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4화 (4/366)

4화

“신체적 이상 …습니다.”

“벌, 지났… 언제…….”

“진정하… 겁니다.”

여러 사람들의 음성이 내 주변을 이리저리 떠다녔다. 그중에는 익숙한 목소리도 있었고 내가 모르는 목소리도 있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좀처럼 눈뜨기가 힘들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눈에 힘을 주었다.

“으…….”

“지의야!”

“지의야!! 정신이 들어?”

시야가 흐려서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한참 깜박이고 나서야 주변이 환하게 보였고,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

엄마랑 아빠는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가, 내가 똑바로 엄마를 바라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윽!”

“환자분,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 것뿐인데 두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침대에 다시 몸을 조심스럽게 뉘었다.

“하,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아빠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고 엄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어쩌면 지유가 수도 없이 봤을 풍경이겠네.’

고개를 다시 천장으로 돌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다 갑자기 발밑에 게이트가 생겼고, 그 안에서 커다란 용과 마주했다. 꼼짝없이 죽나 싶었는데 갑자기…….

“나 각성했어.”

“어? 뭐, 뭐?”

“뭐라고?”

눈뜨자마자 뱉은 첫마디에 모두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침대 프레임을 잡은 채 입을 크게 벌렸고, 아빠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각성자가 됐다고 해서 무조건 헌터가 되는 건 아닙니다. E급이나 F급 같은 예비 각성자들은 사실상 일반인이랑 비슷한 수준이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유일하게 차분한 반응을 보였고, 그 말에 엄마랑 아빠는 약간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F급은커녕 완전히 비각성자인 부모 밑에서 상급 각성자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할 테니까.

‘SS급이라고 하면 아빠는 100% 기절하겠는데.’

“환자분 등급이……? 아, 처음엔 상태창 띄우는 것도 어려우시겠죠. 일단 협회에 연락해 드릴게요.”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대답한 후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상태창이라면…….’

[각성자 신지의]

[속성 : 빛]

[SS급 공격계 스킬 ‘호령여산(號令如山)’ : 자신의 목소리로 상대를 공격한다. 시전자가 아군으로 인식한 존재에게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말이 씨가 된다’ : 말로 상대방을 동요시켰을 때 상대방에게 강력한 암시를 담은 ‘말의 씨앗’을 심는다. 상대방이 시전자에게 ‘감화’되면 ‘말의 씨앗’이 개화하고 시전자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개화한 ‘말의 씨앗’만큼 고유 스킬의 파괴력이 증가한다.]

선생님의 말과 달리 난 상태창을 너무 쉽게 열 수 있었다.

두 번째 인생이라 그런가. 몸으로 기억하는 게 확실히 있는 것 같네.

“조금 있다 연락 올 겁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응?’

촤라락.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침대 주변의 커튼이 걷혔다. 다 해진 커튼 너머로 나타난 건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미안해요.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김강희입니다.”

김강희, TV에서나 보던 사람이었다.

“김…강희 회장 맞지?”

“뭐야?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

“저기 누워 있는 애랑 아는 사인가?”

그의 등장에 이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회, 회장님. 여기까진 어떻게 알고…….”

의사 선생님은 잔뜩 당황한 눈치로 김강희 회장을 바라보았고, 그는 제법 다정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눈가에 깊게 진 주름이 나이를 보여 주고 있었지만, 새파란 눈 안에 든 총기는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김강희, 대한민국 최초의 S급 헌터이자 아마 전 세계 최초의 S급 각성자. 점성계 스킬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킬 덕에 게이트가 발생하는 걸 가장 먼저 파악했고, 대한민국 최초의 게이트 오픈 사태 때 사망자 0명이라는 기적을 이루어 냈다.

‘저 사람이 지금의 헌터 체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솔직히 과언은 아니지.’

게이트의 등장 이후, 김강희 회장은 각성자 의무 등록제를 제안했고, 각성자들의 관리가 귀찮았던 정부는 이를 승인했다. 김강희 회장은 각성 사실을 신고한 각성자들을 ‘헌터’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던전 클리어와 몬스터로부터 세상을 지킬 의무를 부여했다. 대신 던전에서 얻은 보상을 전부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 각성자들은 각성자 의무 등록을 거부하며 던전을 마구잡이로 토벌하고 보상을 약탈했다. 결국 헌터와 미등록 각성자가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결과는 당연히 김강희 회장의 헌터들이 승리했다.

‘세상을 지킬 의사가 있는 사람만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

김강희 헌터의 이 기조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이끌어냈고, 전 세계적으로 협회나 길드로부터 헌터 자격을 받은 각성자만이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던전도 협회나 길드에서 직접 관리했다. 무분별한 던전 클리어는 던전의 균형을 깨트리고 예상치 못한 게이트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함께 관리했다.

아무튼 이 모든 체제를 확립한 위인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김강희 회장이다.

“신지의 씨 부모님 되시죠?”

“네? 아, 네…….”

“정말 실례지만, 잠깐 지의 씨와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네, 뭐……. 괜찮니?”

엄마는 얼떨떨한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다 내게 시선을 건넸다.

“으응.”

물론 나도 비슷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직 이 인간이 나를 왜 찾아온 건지 전혀 모르니까.

“감사합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

김강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차라락.

그는 병실 커튼을 꼼꼼하게 친 후 내 침대 옆에 있는 간이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일단 민간인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으로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네? 아니, 뭐 사과까지야…….”

“그동안 게이트 센서나 제 능력이 잡아내지 못하는 게이트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큰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하긴…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던전 감지 능력은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 1등이니까.

김강희 회장은 우아한 손짓으로 짧게 친 머리를 살짝 귀에 건 후 안경을 살짝 올렸다. 렌즈 너머로 푸른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속성 전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속성 전염, 각성하는 사람들 중 속성의 영향으로 신체에 변화가 오는 현상이다. 머리카락 색이 변하는 게 가장 흔한 케이스고, 눈동자 색이 변하는 건 극히 일부라고 했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지식을 떠올릴 때쯤, 근본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근데 저를 왜 보러 오신 건가요?”

그제야 김강희 회장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첫 번째 목적은 사과하기 위해서예요. 헌터로서의 첫 번째 의무를 지키지 않은 거니까요. 그리고…….”

“허억!”

“와!”

그때 커튼 너머로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과 탄식이 들려왔다.

‘뭐야, 또 누가 왔나?’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짝 벌어진 커튼 틈 사이로 시선을 돌리는데 갑자기 커튼이 훤히 열렸다.

두근.

“어…….”

투블럭으로 짧게 친 붉은 머리카락과 검붉은 눈동자, 그리고 날렵한 만년필로 한 획에 그린 것 같은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반한 건 아닌데.’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사랑에 빠진 순간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단 말이지.

“아, 왔군. 인사해요, 신지의 씨를 구한 헌터입니다.”

“…최민입니다.”

쿵.

빨라지던 심장은 결국 ‘최민’이라는 이름 하나로 크게 동요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지.

나조차 내가 이해되질 않았다.

“국내 두 번째 S급 헌터예요. 그 던전에서 지의 씨를 구한 것도 최민 헌터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최민 헌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도 가볍게 묵례했다. 위로 올라간 눈매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도저히 가까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인사는 이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김강희 회장이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인 채 입을 열었다.

“혹시, 각성하셨나요?”

진지하게 물어오는 김강희 회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풋 웃었다.

“역시 그렇군요.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 F급으로라도 각성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혹시 속성이랑 등급이 어떻게 되죠?”

‘…말해 줘도 되나?’

막상 SS급이라는 걸 입 밖으로 꺼내려니 조금 망설여졌다.

혹시라도 이 두 사람 중 배신자가 있어서 날 죽이려 든다면? 내가 이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돌발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구원자 강림]

[지령 : 구원자가 세상에 왔음을 알려라.]

[보상 :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의 달성도 소폭 상승]

[제한 시간 : 10분]

‘이 이상한 상태창 또 떴네.’

혹시 다른 사람한테도 보이는 건가 싶어 눈알만 살짝 굴렸지만, 전혀 못 읽는 눈치였다.

이 돌발 지령은 적어도 내게 해가 되는 명령은 내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내 등급을 밝히자마자 죽었다면 지난 시간선에서 종말을 보기도 전에 이미 목이 날아갔겠지.

적당히 혀로 입술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빛 속성이고 SS급입니다.”

“SS급?”

[돌발 지령이 수행되었습니다.]

[구원자 강림]

[보상 :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의 달성도 소폭 상승]

달성도 100%가 되면 뭐라도 주나?

이상한 상태창이 사라지자 김강희 회장과 최민 헌터의 얼빠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떤 스킬이죠? 공격계인가요?”

“네. 공격계 스킬이고 목소리로 상대를 공격한다고 나와 있어요.”

“목소리라.”

김강희 회장이 손가락으로 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왜 최민 헌터한테서 익숙함을 느낀 걸까.’

TV에서 몇 번 봤나? 아니, 그런 걸로 낯익다고 생각하기엔 저 여자가 그렇게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사람도 아니고…….

검붉은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했다. 그 차가운 시선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몸이 회복된 후에 검사를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최민 헌터가 입을 열었다. 그는 감정이라곤 단 1그램도 담겨 있지 않은 얼굴을 한 채 김강희 회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강희 회장은 뭔가를 깨달은 양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낫겠네. 실례했어요, 지의 씨. 등급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네, 네…….”

“명함은 여기 둘게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거니까 혹시라도 인벤토리 열 수 있으면 안에 넣어 두세요.”

김강희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병실을 나갈 동안 최민 헌터는 커튼을 손으로 잡은 채 잠깐 그 자리에 서있었다.

‘뭐지?’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쯤 최민 헌터가 고개를 슬쩍 돌려 제 어깨 너머로 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몸조심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최민 헌터가 병실을 나섰다.

솔직히 입 다물고 있을 땐 무서워서 약간 쫄았는데, 저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두 사람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난 내게 벌어진 상황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었다.

첫째, 세상이 멸망하기 전으로 회귀했다.

둘째, SS급으로 각성했고, 아무래도 내가 이 세상의 구원자인 것 같다.

셋째, 사명인지 뭔지 하는 게 내 기억 되찾는 걸 도와주고 있다.

끝.

“뭐야, 이게.”

정리를 하고 보니 더 이상한 상황이네.

일단 사명부터 다시 보자.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

[세상을 종말로부터 지켜내라.]

[달성도 : 1%]

[보상 : 구원자의 소원]

[카르마를 밟는 자]

[기억을 되찾으며 지난 시간선의 업을 청산하라.]

[달성도 : 0%]

[보상 : ???]

[살신성인]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을 지켜라.]

[*살신성인의 사명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 대신 공격을 받았을 때 사망하지 않는다. 단, 고통은 느껴진다.]

[보상 : ???]

“소원……?”

사명 ‘세상을 구원하는 자’의 보상으로 ‘구원자의 소원’이라는 글자가 똑똑히 써져 있었다.

‘그럼 우리 지유도… 살릴 수 있는 건가?’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세상의 구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명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까짓 거, 내가 한번 구해본다.’

끼익.

침대에 완전히 몸을 기대자 침대의 이음새가 작게 울었다.

* * *

‘…잠이 안 와.’

김강희 회장에게 각성 검사를 받겠다고 연락을 한 이후로 왠지 모르게 긴장돼서 잠이 달아났다. 몸은 두 번째 경험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삐걱.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걷고 조심스럽게 병실을 나섰다. 환자들의 잠꼬대 소리와 일정한 속도의 호흡 소리를 뒤로한 채 복도로 나와 벽에 붙은 손잡이에 살짝 몸을 기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병원에 있는 건 오랜만이네.’

어둑어둑한 복도 벽에 서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접수 데스크 쪽을 바라보았다. 가끔 늦게까지 지유와 함께 있을 때마다 보던 풍경이었다. 간호사들의 말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그림자.

10년이 지나도 저 풍경은 바뀌지가 않네.

“응……?”

그림자 중 하나가 촛불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다른 그림자에 비해 유독 긴 그 그림자는 복도까지 쭉 뻗어 있었고, 난 접수 데스크 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네. 조, 조회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환자분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신지의입니다.”

“웬일이야. 저 사람이 여길 오고.”

‘나?’

접수 데스크 앞까지 걸어 나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가까워졌을 때, 내 이름을 부른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반으로 묶은 갈색 머리카락, 진한 눈매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강세빈?”

세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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