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저녁에 시간이 되냐’. 보통 이 말은 같이 저녁을 먹거나 카페에서 차 한잔하자는 뜻 아닌가? 최민 헌터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헌터 본부에서 만난 것까지는 평범했는데…….
“아이템 스캔하겠습니다.”
‘지금은 왜 게이트 앞에 와있는 거냐고.’
최민 헌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묵묵히 스캔 절차를 밟고 있었다. 직원은 태블릿PC처럼 보이는 걸로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과 인벤토리 안을 스캔했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최민 헌터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던전을 오자고 하신 거예요?”
“신지의 헌터의 능력이 궁금했거든요.”
“첫 만남부터요?”
“안 됩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은 대화부터 하지 않나?’
최민 헌터는 특이하게 생긴 반장갑을 손에 낀 채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출발하죠.”
최민 헌터가 바위처럼 생긴 게이트를 밀고 던전 안으로 갈 동안, 나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시점에서 제일 수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최민 헌터는 회장님과 그 어떤 게이트 탐지기도 감지하지 못한 던전에서 나를 구조했다. 정말 우연히 우리 집 주변을 지나가다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극히 희박한 확률이다.
‘야, 지금 보고 있으면 최민 헌터 어떤 사람인지 좀 알려줘.’
자아한테 급히 말을 걸어 봤지만 아직 말을 할 만큼 에너지가 차지 않았는지, 묵묵부답이었다.
일단은 내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네.
휘이이잉.
던전 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맑은 공기와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자연 경관에 입이 떡 벌어졌다. 새파란 산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고 길을 따라 나 있는 계곡에선 물이 힘차게 흘러갔다.
연신내 C급 던전, C급 던전 중 유일한 신화 던전이었다. 단군 신화를 배경으로 한 던전이라 일반 몬스터로는 곰이 많이 나온다고 했고, 보스 몬스터는 호랑이라고 들었다.
“그 던전엔 어떻게 떨어진 겁니까?”
침묵을 유지하던 최민 헌터가 말을 걸었다.
“그냥 퇴근길에 발밑에 갑자기 열렸어요.”
“발밑에?”
펑!
최민 헌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뒤에서 폭발과 함께 열기가 훅 끼쳤다. 난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뒤를 돌아보았다.
탁, 타다닥.
곰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이 새빨간 불길에 휩싸여 한 줌의 재가 되었고, 곰이 있던 곳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발톱만 남아 있었다.
‘확실히 S급이면 C급 몬스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최민 헌터는 다시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가루가 된 곰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의 뒤를 따랐다.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따로 말을 안 한 것 같아서.”
“…우연히 발견했을 뿐입니다.”
“정말요?”
“네?”
쿵.
‘내가 방금 무슨 소릴 한 거지?’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걸음을 멈춘 최민 헌터가 뒤를 돌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날 이상하다는 듯 응시했다.
“아, 그게… 우연히 발견했다는 게 놀라워서요. 어쨌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전하자 최민 헌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려 게이트 쪽으로 나아갔다.
난 그의 넓은 등을 보며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무의식중에 최민 헌터가 날 우연히 발견한 게 아니라고 확신하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말이 튀어나올 리가 없지.
쿠오오오.
그때 땅을 울리는 커다란 포효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등골이 약간 서늘해져 곧바로 옆으로 피하자 내가 서있던 자리에 곰이 떨어졌다. 움푹 팬 지면과 거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녀석의 머리를 향해 자아를 겨눴다.
탕!!
쿠오오오―
흰색의 탄환이 튀어나와 곰의 몸을 관통하자 녀석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다 터졌고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목소리로 된 탄환인 겁니까?”
“네. 이렇게, 총처럼.”
타앙.
손수 시범을 보이자 최민 헌터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조금 놀란 눈친데.
“DF가 S5…….”
“하하…….”
“계속 가죠.”
두두두두두.
최민 헌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짐승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고,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정말로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제가 후방을 맡을게요.”
“그러시죠.”
최민 헌터와 등을 진 채로 달려오는 곰 무리를 향해 자아를 들었다.
‘일일이 맞히는 건 힘들 것 같은데.’
두근.
“윽?”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온몸 전체를 울린 커다란 심장 박동에 잠깐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시야는 금방 돌아왔고, 아득히 먼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파동이잖아, 멍청아. 걍 공기 자체를 울릴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요?”
“아니 니 스킬인데 왜 나한테 물어보고 X랄이야. 직접 함 해보든가.”
미래 씨랑 나?
분명 처음 듣는 대화인데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달성도 상승]
[달성도 : 8%]
역시 방금 들렸던 것은 과거의 대화가 맞았다. 상태창을 닫은 후 미래 씨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소리는 파동…….’
자아를 한 번 내려다본 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흑곰 무리를 향해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쿠구궁.
새하얀 소리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파도처럼 흑곰 무리를 덮쳤다. 단일 공격만큼의 파괴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전신에 퍼부어지는 공격에 흑곰들은 거품을 물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후…….”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12%]
‘한 번에 12%?’
자아로 새로운 공격을 할 때마다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의 달성도가 올랐다.
이대로 가면 금방 100% 되겠는데?
화르르.
“와…….”
그때 얼굴 위로 열기가 훅 끼쳤다. 고개를 돌리자 최민 헌터가 불 그 자체가 되어 곰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나간 곳마다 남은 시뻘건 불길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곰을 보고 있자니 그가 지옥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최민 헌터의 고유 스킬이에요?”
땅에 착지한 최민 헌터에게 묻자 그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큰 키에서 느껴지는 물리적인 압박감과 속을 알 수 없는 검붉은 눈동자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야, 왜 이래?’
쿠오오오.
또다시 흑곰 무리가 나타났다. 공격을 하려 자아를 꺼낸 순간 갑자기 주변 공기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콰아앙!!
“웃!”
질끈 감은 눈을 뜨자 시뻘건 불길이 우리 둘을 감싸고 있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위협적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제 고유 스킬입니다. S급 방어계 스킬, ‘방공호’.”
두근, 두근.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 때문인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방공호는 어떤 물리적 공격, 정신적 공격,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공간입니다.”
‘시간의 흐름까지?’
방공호 안은 너무 조용해서 내 심장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최민 헌터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전 첫 번째 게이트 폭발 때 각성했습니다.”
“그랬…군요?”
“그때 휴가를 받아 가족끼리 가평에 놀러 갔었거든요.”
‘설마…….’
가평 S급 게이트 폭발, 국내에서 발생한 첫 게이트 폭발이다. 회장님이 폭발 발생 직전에 인지를 하긴 했지만 지원이 늦어져 남이섬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국내 던전 관련 사고 중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사건, 그때 최민 헌터가 각성했다는 말이다.
“그 사고로 부모님과 남동생이 눈앞에서 죽었고, 동시에 각성했습니다.”
“…….”
“따라 죽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비극적인 이야기였지만 최민 헌터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마치 어젯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이야기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잠깐. 그럼 뭔가 이상한데?’
가평 게이트 폭발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최민 헌터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그는 40대라는 건데, 아무리 봐도 끽해야 20대 중후반의 외모였다.
“뭘 궁금해하는지 압니다.”
최민 헌터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하게 묻어 나왔다.
“각성 후에 이 방공호 안으로 도망쳤고, 수십 년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이미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텁.
최민 헌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마른 체형이라 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손아귀 힘이 제법 셌다.
‘자기가 어떻게 각성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인상을 찌푸리며 최민 헌터의 손목을 잡아 천천히 그의 팔을 내렸다.
“최민 헌터랑 이번에 처음 얘기하는 건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야 당신이 제 이름을…….”
“네?”
최민 헌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잊어 주세요.”
최민 헌터는 내 팔을 안 아프게 잡아 방공호의 벽 쪽으로 다가갔고, 그대로 불길을 통과해 던전으로 나왔다. 활활 타던 방공호는 내가 나오자마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아까 그 곰들은 어떻게…….’
바스락.
발밑에 뼛가루 같은 것이 밟혔다. 아마 우리를 잡으려 방공호에 몸을 부딪치다 되레 당한 것 같았다.
“출구가 보입니다. 어서 가시죠.”
‘되게 찝찝하게 구네.’
이 인간이 나 구했을 때 나랑 뭐가 있었나? 근데 난 기절했을 텐데?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하나둘씩 불어났다.
“도착했군요.”
커다란 바위가 굴러다니는 협곡과 곰이 득시글거리는 동굴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자 아까 우리가 열고 들어온 바위 게이트가 보였다. 최민 헌터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앞으로 가 손을 댔다.
크르릉…….
쿵, 쿵.
그때 게이트 뒤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한 발짝 다가올 때마다 커다란 척추가 위아래로 흔들렸고 벌려진 입 틈새로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호랑이의 침이 닿은 지면은 치이익, 소리를 내며 검게 그을렸다.
쾅!!
호랑이의 앞발이 나를 향해 날아왔고 나는 곧바로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땅을 내려친 탓에 모래바람이 훅 끼쳤지만 하늘을 향해 소리 탄환을 한 발 쏘자 금방 시야가 확보됐다. 오히려 모래바람에 가려진 탓에 내 모습을 놓친 호랑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를 찾으려 애썼다.
‘지금이다.’
펑!
흰 구체가 호랑이의 몸에 닿았고, 그와 동시에 꽤 큰 폭발음이 났다.
“응?”
하늘에 웬 천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참 공중을 떠돌던 천은 내 손 위에 툭 떨어졌고 살아 있는 것처럼 퍼덕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아이템 획득]
[호랑이 가죽 / 하급 부산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더니, 정말로 가죽을 남겼네.
멀뚱히 호랑이 가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최민 헌터가 다시 내 옆으로 왔다.
“꼭 헌터 생활을 한 번 해봤던 사람 같군요.”
쿵.
심장이 내장까지 떨어졌다 다시 붙는 느낌이었다. 그냥 평범한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아까 이 인간이 했던 말 때문에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아하하. 그럴 리가 있나요.”
“…….”
“칭찬 감사합니다.”
‘앞으로 조심 좀 해야겠어.’
회귀 전의 기억이 있어도 골치 아프고, 이 사람이 배신자라면 더 머리가 아파진다.
일단 지금은 계속해서 지켜보는 수밖에.
최민 헌터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게이트를 열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 * *
‘야.’
“아, 깜짝이야…….”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곧장 자아가 말을 걸었다. 노이즈가 잔뜩 껴서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다행히 아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민이 경계… 지마. 좋… 애―어.’
‘최민 헌터 경계하지 말라고?’
우웅, 우웅.
자아가 대답 대신 여러 번 진동했다.
‘그렇게 말한 것치곤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 많은데.’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이부자리 위에 털썩 앉았다.
‘일단 지금으로선 최민 헌터도 배신자 후보 중 한 사람이야.’
‘아니, 걔― 리가 없…….’
‘너도 배신자 정체 보기 전에 파괴됐잖아.’
‘걔 진짜 아―’
뚝.
에너지의 한계가 왔는지 그대로 목소리가 끊겼다.
‘얘 정말로 최민 헌터 좋아하나? 어떻게 이렇게 신뢰할 수가 있지.’
우웅.
그때 인벤토리에 넣어둔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 아이콘을 누르자 알림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견 업무 1건 배정되었습니다.]
[위치 : 강원도 홍천 B급 던전]
[날짜 : 4월 10일 오후 12시]
[파견 팀 : 신지의(SS급), 김희영(A급), 민아섭(C급)]
드디어 이번 시간선에서의 첫 공식 파견 일정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