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4화 (14/366)
  • 14화

    쿠과과광!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전기가오리가 밑으로 전기를 뿜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그림자가 진 곳이 흰 전류로 가득 찼다.

    일 초라도 늦게 도망쳤으면 분명 저 전기를 맞고 기절, 아니 백퍼센트 죽었을 것이다. 아까의 공격 때문에 모래가 물을 둥둥 떠다녔고, 그 탓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희영 헌터! 민아섭 헌터!”

    “저희 무사합니다! 아섭이가 다리를 약간 다쳤는데 지금 자가 치유 중이에요!”

    큰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전기가오리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들자 저 커다란 놈의 주둥이가 탐욕스럽게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A급 몬스터라고 하는 걸 보니 아마 일반 몬스터는 아닐 거고, 중간 보스 격인 것 같았다.

    탕!

    녀석의 시선을 내 쪽으로 끌면서 민아섭 헌터와 김희영 헌터로부터 먼 곳으로 유인했다.

    쿠궁, 쿠궁.

    전기가오리는 자기 그림자 위로 번개를 내리치며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지금 보니 녀석은 10초에 한 번꼴로 전기를 방출한다. 공격의 텀이 일정하니, 내가 공격할 타이밍은 녀석이 전기를 방출한 직후다.

    치지직.

    녀석의 그림자가 내 위로 걸리자마자 옆으로 몸을 피했고, 동시에 전기가 떨어졌다.

    ‘지금이다!’

    타아아아앙!!

    녀석이 전기를 방출하고 약간 지쳐있던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바다 전체가 진동했고 평화롭게 날아다니던 전기가오리의 몸이 터지면서 물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후두둑.

    부산물처럼 보이는 살점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신지의 헌터, 괜찮아요?!”

    잠깐의 전투가 끝나고 저 멀리 몸을 숨겼던 김희영 헌터와 민아섭 헌터가 뛰어왔다.

    “아, 네! 민아섭 헌터는요?”

    “저도 괜찮아요.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민아섭 헌터의 바지 밑단이 약간 뜯어져 있었고 그 밑으로 살짝 부은 복사뼈가 보였다. 아무리 치유계 스킬이 있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등급에 따라서 치유 수준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김희영 헌터가 전기가오리가 있던 곳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런 중간 보스가 있다고는 못 들어 봤는데…….”

    “던전 몬스터들도 가끔 바뀌는 거 아닐까요?”

    “네, 뭐… 근데 보통 보스가 추가되는 일은 좀 드물거든요.”

    김희영 헌터는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메모장에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었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홍천 B급 신화 던전, 용궁, 중간 보스 등장 : 전기가오리’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밑에도 비슷한 던전 정보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저것도 직업 정신의 일환인 걸까.’

    김희영 헌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민아섭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목은 좀 괜찮아요?”

    “네? 네. 나중에 병원 가면 돼요.”

    민아섭 헌터가 제법 씩씩하게 대답했다.

    약간 절뚝거리는 게 영 마음에 걸리네.

    “아까 잠깐 들었는데 공부 되게 열심히 하나 봐요?”

    “네? 아니, 뭐 그냥…….”

    아, 부끄러워한다.

    “저는 공부랑 담 쌓고 살았거든요. 국어랑 수학 진짜 못했어요.”

    “진짜요? 전 그거 두 개가 제일 재밌는데.”

    내 처참한 공부 실력까지 까면서 민아섭 헌터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아까는 좀 까칠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낯을 가리는 성격인가 봐.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용궁의 입구에 다다랐다.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해서 보는 것만으로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금으로 된 용이 대리석 기둥을 타고 올라가고 푸른색 기와에는 얇은 붓으로 그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권능으로 용궁 안을 살피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숨어있는 몬스터도 없는 것 같고…….

    차박, 차박.

    바닥에는 융단이 깔려 있어서 우리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모래 발자국이 찍혔다.

    “아, 저기 게이트!”

    민아섭 헌터가 가리킨 곳에는 사극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왕좌가 있었고, 그 뒤에 게이트가 웅장하게 자리했다. 김희영 헌터가 민아섭 헌터에게 턱짓을 하자 그가 부지런히 기둥 뒤에 섰다.

    “혹시 방어계 스킬 있으세요? 제 스킬은 사용자한테만 적용되는 거라서요.”

    “저도 따로 방어계 스킬은 없긴 한데…….”

    머릿속으로 방패를 떠올리며 방아쇠를 당기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랗고 새하얀 실드가 튀어나왔다. 중세 시대에나 볼 법한 커다란 방패가 눈부신 빛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최대한 튼튼해 보이는 모습을 떠올렸더니 이런 게 튀어나오네.’

    “대, 대단해요!”

    민아섭 헌터의 칭찬에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실드를 건넸다. 민아섭 헌터는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웃는 얼굴은 제법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 같았다.

    “치명상을 입으면 아섭이가 있는 곳으로 오세요. 완치까지는 안 돼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는 치료해 줄 거예요.”

    “네!”

    김희영 헌터와 함께 게이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나는 심호흡을 깊게 한 후 게이트에 손을 댔다.

    쿠구구구궁.

    지면이 흔들리자마자 우리는 양쪽으로 흩어져 기둥 뒤에서 상황을 살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작은 거북이가 왕좌의 팔걸이 위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앉는 부분 위로 미끄러졌다. 뒤집어진 채 한참을 버둥거리는데 갑자기 엄청난 굵기의 물줄기가 거북이 위로 쏟아졌다.

    쿠오오오오오.

    물줄기의 틈으로 커다란 발이 튀어나왔고, 그 후로 울퉁불퉁한 머리, 딱딱하고 이끼가 잔뜩 낀 등껍질이 차례대로 나왔다. 거북이가 숨을 내뱉자 하얀 수증기가 녀석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가뭄이 든 땅처럼 쩍 갈라진 피부가 숨을 쉴 때마다 움찔거렸다.

    [A급 보스 몬스터 거북신]

    [물 속성]

    [내려찍기, 해일, 안개]

    [특이 사항 : 안개 상태일 때 거북신을 공격하면 공격이 반사된다. 방어력이 높으니 주의]

    권능을 거둔 후 기둥 밖으로 고개를 쭉 빼자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거북신의 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쿵!!

    거북이면서 다리가 제법 민첩했다. 내가 있던 곳을 녀석이 다리로 찍자 바닥이 푹 꺼졌다. 나는 재빨리 옆으로 피해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우우웅.

    목소리 파동이 관통하자 거북신은 발을 구르며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녀석의 머리가 기둥을 부수자 2층 난간이 무너져 내렸다.

    적당히 간만 보려고 약하게 출력했더니 거북신은 더더욱 다리에 힘을 주며 공격을 버텼다.

    좀 더 본격적으로 쏴도 되겠네.

    ‘아ㅅ― 기회.’

    ‘통신 상태 진짜 안 좋네.’

    자아가 계속해서 말을 했지만 노이즈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거북신 주변에 안개 생기면 공격 반사 상태니까 조심하세요!”

    “네!”

    김희영 헌터의 경고에 대충 대답해 준 후 다시 자아를 조준했다.

    ‘아섭, 기회……!’

    ‘어, 어?’

    차차착.

    내가 자아와 대화하는 동안 김희영 헌터는 거북신 쪽으로 튀어갔다. 속성이 동일하기도 하고 무기 자체가 단검이라 파괴력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격 때문에 거북신의 발이 그 자리에 묶였다.

    ‘민아섭 헌터한테 기회 한번 주라고?’

    웅, 웅, 웅.

    아까 보니까 공격 스킬도 없던데. 뭘 어떻게 기회를 주라는 거야?

    후우우웅.

    그때 거북신의 육중한 발이 김희영 헌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일단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는 건 볼 수 없으니까…….

    타앙!

    방아쇠를 당기자 작은 소리 탄환이 거북신을 향해 날아갔다. 탄환은 거북신의 발에 정확히 박혔고 녀석의 움직임도 멎었다.

    구우, 구우욱.

    거북신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공격을 버티려 하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했는지, 등껍질이 부풀어 오르더니 펑, 하고 터져버렸다.

    진짜 작은 거였는데도 효과 죽이네.

    “안개예요!”

    주름이 빼곡한 거북신의 피부에서 새어 나온 새하얀 안개가 그대로 이 용궁 전체를 감쌌다. ‘거북신’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우리를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거북신이 경계를 풀지 않으면 저 안개도 걷히지 않아요.”

    “아예 몸을 숨기거나 죽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요?”

    “보통은 몸을 숨기고 거북신이 방심할 때까지 기다리죠. 일단 아섭이 쪽으로 몸을 숨깁시다.”

    어느새 내 옆으로 온 김희영 헌터가 다시 물이 되더니 민아섭 헌터가 있는 기둥으로 헤엄쳐 갔고, 나도 부지런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 안개는 뭐예요?”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다칠 일도 없는 안개.”

    민아섭 헌터의 질문에 김희영 헌터는 짧게 대답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안개가 언제 걷힐지를 계산하는 듯한 행동이다.

    ‘사실 내 스킬로 끝내면 그만이긴 한데.’

    아군에게는 내 공격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탄환 한 발이면 클리어하고 나갈 수 있다.

    우웅, 우웅, 우웅.

    우리 자아가 민아섭 헌터한테 기회를 주라고 해서 문제지.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면 거북신의 경계심이 줄어들 거예요.”

    “얼마나요?”

    “음. 이론상으론 한 네 시간 정도?”

    민아섭 헌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던전 안에서 네 시간이면 던전 밖 시간은 그것보다 배로 흘렀을 테니까.

    ‘민아섭 헌터에게 기회를 주면서 거북신의 경계심을 낮추는 방법…….’

    괜찮은 방법이 없나 골똘히 생각하던 중 갑자기 민아섭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떠있던 보라색 글자를 기억해 냈다.

    “저 몬스터가 우리가 여기 없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좋을 텐데…….”

    일부러 민아섭 헌터 쪽을 본 채로 중얼거렸다.

    아까 권능으로 봤을 때 그에게 교란 스킬이 있었으니까 그걸 쓰도록 유도해야 해.

    “저, 저……!”

    “네?”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됐다.’

    민아섭 헌터가 눈에 힘을 주고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저 교란계 스킬이 하나 있어요.”

    “뭐?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한 번도 안 써본 거라서…….”

    민아섭 헌터는 고개를 슬쩍 빼고 안개 너머에 있는 거북신을 힐끗 보았다. 누가 보아도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피를 철철 흘리는 거북신의 모습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쟤를 속일 만한 소리를 내면 되는 거죠?”

    “그러면 좋지.”

    민아섭 헌터가 김희영 헌터를 물끄러미 바라본 후 다시 거북신을 응시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요!”

    [연계 패시브 스킬 발동]

    [‘말이 씨가 된다’]

    [‘할 수 있어요!’의 씨앗을 각성자 ‘민아섭’에게 심겠습니까?]

    ‘어?’

    갑자기 상태창이 떴다.

    이게 그… 자아도 초면이라던 스킬인가?

    상태창이 사라지기 전에 일단 대답부터 했다.

    ‘네.’

    [각성자 ‘민아섭’에게 ‘할 수 있어요!’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상태창 너머로 보이는 민아섭 헌터와 눈을 마주치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민아섭 헌터라면 할 수 있어요! 거북신도 속을 거예요!”

    꽤 긍정적인 씨앗을 심어서 그런가, 민아섭 헌터의 눈에 약간의 총기가 돌았다.

    “알겠어요! 해볼게요!”

    민아섭 헌터는 눈을 감더니 손가락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쉬이익.

    열린 창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듣다 보니 아까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였다.

    ‘아까 그 뱀장어들이 날아오던 소리!’

    물론 그 소리보다는 차분한 느낌이었지만 뱀장어들이 헤엄치는 소리와 상당히 유사했다.

    쉬이익, 쉬이익.

    민아섭 헌터가 만들어 낸 소리가 세 번 울려 퍼지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거북신의 거친 숨소리도 아까보다 안정적으로 변했다.

    휘잉.

    나이스!

    자욱하게 꼈던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시간 그만 끌고 끝내자.’

    철컥.

    바로 기둥에서 튀어나와 자아를 겨눴고 그대로 탄환을 발사시켰다.

    타아앙.

    자아가 내 키보다 더 큰 흰색 구체를 쏘았고, 그것은 곧 거북신의 몸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후드득.

    클리어를 알리는 아이템과 부산물 더미가 하늘에서 와라락 쏟아졌고, 그와 동시에 민아섭 헌터가 소리를 질렀다.

    “됐다!!”

    “민아섭 헌터, 고마워요!”

    “아섭아. 잘했어, 잘했어!”

    김희영 헌터가 민아섭 헌터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금만큼은 민아섭 헌터도 활짝 웃으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뱀장어 소리를 낼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깼어요!”

    ”지의 누나…가 아니고 신지의 헌터가 말해 준 대로 한 것뿐이에요. 저, 이 스킬 처음으로 성공해 본 거예요! 기분 대박 좋아요!”

    “맞아요. 신지의 헌터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잔뜩 신이 난 민아섭 헌터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는 자기가 어떻게 그 소리를 떠올렸는지부터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진짜 딱 그 나이대 애 같네.

    [각성자 ‘민아섭’의 ‘할 수 있어요!’의 씨앗 개화]

    [각성자 ‘민아섭’은 각성자 ‘신지의’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고유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의 파괴력 증가]

    ‘개화까지 한 번에 됐네?’

    그렇다는 건 지금 민아섭 헌터가 내 응원에 ‘감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고작 ‘할 수 있어요!’ 정도의 가벼운 응원이었는데.

    “신지의 헌터!”

    “네, 네?”

    누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민아섭 헌터가 오자마자 상태창을 황급히 껐다.

    “아까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저 스킬 쓸 생각 한 번도 못 했거든요.”

    “아뇨, 뭘. 별것도 아닌데…….”

    칭찬을 듣는 건 늘 어색한 일이다. 내게 고맙다고 하는 민아섭 헌터의 초롱초롱한 눈이 강아지 같았다.

    내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내게 마음을 연 상태가 된다는 거겠지.

    <사명>

    [사령탑]

    [‘말의 씨앗’을 개화시켜 동료로 만들어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2%]

    ‘고유 스킬 파괴력 증가하고 사명의 달성도도 올리고, 일석이조구만.’

    상태창을 끈 후 아이템 쪽으로 발을 옮겼다. 새파란 보석이 박힌 두꺼운 천과 장갑, 그리고 리본 같은 것이 떨어져있었다.

    [아이템 획득]

    [왕의 직물 / 방어구 / A급 / 변형 가능 / 물 속성]

    [어부의 장갑/방어구 / B급]

    [해초 / 고급 부산물]

    아이템 분배 시간이다. 모두에게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있으면 모든 파견 팀의 동의하에 가질 수 있다. 모두 별 욕심이 없으면 협회한테 팔고 수익금을 나눠 갖는 형태다.

    “헉!”

    천 위에 손을 올린 김희영 헌터가 화들짝 놀랐고, 그 때문에 나와 민아섭 헌터까지 덩달아 놀랐다. 짧은 사과와 함께 입을 틀어막았던 김희영 헌터가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혹시 왕의 직물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전 괜찮아요! 엄청 좋은 아이템인가 봐요?”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이죠. 속성이 일치하는 방어구는 스킬 능력을 배로 올려 주니까요.”

    김희영 헌터가 민아섭 헌터를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요! 하… 속성 방어구 정말 원했는데.”

    저렇게 좋아하니까 오히려 나까지 기쁘네.

    “민아섭 헌터는 어떤……. 엥.”

    남은 아이템을 들고 민아섭 헌터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아무 고민 없이 해초를 가리켰다.

    장갑보다 던전 부산물이 더 좋은 건가?

    “장갑 말고… 정말로 이거요?”

    “네.”

    해초를 손에 쥐여 주자 꾸벅 인사를 하더니 자신의 인벤토리에 잽싸게 넣었다.

    아이템 배분을 순식간에 끝낸 우리는 퇴근을 위해 게이트 앞으로 발을 옮겼다.

    알아서 가겠다는 김희영 헌터와 민아섭 헌터를 겨우 붙잡아 내 전용 리무진에 태웠다. 민아섭 헌터는 피곤했는지 차에 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나와 김희영 헌터는 창밖을 바라보며 편히 쉬었다.

    ‘스킬― 잘 썼… 신기…….’

    ‘스킬 잘 써서 신기하다고?’

    우웅, 우웅.

    자아의 말은 여전히 많이 끊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감으로 때려 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

    ‘근데 민아섭 헌터한테 왜 기회를 주라고 한 거야? 이 연계 스킬 발동시키려고?’

    ‘이전… 잘했, 살려, 해―’

    ‘이전 시간선에서 잘했던 애라서 살려 둬야 한다고?’

    웅, 웅, 웅, 웅.

    역시 나의 분신이라 그런가, 자아가 하는 소리를 찰떡같이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긴, 자아도 말이 씨가 된다는 초면이라고 했지. 결국 이 스킬은 나 스스로가 직접 갈고닦아야 한다.

    “아깐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 김희영 헌터가 입을 열었다.

    “전 아섭이가 다칠까 봐 계속 숨어 있으라고만 했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게 아섭이의 자기 효능감을 더 떨어트렸던 것 같아요.”

    김희영 헌터가 정말 교사 같은 말을 했다.

    “신지의 헌터 덕분에 아섭이가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아뇨… 민아섭 헌터가 다 한 거죠.”

    김희영 헌터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니 민아섭 헌터를 보며 안쓰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섭이, 치열하게 사는 애예요. 가정 폭력범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크다가 결국 어머니가 아섭이를 데리고 도망쳤거든요.”

    “세상에…….”

    민아섭 헌터는 여린 숨을 내뱉으며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잠든 얼굴만큼은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다.

    “둘이서 잘 살다가 아섭이가 각성을 했고, 그와 동시에 아버지 쪽에서 양육권 소송을 걸었어요.”

    “아니, 무슨 염치로요?”

    “발악이죠. 그리고 헌터는 무조건 돈을 잘 벌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 부분도 탐이 났던 것 같고요.”

    김희영 헌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섭이가 어린 나이에 C급 헌터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미성년자다 보니 던전에 자주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

    “집세와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변호사 선임까지 하려니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아섭이가 던전 부산물을 착실하게 챙기는 이유도 다 그거 때문이에요.”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구나.’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민아섭 헌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김희영 헌터가 내 쪽을 돌아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없을까, 그 부분을 매일 고민해요.”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쓸쓸하게 들렸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들만 가만히 쳐다보았다.

    [돌발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합리적인 소비자]

    [S급 이상의 아이템을 귀속시켜라.]

    [보상 :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의 달성도 소폭 상승]

    [제한 시간 : 7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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