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8화 (38/366)

38화

“가자, 호양아!”

“기적적으로 스킬 하나가 더 생겼으면 좋겠네요~”

갸르릉…….

파이팅 넘치는 사람들에 비해 소환수들의 반응은 영 떨떠름했다. 김현욱 헌터는 호양이를 향해 시원하게 웃어 보였지만 호양이는 애써 그 눈을 피하며 느릿느릿 앞장섰다.

“그… 던전 공략은 소환수들끼리만 하는 건가요?”

“아, 네. 웬만하면 다른 스킬이나 무기 안 쓰고 소환수들끼리만 싸우게 하는 게 저희 클랜만의 규칙이에요.”

가장 가까이 있던 곽민호 헌터에게 슬쩍 물어보자 그가 장미를 땅 위에 내려놓으며 대답해 주었다.

소환수들 성장시키는 덴 최고의 방법이긴 하네.

‘그나저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단 말이지.’

클랜 가입 의사를 밝혔을 때 김민숙 헌터가 보인 반응과 사기가 떨어진 소환수들 사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에이씽. 이 새끼들이랑 같이 던전 돌기 싫은뎅…….’

“응?”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저히 저 목소리를 낼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잠깐, 혹시……?’

인벤토리를 켜 첫 번째 칸에 박혀 있는 ‘속마음 전화기’를 살폈다.

[활성화]

그렇다는 건 지금 이 목소리가…….

‘내가 진짜 울 아빠 때문에 참는당. 집 가서 토마토 달라고 해야징.’

여기 있는 소환수들 목소리라는 거잖아?

‘아빠는 왜 자꾸 이 자식들이랑 친해지라고 하는 거징? 이해 안 돼앵…….’

내 귀엔 계속해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꽂혔다.

아까 토마토 어쩌구를 얘기한 걸 보니까 아무래도 호양이인 것 같은데…….

호양이를 슬쩍 보니 소환수 무리의 가장 선두에 서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신지의 헌터는 이 던전 처음이십니까?”

“네? 아, 네. 처음이에요.”

“남양주 C급 던전은 소환수들 성장시키는 데 아주 좋슴다! 몬스터들 방어력이 높은 대신 공격력이 낮아서, 소환수 스킬을 다양하게 써볼 수 있거든요!”

김현욱 헌터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호양이와 장미를 가리켰다.

“호양이랑 장미는 벌써 연계 공격도 가능하다고요!”

난 호양이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호양이는 김현욱 헌터를 바라보며 애써 웃곤 앞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또 저 귀 긴 녀석이랑 같이 싸우라고? 아빠는 바보야!!’

“호흡이 아주 최곰다!”

“…아, 그래요?”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김현욱 헌터의 반응을 뒤로한 채 다른 소환수들을 슬쩍 보았다.

‘시방 저것들 또 싸우겄네. 어우~ 꼴 뵈기 싫어. 울 윤이 오라버니는 와 저런 놈들이랑 같이 다닌디야.’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는 건 아무래도 덕배 같고…….

‘하아… 또 X나게 달리겠지? 그깟 X 같은 D급 이동계 스킬을 왜 자꾸 쓰는 건지 원……. 아무리 우리 형이어도 생각 좀 고쳐먹어야 할 텐데.’

차분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욕을 내뱉는 건 장미.

‘…….’

그리고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는 두심이까지…….

속마음 전화기로 소환수들의 본심을 들은 후 대충 상황 파악을 끝냈다.

‘소환수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

그리고 헌터들 중에선 김민숙 헌터만이 은근히 눈치챈 것 같고. 소환수들끼리 안 친한 마당에 뉴 페이스가 등장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내 가입을 망설인 거겠지.

난 다시 인벤토리에 박힌 속마음 전화기를 살폈다.

[속마음 전화기]

[S급]

[반경 1km 이내의 소환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전화기]

이걸로 소환수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서 소환수들한테도, 김민숙 헌터에게도 호감을 사야겠네.

콰그작.

그때 마침 길가의 카페에서 커다란 나무 기둥 같은 게 튀어나왔다.

‘아, 원두 가는 기계다.’

자세히 보니 원두 그라인더였다.

카페 거리가 배경이라 그런지 커피랑 관련된 게 몬스터로 등장하네.

“오케이, 하던 대로 하자. 호양아!”

“장미야~”

김현욱 헌터와 곽민호 헌터가 말하자 장미가 쏜살같이 뛰어가서 원두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뒷발로 찼다.

쿵.

원두 그라인더가 넘어가자마자 이번엔 호양이가 앞발로 내리찍었고 동시에 작은 불꽃을 터트렸다.

‘으아아! 설마 그 귀 긴 녀석 밟은 거 아니겠징? 무서워! 토끼는 왜 그렇게 작은 거야!’

‘아, X발. 뒈질 뻔했네.’

장미와 호양이의 상성이 안 좋아.

그동안 장미가 미끼가 되고 호양이가 공격하는 형태로 던전을 공략했던 것 같은데, 소환수들의 성향에 맞지 않는 공략법이었다.

위이잉.

갑자기 그라인더의 손잡이가 맹렬하게 돌아가며 주변에 있던 작은 돌멩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앗, 장미야!”

아우우―!

콰그작!!

장미가 그라인더 쪽으로 휘청거리자 녹두가 장미의 목덜미를 문 채 재빠르게 뒤로 빠졌고, 동시에 연둣빛 바람이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휘요오오오―

‘이게 두심이의 공격이구나.’

확실히 A급이다 보니 C급 호양이에 비해 파괴력이 있었다. 칼날 같은 바람을 맞은 원두 그라인더가 보기 좋게 부서진 틈을 타 호양이의 불꽃이 녀석의 몸체 안을 파고들었다.

콰과광!

‘이제야 마음 놓고 스킬 좀 쓰겠넹.’

호양이는 그 말과 함께 앞발을 한 번 더 휘둘렀고 불로 된 공을 날렸다.

펑!

직격타. 불공에 제대로 맞은 원두 그라인더는 결국 산산조각 났다.

“잘했어, 호양아!”

김현욱 헌터가 환하게 웃으며 호양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칭찬을 들은 호양이는 샐쭉 웃었지만 아까 장미가 다칠 뻔해서 그런지 영 편해 보이진 않았다.

난 몸을 돌려 곽민호 헌터 쪽으로 발을 옮겼다.

“장미는 좀 괜찮나요?”

“아, 네. 녹두 덕분에 다친 곳 없이 멀쩡해요.”

곽민호 헌터의 팔에 안긴 장미는 어딘가 모르게 불만스러운 얼굴로 멍하니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툭.

‘언니, 나 잘했어?’

발에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져 고개를 내리니 온몸으로 칭찬을 갈구하는 우리 녹두가 있었다.

“아하하! 아직 어린애군요!”

송윤 헌터가 호탕하게 웃으며 녹두를 귀여워했다.

‘하여튼 못 말려.’

녹두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는 동안 상태창을 켜 돌발 지령의 시간부터 확인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1/5]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제한 시간 : 2시간 57분]

‘…지금 뭐라도 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니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아까 보니까 장미가 미끼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혹시 이동계 스킬이 있는 건가요?”

“네. D급 이동계 스킬 있어요.”

“장미가 몬스터의 시선을 끌어주면 다른 소환수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김현욱 헌터가 말을 거들었다.

“혹시 그 역할, 저희 녹두가 해도 될까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오케이, 흔들었다.’

아직 녹두의 공격계 스킬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수 역할을 하겠다고 말할 순 없다. 그래도 이동계 스킬은 S급으로 열렸으니 한번 얘기해 볼 만하다.

“어… 녹두가요?”

“호흡이 잘 맞을까요…?”

곽민호 헌터와 김현욱 헌터가 난감하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당황스럽겠지.’

난데없이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보고 나가라고 하는 꼴이니까.

난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호양이랑 장미가 호흡이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덩치 차가 있다 보니까 서로 마음 놓고 공격을 못 하는 것 같아서요. 장미도 힘들어하는 것 같고.”

‘와! 저 인간 어떻게 알았징?!’

‘와. X발, 용하네.’

내 말에 호양이와 장미가 말이라도 맞춘 양 동시에 대답했다. 코를 찡긋거리는 장미를 흘끔 본 후 곽민호 헌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약간 떨떠름한 눈치지만 그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언 결과 : 수용]

“네. 뭐, 한번 해보죠…….”

“호양…아? 너도 그렇게 한번 해볼래?”

그르릉.

호양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릉대자 김현욱 헌터도 눈을 크게 떴다.

“녹두에게도 이동계 스킬이 있나요?”

“네. S급이고 공중을 이동하는 스킬이라 호양이도 편하게 지면 공격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김민숙 헌터에게 대답한 후 고개를 내려 녹두를 바라보았다. 녹두는 혀를 쭉 내민 채 헥헥거리다 이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멋지게 착지했다.

‘잘한당, 잘한당~!’

“그럼 계속 가도 될까요?”

내 귀에만 들리는 호양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헌터들에게 말을 건네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2/5]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제한 시간 : 2시간 53분]

‘한 마리가 늘었어!’

아까부터 반응한 호양이일 가능성이 높다. 상태창에서 호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양이는 날 보며 눈을 빛내다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려 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저 인간 은근 맘에 드넹~ 저 강아지랑도 한번 친해져 봐야겠엉.’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는 걸 겨우 누르고 소환수들의 뒤를 따랐다.

쿵, 쿵, 쿵.

이번엔 원두 그라인더 세 마리다. 원두 그라인더들은 순식간에 호양이를 에워쌌고 맹렬하게 손잡이를 돌려댔다.

아우우―!

쾅!

녹두가 몸으로 한 번 들이받은 후 원두 그라인더들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

‘못 올라오지? 바보들!’

우리 녹두 제법 맹랑하네.

한껏 도발을 하며 녹두가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원두 그라인더는 약이 올랐는지 녹두를 향해 날을 세웠다.

콰그작!

그 틈에 지면에 있던 호양이가 커다란 앞발로 원두 그라인더를 덮쳤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원두 그라인더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호양이가 불을 토해 냈다.

원두 그라인더 하나가 불타는 동안 녹두는 남은 것들 주위를 뛰어다니며 열심히 교란 작전을 펼쳤다.

쿵, 쿵.

아까보다 훨씬 안정적인 연계공격에 원두 그라인더들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카르릉!

쾅!!

이후에 등장하는 커피 머신들도 녹두의 교란, 호양이와 두심이의 공격으로 산산조각 냈다.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운 협동 플레이였다.

“화, 확실히 빠르네요.”

“이거, 이거, SS급한테 한 방 먹었네요! 하하핫!”

감탄 섞인 곽민호 헌터의 말을 송윤 헌터가 호탕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이제 남은 건 장미, 덕배, 두심이인데…….’

장미는 원하는 대로 미끼 역할에서 벗어나긴 했는데, 막상 할 일이 사라지니 약간 심심해 보였다. 덕배는 어떤 스킬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송윤 헌터의 어깨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고.

이렇게 된 이상 정면 돌파를 하는 수밖에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