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7화 (17/366)
  • 17화

    “…실전 훈련해 보셨습니까?”

    “네?”

    “헌터들끼리 하는 훈련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죠.”

    차도윤 헌터는 트레이닝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을 돌리더니 고개만 돌려 말을 덧붙였다.

    “시간 되시면 지금 저랑 하시죠.”

    내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오기까지 딱 3초가 걸렸다. 저 말이 결국 ‘현피 뜨자’의 고급스러운 표현이라는 걸 이해하는 데 1초,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데 1초, 그리고 결론을 내리는 것에 1초.

    “네, 지금 가요.”

    ‘싸우면서 클 나이는 지났지만.’

    그래도 차도윤 헌터의 전투 스타일이나 성격을 조금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방긋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차도윤 헌터는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몰래 손가락을 들어 권능으로 그를 살폈다.

    [차도윤(26) S급]

    [바람 속성]

    [S급 공격계 스킬 ‘천재지변’ : 번개와 폭풍을 소환하여 특정 영역에 있는 대상을 공격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자연의 숨결’ :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한다.]

    [B급 치유계 스킬 ‘하늬바람’ : 특정 영역에 치유의 바람을 불게 한다.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회복 속도가 오른다.]

    [귀속 무기 : S급 국궁 ‘나팔꽃’, 귀속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바람을 잡아 화살로 쓸 수 있다.]

    [무기 비문 : 그곳에서 구원을 찾지 마세요.]

    ‘무기 비문이 조금 마음에 걸리네.’

    구원을 찾지 말라니. 차도윤 헌터는 무슨 구원을 바라는 것이며, 그것을 어디서 찾고 있길래 무기가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로봇 대신 사람 직원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겼고 ‘실전 훈련실’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실전 훈련실엔 생각보다 많은 헌터들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무언가 터지고 깨지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유리벽은 던전 부산물이라도 발랐는지 금 하나 가지 않고 멀쩡했다. 직원이 우리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와 차도윤 헌터를 번갈아 보았다.

    “실전 훈련에 대해 간단한 주의사항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레이닝실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공격 목적의 스킬도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공격은 맨손으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외 목적의 스킬 사용은 괜찮습니다. 7분간 진행하고, 혹시 그전에 먼저 체력이 떨어지면 말씀하세요.”

    차도윤 헌터가 말을 덧붙이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그대로 훈련실을 나갔다. 결국 때리는 건 맨손으로 하되 방어나 이동용으로는 스킬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가방을 구석에 던져 두고 차도윤 헌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마주 보고 섰다.

    ‘쫄지 말고, 그냥 해보자.’

    “그럼 버튼 누르겠습니다.”

    “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에 있는 화면에 시간이 떴고 3초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셋, 둘, 하나.

    퉁!!

    “윽!”

    차도윤 헌터가 총알처럼 내 쪽으로 날아오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목소리를 내 공기를 진동시켰다. 파동이 실드처럼 내 몸을 보호했다.

    우우우우웅.

    힘을 주어 버티자 파동 실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후웅.

    차도윤 헌터의 주먹을 옆으로 흘리며 중심을 살짝 흔들었다.

    퍼억!

    중심이 살짝 앞으로 기운 차도윤 헌터의 어깨를 주먹으로 힘껏 치자 옅은 신음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나를 밀쳐냈다. 뒤로 굴러서 금방 중심을 잡은 난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내 주변을 전부 실드로 감쌌다.

    “주먹이 제법 단단하시네요.”

    “그런 편이죠.”

    차도윤 헌터의 주변으로 바람이 불자 금색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위로 붕 뜬 그가 아까와 같은 속도로 맹렬히 달려들었다.

    쾅!!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차도윤 헌터의 공격이 번개처럼 쏟아져서 ‘발 없는 말’로 피하기도 급급했다. 매번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었고 눈으로 공격을 좇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요령은 없지만요.”

    “엑? 우아악!”

    그때 갑자기 몸이 뒤쪽으로 기울며 그대로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파할 새도 없이 차도윤 헌터의 발이 나를 향해 왔고, 일단 실드부터 펼쳤다.

    “스킬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사람 같은데, 도대체 왜?”

    “저기요, 뚫린 입이라고 자꾸 맘대로 말할래요?”

    “회장님이 당신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요!”

    파지직.

    ‘열등감이구나.’

    차도윤 헌터의 말을 찬찬히 곱씹자 그가 무엇 때문에 나한테 성질을 내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왜 SS급이라는 게 나타나서……!”

    내가 회장님의 애정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이도 나보다 많으면서 왜 그러냐.’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마음이 넓은 내가 참자. 차도윤 헌터 목숨 제대로 구하고, 종말까지 무사히 막으면 그때 생색 좀 내지, 뭐.

    끼기긱.

    실드가 결국 깨지고 차도윤 헌터의 주먹이 내 팔을 가격했다. 묵직한 고통이 팔을 타고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그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차도윤 헌터가 다른 손으로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 손도 함께 잡아버렸다.

    “머리 좀 식히세요!!”

    바닥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약하자 나와 차도윤 헌터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그가 당황한 틈을 타 양 손목을 내 쪽으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무릎으로 복부를 쳐올렸다.

    쿵!

    집어던지다시피 손목을 놓자 꽤 큰 소리를 내며 차도윤 헌터의 몸이 떨어졌다. 난 차분하게 착지했지만 아까 맞은 왼팔과 실드를 지탱했던 손목은 여전히 얼얼했다.

    제대로 된 유효타였다.

    연계 공격에 차도윤 헌터의 얼이 완전히 나갔다.

    “S급이면 어떻고 SS급이면 뭐 어때요. 결국 한마음 한뜻으로 사람들 보호하는 헌터들인데.”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말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어?’

    자아한테 딸려 있던 발언력 기능이 갑자기 발동됐다. 조금 당황스러운 타이밍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걸 기회로 삼아서 말의 씨앗까지 심어버리자.

    “사이좋게 지냅시다, 네?”

    “…….”

    “어쩌면 앞으로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잖아요.”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오케이, 거의 다 왔다.

    난 애써 웃어 보이며 차도윤 헌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등급에 연연하지 말고 동료로서 잘 지내봐요, 우리.”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차도윤’이 동요한다.]

    그래. 조금만 더……!

    투쾅!!

    “윽!”

    훈련실 전체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실내인데도 구름이 꼈고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내부가 어두워졌다. 폭풍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다. 실드로 온몸을 감싸봤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벽으로 밀려났다. 뜨기 힘든 눈을 겨우 뜨고 차도윤 헌터를 보자 그가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발언 결과 : 비참]

    ‘어째서?!’

    내 발언에 도대체 무슨 문제라도 있던 거야?! 비참함을 느낄 구석이 어디 있었다고?

    저벅.

    폭풍을 뚫고 차도윤 헌터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피가 나올 정도로 깨문 입술, 창백해진 피부. 그의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분노와 슬픔 그 어드메를 헤매고 있었다.

    “당신한테 그런 입에 발린 소리 들어봤자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

    “어차피 회장님의 흥미는 당신에게로 넘어갔고 저는 이미 잊혔습니다.”

    ‘내가 문제구나.’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열등감을 느끼는 상대가 하는 말이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빨리 동료가 되겠다는 욕심이 앞서 차도윤 헌터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이기적이었네.’

    콰과과광!

    “큿……!”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이제 다리도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겨우 버티던 실드도 산산조각 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일단 스킬부터 거두고! 우리 말로 합시…….”

    쿵!

    “어?”

    그때 차도윤 헌터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이 그의 몸을 단단히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고, 얼마 안 있어 바람이 멎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차도윤 헌터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덩달아 나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훈련 중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차도윤 헌터.”

    “으읏!”

    “세빈아!”

    훈련실 문이 열리거나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세빈이가 나와 차도윤 헌터의 사이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분명 같은 S급인데도 세빈이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때 던전에서 한 번 봤을 때도 엄청난 스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에게 직접 쓰는 걸 보니 그 위력이 더욱 크게 보였다.

    세빈이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자 뚜렷한 눈썹뼈 사이 한껏 구겨진 미간이 보였다.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실전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지의 헌터와 겨뤄 보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규정대로라면 징계감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기를 바랍니다.”

    검은 손이 다시 차도윤 헌터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몸의 자유를 얻자마자 차도윤 헌터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튀어나왔다. 손이 붙잡고 있던 차도윤 헌터의 뒷목에는 새빨간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의야, 괜찮아?”

    “어, 어…….”

    세빈이는 다시 내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빈이가 내 몸 이곳저곳을 살필 동안 나는 힘없이 걸어가는 차도윤 헌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회장님의 흥미는 당신에게로 넘어갔고 저는 이미 잊혔습니다.”

    떨리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차도윤 헌터와 친해지려면 일단 그에게 회장님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차도윤 헌터는 훈련실을 빠져나가 이내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 보니 훈련실 주변에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S급이랑 SS급이 실전 훈련한다고 구경하러 온 건가, 아니면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지켜보러 온 건가.

    전자든 후자든 저들의 시선은 영 불편했다.

    “많이 놀랐지?”

    “아니, 뭐……. 그나저나 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세빈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눈을 접어가며 활짝 웃었다.

    “어물쩍 넘어가려고, 또.”

    그림자 하나로 S급 헌터를 제압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해사한 미소였다.

    * * *

    ‘도윤이 진짜 왜 그렇게 된 걸까.’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갑자기 자아가 중얼거렸다.

    ‘…내가 회장님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긴, 도윤이는 전에도 그랬으니까.’

    권력의 개 같은 느낌은 없었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나?

    이불을 끌어 올리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명>

    [늑대의 동반자]

    [동반자를 성장시켜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1%]

    파박.

    “어, 어어?!”

    갑자기 눈앞에 뜬 상태창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뭐야, 왜 올랐어?!’

    자아도 덩달아 같이 놀라 내 앞에 모습까지 드러냈다. 사명 ‘늑대의 동반자’가 난데없이 반응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어딘가에 녹두가 나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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