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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8화 (28/366)
  • 28화

    그래, ‘해치웠나?’를 들은 몬스터가 진짜로 죽었을 리가 없지.

    차도윤 헌터가 손을 뻗어 바람을 불게 하자 모래를 가득 머금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폐허의 한가운데에서 하치가 기묘한 빛을 내뿜으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앙상하고 기괴하게 솟아오른 척추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위아래로 흔들렸다.

    ‘지금이 아무래도 충견 상태인 것 같은데.’

    그냥 스킬이 끝나기를 기다리려면 24시간 동안 하치와 놀아줘야 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돌발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강아지의 보은]

    [주인을 잃은 강아지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자.]

    [보상 : S급 아이템 ‘속마음 전화기’]

    [제한 시간 : 24시간]

    ‘이 와중에 또 지령이 온다고?’

    아우우우―

    “신지의 헌터, 피하세요!!”

    절규에 가까운 채현민 헌터의 외침과 동시에 커다란 나무가 광개토를 뚫고 내가 있던 곳으로 솟아올랐다.

    찌이익.

    “아윽!”

    몸이 꿰뚫리는 건 피했지만 종아리 부근이 찢어졌다. 아찔한 고통 때문에 불안하게 착지했고, 덕분에 뒤로 한 바퀴 굴렀다. 채현민 헌터가 내 쪽으로 뛰어왔고, 난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수십 개의 나무줄기를 온 힘으로 막았다.

    투과과광!

    나이스 타이밍!

    화살이 단번에 나무를 끊어냈고 가느다란 파편만이 실드에 튕겨져 나왔다.

    “앗, 따가워.”

    “조금만 참으세요. 지혈만 빨리 할게요!”

    채현민 헌터의 불꽃이 내 종아리를 감싸는 동안 눈으로는 계속해서 하치의 공격을 좇았다. 지호 언니가 수룡으로 몇 번이고 하치를 공격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빛이 전부 흡수해 버렸다. 언니는 잔뜩 성이 났는지 입으로 욕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강아지에게 무슨 선물을 하라는 거야?’

    철컥.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는데 말이지.’

    언니가 열심히 하치의 시선을 빼앗는 동안 나는 녀석을 향해 한 손으로 자아를 겨눴다.

    ‘야, 큰 거 한 방 가자.’

    ‘별걸 다 시키네, 진짜.’

    자아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방아쇠에 손을 걸었고 그대로 힘차게 당겼다.

    타앙!!

    “으아악?!”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내 손에서 떠나간 흰색 구체가 공기 전체를 진동시키며 하치의 심장에 제대로 박혔다. 녀석이 눈을 크게 뜨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펑!!

    끼잉, 깨개갱!!

    “아우, 야……!”

    진짜로 무적 스킬을 뚫었다!

    하치의 몸 반쪽이 터져 나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게이트 앞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적 스킬을 알리는 금색 빛은 계속해서 하치의 몸을 맴돌았고, 녀석은 씩씩거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아]

    [0%]

    남은 목소리를 전부 써버렸구나. 무적 스킬도 뚫을 정도의 파괴력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수고했어.’

    ‘무식하… 조심―’

    무식하게 공격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이겠지? 약간 혼난 느낌이 들었다.

    “바, 방금 무적 상태 아니었어?”

    지호 언니가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상욱 헌터와 차도윤 헌터, 그리고 나를 치료하던 채현민 헌터까지 모두의 얼굴이 경악과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역시 끝내줍니다!”

    “이틈에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공격하세요.”

    금방 정신을 차린 차도윤 헌터가 싸늘하게 말하곤 하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투과과광!!

    엄청난 낙뢰와 함께 폭풍이 하치를 감싸더니 날카로운 바람이 녀석의 살을 파고들었다. 수룡은 탐욕스럽게 입을 벌려 하치의 목을 물었다.

    후우웅.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수룡은 다시 물로 돌아갔고 화살은 공기의 일부분으로 되돌아갔다.

    비록 부상은 입었어도 스킬은 그대로군. 주인이 죽고 나서 변했던 몬스터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쿠웅.

    하치가 앞발을 구르자 땅이 또다시 갈라졌고, 이번엔 엄청난 흙더미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으랴아아!!”

    이상욱 헌터가 양손을 들어 방패를 높이 세워 그 흙더미들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가 이를 악물며 흙더미를 밀어냈지만, 방패 옆으로 미처 막지 못한 흙이 무서운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하치의 경계를 풀게 할 방법. 권능에서는 주인만이 녀석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주인 잃은 강아지에게 선물…….

    ‘설마!’

    “하, 하치의 보물!”

    “네?”

    “지호 언니! 인벤토리에서 그 카디건 좀 꺼내 줘!”

    “에엥?”

    언니는 수룡에서 나와 내게 ‘하치의 보물’을 던졌고 다시 하치의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걸 이제 하치한테 빠르게 보내기만 하면 된다. 언니가 직접 하치 위에 떨어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전달하기 전에 공격당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할 방법이라 하면 역시…….

    “…왜 절 보시죠?”

    “차도윤 헌터, 화살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화살이요?”

    “아, 아무튼 빨리.”

    내 말을 들은 차도윤 헌터가 잠깐 움찔하더니 바람을 잡아 화살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 받은 화살에 카디건을 푹 꽂아 다시 내밀었다.

    “이거 아까 주인이 소멸할 때 남긴 아이템이에요. 이거라면 하치가 무적 스킬을 끝낼 거예요!”

    “…확실해요?”

    “아,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정 안 되면 제가 찍어 눌러 볼 테니까!”

    차도윤 헌터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살을 받은 후 하치의 머리 쪽으로 활시위를 시원하게 당겼다. 바람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더니 시위를 놓자마자 화살과 함께 공기를 갈랐다.

    피이이잉.

    바람이 하치를 감싸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우릴 덮치려 했던 흙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시에 피를 뚝뚝 흘리는 하치의 위로 카디건이 팔랑거리다 툭 떨어졌다. 하치의 코끝에 겨우 걸쳐진 카디건이 흙바닥에 닿자 하치의 시선도 같이 밑으로 떨어졌다.

    퍼엉!

    흰 연기가 하치의 몸에서 빠져나오더니 안개처럼 주변을 가득 메웠다.

    “사라졌나……?”

    “아니요. 저기 있습니다.”

    이상욱 헌터의 방패에서 나와 게이트 앞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자 낑낑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차도윤 헌터가 바람으로 연기를 몰아내니 그제야 게이트 앞에 웅크리고 있는 하치가 보였다.

    몬스터 하치가 아닌, 평범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충견 하치였다.

    아우―! 아, 아우!

    하치는 카디건 위에 엎드려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고, 우리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계절 내내 자신의 주인이 올 거라는 강한 믿음이 순식간에 깨진 순간이었다. 이제 하치는 알고 있다. 제 주인이 이 카디건을 입고 자신을 쓰다듬어 줄 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걸.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하치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양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죽여야겠죠?”

    먼저 입을 연 건 차도윤 헌터였다. 그는 하치를 빤히 내려다본 채 입술을 달싹였다. 서로 눈치만 보며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볼 무렵 이상욱 헌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제가 그냥 흙으로 묻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이상욱 헌터가 손을 펼쳐 주변의 흙을 끌어모았고, 그대로 하치 위에 부었다. 하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렇게 흙에 묻혔다.

    얼마 안 있어 흙 새로 새하얀 연기가 새어 나왔다.

    덜그럭.

    지호 언니가 발로 흙을 치우자 초록색 개목걸이만이 남아 있었다.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강아지의 보은]

    [보상 : S급 아이템 ‘속마음 전화기’]

    덜컹.

    ‘아.’

    인벤토리를 열어 보자 낡은 실전화기가 들어있었다.

    도대체 어떤 아이템이길래 이렇게 은밀하게 준 거지?

    [아이템 귀속]

    [속마음 전화기]

    [S급]

    [반경 1km 이내의 소환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전화기]

    ‘좋은… 건가?’

    일단 S급이고 소환수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특별한 아이템이라는 건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활용법이 애매했다.

    “지의야, 빨리 와!”

    “아, 언니. 잠깐만! 곧 갈게!”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난 게이트 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며 하치가 묻혔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록색 카디건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과 활짝 웃고 있는 하치가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 던전 속에서 그들은 끝이 없는 이별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서로가 있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별의 굴레 속에서 끝없는 시간을 보낼 저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 * *

    “나 녹두 사진 더 보내 주면 안 돼?”

    “더? 나머지 사진은 다 흔들린 것밖에 없는데.”

    “문밖에 기자들 와있습니다. 준비하시죠.”

    차도윤 헌터의 말에 지호 언니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비행기 타고 오는 길에 녹두 얘기를 했더니 아까부터 계속 그 얘기였다.

    나중에 직접 만나게 해줘야지.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유리문 너머로 엄청난 수의 카메라들이 얼핏 보였다. 세빈이가 공항에서 인터뷰하는 걸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그걸 내가 지금 앞두고 있다니. 얼떨떨한 기분과 함께 문을 나섰고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새벽인데도 상당히 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드론이 날아와 마이크를 건네주었고 곧바로 기자들의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차도윤 헌터가 마이크를 잡아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일본 헌터 협회와의 협력 파견은 시부야 S급 던전이었습니다. 해당 던전은 현지 기준으로 이야기 던전이었으며 클리어까지 약 7일 열세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획득한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해당 사항은 기밀이며 이미 헌터 협회 측에 판매하였습니다.”

    “신지의 헌터, 이번이 첫 S급 던전 파견이었는데 소감 한번 말씀해 주세요!”

    소감? 던전 갔다 온 거에 소감을 말할 게 있나? 몬스터 잡으면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사람한테 소감은 무슨 소감이야.

    차도윤 헌터가 내게 마이크를 넘겼고 난 멋쩍게 웃으며 그걸 받아 들었다.

    “어… 확실히 A급 이하의 던전보다는 난도가 높았습니다. 다른 헌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큰일 날 뻔하셨다고요?!”

    “어디를 어떻게 다치신 거죠?!”

    “SS급임에도 힘든 점이 있었나요?”

    와 씨, 달려드는 것 좀 봐.

    내 한마디에 셔터 터지는 소리로 공항 전체가 울렸고 기자들은 하나같이 내 상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괜히 얘기 꺼냈네.

    “큰 상처는 아닙니다. 채현민 헌터의 치유 스킬로 전부 회복했습니다. 저도 앞으로 다른 헌터들에게 도움이 되는 헌터가 되고 싶습니다.”

    무슨 면접 마무리 멘트 같은 상투적인 대답으로 끝냈다.

    크게 말실수한 거 없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뭐.

    다른 헌터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했고, 마지막으로 채현민 헌터가 말을 끝내고 나서야 헌터 협회 직원들이 우리를 데리고 출구로 향했다.

    지호 언니와 이상욱 헌터, 그리고 채현민 헌터는 같은 버스를 타고 가버렸고 나와 차도윤 헌터만 남아 개인 리무진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색하네.’

    차도윤 헌터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한숨에 가까울 정도의 긴 숨을 뱉었다. 내 속을 묘하게 긁긴 했어도 다행히 엄청 큰 트러블이 있던 건 아니었다. 헌터로서는 꽤 배울 점도 많았고.

    “…할 말 있으세요?”

    “아뇨. 그냥 동료로서 잘 지내보자고요.”

    “네, 뭐…….”

    차도윤 헌터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리무진 두 대가 부드럽게 와서 우리 앞에 섰고 뒷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차도윤 헌터가 차에 타려고 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어, 마음 열었나?’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아마추어의 야생적인 감도 좋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확실한 근거에 의한 판단입니다. 그럼 이만.”

    차도윤 헌터를 태운 리무진이 먼저 출발했고 내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저, 저 싸가지 없는!! 야!!”

    진짜 어이없네…….

    내장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겨우 삭이며 나도 리무진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가 공항을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아까 받은 이상한 아이템이나 좀 볼까.’

    돌발 지령으로 받은 아이템, 아직 제대로 못 봤다. 평범하게 생긴 실전화기를 꺼내려 인벤토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해당 아이템은 꺼낼 수 없습니다.]

    ‘뭐?’

    인벤토리 안에 얌전히 들어있는 ‘속마음 전화기’를 잡아 밖으로 끄집어내려 했지만, 경고 상태창과 함께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꺼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용하라는 거지.

    손을 다시 주머니에 꽂고 속마음 전화기의 정보만 한참 읽었다.

    [속마음 전화기]

    [S급]

    [반경 1km 이내의 소환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전화기]

    ‘…녹두한테 한번 써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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