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화 (2/366)
  • 2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냐세여! 원하시는 사이즈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지의는 손으로는 끝없이 어질러진 옷을 개고 입으로는 기계적인 멘트를 뱉었다. 명동 한복판에 있는 대형 옷가게에서는 조금의 여유도 사치다. 아무리 던전 부산물로 인해 온갖 첨단 기술들이 보편화되었다고 해도 사람의 손이 필요한 부분은 언제나 있었다.

    “민지호 헌터 콜라보 티셔츠 재고 있나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금일 입고된 콜라보 티셔츠는 전부 팔렸고 추가 입고 날짜는 미정입니다.”

    오늘 지의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모든 아르바이트생들의 적, 헌터 콜라보 제품 때문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연예인만큼이나 헌터들의 인기가 치솟는 시대다 보니, 팬들이 아침부터 줄 서서 제품을 쓸어 가는 일이 허다했다.

    ‘저 민지호란 애가 그렇게 유명한가?’

    지의는 고개를 들어 매장 벽에 붙은 콜라보 포스터를 쳐다보았다. 푸른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게 묶은 여자가 콜라보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다.

    물론 연예인이 헌터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지의의 시선은 어느새 맞은편 영화관에 걸린 커다란 광고판으로 넘어갔다.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예쁜 남자가 웃는 사진 옆에 캘리그래피가 크게 박혀 있었다.

    S급 아이돌 한진우 탄신일, 너의 매일매일을 응원해.

    S급 치유계 헌터, 한진우. 비인기 남자 아이돌의 메인 보컬이었지만 여의도 게이트 폭발 사고 때 S급으로 각성한 유일무이한 케이스다. 전 세계 헌터 중 S급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터 협회는 그가 다른 해외 길드에 스카우트당하기 전에 그를 왕자처럼 모셔왔다.

    지의는 한진우에게서 눈을 뗀 후 마네킹에 입힌 옷을 정리했다. 어차피 헌터니 뭐니 하는 것들은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점심 뭐 먹을래?”

    아까까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던 매니저가 지의 옆으로 불쑥 나타났다.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그럼 떡볶이 먹자. 어제 먹방 보다가 겁나 땡겨서.”

    “좋아요!”

    매니저가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켤 동안 지의는 바지를 옷걸이에 마저 걸었다.

    지의가 이 옷가게에서 일한 지도 1년이 지났다. 지역에서 나름 알아주는 육상 유망주였지만 죽은 동생의 병원비로 인한 빚 때문에 중간에 관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덜컥 취업한 곳이 바로 이곳, 명동의 한 백화점에 있는 대형 옷가게였다.

    “매운맛 보통으로 시킬게?”

    지의는 매니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린 후 다시 피팅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제 와서 미련은 없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건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분명 부모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오롯이 자신이 감내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 *

    “진짜 토 나오게 힘들었네.”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한 번 휩쓸고 간 피팅룸을 정리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고, 덕분에 다 끝내고 나니 퇴근 시간이 되었다.

    ‘도대체 옷을 어떻게 입으면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거야?’

    지의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걸이들과 번호판을 제자리에 놓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대충 마무리를 한 후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카운터에 있던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생했어. 얼른 들어가 봐~”

    비척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섰다. 맞은편에 있는 영화관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팝콘 냄새가 지의의 코를 찔렀다.

    ‘집에 반찬 뭐 있더…….’

    “내가 누군지 알고나 그러는 거야?!”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지의가 에스컬레이터에 타기 직전 갑자기 고성이 들렸다. 흔한 인상의 남자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로 영화관 유니폼을 입은 여자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엎어진 콜라와 축축해 보이는 남자의 바지.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 만하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비 지금 바로…….”

    “씨X. 뭔 세탁비는 세탁비야. 너 이게 지금 어떤 바지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전형적인 패턴에 길을 가던 모두가 멈칫거리며 실랑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직원을 도와주진 않았다.

    남자의 일방적인 고성이 계속해서 지의의 귀에 꽂히고, 직원의 얼굴은 점점 더 울상으로 변해갔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선 지의의 두 발은 본드를 붙인 양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 씨… 진짜 이놈의 성격은 안 고쳐진다니까.”

    결국 지의는 실랑이의 현장을 비집고 들어갔다. 난데없는 불청객의 등장에 남자가 몸을 살짝 떨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건 또 뭐야.”

    “어떤 바지를 입고 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사람한테 그렇게 욕을 하면 안 되죠.”

    지의가 직원을 제 등 뒤로 숨겼다.

    “허, 참 내. 어이가 없네, 진짜.”

    남자는 얼마 있지도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코웃음을 쳤다.

    “저기요.”

    남자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더니 팔짱을 끼며 지의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헌터거든요, 헌터? 유하인이라고 들어보셨으려나?”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

    “그래서 이 바지도~ 그냥 바지가 아니라 인챈트를 덕지덕지 붙인 바지라고요. 아시겠어요?”

    ‘이름은 하인이면서 하는 짓은 상전이 따로 없네.’

    지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남자와 바지를 번갈아 보았다. 인챈트를 덕지덕지 붙였다는 바지치곤 방수 기능이 전혀 없었다. 지의는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럼 화를 내지 말고 이게 얼만지 그냥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그럼 보험 처리를 하든 뭘 하든 할 텐데.”

    “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니들이 여기서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는 것도 다 헌터들이 목숨 걸고 싸워 줘서 그런 거야, 알아?!”

    남자의 호통에 깜짝 놀란 지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피곤 때문에 반쯤 감겨 있던 눈도 번쩍 떠졌고, 그제야 남자의 손에서 터지고 있는 약한 스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 여기서 편하게 장사하면서 감사할 줄을 몰라.”

    “…….”

    “야, 돈은 됐고. 어이, 직원. 너 그냥 무릎 꿇으면 내가 봐줄게.”

    ‘장난하나, 지금?’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똑 끊겼다. 지의는 순간 주먹에 힘을 주었지만 금세 이성을 찾았다. 어차피 헌터를 상대로 승산도 없을 것이고, 행여 몇 대 치는 데 성공해도 물어줄 깽값은 더더욱 없다.

    “죄송해요. 그냥, 그냥 가세요……. 제가 그냥 한번 하면 되니까…….”

    그때 직원이 거의 우는 목소리로 지의에게 속삭였다. 그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처럼 그렁그렁했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지.’

    지의는 아랫입술을 뿌득 깨물며 직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툭.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던 콜라 컵이 지의의 발에 걸렸다. 컵 안에는 미처 나오지 못한 얼음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까짓 거 제가 대신 꿇죠.”

    “뭐?”

    난데없는 지의의 발언에 직원과 남자가 동시에 놀랐다.

    “니가? 갑자기? X나 어이없네.”

    “…….”

    “뭐, 해보든가.”

    지의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남자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고양되어 갈 때쯤.

    촤아악.

    “우아악?!”

    탱그랑.

    콜라 컵이 남자의 머리에 명중했다. 늘어난 티셔츠 안쪽으로 얼음 조각 몇 개가 들어가고, 남자는 꼴사납게 몸을 떨며 얼음을 급히 뺐다.

    “후.”

    지의는 숨을 내쉬며 손을 털었다. 남자는 상황 파악이 아직 덜 된 건지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었다.

    “이름은 하인이면서 하는 짓은 상전이 따로 없네요.”

    지의의 말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남자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고, 지의는 그를 정면으로 쳐다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 유세 떨면서 살지 마세, 윽!”

    파지직.

    “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남자의 손에서 튄 스파크가 순식간에 지의의 목 앞까지 왔다.

    퍼억.

    “윽?!”

    스킬까지 둘러져 있던 주먹이었지만 지의는 남자의 손목을 정확히 올려쳤고, 덕분에 남자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뭐야, 이X 헌터야?!’

    크게 당황하며 뒤로 물러난 남자가 얼얼한 손목을 매만지며 지의를 빤히 쳐다보았다.

    쿵.

    부릅뜬 눈과 그 안에 박힌 갈빛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자신을 벌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와, 나 방금 어떻게 한 거야?’

    하지만 정작 지의는 스스로의 움직임에 놀란 상태였다. 운동 경력 덕에 만들어진 반사 신경이라고 퉁치기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본능적인 움직임. 머리가 시키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이, 이게…….”

    남자의 주먹이 다시 지의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지의는 그의 주먹을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한 후 곧바로 다리를 걸어 그를 넘어트렸다.

    “아악! 내 무릎!”

    남자가 무릎을 끌어안고 외마디 비명을 지를 때쯤, 그제야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한 사람은 바닥에 뻗은 남자를 일으켜 세웠고 다른 한 사람은 지의와 영화관 직원을 향해 다가왔다.

    “헌터시죠? 제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아니, 저 비각성자인데요.”

    “비각성자시라고요?”

    경비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지의도 마찬가지였고.

    지의는 조용히 아까의 대치 상황을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남자의 주먹이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보였고, 그다음에 어떤 공격을 할지 전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거 안 놔? 고작 건물 경비원 주제에……!”

    “아, 곧 경찰 올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경비원은 지의와 영화관 직원을 향해 짧게 말하곤 남자를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하아아…….”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한숨을 길게 내쉰 지의는 양 무릎을 손으로 지탱한 채 섰다. 티는 안 냈지만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는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 저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영화관 직원은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지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지의는 그를 향해 애써 웃어 보인 후 다시 허리를 폈다.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튀어야지.’

    “어, 저기……!”

    직원의 부름을 무시한 채 지의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 *

    [유하인(32)]

    [D급 바람 속성]

    [고유 스킬 : D급 이동계 스킬 ‘전광석화’]

    ‘고작 D급이면서 유세는.’

    지의는 열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내내 아까 행패를 부렸던 남자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협회 홈페이지를 닫고 핸드폰을 다시 바람막이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었다.

    ‘아니, 그 새끼가 S급 헌터여도 일반인한테 그러면 안 되지.’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힘을 휘두르는 것, 지의가 가장 역겨워하는 일이었다.

    ‘아까 그 모습, 엄마랑 아빠가 봤으면 기절했겠네.’

    동생 지유가 세상을 떠난 후 지의는 도움이 필요하거나 약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유와 겹쳐 보여서, 라는 얄팍한 이유 때문에.

    막내딸도 병으로 잃었는데 하나 남은 맏딸마저 남 도와주다가 여기저기 다쳐오니, 지의의 부모는 항상 그를 보며 잔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300살까지 살기엔 글렀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까지 왔다.

    쿠구궁.

    “응?”

    갑자기 땅이 울렸다. 지의가 고개를 내리자 대리석으로 된 문이 그의 발밑에 있었고, 천천히 아래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에, 으아아악?!”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진 지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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