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끼익, 끼익.
바람이 불 때마다 끼익거리는 철문과 찌르르 우는 벌레 소리. 눈앞에는 아까 보았던 학교의 건물이 흉흉하게 서있었고 창문에는 누군가의 손자국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던전 정말로…….
“맞네요! 공포 던전!”
“와, 진짜 으스스하네.”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저 둘의 배짱이 부러웠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서 운동장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한진우 헌터의 무기는 진짜로 신기했다. ‘행운의 토끼발’이라고 하는 갈색 털 뭉치는 한진우 헌터의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가끔씩 그의 어깨 위에 앉기도 했다. 얼굴만 없을 뿐이지 무슨 애완동물 같았다.
―추, 입증, 대, 주세, 요, 출입, 증을 대, 주―세―
“깜짝이야!”
건물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부서진 출입 패드가 잡음과 함께 겨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장을 지나쳐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후드득.
“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뒤를 돌아보자 학교 안에서 신을 법한 실내화 한 켤레가 떨어져 있었다.
“저 신발장에서 튀어나온 것 같네요.”
“몬스터……?”
세빈이가 한 손으로 허공을 잡자 사물함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와 실내화를 움켜쥐었고 그대로 찢어버렸다.
툭.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실내화는 바닥 위로 힘없이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후두두두둑.
소름 끼치는 비명이 1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열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그 비명 소리가 잦아들 때쯤 신발장 문이 일제히 열렸고 똑같이 생긴 실내화가 우수수 떨어졌다. 실내화들은 스스로 저벅저벅 걷더니 우리를 향해 일렬로 섰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이 우리에게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철컥.
자아의 방아쇠에 손을 걸고 바로 사물함을 향해 겨눴다.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실내화들이 총알처럼 튀어올랐다.
쿵!
한진우 헌터가 만들어낸 모래성이 실내화들의 움직임을 1차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댐이 무너지듯 그 단단한 흙을 뚫고 실내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탕!!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실내화들을 향해 소리 탄환을 쏘자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그것들이 물에서 건진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쉬이익.
그 후에 곧바로 그림자가 그것들을 한 번에 쓸어 담았고 세빈이가 실내화의 틈으로 몸을 날렸다.
서걱.
세빈이의 검이 새카만 궤적을 남기며 실내화를 품고 있던 그림자를 반으로 갈랐다. 군더더기 없는, 정말 깔끔한 움직임이라는 것쯤은 전투 경험이 별로 없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촤아아.
‘으, 피비린내.’
반으로 가른 그림자의 틈으로 실내화의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대박, 저 신지의 헌터 스킬 처음 봤어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던전 같이 온 게 처음이네요.”
“이 확성기가 무기예요? 헐, 방아쇠도 달렸네. 총 같아요! 완전 대박이다~”
리액션이 장난 아니네.
한진우 헌터는 눈을 빛내며 쉬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자꾸 띄워 주면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지.
“지의야, 게이트 위치 보여?”
“아, 맞다.”
그때 세빈이가 칼에 묻은 피를 털며 내게 다가왔다. 길을 비추는 자 위의 보름달 장식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내 화살표로 변했고, 계단 위쪽을 가리켰다.
“이대로 따라가라는 거 같지?”
“그렇네.”
“진짜 편한 아이템이네요.”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비쌌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건 확실한 것 같네.
실용음악과
길을 비추는 자가 알려준 대로 계단을 올라가자 실용음악과 교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 깨진 교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가지런히 놓인 책상과 사물함이 얼핏 보였고, 교실 바닥에는 부서진 기타나 커다란 스피커 같은 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석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쉬익!
착각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고 나를 향해 맹렬히 날아오고 있었다.
탕!
뱀같이 생긴 케이블 선이 쩡, 하는 소리를 내며 자아로 뽑아낸 두꺼운 실드에 부딪혔다.
콰앙!
몸을 파르르 떨며 괴로워하는 케이블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검은 가죽과 전선들이 찢겨 나갔다.
“와… 깜짝이야.”
“괜찮아?”
“어. 몸에 닿지도 않았어.”
세빈이를 안심시킨 후 떨어진 부산물을 들었다.
[아이템 획득]
[케이블선 / 부산물]
[아이템 설명 : 목을 매도 될 만큼 튼튼한 케이블선]
‘설명이 왜 이래.’
잠깐의 소동 이후 다시 길을 비추는 자에 의존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이 높아서 계단을 오르는 데도 한참 걸렸다.
이쯤 되면 누가 밑에서 계단을 더 밀어주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키이잉.
“어?”
“왜 그러세요?”
“얘가 갑자기 위치를 못 잡아요.”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길을 비추는 자의 화살표가 핑그르르 돌았다.
쿠르릉.
“응? 으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딛고 있는 계단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내 몸도 밑으로 떨어졌다.
‘디딜 곳이 없으니까 발 없는 말을 쓸 수도 없고……!’
일단 바닥을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아주 잠깐 동안 몸을 띄웠다.
쉬익.
“켁!”
그때 벽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손이 내 허리춤을 낚아채 그대로 끌어 올렸고, 덕분에 내장이 뒤집히는 감각과 함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아팠지, 미안.”
“떨어져 죽는 것보다야 낫지…….”
세빈이는 벽을 딛고 서서 나를 향해 울상을 지어 보였다. 아이템 때문인지 스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광경이다.
세빈이의 그림자 손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벽에 선 상태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계단은 물론이고 아까까지 우리가 서있던 복도 바닥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잠깐, 한 사람 부족한데.
“한진우 헌터는?”
“저 여기 있어요오~”
어둠 속에서 한진우 헌터의 목소리와 함께 핑크색 뒤통수가 보였다. 한진우 헌터는 자신의 무기에 올라탄 채로 유유히 올라오고 있었다. 당황할 법도 한데 그는 언제 어디서나 아이돌 페이스를 유지했다.
“일단 옆으로 이동할게요. 저쪽 바닥은 안 부서진 것 같아서.”
세빈이는 태연하게 벽을 걸어갔고 나도 인형 뽑기 집게에 걸린 인형처럼 힘없이 복도 안쪽으로 끌려갔다.
‘여기도 꽤 많이 무너졌네.’
가장 끝 쪽으로 가고 나서야 멀쩡한 바닥이 나왔다. 그림자가 천천히 나를 내려주었고, 뒤따라오던 한진우 헌터도 행운의 토끼발에서 내렸다. 그의 무기는 다시 아까의 크기로 돌아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위치 다시 한번 볼게요.”
길을 비추는 자는 어느새 새로운 길을 찾은 건지 아까처럼 화살표를 만들어 복도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끝 쪽에 또 다른 계단이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공포 체험하는 것 같네.”
“그쵸! 마음 같아선 영상이라도 찍고 싶어요!”
“둘 다 참 겁도 없지.”
세빈이와 한진우 헌터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눴다.
‘뭐, 한진우 헌터야 공포 마니아라고 치고, 세빈이도 원래 이렇게 겁이 없었나?’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무서운 걸 조금 잘 보는 정도였지, 이렇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가끔 숨어있다가 놀래면 놀라기도 했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세빈이는 이곳을 돌아다니는 내내 산책하는 양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긴, 그동안 세빈이가 겪은 풍파에 비하면 이런 건 무서운 축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
퉁, 퉁, 퉁.
계단 손잡이가 보일 때쯤 무언가가 통통거리며 튀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머리만 있는 조각상들이 계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미술실에서 자주 볼 법한 흔한 조각상이었다.
“…몬스터겠지?”
“그래 보이네.”
세빈이는 자신의 검을 고쳐 쥐고 엎어져 있는 조각상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조각상에 꽂혀 있는 동안 나는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A급 몬스터 세 사람의 초상]
[어둠 속성]
[내려찍기, 가두기, 나이프 뱉기]
[특이 사항 : 세 사람의 초상이 웃기 시작할 때 공격을 하면 그 공격을 사용자에게 그대로 반사시킨다.]
‘이 자식도 공격 반사 스킬을 쓰는군.’
그때 갑자기 천장에서 커다란 캔버스가 떨어지더니 그대로 조각상 머리를 집어삼켰다.
까드득, 까드득.
비명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가 한참 이어지다 캔버스가 우리를 정면으로 보고 섰다. 흰 캔버스에 똑같이 생긴 조각상 머리 세 개가 붉은 물감으로 그려져 있었다. 무표정하던 조각상의 얼굴이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이내 입을 쩍 벌렸다.
“끼야아아아아아아!!
아까와 같은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캔버스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뀌기 전에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