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쿠구궁.
‘덩치는 산만 한데 잘 피하네.’
‘세 사람의 초상’은 커다란 캔버스 주제에 옆으로 몸을 돌려 내 공격을 피했고 팔레트 나이프를 총알처럼 뱉어 냈다.
파바박.
실드와 이동 스킬로 적당히 피하자 팔레트 나이프가 나무 바닥에 무섭게 박혔다.
콰드득.
세빈이가 손을 뻗자 세 사람의 초상 밑에 있던 그림자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그대로 캔버스를 움켜쥐었다.
“끼아아아아악!!”
캔버스가 찌그러지기 시작하자 똑같이 생긴 얼굴 세 개에서 시뻘건 물감이 흘러나왔다.
쿵, 쿵, 쿵.
세 사람의 초상이 몸을 비틀며 그림자 손을 겨우 끊어냈고 사방팔방으로 팔레트 나이프를 다시 날렸다.
탱그랑.
“큿…….”
실드에 박힌 팔레트 나이프가 더 안쪽으로 파고들기 전에 실드 자체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탁.
세빈이가 끝을 내려는 듯 세 사람의 초상 쪽으로 도약하자마자 고통스러워하던 세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공격 반사다!’
“강세빈, 돌아와!!”
“어, 어?”
타앙!!
세빈이의 칼끝이 캔버스에 닿는 것보다 내가 세빈이의 앞으로 실드를 뽑아내는 게 더 빨랐다. 팔레트 나이프가 내 실드에 꽂혔다. 난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겨서 세 사람의 초상에 탄환을 쑤셔 넣었다.
콰과광!!
세 사람의 초상에 닿은 탄환은 그대로 반사되어 나를 향해 날아왔지만 내 몸을 스치며 사라질 뿐 어떤 상처도 내지 못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
균형이 깨져버린 세 사람의 초상이 울상이 된 채 비명을 지르다 이내 반으로 갈라졌다.
“지금!”
“어? 어!”
내 신호에 세빈이가 다시 검을 고쳐 쥐고 위에서 아래로 세 사람의 초상을 벴다.
쿠웅!
녀석은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 위로 떨어졌고 파르르 떨다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난전이 순식간에 종료됐다. 세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몬스터의 잔해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잠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꺾었다.
“아, 반사 스킬 때문에 돌아오라고 한 거야?”
역시 이해가 빠르네.
세빈이가 고개를 다시 바로 돌려놓으며 평소의 온화한 인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내 스킬은 아군한테 안 먹히니까 상관없지만 넌 여차하면 다치잖아.”
“지의야!”
세빈이가 감동받은 듯 고개를 숙여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들어 철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웅? 강세빈 헌터 반사 스킬 잘 피하시잖아요!”
“…….”
“엥.”
강아지처럼 얼굴을 부비적대던 세빈이의 움직임이 갑자기 멎었다. 한진우 헌터 쪽으로 고개를 쭉 빼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가 있었다. 그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사실 공격 반사 스킬은 요령이 생기면 피할 수 있거든요! 특히 강세빈 헌터나 하미준 헌터처럼 근접 전투형 헌터들은 아주 쉽게…….”
“어서 가죠.”
세빈이가 냅다 고개를 들고 한진우 헌터를 향해 웃어 보였다.
‘눈이 안 웃는데.’
으스스한 배경 때문인가, 세빈이의 표정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아, 근데 저 몬스터가 공격 반사 쓰는 거 어떻게 안 거예요?”
한진우 헌터의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창조자에 대한 걸 언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충 둘러대야겠다.
“그냥 삘이죠, 뭐.”
“우왕, SS급 감각, 뭐 그런 건가 봐요~”
한진우 헌터가 말랑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별다른 말 없이 상황을 넘겼고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키이잉.
길을 비추는 자가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뭔가 푹신해 보이는 문을 열자 탁 트인 공간이 나를 반겼다.
“아무래도 강당인 것 같네요.”
무대 위에 있는 단상에선 정체 모를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창문에 달린 붉은 커튼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아, 저기 게이트예요!”
단상 앞에 아까 우리가 밀고 들어왔던 철문이 있었다.
‘그나저나 녹두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제 정말 클리어가 코앞인데 늑대는커녕 털로 된 동물이라곤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괜히 캐비닛을 열어 보며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녹두를 찾아봤지만, 오히려 기분 나쁜 인형들만 한가득 보고 말았다.
“일단 한진우 헌터는 방어랑 치료에 전념해 주세요.”
“네!”
“지의 너는 열심히 피하면서 공격만 해. 속성이랑 파괴력 봤을 때 한 방만 제대로 들어가도 그대로 끝낼 수 있을 거야.”
“오케이.’
세빈이가 브리핑을 끝낸 후 게이트에 손을 댔다.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아 주변만 두리번거릴 때쯤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강당 문이 열리더니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 형체는 노래를 부르며 단상 위로 올라갔고, 그 이후로도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형체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졸업식 노래?’
제각각 다른 목소리들로 일제히 같은 가사를 불렀고,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목소리들이 서로 겹쳐져 어느새 합창이 되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형체들은 일렬로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아노 반주는 평화로웠고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들도 해맑았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다. 자아를 꼭 쥐고 형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숨죽인 채 기다렸다.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노래가 끝났다. 형체들은 박수를 치며 까르륵 웃더니 무대에 있던 의자 위로 올라섰다. 그러곤 언제 내려왔는지 모를 밧줄 올가미에 자신의 목을 걸었다.
“헉!”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지만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다.
무대 위에 매달린 열 명의 인영이 힘없이 좌우로 흔들리다 이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운동화를 신은 왼발과 구두를 신은 오른발, 길이가 맞지 않는 양쪽 팔, 억지로 이어 놓은 듯한 머리와 상반신. 어떤 실력 없는 기술자가 만든 인형 같은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실력으로는 안 돼!”
“나 같은 게 살아서 뭐 해.”
“그 성적은 순전히 운이었어.”
“죽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윽!
수많은 목소리가 그 몬스터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다른 목소리였지만 말하는 내용은 같았다.
끝없는 자기혐오.
권능으로 몬스터를 바로 비춰보았다.
[A급 보스 몬스터 조바심]
[어둠 속성]
[피루엣, 파 드 되, 절망]
[특이 사항 : 원형을 부숴라.]
이름만으로는 무슨 스킬인지 감도 안 오는데? 그리고 특이 사항은 또 왜 이래?
“인간형이면 좀 까다롭겠네.”
세빈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바심’이 무서운 속도로 돌며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뒤로 물러나자 녀석은 다리를 뒤로 쭉 뻗더니 다시 가볍게 통통 튀어 내게로 다가왔고 난 곧바로 자아를 겨눴다.
타앙!!
흰 구체가 조바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지만 녀석의 몸이 반으로 죽 갈라지는 바람에 내 공격은 뒤에 있던 단상만 부숴버렸다. 재빨리 실드를 만들어 막았지만 녀석의 날렵한 손날이 내게 닿는 것이 더 빨랐다.
지이익.
“악!”
날카로운 고통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조바심의 손끝이 내 팔뚝을 스치고 있었고 옷이 찢어지는 동시에 피가 튀었다.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은 게 처음이라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자아로 녀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까드득.
조바심은 난데없는 날것의 공격에 당황했는지 잠깐 움직임을 멈췄고, 그 틈에 녀석을 향해 흰색 구체를 날렸다.
티잉.
‘아, 빗맞았네.’
소리 탄환은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목을 스쳐 지나갔고, 동시에 조바심의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갔다. 목에 난 상처 틈새로 끈적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요!”
“난 살아선 안 되는 놈이야.”
“이러면 이 동작을 못 하잖아!!”
또다시 절망 섞인 문장이 귀를 파고들었고, 조바심이 온 관절을 꺾어가며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콰득.
그때 조바심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오더니 녀석의 사지를 꽁꽁 묶어버렸다. 조바심은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고 그림자를 향해 난도질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손들이 튀어나와 강하게 옭아맸다.
“지의야!”
“오케이!”
타앙!!
조바심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녀석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날아갔다.
“으…….”
다소 끔찍한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 역겨운 살 파편에 맞을까 봐 방패를 우산처럼 펼쳐서 썼다.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달성도 상승]
[14%]
우산으로 만들어도 달성도가 올라가다니. 기준이 후하네.
후드득.
녀석의 몸이 강당 바닥에 전부 떨어졌을 때쯤 한진우 헌터가 갈색 털 뭉치를 타고 둥실 날아왔다.
“아까 팔은 괜찮아요?”
“아, 네!”
‘그러고 보니 왜 지금은 안 아프지?’
아까 찢어졌던 오른팔을 내려다보자 옷에 핏자국이 살짝 남았지만 상처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언제 치료하신 거예요?”
“신지의 헌터가 공격받자마자요. 전 원거리 치료도 가능하거든요!”
한진우 헌터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방긋 웃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세요! 일격 한 번에 완전 끝내버리시다니!”
“세빈이가 찬스를 만들어준 거죠.”
세빈이 쪽으로 흘끔 시선을 건네자 예상 외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세빈이가 보였다.
“그런데 이 던전은 왜 보상이 하나도 없을까?”
하긴, 보상이 나오는 건 완전히 랜덤이라고는 했지만 하급 부산물 하나 나오지 않는 건 이상한 현상이다.
후드득.
의문이 해결되기 전에, 이리저리 흩어졌던 조바심의 몸들이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잠깐, 원형을 부숴라?’
권능으로 보았던 녀석의 특이 사항이 떠올랐다.
설마 본체가 다른 곳에 있는 건가?
뚝, 뚝, 뚝.
조바심은 이제 사람과 비슷한 형태가 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한곳에 모여 있었고 얼굴은 배에 붙었다. 원초적인 공포와 거부감이 척추를 타고 죽 올라올 무렵, 녀석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어…….”
참을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이 몸을 짓누른다. 팔과 다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내가 이걸 이길 수 있을까?’
조바심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광경이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펼쳐졌다.
“지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