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6화 (16/366)

16화

【현피 금지】

“훈련 메뉴는 헌터 인트라넷에서 확인해 주세요! 트레이닝 룸 B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안전을 위해 무기 사용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협회 직원은 나를 트레이닝 룸으로 안내해 준 후 다시 데스크로 돌아갔다.

‘제법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키네.’

신체 등급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누구든 훈련 시간을 채워야 했고, 그 때문에 나는 한창 육상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트레이닝룸 앞에 있는 인식기에 손가락을 찍자 문이 열렸고 시원한 공기와 함께 근력기구와 러닝머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가 놓인 또 다른 방도 있었다.

갈아입을 옷을 담아둔 가방을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스트레칭을 하자 모든 관절 마디마디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잘 지내시려나.’

훈련 비용 때문에 내가 육상을 관둔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던 사람이었다. 훈련 비용을 직접 대주겠다고까지 말했지만 누구한테 신세를 잘 못 지는 성격이라 결국 그대로 학교를 졸업해야만 했다. 약간 추억에 젖은 채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허억, 헉, 하…….”

기초 체력 훈련을 10킬로미터 달리기로 끝냈다. 고문기구와 같았던 러닝머신이 멈추자마자 그대로 바닥 위로 뻗었다.

‘이제 어디 가서 운동했다고 하지 말자. 절대로.’

물 마실 힘도 없어서 한참을 굴러다니다 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시계를 보자 어느새 시간은 열두 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간단하게 뭐라도 먹을 생각으로 샤워실에서 대충 몸을 씻은 후 핸드폰만 챙겨 트레이닝실 밖으로 나왔다.

협회 건물 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직장인의 틈새에 껴 겨우 냉장고 앞으로 발을 옮겼다. 치킨샌드위치를 집어 계산하자마자 운 좋게 창가 자리가 하나 생겼다.

“어.”

그때 창밖으로 최민 헌터가 보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감정 없는 얼굴을 한 그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이따금씩 입술을 씹었다.

‘아, 짭권능으로 한번 보자.’

지금이야말로 최민 헌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그를 비춰 보았다.

[최민(??) S급]

[불 속성]

[S급 방어계 스킬 ‘방공호’ : 불로 된 방공호를 만든다. 방공호 내부는 정신적, 물리적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시간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연계 패시브 스킬 ‘염제(炎帝)’ : S급 미만의 화상 피해에 면역이 생긴다.]

[A급 공격계 스킬 ‘수라의 무(舞)’ : 불을 자유자재로 출력할 수 있으며, 신체의 일부를 불로 바꿀 수 있다.]

[귀속 무기 : S급 너클 ‘프라타파나’, 귀속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스킬 출력 위치의 정확도를 높인다.]

[무기 비문 : 이 생명까지 불태울 순 없을 것이다.]

방공호, 설명을 직접 보니 더 말도 안 되는 스킬이었다.

바깥의 상황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단점이지만 일단 저 스킬 안에만 있으면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라는 거잖아. 공격계 스킬도 엄청 쓸 만해 보이고.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나이가 안 보이네.’

10년간 방공호 안에서 잠들어 있던 게 나이에까지 영향을 미쳤나 보다. 최민 헌터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글자도 사라졌고, 찝찝한 마음과 함께 손가락을 내렸다.

* * *

―안녕하세요, 신지의 님. 저는 스킬 훈련 인공 지능 도우미 나루입니다. 지금부터 스킬 훈련 가이드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트레이닝실 안에 있는 스킬 훈련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운데에 있던 커다란 기계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긴 건 무슨 업소용 냉장고처럼 생겼는데 나름 ‘나루’라고 하는 이름까지 있는 게 어색했다.

나루는 흰 벽에 교육용 책자에서 볼 법한 일러스트를 띄웠다.

―스킬 훈련은 회피, 공격, 방어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느 부분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회피요.”

―회피 훈련은 던전에서 몬스터의 공격을 유연하게 피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홀로그램 몬스터들의 공격을 스킬을 이용하여 피해주세요. 홀로그램 몬스터들은 신지의 님의 스킬을 인식하여 각 공격에 대한 회피 점수를 계산합니다. 7분 동안의 평균 점수가 70점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 주세요. 시작을 원하시면 ‘훈련 시작’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결국 무기 없이 어떻게든 피해 보라는 말이군.’

지금까지 몬스터들의 공격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낙법으로 피했는데, 이젠 바뀔 때가 되었다. 깊게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훈련 시작.”

―훈련을 시작합니다. 7분 타이머 시작.

지이잉.

홀로그램으로 된 곰이 반투명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내게 달려들었다. 일단 옆으로 피했지만 곰의 몸집이 나보다 훨씬 큰 터라 여전히 공격 사정거리 내였고, 곧바로 곰의 발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물론 홀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이게 실전이었으면 이미 내 목은 날아갔을 것이다.

[평균 회피 점수 : 2점]

“아예 0점도 아니고 2점인 게 사람 묘하게 열받게 하네?!”

후웅.

“우왁!”

갑자기 내리찍힌 양귀비의 촉수 때문에 비명을 지르자 공기가 진동하는 동시에 몸이 뒤쪽으로 밀려났다.

[평균 회피 점수 : 46점]

점수가 급격히 올라갔다.

‘소리가 엔진 역할을 해주는 건가?’

콰앙.

“이야악!!”

꼬라지가 좀 웃기지만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홀로그램 몬스터의 반대편으로 몸을 피했다.

[평균 회피 점수 : 89점]

[평균 회피 점수 : 91점]

공격이 오는 쪽으로 소리를 지르고 반대 방향으로 도약하면 더 빨리 피할 수 있다는 게 아무래도 내 회피의 핵심인 것 같았다. 비록 피할 때마다 소리를 내야 하고 공격이 어느 쪽으로 오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히 깔끔한 회피 방법이었다.

땡.

―훈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신지의 님의 평균 회피 점수는 90.12점입니다.

훈련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는 동시에 내 눈앞에 갑자기 글자들이 떠올랐다.

[스킬 개방]

[C급 이동계 스킬 ‘발 없는 말’]

[스킬 설명 : 사용자의 목소리를 사용해 단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대박, 진짜 생기네.”

고유 스킬을 연마하다 보면 다른 스킬도 생긴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등급 자체는 고유 스킬에 비해 매우 낮았지만 새로운 스킬이 개방됐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상태창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스킬 이름이 좀 별론데.’

어이없는 스킬명 때문에 감상 타임은 금방 끝났다.

공격과 방어 훈련은 회피 훈련보다는 쉬웠다. 파괴력 하나는 끝내주는 내 고유 스킬 덕분에 몇 번 소리만 지르면 평균 공격 점수가 100점에서 내려오질 않았고, 홀로그램 몬스터들도 낙엽처럼 힘없이 공중분해되었다.

방어 훈련에서도 목소리로 공격들을 무력화시키니 80점을 금방 넘겼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욱신거리는 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이제 방어 훈련의 마지막 세트만을 남겨 둔 상황이라 없는 힘 있는 힘 다 끌어모아야만 했다.

[돌발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몸빵]

[공격을 막아라. 그게 어떤 형태든.]

[보상 : ‘호령여산(號令如山)’의 방어력 상승]

마침 돌발 지령까지 내 성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방어 훈련 마지막 세트 시작하겠습니다.

“네~”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자세를 잡고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홀로그램 거미를 향해 짧게 소리를 냈다. 그러자 새하얀 파동이 실드처럼 내 앞을 가로막았고, 실드에 부딪힌 거미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평균 방어 점수 : 92점]

차곡차곡 올라가는 점수를 보자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남은 2분 동안 쉬지 않고 소리를 만들어 냈다.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몸빵]

[보상 : ‘호령여산(號令如山)’의 방어력 상승]

샤워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새 다섯 시였다. 배 속이 뭐 좀 먹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긴, 그 샌드위치 하나 먹고 물밖에 안 먹었네.’

저녁 메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1층 로비로 나오자 안내 데스크 앞에 서있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아.”

“아, 안녕하세요.”

“네.”

차도윤 헌터다. 공식적인 행사라도 있었는지 흰색 셔츠에 정장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어,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신지의 헌터도 있었군.”

“안녕하세요.”

차도윤 헌터 뒤에 서있던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회장님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만남에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자 회장님이 시원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훈련 때문에 왔나?”

“네. 방금 끝나서 이제 집에 갈 예정입니다.”

“그렇군. 아, 그러고 보니 서로 인사들은 다 했나?”

“지난주에 인사 나눴습니다.”

차도윤 헌터가 회장님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고, 그 상태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볍게 숙였다.

‘원래는 저런 성격인 건가?’

이번 시간선은 뭐가 문제길래 왜 나한테만 싸가지가 없어진 거야?

“그러고 보니 신지의 헌터, WHDB에 등록된 이름이 꽤 인상적이더군.”

“아, 하하하…….”

“구세주였죠?”

차도윤 헌터가 날 살짝 내려다보곤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

“이제 DF 순위보단 던전에서의 생존력을 더 높게 평가한다고 하더라고요.”

‘열등감까지…….’

어금니를 깍 물고 나도 살짝 웃었고 차도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회장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튼 신지의 헌터에겐 솔직히 기대가 커.”

인사치레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장님은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할 동안 곁눈질로 차도윤 헌터를 보자 표정이 꽤 볼만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눈은 이미 안 웃은 지 오래다.

“그럼 난 가보겠네. 좋은 저녁들 보내고.”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회장님이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에 올라타자마자 차도윤 헌터가 얼굴을 구겼다. 얼른 친해져서 말의 씨앗을 심고, 개화까지 시켜서 내 진짜 동료가 되면 정말 좋을 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친해지긴커녕 완전히 웬수가 되기 직전이다.

“너무 들뜨진 마세요.”

“…네?”

“누구에게나 해주시는 말입니다. 괜히 들뜰 필요 없다고요.”

이젠 예의를 차릴 생각조차 하지 않나 보다. 차도윤 헌터는 꽤 차가운 말투로 내게 말했고, 나도 다 들으라는 식으로 한숨을 크게 쉬며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

“…….”

고립돼서 죽었다길래 이 반지까지 샀더니만 돌아오는 게 저런 싸가지라니. 억울해서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차도윤 헌터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실전 훈련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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