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15)
  • 몸이 조금 뻐근해서 목운동, 팔 운동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이승진씨가 그 수행원들과 서있었다.

    마침 LE에 가는 길인데, 아무래도 그도 그곳을 가는 것 같았다.

    “피곤해 보이는군요.”

    “아하하하…어제 좀 마셔서…”

    사건이 많았지…뭐

    “오늘도 마라톤 회의일 텐데, 괜찮겠습니까?”

    “네, 뭐 그럭저럭- 젊으니까 가능하겠죠.”

    “끝나고 차 한 잔 살 테니,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좋아요. 저도 승진씨에게 할 말이 있고”

    “…갑자기 무서워지는 걸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나중에 뵙죠.”

    “네”

    약속을 정했다고는 해도, 곧 회의실에서 마주했고,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 대화를 하고 회의를 이끌어나갔다.

    정말 이승진이라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회의하면서도 그 냉철함에 나를 포함에 회사사람들도 질리고 말았다.

    LE쪽은 승리의 미소를 짓지만 말이다.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주주 노릇만 한다더니 LE로 봐서는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 경영에 참견한다면 정말 피곤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회의가 끝나고, 아니나 다를까 회사 정문에는 그의 차가 세워져있었다.

    어차피 같이 온 다른 직원들은 이미 먼저 회사로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그의 차에 올라타서 안전벨트를 맺다.

    저녁을 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니, 그가 커피숍으로 데려갔다. 여느 때와 같이 이승진씨가 잘 아는 곳으로 말이다.

    조용한 분위기에, 살짝 눈에 띄는 곳은 정부의 인사들이 보인다는 것, 티브이에서만 보던 인사들이 이승진씨가 들어가니 전부 긴장을 타면서 한 두 사람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청했다.

    나를 기죽이려고 여기에 왔나…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 사람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도 나에게 미안한지, 인사가 끝나자 미안하다고 말하며 자리에 안내했고, 제일 경치 좋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주문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이승진씨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하하…어째서입니까?”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군요. 하긴 저도 제가 어떤 것이 제 본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에 따뜻해 보이는 커피 두 잔이 우리 앞에 놓였고, 점원은 인사를 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커피의 향이 아주 고급커피라는 것을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마 커피 한잔 가격도 어마어마할 테지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텐데, 왜 거절하는 건지?”

    “아아, 내일 태산이…아, 아시지요? 한태성의 한태산”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태산이가 입대를 하는 날이라,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일찍 들어가 쉬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입대라…좋은 때지요.”

    “그렇지요”

    문제는 그 좋을 때에 녀석이 상처를 안고 들어간다는 것일까…

    “그런데 오늘 저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아, 있지만, 이승진씨는 저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셨습니까?”

    “하하, 없습니다. 그냥 지주혁씨와 커피 한잔 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렇군요.”

    커피를 손에 들어 마셨다.

    역시나 맛있는 커피였다.

    참 저 사람의 연인이 될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딴 건 몰라도 먹을 것은 되게 잘 먹여 주겠구나. 라고 생각되니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내가 저 사람의 연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전에…승진씨가 저에게 한 말이 있지요?”

    “네?”

    “내가 봄이 되면 그 들녘에 모여든 꽃을 꺾는 사람이라고…”

    “그랬지요.‘

    “그 말에 당신이 저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동안의 행동과 정황을 봐 서도요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니더군요.”

    “…?”

    “어설프게 명탐정 흉내를 내보겠습니다. 제가 아닌, 제 주위에 모여든 사람 중…한명을 꺾고 싶어 하시는 거지요?”

    내 말에 그는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당황하는 것 같다. 당황하고 있는데도 저런 표정이니…감정표현이 서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스운 사람이다.

    “그 꽃을 가지기 위해서 저를 이용하는 것이고, 제 주위에 계셨던 거지요?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은 당신이 그 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근처에 가기 위해서이구요.”

    “……”

    “…틀렸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뫘군요.”

    “주혁씨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맞습니다.”

    이승진의 맞는다는 답을 듣는데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뭐 미리 예상은 했고, 그랬는데도 이렇게 허무하다니 말이다.

    “화를 내지 않습니까?”

    “네? 화요?”

    “제가 어떻게 보면 당신을 이용하였으니까요”

    “…흠…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가 만약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화를 내다 뿐이겠습니까? 발차기로 날려 버리지- 하지만 관심이 없으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절 좋아하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만약 당신이 나를 좋아해도 저는 거절했을 겁니다.”

    “…하하, 왜요?”

    “전 평범하게 살고 싶거든요. 조용히 길게 살고 싶습니다. 승진씨와 있으면 정말 정신 사나울 것 같아서 말이죠. 뭐 먹는 건 잘 챙겨 주실 것 같지만, 그런 의미로, 당신 레이더망에 잡힌 제가 현재는 가지고 있는 꽃 중 한명은 누군지 몰라도, 참…”

    고생문이 훤합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한 대 맞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누군지 묻지 않습니까?”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요.”

    사실은 무서워서 못 물어 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몇 사람뿐인데…

    설마 진구 녀석은 아니겠지?

    “그럼, 친구는 될 수 있는 겁니까?”

    이승진씨의 의외의 말에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난 이미 이용가치가 없으니 오늘로서 바이바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하지요.”

    “고맙습니다. 지주혁씨.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그러죠.”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웃었다.

    나는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아마 그것을 이승진씨도 느끼고 있는 거겠지…

    집에 도착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진시우에게 전화가 와있었다.

    이미 밤이니 이 시간에 다시 전화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 폰을 내려놓고, 내일 무엇이 필요한지 이것저것 챙기고, 산이에게 입소선물로 줄 산 것도 챙기고, 짐을 싸두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날 꾼 꿈은

    내가 양이 되어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그 중 아주 아끼던 꽃이 몇 송이 있었는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그 꽃을 채어갔다.

    늑대는 신이 나서 그 꽃을 물고 도망갔고, 난 어이가 없어서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꿈 생각나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꿈이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가방을 메고 차 시간을 확인했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아직 시간적 여유가 많지만 아무래도 걱정되니, 가방을 메고 얼른 내려왔다

    꾸벅 꾸벅 조시는 관리실 아저씨를 한번보고 차타는 방향으로 가려는 찰나에 빵빵 울리는 차의 경적 소리에 시선을 놀려보니 차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차가 내 옆에 서서, 문이 달칵하고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타요”

    진시우였다.

    “진시우…오늘 평일인데, 출근 안하고 여기서 뭐해?”

    “오늘 나도 월차 냈어. 타요.”

    “아니 난…”

    “여기에서 논산까지 가려면 힘들잖아.”

    저 막무가내 성격…정말이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저 녀석이 돌아갈 리도 없고, 가방을 뒷좌석에 던지고 앞좌석에 앉았다.

    그제야 만족한 듯 녀석이 싱긋 웃으며 옆에 타고 시동을 건다.

    “무슨 생각이야?”

    “그냥, 당신 혼자가면 심심할까봐”

    “됐거든”

    그가 핸들을 잡으면서 옆에 놔둔 검은색 봉지를 건네주었다.

    “뭐야?”

    “아침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 먹으라고…우유도 있어”

    “헐…”

    이놈이 왜 안하던 짓을 하고 이러나…

    “너는?”

    “기다리면서 하나 먹었어.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기다렸던 거야…?”

    “한 5시쯤…언제 나오는지 몰라서…어제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그래서 일찍 자나 해서 다시 안 걸었지”

    아아,…어제 부재중 전화…

    “좀 자, 도착하면 깨울게”

    “나 심심할까봐 태운다면서…나 자면 네가 심심하지 않아?”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흠…”

    “흠?”

    “그대로 납치 해버리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자”

    “하하…”

    흠,

    이상하다.

    진시우 같지가 않다.

    지금까지 이 녀석과 있으면 날이 곤두섰는데, 왜 이렇게 차분해지는 건지…아침 일찍 일어난다고 정말 제대로 못자서 그런가, 아니면 그 웃긴 꿈 때문에 그러는 건지

    풋, 그 꿈 생각하니 아직도 웃기네, 아…그러고 보니 그 이승진이 노리는 꽃은 진시우는 아니겠지…? 설마…

    “왜 남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어?”

    “있지, 엉덩이 조심해라”

    “헉- 당신, 내 엉덩이 노려?!”

    “아니, 별로, 그다지, 네 엉덩이는 땅기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노릴지도”

    “거시기를 차버리면 되지 뭐. 다시는 쓸 수 없게”

    “허허…”

    녀석과 대화를 좀 하다가, 스륵 감기는 눈을 참지 못하고 숙면에 빠졌다.

    자면서 녀석이 무언가를 덮어주는 느낌, 그리고 친절하게 의자를 뒤로 넘어주는 것까지 느꼈다.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잤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일어나보니 녀석이 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일어났어?”

    “여긴?”

    “훈련소 앞”

    “헉, 벌써 도착했어?”

    “차가 안 막혀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당신 배고프지 않아? 뭐 먹을래?”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기다려”

    무슨 임신한 마누라가 뭐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완전 쏜살같이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진시우의 모습을 보니 좀 웃겼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웃을 일이 많은지…태산이도 이렇게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었으면 좋을 텐데…

    아직 조금 이른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태산이가 올지 몰라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쯤 지나 태성이에게 전화가 왔다.

    [거기야?]

    “어, 넌 왜 안 왔어?”

    [나야 뭐, 어제 실컷 인사했지. 어찌나 오지 말라고 그러던지…]

    “섭섭했구나?”

    [좀 그러네.]

    “하하”

    [나 대신 인사 잘해줘, 너 거기 갔다는 거 아직 모를 테니까.]

    “그래 알았어.”

    [올라오면 말해. 만나서 술 한 잔 하던가]

    “응”

    태성이의 섭섭함이 잔뜩 묻어나는 전화였다.

    어찌나 목소리에 그 섭섭함이 베어 나오는지…정말 사이좋은 형제사이이다.

    언제나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을 부럽게 만들 정도로…

    “아…”

    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훈련소 앞을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지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얼른 차문을 열고 나가 뛰어갔다.

    차마 부를 수는 없어 손을 내밀어 뒤 돌아 서 있는 그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태산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나를 보고 놀랐는지, 들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트렸다.

    얼른 태산이의 가방을 주워서 내밀었다.

    “주혁이…형”

    “머리 잘랐네.”

    “여기 왜 있어…? 형이 여기에 왜…”

    “아주 어울려, 이젠 멋진 사내 같아”

    “태성이 형이 말했지? 그렇지? 젠장, 그 인간 입단속 시켜야 하는데!!”

    “태성 이는 네가 많이 걱정되어 그런 거야.…미안, 갑작스럽게 와서, 하지만 네가 가는 모습 보고 싶어서 왔어.”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고작 실연당했다고 군대 들어가는 약한 모습 따위”

    “태산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건강하게 잘 다녀와. 너라면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해”

    “후회 하게 만들 거야”

    “응?”

    “형이 나 찬 거 후회 하게 만들 거라고, 2년 뒤에 정말 멋지게 돼서 나와서 형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 거야. 왜 내가 태산이 너를 찼을까. 매달리고 울게 만들 거라고.”

    “…그래, 그렇게 되면…내가 좋은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는 내가 형을 찰 거야”

    “그래…”

    태산이가 가까이 다가오니, 키가 꽤 많이 자란 것 같았다.

    아직 나보다 작지만 거의 눈 시선을 비슷해졌다.

    태산 이는 쓰던 모자를 나에게 씌워주었다.

    “형, 추우니까 빨리 들어가,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웃는 태산이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을 모른척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소년이 남자가 되러 2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아마 태산이는 멋진 남자가 돼서 나오겠지

    “건강해”

    들어가는 태산이를 향해서 그렇게 말했고, 태산이도 손을 흔들었다.

    태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뒤 돌아 차로 돌아가려고 하니, 차에서 커피 캔을 들고 진시우가 비스듬히 기대어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나에게 내밀면서, 그는 차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차에 올라탔다.

    몇 시간을 달려서 왔는데, 태산이를 만난 것은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진시우가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 잠을 자서 그런가. 잠은 안 오고, 그렇다고 진시우가 노래나, 라디오를 켜는 것도 아니고…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이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진시우가 입을 열었다.

    “한태산이 군대를 갔으니 앞으로 2년은 보지 못하겠네.”

    휴가 나와서 보면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고…

    아마 태산이는 딱 2년 뒤에 나를 볼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겠지…”

    “어떤 기분이야?”

    “…흠…섭섭하고, 미안하고…보고 싶을 것 같고…”

    “……그럼 내가 떠나면?”

    “…응?”

    “한태산은 2년이군, 나보다 짧아, 뭐 고생은 나보다 더하던가. 덜 하던 가겠지만, 아마 서로 분야가 틀려서 그렇지 비슷하겠다.”

    “무슨 소리야? 진시우?”

    “해외지사 발령 났어, 5년간-”

    “……”

    “출국은 다음 주야. 오늘은 사실 월차 낸 것이 아니고, 결정되니까 출국할 때까지 삼촌이 쉬라고 했거든. 미국가면 아마 일에 파묻혀 살 거라고”

    “……그래”

    “…내가 간다고 해도 섭섭하고, 미안하고, 보고 싶을 것 같아?”

    “글쎄…지금은 솔직히 아무 생각이 안 들어”

    그냥 조금 놀랬을 뿐

    그냥,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생각은 하고 있었던 거다.

    녀석이 해외에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든 일이니, 당연히 그에게 맞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그때당시 완전 출셋길이 앞에 널렸구먼, 이라고 생각했는데

    흠, 이상하다.

    지금은 왜 이렇게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걸까…

    내 대답에 진시우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의 아무 말 하지 않고, 창문을 통해 밖 풍경만을 바라보았다.

    서울에 다시 오면서, 태성이와의 통화해서 만날 장소를 잡았고, 진시우는 나를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같이 안 들어가?”

    “사실은 오늘부터 낚시 가려고 뒤 트렁크에 다 준비 해왔어. 다시 내려가야지. 한국의 풍격을 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고”

    “……”

    “왜 그런 표정이야?”

    “아아, 그냥 정말 가는 구나해서…”

    “내가 거짓말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동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할 것 같거든 너는”

    “그것도 그렇지. 후우…같이 낚시 갈래? 휴가 삼촌을 통해서 더 받아주지”

    “됐어. 낚시는 그다지 취미에 안 맞고…”

    “그래…그렇지”

    “……그럼 오늘 고마웠다.”

    차문을 열고, 나오려는 찰나에 진시우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와 함께 가”

    “낚시는…”

    “낚시가 아니야. 미국…미국 나랑 가자고”

    “………낚시 잘 다녀와.”

    내 대답에 녀석이 내 손을 놓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서 내렸고, 곧 이어서 녀석의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가 저 멀리 사라졌어도, 가만히 서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를 돌아볼 수도 없이, 그냥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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