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2화 (32/366)

32화

[각성자 ‘최재윤’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최재윤’은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5%]

‘개화했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동시에 관중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둠의 요정 J, 일어났습니다! 전신이 다 부러질 정도의 괴력이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걸 멈췄는지 내가 심어 둔 씨앗이 화려하게 피어났고, 그 결과로 최재윤 헌터가 일어났다.

푸쉬이이이.

최재윤 헌터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이내 얇은 실이 되어 그의 몸 여기저기에 연결되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최재윤 헌터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 드디어 나왔습니다! 어둠의 요정 J의 광폭화 스킬, ‘접신’!! 스킬 신고해 놓고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스킬이 드디어! 드디어 나왔습니다!”

“가자아아!!”

“타이거 새꺄! 정신 차려어!!”

관객석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접신 상태의 J는 스킬 위력이 상승하며 평소 힘의 열 배 가까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아, 그렇지~! 이렇게 반전이 있어야지!”

경기의 재미를 원한 지호 언니가 맥주잔을 들고 힘차게 소리 질렀다.

그동안 뭐 때문에 저 스킬을 안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경기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최재윤 헌터에게 넘어갔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J의 폭풍 같은 공격으로 S, 속수무책입니다!!”

최재윤 헌터는 누군가 억지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단검들을 휘둘렀다. S의 발톱이 어깻죽지에 박혀도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공격을 계속했다.

“뭐, 뭐야. 이 새끼?!”

당황한 S의 팔에는 상처가 계속해서 생겼고, 그가 뒤로 물러날 때마다 핏방울이 필드 위로 떨어졌다.

최재윤 헌터의 몸이 위로 높게 뜨더니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아 S 쪽으로 맹렬하게 떨어졌다.

쾅!!

“어둠의 요정의 일격!! 앗, S의 야수화 스킬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은데요?!”

“10! 9! 8!”

S는 금이 간 필드 위에 완전히 뻗었고 점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카운트다운이 터져 나왔고 속사포는 조심스럽게 필드 쪽으로 내려왔다.

“3! 2! 1!”

펑!

사람들의 입에서 1이 외쳐지는 순간, 천장에서 꽃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최재윤 헌터의 승리를 알리는 축포였다.

“리벤치 매치이이~ 오늘의 승자는!! 어둠의 요정 J!!”

“와아아아!!”

“승자 J에게는 상금 100만 원과 다음 선수 등록비 면제권이 주어집니다!”

속사포는 자기가 이긴 양 신나서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녔고 관중 역시 최재윤 헌터를 향해 열광했다. J가 리벤지 매치에서 승리한 결과가 마음에 썩 들었나 보다.

하지만 정작 최재윤 헌터는 차분했고 여전히 검은 연기에 의지한 채 휘청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속사포가 생글생글 웃으며 최재윤 헌터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그가 멍하니 속사포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며칠 전에 타이거 S에게 패배했는데! 설욕전에 성공한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

“얼떨떨하신가 보군요! 하긴, 자기보다 몇 배는 더 큰 상대를 쓰러트리셨으니 그러실 만합니다!”

최재윤 헌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연기에 연결된 채로 여전히 속사포를 응시하고 있었고 이따금씩 단검을 고쳐 잡았다.

두근, 두근.

불쾌한 긴장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주위를 슬쩍 살핀 후 창조자에게서 빌린 권능을 들어 보았다.

[최재윤(28) C급]

[어둠 속성]

[C급 강화계 스킬 ‘접신’ : 성불하지 못한 귀신에게 시전자의 몸을 빌려주고 신체 능력을 열 배 이상 증폭시킨다. 시전자 스스로가 접신 상태를 자각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접신 상태는 풀리지 않는다.]

[D급 은신계 스킬 ‘암연’ : 검은 연기를 내뿜어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귀속 무기 : 없음]

‘접신 상태를 자각하지 않으면… 접신이 안 풀려?’

말도 안 되는 스킬 설명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실상 자폭이나 다름없는 스킬이다.

그동안 저 스킬을 쓰지 않은 이유가 저거 때문이구나!

“제압해야겠죠?”

“하, 저런 애들 꼭 한두 명씩은 나온다니까요.”

그때 세빈이와 지호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세빈이는 천천히 필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청산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아, 이거구나.’

두근, 두근.

속이 뒤집히는 감각과 함께 과거의 기억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광폭화 스킬을 겨우 풀었네요.”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야. 뭐, 계속 병원 신세를 지겠지만.”

아득히 먼 곳에서 세빈이와 하미준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쥔 채 과거의 기억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최고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겠군요.”

과거의 세빈이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미련이 가득한 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과거의 기억은 끝이 났다. 이리저리 흩어진 기억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 최재윤 헌터는 지난 시간선에서도 접신 스킬을 쓰고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우리는 신고를 받고 이곳에 왔고, 결국 세빈이가 최재윤 헌터를 거의 빈사 상태로 만들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정신을 차린 최재윤 헌터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결국 병원에서…….

‘…그만 생각하자.’

난 자아를 손에 쥔 채 걸음을 재촉했고 세빈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텁.

“지의야?”

“…내가 할게.”

여기서 세빈이가 나서면 또 똑같은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옆에 있던 지호 언니도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보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 할 수 있어.”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닐 것 같은데?”

지호 언니가 눈을 찌푸린 채 최재윤 헌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호 언니의 말대로 현재 최재윤 헌터의 상태는 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엔 내가 심어 둔 말의 씨앗이 개화한 상태다. 100% 확신은 못 하지만 내 말은 통할 수도 있다.

지호 언니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민지호’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뭔가 방법이 있나 보네. 알겠어!”

언니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수룡과 한 몸이 되었다.

“관중석은 내가 보호할게! 지의는 알아서 잘 해결해 봐!”

“나만 믿어!”

“지의야!”

필드 쪽으로 튀어가려는 나를 세빈이가 붙잡았다. 세빈이는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말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말의 씨앗에 대한 건 말 못 한다. 말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의심받기 쉬우니까.

툭.

세빈이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자 그가 고개를 떨궈 내 손을 바라보았다.

“무모한 행동하려는 거 아니야. 너무 걱정 말고 사람들 보호해 줘.”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강세빈’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세빈이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지만 그래도 나를 최대한 믿어 보려는 것 같았다.

내 팔을 붙잡았던 세빈이의 손이 떨어졌고, 나는 동시에 필드 쪽으로 달려 나갔다.

“어, 어둠의 요정 J……. 으아악?!”

쾅!!

“이크!”

탕!

최재윤 헌터의 단검이 속사포의 몸을 뚫기 전에 내 실드가 그를 먼저 보호했다.

후웅―

곧바로 검은 그림자가 속사포를 필드 밖으로 꺼냈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으아악!!”

아수라장이다.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해.

“최재윤 헌터!!”

잡귀에게 몸을 잡아먹힌 최재윤 헌터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한참 굴러가던 그의 눈동자가 정확히 내게 꽂혔다.

“정신 차려요! 지금 그 스킬 안 풀면 진짜로 위험해집니다!”

“내가 왜…….”

팅.

최재윤 헌터가 단검을 던졌지만 워낙 느리게 날아오는 터라 실드로 쉽게 튕겨냈다.

“이제…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로워졌…는데.”

“쓸데없는 걸로 자책하지 말라고 했지,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재윤’이 동요한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대상입니다.]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은 각성자 ‘최재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가 내 말을 들을 모든 조건은 완성되었다. 난 자아를 입 앞으로 가져와 최재윤 헌터를 향해 소리쳤다.

“그딴 잡귀한테 몸 뺏기지 말고, 얼른 돌아오세요!!”

타아아앙!

[자각의 탄환 사출]

[표적 : 각성자 ‘최재윤’]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새하얀 탄환이 자아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최재윤 헌터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아……?”

[발언 결과 : 자각]

최재윤 헌터가 멍하니 서서 탄환이 파고든 가슴팍을 더듬었다. 그의 가슴엔 그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어? 어, 신지의 헌터? 어, 어라?”

“정신이 좀 드세요?”

“…어어?”

‘돌아왔다!’

쿵.

최재윤 헌터는 혼비백산이 된 경기장을 둘러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동시에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도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더듬으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고, 이내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나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죄, 죄송해요…….”

“아니에요. 돌아왔으니 됐죠.”

“이러라고 신지의 헌터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해준 게 아닌데……. 다 제가 쓸모없는 탓이에…….”

“아~! 그게 딱 쓸데없는 자책이에요.”

짜증 섞인 내 말에 최재윤 헌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물론 이 일은 최재윤 헌터가 폭주한 탓에 벌어진 건 맞아요. 그건 책임져야 해요!”

“네…….”

“하지만 그게 최재윤 헌터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주저앉은 최재윤 헌터의 앞에 바로 가서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지금의 최재윤 헌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요.”

“신지의 헌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각성자 ‘최재윤’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반성]

“…알겠어요. 여기서 도망친다면 그땐 진짜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죠.”

최재윤 헌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업이 청산되었습니다.]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19%]

“고맙습니다. 이제야 정말로 정신을 차렸어요.”

그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인 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제게로 다가오는 헌터 무리를 바라보았다.

‘야. 바, 방금 어떻게 한 거야?’

그때 자아가 입을 열었다. 자아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아까 내가 했던 연계 공격에 대해 물었다. 그 목소리엔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묻어 나왔다.

자아에 딸린 발언력 기능부터 연계 패시브 스킬 ‘말이 씨가 된다’까지……. 내가 생각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공격이었다.

‘이게…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구나. 진짜 골 때리네.’

자아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안 난 고개를 돌려 최재윤 헌터를 바라보았다. 결과적으론 최재윤 헌터를 정신 차리게 만들고 그가 평생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상황도 막았지만, 여차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내 편으로 만들겠다고 무작정 말의 씨앗을 심으면 안 되겠어.’

“지의야~”

“지의 양. 괜찮아?”

지호 언니와 하미준 헌터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신없던 금요일 밤이 저물어갔다.

“하아아… 힘들었다.”

집에 겨우 들어와 샤워를 하니 어느새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되었다.

우웅.

업무용 핸드폰인가?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켜자 아니나 다를까, 알림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견 업무 1건 배정되었습니다.]

[위치 : 전라북도 남원 S급 던전(일반)]

[날짜 : 추후 안내 예정, 6월 중]

[파견 팀 : 최민(S급), 이상욱(A급), 김수아(A급), 진주현(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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