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7화 (37/366)
  • 37화

    【소환수들의 친구】

    “저기 신지의 헌터 아냐?”

    “근데 아까부터 계속 계시던데…….”

    훈련실에 온 다른 헌터들이 나를 보며 한마디씩 던졌지만 그 말들을 전부 무시한 채 안의 사람들을 예의주시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1/5]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제한 시간 : 5시간 31분]

    녹두를 성장시킬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는데, 야속하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내 작전은 이랬다. 훈련실에서 소환수와 함께 훈련하는 헌터들과 죄다 친해지고 소환수랑도 안면 트기.

    ‘될 거라고 생각했어?’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는 걸 어떡해.’

    자아가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우리 녹두 덕분에 한 마리는 처음부터 끝났지만 나머지 네 마리가 문제였다.

    도대체 어디 가서 소환수 네 마리를 한 번에 만나냐고.

    소환 스킬이 딸린 아이템을 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고작 이 욕심 때문에 책임도 못 질 소환수를 덜컥 데려오는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아아…….”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어?”

    “왁?!”

    갑자기 뒤통수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지르고 바로 뒤를 돌자 후줄근한 차림의 지호 언니가 있었다.

    “아하학!! 표정 좀 봐~”

    “훈련하러 온 거야?”

    “훈련은 아니고 현피.”

    ‘내가 잘못 들었나.’

    대답 대신 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클랜전. 오늘 ‘실버’ 클랜장이랑 한 판 뜨기로 했거든.”

    “아…….”

    클랜, 헌터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만든 일종의 동호회 같은 조직이다. 우리나라는 헌터들이 전부 헌터 협회 소속이기 때문에 따로 길드를 설립할 수가 없었고, 덕분에 헌터들끼리 폭 넓은 교류를 하기가 어려웠다.

    자국 헌터들은 서로 긴밀한 사이가 돼야 한다, 라는 회장님의 지론에 따라 만든 것이 바로 ‘클랜’ 제도다. 최소 다섯 명의 헌터들을 모아서 본부의 승인을 받으면 클랜을 설립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헌터넷에서 봤다.

    “언니는 무슨 클랜인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실전 격투 클랜 ‘무쌍’! 왜, 왜? 관심 있어?”

    “아니…….”

    “우리 클랜원들 착해! 단합도 엄청 잘 되구!”

    지호 언니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지만 난 언니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어쩌면 소환수 클랜도 있지 않을까?’

    “지호 누나! 빨리 와!”

    “아, 오키~! 그럼 나 가볼게~”

    “어. 다치지 말고.”

    지호 언니가 까르륵 웃으며 클랜원처럼 보이는 남자 헌터를 향해 뛰어갔다.

    ‘지호 언니는 참 해맑아, 그치?’

    ‘지난 시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네.’

    내 말에 자아가 키득거렸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인벤토리에서 잽싸게 업무용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켰다. 메뉴에 들어가 클랜 탭을 누르자 온갖 클랜들이 다 떴다.

    [LIPS]

    클랜장 : 하미준

    요리도 하고 친목도 다지는 요리 클랜입니다. 초절정 미인이자 양식 조리 자격증을 보유한 클랜장 대기 중! 문의는 클랜장 말고 김대현 헌터에게 ;)

    관심 있는 아기고양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게^^

    ‘이 사람도 클랜을 운영해? 그것도 요리?’

    완전 의외네. 레스토랑에서 뭘 먹는 건 상상이 가도 해 먹는 그림은 안 그려지는데.

    검색 화면이 나올 때까지 클랜 목록을 쭉쭉 내렸다. 확실히 전투 클랜이 제일 많았다.

    손가락을 두어 번 움직이자 드디어 검색창이 떴고, 자판을 두드려 ‘소환수’를 입력했다.

    검색어 : 소환수

    검색 결과 : 0건

    “엥.”

    소환, 소환 스킬, 반려 몬스터, 몬스터…….

    검색 결과 : 0건

    온갖 검색어로 다 찾아봤는데 소환수의 ‘소’ 자도 안 나왔다.

    ‘소환계 스킬을 가진 헌터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없는 거야?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시간이 너무 걸릴 텐데?

    마음이 급해 자판을 다시 두드려보았다.

    “앗.”

    검색어 : 쇼환수

    ‘아, 오타 났네. 다시 검색해야겠…….’

    검색 결과 : 1건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만 뜨던 화면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글자가 떴다.

    [기적]

    [국내 유일 쇼환수 클랜 ‘기적’입니다. 가입 문의는 김민숙애게 헤주세요.]

    ‘아니, 똑바로 좀 쓰지.’

    내 속마음을 자아가 대신 얘기해 주었다.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뎅, 하고 울렸지만 일단 정신을 차리고 헌터 검색 화면에 ‘김민숙’을 입력했다.

    이거까지 오타면 좀 곤란한데.

    [김민숙/A급/바람]

    [메시지 보내기]

    [통화하기]

    다행히 이름은 똑바로 입력되어 있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연결음이 한 네 번쯤 갔을까, 핸드폰에서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김민숙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숙 헌터. 신지의라고 합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왠지 모르게 지금 어떤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아, 마 그 신지의 헌터인가요? SS급?

    “네. 갑자기 전화드려서 놀라셨죠……?”

    ―놀랐죠, 그럼.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등급을 가진 사람인데.

    전화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솔직한 사람인 것 같네.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기적 클랜에 지금 가입할 수 있을까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김민숙’이 동요한다.]

    ‘이거 전화로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거구나.’

    근데 왜 동요한 거지? 발언력 상태창에서 시선을 떼고 전화기에 온 감각을 집중했다. 김민숙 헌터는 약간 고민하는 건지 꽤 오랫동안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소환수가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입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는 않은데…….

    김민숙 헌터가 잠시 웅얼거리다 이내 목을 가다듬곤 말을 덧붙였다.

    ―안 그래도 오늘 정기 모임 날이니 일단 초대해 드리겠습니다. 장소는 헌터넷 통해서 알려 드릴게요.

    “네, 네.”

    뚝.

    통성명할 땐 호탕한 태도였던 김민숙 헌터는 오히려 클랜 얘기가 나오니 어색하게 굴었다.

    ‘클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우웅.

    마침 김민숙 헌터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후 2시. 남양주 C급 덙ㅓㄴ 입니다. 그때 뵙겟습니다 ^^ ―김민숙 헌터]

    지금이 열두 시 좀 넘었으니까 바로 출발하면 되겠네.

    핸드폰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넣고 버스 정거장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다섯 마리 이상의 소환수에게 호감을 얻어내라.]

    [1/5]

    [보상 : 사명 ‘늑대의 동반자’ 달성도 대폭 상승]

    [제한 시간 : 3시간 36분]

    상태창을 다시 띄워 시간부터 확인했다. 일단 오늘 중으로 소환수들을 전부 만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호감을 어떻게 얻어 내느냐다.

    ‘이 시간 내로 가능하려나.’

    잡생각은 일단 접어 두고 헌터넷 지도를 켰다. 남양주 C급 던전은 과거 카페 거리가 있던 산책로의 주변이라고 했다.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까지.

    “어! 진짜로 오셨네요!”

    “와! 안녕하세요!!”

    내가 온 걸 알아챈 헌터들이 하나둘씩 나를 반겼다.

    ‘다들 개성이 확실한 사람들이네.’

    덩치 큰 사람 한 명,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한 명, 그리고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것 같은 사람 한 명.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길 가다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인상들이었다.

    “저희 클랜장님이 신지의 헌터가 놀러 온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놀랐나 몰라요.”

    “아, 그랬나요?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왔죠, 하하하…….”

    “앗, 불편하게 하려던 건 아니구.”

    밀가루같이 하얀 남자가 놀란 듯 토끼 눈을 뜨곤 이내 사르르 웃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마른 편이라 그런가,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런. 내가 제일 늦었네.”

    그때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가와 입 주변엔 살아온 흔적만큼 주름이 져 있었고, 부드럽게 내려간 눈매 안에는 선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깔끔한 인상의 여자였다.

    “김민숙이에요. 반가워요, 신지의 헌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지의입니다.”

    “일단 자세한 건 던전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여기서 소환수를 부르면 사람들이 놀랄 테니까요.”

    김민숙 헌터가 생긋 웃으며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녹두야 아직 강아지랑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 보네.

    우우웅.

    “아, 맞아. 저 화단에 방울토마토 심었다고 했잖아요.”

    “어엉. 그거 어떻게 됐습니까?”

    “세상에, 너무 싱싱하게 잘 큰 거 있죠?! 몇 개 따서 샐러드에 넣어 먹었어요!”

    “현욱아. 자랑할 거면 앞으로 몇 알 가져오고 자랑해라.”

    협회 직원이 스캔을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약간 소외감이 들 정도로 친해 보이는 모습이다.

    ‘자기들끼리 친해서 내 가입을 꺼리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열겠습니다!”

    스캔을 모두 마친 후 덩치가 큰 남자 헌터가 나무로 된 게이트를 쭉 밀었다.

    휘이이잉―

    커피 향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코를 간질였다. 길을 따라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던전이라는 걸 까먹을 정도로 정돈된 거리였다.

    “이제 통성명 좀 해볼까요?”

    김민숙 헌터가 부드럽게 웃으며 부리부리한 인상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C급 헌터 김현욱입니다! 불 속성이고, 소환계 스킬 ‘백두 호랑이’가 고유 스킬이에요!”

    펑.

    김현욱 헌터가 발을 구르자 작은 폭발이 일었다.

    캬르릉…….

    “그리고 여긴 제 소환수 호양이!”

    ‘호랑이잖아!’

    커다랗고 우람한 호랑이치고 꽤 깜찍한 이름이었다. 김현욱 헌터는 호양이의 턱을 벅벅 긁으며 얼굴을 비볐고 호양이도 행복한 듯 헤벌쭉 웃었다.

    “어둠 속성 곽민호입니다. 고유 스킬은 B급 소환계 스킬, ‘흑묘’예요.”

    그때 크림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 곽민호 헌터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솜털이 그의 손 위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검은 털 뭉치가 적당히 몸집을 키우더니, 이내 길쭉한 귀 한 쌍이 불쑥 튀어나왔다.

    곽민호 헌터의 흑묘는 새빨간 눈을 부릅뜬 채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지점토로 빚은 것 같은 곽민호 헌터와 새카만 토끼. 곽민호 헌터의 분위기만큼이나 기묘한 조합이다.

    “이름도 따로 있나요?”

    “네. 장미예요. 제가 장미를 좋아하거든요.”

    “큼큼!”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왠지 모르게 이상욱 헌터와 비슷한 분위기네.

    “저는 송윤입니다. 대지 속성이고 B급 소환계 스킬을 갖고 있어요! 덕배야, 나와라!”

    송윤 헌터의 손 위에 흙더미가 솟아나더니 팔뚝만 한 이구아나가 튀어나왔다. 이구아나는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재빠르게 송윤 헌터의 어깨에 앉았다. ‘덕배’라는 친근한 이름을 가진 것치고는 엄청나게 이국적인 생김새다.

    휘요오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들어볼 법한 독수리 울음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을 넘기며 바람이 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민숙 헌터의 팔 위로 날아드는 초록색 빛줄기가 보였다.

    “와…….”

    빛의 정체가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황금색 눈과 날카로운 부리, 우람한 날개까지. 엄청나게 위엄 있는 매 한 마리가 김민숙 헌터의 팔에 앉아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적 클랜의 클랜장을 맡고 있는 김민숙이에요. A급 소환계 스킬 보유자고 바람 속성입니다.”

    “저희 클랜장님은 국내 최초 소환계 스킬 보유자임다!”

    “그런 수식어는 굳이 안 붙여도 되는데 말이지. 아, 그리고 여긴 두심이에요.”

    두심이라……. 그 이름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두심이는 나를 꿰뚫어 보듯 눈을 형형하게 빛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자, 이제 신지의 헌터 차례예요. 소환계 스킬이 새로 생겼나요?”

    “아, 그건 아닌데……. 녹두야!”

    키이잉.

    녹두의 이름을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연두색 빛이 튀어나왔다.

    아우우―

    “대박!”

    “너어~무 귀여워요!”

    송윤 헌터와 김현욱 헌터가 비명을 꺅 질렀다. 녹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피다 곧 꼬리를 내리고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설마, 녹두 지금…….’

    “아하하! 녀석, 낯가리나 보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만나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봐요. 하하…….”

    머쓱하게 웃으며 녹두를 들어 올리자 녹두가 제법 두툼해진 앞발을 내 어깨에 턱 얹어 놓았다.

    “빛 속성 SS급 헌터, 신지의입니다. 얘 이름은 녹두고, 원주 A급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으로 만났어요.”

    “아이템으로 소환수를요?”

    “아! 들어본 적 있어요. 근데 그런 아이템은 얻는 것부터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라고요.”

    곽민호 헌터가 장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얹었다.

    짝.

    “뭐, 이만하면 기본적인 자기소개는 한 것 같고…….”

    김민숙 헌터가 박수를 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슬슬 던전 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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