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8화 (18/366)
  • 18화

    【제일 예술고등학교】

    ―속보입니다. 지난밤 새벽 네 시 사십사 분, 강원도 원주의 한 폐교에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헌터 협회 김강희 협회장은 A급 던전이라 발표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파견 팀을 보내 던전을 관리할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게이트 등장 시간을 두고 귀신이 던전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현 기자입니다.

    “오싹하지 않나요?”

    한진우 헌터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협회 카페에 있는 뉴스 스크린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틀림없어. 저 던전 안에 녹두가 있다.’

    난데없이 어젯밤에 사명 늑대의 동반자가 반응했다. 그리고 그 후에 바로 저 던전이 등장했고. 의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제가 사실 며칠 전에 이런 걸 봤거든요.”

    “뭔데요?”

    그때 한진우 헌터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량량의 오컬트 저장소

    괴담이나 미스터리 게시글들을 모아놓은 SNS 계정 같은데, 팔로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어디 보자, 가장 최근에 올린 게… 그저께네.’

    흑백의 학교 사진과 함께 ‘[단편] 제일 예술고등학교’라는 글자가 있었고 밑에는 개인 블로그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링크를 누르니 평범한 블로그 화면이 떴고 한가운데에 긴 글이 주르륵 떴다.

    “이 제일 예술고등학교가 지금 게이트 열린 학교예요.”

    “아, 진짜요?”

    “네! 일단 얼른 읽어 보세요!”

    한진우 헌터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고개를 내렸다.

    [단편] 제일 예술고등학교

    제일 예고 폐교한다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글 씀…….

    아마 원주 사는 애들이면 다 알 텐데 제일 예고가 강원도에선 꽤 알아주는 예고 중 하나임.

    여기 실용음악과, 연영과, 디자인과, 현대무용과 있고 그중에서 무용과가 제일 셈.

    매년 경쟁률 ㅈㄴ 박터져서 합격한 애들 자부심 개쩔어ㅋㅋㅋㅋ

    암튼 나는 제일 예고 디자인과 졸업했고 우리 학교에서 유명했던 소문 하나 얘기해 보려고 글 씀. 인증 가능하니까 주작이라고 하지 좀 마라 ㅅㅂ

    우리 학교 1층은 교무실만 있고 2층부터 5층까지 차례대로 실용음악과, 연영과, 무용과, 디자인과 교실이 있었음. 4층이 무용과 교실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귀신 봤다는 소문이 많았음.

    그중 가장 오래된 소문이 ‘새벽 4시 44분에 무용과 제1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면 거울 속에 있던 귀신이 함께 춤을 춘다’였음. 솔직히 여느 학교에나 있는 그런 소문인가 했는데 내가 이게 진짜라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음.

    우리 학교 무용과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진짜 이 새끼는 미쳤다;; 싶을 정도로 춤을 잘 추는 애가 한 명씩 나오는데 그 애들은 항상 졸업하기 직전에 사고나 자살로 죽었음. 내가 3학년이었을 때도 같은 학년 무용과 남자애가 그런 미친놈이었음.

    전국 대회 다 휩쓸고 다니고 얼굴도 ㅈㄴ 예뻐서 극단이랑 기획사들한테 명함 엄청 받고 그랬음. 그 파피용네 소속사도 얘한테 명함 주려고 함.

    암튼 10월이었나? 학교에 핸드폰 두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미 학원 버스 타고 난 후라서 학원 다 끝나고 학교로 다시 갔었음. 그때가 11시였고 경비아줌마랑 같이 교실까지 갔음;;; ㅈㄴ 무서웟으니까;;;;

    디자인과는 5층이니까 어쩔 수 없이 무용과 연습실을 지나쳐야 하는데 4층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리는 거임. 그래서 아줌마랑 나랑 교실 가다 말고 소리 나는 쪽으로 같이 갔고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그 남자애를 봤음.

    근데 이게… 아무리 무용과 애들이 유연하다고 해도 관절이 사방팔방으로 꺾일 수는 없잖슴? 근데 걔는 정말로 온몸의 관절이 다 꺾인 상태로 정체불명의 춤을 추고 있었고 노래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섬뜩한 오르골 노래였음;;; 그리고 춤추다가 애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비명까지 지르는 거임;;

    나랑 경비아줌마랑 둘 다 개쫄아 있다가 결국 경비아줌마가 연습실 문 열었고 동시에 그 남자애가 멀쩡하게 돌아왔음. 밤늦게까지 뭐 하는 거냐고 아줌마가 뭐라 하니까 얘도 자기가 뭐 하고 있었는지 까먹은 것처럼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짐 싸서 나갔음. 그때 진짜 지릴 뻔했는데 여차저차 핸드폰 찾아서 집으로 오긴 함.

    아니나 다를까, 얘도 결국 12월쯤에 자살했고 학생들 사이에선 ‘그동안 죽은 무용과 천재들은 전부 귀신이 들렸다’라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됐음.

    그런 소문이 퍼지니까 당연히 입학하려는 신입생 수도 줄었고 몇 년 전에 학교 문 닫았음. 그때 내가 본 게 그 남자애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귀신이 들린 남자애인 건지 아무것도 알 수는 없었지만 기묘하게 꺾인 그 몸만큼은 아직까지 눈앞에 선함.

    글 어떻게 끝내야 하지? 난 간다 ㅃ2

    “음… 섬뜩하네요.”

    “그쵸? 솔직히 지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그런 소문이 있는 곳에 생긴, 그것도 새벽 네 시 사십사 분에 생긴 던전이라니…….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한진우 헌터는 양손을 꽉 쥐며 온몸으로 자신의 의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내 풀이 죽어 테이블 위로 고개를 푹 묻었다.

    “마음 같아선 회장님한테 직접 가서 보내 달라고 하고 싶어요…….”

    “어, 헌터 인트라넷 확인 안 하셨어요?”

    “앗! 강세빈 헌터!”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자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세빈이가 있었다. 세빈이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곤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원주 A급 던전 이번에 저희 셋이 파견 가는 걸로 결정됐어요.”

    “헉, 진짜요?! 대박!”

    “정말로?”

    인벤토리에서 업무용 핸드폰을 허겁지겁 꺼내 헌터넷을 켜자 알림창이 반짝이고 있었다.

    [파견 업무 1건 배정되었습니다.]

    [위치 : 강원도 원주 A급 던전(신규)]

    [날짜 : 4월 23일 오후 11시]

    [파견 팀 : 신지의(SS급), 강세빈(S급), 한진우(S급)]

    ‘나이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파견 요청이 안 들어왔으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야 했을 텐데, 다행히 타이밍이 제대로 맞아들었다.

    “지의야, 괜찮겠어?”

    “응? 뭐가?”

    “너 귀신 무서워하잖아.”

    “아.”

    그게 문제네.

    좀비 영화나 고어 영화는 어떻게든 참으면서 봐도 귀신이나 으스스한 분위기는 좀 힘들었다.

    “어쩌겠어. 그냥 가야지.”

    “아! 강세빈 헌터. 이거 보셨어요? 저 던전이랑 똑같은 괴담이 있거든요~”

    한진우 헌터가 아까 내게 보여 준 그 괴담을 세빈이에게도 보여 주었다. 한껏 신이 난 그는 평소보다 말이 두 배는 더 빨라졌고, 덕분에 병아리가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세빈이는 흥미로운 얼굴을 하고 핸드폰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괴담 던전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등장할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소문 던전이라든가.”

    “몬스터가 귀신이면 어떨까요? 어떡해. 진짜 재밌겠다!”

    솔직히 조금 긴장됐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소환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렜다.

    세빈이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열한 시에 게이트 앞에서 봬요.”

    * * *

    넓은 밭과 비닐하우스를 지나자 커다란 운동장을 둘러싼 적갈색 벽돌담이 보였다.

    제일 예술고등학교

    담벼락에 명패가 붙어 있었지만 글자 몇 개가 마모되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차가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컨테이너 박스 바로 앞에 섰고, 난 운전기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차에서 내렸다.

    “후…….”

    소문의 그 제일 예고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흰 콘크리트 건물엔 똑같은 모양의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창문의 대부분은 처참하게 깨져 있었다. 망가진 잠금장치가 달린 문 너머에 쓰러진 신발장들이 보였고, 100퍼센트 기분 탓이겠지만 누군가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휘잉.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풀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다.

    빨리 들어가야지.

    “어서 오세용~!”

    “안녕하세…요?”

    한진우 헌터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깔끔한 흰 티셔츠와 일자 청바지에 컨버스화, 여기까지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손에 아까 보지 못한 갈색 털 뭉치가 있었다.

    “동물…이에요?”

    “이거 제 무기예요!”

    “이게 무기라고요?!”

    무심코 권능을 쓸 뻔했다가 손을 거둔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한진우 헌터의 손에 들린 건 배구공만 한 갈색 털공이었다. 좀 특이하게 생긴 파우치면 모를까, 무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름은 행운의 토끼발! S급 부메랑이에요.”

    “신기하네요…….”

    한진우 헌터가 털공을 꼭 끌어안으며 환하게 웃자 양 볼에 예쁜 보조개가 생겼다.

    우웅, 우웅.

    “앗, 죄송해요. 잠깐 전화 좀 할게요.”

    한진우 헌터가 핸드폰을 귀에 대며 구석으로 발을 옮겼고 난 뒤에야 눈앞의 게이트가 보였다. 학교 대문처럼 보이는 철문이었다. 보통 게이트의 모습은 던전 전체의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아무래도 학교 배경으로 뭔가 벌어지긴 할 건가 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진짜요? 흐음… 그럼 라디오 스케줄을 먼저 하고…….”

    매니저와 일정을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는 한진우 헌터를 향해 창조자의 눈동자를 만들었다.

    [한진우(26) S급]

    [대지 속성]

    [S급 치유계 스킬 ‘약손’ : 상대방의 물리적 상처를 대폭 치료하는 나뭇잎을 소환한다. 사망한 사람의 소생은 불가능하다.]

    [A급 함정계 스킬 ‘진흙’ : 지정된 구역을 진흙으로 만들어 상대의 움직임을 저해한다. 흙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A급 함정계 스킬 ‘모래성’ : 상대를 일시적으로 모래성 안에 가둔다.]

    [귀속 무기 : S급 부메랑 ‘행운의 토끼발’, 귀속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무기는 상황에 따라 크기를 키우거나 줄일 수 있으며 비행이 가능하다.]

    [무기 비문 :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예술입니다.]

    확실히 보조에 특화된 스킬들이 많았다. 죽어 가는 사람들도 금세 멀쩡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기 스킬 약손, 사실 쓸 일이 없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일단 같이 있는 것만으로 꽤 든든했다.

    무기 비문은… 이게 무기인지 한진우 헌터의 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컨테이너 문이 열리더니 세빈이가 부지런히 들어왔다. 한진우 헌터는 통화를 하면서 꾸벅 인사를 했고 나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얼마 안 있어 한진우 헌터가 전화를 끊었고, 정체불명의 A급 던전을 탐험할 세 사람이 모두 모였다.

    “그럼 얼른 가요!!”

    한진우 헌터가 특유의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게이트를 밀었다. 우리는 풀벌레 우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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