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화 (1/366)
  • 1화

    【사필귀정(事必歸正)】

    ‘지유야, 언니 300살까지 못 살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떠 끝없이 펼쳐진 참상을 바라보았다. 아스팔트의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붉은 핏줄기와 이리저리 널브러진 시체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뻗은 나.

    서울 시내 한복판에 열린 ‘지옥도(地獄道)’에선 그 자식의 파편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세상의 종말이구나.’

    나를 포함한 국내 S급 헌터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역부족이었다. 해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 자식의 사도(使徒)가 되어 뭣도 모르고 시키는 일을 전부 다 했을 때부터? 그게 아니라면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덜컥 S급 헌터로 각성해 버렸을 때부터?

    ‘그걸 따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리긴 했지만.’

    사실 아주 상대 못 할 건 아니었다. S급 게이트 세 개만 처리하면 적어도 국내에서 벌어진 사태는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했다.

    또각.

    ‘저 배신자 새끼만 아니었다면.’

    동료였던 저 새끼가 순식간에 우리를 배신하고 게이트 몇 개를 더 꺼내 왔다.

    아마 ■■■, 그 새끼한테서 힘을 빌려왔겠지.

    허탈감과 분노 때문에 심장이 불쾌하게 뛰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거세게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하게 진동했다.

    ‘지유야, 곧 보자…….’

    잠에 빠지듯 눈이 천천히 감겼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 지유의 뒷모습이 보였다.

    파아앗.

    [세상이 당신을 원한다.]

    [세상이 당신을 이 세상의 구원자로 삼는다.]

    ‘구원……. 뭐?’

    지유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앞에 뜬 건 황금색 글자였다.

    [구원자의 권능]

    [말의 힘]

    [세상의 종말을 맞이한 구원자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순간]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전 곧 죽거든요.’

    온몸이 산산조각 난 사람을 구원자로 삼는 정신 나간 행위가 어디 있냐. 세상이 이렇게 멍청하니까 날아오는 종말도 못 피하는 거다.

    [구원자의 말은 현실이 된다.]

    ‘진심?’

    자꾸 내려오는 눈꺼풀을 겨우 들고 마지막 설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의 힘’, 말하다 보면 언젠가 그게 실현된다는 진부한 희망 이야기.

    ‘만약, 이 빌어먹을 권능이 내 말을 실현시켜 준다면.’

    입술을 떼고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기회를… 한 번, 더, 줘…….”

    [‘말의 힘’ 발동 시 구원자의 인과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종말을 막을 기회가 생긴다면야.’

    [‘말의 힘’ 발동]

    [범위 : 이 세상의 모든 시간선]

    [시간선 되감기]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제대로 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이 미친 세상의 끝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구원자의 기억을 삭제]

    [구원자의 능력을 삭제]

    [구원자의 인과율 증가]

    [구원자 인과율 100% 달성]

    [생태계 변화]

    [시간선 초기화]

    ‘야이씨, 기억을 지우면 어떻게 하라고.’

    생각보다 센 페널티에 어이가 털렸다.

    지금 이 기억이 없으면 나중에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잖아.

    “야, 이번엔 실수하지 말고 이 세상의 종말을 막아. 그리고 배신자는……!”

    툭.

    * * *

    ―의, 지의…….

    “신지의!”

    “커헉……!”

    “어, 어?”

    갑자기 폐부에 들어찬 숨 때문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마른기침과 역겨운 숨만을 토해 내며 침대를 구르자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몸을 잡았다.

    “지의야! 어디, 어디 아픈 거야? 어? 아빠 말 들려?”

    “아빠……?”

    말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아빠라는 말을 한참이나 되뇌었다. 곰팡이 핀 천장과 벽지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눈을 왼쪽으로 살짝 굴리자 얼굴이 창백해진 아빠가 날 내려다보며 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자.”

    “엉? 아냐! 나 멀쩡해! 뭔 병원이야!”

    “정말? 정말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안 아파. 그냥 자다가 사레들렸나 봐.”

    아빠한테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에도 아빠는 당장에라도 병원에 전화를 걸 것처럼 양손으로 핸드폰을 꽉 쥐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니, 자기야. 얘가 방금 발작을…….”

    “아, 무슨 발작이야! 그냥 사레들린 거라고!”

    “뭐? 발작?”

    때 아닌 소란에 엄마까지 사색이 되어 나타났다. 내 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과잉보호 부모를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를 꽥 지르고 나서야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저 완전 멀쩡하고요? 아까 그냥 사레들린 거예요, 아셨죠?”

    “그래, 그래. 나는 그냥 무서워서…….”

    아빠가 웅얼거리며 내 이불을 손으로 조용히 구겼다.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과잉보호를 하는 덴 이유가 있다.

    ‘지유도 병으로 떠나보냈는데 첫째 딸까지 그렇게 될까 봐 그렇겠지.’

    가슴에 묻은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여보, 가자.”

    “지의야. 혹시라도 몸 좀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병원 가봐, 알았지?”

    “응~”

    엄마와 아빠가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서자 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그나저나 정말 뭐였지?’

    뭔가 엄청나게 실감나는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정신은 몽롱했다.

    별거 아닐 거란 생각과 함께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핸드폰을 집었다.

    후드득.

    “어……?”

    화면에 비친 내 얼굴 위로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손으로 눈을 벅벅 비볐지만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세면대로 뛰어가 세수를 한참 하고 나서야 눈물이 멎었다.

    ‘꿈에서 우리 지유라도 만났나.’

    네 살 밑의 내 동생, 지유. 바보같이 착하던 동생은 몇 년 동안 희귀병을 앓다 돌연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함께 막대한 빚이 남았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했다.

    ―다음 뉴스입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은 후 거실로 나오자 TV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안 끄고 그냥 나갔나 보네.

    TV 리모컨으로 손을 뻗은 순간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주 미국 네바다 주의 S급 일반 던전에 파견된 우리 헌터들이 어제 새벽 두 시 인천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강세빈 헌터를 주축으로 한 이번 파견 팀은 5일 한 시간 이십팔 분이라는 신기록을 세워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김장미 기자입니다.

    ‘돌아왔구나!’

    화면에는 내 소꿉친구 세빈이가 나오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도 없네.’

    세빈이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끝내주게 잘생겼다. 반으로 묶은 갈색 머리카락 밑으로 날렵하고 진한 이목구비가 자리했고, 쌍꺼풀이 진 눈매는 위쪽으로 살짝 올라가 차가운 인상을 주었지만 그에 반해 눈썹은 온화한 편이었다.

    ―던전의 난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다만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던전인 만큼 모래바람이 자주 불었고, 40도까지 올라가는 내부 온도 때문에 클리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차분히 말을 잇는 세빈이는 엄청난 플래시 세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세빈은 어딜 가나 유명 인사였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땐 마냥 애기 같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키가 쑥쑥 크더니,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미모에 절정을 찍었다.

    ‘3반 개잘생긴 그 누나’, ‘풀 네임 세빈 언니’로 통하던 강세빈은 그 타이틀로도 모자랐는지, 고등학교 입학 반년 만에 대뜸 각성했다. 그것도 S급으로.

    덕분에 세빈이는 ‘전 세계 유일 S급 고유 스킬 세 개 보유자인 데다가 개잘생긴 그 누나’가 되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화면 속 세빈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빈이의 웃는 얼굴로 인터뷰는 끝났고, 아나운서 화면으로 다시 돌아왔다.

    팟.

    다른 채널로 넘기자 교육 방송에서 ‘던전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21XX년, 게이트가 열린 지 어느새 30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많은 것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고, 또 많은 것이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다. 던전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공간이 전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공간은 몬스터와 온갖 함정으로 가득 찬 곳이며,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런 방송 수업 시간에 틀어주면 재밌게 봤었는데.’

    시커먼 화면에 새하얀 빛줄기가 쭉 내려오더니 이내 안에서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게이트의 출현과 동시에 ‘각성자’라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그 어떤 화기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던 몬스터를 쉽게 해치웠고, 세상도 조금씩 질서를 되찾아갔다. 수많은 희생과 몬스터와의 전쟁 속에서 지금의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가평 게이트 폭발 현장 영상이 떴다.

    욱신.

    “…응?”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인데 저 영상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렸다.

    나랑은 상관도 없는 곳인데 도대체 왜지?

    우웅.

    혼란스러운 정신을 깨우듯,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사람들 벌써부터 기다린다. 빨리 올 수 있으면 빨리 와줘. ―매니저님]

    아, 맞다. 오늘부터 헌터 콜라보 제품 판다고 했지.

    난 빵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며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금방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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