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강세빈……?”
세빈이였다. 하나뿐인 내 소꿉친구이자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
접수 데스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세빈은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여긴 어떻게 왔어? 혹시 아빠가 연락했……. 웁.”
툭.
세빈이가 자기 품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덕분에 내 얼굴은 세빈이의 가슴팍에 완전히 묻혔고 어깨 위로 눈만 빼꼼 나왔다.
“야. 헐, 대박.”
“뭐야, 아니, 어?”
“강세빈 헌터 맞지? 저 환자분이랑 무슨 사이야?”
어깨 너머로 보이는 간호사와 병원 직원들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했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했지만 자기들끼리 뭐라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사이 아닌데…….’
세빈이를 떨어트려 놓으려 어깨를 손으로 밀어 봤지만 5년 차 베테랑 헌터, 그것도 공격계 S급 헌터를 떼어 내기에 내 신체는 너무 약했다.
“다행이야.”
그때 세빈이가 중얼거렸다. 이를 꾹 물고 말하는 것처럼 한껏 억눌린 목소리였다.
“일단 좀 놓고 말하면 안 될…….”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정말로.”
‘아…….’
날 안은 세빈이의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 S급 게이트 폭발 사고로 열 살에 부모님을 잃었는데 이번엔 가장 친한 친구까지 잃을 뻔했으니, 세빈이에게 있어 꽤 무서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니까.’
“…괜찮아. 나 멀쩡해.”
세빈이의 등을 토닥이며 안심시키자 그제야 세빈이가 팔을 풀었다.
‘아이고, 죽을상이네.’
세빈이의 얼굴엔 그림자가 껴있었다. 전등을 등지고 있어서 더 그런 것도 있지만 오늘따라 눈썹 뼈와 콧대 근처에 진 그림자가 진해 보였다.
툭 치면 울겠어, 아주.
일단 세빈이를 복도로 끌고 와 의자에 앉혔다.
“좀 진정됐어?”
“…응.”
‘안 된 것 같은데.’
세빈이는 내 환자복 소매를 손가락 끝으로 꼭 잡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이랑 조금도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대형견 같아서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일단 꾹 참았다.
“각성했다며.”
“어, 어떻게 알았어?”
“아버님께 전화 왔어. 너 병원에 있다고.”
“아빠가 말했구나.”
세빈이에게까지 걱정 끼치고 싶진 않았는데……. 뭐, 아빠랑 엄마도 이쪽으로 아는 사람은 세빈이밖에 없으니까 그랬겠지.
“등급이랑 속성 뭐야?”
“…SS급 빛 속성.”
쿵.
“깜짝이야!”
“준석 씨, 괜찮아요?”
“아니, 왜 멀쩡히 있던 전화기가 떨어지고 난리야.”
‘타이밍 뭐야.’
내가 세빈이에게 등급을 말하자마자 접수 데스크가 소란스러워졌다.
“…종류는?”
“종류? 아, 그 공격계.”
탱그랑.
“어이구, 이번엔 또 뭔데?”
“차트 떨어졌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진짜. 일단 제자리에 다시 꽂아줘요.”
이상하게 소란스럽네.
접수 데스크 쪽을 슬쩍 본 후 다시 세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격계라고…….”
세빈이는 미소를 띠었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끝이 그 사실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D급 각성자부터 헌터 등록 의무, C급부터는 던전 파견이 의무화된다. 특히 공격계나 방어계처럼 실전에서 바로 쓰이는 계열의 스킬이면 꼼짝없이 던전으로 끌려가야 했다.
세빈이가 충격을 받은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이겠지.
“그래서 내일 정식적으로 검사받기로 했어. 아까 낮에 김강희 회장이 왔다 갔거든.”
“벌써 그렇게… 진행이 됐구나.”
세빈이가 고개를 툭 떨궜다.
“난 아무것도 몰랐는데.”
쏟아진 앞머리 때문에 세빈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얘가 얼마나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진짜로 헌터 될 거야?”
“응?”
세빈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탓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던전 안은 지의 네 생각보다 더 위험해. 아무리 상급 헌터도 잠깐 방심하면 바로 목숨이 날아가.”
툭.
세빈이 내 어깨에 이마를 댔다.
“너가 그렇게 되면 난…….”
“세빈아.”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세빈이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세빈은 말을 뚝 멈추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가운 숨결이 손등에 닿았다.
사실 세빈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헌터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 아쉬운 소리가 입 밖으로 샌 것이다.
“걱정 마.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야.”
상투적인 말을 건네자 세빈이가 얼굴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새까만 눈동자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 보이고 있었다.
“…그 말 꼭 지켜 줘.”
“알았어.”
세빈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얘를 또다시 혼자 두지 않도록, 절대로 죽지 말자.’
나 스스로도 다짐하며 세빈이의 등을 토닥였다.
* * *
세빈이의 차가 청계천을 지나 광화문 쪽으로 부드럽게 나아갔다.
광화문역 2번 출구 앞, 여러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 삐죽하니 튀어나온 검은색 건물이 바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였다. 도시의 불빛이 비칠 정도로 매끈한 건물 외벽은 꼭 어떤 보석을 깎아 놓은 것 같았다.
세빈이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는 대신 로비 앞에 차를 세웠고, 양복을 입은 직원이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젠틀한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이더니 건물 입구의 자동문 버튼까지 눌러 주었다.
천장이 높은 건물 안에는 대리석 가구들이 깔끔하게 놓여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정면으로 안내 데스크가 보였다.
헌터 협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검은색의 홀로그램 글씨가 로비 정중앙의 방패 오브젝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쿵.
“악!”
관광객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살필 즘 세빈이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고, 난 보기 좋게 그 등에 얼굴을 박았다.
“괜찮아?! 아, 미래 씨! 여기예요!”
세빈이는 내 얼굴을 살피랴,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랴 분주했다. 나는 얼얼한 코를 만지며 세빈이의 어깨 너머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할 일 많아 죽겠는데 뭔 갑자기 검사를 하래, 썅.”
흰 의사 가운을 대충 걸친 여자가 한껏 날이 선 말투로 세빈이를 향해 짜증을 냈지만 세빈이는 늘 그렇듯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었지만 이리저리 삐져나와 있었고 가로로 쭉 찢어진 매서운 눈 사이는 한껏 구겨져 있었다. 그가 입은 흰 가운에는 ‘안미래’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는 세빈이를 밀치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이내 내 어깨를 두어 번 치며 입을 열었다.
“안미래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신지의라고 합니다.”
미래 씨는 가운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닿는 슬리퍼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고개만 들어 세빈이를 쳐다보자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미래 씨를 따라 온 곳은 그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분명히 ‘개인’ 연구실이라고 했는데 규모는 절대 혼자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벽을 따라 여러 기계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방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책상에는 비싸 보이는 태블릿PC 수십 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미래 씨는 헌터 협회 부산물 연구소장이야. 던전 부산물에서 첨단 물질을 최초로 추출한 사람이지.”
“헐, 진짜?”
그냥 성격 더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이었네.
미래 씨는 캡슐처럼 보이는 커다란 기계를 만지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너 S급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회장님이 이렇게 급하게 검사를 요청할 리가 없는데.”
“SS급이요.”
“에에에에엥?”
미래 씨가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금이 간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엔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었지만 금방 동태눈이 되었다.
푸쉬이이.
굳게 닫혀 있던 캡슐의 문이 열렸다.
“뭐, 진짠지 아닌지는 들어가 보면 알겠지. 들어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캡슐 안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위이이잉.
캡슐의 벽에 붙어있던 동그란 링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고 금방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올라왔다.
“이제 나와.”
캡슐 밖으로 나오자 미래 씨가 손가락으로 커다란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는 ‘출력 중’이라는 글자와 함께 회색 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저 기계, 뭔지도 모르고 들어갔지?”
“네.”
“쯧.”
미래 씨가 혀를 차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저건 각성 스캐너다. 첨단 과학의 총총총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지.”
“대단하네요…….”
“기계로 볼 수 있는 건 총 다섯 가지 항목.”
미래 씨가 손을 쫙 펼쳤다.
“네 속성, 전투 적합 유형, 고유 스킬 등급, 갖고 있는 스킬 종류, 그리고…….”
미래 씨의 눈이 반짝 빛났다.
“네 파괴력을 숫자로 환산한 값인 DF(Destruction Figure).”
‘아, 뉴스에서 본 적 있다.’
혼자서 한 번에 몬스터를 얼마나 해치울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 DF. 공격력만 계산한 값이기 때문에 S급 방어계 헌터보다 A급 공격계 헌터의 DF가 더 높게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수치로 전 세계 헌터들의 랭킹이 비공식적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과아연 니 등급이랑 DF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네.”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데.’
지이이잉.
그때 스크린에 내 사진과 함께 상태창 같은 화면이 떴고, 연구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속성 : 빛]
[전투 적합 유형 : 광역 공격, 단일 공격]
[고유 스킬 등급 : SS]
[보유 스킬 종류 : 공격계]
[DF : S5]
[순위가 갱신되었습니다.]
[해당 정보를 WHDB에 전송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쾅!!
태블릿PC에 알림창이 뜨기가 무섭게 미래 씨가 주먹으로 ‘아니오’를 내리쳤다. 알림창은 화면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박혔다.
“X발. 이게 뭐야.”
저게 도대체 어떤 수치길래 그러지?
DF가 뭔지만 알고 어떻게 보는지는 잘 몰라서 저 S5라는 글자가 어느 수준을 나타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S5……?”
‘세빈이도?’
소파에 앉아있던 세빈이까지 몸을 일으켜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쭉 뺐다.
“니 DF 어떻게 보는 줄 모르지?”
“아, 네.”
“알파벳은 몬스터 등급, 뒤에 있는 숫자는 몬스터 마릿수다.”
그렇다는 건…….
“니는 S급 몬스터 다섯 마리를 혼자서 처죽일 수 있는 미친놈이다, 이 말이야.”
쿵.
그제야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S급 몬스터 한 마리만 있어도 도시 하나가, 아니 어쩌면 나라 하나가 망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런 S급 몬스터를 나 혼자서 다섯 마리를 잡을 수 있다니.
‘설마 이것도 회귀의 영향인가?’
아무래도 이전 시간선의 내가 갖고 있던 전투 감각과 각성 때문인 것 같다. 얼떨떨한 기분에 혀로 입술만 축이고 있는데 미래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니 옆에 있는 놈도 처음 DF는 A87이었어. 제일 최근 기록은 S2 A75고.”
세빈이를 올려다보았다. 얘도 많이 놀란 건지 눈을 크게 뜨고 스크린과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일 높은 DF는 미국의 어떤 길드장 놈의 S2 A99야. 얘도 처음부터 이 수치는 아니었을 거고.”
틱.
스크린이 검게 물들었다. 미래 씨는 태블릿을 자기 옆구리에 끼우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빛 속성이라서 S급만 되어도 난리 날 판인데, SS급에 DF는 S5…….”
미래 씨의 말에 세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에 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빛 속성이 그렇게 희귀한 속성이야?”
“응. 다른 속성에 비해 빛이랑 어둠 속성 각성자는 수가 많이 적거든.”
“특히 빛 속성 놈들은 더 적지. 너가 각성하기 전까지 빛 속성 S급은 일본의 ‘센’뿐이었다.”
미래 씨는 말을 덧붙이며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러더니 이내 귀로 가져갔다.
“예, 회장님. 예, 예.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김강희 회장한테 걸었나?’
미래 씨는 핸드폰을 다시 책상 위로 던진 뒤 나를 바라보았다.
“회장님 내려오신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