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15)
  • 3일째

    그 녀석이 낚시 간다고 가버린지 벌써 3일째인데,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정말 생소하다.

    언제나 문자 하루에 10통 이상 보내고, 전화도 세 번은 꼬박 하는 주제에, 너 살아 있기는 한 거냐? 아니면 너도 실연 여행 떠났냐? 등의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바보같이 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그게 무슨 행동인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내일 모레면 벌써 다음 주이다.

    언제 출국한다고 말도 안했고, 그 녀석 갈 준비는 다 해 놓은 건가?

    “…주혁군”

    “음? 아, 부장님…”

    “내가 저 멀리서부터 도대체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아는가?!”

    “글…글쎄요. 하하”

    “하하~가 아니지!!!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이사시켜 두고 온 건가!!”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신지…”

    “흠, 이리와 보게”

    조용히(?) 부장님은 나를 부장실로 끌고가셔서는 서류 하나를 내미신다.

    뭐지…?

    “방금 이사님 뵙고 왔는데 말이야. 진시우 출국 관련한 서류인 것 같은데, 주요한 서류라 오늘 줘야 하나봐 그런데 시우군이 지금 3일 연속 잠적이라, 연락이 안 되신다네? 이걸 전해줘야 하는데, 자네랑 친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자네보고 좀 전해 달라고 하는데, 자네 시우군이 어디 있는지 아나?”

    “아뇨”

    “간단하구만, 어휴 이걸 어쩐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내용이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그런 것 같으니…어어? 주혁군 어디가나?”

    “주인에게 가져다 주러요.”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죠.”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고 묻는 부장님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하튼 칠칠맞은 놈 딱 봐도 미국에서 온 서류인데, 책상위에 있는 폰의 폴더를 열어보니 그 무엇도 온 것도 걸린 것도 없었다.

    처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으로 진시우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도 없는 싱거운 신호음이 몇 번을 울리다가, 아무래도 받을 기미가 없어서 정말 잠적인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럼, 이건 실종신고 내야 하는 사태니까 말이다.

    전화를 받지 않고,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양의 멘트를 듣고는 정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뉴스에서 나오는 일 생긴 건가? 점점 상상은 극에 치닫고 안 좋은 쪽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통화 버튼을 누르고 주먹을 꽉 쥐고 받아라. 받아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여보세요.]

    “아앗!! 너 어디…!”

    미쳤지.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부서 내에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말고 나를 전부 바라보았고, 난 미안, 죄송, 계속 일해 삼종세트 사과를 하고 난 뒤 자리에 앉아서 폰을 다시 제대로 잡았다.

    “진시우, 너 어디야?”

    […뭐야…정말 지주혁이잖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니, 폰이 하도 울길래 짜증나서 끌려고 하니까 발신자가 지주혁 당신이잖아. 난 순간 내가 꿈을 꾸나 했어.]

    “꿈이라니…웬 오버…?”

    [당신이 나에게 전화 건 적 없잖아. 솔직히 당신이 내 번호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고]

    “큼큼…저기, 다름이 아니라, 너 미국에서 서류 하나 온 것 같은데, 이거 오늘 안으로 보고 답해줘야 한다는데, 빨리 와”

    […휴식을 망치는 건 싫은데]

    “이 녀석, 미국 안 갈 생각이야?!”

    […개다가 나 지금 낮술 좀 해서, 운전 힘들어]

    “…어이, 지금 시간이 몇 신대 술이야?”

    사실은 이 자식 낚시 한다는 핑계로 전국 게이바 순회투어 하고 있다던가. 그런 거 아니야?

    [아아, 옆에 아저씨들이…]

    아저씨 사냥하고 있냐.…

    [젊은이가 낚시 하는 게 참 보기 좋다고,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 보니 한잔 얻어먹고,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어, 많이 취하진 않았는데, 지금 이 상태 로면 사고 날 수도 있지]

    “하아…어쩌느냐 이 서류…”

    [오라니까.]

    무슨 생각인건지 진시우의 한마디에 욕을 하면서도 짐을 챙기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차피 진시우의 일이니 부장님에게 말하고 이사님께 부탁해서 택시를 타고 녀석이 있다는 곳으로 바로 향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초평이었다.

    처음으로 와본 곳이라 정말 생소한대,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라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말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비싼 요금(경비로 처리 기필코 한다.)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조금 두리번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자리가 어디냐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곳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저수지 중간에 배처럼 둥둥 띄운 좌대에 웬 남자들이 주르륵 앉아있었다.

    동네 사람들 도움으로 작은 배를 타고 그 좌대에 올라가니, 세 남자는 낮선 사람의 출입에 멀뚱히 바라보았지만, 한 남자는 담배 입에 물고 벙거지 모자는 눌러쓴 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 새 자란 수염으로 구부정하게 앉아있는데 이거야 원 강태공이 따로 없구먼.

    “진시우- 서류나 받아. 빨리 연락 해주라고”

    인사도 없는 놈을 보고 울컥해서 서류를 집어던져주고 가려고 하니, 녀석이 내 팔목을 잡고는 낚싯대를 쥐어준다.

    전화 하고 올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갑자기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아니 내가 여기까지 왜 온 거지?

    내가! 내가!

    울컥 울컥한 심정으로 어정쩡하게 낚싯대를 들고 서있으니, 옆에서 아저씨들이 총각 그렇게 낚싯대를 잡으면 안 돼. 부터 시작해서 낚싯대 잡는 법을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어찌나 통화는 오래 하는지, 정말 한 시간은 훌쩍 넘기고 나타난 녀석은 나에게 방금 탄 것 같은 커피를 내 밀었다.

    커피를 받고 나는 자리를 녀석과 체인지하였다.

    아무 말 없는 녀석을 보고 그냥 이제 돌아갈까. 싶은 마음에 좌대에서 아저씨를 부르는 전화를 이용하려고 좌대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좀 쉬고 있어”

    아무 말 없던 놈이 느닷없이 쉬라니…

    하긴, 너무 오래 앉아서 택시를 탔더니, 허리도 아프고…좌대는 약 가로세로 6미터 크기에 배위에 지은 집 같았다.

    안에 싱크대도 있고 가스레인지도 있고 이불도 있고, 낚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인 듯싶었다.

    양복이 구겨질까봐 재킷을 벗고 그 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잔잔한 물결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놀라서 일어나니, 아직도 그 자리에 진시우가 망부석으로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야밤에 뭐가 보이긴 하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일어났어? 조금만 기다려, 곧 매운탕 해줄 테니, 큰놈 잡았거든…”

    완전 신났군.

    녀석은 그제야 벌려놓은 판을 접으면서 주섬주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오늘이 막날이라 다 갔지”

    “그래? 그나저나 오늘 어떻게 가지…여기 콜택시 있나? 보아하니, 진시우 너는 오늘 안 갈 것 같고”

    정말 안 어울린다.

    차라리 스포츠카 끌고 전국 일주 드라이브라도 하면 그게 더 어울리겠구먼.

    대충 잡은 고기를 손본다고 생각했더니, 곧 고춧가루를 넣고 야채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한 매운탕은-아마도- 맛있는 냄새가 났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참았다. 하지만 곧 밥이 다 되는 소리가 들리고 녀석이 일회용 식기에 이것저것 담아서 꺼내서 작은 상에 하나하나 차렸다.

    “다 됐어. 먹어”

    “우와-”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던 녀석의 정체가 보이자 침이 주룩 흐르는 착각 속에 얼른 한 숟가락 퍼 먹었는데, 정말 맛이 일품이었다.

    내가 먹는 것을 보자 그제야 자신도 숟가락을 들던 녀석은 나에게 소주 이야기를 하더니 좋다고 맞장구를 쳐줬고, 또 둘이서 소주를 들이켜고 밥을 안주삼아 열심히 먹었다.

    냄비 안에 고기가 뼈만 남았을 쯤, 술기운에 몸이 나른해서 벽에 기대어 멍하니 있었다.

    “이게 신선놀음인가”

    내 말에 녀석이 쿡쿡 웃으면서 상을 치우고, 내 옆에 앉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는데, 이거 안 가라앉지?”

    “이틀 자본 사람으로서 그건 장담해. 어젠 그 아저씨들과 넷이서 여기서 어젯밤에 잤어.

    “으아…난 그렇게는 못해. 티브이 있으면 좋겠다.”

    너무 신나게 마셨나. 정말 알딸딸해서 이내 몸이 이불 위로 쓰러졌다.

    비비적거리면서 말을 하니, 녀석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런 그의 손길을 느끼면서 가만히 내 머리를 쓸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보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의 얼굴에 나는 눈을 감았다.

    정확히 녀석의 입술이 나에게 안착했다.

    얼마 만에 키스인지 모르겠다.

    아마 이 녀석과 그 화장실 앞에서 키스한 것이 내 마지막 키스였을 테니, 그것도 벌써 몇 달 전…

    녀석의 혀가 곧 이어서 입 속으로 밀고 들어온다. 전혀 저항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손쉽게 들어온 그의 혀는 곧 내 입안에서 이것저것 건들이며, 자신의 타액으로 적시고 있었다.

    빨려 들어간다. 녀석의 체온에…체취에

    키스를 워낙 잘하는 녀석인지라. 그 키스에 넋 놓고 열중을 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둘 다 윗도리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고 녀석이 내 바지 버클을 풀고 있었다.

    “앗…”

    진시우의 입술이 이번에는 나의 유두를 물고 혀를 굴리며 애무를 하였다. 내가 탑일 때는 수많은 바텀들의 유두를 물었지만, 이렇게 물리고 나니 뭐라고 해야 하나, 여기 왜 이렇게 간질간질 한 곳인지…아무래도 거의 반년 넘어 1년이 다 되갈 정도로 욕구를 풀지 못해서 예민한 상태이긴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신음소리에 내 스스로 주체를 할 수가 없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아…윽…”

    진시우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행위에 열중하듯, 아니다. 내가 행여나 자신을 밀어 낼까봐 나를 자신에게 있는 대로 밀착시키고, 혹여나 거부할까봐 서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이미 반쯤 벗겨진 바지 안에 손을 넣어 나의 것을 잡고 주물거리면서도 쉴 새 없이 혀를 움직이고 나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면서 최대한 내가 잘 느끼도록 하려는 것 같았다.

    나의 페니스도 간만에 다른 사람의 손길이라서 기쁜지 빠르게 흥분하고 빠르게 절정에 이르려 하고 있었다.

    젤도 뭐도 없는 상황에서 녀석이 그 액들을 모으듯 쥐어짜서는 손가락에 번들거리면서 묻혔다. 그리고…그곳에 손가락 하나를 삽입했다.

    “헉-”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넓히려고 애쓰려는 진시우를 보고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아마 곧 진시우를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던 포지션이 되겠지,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었으니까. 하지만…기쁘다기보다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첫 경험을 앞두고 있는 처녀도 아닌데…임신 할리도 없는데, 무서웠다.

    아니 그것보단 이대로 좋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분위기에 휩쓸리듯…하는 건 무언가 잘못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찌익-하고 진시우의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잔뜩 발기에서 그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녀석의 것은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녀석은 나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시우…”

    “쉬-”

    달래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녀석은 입술에 다시 한 번 키스해주었다.

    그 와중에 녀석은 허리를 나에게 밀착하고 자신의 것을 애널의 입구에 끼우듯 갖다 대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키스를 하는 녀석을 있는 힘껏 밀어냈다.

    “그만! 안 돼”

    확실한 거부 의사에 녀석이 굳었고, 그 틈에 나는 허리를 들어 바로 앉아 옷을 추슬렀다.

    “이런 식은 아니야…”

    “뭐가? 뭐가 아닌데?”

    “너를 받아들이는 것…”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겠지. 하지만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너를 받아들이면, 그건 너에 대한 실례잖아. 너의 마음에 대한 배신이잖아.

    “미안”

    의외로 녀석이 간단히 사과를 하고 화장실처럼 마련된 곳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풀어 줄 수는 있는데”

    그 말을 이미 녀석이 들어가고 난 후라서 들리지 않았겠지…

    한참 뒤에 화장실에서 나온 녀석은 손을 씻고, 이불을 폈다.

    “내일 같이 서울 가야 할 것 같다. 삼촌이 불러”

    “그래…”

    “우선 푹 자자”

    “아, 응…”

    아까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냉랭한 공기가 흐른다.

    그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이불이 펴지자마자 들어 누웠다.

    녀석이 불을 끄고 내 옆에 눕는 것을 느끼고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날 둘은 서울에 올라와서, 나는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였고, 진시우는 바로 회사로 간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 출근하니 모두 색다른 ‘강태공 진시우’의 모습에 놀란 모양이니까 말이다.

    진시우의 색다른 모습에 여직원들은 하나같이 다시 ‘당신 너무 멋져’버전이 되어있어서 남사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제 출셋길이 뻥 뚫린 녀석이다 보니, 여직원들이 더 난리인 것 같았다.

    “부럽다~”

    “부러우면 네가 미국가지 그랬어?”

    “에엑? 전 미국가면 한마디도 못해요.”

    “토익 점수가 높다라며 자랑하던 사람이…”

    “토익과 현실은 다른 법입니다.”

    흡연실에서 열심히 남자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야 창밖을 보면서 열심히 담배를 빨고 있었지만

    “내일 모레 출국한다고, 여직원들이 파티 할 모양이던데”

    “부러운 놈”

    아아,…

    내일 모레 출국하는구나.…

    필터만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 흡연실을 나왔다.

    마침 지나가던 기획이사-진시우의 사촌과는 다른 사람-가 나를 불러서 곧바로 그 이사실로 끌려갔다.

    아무래도 급하게 할 말이 있는 듯, 이사는 조용히 나를 불러 몇 십 분의 이야기를 하였고, 난 어떠한 서류봉투를 들고 나왔다.

    안 그래도 어제일 때문에 심난한데, 이사까지 심난하게 만든대 다가, 오늘 술이나 할까 하고 있는데 태성이에게 전화가 왔다.

    [나 오늘 선 봤다.]

    이놈까지…오늘 왜 이래 진짜!

    심난한 두 남자가, 폼을 있는 대로 잡고 자리에 앉아서 우울해하고 있었다.

    “왜? 여자가 안 예뻐?”

    “장난 하냐? 어쩔 수 없이 봤다니까. 예쁜 게 무슨 소용이람. 나에게는 그냥 나무로 밖에 안 보이는 것을”

    “그 여자 부모님이 그 이야기 들으면 우시겠다.”

    “쳇, 그런데 너는 왜 표정이 죽을상이냐”

    “계속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내가 선 본 것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냐?”

    “네가 차라리 남자랑 선 봤다고 하면 반응을 하겠는데, 여자라서 그다지…”

    “담에는 남자랑 선보면 우리 주혁이가 날 신경써줄까? 응??”

    “아야야야-”

    녀석이 내 콧등을 잡고 흔들기 시작한다.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서야 그제야 즐거운 듯 웃는 녀석을 보고 나도 피식 웃었다.

    “태성아”

    “왜?”

    “…나 미쳤나보다.”

    “뭐가?”

    “신경 쓰여”

    “뭐가?”

    “진시우가”

    내 말에 녀석이 안주를 뒤적거리던 손을 멈추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맥주를 벌컥 벌컥 마시더니 탕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가 한말에 의미를 찾는 것 같이 눈을 굴렸다.

    “친구로서?”

    “…아니”

    “…미친놈, 하필 그 새끼”

    “그러게…”

    “그 초딩에 똘끼충만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새끼를…”

    “그러게 말이다. 나도 한심해 죽을 것 같다.”

    “사랑이냐?”

    “몰라”

    “신경 쓰인다며!”

    “몰라! 그냥…그냥 미국 간대잖아.”

    “얼씨구, 아예 지구를 떠나지, 왜 고작 미국 간대?? 그래서?”

    “태산이가 간다고 했던 때랑 심적으로 좀 틀려, 마음이 무거워”

    “허허…이거 미치겠네. 여기! 맥주 더 가져와봐!”

    “태성아”

    “잠시만, 내가 머릿속으로 정리 좀 하고 대화 하자”

    점원이 가져다주는 맥주병을 따자마자 원샷으로 들이키던 녀석은 앞에 있는 새우깡을 집어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병나발을 불었다.

    원래 맥주는 물로 마시는 녀석이라 별로 놀랍진 않은데, 마시면 마실수록 표정이 기이해지는 것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맥주 한 병을 따려는 녀석의 손목을 잡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나쁜 놈, 그래, 한씨 형제 둘 다 차서 좋냐?”

    “태성아”

    “그냥 먹어 버릴걸, 그때 너랑 키스한날 끝까지 가는 건데 젠장”

    “난 너랑 속 터 넣고 이야기 하는 사이인 것이 좋아. 잃고 싶지 않아”

    “됐어.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니까.”

    “그만 마셔”

    “실연날 마시지 그럼 언제 마셔”

    “넌 늘 마시잖아”

    “나쁜 놈, 진짜 고르고 골라 그 새끼니? 차라리 저기에 지금 춤추고 있는 놈 중 한 놈 잡아!”

    “………”

    “왜 그렇게 봐? 내가 진시우 욕하니까 화 나?”

    “어차피 그렇게 말하는 것도 진심이 아니잖아”

    “후우…갈란다.”

    “태성아”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성큼 성큼 나가는 녀석을 차마 잡지는 못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태성이를 잡을 수 있을까.

    태성이가 가고 혼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정말 혼자가 된 것 같다.

    이렇게 한명 떼어내고, 혼자가 되어버렸는데, 만족하냐.…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눈물이 나올 것 만 같다.

    아까보다 더 심난해진 마음으로 몸을 끌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소파에 한참을 앉아서 생각했다.

    문득 보이는 테이블의 서류…

    아까 이사님이 주신 것이다.

    싫다거나, 좋다거나를 떠나서 결정해야 할 것은 하나씩 늘어나고, 그 때도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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