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0화 (30/366)

30화

【우당탕탕 파이트 클럽】

타닥.

“아.”

지면에 착지한 후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집 주변이잖아?’

여기에 내가 청산할 업이 있다는 건데……. 도저히 뭔지 감도 안 온다.

퍼억.

“그러니까 왜 졌냐고, 이 새끼야!”

그때 명백한 폭력의 소리가 귀에 꽂혔다.

이 동네가 낡고 오래되긴 했어도, 치안이 처참한 곳은 아닌데.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일단 발을 멈췄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골목 안쪽에서 여러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가 요즘 파클 유망주라 해서 걸었는데, 뭐? 3초 컷?”

“X 같네, 진짜.”

두 명? 아니, 세 명 정도 되나? 그 사람들의 폭언을 받아내고 있는 건 웬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남자는 바닥에 웅크린 채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난 골목으로 성큼 들어가 폭력 무리 앞에 섰다. 이 비겁한 자식들은 나를 보고 한 걸음 물러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야말로 뭔데? 너 얘 알아?”

“그건 알 바 아니고, 지금 이 사람 둘러싸고 뭐 하는 거냐고 묻잖아요.”

“허, 이 새끼도 골 때리는 새…….”

“누나!”

그때 무리에 있던 한 남자가 내 바로 앞에 있던 여자의 팔을 잡았다.

“쟤 그 헌터 아니야? SS급……!”

“뭐? 헌터?”

‘아, 이러면 성가셔지는데.’

민간인에 대한 헌터들의 스킬 사용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위협 목적으로 사용했다간 그 즉시 헌터 자격 박탈이다.

원래도 이놈들에게 스킬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더 조심해야겠군.

“하이고, 그렇게 잘나신 SS급 헌터님이 이 개찐따 같은 놈을 왜? 뭐, 영웅이세요?”

툭.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치자 곧바로 팔이 잡혔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

“나 우리 헌터님 스킬 좀 보고 싶은데, 한번 써줄 수 있나?”

어지간히 정신 나간 여자다.

내가 자기들한테 스킬 쓸 수 없다는 걸 뻔히 아나 보네.

스킬을 쓸 수 없다면…….

“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말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무기에 딸린 기능 정도는 써도 되겠지.

내 말에 팔뚝을 잡았던 여자가 손을 빼더니 벽 쪽으로 몸을 딱 붙였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자 녀석의 어깨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다.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황진아’가 동요한다.]

“너보다 약한 사람 괴롭히면서 살지 마.”

“…….”

“딱 봐도 강한 사람한테는 빌빌 길 것처럼 보이는데.”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비각성자 ‘황진아’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두려움]

“야, 가자!”

“어, 간다고?”

“그래. 가자고, X발아. 따라오라면 따라와야지 말이 많아.”

여자는 애써 센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걸 나는 안다.

무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갔다.

뭐, 이 정도면 비폭력적으로 해결한 거겠지?

그 자식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끄으…….”

“구급차 불러드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지난 시간선에서 내가 이 사람을 안 도와줬나?’

내가 그랬을 리가 없는데. 도대체 사명은 왜 날 여기로 부른 거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지의 헌터 맞죠?”

그때 남자가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아, 네.”

“우와아, SS급…….”

남자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탈그락.

“앗.”

그때 남자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내 앞으로 굴러왔다. 얼마나 험하게 썼는지 액정은 죄다 깨져있었고 핸드폰을 감싼 하드 케이스도 이미 제 기능을 못 한 지 오래였다. 허리를 숙여 남자의 핸드폰을 줍자 갑자기 핸드폰이 켜졌다.

“…어?”

배경화면에 있는 헌터 협회 마크, 그리고 한가운데 박힌 헌터넷 아이콘.

잠깐, 혹시…….

“헌터세요?!”

“네? 네……. 하하하.”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하마터면 핸드폰을 한 번 더 떨굴 뻔했다.

아니, 의심할 여지도 없이 민간인이라고 생각했는데!

“C급 헌터… 최재윤입니다.”

최재윤 헌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C급 헌터긴 한데… 전 스킬 빼면 그냥 민간인이랑 다름이 없거든요. 보다시피 몸도 작고…….”

“그, 그랬군요.”

최재윤 헌터가 내게 건네받은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다시 넣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다 제 탓이죠, 뭐. 저 때문에 저 사람들도 돈을 잃었을 테니까…….”

“돈이요? 아까 저 자식들한테 돈이라도 꿨어요?”

“네? 아, 그, 그건 아닌데…….”

최재윤 헌터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파클 유망주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아, 아무튼 제가 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그래요. 생긴 것도 음침하고…….”

“그게 왜 최재윤 헌터 탓이에요!”

내 외침에 최재윤 헌터가 화들짝 놀랐고 다크서클이 짙게 깔린 눈 밑도 파르르 떨렸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저 자식들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에요.”

“아…….”

“최재윤 헌터 탓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연계 패시브 스킬 발동]

[‘말이 씨가 된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의 씨앗을 각성자 ‘최재윤’에게 심겠습니까?]

어라. 딱히 씨앗을 심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최재윤 헌터가 내 말에 동요한 탓에 의도치 않은 기회가 와버렸다.

‘예.’

[각성자 ‘최재윤’에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최재윤 헌터에게 씨앗을 심자 무기력하던 그의 눈빛에 뭔지 모를 총기가 돌았다.

“덕분에 힘이 좀 나요.”

“다행이네요.”

“맞아요! 이런 데서 시무룩해할 수는 없죠!”

최재윤 헌터는 주먹을 꽉 쥐며 저 혼자 갑자기 의지를 불태웠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 자식을 이겨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겠어요!”

“어, 그 파클이라는 게…….”

“감사합니다, 신지의 헌터! 이만 가볼게요!”

파클이 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힘찬 발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 버린 후였다.

두근.

또 내장이 뒤집히는 감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과거의 기억이 느껴질 때마다 전신을 덮치는 이 감각.

‘너 최재윤 헌터 알아?’

‘아까 니 앞에 있던 남자?’

‘응.’

웬일로 자아가 한 번에 답했다. 자아는 말꼬리를 늘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는데.’

‘뭐? 너가 기억 못 하면 왜 내 사명이 반응한 건데?’

‘에엥?’

자아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왠지 모르게 최재윤 헌터의 끝이 굉장히 안 좋았던 것 같은데…….’

난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 * *

“언니, 혹시 파클이 뭔지 알아?”

“어? 파클 몰라?”

협회 식당에서 밥을 먹던 지호 언니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행이다. 알고 있나 보네.’

지호 언니가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아는 헌터들도 많아서, 파클에 대한 것도 알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예상이 적중했다.

“파이트 클럽이라고, 헌터들끼리 싸우는 거 구경하는 곳 있어.”

“뭐, 뭐?!”

어제 최재윤 헌터가 파클 유망주라고 한 게… 이런 거였어?!

“평소에는 펍처럼 운영하다가 주말에는 지하에서 파클 열거든. 전에는 얼마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 더 유행하더라고.”

“그래도 돼? 아니, 그냥 실전 훈련하면 되잖아.”

지호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먹을 꽉 쥐었고 난데없이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 언니 눈빛이 왜 이래.’

“…지의야.”

“뭐, 왜, 뭔데.”

“파클에선 헌터한테 직접 공격 스킬을 사용해도 돼.”

안 그래도 큰 눈인데 힘까지 주니까 정말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언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내 팔에 소름이 돋았다.

“짜릿하지 않아?”

지호 언니의 얼굴은 흥분과 광기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게… 그렇게 좋아?”

“스릴이 미쳤어. 연계 공격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으면 곧바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그 아슬아슬함!”

탱그랑.

언니는 젓가락까지 놓치면서 파이트 클럽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잠깐. 지금 얘기하는 거 가만 들어보니까…….’

“파이트 클럽에서 싸워 본 거야?”

“…큼흠.”

이 언니 생각보다 화끈하게 살았네?!

입을 쩍 벌린 채 지호 언니를 빤히 보자 언니는 그냥 딴청을 피우며 마파두부덮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쑤셔 넣었다.

“사실 협회 입장에서는 파클들을 그냥 두고 볼 순 없긴 하지.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니까.”

지호 언니가 우물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아, 협회도 알고 있는 거야?”

“알고는 있지. 근데 막을 만한 규정이 없으니까 그냥 두는 거야.”

언니가 하나 남은 만두를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아무튼 파클은 왜? 관심 있어?”

“관심이 있다기보단…….”

최재윤 헌터가 신경 쓰여서, 라고 말했다간 엄청난 오해를 사겠지.

“어, 관심 있어. 한 번쯤 경험 삼아 가보고 싶어.”

“좋아! 원래 금요일 경기가 제일 핫하거든!”

지호 언니가 부지런히 핸드폰 화면을 누르더니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고, 그대로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MAD DOG]

[FLASH]

[月]

[동쪽의 사자]

“오늘 경기 있는 곳들로 골라봤어.”

이름들이 전부 특이하네.

가장 위에 있는 ‘MAD DOG’부터 눌러보았다.

[MAD DOG REVENGE MATCH!]

[설욕전! 어둠의 요정 J, 타이거 S에게 다시 도전장을 내밀다!!]

[어둠의 요정 J, 오늘은 타이거 S를 이길 수 있을까?]

[입장객에게 모두 맥주 한 잔씩 무료 제공! ‘MAD DOG’에서 판매하는 음식 주문 가능!]

[*‘MAD DOG’은 행사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광고 이미지의 한가운데에 J와 S의 실루엣이 박혀 있었다. 어둠의 요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J는 얄쌍하고 작은 체구의 소유자였고…….

‘…잠깐.’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 자식을 이겨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겠어요!”

최재윤 헌터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어둠의 요정 J는 최재윤 헌터다.’

난 고개를 들고 지호 언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MAD DOG으로 가자.”

“이야~ 민지호 헌터님, 오랜만이에요! 요즘은 왜 등록 안 하십니까? 저희 직원들이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요~”

“대박, 민지호 헌터님 오셨어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언니에게 꽂혔다.

‘아니, 이 언니 한두 번 해본 게 아닌가 본데?’

지호 언니를 빤히 쳐다보자 언니는 애써 내 시선을 피하며 카운터에 있는 남자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양손을 꼭 모은 채 지호 언니에게 온갖 아양을 다 떨었고, 하는 말의 대부분은 선수 등록 한번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유명 헌터가 선수로 등장한다고 하면 손님들이 몰릴 테니까 그런 거겠지.

“아, 아무튼 오늘 VIP석으로 하나 주세요. 저는 생맥주 하나 주시고, 넌 뭐 마실래?”

“어… 저는 그냥 레모네이드요.”

“아니, 아니, 신지의 헌터 아니십니까! 첫 방문이시죠? 저희가 오늘 안주 서비스도 하나 넣어드릴게요~! S급 이상의 선수 등록은 안 받고 있다 보니 그건 좀 아쉽네요. 아, 그래도 언제든지 환영이니 자주 놀러 와주세요!”

“네, 네.”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탓에 벌써부터 기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직원이 화면을 몇 번 두드리자 옆에 있던 철문이 저절로 열렸고 밑으로 가는 계단이 나타나는 동시에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려가시면 안내봇이 자리까지 도와드릴 겁니다! 음식이랑 음료는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노래는 점점 더 커졌고 둥둥거리는 비트가 몸 전체를 울렸다. 적당히 어두운 내부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어지럽게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정말 전형적인 클럽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중앙에는 댄스홀 대신 커다란 유리 큐브가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 크잖아?’

큐브 주변으로는 영화관 의자 같은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민지호 님, 신지의 님.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안내봇이 앞장서서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확실히 VIP석은 달랐다. 붉은색 소파는 보는 것만으로도 푹신함이 느껴질 정도였고 앞에는 테이블까지 딸려 있었다. 큐브와도 꽤 가까워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VIP 이름값은 하는 것 같다.

“필드 리모델링했나 보네.”

저 큐브를 필드라고 부르는구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음식이랑 음료 놓아드릴게요!”

경기장을 한창 둘러보는데 직원이 테이블 위에 맥주와 레모네이드, 그리고 하몽을 얹은 멜론을 올려놓았다.

“하몽멜론은 서.비.스.예용! 자주 이용해 주세요, 헌터님들!”

“감사합니다!”

직원은 잔뜩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하곤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언니가 보통 단골이 아니었나 보다. 뭐, 그건 둘째 치고…….

‘최재윤 헌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직감이 맞다면 최재윤 헌터는 여기서 죽든, 엄청난 중상을 입고 목숨만 겨우 건지든, 아무튼 끝이 말도 안 되게 안 좋을 것이다. 말의 씨앗까지 심어놓은 마당에 그가 잘못되는 걸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텁.

“응?”

에이드를 마시려 빨대로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의 길쭉한 손가락이 먼저 빨대를 잡더니 내 컵에 꽂았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역시 운명인 걸까?”

“하미준 헌터?”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 건 평소보다 열 배는 더 화려해 보이는 하미준 헌터였다. 정체 모를 무늬가 수놓아진 반팔 실크 셔츠가 조명 불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거렸고 눈썹 피어싱도 셔츠 색과 똑같이 파란색 보석이 박힌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색이란 색은 이 사람이 다 가져간 거 아냐?

그의 뒤쪽으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지나치게 화려한 그에게서 눈을 떼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세, 세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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