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6화 (26/366)
  • 26화

    갈퀴만 보인 채로 녀석은 여전히 물속에 있었다.

    직접 꺼내 와야 하나?

    주변이 눈치를 살짝 살핀 후 권능으로 녀석의 손을 빠르게 보았다.

    [S급 몬스터 예민한 갓파]

    [물 속성]

    [할퀴기, 물어뜯기, 전광석화, 익사]

    [특이 사항 : 머리에 있는 물을 쏟게 해야 한다. 혹은 머리 자체를 날려버리거나.]

    음, 그냥 부수면 된다는 거군. 성가신 스킬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물갈퀴 보니까 아무래도 갓파 같네요. 그 일본 요괴.”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갓파는 머리에 있는 물이 쏟아지면 죽으니까 쟤를 뒤집듯 그냥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려야 할 것 같아요.”

    태연하게 얘기하자 채현민 헌터를 비롯한 다른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로 차도윤 헌터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내가 또 아마추어의 감이라고 빈정댈까 봐 그런 건가?’

    그때 갓파가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오더니 입에서 물을 뿜었다. 가볍게 피하자 물은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닿았고 순식간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시간 오래 끌면 여기가 전부 갓파의 땅이 되겠네.

    투웅.

    갓파는 채현민 헌터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날카로운 부리로 목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이상욱 헌터의 방패가 그를 감싸는 게 더 빨랐다.

    지호 언니의 수룡이 갓파의 옆구리를 뚫고 다시 언니의 주변으로 돌아왔다. 갓파는 그대로 튕겨 나와 비탈길에 몸이 갈렸지만 그 상태로 뒤로 굴러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거 꺼내는 게 더 일이겠는데요?”

    “그러게요…….”

    “물을 통째로 꺼내서 조질까요?”

    모두가 지호 언니를 쳐다보았다.

    ‘아니, 물론 된다면 편하겠지만 가능한 거야?’

    모두의 시선이 언니에게 꽂히자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갓파가 들어간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물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통째로 꺼내면 지의든 차도윤 헌터든 충분히 끝낼 수 있지 않겠어요?”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으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지호 언니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물을 향해 손짓하자 수룡이 갓파가 있는 웅덩이로 몸을 던졌다.

    두두두두두.

    언니가 양손으로 허공을 잡아 그대로 위로 들어 올리자 땅이 울렸고, 곧 엄청난 굵기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큐브처럼 떠있는 물 안에는 눈을 잔뜩 크게 뜬 채 우리를 내려다보는 갓파가 있었다.

    “월척이다~!”

    “신지의 헌터!”

    “갑니다!”

    차도윤 헌터의 신호와 함께 갓파를 향해 자아를 조준했다.

    탕!!

    날카로운 목소리 탄환이 물을 갈라 갓파의 팔을 맞혔다. 그러자 그대로 부글부글 끓더니 팔이 터졌다. 갓파의 팔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은 결국 차도윤 헌터의 화살에 머리를 꿰뚫렸다.

    갓파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온 힘을 다해 우리 쪽으로 물을 쐈으나 금방 속도를 잃고 밑으로 주르륵 흘렀다.

    생각보다 쉬워서 다행이네.

    아직 가을이랑 겨울, 그리고 하치까지 남았으니 체력은 무조건 아낄수록 좋다.

    지호 언니가 손을 거두자 물이 쏟아졌고 그와 동시에 언니가 약간 휘청거렸다.

    “지호 언니?!”

    “어우, 핑 도네.”

    “코, 코피 나잖아!”

    “무리하면 그렇게 돼요. 제가 회복시킬게요!”

    지호 언니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채현민 헌터 앞에 주저앉았고 채현민 헌터도 언니의 앞에 앉아 손을 펼쳤다. 주황색 불꽃이 언니의 몸을 감싸는 동안 우릴 둘러싼 풍경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제 생명을 태워 가며 울던 매미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푸르른 녹음은 다홍색, 주황색, 붉은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변했고 땅 위에는 어느새 단풍잎들이 수북이 쌓였다. 얼굴의 땀을 식혀 주는 시원한 바람에는 약간의 탄내가 섞여 있었다.

    “가을에는 뭐가 올까요?”

    “봄에는 벚꽃나무였고 여름엔 갓파…….”

    “순서로만 보면 단풍나무가 나올 것 같은데 말이죠.”

    이상욱 헌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바람이 훅 끼쳤다. 그리고 등 쪽에서 비정상적인 열기가 느껴졌다.

    쾅!!

    “허, 으윽!”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불길이 눈앞에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몸이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갓파가 만들어 뒀던 물웅덩이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질 정도였다.

    퍼버벙!!

    ‘뜨거워!!’

    피부를 칼로 베어 낸 것처럼 등이 욱신거렸지만 일단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탱그랑!

    “아오, 생각할 틈을 안 주네. 진짜!”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일본식 옷을 입은 까마귀가 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에는 시뻘건 불길이 일고 있어서 굳이 내 몸에 닿지 않아도 열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쾅!!

    내 목을 노리는 지팡이를 실드로 막자 공기가 울렸다. 조금이라도 실드를 늦게 뽑았으면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빈틈이다!’

    팔에서 느껴지는 진동 때문에 까마귀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고, 그런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까아아악!!

    쳇, 빠르네.

    까마귀가 곧장 하늘로 날아가는 바람에 목소리 탄환은 녀석의 정강이 주변에 박혔고, 그대로 다리가 터져 없어졌다. 하지만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내 쪽으로 운석처럼 내리꽂혔다.

    쾅!!

    아슬아슬하게 녀석을 피했다. 까마귀가 착지한 곳엔 용암에 가까운 뜨겁고 끈적한 불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까마귀가 또다시 불로 휩싸인 지팡이를 내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옆으로 살짝 피하며 ‘발 없는 말’로 녀석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동시에 까마귀도 내 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내가 자아를 겨눈 게 훨씬 빨랐다.

    쿠과과광!

    까마귀보다도 큰 구체가 자아에서 튀어나와 녀석을 제대로 집어삼켰다. 순간 사방이 조용해지더니 까마귀의 몸이 꺼림칙한 소리를 내며 엉망진창으로 어긋났다.

    퍼버벙!

    이내 새빨간 불꽃이 엄청난 기세로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니, 얌전히 몸만 터질 것이지 곱게 안 죽네!

    실드를 펼치는 동시에 이동 스킬로 피했지만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터라 실드로 막지 못한 부분엔 꼼짝없이 붉은 상처가 남았다.

    “지의야, 숨 참아!”

    “어? 웁!!”

    차가운 물이 내 몸을 옭아매더니 불꽃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파도에 떠밀리듯 내 몸은 위아래로 넘실거렸고 이내 이상욱 헌터의 거대한 방패 뒤쪽에 도착했다. 방패는 두드리는 불똥 때문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까마귀의 마지막 발악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푸하! 콜록, 콜록!”

    “괜찮아?! 세상에, 너 등이……!”

    “지금 바로 치료할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등? 아…….”

    생각해 보니 아까 등을 공격당한 것 같기도 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에 힘이 풀렸고 꼭두각시 인형의 실이 끊어지듯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채현민 헌터가 쓰러지는 내 몸을 받아 자기 허벅지 위에 엎어진 채로 두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이제야 고통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수천 개의 바늘로 동시에 내 등을 찌른 후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 불꽃에 당한 발목이나 허벅지 부분도 끔찍하게 따끔거렸다.

    ‘저 까마귀가 도대체 뭐길래…….’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원을 만들어 활활 타고 있는 까마귀의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S급 몬스터 빛을 좇는 가라스텐구]

    [불 속성]

    [화염 방출, 화염구, 꿰뚫기]

    [특이 사항 : 빛 속성 헌터가 있으면 그 헌터만 공격한다. 사망 시 약 5분간 사방으로 화염을 방출한다.]

    뭐 같은 특이 사항이야……. 까마귀가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람까지 쫓을 필요는 없지 않아?

    “차도윤 헌터, 치유 스킬 있죠?! 그것도 같이 써주세요!”

    “이미 쓰고 있습니다.”

    “지의야, 정신 놓지 말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

    귀가 웅웅거려…….

    지호 언니 말대로 여기서 정신 놓으면 안 되는데 자꾸 눈이 감겼다.

    손톱으로 땅을 긁고 혀를 깨물며 눈을 뜨려 했지만 누군가 내 눈꺼풀을 밑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기절하면 안 되는데…….

    * * *

    “타박상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그 선배가 정말로 스킬이라도 썼으면 어쩔 뻔했어?”

    “그럼 그 상황에서 그냥 가?”

    “선생님 모셔오면 되잖아. 너가 직접 나서지 말고.”

    세빈이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그 새끼한테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속은 시원했다.

    나도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소란에 휘말리고 싶진 않았다. 근데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인 걸 어쩌란 말이냐.

    내가 쥐어팬 새끼는 D급짜리 공격계 스킬 하나로 소위 잘나간다는 남자 중에 하나였고, 이미 학교 폭력으로 꽤 전과가 있는 놈이었다. 교실로 올라가던 길에 공교롭게도 그 새끼의 폭력 현장을 목격했고, 또 나의 미친 오지랖 때문에 결국 직접 나서고 말았다.

    “각성자 별거 없던데?”

    “…….”

    여전히 표정이 굳은 세빈이를 향해 장난스레 말을 걸어봤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내가 더 많이 때린 것 같으아악! 강세빈!”

    “장난칠 기분 아니야.”

    소독약 때문에 따가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렇게까지 많이 부을 필요 없지 않아?! 분명 심술부렸다. 이건 진짜 심술이다, 강세빈.

    아니나 다를까, 세빈이는 약간 싸늘한 얼굴을 한 채로 내 무릎에 반창고를 꼼꼼히 붙이고는 교복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뭐든 유하게 넘어가는 앤데 이번 일만큼은 좀처럼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너 다치는 거 그만 보고 싶어.”

    “내가 또 언제 다쳤다고…….”

    “중1 때 친구 짐 들어주다가 계단에서 구르고, 중2 때는 동네 양아치들한테 맞는 사람 도와주다 너까지 같이 맞고, 또…….”

    “아, 알았어, 알았어.”

    나도 거의 까먹은 일을 전부 다 기억하네.

    세빈이의 얼굴 위로 노을이 쏟아졌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따라 떨어지는 그림자가 꼭 어느 명화의 한 부분 같았다.

    툭.

    세빈이는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위로 몸을 기울이더니, 이내 내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누가 너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

    “…….”

    “근데 왜? 왜 자꾸 너보다 다른 사람을 더 신경 써?”

    세빈이가 보건실 침대의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

    ‘동생의 마지막도 못 지킨 못난 언니의 회개 활동이지, 뭐.’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세빈이의 손을 잡아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세빈이는 약간 붉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사람 도와주다가 다치지 않겠습니다~”

    “지의야…….”

    “너도 해. 던전 갔다가 다치지 않겠다고 해.”

    세빈이 손가락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뗐다.

    “던전에 가서 다치지 않겠…….”

    응?

    누군가 음 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빈이가 작게나마 뭔가를 말하는 것 같긴 한데……. 얼굴을 들이밀고 귀를 기울이자 미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의 헌, 신지의― 터…….

    “신지의 헌터,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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