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1화 (11/366)

11화

“이게 뭔 개고생이냐.”

사명이 말하는 대로 동료를 포섭하기 위해 일단 S급들이랑 친구가 되는 걸 목표로 삼았는데… 처음부터 영 쉽지가 않다.

꽃샘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 탭을 살폈다.

[오늘 오전 9시 경포대 A급 던전에서 뵙죠. ―차도윤 헌터]

한국의 네 번째 S급 헌터, 차도윤. 현재 나이 26세이고 세빈이 각성하기 전까지는 국내 최연소 S급 각성자였다.

그는 개성이 넘치는 S급 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평범했다. 아이돌 출신인 한진우 헌터처럼 방송에 자주 나오는 편도 아니었고 하미준 헌터처럼 사생활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었다.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S급 공격계 스킬을 가진 헌터. 그게 다이다.

‘내가 만나러 가겠다고 한 건 맞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근처 카페에서 사온 유자차를 홀짝거리며 하염없이 바다만 감상했다.

확실히 동해 바다가 깨끗해.

덜컹.

그때 컨테이너 박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를 선두로 두 사람 정도가 더 나왔다.

‘저 금발남이다.’

이마를 살짝 보인 금색 머리카락과 얇은 선의 이목구비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저 머리카락도 속성 전염의 영향이겠지? 바람 속성으로 알고 있는데 금색으로 나타난 게 조금 의외네.

그의 머리카락에서 시선을 떼고 얼굴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올라간 눈매가 꼭 고양이 같았다. 큰 키와 마른 몸에, 손에는 커다란 활을 들고 있어서인지 꼭 영화 속에 나오는 엘프를 닮았다.

프로필과 실물을 번갈아 쳐다보며 유자차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게이트 쪽으로 부지런히 뛰어가자 그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차도윤 헌터 맞죠?”

“아, 그 DF…….”

“신지의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최대한 사회인 미소를 띠며 악수를 청했지만 차도윤은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위아래로 몇 번 흔들더니 그대로 손을 떼버렸다.

‘부끄러워하는 건지 싸가지가 없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차도윤 헌터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천천히 입술을 뗐다.

“파견 중에 소식 들었습니다. SS급이라고…….”

“네! 공격계예요.”

“공격계…….”

차도윤 헌터의 고개가 내 쪽으로 살짝 향하더니 이내 그가 내 귀를 가리켰다.

“이게 무기인가 봐요?”

“네. 보실래요?”

자아를 꺼내 손에 쥐자 차도윤 헌터가 눈을 깜박이며 한참을 쳐다보았다.

친구가 되려고 왔는데 무슨 방문판매 사원이 된 것 같네.

“그저 그렇네요.”

“…네?”

잘못 들었나?

다시 되묻자 차도윤 헌터가 시선을 거뒀다.

“그저 그렇다고요.”

‘이 새끼가?’

하마터면 자아로 차도윤 헌터의 대가리를 후릴 뻔했지만 진짜 마지막 남은 나의 사회성이 그 행동을 막았다.

아냐, 지금 던전에서 나왔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리고 내 눈에만 특별하지, 다른 사람 눈에는 평범해 보일 수 있어도 그렇지, 그걸 상대 얼굴에 대고 얘기하냐, 이 싸가지 없는 놈이?!

“하하하… 뭐, 그래 보일 순 있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화를 이어갔다.

국내 S급부터 차근차근 친해져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된다. 말의 씨앗인지 뭔지, 그 정체불명의 패시브 스킬도 발동되면 일이 더 쉬워진다.

“아하하~”

입꼬리에 경련이 날 정도로 힘을 주고 일단 웃었다.

“피곤하실 것 같은데 나중에…….”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

“식사… 아, 옙.”

말 한번 기가 막히게 끊네.

속이 부글부글 끓는 나에 비해 차도윤 헌터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고,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자신의 파견 팀 쪽으로 발을 돌렸다.

“그럼 나중에 파견 때 뵙죠.”

“아, 예~ 안녕히개새야~”

“네?”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가버리자 뒤통수가 묘하게 따끔거렸다. 파견 팀의 다른 헌터들이 나를 힐끔 보며 밝게 인사해 주었다.

‘저런 싸가지랑 파견 업무 나간 저 팀원들도 고생했겠다.’

나의 소중한 자아를 다시 귀에 끼우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짠 기운이 느껴졌지만 바닷바람이 폐부에 스미는 기분은 좋았다.

‘뭐야, 도윤이 왜 저렇게 됐지?’

“와 씨, 깜짝아.”

요 며칠 조용하던 자아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너 굳이 안 튀어나와도 말할 수 있어?’

‘응. 질은 좀 떨어지지만.’

듣고 보니 자아의 목소리에 노이즈가 많이 껴있었다.

‘아무튼 도윤이 성격이 좀 변했네.’

‘왜? 예전엔 어땠는데?’

‘막 엄청 착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싸가지 없진 않았어. 나름 다정한 구석도 있었고.’

다아저엉? 조금 전 봤던 차도윤의 태도는 그 단어와는 한 1억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데? 내가 회귀 후에 SS급으로 각성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가? 너무 바뀌면 좀 곤란하다.

‘그래도 도윤이한테 잘해 줘.’

‘노력은 해볼게. 어쨌든 동료가 필요하니까.’

‘…적어도 지옥도를 볼 때까지는 살려 놔야지.’

‘뭐?’

자아가 씁쓸한 듯 혀를 찼다.

‘쟨 진짜 종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죽었거든.’

‘…원인은?’

‘던전에서 고립됐어.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출구 게이트를 못 찾아서 그 파견 팀 자체가 그대로 궤멸했어.’

‘구출 시도는?’

‘통신 끊기자마자 구출 팀이 갔는데 이미 그 던전 자체가 사라져있었어.’

끔찍하다. 던전 자체에 삼켜져 버리다니.

방금 전까지 차도윤네 파견 팀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떠난 후였다.

‘지옥도가 열리기 전까지 그 어떤 사람도 놓치지 마.’

‘…알겠어.’

띠롱.

인벤토리에 있던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헌터 인트라넷 메시지함에 1이라는 숫자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메시지 함을 누르자 익숙한 얼굴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안녕하세요, 신지의 헌터님! 헌터 한진우입니다 ^0^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혹시 시간 되시면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 ―한진우 헌터]

아침부터 강릉 갔다 온 피로가 몰려와 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12시 50분이었다. 그때부터 허겁지겁 달려와 본부에 도착한 게 바로 지금, 1시 30분. 한진우 헌터에게 늦는다고 연락은 해놨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죽을 것 같았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건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기에 웬만하면 늦은 적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무지각 3년 개근이었고.

“허억, 헉.”

카페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동그란 핑크색 통수가 보였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연예인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미안함에 허리를 반쯤 숙인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 한진우 헌터……?”

“아! 안녕하세요! 신지의 헌터님 맞으시죠?”

밝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귀에 꽂히는 동시에 천사 같은 얼굴이 눈을 못 뜨게 만들었다.

‘확실히 아이돌은 다르구나!’

그동안 만난 S급들도 다 인물이 훤칠하긴 했지만 역시 현직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뭔가 달랐다. 주먹만 한 얼굴에 긴 속눈썹과 오뚝한 코, 그리고 자그마한 입술이 다 들어있었다. 피부는 또 얼마나 좋은지 방금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오전에 만났던 차도윤 헌터도 평범하게 예쁜 축에 속했지만 한진우 헌터는 예쁘다기보단 잘 만들어진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신지의 헌터님……?”

“헉, 네! 아, 주문하고 올게요!”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라 너무 넋 놓고 있었다. 키오스크로 레모네이드를 시킨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한진우 헌터가 다시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신지의 헌터님! 헌터 한진우입니다.”

“신지의입니다. 그냥 헌터님 말고 헌터라고 불러 주세요.”

“아, 네!”

오히려 내가 한진우 헌터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어쨌거나 나보다 먼저 각성한 선배이기도 하고.

어색한 정적이 찾아오기 전에 마침 서빙봇이 내 음료를 갖고 와 곧바로 내 앞에 놓았다.

“뉴스 보고 깜짝 놀랐어요! S급도 아니고 SS급이라니! DF랭킹도 1위시잖아요!”

“아하하… 네, 뭐 어쩌다 보니.”

“대부분 큰 충격을 받으면 상급 헌터로 각성한다던데, 신지의 헌터도 힘들 때 각성하셨나 봐요…….”

윽, 눈부셔.

한진우 헌터는 그 큰 눈을 빛내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았고, 고개까지 힘차게 끄덕이며 필사적으로 내게 공감하고 있었다.

‘음. 진우는 그대로네.’

‘아, 그러냐.’

자아의 짧은 코멘트 이후 한진우 헌터가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저도 여의도 게이트 폭발 때 각성했거든요오…….”

게이트 폭발, 던전이 생기고 내부 환경이 변화하면서 몬스터의 개체량이 늘어 결국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이었다. 던전 안에서 몬스터를 다 잡으면 게이트가 소멸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국내 S급 게이트 폭발은 총 두 번이다. 한진우 헌터가 겪은 여의도 S급 게이트 폭발은 2년 전이고. 게이트 자체가 회사 주변에 위치한 터라 폭발 당시 주변을 오가던 회사원들이 많았고, S급 던전이었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상당했다.

‘이제야 겨우 복원이 끝났지.’

“몬스터 때문에 차가 뒤집히고 멤버들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있는 걸 봤을 땐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아…….”

“그래도 그때 각성해서 다행이죠. 곧바로 멤버들 치료하고 다른 사람들도 구하러 갈 수 있었으니까요!”

한진우 헌터가 화사하게 웃었다. 실제로 한진우 헌터의 각성 덕에 여의도 게이트 폭발 사고의 인명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목숨만 붙어있으면 완치 수준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적적인 스킬 덕에 그 후 헌터들의 사망률도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앗……!”

평온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한진우 헌터가 내 뒤쪽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뭐라도 봤나?’

뒤를 돌자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미래 씨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카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미래 씨.”

“안녕. 어, 너 염색했네.”

“네, 네…….”

미래 씨는 키오스크 화면을 몇 번 누르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또다시 그 은근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서 인상을 찌푸렸다.

한진우 헌터는…….

‘뭐야, 왜 부끄러워하는 건데.’

볼은 머리색처럼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아까까지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메리카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끔 미래 씨를 힐끔거리며 볼 뿐이었다.

“여기서 둘이 뭐 하고 있었냐?”

“그냥 서로 인사하고 얘기하고 있었어요.”

“S급 놈이랑 SS급 놈이랑 끼리끼리 잘들 노네.’

어딜 가나 대접받는 S급 헌터들을 S급 놈들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서빙봇이 미래 씨 앞에 딸기 스무디를 올려놓았다.

맨날 아메리카노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먹을 줄 아는구나.

“하미준이야 무기 뽑을 때 만났을 거고, 강세빈은 네 친구니까 상관없고. 그 차도윤은 만나 봤냐?”

“아, 만나 봤죠. 좀 까칠하던데.”

“걔가?”

미래 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냥 고분고분하지 않나? 딱히 신경에 거슬리는 짓은 안 하던데.”

“무뚝뚝한 편이지만 까칠하진 않았어요!”

“회장님한테는 아주 배 까뒤집는 강아지 새끼지.”

선택적 싸가지 없음이라는 거야? 미치겠네. 왜 나한테만 태도가 바뀌었지?

“나름 귀여운 맛은 있던…….”

“미래 씨!”

“뭐.”

갑자기 한진우 헌터가 발끈했다.

“저, 전엔 저한테 귀엽다고…….”

“엉?”

‘뭐야, 이거.’

한진우 헌터는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풀 죽은 강아지처럼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미래 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여전히 미간을 구긴 채로 한진우 헌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설마…….’

‘와, 이번에도 똑같네. 너가 생각하는 거 맞아.’

‘저 천사 같은 한진우 헌터가 미래 씨를 좋아한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이 온몸을 울렸다.

“무슨 생각하냐.”

“아, 아니요. 아무것도요…….”

진짜 충격이다. 진짜로…….

“너 최민이랑은 만나 봤어?”

“네. 병실에서 아주 잠깐 본 거지만.”

미래 씨는 내 말을 듣더니 천장을 보며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어떤 사람이에요? 최민 헌터.”

“말이 별로 없으세요.”

“좀 애늙은이처럼 굴던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회장님과 함께 나를 찾아왔던 최민 헌터는 한진우 헌터와 미래 씨가 말하는 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업무용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켰다.

[최민 /S 급 / 불]

[메시지 보내기]

[통화하기]

심플하네.

띠롱.

“앗.”

“왜 그래?”

갑자기 메시지 함이 반짝거렸다. 누구한테 온 건지 확인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켰다.

[저녁쯤에 시간 있습니까? ―최민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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