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3화 (13/366)
  • 13화

    【첫 번째 파견】

    차 좋네.

    운전석도 일반 승용차보다 커 보였고 뒷자리도 한 두 배는 더 컸다.

    리무진은 다 이런 거야?

    재즈 음악까지 조용하게 흐르고 있어서인지 차 안이라는 느낌도 안 들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아니요……. 너무 좋은데요.”

    “하하, 다행이네요. 10분 후쯤 도착할 예정입니다.”

    운전기사가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오늘은 처음으로 공식 파견 업무를 수행하는 날이었다. 헌터들은 보통 자기 차를 몰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파견 장소로 이동하지만, S급 이상부터는 협회에서 리무진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커다란 창에 머리를 기댄 채 빠르게 바뀌는 풍경으로 시선을 던졌다.

    홍천 4km

    홍천에 있는 B급 신화 던전. 오늘의 파견지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용궁을 배경으로 한 곳이고 괜찮은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던전 중 하나라고 들었다.

    ‘전투 감각을 빨리 되찾으려면 의무 파견 외에도 내가 스스로 던전을 찾아서 가야겠는걸.’

    푹신한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기댄 채 잠시 눈을 붙였다.

    * * *

    “도착했습니다.”

    차가 산 중턱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멈춰 섰다. 기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냄새가 났고 동시에 누군가의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자 등산복을 입은 여성이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서 유유히 체조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들어온 걸 보면 민간인은 아닐 테고… 같이 가는 헌터일 텐데.

    ‘창조자가 준 짭권능이나 한번 써볼까.’

    손으로 원을 만들어 그 틈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보자 그의 주변을 떠다니는 보라색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희영(45) A급]

    [물 속성]

    [A급 공격계 스킬 ‘수몰’ : 정해진 공간을 물로 채운다.]

    [A급 방어계 스킬 ‘칼로 물 베기’ : 사용자의 몸을 일시적으로 물로 바꿔 물리적 공격을 무효화한다.]

    [귀속 무기 : A급 단검 ‘개천’, 물 속성 스킬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무기 비문 : 개천에서 정말로 용이 났다.]

    ‘짭권능이 이 정도면 진짜 권능은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야?’

    생각보다 너무 많은 정보가 보여서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권능을 풀고 김희영 헌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SS급!”

    “아하하… 신지의입니다.”

    “반가워요! 전 김희영이에요.”

    김희영 헌터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잠깐 손을 잡았을 뿐인데 그의 손아귀 힘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DF 랭킹 1위가 돌기에 이 던전은 시시할 텐데요.”

    “던전 경험은 거의 없어서요. 잘 부탁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갑자기 앳된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나와 비슷한 키를 가진 남자아이가 쭈뼛거리며 서있었다.

    ‘미성년자?!’

    끽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후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뚱한 얼굴로 김희영 헌터 옆으로 쪼르르 갔다.

    “민아섭, 너 자꾸 이렇게 늦을래?”

    “어제까지 숙제하느라 늦게 자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아는 사이세요……?”

    김희영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 자식처럼은 안 보이는데, 친척인가?’

    한참 혼란스러워할 즘 김희영 헌터가 민아섭 헌터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제 학생이에요. 저 각성하기 전에 중학교 수학 교사였거든요.”

    “아…….”

    “던전 파견은 보호자 허락하에 협회에서 정해준 후견인이랑 함께 가야 해서 제가 아섭이를 좀 봐주고 있죠.”

    “아, 쌤. 그만해요!”

    민아섭 헌터가 김희영 헌터의 손길을 뿌리치며 자기 머리를 정리했다. 둘이 티격태격하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심스럽게 권능으로 민아섭 헌터를 살폈다.

    [민아섭(15) C급]

    [바람 속성]

    [C급 치유계 스킬 ‘아픔아 날아가라’ : 사용자의 숨길로 대상을 치료한다.]

    [C급 교란계 스킬 ‘메아리’ : 바람 소리로 대상의 청각에 혼란을 준다.]

    [귀속 무기 : C급 부채 ‘풍선(風扇)’]

    [무기 비문 : 좋은 날이 올 거야.]

    치유계 헌터.

    김희영 헌터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고,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풀었다. 그는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더니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럼 어서 가요. 아마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담당 헌터들이 아이템 스캔을 하는 동안 눈앞의 게이트를 빤히 보았다.

    용궁 모습을 한 던전이라더니 게이트부터 무슨 궁궐 문 같았다. 물고기 조각상이 붙은 커다란 기둥이 양쪽으로 두 개가 나 있었고, 그 사이에 있는 문은 옥으로 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겉에도 바다의 내부 모습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문 열게요.”

    “네!”

    게이트를 열자 바닷가에서 나는 짭조름한 냄새가 훅 끼쳤고, 동시에 보글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흙바닥이어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밑으로 살짝 빠졌다. 근접전은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은 환경이다.

    김희영 헌터는 성큼성큼 나아가며 언제 꺼냈는지 모를 단검을 한 손으로 돌리고 있었다.

    “제가 물 속성이라 이 던전 몬스터들한테 큰 피해는 못 입힐 거예요. 저와 아섭이가 몬스터의 주의를 끌 테니 공격은 신지의 헌터가 해줘요. 괜찮죠?”

    “네!”

    “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만나는 일반 몬스터들은 대부분 물고기예요. 엄청 빨라서 잡기 어려울 거예요. 범위 공격 있으면 자주 써주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갑자기 김희영 헌터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학교 관둔 지 5년이 넘어가는데 이 직업병은 좀처럼 안 고쳐지네요.”

    “아니에요. 오히려 도움 됐는걸요.”

    “그런가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김희영 헌터가 눈을 접어 살짝 웃었다.

    ‘그러면 범위 공격으로 물고기들의 균형을 박살 내주고 탄환으로 정리하면 되겠군.’

    대충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더욱 안쪽으로 걸어갔다.

    쉬익.

    그때 갑자기 기다란 그림자가 총알처럼 우리를 스쳐 갔다. 정통으로 맞았으면 멀리 나가떨어질 정도의 속도였다. 곧바로 자아를 꺼내 그림자를 찾으려 주변을 살폈다.

    “신지의 헌터, 준비해 주세요!”

    “네!”

    김희영 헌터의 형체가 물처럼 넘실거리더니 이내 공중으로 튀어 올라 우릴 감싼 이 바닷물의 일부가 되었다. 물고기처럼 힘차고 빠르게 헤엄치는 그의 움직임 덕에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기자 평소보다 더 빠르게 파동이 뻗어 나갔다. 쏜살처럼 움직이던 그림자가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뱀장어?’

    뱀장어들은 배를 뒤집은 채로 펄떡였고 그 틈에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겨 끝을 냈다.

    후두둑.

    뱀장어들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고 우리의 손 위로 아이템 몇 개를 떨어트렸다.

    [아이템 획득]

    [살 파편 / 부산물]

    그냥 부산물이었다.

    어디든 팔 곳이야 있으니 인벤토리에 대충 넣어 두자.

    “후!”

    김희영 헌터가 다시 바닥 쪽으로 헤엄쳐 오더니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자신의 몸을 물로 바꾸는 방어계 스킬이라던데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니, 역시 다년간 헌터로 생활한 사람들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부터가 다르다.

    “그 무기랑 스킬 대단한데요? SS급 파괴력이라 그런가?”

    “김희영 헌터야말로 그 물로 바뀌는 스킬 엄청 멋있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섭아, 선생님 어깨 치료 좀 해줘.”

    “네.”

    커다란 해초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민아섭 헌터가 달려왔다. 피가 배어 나오는 어깨에 대고 그가 바람을 후 불자 녹색의 빛이 김희영 헌터의 어깨를 감싸더니 점차 피가 멎었다. 김희영 헌터는 어깨를 두어 번 돌린 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민아섭 헌터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서―기―줘’

    ‘뭐?’

    오랜만에 자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화할 만큼의 에너지는 아직 안 모였는지 통화 품질이 영 바닥이다.

    ‘제발 한 글자라도 제대로 얘기해 봐.’

    ‘아섭.’

    ‘아섭? 민아섭 헌터 말하는 거야?’

    우웅, 우웅, 우웅.

    손안의 자아가 진동했다.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돌려 민아섭 헌터를 바라보았다. 마른 체격에 하얀 얼굴, 야외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다.

    민아섭 헌터가 도대체 뭐 어쨌다는 거지?

    “선생님, 이따 저 질문 하나만 받아 주세요.”

    “그래. 근데 공부도 좋은데 운동도 좀 해라?”

    “전 운동 싫어요…….”

    “나중엔 공부도 체력전이야~”

    그냥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자아가 민아섭 헌터에 대해 언급한 이상, 나는 저 친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부우우우우.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 위로 지나갔고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꼬리가 긴 가오리가 유유히 우리의 위를 헤엄치고 있었는데 한참을 빙글빙글 돌았다.

    ‘왜 공격을 안 하지?’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 가오리의 모습만 올려다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권능으로 가오리를 살폈다.

    [A급 몬스터 전기가오리]

    [물 속성]

    [전기 방출, 씹어 먹기]

    [특이 사항 : 전기를 방출하기 전 한자리를 빙글빙글 돈다. 범위는 전기가오리의 그림자 내]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전기가오리의 몸 주변에 흰 전류가 감돌기 시작했고, 그대로 몸을 파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설마!’

    “당장 그림자 밖으로 벗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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