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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7화 (7/366)
  • 7화

    북한산 등산로는 이미 통제된 상태였다. 산을 조금 올라가자 협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군요! D급 게이트인데도 자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 오픈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어?”

    “5분 내로 열립니다. C급과 B급 헌터들이 유출되는 몬스터를 잡을 예정이라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직원은 대기 중인 헌터들을 슬쩍 본 후 이번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이쪽은?”

    “미리 인사해 둘래? 나중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유명인이 될 사람인데.”

    “네?”

    쿠구구궁.

    그때 등산로의 한가운데 시커먼 균열이 생겼다. 그 안에서 꽃이 한가득 핀 나무문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고, 이내 지면을 울리며 완전히 바닥에 섰다.

    끼이익.

    게이트가 열렸다. 클리어를 하기 전까지는 절대 닫히지 않는 바로 그 게이트가 입을 벌린 채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하미준 헌터는 게이트 겉에 달린 꽃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다 이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갈까?”

    하미준 헌터가 앞장서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나와 세빈이도 그의 뒤를 따랐다.

    휘이잉.

    모래를 잔뜩 머금은 텁텁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황량한 흙바닥 위에 초가집들이 드문드문 서있었고 부서진 지게 같은 것도 바닥에 나뒹굴었다.

    “딱 봐도 부산물 채굴용 최하급 던전이 되겠군.”

    하미준 헌터는 주위를 둘러보며 쭉쭉 걸어 나갔다. 세빈이가 그렇게 화를 내길래 D급도 꽤 위험한 던전인 줄 알았는데, 역시 강세빈표 과보호 중 하나였나 보다.

    “게이트 오픈이랑 폭발은 다른 거죠?”

    “그럼~”

    학교 다닐 때 던전과 생활 과목을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직도 헷갈리는 부분이 좀 많았다.

    “게이트 오픈은 말 그대로 게이트가 생기는 거야. 클리어할 때까진 닫히지 않아서 몬스터가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지.”

    “그래서 주변을 다 통제하는군요.”

    “응. 지금처럼 하급이면 상관없는데 B급 이상이면 조금 경계해야 해.”

    또각.

    비탈길을 가볍게 뛰어오르자 하미준 헌터의 구두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반면 게이트 폭발은 게이트가 소멸하는 현상이지. 던전 내부의 균형이 깨지거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클리어됐을 때 게이트가 폭발해.”

    “몬스터 수가 급증하고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유입되기도 해.”

    이번에는 세빈이도 설명을 덧붙였다.

    꼭 과외 듣는 기분이네.

    퍼엉.

    그때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음?”

    “드디어 나오네.”

    한 10미터쯤 먼 곳에 커다란 꽃이 흐물거리며 노란색 가루를 뿜어대고 있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라는 건 확실했다.

    “자, 이제 우리 지의 양 실력 좀 봐야지?”

    하미준 헌터가 재킷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꽃은 먼저 공격할 생각이 없는 건지 아까부터 계속 제자리에서 노란색 가루만 뿌려 댈 뿐이다.

    ‘아까 보니까 충전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아…….”

    [충전도 : 1%]

    [충전도 : 2%]

    .

    .

    .

    [충전도 : 50%]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소리를 내자 충전도가 1%씩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충전은 빠르게 됐다.

    기계 설명서를 읽듯 상태창에 나온 무기 설명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귀속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귀속자가 원하는 형태로 탄환을 출력할 수 있다.]

    [귀속자의 발언력이 증가한다.]

    ‘발언력’. 이 요상한 건 지금 쓸모가 없을 것 같고. 자아를 통해서라면 내가 원하는 형태로 탄환을 출력할 수 있다는 얘기지?

    ‘공격하는 것까지 몸이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대충 자세를 잡고 꽃을 향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우왁?!”

    커다란 탄환이 튀어나와 새하얀 궤적을 그리더니 이내 노란 꽃의 몸에 박혔다.

    퍼버버벙!

    그리고 그 몬스터는 이파리 몇 개를 남기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힘 조절이 안 됐나?

    그냥 적당하게 뽑아낼 생각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탄환이 튀어나왔다.

    “어, 엄청나네.”

    세빈이는 말문이 막혔는지 말하던 중간에 목을 가다듬었다.

    “…DF가 S5라고 했지?”

    “네? 아, 네.”

    하미준 헌터가 아까보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나와 꽃 몬스터의 잔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하하.”

    ‘그 정도구나.’

    헌터 생활을 꽤 오래 한 하미준 헌터마저 말을 잃은 걸 보면 정말로 엄청난 파괴력인가 보다.

    * * *

    하미준 헌터의 말대로 이 던전은 하급 중에서도 하급 던전인 것 같다. 나오는 몬스터라곤 내가 한 방에 보내버렸던 그 꽃 몬스터뿐이었고, 그마저도 잘 나타나지도 않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더 길었다.

    “어.”

    자아로 꽃 몬스터를 다섯 마리째 날려 보냈을 때쯤, 아까 우리가 들어온 게이트가 앞쪽에 보였다.

    “게이트에 손을 대면 보스 몬스터가 소환될 거야. 지의 양이 직접 해볼래?”

    “네.”

    꼭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처럼 하미준 헌터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고, 난 덕분에 몸 대신 머리로 던전을 배워 갔다.

    텁.

    약간 긴장을 하고 게이트에 손을 댔다.

    ‘…왜 이렇게 조용해?’

    뒤를 돌아 세빈이와 하미준 헌터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학부모처럼 먼발치에서 날 지켜보기만 했다.

    후우우웅.

    “어?”

    그때 내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걸렸다.

    “읏!”

    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웬 누런 형체가 내 머리 위로 맹렬하게 떨어졌고, 난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위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자아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음파가 넓게 퍼지더니 제법 두꺼운 실드를 만들어 냈다. 난 양손으로 그걸 지탱한 채 코앞까지 다가온 형체를 막을 준비를 했다.

    콰드득.

    “음?”

    뭐, 실드에 부딪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 손들에 의해 사지가 비틀려서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파사삭.

    몬스터―였던 것―가 처참한 꼴로 바닥에 처박히자마자 그림자 손은 다시 녀석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난 들고 있던 실드를 옆으로 치웠고, 실드는 공기를 약간 진동시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의야, 괜찮아?”

    세빈이가 사색이 된 채 급히 달려와 내 얼굴과 몸을 살뜰히 살폈다.

    “어, 어어… 멀쩡해.”

    “다행이다.”

    “근데 아까 그거 네 스킬이었어?”

    세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제대로 봤어, 지의 양. S급 공격계 스킬 ‘달그림자’야.”

    그때 하미준 헌터가 말을 덧붙이며 다가왔다.

    “그림자나 어둠이면 전~부 다룰 수 있는 스킬이지.”

    “그림자랑 어둠…….”

    나도 모르게 내 발밑을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세빈이의 적이었으면 이미 발목이 찢기고 시작하는 거네.

    “그나저나 지의 양, 방금 방어 막 뭐였어?”

    하미준 헌터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본능적으로 뭔가 만들어 내긴 했지.’

    자아로 사출되는 것들은 내가 원하는 형태, 내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나온다. 난 그걸 이용해서 넓은 실드를 뽑아낸 거고.

    “무기로 만든 거예요. 제가 원하는 형태로 뽑을 수 있다고 해서.”

    “학창 시절에 싸움하고 다녔어? 전투 감각이 장난이 아닌데.”

    “저 그런 애 아니거든요.”

    하미준 헌터를 째려보자 그가 크게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걸었다. 독하고 톡 쏘는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알아, 알아. 사실 강세빈 헌터한테 지의 양에 대한 걸 좀 들었거든.”

    “세빈이한테서요?”

    세빈이는 뭔가 반박을 하려는 것처럼 입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꾹 다물곤 그냥 웃어 보였다.

    뭐야, 뭔 얘기를 했길래.

    “자기 소꿉친구가 있는데 몸 사리는 법을 몰라서 걱정돼 죽겠다고 하더라고.”

    “…아.”

    “지의 양, 길거리 양아치한테도 덤비고 그랬다며? 누가 힘들어하는 거 절대 못 봐서.”

    “네. 뭐…….”

    그 주제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세빈이가 얘기한 게 구구절절 사실이라.

    어렸을 때부터 지유를 돌보던 게 익숙해서일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기보다 약한 인간들 괴롭히는 것도 참을 수 없고. 덕분에 학교 다니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적이 많긴 했다.

    ‘세빈이가 걱정한 이유도 알 만하지.’

    탱그랑.

    그때 하늘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아이템 획득]

    [소 눈알 / 최하급 부산물]

    ‘이 몬스터, 소였구나…….’

    세빈이가 처참히 찢어 놓아서 어떤 몬스터인지도 몰랐는데, 부산물을 보고 나서야 정체가 밝혀졌다.

    “자, 이제 슬슬 나갈까? 일단 게이트를 닫는 게 우선이니까.”

    하미준 헌터는 그 말과 함께 먼저 게이트 밖으로 나갔고, 나와 세빈이가 그 뒤를 따랐다.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재회]

    [보상 :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해금]

    ‘됐다!’

    게이트 밖으로 나와 문을 닫자마자 지령이 수행되었다.

    ‘보상으로 또 다른 사명을 받은 건 좀 골 때리지만.’

    “아, 맞다. 지의 양, 내가 무기 경량화시키는 법 안 가르쳐줬지?”

    그때 하미준 헌터가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경량화요?”

    “응. 갖고 다니기 쉬운 형태로 바꾸는 거.”

    하미준 헌터가 세빈이에게 슬쩍 눈짓을 하자 세빈이가 트렌치코트 소매를 살짝 걷어 보였다. 세빈이의 손목에 채워진 검은 팔찌가 갑자기 풀리더니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끼기기긱.

    얼마 안 있어 가느다란 검 한 자루가 세빈이의 그림자에서 솟아올랐다. 손잡이부터 도신(刀身)까지 전부 검은색이라 얼핏 보면 그냥 그림자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역작, ‘영(影)’.”

    “보통 이렇게 액세서리 형태로 많이 바꾸고 다녀.”

    “으음… 그럼.”

    자아를 쥔 채 머릿속으로 한 가지 액세서리를 떠올렸다.

    키이잉.

    자아는 금방 내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어 내 손안에 들어왔다.

    “피어싱이군. 좋은 형태야! 나도 내 무기를 피어싱으로 바꿨거든.”

    내가 자아를 귀에 끼우는 동안 하미준 헌터는 자기 눈썹에 박힌 피어싱을 가리키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 그게 무기였군요.”

    “응. S급 손도끼 ‘나무꾼’.”

    이름이 특이하네.

    ‘회귀 전에 쓰던 무기도 얻었고 경량화까지 했으니 일단 출발선에 섰다고 할 수 있겠네.’

    손으로 자아를 만지작거리자 자아가 작게 진동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 * *

    “어으…….”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채 내 방 이부자리 위로 엎어졌다.

    오전부터 고단한 하루였지. 각성 검사를 받고, 지난 시간선부터 내가 써왔던 무기도 되찾고, 무기에 적응하겠다고 던전까지 돌고…….

    ‘그래도 성과는 있다.’

    난 상태창을 켜 새로 개방된 사명을 확인했다.

    <사명>

    [사상 최강의 무기를 다루는 자]

    [무기를 길들여 능력을 해방하라.]

    [달성도 : 0%]

    사상 최강의 무기라. 지금은 탄환을 발사하고 실드를 만드는 게 전부인데. 내 무기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솔직히 두근거렸다.

    사라락.

    몸이 많이 피곤하긴 했는지 이불이 그대로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 드네.

    ‘…기분치고는 너무 리얼한데.’

    “어, 어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내 방 천장이 점점 멀어지고 난 후였고, 푹신한 요가 나를 끌어당기는 건 기분 탓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정말로 나는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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