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6화 (6/366)

6화

위이잉.

미래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이네.”

“안녕하세요, 회장님.”

정장을 빼 입은 김강희 회장이 젠틀하게 미소 지으며 스크린에 뜬 스캔 결과를 살폈다. 그가 스크린을 보는 동안 미래 씨는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 가세요? 옷이 장난이 아니네.”

“이따 청와대와 미팅이 있어서. 아무튼 지금은…….”

김강희 회장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눈동자가 맹수의 것처럼 빛났다.

“우리 지의 씨 등급 좀 보고 싶은데.”

미래 씨가 태블릿을 두드려 다시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엔 여전히 내 검사 결과가 떠있었다. 김강희 회장은 놀란 기색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스크린을 한참 동안 뜯어보았다.

“…진짜 SS급이었군요.”

“등급도 등급인데 DF 꼬라지 좀 보십셔. 초기인데 S5라고요.”

“WHDB엔 전송 안 했나?”

“당연하죠. 온 세상이 뒤집어질 게 뻔한데.”

김강희 회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실감이 잘 안 나네.’

존재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질 정도의 힘이 내게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지의 씨는 어떻게 하시고 싶은가요?”

“네?”

그때 김강희 회장이 내게 질문했다.

“상급 헌터의 수가 곧 국력 그 자체가 되는 시대입니다. 헌터 협회의 회장으로서, 저는 지의 씨가 헌터가 되길 바라요.”

“회장님.”

“하지만.”

세빈이가 중간에 말을 끊었지만 김강희 회장은 세빈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각성자로서 지의 씨께 묻고 싶어요.”

“…….”

“본인의 힘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은지, 아니면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지.”

김강희 회장이 무감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질문은 그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겠지.

만약 내가 덜컥 SS급으로 각성해 버린 거라면, 난 아마 평범한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매일 그 옷가게에 출근하면서 집에 쌓인 빚을 갚기 위해 허덕이는 삶을.

‘하지만 지금은 달라.’

세상을 구하면 지유를 살릴 수 있어. 내 하나뿐인 동생을 되살릴 수가 있다고.

쿵, 쿵.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터가 되겠습니다.”

“지의야!”

“후회할 수도 있어요.”

세빈이의 외침 위로 김강희 회장의 경고가 얹혔다. 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김강희 회장과 눈을 맞췄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게요.”

내 인생에 있어 후회스러운 일은 지유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때뿐이다.

“…알겠어요. 안 소장?”

“예, 예.”

김강희 회장이 미래 씨를 향해 눈짓하자 그가 태블릿을 몇 번 두드렸다.

[해당 정보를 WHDB에 전송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자, 이제 거 뭐냐……. 이 정보를 WHDB에 보낼 거다.”

“WH……?”

“세계 헌터 데이터베이스. 각성 스캐너로 스캔한 각성자들의 정보가 모여 있는 곳이지. 물리적 위치는 미국 어디라는데, 기본적으로 관리하는 놈들은 무국적자들이야.”

미래 씨가 ‘예’를 터치하자 화면이 넘어갔다.

[시스템 등록명을 조합 중입니다.]

[예상 조합 시간 : 1분]

“여기에 등록되는 건 DB 시스템이 정해주는 니 이름과 아까 봤던 검사 결과들……. 아, 그리고 국적도.”

“이름을 정해 준다고요?”

“엉. WHDB가 니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알아서 이름을 지어 주거든. 뭐, 어차피 뉴스 통해서 니 정체는 까발려지겠지만.”

우웅.

태블릿이 진동했다.

[구세주]

[속성 : 빛]

[고유 스킬 등급 : SS]

[보유 스킬 종류 : 공격계]

[DF : S5]

[국가 : 대한민국]

[DF 순위가 갱신됩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구세주라…….’

저 데이터베이스가 내 사명을 읽었을 리가 없는데 너무나 절묘한 호칭이다.

그때 미래 씨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도 돼요.”

그가 묻기 전에 대답을 했고, 미래 씨는 헛웃음을 치며 ‘예’를 눌렀다.

[WHDB에 ‘구세주’의 정보가 등록되었습니다.]

[DF 순위가 갱신되었습니다.]

[(NEW) RANK 1. 구세주]

[(▼) RANK 2. HELL]

[(▼) RANK 3. 영귀]

[(▼) RANK 4. 明王]

[(▼) RANK 5. 염제]

▼더 보기▼

‘저질렀네.’

분주하게 깜박거리는 태블릿 화면을 보고 나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이제 내 인생은 완전히 뒤집히겠구나.

삐빅.

그때 김강희 회장의 손목에 있던 스마트 워치에서 짧은 알람이 울렸다.

“저런, 이제 가봐야겠군. 지의 씨, 기자 회견 일정은 제가 나중에 전달해 줄게요.”

“회장님……!”

“강세빈 헌터는 지금 바로 하미준 헌터에게 연락해서 지의 씨 무기 제작 스케줄을 잡아 주게. 그럼 이만.”

위잉.

김강희 회장은 다시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연구실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야, X 됐네. 감당 가능하겠냐?”

정적을 뚫고 미래 씨가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 오지랖 부리던 짬바가 있어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익숙하다. 물론 앞으로 내게 쏟아질 관심은 그것의 몇억 배 정도 될 거라는 게 문제지만.

미래 씨를 향해 애써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버티는 건 자신 있어서.”

“허, 별 놈을 다 보겠네. 지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 뭐.”

미래 씨가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커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기묘한 체향이 훅 끼쳤다.

“정신 바짝 차려. 헌터 놈들 세상은 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 테니까.”

“걱정…해 주시는 거죠?”

“걱정이겠냐?”

말투는 까칠했지만 말하는 의도 자체로 보면 선한 사람이네.

“야, 멍 그만 때리고 하미준한테 연락이나 해.”

“아, 그래야죠.”

김강희 회장이 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세빈이가 허공을 쥐자 갑자기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표정 살벌하네.’

세빈이는 내가 헌터가 되는 걸 처음부터 걱정했다.

내게 벌어질 일을 나보다 더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네, 하미준 헌터. 지금 사무실인가요?”

세빈이가 ‘하미준’이라는 사람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하미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 * *

“하하! 회장님한테도 들었고, WHDB도 확인했어. 신지의 양 맞지?”

“네. 안녕하세…….”

“나는 하미준이야. 미준 언니, 미준이, 미준 씨, 아무렇게나 불러 줘.”

“아, 네…….”

올 블랙의 집무실 안, 지금 내 눈앞에는 TV에서 몇 번이나 본 여자가 있다.

한국의 세 번째 S급 헌터, 하미준. 흔치 않은 S급 창조계 스킬을 보유한 헌터였고, 상급 헌터들의 무기는 전부 이 사람이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창조 능력은 세계 수준이었다.

하미준 헌터의 맞춤 제작 무기는 적게는 수십 억, 많게는 수천 억을 호가하지만, 그럼에도 하미준 헌터한테서 무기를 구매하려는 헌터들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 능력을 전부 가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그나저나 머릿결이 아주 좋네. 샴푸는 뭘 써?”

“하미준 헌터.”

“아하하, 알겠어, 강세빈 헌터. 지의 양 미모에 순간 홀려서 그만.”

저 미친 카사노바 기질. 내가 저 인간을 TV에서 자주 본 건 저 인간이 유독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쳐서이기도 했지만 온갖 스캔들에 휘말려서 연예 뉴스 단골이라는 점이 더 컸다.

‘그런데도 애인이 끊이지가 않는 건 외모랑 돈 때문인가?’

하미준 헌터는 호불호 갈리는 잘생김의 소유자였다. 쌍꺼풀 없는 눈이 위쪽으로 쭉 찢어져 전체적으로 뱀 같은 인상인 데다가 헤어스타일까지 왁스를 바른 포마드. 일단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인사는 이쯤에서 끝내고, 이제 슬슬 지의 양 무기를 한번 뽑아 볼까?”

커다란 사장님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180은 그냥 넘겠네.’

앉아 있을 때도 절대 작은 키가 아니었는데 서니까 장난 아니게 컸다.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난 그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지의 양, 어떤 스킬이야?”

“목소리로 공격하는 스킬이요.”

“아직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

“네.”

“흐응~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 되겠네.”

푸쉬이.

초록색 연기가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더니 이내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커다란 방망이가 나타났다.

“이게 내 스킬, ‘도깨비 방망이’야. 지의 양의 내면을 반영해서 무기를 만들어 주지.

“제 내면…….”

하미준 헌터가 방망이로 허공을 갈랐고, 그것을 따라 초록빛 연기가 느릿하게 궤적을 그렸다. 방망이에서 시선을 떼고 하미준 헌터를 바라보니 그가 퍽 다정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지의 양, 빛을 떠올려 줄래?”

“빛이요?”

“응. 말 그대로 밝은 빛도 좋고 좋은 기억도 괜찮아. 뭐든 간에 지의 양을 밝게 만드는 거.”

가장 밝은 빛, 좋은 기억.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내 의식은 육상 대회에서 처음 이겼던 순간에서 허름한 우리 집으로 옮겨갔다. 곰팡이 핀 벽지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건강이 잠깐 좋아져서 퇴원한 지유가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유는 괜히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그려 놓고 ‘언니’라고 적는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르륵 웃는다. 야윈 얼굴이 나를 향하고 눈매가 반으로 사르르 접힌다.

키이이잉.

살며시 눈을 뜨자 하미준 헌터에게 잡힌 오른손이 새하얀 빛에 휩싸여 있었다.

“자, 갑니다~”

“응? 어어어?!”

그때 커다란 방망이가 내 손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떨어졌다.

퍼엉!

방망이를 맞고 손이 날아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방망이는 내 손에 닿는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졌고 새하얀 빛이 꾸물거리며 뭔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툭.

빛으로 된 구체가 내 손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이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무기 귀속]

[자아]

[SS급]

[빛 속성]

[최초의 형태]

쿵, 쿵, 쿵.

두근대던 심장은 어느새 가슴 전체를 울릴 정도로 거세게 뛰었다.

[자아]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기억을 되찾으며 지난 시간선의 업을 청산하라.]

[달성도 상승]

[달성도 : 6%]

본능적인 느낌과 상태창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회귀 전의 내가 쓰던 무기구나.’

은색 꽃이 장식된 새하얀 확성기. 내 무기인 ‘자아’였다.

“와, 이런 무기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자아의 손잡이 앞엔 방아쇠가 달려 꼭 총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무기 이름이 뭐야?”

“어… 자아요.”

“와우, 자아의 반영인데 무기 이름까지 ‘자아’라니. 멋있네, 마치 지의 양처럼.”

하미준 헌터의 느끼한 윙크를 무시한 채 상태창을 열었다. 스킬 정보창 위쪽으로 못 보던 글씨가 생겨나 있었다.

[자아]

[SS급]

[빛 속성]

[무기 비문 : 울부짖어라, 외쳐라, 목이 찢어질 때까지 소리쳐라. 네 목소리는 온 세상을 지킬 것이다.]

[귀속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귀속자가 원하는 형태로 탄환을 출력할 수 있다.]

[귀속자의 발언력이 증가한다.]

[충전도 : 0%]

[*귀속자의 목소리를 주입해 주세요.]

[돌발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재회]

[지령 : 사상 최강의 무기로 던전을 클리어하라.]

[보상 : 사명 ‘???’ 해금]

상태창 위로 돌발 지령이 떴다.

지령명은 ‘재회’, 그리고 사상 최강의 무기로 던전을 클리어하라고?

삐비빅.

정신없는 와중에 하미준 헌터의 집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렇게 동시에 온 신호라면 역시…….

“저런. 북한산 근처에서 D급 게이트가 감지됐다는군.”

“한 시간 안에 오픈될 것 같네요.”

게이트 오픈 경보였다. 신규 게이트가 생기면 클리어 전까지는 닫히지 않기 때문에, 헌터들이 들어가 빠르게 공략해 줘야만 한다.

“흐음…….”

하미준 헌터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쪽만 올린 눈썹과 뱀처럼 찢어진 날카로운 눈이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의 양의 무기를 여기서 시험해 보는 게 어떨까?”

“네?”

난데없는 소리에 하마터면 자아를 놓칠 뻔했다.

“…제정신이세요?”

“아하하~ 강세빈 헌터 그런 말도 쓰는구나?”

하미준 헌터가 세빈이의 어깨를 툭 치려 했지만 세빈이는 그조차도 받아 주지 않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런 얼굴 처음 보네.’

당장이라도 세빈이의 눈에서 스파크가 튈 것 같아서 일단 두 사람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저 아직 헌터 등록 전인데 괜찮을까요? 문제없어요?”

“일단 WHDB에 등록된 각성자잖아. 딱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하미준 헌터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D급이면 솔직히 B급 헌터 혼자서 가도 충분히 클리어 가능해. 그리고 DF 순위 1위에 빛나는 ‘구세주’ 지의 양이 있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래도 며칠 전에 막 각성한 애를……!”

“좋아요, 가요.”

“지의야!”

세빈이는 나를 타박하듯 소리쳤다. 뒤를 돌자 세빈이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나 같아도 내 친구가 철없는 소리하면 저런 얼굴로 쳐다봤겠다.’

하지만 지금은 돌발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무기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눈치 없는 척을 해야 한다. 난 세빈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일부러 밝게 웃어 보였다.

“무기도 생겼고 너 같은 베테랑 헌터들이랑 같이 가니까 괜찮겠지. 나도 이제 조만간 헌터가 될 거고, 그치?”

“자, 어쩔래. 강세빈 헌터? 난 이미 파견 자원했어.”

하미준 헌터까지 세빈이를 몰아세웠다. 세빈이는 아랫입술을 까득 씹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몇 번 두드렸다.

[파견 자원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풉.”

뒤통수에서 하미준 헌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고 내 어깨를 감싼 채 입을 열었다.

“얼른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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