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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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불이네…”

    “…그렇지…”

    바에 도착해서 한 참을 자리 잡고 앉아있었지만, 한태성이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약속시간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거니 차가 막힌다고, 지금 가는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빨리 간다고 말은 하였지만, 괜히 서두르다가 사고 날 것 같아서 천천히 오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마침 막 바에 들어온 진구녀석과 눈이 마주쳐서 녀석과 태성이 올 때까지만 한잔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어찌 흘러나온 오늘 새벽의 꿈

    역시나 진구 녀석은 욕구불만이라고 말을 하고…하긴, 엔지처럼 해석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겠지.

    “욕불인게 당연하지, 너 탑일때는 주에 2번은 꼬박 꼬박 빼지 않았냐? 그런데 최근에-가 아니네, 어디 보자. 하나, 둘, 야야, 반 년 간 안했네, 그러니까 몸이 적응해?”

    “난 괜찮은데”

    “넌 괜찮겠지, 하지만 네 몸뚱이는 안 그렇단다. 네 정자들은 지금쯤 익었을 거다.”

    “혼자…하긴 해”

    “혼자 하는 거랑, 동굴 안에 들어가는 거랑 같아? 네 거시기는 지금 동굴을 그리워하는 거라고. 그리고 경험상 말 하건데, 너 그런 꿈꾸기 시작하면 1주일간 섹스만 하지 않는 이상 그 꿈 계속 꾼다?”

    “흠…”

    “이쯤 되면, 그냥 바텀 포기하고 아무 놈 골라서 자. 너 지금도 너만 바라보는 녀석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자는 상대에게 실례라고 했었다.”

    “그래, 네 말 뜻 알겠고, 너 착한 거 아는데, 그래도 이쯤 되면 포기해라. 어?”

    “뭘 포기하라고 하는거야?”

    “바텀 되는 거”

    “하?”

    정말 헛바람이 새어 나온다.

    “네가 탑에서 바텀 되는 거 탑으로서는 기뻐. 계집애들 꽤 찰 수 있는 기회인데. 그런데 너를 보면 안쓰럽다. 지금 상대 없…”

    “그래, 그래 진구 말이 맞다.”

    “여어~”

    진구가 말하는 사이에 설렁 설렁 나에게 다가온 남자 셋은 나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TOP10 이었다. 이번 주의…

    그들이 나에게 그 종이를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내가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1위…

    “이렇게 바텀 선언 했는데도, TOP10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주혁 너 뿐일 거다.”

    “이런 너를 안아 줄 바텀…이 세상에 있을 것 같아?”

    무시…무시…

    “솔직히, 우리들 모여서 지주혁 네가 우리 밑에 깔리는 상상 해봤는데, 진짜 역겹더라. 그 덩치를 해서 ‘앙앙’ 하고 울 걸 생각하니 진짜-”

    “킥킥- 앙앙 목소리가 나오긴 하겠냐? 내가 보기에는 걸걸한 숨소리 밖에 안 들릴 것 같은데.”

    “진구 말이 맞아, 넌 바텀이 아니라 탑 해야 해. 넌 키가 너무 커, 누가 자기보다 큰 놈을 깔고 싶겠어? 변태 아니면- 그리고 차라리 탑일 때의 지주혁이 낫지, 지금은 정말 꼴사납단 말이야. 알아?!”

    “야!! 너희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앉아-이진구, 난 신경안써”

    “하지만!”

    “전혀 그런 점이 귀엽지 않단 말이야. 바텀 다운 맛이 없잖아.”

    “그리고 한마디 해줄까? 만약에 너를 안고 싶어 하는 어떤 미친놈이 나온다면, 그 새끼는 너를 좋아하거나, 네가 바텀이라고 생각해서 안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맞아 맞아. 그건 남자로서의 프라이드라고, 지주혁…TOP1위를 하던 놈에게 자신의 물건을 박아 넣었다는 쾌감 말이야. 우리도 만약 지주혁씨 너에게 손대면 그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 둬, TOP1위를 TOP10이 깔아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긴 해”

    “킥킥킥 변태 아니야~!”

    애써 태연한 척 팝콘을 집어서 입에 넣었지만, 미세하지만 손이 떨려왔다.

    그래…아무리 나라도…아무리 저들이 말하는 잘난 지주혁이라도, 상처 받는다.

    저런 말을 들으면…아프다.

    내가 잘 못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든다.

    나는…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그들은 계속해서 옆에서 헛소리를 하며 즐겁게 떠들고, 진구 녀석은 걱정이 되는지 내 옆에 다가 와 앉았다.

    저들이 질투를 하는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 진구에게 나는 웃으면서 알고 있다, 고 답해주긴 했지만, 계속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듣기가 힘들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의 뒤에서 나를 끌어 당겼다.

    “지주혁씨가 얼마나 매력 있는지, 그걸 간파하지 못한 당신들은 바보군”

    “…이…승진씨?”

    “오랜만입니다. 지주혁씨”

    그의 등장으로 어느새 다시 바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승진’이라는 이름을 담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얼굴은 몰라도, 사람들은 그의 소문은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내 앞에서 헛소리를 하던 녀석들도 그의 소문을 들었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서 어느새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지주혁씨- 정말 가드가 심하더군요. 몇 번이나 만나러 왔는데 만나지 못했어.”

    “네?”

    가…드?

    “오늘은 웬일로 혼자시군요.”

    그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손을 내민다.

    에스코트의 의미

    “저녁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하나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이 나타났다.

    거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 그의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진구녀석이 걱정된 눈으로 손으로 X를 그리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입모양으로 말해주고 그의 손에 이끌려 바를 나왔다.

    이승진의 차를 타고 약간 열린 창문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은…내 스스로가 한심하구나. 이다.

    결국은 나는 이런 저런 헛소리 다 듣기 싫어서 도망 나온 것이니 말이다.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냥 예전처럼 그 사람들이 하는 말 같은 거 다 받아주거나, 맞받아치거나, 혹은 무시를 하면 될 거가지고, 견디지 못해서 이승진이라는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나온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스스로 한심해짐은 물론이요. 옆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내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하다.

    “신경 쓰입니까?”

    힐끔 바라본 것뿐인데, 그는 나의 시선을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그냥 말은 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타이밍 좋게, 나를 놀랬다.

    “아까 바에서 들었던 말들이 신경 쓰이시는 건지 묻는 겁니다.”

    “아아…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너무 과민반응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나 답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입니다.”

    “하하,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싸움 나던지, 아니면 울어 버렸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전 아주 잘 참은 거군요.”

    아직 바람이 차다.

    그리고 아까부터 다리가 뜨끈한 것이 아무래도 그가 히터를 튼 모양이니, 나는 창문을 닫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그냥 차에 올라타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차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꽤 좋은 차였다. 전에 탔던 차와 또 다른 차…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양복도, 간간히 양복 사이로 보이는 시계도 전부 명품 중에 명품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태성이나 태산이는 그가 조폭이라고 말했지만…

    “사람을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 역시 안 그런다고 하지만, 처음으로 보았을 때의 외모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건 별로 좋은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주혁씨는 그러지 않습니까?”

    “저는 외모보다는 몇 마디 주고받고 대화 후에 판단을 해보는 쪽입니다.”

    “저도 주혁씨처럼 그러고 싶군요. 그럼 주혁씨는 지금 저랑 대화해보셨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이 가능하십니까?”

    “…글쎄요.”

    나의 미묘한 대답에 그가 운전대를 잡고 나를 바라본다.

    덕분에 눈이 마주쳤고, 난 이승진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깊은 눈동자. 그 속을 알 수 없는…

    “조금 더 대화를 하면 저에 대해서 파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이승진씨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음…”

    “왠지 고민하시는 게 불안해 집니다. 하하”

    “이승진씨에 대해서 알기도 전에, 안 좋은 이야기부터 들었는지라, 계속 그런 쪽으로 생각이 들어서…”

    “안 좋은 이야기? 괜찮으시다면 어떤 쪽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나야 괜찮지만, 듣는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가 문제지…

    “조폭이라느니, 큰손이라느니, 돈으로 사람을 가지고 논 다고 하던지 그런 쪽의 이야기만 잔뜩 들어서 말입니다.”

    “이런…”

    그가 오버하는 게 분명할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허탈하게 웃는다.

    정작 나는 말해놓고 미안해져서 괜히 이야기 했다고 속으로 자책을 하는 중이었다.

    “주혁씨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도 전에 그런 나쁜 이미지부터 심었으니, 주혁씨에게는 오늘 하루 종일 봉사 하면서 이미지 탈피부터 해야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웃는 이승진을 보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가 말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떠드는 소문에 대한 부정은 하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남자다.

    성격도 처음에 생각했던 무섭다던가, 무게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이 잘못 되었던 건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 위이잉- 위이잉-

    잠시 차가 신호에 걸려 선 사이에, 내 주머니 안에 있던 폰이 요란하게 울려 대었다.

    진동이기는 하지만 조용한 차 안에서는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깜짝 놀라 폰을 꺼내서 보니 발신자는 [한태성]이라고 찍혀 있었고, 그 이름을 보자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태성과의 약속을 했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멋대로 나와 버렸으니-

    아무래도 잔소리 들을 준비를 하고, 백번 사죄할 준비를 하고 폰의 폴더를 열어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폰이 내 손에서 쏘옥 빠져 나갔다.

    폰을 내 손에서 빼간 주인공은 바로 이승진.

    그는 아직도 울리고 있는 내 폰을 바라보더니 종료 버튼을 누르고 배터리를 빼버렸다.

    “이승진씨! 무슨 짓입니까?!”

    “오늘 8시 이후의 지주혁씨의 시간은 제가 받았습니다. 허락한 의미로 저를 따라 나온 것은 지주혁씨입니다.”

    “그렇다고, 남의 전화를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전화 건 상대와도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승진씨와 나왔으니 전화로 사과를 해야-!!”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그는 내 폰에 다시 배터리를 끼우고는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오늘 밤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드릴 테니, 그때까지는 이 폰은 압수입니다.”

    “?!”

    “정말 어렵게 지주혁씨와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이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군요.”

    “이승-”

    - 빵빵

    어느새 신호가 바뀌었는지, 뒤에서 차들이 빨리 안 가냐는 신호를 보내고 그 소리에 놀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이승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꼼짝없이 무언가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지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느 정도 차가 달리더니 도착한 곳은 큰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맛있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있다며 이승진은 말했고 난 그의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니, 곧 그를 알아본 호텔의 높은 사람이 분명한 사람이 뛰어나와 그에게 굽신거리면서 인사를 하고 VIP 전용이라고 적혀 있는 금색의 엘리베이터에 우리를 태우고 안내했다.

    호텔 끝 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에서도 멋지고 근사한 인공 수족관이 자리 잡은 곳에 한 테이블에 안내되어 자리에 앉고 정말 지금껏 이런 대우는 받아 본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승진과 같이 왔다는 이유로 말이다.

    본적도 없는 메뉴판의 메뉴에 기겁하고 있으니, 이승진이 그냥 코스로 하지. 라는 말에 간단하게 메뉴가 결정되고 레스토랑의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준비를 한다며 주위에서 물러나자 그제야 조용해져 편안하게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 입니까? 대리로 알고 있는데…그 쯤 되면 회사에서 접대를 많이 받지 않습니까?”

    “대리는…접대를 받긴 하지만 기껏해야 한식 정도입니다. 이런 곳은…이사님이나 사장님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하-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비싸거나 고급스러운 곳은 아닙니다. 다음번에는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지요.”

    “이곳으로도 충분합니다.”

    난 눈앞에 크리스탈 컵에 담겨 있는 냉수를 한 잔 마시며 말했다.

    무언가. 이 사람은 정말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기분이 너무 느껴져서 지금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다.

    그냥 편안하게 태성이랑 술이나 마실 걸…하긴 그런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만든 상황이니까 말이다.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 헛소리 지껄이던 놈들을 밟아 주는 건데- 이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 녀석들에게 ‘짜증’화살이 당겨지고 있었다.

    “한태성과는 무슨 사이입니까?”

    “네?”

    이승진의 입에서 한태성이라는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가 어떻게 한태성을 알고 있지?

    “한태성은- 친구입니다만…”

    “친구라…친구가 맞습니까?”

    “왜 그러시죠?”

    “아니요. 당신을 만나러 가면 항상 한태성이라는 남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고 있어서 그 앞에서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한태성이…?”

    [지주혁씨- 정말 가드가 심하더군요. 몇 번이나 만나러 왔는데 만나지 못했어.]

    “설마- 가드라는 게 한태성입니까?”

    “아아, 한태성이 대장 격이지요. 레인져로 말하자면 레드- 그리고 그 옆에 동생은 블루, 또 옆에 있는 검은색은 이름이…진시우씨던가요? 그가 블랙입니다.”

    이승진에 입에서 만화 같은 이야기가 나오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기 딴에는 개그라고 한 걸지도 모르지만 안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고…그나저나

    세 사람이…?

    “한태성씨가 없다고 하면 한태산이, 두 형제가 없다고 하면 진시우씨가 나란히 집지키는 개처럼 경계하고 있더군요.”

    “하아…”

    힘이 쭉- 빠진다.

    그 세 사람이 왜? 라고 생각하고 묻는다면 그건 바보고 둔탱이인것이다.

    이승진이 처음에 나를 만나러 왔을 때, 태성이와 태산이의 반응을 생각한다면 아마 당연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진시우는…이승진을 아는…아, 그러고 보니 그날 진시우도 있었다. 만약 진시우가 그가 말한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면…그도 이승진을 경계했을 수도 있겠지만…

    막상 거기까지 결론이 미치니 아까 전화 온 한태성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한태성은 바에까지 왔을 것이고, 진구 녀석이 내가 이승진과 나갔다는 사실을 말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쯤 걱정하고 있을지도…

    “주혁씨 안 드십니까?”

    “네?…아…”

    어느새 눈앞에는 음식의 장관이 펼쳐졌다.

    절대로 평소에는 먹기 힘든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턱 하니 막혀 버려서 이게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사준 사람의 성의도 있어 나는 조금이지만 꾸역꾸역 입 안에 집어넣었다.

    식사를 대충 다하고- 그 사이에 내가 먹는 것을 보고 이승진이 입맛에 안 맞느냐라는 이야기를 무려 세 번이나 물어 보았다.-후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와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나 서야 또 다시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계속 이승진과 함께 있는 것이 이제는 죄책감으로 다가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가드라…”

    우습게도, 그 세 사람이 나를 지금 얼마나 생각하는 지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전부터 나는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친구로서, 동료로서 나를 생각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컸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들의 배려와 생각이 정말 나를 좋아해서…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된 거 같아서 짠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이겠지.

    “나…의외로 사랑 받고 있는 지도…”

    내 스스로 그렇게 말해 놓고 얼굴이 화끈 화끈 거렸다.

    이 얼마나 민망한 말인 건지…

    무엇보다 나에게 이런 말을 할 날이 올 줄은…

    스스로 생각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몇 번이나 저었다.

    어느 정도 생각도 정리 되었고, 너무 오래 화장실에 있으면 또 실례니까 걸어 나가려고 다리를 움직이는 순간 엉덩이 안에서 무언가가 움찔 하였다.

    “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제 밤에 했던 로터…아침에 빼려고 했는데, 그냥 내버려두자 하고 나왔는데, 로터다운 음직임이 없어서였는지 일하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물론 몸 안에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로터를 계속 하다 보니 그 정도 이물감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지금 빼려고 해도 마땅히 놔둘 때도 없고, 아무래도 정기적으로 진동이 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분명 고장 난 것이 분명한 로터였다.

    “그 하얀 건가.”

    얼마 전에 소독하면서 떨어트리는 바람에 고장 났던…

    오늘 따라 정말 나답지 않은 일을 많이 하고, 그리고 많이 생기고…

    게다가 로터까지 고장 난 것을 착용(?)하고 왔으니 보통 같으면 짜증났겠지만-모처럼 로터를 하고 밖에 나왔는데 반응이 없으면 정말 화난다.-, 오늘은 손님을 만나는 상황에서 로터가 진동하며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자리를 돌아갔다.

    후식은 이미 자리에 푸짐하게 나와 있었다.

    아까까지 엄청난 음식을 먹었는데, 다시 푸짐한 후식이라니, 완전 배 터트려 죽일 작정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양을 내 올수가 없었다.

    “오래 걸렸군요.”

    “아…네, 좀 배가 불러서”

    “그럼, 일어날까요?”

    “네?”

    잠시만, 이 많은 음식들은 어쩌고-

    “일어나죠. 주혁씨-”

    “아…네…”

    이승진은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레스토랑 입구에 서서 우리를 계속 보고 있던 높은 사람일게 분명한-내가 직위를 모르니-사람과 대화를 하더니, 인사를 받고 나를 불렀다.

    호텔에서 나오니 역시나 차는 대기 상태였고, 아까 올 때보다 더 많은 직원들이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후우…”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 숨

    핸들을 잡아서 매끄럽게 돌리던 그가 나의 한숨에 피식 웃어 버린다.

    “사실은, 호텔에서 나오기 싫었습니다.”

    “?”

    “주혁씨는 모르겠지만, 스윗트룸을 예약해 놓았었습니다. 그대로 지주혁씨를 데리고 그 스윗트룸의 침대에 눕혀 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이미지 쇄신이 되지 않겠더군요. 그래서 참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그 사람의 눈동자에 왠지 칭찬해주십시오. 오로라가 나오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하였다.

    “잘하셨습니다.”

    “하하…역시 그렇지요?”

    “네”

    “…주혁씨”

    “네?”

    “전에 제가 저를 좋아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 기억합니까?”

    “아…”

    [만약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군요. 주혁씨]

    난 그때 이승진이 한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후 궁금해서 주혁씨를 만나면 묻고 싶었습니다. 아니 꼭 물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이승진의 말에 내 가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뛰는 내 심장을 느꼈다. 그러나 그 심장은 살아 있는 나를 위한 것- 그 누구를 위해서 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직 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직 기회는 있는 거군요.”

    “기회…말입니까.”

    “당신을 손에 넣을 기회- 아. 하지만 그 전에 이미지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당신 이미지(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모르겠다.)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말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그냥 그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그리고 곧 그가 야경이 좋은 곳을 안다고 말하며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끄덕이면서도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10시 가까이가 되어간다.

    아무래도 한태성에게 한번이라도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승진 품 안에 있는 폰은 쉽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어디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가게 된다면 몰래 나와서 공중전화라도 이용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뒤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과 그리고 나의 모습과 겹쳐진 야경이 보였다.

    ‘어…?’

    야경사이에 건물 뒤로 보이는 달을 보며 조금 있으면 보름이네…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무언가의 진동을 느꼈다.

    혹시 내가 잘못 느낀 것인가? 하고 신경을 진동을 느낀 곳으로 집중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세하지만 약한 진동이 몸속에 있는 로터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

    하필 지금…

    이를 꽉 깨물며 나는 몸을 조금 웅크리고 이승진을 바라보니, 그는 아직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운전에 신경 쓰고 있었다.

    그때 큰 진동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 몸을 화들짝 펴니 이승진이 웃으면서 자신의 폰을 가리키며 ‘실례’라고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하긴 그렇게 큰 진동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도…

    ………젠장

    위잉 거리며 내 몸속의 진동의 폭이 커져가고 그리고 그 주기도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놈의 로터 나중에 잘근 잘근 밟아 주겠다고 결심하고 어떡해 해서든 이승진이 눈치 채기 전에 수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좁은 차 안에서 내가 쓸 수 있는 수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지금 현재 집 근처라는 것-

    - 위이잉- 위이잉-

    ‘제발…’

    - 위이잉- 위이잉-

    “잠시…”

    전화 통화를 하던 그도 계속 어디선가 들리는 미묘한 소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가 전화 통화를 중지하였을 때는 진동이 나지 않아서 그는 잠시 표정을 구기더니 다시 전화에 집중했다.

    그에 반해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안에서 큰 진동보다 미세한 진동으로 꾸물꾸물 로터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그 지점에 닿으려고 해서 안이 간질간질 거렸다.

    “이승진…씨”

    무례 한 것은 알지만 난 통화하는 그를 불렀다.

    그가 통화를 하면서 나를 바라보며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했지만 난 일분일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승진씨, 저 내려 주십시오.”

    “?…잠깐 기다려…주혁씨,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곧 다와 갑니다.”

    “아니요. 여기서 세워 주세요. 집도 조금만 걸어가면 되-!! 윽!!”

    젠장,

    다시 울리기 시작한 로터가 정확하게 그 지점을 건들였다.

    덕분에 넉 다운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입으로 튀어 나오려는 야롯한 소리는 막았지만…

    “이승진씨 저 좀 내려 주세요!!”

    “후우…나중에 다시 전화 하지”

    그가 폰을 끄며 폰을 핸들 앞에 내려다 두고, 운전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 단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참자. 이를 악물고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를 조금 벗어나 근처에 외진 곳에 그가 차를 세웠다.

    이상함에 그를 바라보니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 내 쪽으로 다가와 의자를 뒤로 눕혔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저지할 타이밍도 놓치고 뒤로 벌렁 넘어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가 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꽉 눌렀다.

    “이승진씨!”

    “아까부터 진동소리가 나더군요.”

    역시…눈치 챈 건가…

    “그…그건 제 폰에서 나는 소리…”

    일리가 없지, 그의 아 주머니에 내 폰이 있으니까. 그것도 폰이 꺼진 채로-

    “제 생각에는, 여. 기. 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나의 엉덩이 밑으로 들어와 만지기 시작한다.

    “빼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괴롭지 않습니까?”

    “아니요- 괴롭지 않습니다.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비켜 주십시오.”

    두 번째다.

    이런 비슷한 일이 있는 것은…그때, 진시우도…

    “이런…하지만 이미 앞은 터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능글스러운 말을 하면서 뒤에 있던 그의 손이 다시 앞쪽으로 이동해서 양복 재킷에 가려져 안보이던 나의 볼록한 앞 선을 만지기 시작했다.

    “으읏- 비키십시오. 이승진씨!!”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약속 하겠습니다.”

    “아니요- 이 이상의 일은 허락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약속 하실 필요 없습니다.”

    “냉정하시군요. 그럼 힘을 조금 쓰는 수밖에 없을까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꺾었다.

    그 아픔에 눈물이 찔끔 나오고 아파서 나도 모르게 보기 흉한 고통의 소리를 내 질렀다.

    그는 그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쪽 발은 나의 왼쪽 허벅지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나의 바지 버클을 풀려고 했다.

    “비키…십시오.”

    “그렇게는 안 됩니다.”

    “비키라고 했잖아!!!”

    꽝-!!!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의 클렉션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승진은 자신에게 날라 간 내 다리를 피하고는 ‘휘유~♬’하는 휘파람을 불렀다.

    “두 번째는 비켜가는 일 없이 정확하게 이승진씨 가슴을 내려치지요. 어서 비켜 주십시오”

    “큭큭- 정말 다른 사람과는 틀리군요. 당신은”

    그는 웃으면서 두 손을 나에게 떼고 만세를 포즈를 취하더니 바로 앉았다.

    나는 조금 흐트러진 옷을 바로하고 차 문을 열었다.

    “폰 주십시오.”

    그는 내 말에 자신의 품안에 있는 내 폰을 주었다.

    “이미지 쇄신은 힘들겠군요.”

    “네, 오히려 마이너스 100 곱하기 1000이라고 해드리지요.”

    “이런- 그럼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일부러 탕- 소리가 날 정도로 힘주어 그의 차 문을 닫았다.

    그는 출발하기 전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정말 피곤했다.

    처음부터 피곤하게 만들더니, 끝까지 피곤하게 만들었다. 저 사람은…

    물론 도피를 하기 위해서 저 사람을 택한 것은 나지만…

    헝크러진 머리를 다시 매만지고 터덜 터덜 걸으면서 폰을 켜 보았다.

    폰을 키자마자 부재중 통화 메시지들…총 23건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미친놈…”

    한태성, 한태산, 한태성, 한태산, 한태산, 한태성, 한태성…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한태성…

    그리고…그리고…진시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폰의 발신자를 바라보았다.

    진시우…진시우…? 진시우라…

    해외 출장 가지 않았나? 

    벌써 돌아 온 건가…아니, 상무님 말씀으로는 돌아온다고 했던 건 3일 뒤인 것 같은데…혼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만가지의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손은 집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옷을 하나씩 벗고 있었다.

    아까 이승진이 만진 것 때문도 있고, 안에 진동 때문에 난 땀 때문에 몸이 찝찝해서 바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문 앞에서는 태산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태산…”

    “주혁형!!!”

    “으악-”

    나를 보자마자. 정말 커다란 강아지가 주인 반갑다고 튀어 오르듯 태산이가 튀어 올라서 그대로 나를 끌어 안…이 아니라, 덮쳤다. 덕분에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태산이는 나를 붙잡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혀엉…”

    집에서 무슨 일 있었나.…? 태성이네는 정말 복잡한 집안 사정이 있으니까.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을 하니, 내 품에 안겨 있던 태산이가 크게 움찔하였다.

    그리고 울먹거리던 것을 멈추고 서서히 고개를 드는데, 그 모습은 정말 지금껏 보아왔던 귀여운 한태산의 이미지가 아닌,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이미지였다.

    서서히 일어나, 내 배에 앉은 태산이 녀석은 나의 멱살을 잡고 고개를 가까이했다.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에?”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외치는 녀석을 보고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지…라고 생각해도, 그 이유…안 물어봐도 알 것 같으니까.

    이승진씨 말을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위험하든 안하든 태성이나, 태산이나, 그리고 진시우-믿기 힘들지만-도 나를 이승진 영역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그들을 배신하고 이승진에게 스스로 걸어가 버린 꼴이 되었으니…

    “미안”

    “……”

    “미안하다. 태산아.”

    “…칫…”

    그제야 화가 풀린 듯, 멱살 잡던 손을 풀고 다시 내 품에 포옥 안긴다.

    아아…복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산이가 화가 풀렸으니 다행이다.

    태산이에게 저녁 먹었냐고 물으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아직 밥 먹지 않았다는 태산이에게 피자 시켜 준다고 말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을 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은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았고, 나는 피자집에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든 순간에, 부재중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10개 정도가 있는데, 남겨진 번호를 봐도 그건 한태성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여러 사람들에게 괜한 걱정 시킨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피자집 전화번호는 잠시 전화기 옆에 두고, 태성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하나하나 누르면서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어떤 잔소리를 할지, 어떻게 화를 낼지 이제 안 봐도 훤하니, 몸이 먼저 긴장상태에 들어갔고, 머릿속은 내 잘못이니까. 라고 스스로 납득 시키고 있었다.

    [이 새끼야!!!!]

    다짜고짜. 전화 받자마자 들려오는 고함소리-

    이래서 발신자가 생긴 건 안 좋아, 우리나라 전화 문화에 ‘여보세요’가 빠졌으니까…라는 생각은 지금 하면 안 되겠지?

    “연락 늦게 해서 미안하다.”

    […씨발, 젠장]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 거냐?! 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하아…지주혁 정말이지 넌…]

    “…응?”

    […화낼 틈도 주지 않는 구나. 나쁜 새끼]

    “하하…”

    [웃지 마, 뭐 잘했다고 웃어?! 전화번호를 보아하니, 집인 것 같고, 그 새끼가 헛짓 안하든?!]

    “그냥 밥 먹은 게 다야.”

    그것보다 더 한 일이 생길 뻔했지만, 그건 내 부주의였으니 묻어 두자.

    [정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일찍 왔지”

    [후우…그럼 다행이고, 젠장. 그 너구리 같이 생긴 자식은 하는 짓도 얍삽해서-]

    “너구리? 누가? 이승진씨가?”

    […그럼 그 새끼 말고 또 누가 있어?!]

    “하하- 너구리라니!”

    [웃지 마라.]

    “흠흠…태산이 와 있어”

    [아아, 알고 있어, 나랑 같이 너 미친 듯이 찾다가 너희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다고 했거든]

    “넌 어딘데?”

    [그건 알 거 없고…]

    잠시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태성이는 전화기 저편에서 계속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하는 양 우물우물 거렸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집에 안간 거라면…집에 와”

    […하아…]

    “피자 시킬 거거든”

    [됐어. 관둘래. 보면 한 대 때릴 것 같으니까. 내일 보자]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태성이는 아무 말 없다가, 한숨을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걱정한 모양이었다. 내일 저녁사주고 무슨 잔소리라도 얌전히 다 들어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태산이를 위해서 피자를 주문시켜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고 샤워기로 몸을 샅샅이 씻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찜찜했는데, 이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을 어느 정도 씻고, 욕실에 서랍 안에서 젤통을 꺼냈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에 묻혀서 애널입구에 발랐다.

    아까 이승진씨가 있을 때는 줄기차게 진동하던 로터가 지금은 다시 잠잠해져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빼는데 좀 힘이 들 것 같아서 숨을 들이 쉬었다.

    세면대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배쪽으로 하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젤로 인해서 손쉽게 들어가긴 하지만, 그건 하나일 때고, 두 개를 밀어 넣으니 그래도 아파서 입에서 단발마의 신음소리가 나왔다.

    밖에 태산이가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아니 생각 같아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제발…좀…잡혀라…”

    예상대로 쉬 잡히지 않는 로터였다.

    이럴 때마다 정말 로터를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귀찮고, 잘못했다가는 이렇게 고생하고…

    “으으…”

    아…하고 신음소리가 나올 때쯤,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인 결과 로터가 손가락에 딱 잡혔다.

    조심스럽게 녀석을 빼내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이게 뭔 짓인지…

    떼구르르 구르고 있는 로터를 보면서 스스로 한심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얼른 휴지로 그 로터를 말아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젤로 뒤덮인 하체를 다시 씻으려고 샤워기를 들면서 거울에 미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방금 전의 로터를 꺼내면서 일어나 자극으로 살짝 서 있는 페니스하며, 그리고 열이 올라 빨갛게 된 피부하며, 젤로 번들거리는 하체…그리고 열심히 손가락 운동한 탓에 약간의 땀과 물에 젖은 몸…완전 섹스를 막 끝낸 사람 같다.

    그게 바텀으로서 섹스를 한 것인지, 탑으로서 섹스를 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벌써 피자가 도착한 것인지 피자 냄새가 솔솔 나더니 거실에서 태산이가 정말 와구와구 라고 해도 될 만큼 미친 듯이 먹고 있었다.

    아침 먹고 수업 때문에 못 먹고 있다가, 점심 먹으려는 차에 내 소식을 들어서 나를 찾는다고, 그 이후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니, 배고플 만도 하지. 그것도 계속 자라나는 청소년에서 막 벗어난 청년인데,

    천천히 먹으라고 말을 해주자. 태산이 녀석은 피자를 문채 빤히 바라본다. 부담스러운 눈길에, 애써 시선을 돌리며 내 몸을 바라보았다.

    혹시 뭐라도 묻었나. 싶어서…

    “주혁형, 정말…섹…”

    “천천히 먹어라. 콜라 안 왔구나? 맥주라도 마실래?”

    또 그런 분위기가 되나 싶어서 얼른 말을 돌렸다.

    녀석이 내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맥주를 가지러 가면서 식탁위에 올려져 있던 내 폰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까 분명…

    “진시우…”

    다시 한 번 확인해도, 그 한태성 사이에 딱 한 글자가 있었다.

    시우…

    번호를 보니, 폰 번호이고, 아무래도 한국에 온 것 같다.

    로밍해서 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으니까. 아니, 나에게 이야기 안 한 걸 수도 있지만…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일 때문인가? 싶어서 통화 버튼을 누를까도 했지만, 그랬다면 분명 문자나, 음성메세지라도 남겼을 거라서,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다.

    “켁켁- 주혁형- 맥주~!”

    “거 봐라, 천천히 좀 먹지”

    켁켁 거리며 달려온 태산이에게 얼른 맥주를 건네주고,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히 녀석의 화가 풀린 듯싶었다. 아까 피자 시켰다고 할 때만해도 내가 먹을 걸로 넘어갈 줄 알고?! 이렇게 말하며 투덜거리더니…

    벌컥 벌컥 잘 맥주 한 캔을 원샷한 녀석은 냉장고에서 한 캔 더 꺼내서 룰루랄라 하고 다시 피자 앞에 앉았다.

    “천천히 마셔, 술까지 취할라”

    “나 여기서 오늘 자고 가면 안 돼? 형?”

    “이상한 짓 안한다고 맹세하면”

    장난삼아 이야기 했는데, 태산이 녀석은 내 말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혀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중얼 중얼 거리면서…

    “내가 깔려 주면 안 되겠지?”

    “네가 깔려주면 생각은 있지만, 너는…두 번 다시 나에게 안길 생각 없는 거 아니었어?”

    “형도 나를 두 번 다시 안을 생각 없으면서 무슨 소리야?”

    “비겼네, 그럼 이 상태 로면 서로 이상한 짓 안 할 거고, 자도 돼. 뭣하면 침대에서 자도 되고”

    “…하…”

    태산이 녀석이 피자를 먹다가 내 말에 툭 피자를 떨어트리고는 허탈하게 웃는다.

    방금까지 재미있게 농담하다가, 급 굳어버린 녀석의 얼굴을 보니 나 역시 굳었다.

    오늘 하도 지은 죄가 커서인가, 계속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형은 너무 날 편안하게 생각해”

    “편안…하니까.”

    “형 침대에서 나 오늘 재우면 형 위에 올라탈 거야.”

    “…태산아”

    “진심이라고”

    다시 피자 하나를 쭈욱 떼서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으면서 말하는 녀석이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진심이 보여서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생각했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낫겠지?

    “나는…”

    “그러니까, 난 오늘 여기, 거실에서 잘래. 인내심을 키워야 멋진 남자가 되지”

    “태산아…”

    “그럼 형이 스스로 나에게 안기러 올 테니까.”

    “……”

    “그렇지? 형?”

    “…그래…이불 내어다 줄게”

    “오리털 이불”

    “알았어.”

    아무래도 내가 쓰고 있는 오리털 이불을 줘야 할 것 같아서, 한번 털어서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태산이가 피자를 먹으면서 내 바지 자락을 잡았다.

    “오늘…형, 아버지에게 불려갔었어. 그것 때문에 형하고의 약속시간 늦었다고 그러던데.”

    “아아…”

    약속 시간에 늦는다고 했을 때는…차가 막힌다고 했지, 아버지에게 불려갔다는 소리는 안했는데…하긴, 굳이 할 필요가 없나.

    “난 어제 불려 갔었어”

    “그래…”

    “아버지가, 형 보고 선보라고 하는 가봐”

    “…선…?”

    “형이 게이인거 모르시니까. 하긴, 내가 게이인 것도 모르시고, 벌써 맞선 볼 여자들 명단을 쫙- 뽑아놓고 준비하고 계시더라고. 아마 그것 때문에 오늘 아버지랑 엄청 싸웠을 거야.”

    “…그렇구나.”

    “형의 문제겠지?”

    태산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래, 그것은 나에게 답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어떤 뜻이건 간에,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야. 라고 말해주기를 원하는 눈 빛

    “태성이 문제니까…알아서 하겠지”

    “그렇겠지? 나나, 형이나…나설 필요가 없는 거지?”

    “태산이 넌…형에게 도움이 되어야겠지만, 난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

    “그래, 역시 그렇지…”

    내 대답에 흡족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바지자락을 잡고 있던 태산이의 손이 떨어져나갔고, 태산이는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켰다.

    그런 태산이를 한번 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오리털 이불을 탈탈 털면서도 왠지 모를 마음의 복잡함이 느껴졌다.

    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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