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니, 태산이는 이미 학교에 첫 수업이라며 먼저 간다는 쪽지를 남기고 가고 없었고, 태산이가 구어 놓은 토스트와 샐러드가 식탁위에 올려져있었다.
웃으면서 그것을 한입 베어 먹고 신문을 읽은 다음,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였다.
어제보다 화창한 날씨에, 조금은 기분이 들떴다가도, 출근하는 길에 문득 생각난 어젯밤에 이승진씨와의 일 때문에 인상이 구겨지기도 하였다.
이래나 저래나, 이승진 그 사람은, 나에게 엄청난 인상을 남겨준 셈이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들었다면 분명 자신의 작정이 들어 먹었다고, 한 대 맞기를 잘한 것 같다며 웃을지도 모르지. 너구리처럼
‘큭큭…’
“어머, 지대리님,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아, 수미씨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싱글 싱글 웃으시면서 오시다니, 어제 밤에 애인과 만나기라도 하셨나요?”
“설마요. 그냥 재미있는 일이 생각나서요.”
“오늘 완전 사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네요.”
“네?”
“어머, 모르시는 구나. 어제 진시우씨 귀국했잖아요. 오늘 출근도 했고, 그것 때문에 완전 사내에 모든 여자사원들 얼굴에 꽃이 피었다니까요. 잠시 동안 미국 물 먹었는데도 왜 그렇게 멋져진 거냐고…”
“하아…”
아아, 역시 어제 귀국한 건가…
“수미씨는 안 즐거우세요?”
“전 유부녀잖아요~ 게다가 신혼~ 꽃미남도 좋지만 현재로서는 우리 남편이 더 좋고, 무엇보다 여사원들 또 수다 꽃 피운다고 일 안할까봐 걱정도 되고”
“저런- 그럼, 남사원들은 또 욕의 꽃 피운다고 흡연실은 난리 나겠군요.”
“바로 그거죠”
“힘내자구요.”
“그럼ㅇ…지 대리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기 왔네요.”
수미씨가 옆구리를 툭툭 찌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이사진과 함께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이지…한 달도 안 있은 미국에서 물을 얼마나 잘 드셨기에, 저렇게 떼깔이 줄줄줄 흐르는 건지…그 앞에 서 있던 여 사원들의 눈은 이미 나간 상태고, 내 옆에서 그나마 현실을 울부짖던 수미씨까지 말을 잃은 상태다. 그리고 남사원들까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가 아파서 끙끙 앓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건강해 보이네.…
하긴, 그 날 이후 한 달이 되었으니, 감기는 이미 떨어지고도 남았으려나…
감기나 제대로 낫고 외국에 나간건지 조금은 걱정이 되던 차였었다.
이사진과 이야기하던 그가 살짝 눈을 돌리다가 나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순간 뻘쭘해져서 가만히 서있었더니, 그가 까닥 고갯짓으로 이사를 하고 다시 이사진들과 대화를 하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희한하게도 “어라?”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묘한 기분이 든 자신에게도 ‘어라?’하고 물어보고 있었다.
덕분에 오전 내내 ‘어라?’ 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그 기분이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사진과 나간 진시우는 점심시간이 되도록 돌아올 생각을 안 하니, 남 사원들은 안도했지만, 여사원들은 짜증내기 시작했다.
우리 부서 사람인데 왜 안 돌아와 왜!! 를 외치면서, 부장님에게, 그리고 대리인 나에게까지 부서 옮긴 것은 아니죠? 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장님은 여사원들의 등살에 지치셨는지, 지친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하셨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시우군, 승진 이야기가 있더구먼.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침에 이사진들 표정을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는 분명 미국에서 커다란 건 하나 잡아 온 것이 분명했다.
안 그러면 그 까다로운 인간들의 환영을 받을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일 간부급 회의가 있다는데…벌써부터 두렵다. 도대체 미국에서 뭘 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부장님도 모르세요?”
“대충 이야긴 들었지만, 그건 보다 더 큰 걸 수도 있고…에구구…”
그게 뭐든 자신과 상관있겠냐고 말하는 부장님을 보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무슨 일이든 지금까지 우리 부서에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나하고도 상관이 없을 테니…
부장님과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폰이 울려서 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식당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보지 않았는데, 전화 받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태성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도장의 학생들의 열심히 수련하는 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말이다.
“도장인가보네?”
[아아, 시끄럽지? 잠시만, 나갈 테니까.]
“아니 괜찮아. 점심은 먹었고?”
[방금 먹었어. 너는?]
“나는 이제 먹으려고…”
[먹는 거 방해 한 거면 미안해지는데]
“음, 그건 아니고, 무슨 일이야?”
[오늘 몇 시 퇴근이야?]
태성이의 말에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점심 먹고, 기획안 하나 처리하고, 그리고 어제 진아씨가 준 파일 체크하고…
“한 7시쯤?”
[그럼 그때 회사 앞에 갈게. 저녁 같이 먹자. 너희 회사 근처에 레스토랑 유명한 곳 있더라구]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잔소리 들을 준비하고]
“약속 취소하자”
[…나쁜 놈]
“큭큭, 알았어. 나중에 잔소리 실컷 들을 테니까.”
[점심 맛있게 먹어라.]
“어”
전화를 끊고 문득 어제, 태산이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태성이 선 문제…민감한 일일수도 있으니, 안 물어 본 것이 다행인건지…잘 모르겠다.
“주혁군- 뭐 먹을래?!”
“아, 부장님 지금 갈게요.”
나 혼자 생각해봤자. 아무런 답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신경을 끄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제 태산이 말처럼 내가 한태성 그에게 뭐라고 할 권리는 없고, 그 집안 문제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어른이니,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성격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7시에 그를 회사 정문에서 만나고 나서 알았다.
왼쪽 볼이 퉁퉁 부어올랐고,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그걸 보자 할 말이 없었다.
싸웠냐고 물었지만, 그냥 웃기만 할뿐, 태성이는 나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신경이 쓰여서, 녀석이 말한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나는 녀석의 왼쪽 볼만 빤히 바라보았다.
“반했어?”
“뭐…?”
“새삼스럽게 나의 멋진 얼굴에 반했냐고, 안 그러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그래, 반했다. 멋진 얼굴 가리게 커다란 거즈 하나가 얼굴에 붙어 있어서 엄청 신경 쓰이는 구나.”
“진심이야? 아얏!”
녀석이 능글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나에게 쭉 들이밀기에 그의 오른쪽 볼을 꼬집었다.
별로 아프게 꼬집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엄살을 떨며 소리를 질렀고, 덕분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
안 그래도 남자 둘이 와서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데, 그 생각에 더 플러스 시키는 일을 했으니, 얼굴이 화끈 거렸지만, 태성이 녀석의 엄살과 플러스 된 애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건데?”
“아아…아버지에게 좀 맞았지.”
“어떻게 맞았기에, 그래?”
“골프채로 맞진 않고, 옆에 있던 도자기를 휘두르시더라고, 늙은 영감탱 힘이 줄어들지도 않아. 뭐, 그러니까 젊은 여자 옆에 꿰 차고 있는 건지도”
“태성아…선… 때문에 그래?”
내 말에 녀석이 놀란 듯 물마시던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곧 태산이가 이야기 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웃는다. 결코 즐겁지도, 그렇다고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이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 게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 아버지…아니, 그 작자에게, 그런데 뭐 농담인줄 알았나 보더라고, 회사고 뭐고 이어받기 싫으니까 회피한 것으로, 어제 선 이야기 꺼내는 화가 나서 한 번 더 게이라고 말했더니 이렇게 얼굴 된 거지.”
“…”
“난 선 안 봐, 아니 못 봐, 게이니까. 게이가 어떻게 여자랑 결혼해? 외국 가서 남자랑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가업 이어주시기를 바라는 거 아닐까?”
“그건 아니야. 새 어머니가 데리고 온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버지가 그 아들을 끔찍이 예뻐 하셔, 그 애가 가업 이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버지가 지금껏 나랑, 태산이를 놔 둔거야. 그런데 이번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느닷없이 나에게 이러시는 건데…좀 있음 잠잠해 지겠지”
“후우…그럼 다행이고.”
“걱정했어?”
“뭘?”
때마침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와서 종업원이 하나둘 테이블을 세팅해주고 있었다.
주문한 메뉴가 서로에게 잘 가도록 종업원에게 이건 저기 저건 여기 등의 이야기를 해주다보니, 태성이와의 이야기가 끊겼다.
그리고 종업원이 갈 동안에도 우리 둘은 대화를 나누지 않다가 녀석과 바뀐 샐러드를 바꿔주다가 녀석이 내 손목을 덥석 잡아 버렸다.
왜? 라고 말은 못하고, 놀라서 녀석을 바라보니, 녀석은 내 손목을 잡고 내 손을 자신의 입가로 다가가 살짝 키스해주었다.
너무 놀라서 그 손을 빼려고 했지만, 어찌나 꽉 힘을 주고 있던지 손이 빠지지가 않는다. 다행히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없지만…회사 주위기도 해서, 회사 사람들이 볼까도 덜컥 겁이 났다.
“태성아-!”
“내가, 지주혁, 너를 놔두고 홀랑 장가 가버릴까 걱정했냐고”
“안했어.”
“정말 안했어?”
“안했어”
“왜?”
“네가 게이인거 아는데 무슨 걱정을 해…다만…”
“다만?”
“선 보거나, 결혼하는 거 보다…네 맞은 얼굴이 더 신경 쓰인다. 그것뿐이야.”
“저런…큭큭…한 세, 네대 더 맞고 올걸 그랬나? 그럼 문병 해줄 거야?”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손 놔줘…”
누가 태권도 사범 아니랄까봐, 딱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손목 중에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꾹 누르고 있어서 손이 저리면서 힘이 빠졌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한 거겠지, 내가 인상을 찡그리니 그제야 눈치 챈 듯 손을 풀어 주었다.
“한태성, 요새 많이 능글스러워졌다?”
손목을 흔들면서 이야기하니, 녀석이 싱긋 웃는다.
하나도 귀엽지 않아. 그렇게 웃어도.
“음, 이승진 흉내 중…혹시나 주혁이 너의 취향일까 해서 말이지”
“…내 취향이 그렇게 마이너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면 어제 왜 그렇게 쪼로로 따라 간 거야? 지금 bar내에 어떤 소문이 돌지 두렵지도 않냐? 어제 내가 가니까 너랑 이승진 그 놈이랑 나간 걸로 인해서 완전 뒤집어 졌던데”
“후우…한동안 bar가지 말아야겠군. 그리고 어제는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알고 있다. 진구에게 들었으니…그 새끼들 내가 족쳤으니 걱정 말고”
더더욱 당분간 bar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겠군.
“…아무…일 없었지?”
아까부터 이상하게 말을 뱅뱅 돌린다고 생각했더니, 결국은 그게 묻고 싶었던 게로군. 한태성 답지 않게 왜 이렇게 소심하게 물어 보는 건지…
“전화로 이야기 했잖아. 아무 일 없었다고.”
“후우…요새 네 녀석 색기지수가 올라가서 이 오빠는 불안하단다.”
한태성의 말에, 스테이크를 집었던 포크를 테이블 위로 떨어트렸다.
“농담 하지 마. 특히 저질 농담”
“진심이야. 정말이지, 요즘 따라 이곳저곳 나 바텀이요 오로라를 풍기고 다녀서 내가 허리가 뻐근한 대다가, 주위 남자들 경계한다고 얼마나 힘든 줄 아냐?”
“한태…! 아, 감사합니다.”
다행히 옷 위로 안 떨어져서 옷이 더럽혀 지진 않았지만, 저 멀리서 종업원이 본 건지, 새 포크와 물티슈를 가져다주었다.
종업원이 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한태성이 인상을 구기더니 내 포크와 자신의 포크를 바꾼다.
“……?”
“거 봐, 저 종업원도 아까부터 내가 아니라 너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이 포크로 무슨 짓 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에게 줄 성 싶으냐?”
“정말이지…본인은 착각에 안 걸리는데, 왜 네가 착각에 걸려 있는 거야?”
휴지로 박박 포크를 닦는 녀석에게 묻자. 녀석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계속 포크 닦는 것에 힘을 실었다.
“언제…내 고백에 답 해 줄 거냐?”
“……”
“나름대로, 진지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혹시 지주혁스럽지 않으면, 한강에다가 불꽃쇼해서 해 줄 수도 있어. 프러포즈”
“태성아…”
“친구로서는 편한 대, 아직 연인으로서는 내가 부족한 거…알고 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나에게 그 권한을 좀 줘”
“…?”
“네가 다음번에 이승진에게든, 진시우에게든 그 외 다른 녀석에게든 대시를 당하더라도 ‘내 연인이니 손 떼’라는 멋진 말 할 권한 말이다. 그럼 너 완전 나에게 빠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두려운 걸까…나는…
바텀으로서의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
“…한태성”
“…됐다. 말 안 해도 된다. 왠지 네가 입 여는 게 무섭다. 시간 더 줄 테니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결론 내라. 안 그러면…”
“?”
“덮쳐 버릴 거다. 기술 걸어서 쓰러트린 다음에 옷 벗기고 강간해 버릴 테니까.”
…태산이도 어제 그 비슷한 말을 했지…라는 말은 안하는 게 좋겠지?
정말 이러다가 이 형제에게 순서대로 강간당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고 혼자서 몸서리 쳤다.
몸과 마음에 안 좋은 상상은 안하는 게 좋을 듯싶다.
애써 한태성의 말을 무시하고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어서 먹었다. 태성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오버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뭐…솔직히 말하면, 태성이나, 태산이나 그럴 남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시하면서 들을 수 있는 거겠지, 다른 남자들이 그 말 했으면 내가 오늘 여기서 기술 걸어서 뒤로 넘겼을 거다.
한태성과의 시끄럽고도 조금은 주위에 민폐인 식사를 끝내고, 역시나 bar로 향했다. 당분간 안 간다고 말했지만, 이미 bar는 태산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bar에 들어가니, 아니, 들어가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또 후회된다.
이승진씨를 따라 간 것이…
저 멀리서 태산이가 손짓하는 테이블에 가서 앉으니, 태산이가 폴짝 폴짝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그리고 덥석 팔짱을 끼고는 팔에 부비작 거렸다.
오늘따라 태산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어제 밤까지 만해도 나를 깔겠다고 외치던 녀석인데, 지금은 완전 바텀이 돼서는 애교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귓속말로 이야기 한다.
‘소문 없애기’
아아…이승진과 사귀는 걸로, 혹은 내가 깔린 걸로 소문이 난 듯싶다.
그러니까 나름 태산이가 머리 썼고, 자신과 하룻밤 한 걸로 지금 상황 극을 만드는 것 같았다. 태산이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 챈 태성이도, 의자를 슬쩍 당겨서 내 옆에 딱 붙어 앉고서는 내 어께에 팔을 걸쳤다.
“광경일세.…”
어느새 다가온 진구 녀석이 감탄을 하듯이 우리 셋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랄까…작품 세계가. 양손의 꽃도 아닌 것이, 꽃밭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잘난 귀족신사가 의자에 앉아 무릎에는 샴 고양이를, 기대기는 표범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오로라가 장난 아니구나. 다른 애들이 너희 셋 덕분에 눈 호강 제대로 하는 구나”
진구 녀석의 알 수 없는 말에, 우리 셋은 헛소리 하지 말고 주문이나 받으라고 구박했다. 궁시렁 거리던 녀석이 곧 마스터에게 가서는 우리가 즐겨 먹는 안주와 맥주를 시켜서는 가져왔고, 우리 셋 마주 편에 앉아서 오징어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계속 광경일세.…를 중얼 거렸다.
“어제, 주혁이 너랑, 이승진 가고 나서 진짜 bar에 파란이 일었다.”
“들었어.”
“너 드디어 먹히는 거냐. 바텀 데뷔냐 해서 내기 판까지 벌어질 기세였고, 다른 고양이들은 완전 절규를 하던데. 몸을 보아하니 괜찮은 듯싶다?”
“내기 판 벌리려고 한 건 네가 아니고?”
“윽!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아무 일 없었어?”
“없었어.”
“빨리지도 않았고?”
“전혀”
“은근히 그 인간 신사인가 보네”
“그런 것 같더…”
진구 녀석과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승진에 대해서 좋은 말이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두 형제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애써 웃으면서 답을 회피했지만, 태산이 녀석은 삐졌는지, 화가 났는지 맥주를 벌컥 이며 한 병을 비워 버렸다.
다행히 태성이 녀석은 인상만 구길 뿐 아무 말 안하지만, 안주를 집어 먹는 속도를 보아하니 조금 화난 듯도 싶다.
진구 녀석은 이 미묘한 기운을 모른 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어제, 네가 나가고 나서 정말 거의 한 달만이지? 진시우가 왔더라고”
“에?”
“오자마자 나 보고 너 어디 갔냐고 묻기에, 이승진이랑 나갔다고 하니까. 완전 인상 구기면서 전화 하던데, 전화 받았어?”
“……”
아, 그러고 보니…어제 그 한통의 전화가…그때인가…
“그때 한참 bar가 뒤집어졌을 때라, 너랑 이승진이랑 사귀는 것 같다고 주위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고, 나도 한참 그 내기…가 아니고 너 먹히느냐 안 먹히느냐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 그 이야기 싹 다 듣고 그냥 무표정으로 나가더라니까. 그때는 조금 무서웠다. 진시우가 너에게 마음 있는 것 같다고 애들이 지나가듯이 말하긴 했는데, 어제 보니까 나도 조금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
질겅질겅 오징어 씹어 먹으면서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사람에게 폭탄을 던지는 말인지 모르겠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현재 나를 포함해서 태산이 태성이는 완전 굳어서는 녀석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애는 지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건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다른 테이블로 옮겨서 조용히 구석에서 술이나 마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면서 태성이와 태산이 둘 사이에도 할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나 역시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죄다 까먹게 만드는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어? 호랭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우물…진시우 왔네.”
진구녀석이 손을 뻗어서 가리키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갔다.
그리고 곧 문 안으로 들어오는 진시우는 아까 이사진과 나갔을 때와 다른 옷차림으로 bar안을 걸어 들어왔다.
바텀만 앉아있던 옆 테이블이 꺅꺅 거리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저 바텀들도 본 걸까. 한 달만 먹은 미국 물…
진구녀석이 이리와!! 라고 외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녀석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이미 진시우는 우리 테이블을 한번 바라보고,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다시 오전과 같은 까닥 인사를 하였고, 나 역시 얼떨결에 까닥 인사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시우는 우리테이블로 오지 않았다.
마스터와 이야기 하더니, 바텐더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더니-분명 술이겠지-저 멀리 떨어져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그 주위로 몰려드는 그의 신하가 된 자들…
“어라? 저 녀석 왜 저래?”
“…낸들 아냐…”
진구녀석의 물음에 태성이가 심드렁하게 답했고, 태성이도 별 관심 없는 듯, 팝콘을 집어 먹었다.
“우리야 안 오면 좋지, 주혁형 한 잔 더 할래요?”
“아…응…고맙다.”
“뭘…헤헤”
“한태산, 형도 한잔 더 갖다다오.”
“싫어! 형은 형 손으로 갖다 마셔. 내가 언제까지 해줘야해?!”
“뭐야?! 이것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너 요새 기어오른다?! 참 그러고 보니, 너 1년 전에 백자 하나 깨 먹은 거 이번에 그 인간에게 일러 바쳤지?!”
“뭔 소리야?! 내가 그런 치사한 짓을 할까봐?!”
“그럼 그 인간이 어떻게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CCTV라도 설치했나 보지!!”
뒤에서 열심히 떠드는 두 형제들을 무시하고 진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진구녀석이 오징어 다리에 고추장 잔뜩 묻혀서 내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저 놈 좀 이상하네.…"
그 새 한 녀석 꼬였는지, 같이 손잡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맥주를 마시다가 얼핏 보았다.
눈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내가 본 것을 알까봐 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정말이지,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건지…
“한 달간 어디가 있다가 오니까 탑 순위 떨어진 것 때문에 충격 먹었나…하긴, 나 같아도 순위권 안에 있다가 이름 안 보이면 충격 먹겠다. 지주혁, 넌 여전히 3위더라?”
하긴 그 상황이라면 나 같아도 열 받겠지, 아아, 그럼 순위를 올려놔야지.
그럼…그럼…
“주혁형, 벌써 다 마셨어요? 한 잔 더 갖다 드려요?”
“응, 부탁해”
아, 오늘따라 술이 잘 들어가는 구나…
한 병, 두병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우리 테이블 위에는 맥주병만 해도 7병이 놓여 있었다. 나도 그렇고, 태성이도 태산이도 꽤나 주당이기 때문에, 7병을 마시고도 멀쩡할 정도였는데, 오늘따라 나는 술이 잘 받는다고 했더니, 빨리도 취했다. 슬슬 몸에 열도 올라가고, 실내가 덥고, 아무래도 얼굴에 물이라도 묻혀야 열기가 내려가지 않을까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정말 취했나 보네…’
걸음걸이가 영 내 마음대로 걸어지지가 않는다.
거기다가 발걸음도 무겁고, 숨도 가쁘다.
화장실 다녀와서 아무래도 그만 마시고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마셨다가는 내일 일에 지장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앗…하응…”
교성…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교성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서 들리는지는 안다.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또 누가 화장실 문 안 닫고 일 치르는 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아까 진시우와 진시우에 손에 이끌려 들어가는 한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인지, 잠시 다시 나갈까 생각했다.
“시우씨…하앗…누가 왔…”
역시 진시우였다.
아까 들어간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건지, 그럴 거면 차라리 호텔에 가던지,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 민망하게 정말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하긴 화장실에서 일 치르는 사람이 많으니 새삼 민망할 건 없지만 말이다.-
“신경 끄고 집중해”
그냥 뒤 돌아 나가려고 했는데, 진시우의 말에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통해서 그 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화장실 문 활짝 열고, 우리 좀 봐달라고 시위하듯 열심히 행위 중이었다. 아니, 몸은 행위중이지만, 눈은 거울을 향하고 있어,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가 아니라, 째려보고 있었다.
순간 화악하고 열이 올랐다. 오냐,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라는 유치한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울을 통해 진시우와 바라보면서도, 몸은 손을 씻고 수도꼭지를 꼭꼭 잠갔다.
그리고 옆에 있는 휴지를 뜯어서 손을 닦고, 옷을 정돈 한 다음에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가려고 했는데…정말 왜 계속 울컥 울컥 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 가서 일 때문에 못 놀아서 한 달을 굶었다고 치자.
하지만 난 지금 거의 반년을 훌쩍 넘어 금욕중이건만-사이에 로터로 풀긴 하지만-고작 한 달을 못 참고 저러다니, 아니 애초에 저 녀석 잘 나가는 탑 순위 1위였으니, 그만큼 놀던 놈이라는 건데, 그런데…
『아니, 괜찮…아, 당신…에게라면…나 다리 벌리고…당신을 받아…들이고…그래도 좋다고…진심으로…생각…했어…하지만, 나도…남자기에,…사랑하는 사람을…안고 싶어…안고 싶다. 지주혁…』
………그 말 한지, 1년이 지났어, 반년이 지났어, 고작 한 달……한 달…
어느새 내 손은 그 활짝 열려 있는 두 번째 칸 문을 꽉 잡은 채로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황당해하고 있는, 진시우 밑에 깔린 놈이랑, 그리고 진시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 두 번째 칸은 인연이 좀 깊지요? 진시우씨?
내가 바텀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도, 이 칸에서 진시우, 당신은 어떤 놈이랑 붙어먹고 있었고, 나는 그냥 있었을 뿐인데…
울컥 울컥…
하나 둘, 진시우에 대한 불만사항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정리한다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론은 하난 것 같다.
‘너도 당해봐라 이 멍청아-’
그렇게 결론에 도달하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진시우씨, 한 달 전에 말입니다. 당신이 내 귀에 대고 고백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기억 안 나세요? 그 날 밤에, 당신이 침. 대. 에. 서 말했지요. 나라면 안겨도 좋다구요.”
진시우 당신이 아파서 골골 되면서 침대에 누워있을 때 말했었지. 그런데 그런 부과적인 설명은 필요 없겠지?
“그거 그냥 저에게 장난으로 말 한 겁니까? 아쉽군요. 당신이라면 한번 깔아 줄 용의도 있었는데. 그럼 계속 즐기세요.”
할 말 다했으니 시원한 마음으로 뜨면 되지만, 이럴 때는 마지막 인사를 해두는 것이 좋다.
진시우가 아닌, 진시우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아…당신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실례했어요.”
진시우에게 말할 때와는 다른 톤으로…살짝 웃어주고…
“아…네…뭐…”
그 남자가 슬쩍 진시우를 밀어낸다.
몸에는 이미 정액 투성 이지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있는 것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뒤를 돌아서 화장실을 나왔다.
지주혁, 아직 안 죽었구나.
후우…
무언가 뿌듯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에 입맛을 다셨다.
이제 안 마실 생각이었는데, 방금 화장실에 있었던 단 5분간의 사건으로 술이 다 깨버렸으니, 조금 더 마시고 갈까 라는 생각에 테이블로 향하는데, 순간 누가 나를 끌어 당겨서 벽으로 밀었다.
쾅-하고 내 머릿속에는 종이 울렸다. 세게 머리를 부딪쳐서 시선이 어지러웠지만, 아마 내가 머리 부딪힌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bar안은 음악 소리로 시끄러우니까.
어지러운 시선 속에, 아까 화장실에 진시우와 있던 남자가 이상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와 저 멀리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옮기니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은 진시우였다.
이제야 초점이 제대로 잡히는 것 같아서 몸을 움직이려고 하니, 양팔로 내 어깨를 벽 쪽으로 꽉 누르고 있는 그의 손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뭡니까?”
“어제, 왔습니다.”
“?”
“어제 한국에 왔는데, 공항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이쪽으로 왔는데, 당신은 이승진과 나갔다는 이야기 듣고 내가 얼마나-!!”
녀석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할 말이 있지만, 망설이는 눈치 인 것 같았다.
난 이런 거 싫은데
“진시우씨. 할 말 있음 하세요.”
“…이승진과 사귀는 겁니까?”
“아니요”
단번에 나오는 대답에 그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인상을 인정사정없이 구긴다.
“어제 함께 나갔다고…”
인상은 구기면서, 왜 말에는 힘이 없어지는 건지…
“그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저녁만 먹었구요.”
“…아무 일 없었습니까?”
“무슨 일이요?”
“……”
“똑바로 말해주시죠. 진시우씨가 말하는 그 무슨 일이 뭔지”
“…후우…”
“…그 무슨 일 뜻이 제가 생각한 그 뜻이 맞는다면, 어제부터 수십 번 말한 것 같군요. 아무 일 없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힘을 줬던 손을 푼다. 덕분에 내 몸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나 역시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저도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오늘, 왜 그랬습니까?”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아까 그 남자가 돌아갔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와 그 남자 일행은 우리를 힐끔 보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푸욱 숙였다.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당신은 이승진과 사귀고 잤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당신에게 매달려 있는 내가 화가 나서…미국에 있으면서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불안했는데, 현실이 되니…미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럼 그때…감기…걸린 그 밤에 한 말은…”
“기억합니다. 생생하게-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겁니다.”
이제는 내가 한 숨이 새어나왔다.
도대체 난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 건지…
“아직 기회가 있습니까?”
“?”
“당신 옆자리…비어있냐는 말입니다.”
“…글쎄요. 지금은 모르…읍”
그의 손이 다시 힘을 주어 나의 어깨를 붙잡고 분명 진시우의 입술일 것이 분명한 말랑한 것이 내 입술이 부딪혔다.
혀를 넣는 딥 키스는 아니지만, 입술과 입술이 부딪힌 어린아이 장난 같은 키스를 몇 초고, 몇 분이고 서로 맞대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고, 덕분에 그나마 조금 있던 술기운이 화악 날아가 버렸다.
“많이 취한 것 같습니다. 지대리님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입술을 문대고 있는 나와 달리,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니 싱글 싱글 웃으면서 여유 있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챙기는 진시우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결국은 자기 답답한 거 푸니까 땡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나도 설렁 설렁 자리로 돌아가 보니, 한태성과 한태산은 이미 술이 취해서 헤롱헤롱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옆에서 목격한 진구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치하게 두 녀석이 싸우다가, 그 다음에는 나를 두고 싸우더란다. 내 다리를 봤네, 목덜미를 만졌네, 쇄골이 어떠네. 저쩌네로 정말 둘도 없을 만큼 유치하게 싸우고 마시더니 이렇게 뻗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데려다 줘야 할 것 같아서 옷을 챙기고 콜 부를 준비를 하니, 진시우가 다가온다.
마침 진시우는 술도 안 마신듯 하고, 자기 차도 있으니, 한태성과 태산이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인상을 구기면서도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가 따라가야 하는 조건이 붙었지만 말이다.
뒷좌석에 두 녀석을 태우고 나는 앞좌석에 앉아서 한 씨 형제들 집이 어딘지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는데, 폰이 울려서 받아보니 진구 녀석이었다.
진구 녀석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숨넘어가게 웃기 시작했다.
“미쳤어? 끊어”
[야, 잠시만!! 낄낄낄- 도대체 이거 무슨 소리냐?! 어?!]
“뭐가?”
[야, 너희 나가고 나서 이상한 이야기 돌고 있잖아 지금!]
“또 뭔데?”
[진시우가 너에게 깔리겠다고 말했다며?! 그럼 진시우가 이제 바텀인 지주혁에게 깔린 大 바텀이 되는 거냐고 난리다.]
“뭐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 소문의 출처가 지주혁 너던데? 진짜야?? 그럼, 진시우랑 오늘 나간건 거시기 때문이냐? 내일 그럼 진시우 엉덩이 붙잡고 나타나는 거야?! 으하하하 이거 진자 웃-]
폰의 종료 버튼을 조용히 꾹 눌렀다.
시끄러운 녀석
그나저나
“누굽니까?”
벌써 소문이 퍼진 건가.
그냥 아까는 왠지 울컥해서 하긴 했는데, 술이 깨고 나니까 그게 얼마나 삽질인지 알게 되었는데…이미 늦었으니까 뭐, 체념하기에는 내일 소문이 좀…뭐, 난 거짓을 이야기 하진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나에게 깔리는 진시우라니…
“풋…큭큭큭”
“…주혁씨…?”
“아하하하하하하”
“당신, 괜찮은 겁니까?”
“미안합니다. 큭큭큭 너무 웃겨서요. 하하, 그나저나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아웃팅 당했군요.”
“……?”
운전하는 중이라 차마 나를 빤히 바라보지는 못하고, 앞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정신없이 시선 옮기는 진시우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괜찮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니까요.”
그 산 증인이 저 아니겠습니까?
진시우씨?
내가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그를 보니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어쩌면 내일 bar에가서 이야기를 듣고, 칼 들고 나를 쫒아 올지도 모르지, 그때까지는 혼자 웃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