * *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돈을 받고 불법으로 각성을 도와주는, 일명 각성 브로커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김찬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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