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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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온 나는 나의 너무나 과민한 반응에 절망했다.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 했을까? 그냥 잘못 보았다고 시니컬하게 한번 웃어주면 될 것 가지고 뭘 그렇게 동요해서 도망치듯 빠져 나온 건지 정말 한심했다.

    게다가, 그냥 바에서 한번 보는 사이라면 애써 무시하면 되는데(혹은 내가 피하던가) 같은 회사에, 같은 부서에 정말 내일부터 부서에서 생활을 어이하나…싶을 정도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당신…날 보는 눈이 계집이 사내를 보는 눈이야.』

    두 근…

    심장이 아프다.

    너무나 아프다.

    가슴을 죄여와 숨을 못 쉬게 만들 만큼…

    꼭 내 안에 있는 여성적인…남자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왜 이러느냐 지주혁…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쳐다도 보지말자. 응? 제발”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뺨을 두 번 때렸다.

    때릴 때마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별이 보였다.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별이…

    어차피 내일…아니 오늘은 휴일이니 잠이나 자자. 싶어 폰의 배터리를 뽑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으니 계속해서 진시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 괴로웠지만, 곧 양을 732마리나 세고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 난 것은 오후 2시쯤 넘어서였다.

    일어나 대충 밥을 차려 먹고, 그동안 못 읽은 책들을 조금 읽다가,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을 누르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 보고, 몇 번 웃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즐겨찾기가 되어있는 ‘플러스마이너스의 차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힌 사이트의 대문을 클릭하였다.

    누가 보면 저 문구를 보고 웃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정말 황당한 문구가 아닌가, 하지만 나나, 이곳의 회원들에게 있어서 그 말은 너무나 절실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사이트는 여전히 활발하고 사람들은 절절했다. 마음에 들은 탑을 만났는데도 고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들을 읽으니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감정이입을 하고 그 글을 읽고 꼬리말도 달았다.

    그리고 공지를 읽어보니 마침 오늘이 정팅 날이라서 정팅에 참여 하였다.

    ++++++ [로그]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

    엔지 : 여어~ 로그! 오랜만!

    탐은내꺼 : 엇, 로그형이다!!

    바이브 : 안녕하세요.

    로그 : 안녕하세요.^^;

    진수성찬 : 방가~ 로그님 처음 뵙는 분이다!

    바이브 : 그러게요…소개 좀…

    로그 : 아;; 28살…

    엔지 : ...................................

    바이브 : .....;;;;

    탐은내꺼 : 로그형에게 저거 이상의 대답을 듣기는 힘들 텐데;;

    로그 : ????

    엔지 : .....동감;;;

    탐은내꺼 : 로그형~ 다음 주에 우리 정모 하기로 했는데, 한 번 안 볼래요?

    로그 : 다음주…? 아, 잠시만 스케줄 체크 하고…

    진수성찬 : 스케줄?;;...뭐 하시는 분이신데요? 

    진수성찬  : 아, 이런 거 물어 보면 실례려나

    로그 : 아, 아닙니다.^^; 그냥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로그 : 다음 주면 괜찮을 것 같네

    탐은내꺼 : 진짜?! 오예~!!

    엔지 : 드디어 로그의 얼굴을 보는 군..ㅠ.ㅠ

    탐은내꺼 : 아...길었어..ㅠ.ㅠ..그동안 시간 안 된다고 빠져나간 세월이 얼마야..ㅠ.ㅠ

    바이브 : 유명하신 분이십니까?,..;;

    엔지 :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로 유명하지...=_=

    탐은내꺼 : 소문에는 엄청난 미남이라는...기대야 기대!!

    로그 : ....;;;;;

    진수성찬 : 아, 그래서 아까 하던 말, 말인데요. 제 후배 녀석 데려가도 됩니까?

    바이브 : 아, 맞다. 그 이야기 하고 있었지;;

    엔지 : 괜찮을 것 같긴 한데, 탑입니까? 바텀입니까?

    진수성찬 : 탑입니다. 엄청 잘 생긴 놈인데, 일단 현재 솔로라...

    진수성찬 : 우리 싸랑하는 플,마 회원들에게 소개 좀 해주려고..ㅎㅎ

    탐은내꺼 : 진수성찬님 완소..;ㅁ;

    바이브 : 문제는...진성님 후배님이 과연 떡대를 좋아하느냐...ㅡ_ㅡ

    탐은내꺼 : orz

    엔지 : 갑자기 급 우울;;

    진수성찬 : 괜찮아요. 그 녀석 키가 189인가? 190인가 돼서, 여기에 그 놈보다 떡대인 사람있습니까?

    탐은내꺼 : 나라 10센티나 차이가 나!!! 아 행복해..;ㅁ;

    엔지 : 난 아님

    바이브 : 나도 아님;;

    엔지 : 로그는?

    로그 : 저도...

    진수성찬 : 그럼 뭐 됬네요.

    바이브 : ....;;...그래도 그 후배의 취향이..;;;귀엽고 여리여리 한 아이면;;;

    진수성찬 : 알게 뭐랍니까..=_=

    엔지 : .;;;;;

    탐은내꺼 : 그 후배는 몰라도 우리에게 상처가!!

    진수성찬 : 그건 그렇네요. 그럼 데려가지 말까요?

    탐은내꺼 : 아니, 그건 그거대로 싫은데...

    엔지 : 눈이라도 즐겁게 데려오세요~

    바이브 : 흑...눈으로 즐겨야 하나..orz

    로그 : ...^^;;;

    ++++++ [사파리]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

    사파리 : 할룽

    바이브 : 운영자가 늦게 들어오면 어쩝니까..=_=+

    탐은내꺼 : 사파리 할룽~

    엔지 : 밥 먹고 왔냐?

    사파리 : 어

    로그 : 사파리님 오랜만입니다^^

    사파리 : 엇, 로그님!! 오랜만~!!

    사파리 : 이번에 가게에 로터 새로 들어왔는데, 관심 있으심? 그럼 보내드리고

    로그 : 후기에 올라와있는 건가요?

    사파리 : 노노...어제 들어온 신상품이라 아직 사용한 놈들 없을걸요.

    탐은내꺼 : 치사하다!! 왜 나에게는 신상품 이야기 안 해주는데!!

    사파리 : 넌 로터가 아니라 바이브파잖아

    바이브 : 난 로터 재미없어

    엔지 : 바이브는 닉네임 보면 알어..=_=;

    바이브 : 흐흐

    진수성찬 : 로터 괜찮아요? 나도 바이브가 좋던데

    로그 : 보내주세요^^ 돈은 계좌번호로 제가 입금할게요.

    사파리 : 아니, 이참에 로그님도 바이브로 바꾸던 지요. 사실 느낌은 바이브가 더 실감나긴 하지

    로그 : 아직 그 정돈;;

    엔지 : 덜 굶었구나. 부럽다....

    탐은내꺼 : 그러게, 왜인지 부럽다...

    로그 : ..^^;;;;;;;;;;;;;;

    장장 한 시간 반가량의 채팅을 끝내고, 물을 한잔 마셨다.

    물론 정모에 꼭 나간다는 약속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풀려났지만…

    하지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무언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이었는데, 진시우의 한마디에 이렇게 내가 흔들릴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어제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나름대로 진시우가 다시 나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을 할지도 생각해 놓았다.

    하지만, 그 답을 말할 기회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아닌 진시우가 그 다음날부터 나를 봐도 시큰둥…그 날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행인가, 싶었지만 여전히 복잡한 마음…

    “주혁씨, 우리랑 밥 안 먹을 래요?”

    월요일만 되면 월요병과, 그리고 분명 저번 주에 일을 미뤄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뤄져있는 일처리 때문에 한참 바쁠 때, 여사원의 말에 그제야 나는 점심시간인 것을 알았다.

    책상이나 컴퓨터에는 이미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지만, 애초에 밥을 먹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으니 고개를 끄덕였는데, 식당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자리에 진시우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색하게 진시우의 마주 편에 앉아서 여사원들이 하는 말에 대답해주고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힐끔 진시우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밥만 잘 먹었다.

    이쯤 되자, 어쩌면 그가 한 말은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농담…

    우습구나. 지주혁 

    그런 농담과 장난도 구분 못하고 이렇게 동요 하다니…

    내 스스로도 웃겨서 피식 웃자. 옆에 앉은 여사원이 무엇이 웃기냐고 묻기에 어제 채팅하다가 김치찌개 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에 여사원들은 주혁씨는 가끔 귀여운 면이 있다고 깔깔깔 웃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묵묵히 먹기만 했다.

    그리고 정모 날이 다가왔다.

    정모 장소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고, 엔지님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정모나,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은 처음 보기 때문에, 나름대로 옷도 신경 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했지만 도통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몇 번이나 혼자서 헛기침을 하였다.

    “손님이신가요?”

    아무래도 너무 밖에서 어물어물 되었는지, 결국 그곳의 종업원 한명이 나와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예약 하셨나요?”

    “아…플.마라고 예약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이쪽입니다.”

    종업원의 안내로 그 레스토랑의 구석에 위치했지만 제법 고급스러운 문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낯선 사람 4명이 앉아서 이야기 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일제히 조용해졌다.

    일단 인사…

    “처음 뵙겠습니다. 로그라고 합니다.”

    내 소개에 맨 끝에 앉아있던 남자는 벌떡 일어나 척척 걸어오더니 느닷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이렇게 멋지다니!!! 아, 로그형 저에요 탐은내꺼~!! 우와, 진짜 내가 생각한 거 이상이야.”

    “감사합니다.”

    “아…정말 바텀인거야? 진짜야? 완전 내 이상형인데, 아깝다…”

    “탐아! 로그에게 실례잖아. 안녕 로그 난 엔지야. 처음 보네”

    “안녕하세요.”

    “역시 실제로도 별로 말이 없는 타입이군.

    “아…”

    “저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사파리고, 그리고 그 옆은 바이브”

    엔지님의 소개에 두 남자는 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하였다.

    나 역시 인사를 하고 엔지님이 앉으라고 한 자리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외모적으로도 딱 보아도 모두 탑이라고 생각 될 사람들이었다.

    얼굴도 정말 잘 생겨서 탐은 나보고 자기 이상형이라고 했지만, 나 역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탑이 었다면 조금은 동요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멋진 사람들만이 모여 있었다.

    “무슨 생각해? 로그?”

    “아…바텀들이 몇 명 울겠구나.…라는 생각이…”

    “풋…”

    “로그님!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정말 문 열고 들어오는데 광채가…후우…난 진수성찬님이 말씀하신 그 후배인줄 알았다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성찬이가 좀 늦네.…”

    “그 후배가 보고 싶다…”

    말 떨어지기가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 두 사람을 보고 일제히 숨을 멈췄다.

    딴 사람들은 분명 두 사람의 외모에 놀랐겠지만, 난 뒤에 따라 들어오는 남자 때문에 놀랐다.

    저절로 머릿속에서 ‘빌어먹을’이 외쳐질 만큼 말이다.

    “미안합니다. 좀 늦었죠? 차가 막히는 바람에…”

    진수성찬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와 그리고 뒤 따라 들어온 자신의 후배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그 후배에 시선을 뺏긴 상태이고, 난 소개 할 때 고개만 까닥 했을 뿐 그쪽은 바라보지도 못했다.

    악연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엄청난 우연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딜 갈 때마다 이 남자와 만나고 있어서 정말 내 당황스럽다.

    거기다가 이런 자리…

    이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그는 알고 있는 것일까?

    “자, 자, 자기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앉아서 먼저 밥이나 먹지? 내가 풀코스로 준비 해줄 테니까.”

    엔지님의 말에 모두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기대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또 신경써주고하는 엔지님이 정성을 무시 할 수도 없으니 그냥 말 하지 않고 밥이나 먹고 기회 봐서 나가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나도 무시하면 될 테니까.

    푸짐한 음식이 들어오고,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칼질, 포크질만 열심히 하였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아 와인도 열심히 마셨고…덕분에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술이 올라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바람에 그들의 놀림거리도 조금 되었다.

    그들과 만나서 속 시원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면서 상담도 받고 싶었다.

    같은 처지니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야기 하면 덜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만난 한 남자 때문에 오히려 이 자리가 너무나 불편해졌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 했지만-그게 당연하지만-난 그냥 와인만 계속해서 들이킬 뿐이었다.

    그때, 구원의 전화가 왔다.

    사촌동생의 전화였고, 난 그 전화를 핑계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형? 무슨 일 있어?]

    “아니…”

    [어머니가 형 한번 내려오래]

    “다음 주에 갈게”

    [진짜?! 꼭 내려와야 해!]

    “그래…”

    전화가 끊어지자, 담배의 불씨도 꺼졌다.

    그냥 이 상태로 집에 가버릴까. 라고 생각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인사라도 하고 가야…그렇게 정하고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누군가가 부딪혀서 넘어질 뻔했지만, 그 누군가가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느닷없이 내 코트를 뒤지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 무례한 행동에 뭐라고 하려고 그 사람을 바라보니, 진시우였다.

    “……!”

    “저 등신 같은 모임의 회원이었나 보군.”

    “…말이 심하군요.”

    “당신, 처음에 보았을 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지, 테크닉도 끝내주고, 매너 있고, 성격 좋고, 인물 좋고, 직업도 좋고”

    그가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으면서 이야기 한다.

    “바텀들이 줄을 선다고 말이야. 내 라이벌 정도는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자신이 손으로 내 허리를 쓰다듬는다.

    그 느낌이 너무나 소름 생소해서 난 나도 모르게 ‘힉’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알고 보니 남자 엉덩이가 아니라 남자 페니스를 쫒아 다니는 놈이었다니, 정말 웃기는군.

    “무슨…!”

    “왜? 사실이 아닌가? 그럼 저 안에서 말하는 저 등신 같은 놈들이 하는 말들은 뭐지? 그 덩치에 안 어울리게, 사실은 남자 좇이 좋은데, 비웃음 당할까봐 어쩔 수 없이 엉덩이에 박고 있다는 말로 들리던데?”

    “그 사람들은…!”

    “겁쟁이 들이지. 남들 시선 의식하면서 사는 겁쟁이들, 물론 당신도 말이야.”

    “나는…”

    “흠…그럼, 난 오늘 저기에 있는 놈 하나 잡아서 남자 맛을 좀 알게 해주면 되는 건가?”

    그가 다 핀 담배를 저 멀리 던지면서 내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면서도 나를 보고 비죽이 웃는다.

    “아니면, 오늘 나랑 해볼래? 남자에게 한번 뚫려 보는 게 소원이라면”

    “됐습니다.”

    난 그를 밀어내고 룸으로 뛰어 들어가 대충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뒤에서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 번호를 눌러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곳에는 잠이 덜 깬 목소리의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응…주혁씨?]

    “응, 나야. 어디야?”

    [집…무슨 일 있어? 자기 목소리가 떨려]

    “지금 만날 수 있어?”

    [응, 괜찮아. 어디로 갈까?]

    “호텔…전에 갔었던 곳으로…”

    상대편이 OK의 답을 내고 전화를 끊자. 나 역시 전화를 끊으면서 옆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겁쟁이 들이지. 남들 시선 의식하면서 사는 겁쟁이들, 물론 당신도 말이야.』

    그래…겁쟁이인거 인정해.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할까봐 나, 사실은 바텀이라고 말 못하는 거 맞아

    사람들 눈 신경 쓰면서 원하지도 않으면서 남자의 엉덩이에 내 것을 묻는 거 맞아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지 그 고통도 모르면서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 마.

    “젠장…”

    진시우는 거의 이중인격에 가까웠다.

    그렇게 지난 주말에 사람 속을 뒤집더니-그러고 보니 주말마다 내 속을 뒤집었군.-월요일에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를 대했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모두 일에 관련된 말만 주고받았지만, 나는 흠칫 흠칫 놀라는 것에 비해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믿을 만큼…

    “오늘 회식해요.”

    “월요일부터 술자리 입니까.”

    “오랜만이잖아요~ 부장님이 한 턱 쏘신대요.”

    “아…”

    그러고 보니,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요즘 이리저리 마음이 심난하다보니,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고가 일상이 되어있어서…이랬다가는 인간관계 나빠진다. 라는 생각에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바로 퇴근 할 거라고 몸 안에 로터 넣어왔는데…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차피 진동은 되지 않게 해 놓았지만,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아직까지 나는 그런 적이 없지만, 전에 로터 사용 후기를 보니 하루 종일하고 있다가 결국 안 빠져서 병원에 갔었다는 글도 보았는데…

    ‘뭐 괜찮겠지’

    일의 마무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회식장소에 도착을 하니, 이미 남자들은 넥타이 풀고 소주병 하나씩 들고 있었고, 여자들은 박수치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지만, 결국 부장님께 잡혀서 부장님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자리이다.

    부장님의 옆자리는…부장님은 술에 취하시면 그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가되시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정말 다음날 회사에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마시게 되는데…

    “자~!! 우리 사랑하는 지대리! 어서 마셔야지!!”

    맥주잔에 소주가 부어지는 그 모습을 보는 그 기분…아무도 모를 것이다. 침만 꼴깍 꼴깍 삼키다가 이걸 마셔야 하나 마시는 척만 해야 하나. 라고 고민했지만, 곧 내가 술잔을 드는 것을 보는 모든 직원들의 기대의 어린 눈을 차마 피하지 못하고 원 샷을 해버렸다. 술은 제법 잘 먹기는 하지만 오늘 저녁을 아직 먹지 못했기 때문에 필시 빈속이라 내일쯤이면 속이 다 뒤집어져서 죽을지도 몰라 라고 걱정을 했지만, 목 뒤로 넘어가는 소주의 맛은 달다.

    “시우씨도 마셔요~!”

    부장님이 주시는 잔을 받고 마시다가 한 여사원의 목소리에 소주를 다시 역류 시켜서 뱉어 낼 뻔했다.

    그러고 보니, 진시우도 여기 와있었지…술 마시면서 눈으로 슬쩍 주위를 살펴보자 그는 부장님 마주 편에 앉아서 또 다른 부장님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더불어 옆에 있는 여사원들까지 합세 했으니, 그 옆에는 이미 술병이 몇 개나 되었다.

    무시…무시…하지 않아도…이미 진시우가 무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부장님이 주시는 술을 받아 마셨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술이 달다…

    “응…”

    “대리님~! 걸으실 수 있겠어요?”

    “에에~”

    다른 사람이 일어나라고 부축하지만 난 혼자 걸을 수 있다고 그 사람을 밀어내고 혼자 일어나려고 용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은 멀쩡한대 영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고 보니 앞에 서있는 사람도 둘로 나누어져서 보이고…

    취했나.…

    “이 상태로 집에 어떻게 가실려구요~”

    “으응…”

    “제가 하죠.”

    그냥 여기서 잘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쑥 나를 들어 올렸다.

    누군지 몰라도 힘도 좋다. 생각을 하면서 나를 부축해주고 있는 사람의 몸에 몸을 기대어 어설프나마 비틀 비틀 걸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시우씨”

    아…지금 날 부축해주고 있는 사람이 진시우? 

    순간 정신이 번특 들었다.

    그래서 그를 밀어 내려고 했지만, 힘도 없거니와, 그가 묘하게 나를 잡고 있는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대리님 덩치를 감당 할 수 있는 건 나뿐인 것 같고…”

    그래…나 떡대니까.

    제발 이 손 좀 놔!!

    나의 마음속 외침이 들리지 않았는지-당연하다.-나를 부축하던 녀석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 하였다.

    “가시죠. 집이 어디시죠?”

    말 할 기운도 없었고, 정말 진심이야?! 라는 생각으로 복잡했지만, 일단 택시 잡아야 한다고 말하니 진시우가 택시를 잡아서 나를 태운다.

    우리가 타자마자 택시 안에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로 꽉 찼고 그 냄새들로 인해서 머리가 어지러워서 창가로 고개를 기대니 진시우의 손이 나의 얼굴을 잡고 자신의 어깨 쪽으로 기대게 한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아니, 이 상황이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눈만 깜박 깜박 거렸다.

    정말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었으면, 내가 진시우의 입장이었지,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기댄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나 낯설었지만…편안…했다.

    눈을 감고,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진시우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였다.

    택시에서 내리고, 그래도 잠을 잤으니 정신이 멀쩡하겠지. 했는데 더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녀석의 가슴에 기대서 녀석은 내가 말하는 대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내 재킷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꺼내서 문을 따고, 내 신발까지 벗겨서 침대에 눕혀 주었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침대에 눕고 나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괜찮겠습니까?”

    답지 않게 웬 존댓말…

    정말 얼마 전에 나에게 그렇게 싸가지 없이 말 퍼부은 놈 맞는 거냐.…

    난 녀석의 말에 고개를 몇 번 끄덕였고, 녀석은 그것을 OK로 알아들었는지 ‘그럼…’이라는 말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이 닫히고 현관문도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제야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지만…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바지를 벗었다.

    아무리 지금 당장 자고 싶어도, 로터는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본능이 아닐 수 없다.

    술 마시는 내내…로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바지를 벗어 손가락을 애널안에 넣고 로터를 건드리려고 했는데…도저히 손에 닿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걸릴 랑 말랑 하며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느낌에 너무 놀라 몸을 움찔 거렸다.

    이렇게 깊숙이 들어간 적이 있던가.…그 생각에 몸에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술이 깸은 물론이고…

    누워서 손가락을 엉덩이에 넣고, 엎드려서 넣어보고 아무리 해봐도 로터가 잡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드는 예전에 본 후기…머릿속에서는 ‘일 났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제발…제발…”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 로터신님…제발 살려 주세요. 라고 빌고 빌어도 팔과 손가락만 아파 올뿐 로터는 묵묵부답이었다.

    젠장, 이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새어 나왔다. 

    슬슬 애널의 입구와 안쪽도 휘저었더니 아파오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빼려던 찰나에 ‘찰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폰을 놔두고 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씨발…

    정말 민망스럽게도 녀석과 나는 들어오는 순간에 눈이 딱 마주쳤고, 녀석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내 몸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애널안에 들어있는 손가락을 빼지도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서 아까 먹은 술들을 모두 땀으로 다 배출 시키고 있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더니, 처음에는 무표정, 그리고 서서히 입 꼬리를 올리더니 피식 웃는다.

    명백한 비웃음

    어째서…진시우 에게는 이런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건지, 당장 머리를 벽에 박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군.”

    아까의 예의바른 존대는 어디가고, 반말을 하는 진시우를 보자니, 레스토랑에서 본 그놈이, 그놈이 맞구나 싶었다.

    “술 마시는 내내 발정 상태였던가? 아니면…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내 엉덩이가 있는 쪽으로 앉았다.

    그리고 굳어 있는 나를 달래듯이 등을 쓰다듬으면서 내 손가락을 내 애널에서 뺐다.

    차마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그것보다 왜 이 사람이 지금 내 뒤에 앉아있는거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서 머리만 터질 것 같았다.

    “윽…”

    그리고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무언가 뒤에서 찔러 들어왔다.

    “무슨…!!”

    진시우의 손가락이었다.

    내가 움직이자 그는 한 손으로 나의 등을 누르고 한손으로는 나의 엉덩이 안에 손가락을 넣어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손가락으로 즐겁겠습니까? 내 손가락 굵기 정도는 되어야 재미있지”

    “아…아니야…”

    “뭐가 아니라…뭐지?”

    그가 손가락을 돌리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안에는 지금 로터가 들어가 있으니까.

    “흐응…”

    그가 안에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았다는 듯이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는지 애널안이 묵직하게 느껴지고 아팠다…

    전혀 배려라고는 없는 손놀림이다.

    당연한가.…그는 지금 나를 놀리고 있으니까.

    “이걸 빼야 합니까? 아니면 더 깊숙이 넣어줘야 합니까.”

    “윽…상관 말고…당신 손가락이나, 앗…”

    내 입에서 나온 신음소리에 나도 놀라서 고개를 이불에 파묻었다.

    확실 한 것은 그가 나의 묘한 곳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적도, 누구의 손도, 누구의 물건도 닿지 않았던 그곳을 말이다.

    그리고 녀석의 움직임도 멈췄다가 슬쩍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터를 잡고 흔드는 그 움직임은 흡사 피스톤 운동과 같아서 나는 당황하여 그에게 소리치려 했지만 그가 아까  건드렸던 그 곳만 묘하게 건들이고 있었다.

    “앗…기분…이상…빼!!”

    “흐음…”

    남은 이렇게 민망하고, 쪽팔리고, 화가 나고, 열 받고, 괴로운데, 네 녀석은 아래부터 사람을 찌르면서 왜 생각하는 척을 하느냔 말이야!!

    “힘 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엉덩이를 두 번 치더니 손가락과 함께 몸 안을 채우고 있던 무언가가 쑤욱 빠져 나갔다.

    그 아픔에 나는 몸을 움찔거렸고, 눈에도 약간의 눈물방울이 맺혔다.

    정말 최악이다.

    “이런 걸로 만족이 됩니까?”

    그가 나이 눈앞에 내 몸 안에 하루 종일 있던,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의 모든 원흉인 로터를 집어 던지면서 이야기 했다.

    “손 씻고 오지.”

    그냥 가버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난 정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옷을 입었다.

    페니스가 발기를 하였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여기에서 자위까지 하면 완벽하게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 난 것 같아서 싫었다.

    옷을 입고, 벨트까지 잠근 다음에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모른척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신에게 안기는 놈들이 불쌍하군.”

    귀를 틀어막았다.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고…

    늘 그는…내가 두려워하는 말만 하니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 당신에게 피해가 아니라.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침대 근처에 떨어져 있는 폰을 주어서 다시 문을 닫고 나간다.

    그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몇 분 뒤에서야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건방진…”

    건방진 놈…이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어찌 보면 싸가지 없게 들리지만, 정말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를 편안하게 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앞에 서면 꼭 죄 지은 것 마냥 심장이 작아지니까.

    “내일 부터…또 어떤 얼굴을 해야 하나…”

    그러나 어차피 이 고민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굳이 가면을 쓰지 않아도 그가 가면을 쓰니까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다음날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를 대하고 있었다.

    정말 완벽한 실력-

    그 덕분에 나도 그 뻔뻔함을 배워가고 있었다.

    “결국 뺏겼구나.”

    이번 주도 역시 TOP10이 발표 되어, 바 대문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진구 녀석과 주위에 앉은 바텀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난 사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올 것이 왔군. 하는 느낌 정도?

    나의 순위는 현재 3위였다.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진시우

    2위는 한태성이었다.

    “2위 자리까지 내주다니…너 왜 이러니…”

    “한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못 왔잖아…”

    “너랑 같은 회사 다니는 진시우도 얼마나 바텀관리를 잘하니, 바빠도 잠깐 와서 얼굴 내밀어 주는 게 얼마나 큰 고객 관리인줄 아느냐…”

    무슨 고객 관리씩이나…

    난 진구놈의 말에 어이없게 웃으면서 화장실 간다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가니 묘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또 어떤 놈이 화장실에서 일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문 닫고 할 테니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상대는 세면대에서 방아를 찧고 있었다.

    위에서 박고 있는 놈은 너무나 익숙한 진시우와, 그리고 아래는 처음 보는 아이

    아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진시우와는 이런 일로 엮이는지 모르겠다. 

    녀석이 나를 눈치 채기 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움직이니 녀석의 찰싹 하는 소리가 멈췄다.

    그건 내가 온 것을 알았다는 소리와 같았다.

    “응…시우씨이~”

    아래에 구멍에 박혀 있는 바텀이 격하게 허리를 움직이다가 멈춘 시우를 교태스럽게 불렀지만, 시우는 그 아이의 이마에 키스해주면서 ‘잠시만’을 외치고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아직도 로터 써?”

    “로…터?”

    로터라는 단어를 꺼낸 시우를 이상하게 보던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주혁씨네…그런데 주혁씨가 웬 로터?”

    그 아이는 나보고 ‘그런 취미(SM)'가 있었냐는 눈치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자리를 빨리 피해야…

    “저 남자. 로터로 혼자 자위 하거든”

    “꺅! 진짜?!”

    그 아이는 놀랐다는 듯이 절규하며 나와 진시우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한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태연하게…태연하게…

    난 주먹을 꽉 쥐며 진시울르 바라보았다.

    “계속 떡이나 치시죠?”

    그리고 담담하게 뒤 돌아서 화장실을 나왔지만 기분은 더러웠다.

    당장 이 장소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어쩌면 내일부터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

    아아…그래 나는 사람들을 신경 써서 내 욕구도 풀지 못하는 바보야

    하지만 이렇게 들킬 줄이야…

    “억? 주혁? 왜 그래?”

    “나 먼저 갈게”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펼쳐지고, 이제 슬슬 바에 활기가 돌 때, 나는 나를 붙잡는 진구를 뿌려 치고 바를 빠져나왔다.

    바의 문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고, 뛰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가 내리고 있고, 버스 정류장이나, 택시 정류장도 꽤 먼 거리이기 때문에…감기 걸리는 것도 상관없다면 괜찮지만, 내일은 꽤 중요한 미팅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문을 닫고 다시 바안에 들어갔다.

    사장님께 우산이라도 빌릴 생각으로 들어간 바에는 이미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무언가 바뀐 것처럼…

    일제히 나를 보면서 시선을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들끼리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틈 사이에는 아까 진시우에게 깔리고 있던 아이도 보였다.

    그런가…

    “사장님, 우산 있습니까? 우산 좀 빌려 주세요.”

    사장님은 내 말에 무언가 당황하면서도 얼른 서랍에 있는 3단 우산을 꺼내어 나에게 주면서 얼른 나가라고 속삭였다.

    운산을 받고 다시 문 쪽으로 향하는데 문 앞에는 그가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를 한번 바라보고 무시하고 옆으로 지나쳤다.

    앞으로 나의 유일한 휴식공간이었던 곳도 오기 힘들어 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어쩌면 진시우의 말대로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사실 바텀이야. 라고 발표를 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과, 타인에 의해서 들키는 것의 기분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냥…더러운 기분 밖에 들지 않는다.

    그날 밤에 진구 녀석도 그리고 한태성도, 한태산도 전화가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받지도 않았지만, 받아봤자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 했다.

    차분하게 정리 할…

    …말이 안 되지… 몇 년을 정리 한다고 도망친 것인데, 이제야 정리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다음날 출근해서는 다행히 진시우가 아침부터 이사님과 일 보러 나가는 바람에 하루 종일 그와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었다.

    그러나 대신…점심시간쯤 태산이 회사로 찾아왔다.

    걱정되는 듯한 눈을 하고서는 나를 보고 웃어주는 녀석을 보고 나는 살짝 웃어 주었다.

    “어제…태성이 형에게 들었어요. 이상한 소문…”

    “아…”

    “그런 소문, 형이 잘나서, 나는 거니까…질투하는거라구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떤 소문인데?”

    “형이…사실은…아래쪽이라고…사람들…속였다고…”

    “…진실이야…”

    내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태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사실이야…태산아.”

    “………”

    “후…그런 걸로 놀림거리나, 뉴스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큰가 보구나. 그러니까 진구 녀석도 네 형도 전화가 오는 거겠지…”

    “정말…이에요?”

    “그래…난…”

    목이 타서 더 이상의 이야기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든 컵은 덜덜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나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침착했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조심 컵을 내려다 놓고, 얼굴이 하얗게 된 태산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누군가에게 충격을 줄 만한 일인가…

    “난…누군가를 안으면서, 내가 안기는 상상을 하는 놈이야”

    “…나를…안으면서도…?”

    “…그래…”

    “바보…”

    심하게 욕이라도 퍼부어라.

    심하게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한 고백이 결국은 태산을 울려 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한참을 그렇게 울었고, 그 울음은 나대신 울어 주는 듯 했다.

    .

    간신히 태산이를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나는 내가 태산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알 사람은 다 알고, 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니,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다.

    때마침 진구 놈에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더니, 녀석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길이길이 날뛰었다.

    그런 녀석을 진정시키고 오늘 밤에 bar 갈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니 녀석은 한숨을 내쉬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래…어쩌면 잘 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자.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은 아니었으니까.

    bar에 가서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동안 나를 좋아해줬던 사람들에게도 미안했다고 말을 하고, 그러나 안을 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안은 거라고 말을 하자. 그것만은 거짓말이 아니니까.

    그렇게 결심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부터 마무리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퇴근하자마자 들어온 bar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사실은 내가 들어왔을 때, 사람들 손가락질도 생각했고 시선도 생각했지만 이런 가라앉은 분이기라니…

    정말 침울한 분위기여서 도대체 여기 왜 이렇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진구놈이 다가와서 나의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한다.

    언제나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던 녀석이 웬일로 룸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자리에 앉히고는 담배만 줄곧 피기 시작한다.

    “초상집이 따로 없다.”

    “무슨 소리야?”

    “너 같으면, 완벽이라고 생각한 탑이 모래성이었는데, 침울 안하겠냐?”

    “……”

    “진짜야?”

    “…그래”

    “후우…”

    “실망했다면…”

    뭐라고 해도 난 할 말이 없어. 라고 말을 하려는 차에 녀석이 담배를 비벼 끄더니 배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렇게 쇼크 였던건가?! 미안해서 어쩌지. 라는 생각에 녀석에게 팔을 뻗으니 녀석이 목을 뒤로 꺾으면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하느님은 공평해!!!”

    “????”

    “으하하하하하, 지주혁이- 그 지주혁이 아래라니이~ 이제 이 세상의 아기 고양이들은 다 내 것인가!!!”

    아…

    그래…이 놈 이런 놈이었지…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여기에서 완벽한 탑이라고 불린 것도 이 녀석 때문이라는…

    “지랄하고 앉아있네, 꿈 깨! 이진구”

    “뭣시라?!”

    자신의 행복한 상상을 너무나 무참히 깨버린 인물을 진구 놈은 용서 할 수 없다는 듯이 맥주병을 들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기세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고는 포기하였다.

    그 주인공은 현재 TOP 10에 한태성이니까 말이다.

    “너, 어떻게 된 거야?”

    한태성은 오자마자 앞에 서있는 진구놈을 밀어내고 내 앞에 앉아서 맥주병부터 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잔에 콸콸콸 부으면서 정말 진지하게 바라본다.

    “아까, 태산이 녀석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던데”

    “후우…태산이에게는 못 할 짓 한 것 같다. 미안하다고…전해줘”

    “미친놈…그럼 그게 진짜였냐? 너 바텀이야? 지금까지 탑인 척 하고 다른 곳에는 엉덩이 까고 있었냔 말이야.”

    “…바텀…이 맞긴 한 대…아직 한 번도 엉덩이 깐 적은 없는 것 같다.”

    “얼씨구, 그럼 진시우가 네가 바텀인 거 어떻게 알아?”

    “좀…그럴 상황이 있어서 말이야…”

    “여기 바 탑 녀석들, 너 싫어해, 나도 너 싫고, 그런데 그렇게 미워 할 수 없는 게, 네가 성격 좋고, 매너 있고, 무엇보다 뒷 다마를 안 까서 좋아. 그래서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우…이게 뭐냐, 우리가 계집애에게 열 내고 있었던 거잖아.”

    녀석의 말을 들으며 맥주 한잔을 비우자, 녀석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면서 다시 나에게 한 잔 따라준다.

    “속 타냐? 하긴…속 타겠지, 그래, 지금까지 속인다고, 숨긴다고 수고했다.”

    “일부러 속이거나 숨긴 건 아니야.”

    “안다. 내 말은 진심으로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밖도 너무 걱정 말아라. 계집애들은 쇼크가 좀 큰 것뿐이고, 어차피 널 좋아하는 녀석은 계속 좋아하게 되어있어, 좋아하는 마음이 바텀과 탑으로 놔 뉜다면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지…그리고 탑들도, 뭐 라이벌 하나 사라졌다고 좋아할 것 같고, 그러니까 눈치 볼 필요 없이 바에 자주 와”

    “그래…”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쩌면 나의 어이없는 생각이었을 지도 몰라.

    “문제는 말이다.”

    “음?”

    “너…앞으로 상대 어떻게 구할 거냐? 설마 아무하고도 안 잘 건 아닐 거고, 탑을 구할 거냐. 바텀을 구할 거냐.”

    “글쎄…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기가 좀…무엇보다, 지금 당장 내가 구한다고 해도, 날 안아줄 놈이 있을 것 같아?”

    “없지”

    단호한 태성의 말에 살짝 가슴이 욱신거렸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각오한 일인데, 그래도 직접 들으니 타격이 크다

    거기다가 태성의 옆에서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진구 놈까지 보니 마음이 울컥 해져왔다.

    “그래도…네 놈 사랑하는 사람 만날 거다. 인연이라는 건 다 오게 되어있어.”

    “그래…”

    “자~ 한잔 더 하자. 오늘 술 맛 좋네.”

    자기는 한 잔도 안 마셔 놓고서는…

    처음으로 한태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거 들키면 더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좀 더 얻은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 졌으니까 말이다.

    한 참 마시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 룸이 열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태산이 들어와 오자마자 나에게 덤벼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태성이 화를 냈지만 태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깊고 농후한 키스를 나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숨이 차오를 때쯤 녀석이 나에게서 입술을 떼고 씨익 웃었다.

    “결심 했어”

    “응?”

    “나 멋진 남자가 돼서, 주혁형 안을 거야.”

    “!!!!”

    “컥-!”

    나는 쇼크로 아무말 못했고, 태성이는 숨이 넘어가는지 심장을 부여잡고 태산이를 손가락질 하며 무슨 헛소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태산이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면서 내 이마에, 볼에, 입술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멋진 남자 플러스, 끝내주는 테크닉 구사해서 나에게 천국을 보여 주겠다고 말하는 녀석에게 나는 힘내라고 말했다.

    그런 나를 태산이는 보면서 내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태성이 넘어갈 한 마디를 내 뱉었다.

    “그때까지 엉덩이 간수 잘 해야 해”

    태성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태산이를 붙잡아서 교육을 시작했다.

    한 동안은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안주와 맥주를 더 주문하려고 사장님에게 가는 길에 진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왠지 웃겼다. 진구 녀석 말대로 고객 관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이제 어떤 놈을 낚으실 거죠? 대리님”

    정말 진시우의 존댓말은 존댓말이 아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존댓말이 어떻게 존댓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걸음을 멈추고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제가 로터의 힘은 빌리지 않게 해줬으니까요.”

    “그래서, 밥이라도 사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음…그것도 좋죠.”

    녀석은 과장된 움직임으로 생각하는 척 하고 피식 나를 보고 웃었다.

    분명 저 웃음에 쓰러지는 인간들 여기에 수두룩하겠지

    “그럼, 내일 사내 식당에서 밥 사겠습니다. 그럼-”

    설마 내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밥을 사길 원한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과 날 잡지 않는다는 안도를 하면서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이 맥주를 지금 내 놓은 게 없으니 창고에 한 번 가보라고 말을 하여 비상구 쪽에 있는 창고에 가서 맥주 두병 정도를 가져왔다.

    그러다가 비상구의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두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이게 누구야, 지주혁씨네”

    “우와- 나 안 그래도 당신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키는 나보다 훨씬 작으면서, 어찌나 험한 인상을 하고 있는지 딱 봐도 조폭 스타일이 아니라 동네 깡패나 될 정도로 보였다.

    “무슨 일이지?”

    “도도하시기는…당신 남자 좇 빠는 사람이라며?”“낄낄, 그 동안 오만 계집년들 후리고 다니더니 사실은 후린 게 아니라 박히고 있었던 거 아니야?”

    생긴 거답게, 정말 말도 저질스럽게 하는 군

    “비켜”

    “어딜?!”

    녀석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한 놈당 한 팔씩 나를 잡고 벽에 밀어 붙였다. 그 덕에 들고 있던 맥주병 두 개가 땅에 떨어져 심한 파열음과 함께 깨졌고, 맥주가 폭포가 되듯 계단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도 좀 빨아줘-”

    “랭킹 1위인 그 대단하고 잘나신 지주혁씨 입맛 좀 보게”

    “차라리 박게 해달라고 하지 왜?”

    “핏, 웃기시네― 누가 당신처럼 등치 큰 곰을 안겠어?”

    “입맛 떨어지는 소리 말고, 자자, 얌전히 앉아서 빨아 봐”

    한 녀석은 나를 눌러 앉히려고 하고 한 녀석은 이미 바지 버클을 풀어서 흐물흐물한 자신의 물건을 꺼내서 흔들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녀석들을 한 대 치려는-일단 나는 태권도와 유도 유단자다.- 순간에 갑자기 비상구 문이 열리더니 한태성이 뛰어 들어왔다.

    녀석은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이게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이를 빠득 갈면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미쳤어?!”

    한태성이 누군가…태권도 사범님이 아니신가.…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은 얼른 옷을 추슬러서 비상구 아래쪽을 향해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나는 쿡쿡 웃었고 그런 나를 한심 한 듯 한태성은 바라보았다.

    “미친놈- 왜 웃어?”

    “아니, 바텀이 되면 이런 일도 겪나 해서-”

    “일단 바텀이라면 우습게 보는 저런 새끼들도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

    “내가 쉽게 당할 걸로 보여? 이래 뵈도 4년간 탑 고수 해온 사람인데?”

    “그래, 잘~ 알고 있지-”

    녀석은 내 팔을 잡아 당겨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대신 창고에 다시 들어가 맥주병을 네 병이나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오늘 마시고 죽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일 월차 내야겠다. 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친 듯이 마시고, 그리고 할 말 안 할 말 한태성 녀석에게 다 이야기 해버린 듯 했다.

    그동안의 고민, 아픔, 괴로움, 모두 다 이야기를 했다.

    한태성은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내가 술잔이 비면 술잔을 채워 주었다.

    마셔도 술에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만 말짱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마시고 싶은데, 이놈의 일을 좋아하는 근성은 더 마시면 내일 일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여기서 파토내자며 멋대로 일어서서 지하에 주차 되어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오늘은 대리 운전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폰을 열어서 대리운전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폰을 쑥- 빼더니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 썩을 놈은 아니겠지…워낙 이런 상황에서 많이 부딪혀서…라는 불안감으로 고개를 들어 그 상대를 보니 다행히 한태성이었다.

    “태성…”

    “내가 운전 할게”

    “음…아니야, 대리…운전 부르면 돼…너도 어서 집에 가야지?”

    “후우…불안하다. 내가 데려다 줄 테니, 대리 운전비나 줘”

    “비쌀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투덜 되면서도 차 문을 열어서 뒷좌석에 앉았고 그런 나를 녀석은 바로 앉혀 주었다.

    내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그의 향기가 좋아서…내 콧가에 스치는 그의 코오롱과, 내 가슴과 목에 스치는 그의 옷깃의 느낌이 좋아서 나는 손을 뻗어서 그를 끌어안았다.

    그런 나의 행동에 한태성은 당황했는지 가만히…가만히 있었다.

    “키스…해줄 수 있어?”

    “………”

    그의 대답 없는 침묵이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간신히 친해졌는데… 그래서 그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고 그에게 미안하다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의 혀가 내 입속으로 들어와 휘 젓기 시작했다.

    “으읍…”

    너무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랐지만, 그것보다 놀란 것은 한태성 답지 않은 키스였다.

    물론 이 사람과 나는 키스 한 번 한 적 없지만, 한태성의 키스는 여유가 없었다. 너무 급하게 그리고 격하게, 나를 휘 감아 올리고 있었다.

    그의 입이 나에게 밀어 붙여지고, 혀가 감기고 내 입속을 구석구석 핥고 빨아 당기고 입술을 잘근 잘근 씹던 그가 서서히 입술을 떼어냈다.

    둘의 호흡이 거칠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 역시 숨을 내 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핥으면서 나의 입술 근처로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타액을 핥아 올리면서 점점 입술이 목덜미로 가기 시작했다.

    난 그가 더 내 목을 탐 할 수 있도록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놓치지 않도록 그는 나의 어깨를 꽉 잡고 그리고 아래는 더더욱 밀착하여 내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흥분의 숨소리…

    그가 내 목을 물고 빨고 몇 번이나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태성에게 안겨야 하나?

    이 상태로…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갑작스럽게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유혹한 것은 나인데, 끝까지 갈 자신은 없는 것일까?

    그런 나의 고민을 알았는지, 한태성은 집요하게 파고들던 내 목에서 입술을 떼더니 흐트러진 내 옷 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어 주었다.

    “아무리 덩치 큰 양이라고 해도, 늑대보다 세, 네 배가 크다고 해도, 늑대는 개념치 않는단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와 말투로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하며, 한태성은 내 넥타이를 매워 주며 나를 자리에 바로 앉히고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한태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집이 어딘지 방향만 물었을 뿐이었다.

    아까 했던 키스도, 잠시 흥분 되었던 몸도 다 거짓말처럼, 차 안은 공기가 식어 있었다.

    하긴…그에게 무언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차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주고, 그리고 키스도 해줬으니까 말이다.

    “고마워-”

    차를 주차장에 주차 하고 녀석이 내려서 문을 잠그고 열쇠는 나에게 던져 주었다.

    “어떻게 갈 거지? 자고 갈래?”

    “내일 신입생을 도장에서 받기 때문에, 그건 무리일 것 같고, 택시 타고 가면 돼, 여기서 가까우니까.”

    “그래- 잘 가라. 다음에 보자”

    나의 말에 녀석도 다음에 보자며 뒤를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녀석이 완전히 사라져서야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집에 도착해서는 옷부터 벗고 샤워를 하였다.

    샤워를 다 하고 나오지, 테이블 위에 있던 폰이 반짝 반짝 거린다.

    문자가 왔다는 표시여서 나는 한손으로는 머리를 털고 한손으로는 폰을 들어서 안의 메시지를 보았다.

    『덩치 큰 양의 맛이 맛있다는 것을 늑대가 알아버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 한태성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아까부터 양과 늑대 이야기는 왜 자꾸 하는 것인지.

    난 폰을 똑바로 들어서 정성스럽게 답변을 보내주었다.

    『어떻게 하긴…잡아먹어야지. 배고프잖아.』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그래도 지각만은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회사까지 열심히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지각은하지 않았지만, 부서안의 분위기가 묘해서 자리에 앉아 옆에 앉은 여사원의 눈치를 보니, 아침부터 부장님이 이사님께 된통 깨졌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부장의 히스테리는 노처녀 히스테리와 맞먹으니까 말이다.

    부장님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포함하여 직원들은 조심스럽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장은 여기 분위기 왜 이래?!라고 외쳤지만 그 목소리에는 나, 건들이면 죽는다. 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서 모두 그저 입을 합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점심시간이 다가와 모두 이제 살았다는 숨을 내쉬면서 하나 둘 식당으로 나갈 때 나 역시 식당으로 갈 준비를 하며,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툭툭 쳤다.

    “웬 반창고 입니까?”

    목소리에도 움찔했지만, 목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꾹꾹 눌리는 그 손길에도 깜짝 놀랐다.

    괜히 찔려서 목에 힘을 주니 목소리의 주인은 피식 웃는다.

    어제…한태성과 잠시 차 안에서 야릇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 한태성이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아침에 세수 하다가 목덜미의 멍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저녁에 샤워 할 때만해도 약간 붉네. 라고 생각했는데…아침에 보니 세력이 확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반창고를 붙였는데, 일단 넓이가 좁아서 반창고를 두 개 이어서 붙였다.

    “어디에 좀 베여서…”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군, 어떻게 하면목을 베이는 거야?

    누가 칼이라도 들이 된 건가, 아니면 검무를 춘건가…

    “흠…”

    “무슨 일이시죠? 점심 안 드시는 건가요?”

    “어제 약속 잊으셨습니까?”

    어제 약속…?

    …아…!

    “그렇군요. 밥 사드리기로 했죠.…”

    난 정리를 하다 말고 재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주춤 하더니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진시우와 함께 걸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식당메뉴는 참 간소하게도 카레였다.

    카레와 김치와 돈가스 몇 개와 야쿠르트를 보니 보통 같으면 식당 밥 왜 이래!! 라고 절규 했겠지만 오늘은 그 메뉴를 보니 반가웠다.

    빨리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진시우와 나의 것을 계산하고 식판을 들어 음식을 받은 뒤, 구석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곧 이어서 뒤따라온 진시우도 나의 마주 편에 앉아서 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숟가락을 계속 들고 내렸다 운동을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둘의 정적을 깬 것은 내 폰의 울림이었다.

    전화가 온 것은 아니고, 액정에 뜨는 문자 메시지 1건

    『속은 괜찮아?』

    한태성의 문자였다.

    어찌나 그 문자가 반가운지, 사람이 어색한 분위기라면 폰을 만진다더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응, 어제 데려다 줘서 고마웠다. 원생들은 좀 들어왔어?』

    『말마라, 4살짜리가 와서 태권도 배우겠다고 땡깡을 부리는데 죽는 줄 알았다.ㅠ.ㅠ』

    『하하…^^;;』

    『점심 먹었어?』

    『지금 먹는 중. 메뉴가 카레…정말 맛없다.』

    『나도 배고프다.』

    『밥 안 먹어? 지금 시간이 몇 신대…』

    『밥 먹어야지…참 오늘 뭐 할 거야?』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한태성과의 문자 대화 삼매경이었다.

    오늘은 무엇을 할 거냐는 한태성의 물음에 나 오늘 뭐 할 예정이었지, 라고 생각하면서 답 문자를 찍고 있는데, 갑자기 테이블에 ‘탁!!’ 하고 숟가락 세게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진시우를 바라보았다.

    “예의라는 걸 모릅니까?”

    “…?”

    “지금 마주 편에 사람 앉혀두고 뭐하는 짓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난 조용히 폰의 폴더를 닫고 테이블 위에 폰을 올려 두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신과 있으면 할 말도 없고 답답해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진시우의 그간의 행적들을 생각해 보건데, 식당 안에서 뒤집을 것은 뻔 한 일이니 그냥 한 수 접고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답문을 보내지 않자, 폰은 계속해서 울리고, 문자는 계속 들어오는 모양이지만, 나는 무시하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 역시 내가 폰에 손을 대지 않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밥을 먹을 뿐이었다.

    차라리 진시우가 무슨 이야기라도 했으면 지금 이 갑갑한 공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저 건너편 테이블에서 부터는 화기애애하고 밝은 분위기건만, 우리 둘이 앉아있는 이곳만은 왜 이렇게 먹구름이 끼어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코로 넘어가는지, 목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카레를 먹고 나서 아무래도 끝까지 책임져야 하겠지? 라는 생각에 커피 한잔 뽑아서 건네주고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데 다시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밥도 다 먹었으니까 상관없겠지-

    『답 없네, 나 삐진다?』

    『뭐 할 건데? 나 오늘 bar에 갈 건데…』

    『어이~ 양님~』

    『바쁜 가보네, 나중에 연락 해』

    그새 문자가 온 게 네 개…원생을 다 받았다더니 시간이 남는 건지, 아니 것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태성 갑자기 나에게 친절해지니 조금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태성 같은 친구가 생기면 좋긴 하니까.

    답 문자를 주려고 버튼을 누르는데 다시 문자 하나가 더 왔다.

    역시나 한태성이었다.

    『미친다. 진짜! 태산이 놈에게 전화 왔는데, 헬스 등록했대!!!』

    그 문자가 얼마나 웃긴지, 나는 보자마자 커피를 쏟지 않게 애를 쓰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한태성의 표정과 의기양양한 태산이의 표정이 눈앞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강한 남자가 된다더니, 헬스까지 등록하다니, 정말 이 형제는 못 말린다고 생각했다.

    멋진 남자가 된 다라…어쩌면 태산이라면 기대해 볼만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

    폰을 부여잡고 웃고 있는데, 갑자기 내 손에서 폰이 쏙 빠져 나갔다.

    그 폰을 빼낸 사람은 진시우, 어느새 커피를 다 마셨는지 종이컵을 구기더니 몇 미터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서 집어넣고는 내 폰을 만지면서 문자를 다 읽어 보는 것 같았다.

    폰이 느닷없이 뺏긴 나는 그냥 멍…하니 진시우가 내 폰의 문자를 다 읽어 보는 것을 구경 아닌 구경을 하다가 화들짝 놀라 녀석에게서 폰을 뺏었다.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한태성…인가…?”

    혼잣말을 하듯이 한태성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진시우를 내버려두고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빠져서 마침 땡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급속도로 닫히면서 혼자서 타고 올라가기를 바랐지만, 정말 답답하리만큼 엘리베이터의 문을 늦게 닫혔고, 덕분에 진시우도 아주 여유롭게 올라탔다.

    “늑대와 양이라…”

    늑대와 양?

    아, 젠장 거기까지 읽었다는 건가

    “기분 나쁘군요. 남의 폰의 문자를 그렇게 읽다니, 아까 예의 운운 하셨죠? 그 예의 진시우씨는 어디다가 집어 던진 겁니까?”

    “예의 없는 짓 하나 더 할까요?”

    “무슨…앗!”

    갑자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 진시우가 손을 뻗어 내 목에 붙어 있던 반창고를 떼어냈다. 그 따가움에 몸을 움츠린 사이에 진시우는 나를 구석으로 몰아서 엘리베이터의 벽에 나를 밀어 묻히고 한손으로는 날 가두고 한손으로는 뜯은 반창고를 내 앞에서 흔들었다.

    “베었다고? 그 말은 초등학생도 안 믿습니다. 지주혁씨”

    “당신…!!”

    그가 반창고를 땅에 던지고 반창고를 들고 있던 손으로 나의 턱을 움켜잡더니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몸을 밀착해 다리 한쪽은 나의 허벅지 사이에 넣고 누가 보면 정말 곧 두 사람이 야릇한 짓이라도 할 분위기로 진시우는 만들었다.

    “어젯밤에 주차장에서 한태성과 얽혀 있는 거 본의 아니게 보았지요.”

    “!!!”

    “이제 밝혀졌으니, 대 놓고 남자를 엮기 시작 하나 보군요.”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난 녀석을 밀어 냈지만 전에도 경험했지만 정말 힘 하나는 끝내준다. 도대체 이 힘은 어디서 다 솟아 나오는 거란 말인가.

    “그래…나랑 상관없지. 하지만 묘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하- 당신 설마 나에게 라이벌 의식 있었어?”

    “라이벌 의식?”

    “그 잘난 탑으로서의 자존심 말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계집애에게 지고 있어서 분했던 겁니까?! 안심하십시오. 이제 당신 밥그릇 뺏을 일 없습니다. 그건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진시우는 내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분명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하하하하, 지주혁씨 당신 정말-”

    “윽-”

    녀석이 나의 고개를 옆으로 꺾더니 어젯밤에 한태성이 남긴 흔적을 유심히 바라보는 듯 했다.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짐승의 흔적 따위-”

    그 말 한마디와 더불어 진시우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정확히는 어제 한태성이 머문 그 자리에-

    기겁하고 그를 밀쳐내고 어떻게 서든 벗어나려고 했다. 일단은 지금 회사 안이다. 누군가가 볼까봐 너무나 겁이 났기 때문이다.

    왜- 엘리베이터는 빨리 도착하지 않는 거야?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상태로 아무도 안 들어오게 문이 안 열렸으면 좋겠다. 라고 빌었다.

    쪽쪽- 소리와 함께 녀석의 혀와 이빨로 나의 목덜미를 괴롭히고 좀 더 깊게 나의 몸과 진시우의 몸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좀 적당히 하고 떨어져!! 속으로 외쳤지만 아무래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하기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 목덜미 파고든다고 바쁜 녀석이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서 팔꿈치를 들어 진시우의 배를 가격했고 그 충격에 진시우는 뒤로 밀려 넘어졌다.

    큰 덩치가 쓰러진 만큼 덜컹하고 엘리베이터가 잠시 흔들렸지만 곧 정상화가 되었다.

    있는 힘껏 두 손을 합쳐서 저지른 짓이니 그 만큼 진시우에게는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나는 유단자니까.

    “같은 게이지만, 원하지 않는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한 이런 행동은 나쁜 겁니다. 이런 행동을 한다면 바텀이라고 우습게 보는 쓰레기 같은 놈들과 진시우씨와 다를 바 없겠지요. 방금까지의 일은 잊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해주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얼른 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 안에 앉아있는 진시우를 보고 놀란 듯 수근 거렸지만, 난 무시하고 얼른 내가 해야 할 일로 돌아갔다.

    퇴근을 하고 bar에서 한태성과 태산이와 만나기로 하여서 bar로 향했다.

    바에 오니 놀란 사실은 분명 나보다 늦게 퇴근 한 것으로 아는 진시우가 벌써 도착하여 이미 어떤 사람과 키스를 하고 오만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 두 번 없을 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사실은 이 세상에 두 번 없을 바람둥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에 한태성과 태산이가 사이좋게, 바 안에 들어왔지만 태산이의 얼굴은 쀼루퉁 해 져 있었다.

    내가 태산이를 부르니 녀석이 웃으면서 나에게 쪼르르 뛰어와 내 무릎위에 앉아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런데 희안한것은 태산이가 나를 끌어안고 난 후 언제나 들리는 한태성의 브라콤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태성은 마주 편에 앉아서 태연하게 술 몇 병 마실 건지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헬스 등록 했다며?”

    “응- 그런데 힘들다.”

    “갑자기 무리 하면 몸 상해, 적당히 천천히 하도록 해”

    “천천히 하면 지혁형 언제 안아 봐? 빨리 근육질이 돼서, 형 공주님 안기로 침대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에…”

    내가 고개를 갸웃 거리자 태산이는 왜? 왜? 라고 물어보았다.

    왠지 꿈을 꺾는 소리라서 정말 미안하긴 한데…아무래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태산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 같은 놈이…무슨 이상형, 그런걸. 찾겠냐만은…나 근육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헉! 진짜?”

    “음…정확히 조금 단단한 근육 있는 건 좋아하지만, 그렇게 근육질은…부담스럽다고 해야 하겠지?”

    “에에~ 그럼 조금 만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 나 기본 체력은 되니까.”

    “그래, 그래… 열심히 해”

    난 태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산이는 웃으면서 형 무릎 아프겠다며 내 무릎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아서 오늘 헬스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이에 한태성은 얼마나 여러 가지를 시켰는지, 안주가 줄줄이 나오고, 맥주도 몇 명이나 나왔다.

    어제 밤에 무리를 해서 오늘은 많이 목 먹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니 한태성이 자기가 다 먹을 테니 걱정 말고 술 말고 안주나 많이 먹으란다.

    “주혁씨~”

    이것저것 먹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에, 바에서 인사만 하던 예쁘게 생긴 사람이 다가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난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기다렸지만 그는 몇 번이나 망설이기만 하였고 말을 하지 못해 계속 우물우물 거렸다.

    “무슨 일…이시죠?”

    “저…”

    “편안하게 말씀 하세요.”

    “저기…오늘 밤…시간 되세요?”

    “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무엇을 원하는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밤 상대를 구한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의 행동에 깜짝 놀란 그는 왜 그러냐고 당황해 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을 하였다.

    “미안합니다. 거절…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전…”

    “바텀…이시라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늘…용기가 없어서, 지혁씨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텀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 너무 많이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탑이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요…한번쯤 그 품에 안겨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는데…늘 용기가 없어서…오늘 하룻밤만…안 될까요?”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용기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죠.…괜찮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웃으면서, 그는 자신을 한 번만 안아 달라고 했다. 나는 두 팔과 가슴속에 그를 소중히 안아 주었다.

    그의 몸이 살짝 떨림에 따라 그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그를 안았던 팔의 힘을 풀었고, 그와 동시에 그는 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조용했던 바가 다시 시끄러워지고, 나는 그 사이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앞으로…이런 일 많이 있을 거야.”

    “어쩔 수 없지…갑자기 이렇게 되었으니…”

    한태성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면서 마음의 묵직함을 털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태산이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마시다가, 밤이 깊어짐에 따라 태성이의 성화에 태산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한태성은 맥주를 둘이서 6병이나 마시고 있었다.

    이제 슬슬 쫑 낼까…그렇게 결심하고 있을 때, 테이블이 울리면서 내 폰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오늘따라 참 문자 많이 온다.

    난 폴더를 열어 문자를 확인하고 답을 해주고 피식 웃었다.

    “누군데?”

    “음…내가 자주 가는 사이트…주인장…”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아, 로터 새로 나왔다고, 보내준다고…”

    “로…터?”

    “음…”

    막상 로터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나는 한태성에게 로터 이야기를 한 적 한 번도 없구나 싶었다.

    역시 술만 마시면 솔직해지는 게 탈이라니까…

    “좀…내가 탑일지 바텀일지 고민할 때, 쓰던 게 로터였거든…”

    물론 지금도 쓰고 있고…

    “그렇군.”

    한태성은 납득 한 건지,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말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이해해주는 가보다. 라는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로터에 대해서 줄줄 이야기를 하였다.

    “전에는 후기 쓰던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서, 내가 써보고 대충이나마 그 주인장에게 이야기 해주던가, 아니면 글 남기던가 해…”

    “주인장은? 탑? 바텀?”

    “아니, 그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텀…”

    “흠…“

    “다…나와 같은 처지들…”

    “…다음에 로터 나도 구경 좀 시켜줘…”

    “큭큭…왜? 애인에게 쓰려고?”

    “…그래, 애인이 로터 한 번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한태성의 애인 발언에 순간 놀랐다.

    장난으로 한 말인데, 그에게 애인이 있다니…

    어쩐지 그래서 요즘 다른 아이들과 안노는 건가

    점점 몸이 무거워져 온다.

    의식도 몽롱해지고 슬슬 집에 가야 편안해질 것 같아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오늘은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택시를 타면 도리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는데, 그 팔을 잡아서 비틀 거리는 나를 부축한 것은 한태성이었다.

    “내가 데려다 줄게”

    “또 신세 지는 건 싫은데…”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돼서 어떻게 간다는 거야.”

    한태성과 분명 술을 함께 마셨는데, 어떻게 한태성은 이렇게 멀쩡할 수 있을까.

    그가 나를 부축해서 택시에 올려 태우고 자신도 옆에 앉아서 기사 아저씨에게 우리 집 위치를 정확히 말해주었다.

    그 위치를 듣자, 안심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택시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몇 층이냐고 묻는 한태성에게 ‘5층…’하고 답을 해주고 그에게 다시 기대려고 했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무거워야지, 한태성이 힘들겠다 싶어서 무리해서 똑바로 설려고 하니 오히려 더 위태해 보였는지 한태성이 나 잡아 라고 말을 하였다.

    이렇게 보면…

    “네가 왜 인기 있는지 알겠다.”

    “…무슨 소리야?”

    “네가 인기 있는 이유…알 것 같다고…네 애인 고생하겠다.”

    “……”

    내 말에 한태성은 사돈 남 말 하고 있군, 이라고 말하면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후우…이제 좀 술이 깨는 것 같다.…”

    술에 일찍 취하는 반면에 술이 깨는 게 정말 빠른 나였다.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갔다 가, 커피 한 잔 정도는 줄 수 있으니까”

    열쇠로 문을 열면서 내가 말을 하니 한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집은 어질러놓는 성격이 아니라서,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있기 때문에 어느 때건 손님이 와도 나는 괜찮았다.

    만약 집이 엉망이라면 난 한태성을 아파트 앞에서 쫒아 냈을 것이다.

    집안에 들어온 한태성은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내가 앉으라고 말을 하니 그제야 소파에 앉아서 여전히 집 안을 휙 살펴보았다.

    한태성의 집은 부자이다. 전에 갔던 별장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그의 집에 비해서는 단출하고 작겠지만, 창피하다거나, 그가 부럽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커피를 타서 한태성에게 건네주었다.

    “구경 할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봐?”

    “아니, 이 집에 과연 몇 명의 바텀들이 왔다 갔나. 해서”

    “한 번도 없어. 난 집에는 들이지 않거든”

    “의외군,”

    “그럼, 너는 집에 들였단 말이야?”

    “음, 많이…”

    “능력이다 그것도. 참, 로터 아까 보여 달라고 했던가?”

    내 말에 한태성은 커피를 마시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에 서랍장 안에 고이 모셔둔 로터 몇 개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한태성은 자기 앞에 내려놓은 로터 하나를 짚고는 나를 바라보고 로터를 바라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나이가 돼서 로터 가지고 노는 거, 말하기 참 쑥스럽긴 한 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보여주는 거야.”

    “나도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

    한태성이 로터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잘못해서 진동으로 해 놓는 바람에 위잉- 거리에 꽤 놀랐는지 로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난 그것을 주어서 상자 안에 넣었다.

    “이건 진동이 좀 세서, 초보자에게는 힘들고…아까, 애인에게 쓴다고 했지?”

    “아? 어…음…”

    “이것들은 새 거라서, 써도 돼, 가져가…”

    “그럼 넌…”

    “응?”

    “아니, 그런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건데?”

    “아…이건, 버튼만 눌리면 되는데, 버튼 조절력이 약해서 약이 강이 될 때가 있어서…”

    아무리 작은 로터지만 몸 안에 잘못 삽입 되면 아프니까. 까지 부터 시작해서 난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로터를 하면 어떤 기분인데?”

    “…음…글쎄…몸 안이 꽉 찬 기분…?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로터를 하는 것 같아.”

    “후우…”

    내 말에 한태성이 한숨을 내 쉰다.

    그렇게 한 숨을 내쉬는 한태성을 보는 건 처음이라 고개를 쭉 내밀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의 눈동자가 왜 인지 복잡해 보였다.

    “왜 그래? 술 올라?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하아…지주혁…”

    “어?”

    한태성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가까워져 오면서 내 입술에 살짝 따뜻한 것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어이…?”

    한번 떨어진 그 입술이 이제는 살짝 입을 벌리고 나에게 다가와 맞닿으려는 순간에 나는 내 손으로 나의 입을 막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한태성의 입술과 혀는 나의 손등에 키스를 하여만 했다.

    나의 행동에 놀랐는지 한태성은 내 손등에서 입술을 떼고 ‘왜?’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인.있.다.고.했.잖.아.”

    “하?”

    “로터 선물 해줄 거라고 했잖아!”

    “에? 갑자기 이야기가 왜…?”

    “어제는 나도 모르게 너에게 애인이 있는지 모르고 키스 해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알았으니 그렇게 못하지, 애인에게 잘 해줘-”

    “잠시만, 잠깐- 지주혁!”

    난 녀석의 옷과 그리고 로터를 챙겨서 녀석의 가슴팍에 안겨주고 녀석을 현관문 밖으로 쫒아 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토요일의 BAR안은 시끄러우면서도 은밀하다. 그곳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도 있고, 헤어짐을 고하는 연인도 있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다. 

    간혹 오늘 하룻밤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단 하루의 연인도 구하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내가 있는 이 BAR는 언제나 토요일에는 다른 곳과 조금 다른 이유 때문에 소란스러움이 있다.

    “미스터리다.”

    “진짜 미스터리다.”

    TOP10이라고 프린트 된 A4용지 하나를 붙잡고 한 테이블에 일명 잘난 남자들, 쉽게 말해서 저 TOP10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내가 가서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지만, 그들의 그 행동에 어쩌면 나라는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정하고 모른 척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둘 진구 놈이 아니지…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때마침 그 무리에서 빠져나온 진구 놈은 내 마주 편에 앉아서 그 종이를 스윽 내민다.

    “내 알기에는 2주 연속 한 놈이 랑도 거시기 안했다. 아니, 그것뿐인가…?, 무려 45명이나 접근하는 아기 고양이(바텀)들을 다 차버린 놈이지, 그렇지 않아?”

    45명…이나 된 건가…

    그것보다 너 다 세고 있었던 것?

    “그런데?”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녀석이 책상을 탕탕 치면서 보여주는 부분은 TOP10에서 2위에 당당히 적혀 있는 내 이름

    지주혁…

    “바텀이라고 공식 기자 회견 가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TOP 2,3위에서 벗어나지를 않는 거냐고!! 더 설마 뒤에서 붕가 하고 있냐? 아니면 윗분들과 친해서 표 조작하고 있어? 도대체 뭐야 뭐냐고!!”

    “말하는 거 하고는…”

    난 모른다. 

    그렇게 말 한마디 하고 팝콘을 집어 먹으면서 스테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끄러우면서 신나는 댄스음악에 맞춰서 스테이지 중심에서는 태산이 녀석이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넋 놓고 바라보는 인물들을 보자니, 태산이도 이제 다 컸구나 싶은 생각에 약간은 섭섭한 기분도 들고 있었다.

    물론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태산이는 춤을 추다가 나를 보고 윙크 하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쿡쿡 웃었다.

    “진구놈은 또 왜 저렇게 절규 하고 있는 건데?”

    씩씩 열을 내면서 자리에서 떠난 자리에 한태성이 앉으면서 말을 하기에 진구를 바라보니 녀석이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사장에게 따지러 가는 건지 물으러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장에게는 힘들다는 것에 올인 이다.

    “언제 왔어?”

    “아…한 시간 쯤 되었어.”

    뭐 마실래? 라고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한태성이 내가 마시던 맥주 컵을 들고는 벌컥 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를 힐끔 보더니 풋 하고 맥주를 오히려 뱉어 냈다. 더러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내미니 녀석이 자신의 입가를 닦으면서 그 종이를 유심이 바라보았다.

    “대~충 봐도 진구놈이 왜 저렇게 화내는지 알겠다. 어떻게 이렇게 유지가 되는 거야? 너?”

    “넌 내 순위 밖에 안 들어와? 위에 네 이름이잖아, 1위 한태성”

    “하아…”

    “요새 너 좀 과하게 노는 것 같더니, 결국은 1위”

    “그거야…”

    한태성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계속 종이를 보면서 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너 전에 나에게 말한 애인은 어쩌고? 라고 물어보려고 했던 것을 참았다. 왜냐하면 꽤 곤란한 표정을 하면서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진구놈이 쿵쿵 거리면서 다가와 역시나 내 맥주 컵에 들은 맥주를 벌컥 벌컥 마시더니 캬~ 하는 효과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사장님께 말했다.”

    “?”

    “바텀 순위 하자고! 그럼 네가 바텀 10위 안에 못 들면, 이 기분 알겠지!!”

    “하아?”

    “두고 봐라, 지주혁, 비참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주마!!”

    그렇게 말하며 으하하하 웃고 당당하게 절망하고 있는 탑들 사이에 앉아서 다시 절망하는 진구놈을 보자니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가끔 개그맨을 하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

    나는 탑일때도 그렇게 순위에 연연한 사람이 아닌데, 설사 바텀 순위를 매긴다고 해도 내가 거기에 연연할 것도 아니고, 솔직히 관심도 없다.

    “가끔 저 녀석 웃긴다니까.”

    내 속 마음을 읽었는지, 한태성이 그 말하기에 피식 웃으면서 ‘그러게…’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나저나, 진시우가 5위라…”

    한태성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에 회사에서의 진시우와의 트러블은 전혀 없고, 솔직히 둘이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쁠 때라-일단 연말이니-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매번 바에 올 때마다 진시우를 보고 있다.

    이야기 하거나 인사는 하지 않지만, 서로가 바에 온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그게 아니다.

    내가 2위인 것이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미스터리는 진시우의 순위였다,

    어떻게 보면 이번 주에 1위한 한태성보다 저번 주에 더 많이 남자들과 얽혀 있는 것을 보았고, 늘 옆에는 줄줄줄 무언가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진시우의 순위는 저번 주부터 계속 하향 곡선이더니 결국은 5위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진시우는 저기 구석에서 웬 남자와 열심히 키스하며 몸을 애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차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bar안의 분위기가 술렁 해졌다.

    누군가가 들어와서 사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인물은 과히 휘파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긴 검은색 코트를 입고, 반짝 거리는 검은 색 구두, 안은 분명 최고급 양복을 입었을 그는 딱 봐도 큰 키에 올백으로 넘긴 머리카락, 그리고 조금은 찢어져서 사납게 보이는 눈매를 하고 있었지만 정말 매력적인 사내였다.

    바텀들은 물론 탑들도 모두 시선을 뺏길 만큼의 분위기를 가진 그는 사장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장이 손으로 나를 가리켰고, 그 멋진 사내는 사장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나에게 두었고, 그 사내와 나는 눈이 정통으로 마주쳐서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내가 한 고갯짓이 어떤 대답으로 알았는지 나를 향해서 걸어왔다.

    “지주혁…씨 입니까?”

    “그렇습니다만…”

    그가 나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는 그 확인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지주혁이 나인 것을 안 그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손을 꺼내서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크고 날씬해 보이는 그 손은 자신의 주인과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악수에 답을 해주었고, 그는 그런 나를 보고 입 꼬리를 울리며 슬며시 웃었다.

    키는 나보다 커 보였다. 분명 내 시선의 위니까 말이다.

    악수를 하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이 사람 나랑 아는 사람인가? 어디서 만났지? 등을 생각을 하려고 했으나, 역시 덩치 큰 사내 둘이서 멀뚱히 서서 악수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당연히 끌었다.

    그것도 막 들어온 정체불명의 사내와의 악수는 더더욱 말이다.

    “소문 대로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있는 곳에 지주혁씨의 소문이 꽤 있습니다. 잘생기고, 능력 좋고, 매너 좋다고 소문난 사람…그런데 최근에는 바텀으로 전환 하였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전환이 아니라…원래 바텀이었는데…

    “그렇…군요. 보잘 것 없는 제 소문이…저기…그러니까.”

    “이승진입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승진씨 계신 곳까지 퍼지다니 쑥스럽기도 하고…그렇군요.”

    그와 맞잡은 손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그의 손과 내 손 사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바텀으로 전환 하셔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미인이시군요.”

    미…미인…?!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들어 보는군

    “감사합니다.”

    “혹시…오늘 밤 괜찮으십니까?”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바 안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태성이 벌떡 일어나 덕분에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이 떨어져 파열음이 내었다.

    그러나 그 파열음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전부 나와 이승진이라는 사내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였다.

    나도 너무 당황하였다.

    이 사람은 탑이다.

    온 몸에서 남자의 페로몬이 풍겨져 나온다.

    그리고 나 역시 탑생활로 인해서 사람을 보면 탑인지 바텀인지 대충 알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완벽한 탑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지금…

    이 사람 말은 지금…

    나에게 안기려고 온 것이 아니고, 나를 안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를 안고 싶다는…명백한 의사를 밝힌 것이다.

    “최고급 코스로 모시지요.”

    “아, 저기…”

    한번도, 한번도…

    사내에게, 아니 남자에게 이런 대시는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이 복잡한 것을 알았는지, 그가 잡고 있는 내 손을 좀 더 꽉 잡는 것을 알았다.

    그때, 등 뒤에서 누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주혁형, 오늘 나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

    “태산…아…”

    태산이는 나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눈은 이미 이승진이라는 남자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제야 이승진은 내 손을 놓아 주었다.

    “오늘 밤에는 위 인 것입니까?”

    위…라…그럼 탑? 

    “내가 탑입니다!! 주혁형을 안는 것은 나라고요!!”

    …라고 고양이 앙칼진 목소리로 이야기 해 봤자.

    거봐,…저 사람 웃잖아.

    “저런…하긴, 오늘 갑작스럽게 나타났으니 인기 많으신 분은 미리 약속이라도 해야 하는 걸 깜박 잊었군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갑 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금테 두른 명함…

    그것만으로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지주혁씨.”

    그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바를 빠져 나간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힐 때까지 바는 조용하다가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모두 숨을 내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종업원이 달려와 깨진 병과 맥주를 치우기 시작했다.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는 자들과는 달리 태산이는 아직까지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한태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태산아…나 어디 안가,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니 녀석은 그제야 내 허리를 잡고 있던 두 손을 풀고 나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았다.

    “형, 금방이라도 따라 갈 것 같았어.”

    “설마…”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하지만…태산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 갔어야 했을 지도…

    내가 하하 웃었지만, 곧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태산이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이다.

    “지주혁, 명함 줘봐”

    한태성의 말에 나는 방금 받은 명함을 건네주니 한태성은 한 글자라도 빠짐없이 읽는 듯 하더니 금방이라도 명함을 찢어 버릴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지만 찢지는 않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승진…”

    “아는 사람이야?”

    “유명해”

    태성이에게 물어본 말의 답은 태산이에게 들을 수 있었다.

    “나, 게이인지 아닌지 방황 할 때, 이 바, 저 바 다 다녔을 때, 저 이승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특히 큰 손이야.”

    “큰 손?”

    “조폭이란 말이야. 무엇보다 이 동네 일대의 건물이 거의 다 저 사람 거고, 그 사람 바는 다른 동네에 있어서 다행히 이 bar의 사람들이랑은 엮인 적이 없는 거지…흥미 있는 건 손에 넣고 보는 사람이야. 그런 다음…버려, 악질이야.”

    “씨발…”

    태산이의 말이 끝나니 태성이 다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얌전한 형제들이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고, 거기다가 긴장까지 하니 정말 낯선 기분…

    “하아…이 사람들아, 내가 그렇게 간단하게 당할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저 사람에게 흥미가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괜찮아. 애초에 그냥 흥미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원래 탑이었던 인간이 바텀이라고 말하니 재미로 한 번 볼 겸 온 거겠지. 걱정하지 마.”

    “지주혁,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형은 형에 대해서 너무 몰라!!”

    두 사람의 화살이 갑자기 나에게 넘어 온 듯 다다다다 쏟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오늘 밤은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교육을 시켜야겠다며, 두 사람은 다시 술 내놓으라고 사장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사장은 웃으면서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역시나 사장도 이승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지, 나에게 귓속말로 ‘엮이지 마’라고 말을 하였다.

    아무래도 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알면 안 되는 인물이긴 한 것 같지만, 애초에 내가 엮일 생각이 없는데 왜 이렇게들 걱정인 건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두 사람이 영 기분이 안 좋기에 술 한 잔씩을 주고 있는데, 아까 진시우가 있던 곳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진시우의 얼굴을 돌아 가있고, 그 잘생긴 얼굴을 돌아가게 만든 인물은 옷이 거의 다 벗겨진 채로 손을 들어서 씩씩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주워 입더니, 친구를 불러서 바를 나갔고, 진시우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아…’

    나와 진시우의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은 어지러운 조명 속에서도 조용히 빛이 나고 있었다.

    아주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난 그 의미를 읽을 수가 없었다.

    곧 그가 침을 뱉고 재킷을 들고 bar를 빠져 나갔다.

    “지랄을 하네, 지랄을 해”

    진구놈이 어느새 다가와 우리가 시킨 과일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나가는 진시우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 하였다.

    “저 놈, 요새 왜 저러는지 몰라.”

    “왜? 전에는 광이 난다며”

    “그래, 광이 났었지, 그런데 요새는 미친 광이다 광! 요즘 저 놈 밤 상대 한 애들이 완전 기겁을 하잖아. 완전 미친놈처럼 군다는데- 그래서 요즘 순위가 내려가고 있는 거지, 뒷이야기도 엄청 돌고 있고.”

    “그만해”

    진구놈이 본격적으로 진시우의 욕을 시작하려고 하자, 나는 그만하라고 말을 하였다.

    진시우의 뒷말 같은 거 듣고 싶지 않았다.

    결코 유쾌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자~ 오늘 모두 회식이나 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먹구름을 몰고 다니시면서 등 뒤에는 메두사를 키우고 계시던 부장님께 갑자기 머리에는 해가 뜨고 등 뒤에는 천사의 날개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부장님의 변화에 부서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이 왜 이러나…하면서 더 불안해 할 수밖에 없지만, 곧 그 이유를 아는 여직원이 이야기 하였다.

    “이사님께 칭찬 받으셨대요.”

    그렇다.

    우리 부장님의 모든 기분 전환은 이사님의 말 한마디로 판단이 된다.

    아무래도 칭찬을 과하게 들었는지, 오늘 회식 하자며 자신이 한턱 쏜다고 이야기 하시는 부장님께 이사님의 잔소리 보다는 마누라님의 잔소리가 더 무섭지 않으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두 입을 꽉 다물 뿐이었다.

    일단 사준다고 하니까 누가 거절을 할까…?

    그날 밤은 거의 광란의 밤이었다.

    넥타이를 머리에 매시고 술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시는 부장님과 그 모습을 보며 꺅꺅 거리는 여사원들은 정말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석에 앉아서 진시우는 연신 술을 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신경이 쓰여서 계속 눈이 가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여간 신경이 쓰였는지, 진시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애교(?)도 부려보지만 진시우는 밀쳐내기만 할 뿐, 혼자서 그 비싼 양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노래방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쯤, 모두 일어나 4차 가네 마네를 하고 있을 때, 진시우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고개를 숙이면서 숨만 내쉬고 있었다. 물론 진시우 뿐만 아니라 다른 남직원들도 그랬기 때문에, 그나마 정신이 말짱한 내가 그를 부축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하면서 나왔다.

    진시우를 데리고 4차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서 부장님께 말을 하니 부장님도 이미 만취 하셔서 손을 흔들거리면서 어여 가라고 말했고, 난 진시우를 데리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정신이 없는 그를 다그쳐서 집의 위치를 알아냈고,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그쪽으로 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한 참을 달리더니 어떤 빌라 촌에 도착해서 택시에 내렸고, 그가 말 한대로 401호 앞에 서서 그의 옷을 뒤져서 열쇠를 열고 들어가 그를 침대에 눕혔다.

    그를 눕혀 놓고, 목이 말라서, 실례인 것을 알지만 부엌에 들어가 냉수 한 잔을 마셨다.

    냉수 한 잔을 마시면서 둘러보는 그의 집은…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지만, 정말 썰렁했다.

    가구도 몇 개 없는…큰 텔레비전과 소파 하나 달랑 있는 게 거실의 전부였고, 부엌도 사용한 적이 없는 티가 꽤 났다.

    정말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옷을 입고 자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서 넥타이만이라도 느슨하게 풀어주자. 라는 생각으로, 손을 뻗었을 때, 그 손이 세게 잡혔고 순식간에 천장이 빙글 돌더니 어느새 내 위에 진시우가 있었다.

    아차…싶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되다니…

    술이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동자는 너무나 멀쩡했다.

    “무슨 짓입니까? 비켜 주세요.”

    “하자.”

    “하기는 뭘 하자는 겁니까!”

    그의 말이 무엇을 하자는 건지 단번에 이해한 나는 일부러 모른 척 하며 그가 똑 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일부러 피했다.

    “설마…당신, 첫 경험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구식은 아니겠지?”

    “…!!”

    “정말이었나 보군”

    얼굴에 화르륵 타 올랐다.

    나도 안다. 유치하고 구식적인 생각인 거, 그런 꿈속에서 산다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다 그런 거 아닌가. 처음에는…처음에는 소중한 사람 품에 안기고 싶다는 거…

    과연 날 안아 줄 남자가 있을까가 문제지만

    “진시우씨에게 그런 이야기 들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나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전에 말했을 텐데? 신경에 거슬려, 당신! 지주혁이라는 사람이!”

    “그건- 라이벌 의식-!”

    “라이벌 의식? 하, 언제까지 둔한 척 할 건지요. 지주혁씨?”

    “둔 한 척?”

    “아니면 진짜로 둔 한 건가?”

    “……”

    “어제, 그 사내가 당신에게 손 내밀었을 때도, 라이벌의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왜 내가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내가 당신에게 관심 있으니까.”

    “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지, 나, 당신에게 관심 있어. 안고 싶다고 생각해, 당신 보면 욕정 한다고!!”

    숨이 막힌다는 건…이럴 때를 위한 단어 인 것 같다.

    정말 숨이 탁탁 막힌다.

    머릿속으로 두뇌 회전이 되지 않는다.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들이…

    “그러니까- 다른 사내에게 눈 주지 마.”

    “날…싫어 한 게 아니었…”

    “처음부터, 당신보고 욕정 했어. 발정 났었단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탑이라니, 기가 막히지, 솔직히 말할까? 당신이라면 안겨도 좋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첫 눈에 보고 반했어. 하지만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 인기 많은 인간 손에 넣으려면 그 만큼 싫어하는 짓 하며 눈에 들어야지 어떻게 해? 간신히 모든 놈들 다 떨쳐 버리는 짓 했더니, 오히려 더 상황이 심각해져서 타는 내 심정 당신 알아?!”

    “이…봐…”

    “지주혁, 더 이상은 못 기다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안기던지, 아니면, 날 좋아해, 날 좋아해라”

    너무나 진지한 눈으로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를 나는 밀쳐 낼 수 없었다.

    그 사이에 그의 타듯이 뜨거운 입술이 나에게 맞닿았다…

    “아프다…”

    나의 옷을 벗기고 억지로 자신의 각인을 새기려고 하는 녀석을 밀어 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싸움이 일어났다.

    녀석의 팔꿈치에 어쩌다 보니 맞아서 입술을 찢어지고, 녀석은 나에게 발로 차여서 아마 지금쯤 배가 꽤나 아플 것이다.

    죽지는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배를 발로 차고, 생사 확인(?)은 하지 않고 뛰어 나왔으니까.

    아무래도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베어 나오는 것 같다.

    쩝쩝 다시는 입맛에 피 맛이 난다.

    이 시간에 차도 끊겼고, 다행히 집하고 먼 거리는 아닌 것 같아서-걸으면 한 시간은 걸어야 할 거리-살살 걸어가자 라는 생각으로 걷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정리도 해야 할 겸 말이다.

    “지주혁씨?”

    걷고 있을 때, 옆에서 유난히 차가 빵빵 거린다고 생각했더니, 그 차의 창문이 열리면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역시 지주혁씨군요.”

    익숙한 목소리…아니 기억에 나는 목소리…

    얼마 전에 바에서 만난 인물이었다.

    강렬한 인상의 남자가, 자신의 이미지와 꼭 맞는 검은색 벤츠에서 내려서 나를 불렀다.

    “아…안녕하세요.”

    “여기서 보다니, 그것도 이 시간…”

    그가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얼굴을 보고는 성큼 성큼 걸어와서 자신의 손으로 나의 턱을 잡고 잡아 당겼다.

    그의 힘이 어찌나 센지, 얼굴이 잡혀서 그에게 따라가면서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했습니까?”

    “아…아니…”

    “맞았습니까?”

    하아…

    난 한숨을 내쉬고 그의 손을 쳤다.

    “죄송하지만, 저도 남자입니다, 맞고 다니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때렸으면 때렸지요. 이번거도 맞은 것이 아니라 때리고 살짝 그인 겁니다.”

    “…제가 말실수 했군요. 미안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

    “주혁씨,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타세요.”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습니다. 타세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럼…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청을 거절했다가는 계속 피곤 할 것 같아서 승낙을 하니 그가 웃으면서 앞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차에 올라탔다.

    역시 비싼 차답게 안정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의자가 너무나 푹신했다.

    그 역시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집을 알려주기가 참 꺼림칙했지만, 알려주고, 나는 창밖을 계속 내다보았다.

    “말이 없으시군요.”

    “아…미안합니다. 조금 생각 할 것이 있어서…”

    “어떤…? 아, 미안합니다. 하지만, 주혁씨의 고민 알고 싶군요. 말 해주실 수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고 말이죠.”

    분명 도움은 못 준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나을까…

    “저는…바텀이긴 합니다만 역시, 고백받는 것은 어색합니다. 오히려 제가 대시를 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고백…받았습니까?”

    “…일단은…그런 것 같습니다…하지만 역시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탑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인지, 아니면 사랑을 한 번도 한 적 없어서 마음이 굳어 버린 건지, 제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마음이 굳어 버린 건지, 감정이 없어진 건지…”

    이야기 해 놓고, 나는 아차 싶었다.

    꼭 모든 것을 다 밝혀 버린 것 같다.

    내가 아직 첫사랑도 해 본 적 없는 얼뜨기라는 것, 그리고 바텀으로는 아직 처녀라는 것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상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을 당신이 사랑하거나 좋아했다면 고백받는 순간 100년간 사랑하지 않았던 목석이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이어가는 순간에 어느새 우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러니까 고민 하실 거 없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마음과 감정은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겁니다.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난 것뿐이라고 생각하시길…”

    그가 매끄럽게 운전대를 움직이며, 아파트 경비실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내가 앉은 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뻗어 아직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은 양 계속 이야기를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군요. 주혁씨”

    이승진의 그 말과, 그 눈빛에 웃음이 묻어 나왔지만,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들려서 난 그의 말에 한숨을 내 쉬었다.

    아니, 한숨이 아닌, 그냥 탁 막혔던 숨이 트인 거처럼 숨을 내 뱉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하룻밤 사이에, 진시우에게는 생각도 못한 고백 받고, 이승진에게는 조금은 달콤한 말을 들었다.

    다른 바텀들이었다면 벌써 넘어가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정말 숨 막히게 멋진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역시 내 마음은 얼어 버린 것처럼, 심장이 뛰지는 않는다. 그냥…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생각할 정도…?

    “이승진이 그러니까,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음…”

    “미치겠구먼.…”

    어쩌다가 흘러나온 어젯밤의 일에 한태성은 거의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기에 저 표정에 별로 변화가 없는 놈이 저렇게 일그러지듯 표현을 하고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어제 만난 거냐고 묻기 시작하는 한태성에게 어젯밤의 일, 그러니까 진시우까지의 일까지는 말하기 껄끄러워서 술 마시고 그냥 걸어가다가 만났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한태성은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맥주 한 잔 들이키면서 눈은 이미 여러 가지 생각 하는 듯 했다.

    그런 그에게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라는 말을 하려다가, 한태성의 뒤에 다가오는 어떤 남자를 보고 말을 멈추었다.

    날씬한 선을 가진 한 남자는 아까부터 건너편 테이블에서 한태성을 바라보더니-내 쪽에서는 그의 시선을 알아챘지만, 한태성은 몰랐던 것 같다.-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목소리도 맑다. 얼굴도 정말 괜찮고…

    그 남자의 목소리에, 한태성은 술을 마시다가 옆에 두 팔을 뒤로 하고 자신을 부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태성과 눈이 마주쳤는지, 남자는 살짝 웃었다.

    정말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그 어떤 남자(게이/탑)이라도 한번쯤 보고 싶어지는 그런 웃음일 것이다.

    정말 부럽구나.…

    “오늘…시간 되세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습니다.”

    난 당연히 승낙 할 줄 알았던 한태성이 거절의 말을 하자 깜짝 놀라서 그 남자의 외모를 보면서 부러워 하다가 한태성을 바라보니 녀석은 철저히 그 남자를 무시하듯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눈빛으로 '왜 그래?‘ 라고 말하니 녀석은 그냥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실례 했습니다.”

    뒤 돌아서서 자기 자리에 돌아가는 남자를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한태성을 바라보았지만, 녀석은 요지부동으로 의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최근에 좀 놀더니 이제는 잠시 쉬려고 그러는 건지…

    “약속 있어? 이 시간에?”

    벌써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선약이라면…도대체 어떤 약속인거야?

    “그…”

    “주혁씨~!!”

    한태성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때마침 이번에는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얼마 전에도 거절한 적이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내가 바텀이라고 말을 해도, 계속 대시 할 거라고 말했던 남자

    아까 태성이에게 말을 걸었던 분위기 있는 남자와 달리, 나에게 말을 걸은 이 아이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타입이었다.

    “미안”

    “에~ 말 걸자마자 사과라니…”

    아이는 ‘췟’이라고 말하며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는 삐진 듯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이 아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오늘 나중에 스테이지에서 나랑 춤 춰주세요. 그건 해 줄 수 있죠?”

    “음…그러…한태성?”

    그것까지 거절한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아이를 향해서 차마 거절할 생각도 못하고, 그리고 이렇게 나에게 간절히 부탁해 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승낙을 하려고 하는데 한태성이 일어나 내 손목을 잡고 끌어 올렸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이 녀석과 약속을 했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어이, 한태성!! 잠시만-”

    내가 언제 너와 약속을 했다는 거야!!

    그리고 사람 앞에 두고 실례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녀석이 잡고 있는 손목이 너무나 아파서 나는 신음소리만 내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태권도 사범 아니랄까봐 힘은 정말 무식하게 세다니까-

    바에서 빠져나오고, 어느 정도 밖으로 나오자 한태성의 손에서 힘이 빠졌고, 난 조심스럽게 손을 뺐다.

    아픈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한태성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곧 녀석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로 앞에 편의점 다녀온다며 편의점에 가서는 맥주 열댓 병을 사서 들고 나왔다.

    “지주혁씨, 당신 집에 가서 마십시다!”

    라고 말하는 녀석을 정말 말리고 싶었다.

    최근에 한태성과 친해지고(?)나서는 정말 내 위장이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다. 제법 술이 센 편이지만, 한태성은 나랑 같은 주량을 마셔도 멀쩡할 정도로 술에 강하기 때문에, 같이 술을 마시다가 여러 번 다음날 고생하고 있고, 최근에는 병원에 한 번 가봐야 하나 생각 중인데, 정말이지…

    “왜 한숨을 내 쉬어?”

    한태성이 다가와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는 오징어 안주가 없다며 투덜거리며, 내 한숨의 진의를 묻는다.

    “내 위장의 잔소리를 또 들을 생각하니까 겁이 나서 말이지.”

    “큭큭…내가 같이 들어 줄게, 가자!”

    아까, 바에서 잠시 웃음이 사라지고, 무언가를 말하는 눈은 거짓이었는지, 그 잠시 동안의 무거운 분위기는 거짓이었는지 몰라도, 어느새 활짝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는 녀석을 보니, 괜한 기후였나 싶기도 하다.

    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옷 갈아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거실에 앉히고는 자신이 사온 것들을 펼치면서 먹고, 마시는 녀석을 보니, 우리 부장님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같은 회사에 있었으면 정말 두 사람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태산이도 오라고 하지 그래? 헬스장 이 동네잖아.”

    “……어”

    오징어 대신 땅콩이 맛이 없다고 이야기 하다가, 태산이의 이야기에 손이 멈칫 하던 한태성은 내 말에 주머니 안에 있는 폰으로 태산이에게 전화를 하였다.

    헬스 끝나면 이곳으로 오라는 한태성의 말에 태산이의 밝은 목소리가 내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큰 소리로, ‘주혁형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 녀석에게 나 역시 큰소리로 ‘순대!’ 라고 외쳤다.

    그 행태가 조금 기가 찼는지, 한태성은 ‘끊어!’ 한마디를 외치고 태산이의 답도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솔직히 의외

    브라콤 중에 브라콤이 요즘 태산이에게 하는 행태를 보니, 브라콤에서 탈출 한 것도 같고…만약 그렇다면 정말 축하해줘야 할 일이다.

    태산이를 위해서도 정말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태산이 정말 헬스 열심히 하는 것 같네.”

    “헬스만 하면 다행이지, 키 클 거라고 그 나이에 하루에 우유 2리터는 족히 마시는 것 같다.”

    “헉, 배탈 날 텐데…”

    “병원 다녀오면서도 2리터 꼬박 꼬박 마시고 있는데, 솔직히 그 나이에 키가 크겠어? 이미 다 큰 거지…”

    “그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나도 20살 넘어서 4센티 가량 컸거든.”

    내 말에 다시 한 번 멈칫하는 녀석은 그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절대로 태산이에게는 말 안해야겠군. 이라고 말하기에 그래, 더 이상 귀여운 남동생이 남자가 되는 게 싫다는 거군 이라고 말했다가 한태성은 나에게 땅콩을 무한 살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땅콩이 맛없다고는 하나 그렇게 집어 던지다니, 나도 열 받아서 같이 집어 던졌다.

    그러던 중 몸이 움직이면서 리모컨이 잘 못 눌러져 티브이가 전자파를 내면서 켜졌다.

    그리고 퍼져나오는 묘한 신음소리…

    우연히 켜진 티브이의 채널은 영화 전문 채널이었고, 시간이 시간인 만큼, 19금 영화를 하고 있었다.

    여자, 남자들이 엉켜서 남자의 페니스를 몸에 넣고 열심히 허리 운동을 하는 여자를 보고 우리는 식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행위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

    한참 여자는 앙앙 울고 있고, 남자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역시 게이인가보다, 그 남자의 표정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나, 정말 잘 생겼다.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조금 두근 하였다.

    그러다가, 그러고 보니 요새 섹스를 한 적도 없고, 혼자 논적도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로터가 생각나 한태성에게 말을 하였다.

    “로터는 애인에게 잘 쓰고 있어?”

    “풉”

    “- 더럽게”

    입에 물고 있던 맥주를 다 뱉어낸 한태성은 연신 콜록 콜록 대고 있고, 나는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 휴지로 한태성의 몸을 닦아 주었다.

    “애인이 별로라고 해? 설마, 감점 당한 것은 아니지?”

    “…이참에 말하는데, 지주혁”

    “음”

    “나, 애인 없다. 좀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일단 애인이 생기면 그렇게 방탕하게 노는 놈 아니야 나.”

    애인 없다는 녀석의 말에 휴지로 녀석의 젖은 옷을 꾹꾹 눌러서 닦아주면서도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 나는 녀석이 애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녀석의 말에 그럼 그렇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애인이 있는데 요새처럼 논다면 솔직히 조금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땐 왜 그런 말을 했는데?”

    “그냥…좀 확인 겸”

    “확인?”

    “음…”

    그런 게 있어, 라고 말하며, 이제 자신이 닦는다며, 내 손에서 휴지를 뺏고는 꾹꾹 눌리는 녀석은 조금은 곤란해 보이는 듯도 하다.

    그 사이에 여자와 남자의 정사씬은 끝나고, 한참 내용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영화 제목은 모르겠지만, 이게 또 여자가 알고 보니 남자를 죽이려고 온 킬러라는 나름대로 내용이 있는 영화라서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은 12시가 되어가건만 아직 태산이는 올 생각을 안 해서 걱정되어 한태성에게 말하니 녀석은 12시 30분쯤 도착 할 거라며 아무런 걱정 없는 것 같았다.

    확실히 브라콤에서 벗어난 건가…또다시 의문

    맥주를 마시고, 술도 좀 된 상태에서, 방은 따뜻하고, 영화는 졸리고, 그러다 보니 계속 눈이 감겨왔다.

    고개를 꾸벅 꾸벅 끄덕이면서 조니 한태성이 손이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깨에 기대도록 한다.

    “자면 안 돼…”

    “태산이 오면 깨워 줄게”

    “음…그래도…”

    한번 자면 도둑이 들어도 모르기 때문에, 거기다가 술까지 들어갔는데 잠이 들면 정말 못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름 고개를 흔들어 ‘부르르르르’도 해보고, 뺨도 두어 대 때려보았지만, 역시나 눈꺼풀은 너무나 무겁다.

    다시 한 번 뺨을 때리려고 손을 들어 치려고 할 때, 한태성의 두 손이 내 두 손을 잡고, 그리고 서서히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도장 찍듯 꾹- 눌러온 그 입술에 놀라서, 정말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입…벌려”

    한태성의 조심스러운 부탁과, 그리고 그의 혀가 나의 입술을 살짝 핥는 간지러운 느낌에 나는 살짝 입을 벌렸고, 그때까지 부드러웠던 녀석의 혀와 입술이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난폭하게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키스 테크닉은 끝내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랑 잔 남자가 그랬던 것 같다.

    섹스 테크닉은 내가 위지만, 키스테크닉은 한태성을 못 따라온다고,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 아니 알 필요도 없었지, 내가 한태성과 키스를 할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혀만이 얽히는데, 아까 정사씬을 연출하던 그 장면보다 더 많이 질척한 소리가 오고가고, 입술이 정말 얼얼할 만큼 빨아 당기던 한태성은 입술을 떼어내며 조금 번들번들한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보고 나는 알았다. 어느새 내가 바닥에 눕혀 졌다는 것을-

    “잠 깼지?”

    “…정말, 완전 기술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능력이지. 최근엔 얼마나 갈고 닦고 있는데.”

    녀석이 누워 있는 나를 일으키며 바로 앉혔다.

    거기에서 더 갈고 닦으면 완전 키스의 신으로 등급 업 되겠다. 라는 말을 하니 녀석이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때마침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태산이 드디어 왔고, 녀석은 오자마자 나를 덥석 안더니 이마고 볼이고 입술이고 쪽쪽쪽 거리면서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형,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 그래-”

    어제도 보았으면서…

    녀석을 진정시키고 거실로 들이니 녀석은 짜잔- 하고 순대를 보여줬는데, 정말…할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늦나 했더니, 전화 끊자마자 샤워하고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는 순대 집에서 순대를 사왔단다. 아주머니가 정리를 하고 있기에 조르고 졸라서 사왔는데, 그 양이 또 얼마나 많은지 아마 5일 내내 순대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이었다.

    솔직히 지금 배가 부르지만, 태산이 사온 성의도 있고, 녀석도 어서 먹으라고 꼬리 살랑 살랑 흔들면서 바라보기에 열심히 먹었다.

    “순대 먹고 죽으라는 거야?”

    “태성이 형은 먹지맛!! 이건 주혁이 형만을 위한 순대야”

    “안 먹는다. 안 먹어, 주혁아 라이터 어디 있어?”

    나는 태성이의 물음에 입에 순대를 넣고 손가락으로 라이터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형들 바에서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 들었어?”

    “응?”

    “곧 크리스마스잖아. 크리스마스 파티 한 대. 예의 그거”

    “아, 벌써 그 시즌인가…”

    “주혁형~ 참가 할거야?”

    “음? 파티는 가야지”

    “아니, 아니, 그거 말이야 그거”

    “그거?”

    “안아주세요. 잉~♡이라고 명명 된 거 그거”

    “쿨럭”

    이번에는 내 순대가 입속에서 빠져 나갔다.

    한태성이 한 소리 하겠네, 라고 말하기 전에 한태성은 내 행동보다 태산이의 말에 더 신경이 쓰이는지 담배를 피다말고 이쪽으로 성큼 성큼 다가온다.

    “잠시만, 이번에도 그거 한 다든?”

    “응, 아주 야심차게 준비 중이라고 기대 하라고 하던데?”

    두 사람이 일순 심각해졌다.

    물론 나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랑 상관있나? 그게?”

    심각한 녀석들 공기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우리랑 상관없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라고 말하다가 오히려 두 녀석은 나를 째려보며 동시에 말을 하였다.

    “있을지도…”

    “불길한 예감…”

    한 씨 형제들의 불길한 예감을 산뜻이 무시하고, 24일 기쁨의 캐롤의 BAR 파티에는 참가하지 말고 우리끼리 놀자고 말한 것도 무시하고, BAR에 앉아서 파티를 즐겼다.

    크리스마스는 커플들의 전유물이라고는 하지만, 이 BAR에서는 커플보다는 솔로 위주의 놀이나 이벤트를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래서 이 BAR를 알고부터, 한 번도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빠진 적이 없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조만간 시작 될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듯 했다.

    시끄러운 음악들에, 몸을 맡기고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도 테이블에 앉아서 그 흥겨운 음악에 몸을 살짝 들썩이고 있었고, 태산이도 즐거운지-일단 이 파티는 처음 참여 하는 녀석이니까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몸을 흔들흔들 하고 있었다.

    그때, 웬 남자가 우리 옆에 빈 의자를 스륵 꺼내서 않으면서 말했다.

    “옆에 앉아도 되겠지요?”

    벌써 앉아 놓고서, 그 말을 하는 사내는 진시우.

    얼마 전에 나에게 고백을 한 녀석…그 다음날 다행히 생사가 확인 되어-그러나 입술에는 반창고 하나 붙이고 있었다,- 회사를 출근한 녀석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대하고 있었다. 

    진시우의 특기이긴 하니 별로 대단한 녀석이야. 라고 말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 이후 바에서 만날 때가 걱정이 되었다.

    바에서 만나면 돌변하여 나를 어떻게 대할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가 걱정이었다. 싸움을 걸어오면 받아줄 용의는 있지만, 그 외의 행동을 할까봐 솔직히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날 이후 바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는 착실히 출근했지만, 바에는 나오지 않았다. 

    슬쩍 진구놈에게 물어본 바로는 내가 없을 때도 한 번도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오늘, 그것도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합석으로, 한태성은 ‘뭐야?’ 라고 말했지만, 진시우는 무시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바에서는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 외의 진시우에게 들은 말은 없었다.

    녀석은 그 말만 하고, 스테이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왜인지…긴장한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허무했다.

    그리고 갑자기 신나던 음악이 멈추더니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바에 스테이지에 올라가 있는 사장이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외쳤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사장의 외침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박수치기 시작했다.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까?”

    “네!!”

    “당연히 즐겁게 지내야지요. 크리스마스가 뭐 커플들만 즐거우라는 법이 있습니까? 오늘! 이 BAR에서는 커플들은 오히려 찬밥이 되는 날이지요! 그러니까 거기! 커플 넷! 좀 찌그러져 있어~”

    사장에 말에 모두 웃으면서 커플들을 보며 “우~~~”를 외쳤고, 커플들은 시끄럽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화도 장난스러운 외침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즐겁게 말했다.

    “자,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그 시간이 돌아 왔습니다! ‘안아주세요. 잉~♡’”

    사장이 몸을 베베 꼬면서 닭살스럽게 이야기하자, 모두 절규하면서도 환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이름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 매년 고민을 한다. 사장에게 물어봐도 사장은 누군가가 지었겠지 라고 말할 뿐…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여기 앞에 놓여 있는, 맥주병, 그 중 하나는 아주~ 강력한~ 우리나라에서 절대로 구 할 수 없는! 저기 물 건너 제가 힘써서 가져온! 최음제가 들어 있습니다. 바텀들이~!! 하나씩 골라서 마시고! 최음제가 들어있는 병을 마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원하시는 탑과 짝 지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론! 이거 보시이죠? 이거? 바로 요 옆, 별 5개…정도는 아니고 별 4개짜리의 호텔 스위트룸 티켓도 드립니다.”

    허허…이번에는 사장이 정말 과하게 쏘네, 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요 근처 모텔이더니…

    역시나 상품이 높아지니 모두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하기 시작했고, 사장의 부름에 바텀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난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되려나,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사장과 눈이 딱 마주쳤고, 사장을 손가락을 까닥 까닥 거리면서 [지주혓씨 당장 못 오나?!]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사람들 시선도 다 받고 있었고, 굳어 버린 나를 무시하고 혼자 타던 담배도 기다란 재를 툭 떨어 드렸다.

    설…설마…

    “이봐, 이봐 지주혁씨, 이제 당신 바텀이라고, 탑이 아니니까 거기 앉아있지 말고, 나와!”

    사장에 말에, 탑들도, 다른 바텀들도 박수를 치면서 ‘나가라! 나가라!’를 외쳤고, 나는 황당해 하고 있는 것에 반해 한씨 형제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맞았다고 중얼 거리고 있었고, 진시우는 계속 스테이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그래…결국은 말릴 생각은 없다 이거지?

    나는 이미 불씨가 없어져버린 담배를 끄고 앞으로 나갔다.

    내 맥주병은 손수 사장이 골라 주었고, 난 그것을 받아들고 몇 번이나 침을 삼켰는지 모른다.

    제발 살려주라…병님, 맥주 신님, 최음제 신님, 절 선택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게 빌고 또 빌고, 사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다른 바텀들과 함께 원샷을 하였다.

    그 와중에도 사장은 이 최음제의 좋은 점은 짧고 굵게 라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반응이 5분 안에 온다는 것이었다.

    다 마신 맥주병은 사장에게 다시 건네주고, 바텀…한 12명 정도 주룩 서서는, 몸의 반응(?) 기운(?)을 기다렸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

    그게 이상했는지 사장이 마이크를 들어서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 수 안 올라가?, 몸 안쪽이 근질거린다던가 하지 않아? 열 안 올라? 숨이 가파오지 않아?”

    모두 일제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 사장은 몇 번이나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보고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무슨 반응이 오면 언제라도 말하라고 말했다.

    메인의 이벤트가 무언가 흐지부지 해지자,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 같았지만, 그 사장이 누군가. 다시 분위기를 살리기 시작했다.

    “형, 정말 괜찮아? 맛 안 이상 하든?”

    “맥주 맛이었어, 마시는 순간 알았거든 내 건 아니라고.”

    “다행인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조금 맥이 빠지지?”

    “이 녀석이!”

    난 태산이의 머리를 쾅쾅 치면서 장난을 걸면서, 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섹시 춤 대결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상반신은 벗은 두 남자가, 은밀하게, 조금은 농도 깊게, 그리고 가볍게 터치 하며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꼭 예전에 회사 일 때문에 힘들었을 때, 느낀 불안증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 불안증이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내 증상이 어떤 증상인지 안다. 남자 두 사람의 상반신을 보고 발정을 하고 있었다.

    흥분으로 인해서 숨이 가파오고, 가슴이 조여 왔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한 동안 안 놀았다고 이러는 거야?’

    나조차도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꽤 자제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리고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 놀랐다.

    더 이상의 반응을 하기 전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모두 시선이 스테이지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화장실로 들어왔다.

    어느새 아랫도리는 부풀어 올라서 앞선 을 압박하고 있었고, 점점 커지는 페니스 때문에 아파와 예전에 자주 이용한 구석의 칸 안에 들어가 바지 버클을 얼른 풀었다.

    그와 동시에 튕기듯 일어선 나의 것…

    보자마자, 정말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라며 잔소리 하고 싶었지만, 이상했다. 내 상태가 정말 이상했다.

    일단은 풀어주자. 라는 생각에 손으로 내 것을 쓰다듬는데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점점 발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아…”

    숨이 가파지더니 결국은 묘한 소리도 나오고…그리고…그리고…몸 안도 간지러워서 옷을 벗었으면 하는…

    젠장…걸렸구나.

    내가 걸렸구나.

    내가 마신게 그거였구나.

    한번이라도 마셔 본 적이 있어야 증상을 알지…

    난 변기에 주저앉았다.

    나의 것은 곧 터질 것 같이 쿠퍼 액을 조금씩 흘리며 만져달라고, 난리였지만, 지금 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정말 내 분신에게는 미안했지만, 나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일단…여기서 나가자. 바를 나가야 해’

    라는 생각에, 간신히 나의 것을 구겨 넣듯이, 바지 안에 넣고 지퍼를 잠근 다음, 천천히 벽을 짚고 일어나 걸었지만,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화장실에 그대로 쓰러졌다.

    “지주혁? 여기 있…야! 너 왜 이래?”

    타이밍 좋게 나타난 한태성이 반가운건지, 아니면 마음에 안 드는 건지…복잡한 심정이었다.

    녀석은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 놀라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너, 왜 이래? 술 많이 했어?!”

    안 된다.

    녀석이 건 들이는 곳곳 마다, 몸이 간질간질해져 온다.

    지금 당장 녀석의 손길에 내 몸을 비벼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아…태성…아…내가…걸린 것…같다”

    “뭐…?”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 거리던 녀석은 내 앞 선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봐도 뻔하다. 지금 내 얼굴은 완전 붉게 상기 되어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인지 단번에 알은 한태성은 나를 부축해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일단, 나가자. 알면 뒤집어 져”

    “응…좀…도와줘, 힘이…없다…”

    녀석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니 사람들은 여전히 스테이지에 신경이 가있었지만, 단 두 사람, 태산이와 진시우는 나와 태성이를 보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뛰어왔다.

    “뭐야?! 주혁이 형 왜 이래?!”

    “쉿, 조용히 해, 주혁이가 마신 것 같다. 최음제”

    “뭐?!…야?”

    “지금 주혁이 데리고 나갈 거야. 태산아, 너 사장에게 말해서 그 호텔 티켓인지 내 놓으라고 해, 사람들에게 말은 하지 말고.”

    “어? 어…”

    태산이가 사장 있는 쪽으로 뛰어가고, 한태성은 나를 부축해서 사람들 몰래, 바 밖으로 나오는 것에 성공하였다.

    찬바람에 얼굴이 얼어 버릴 것 같지만, 내 몸 안의 열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당장 이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나를 부축하고 걷던 한태성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나의 어깨를 붙잡은 진시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 사람,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너-!”

    “어차피 한태성씨가 데려가 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이만 손 떼시지요?”

    “진시우! 너 말을 정말 싸가지 없이 하는 군”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손 떼십시오. 기분 나쁩니다.”

    “주혁이가 네 거야?! 내가 벌레라도 되?!”

    “제 눈에는 벌레입니다. 그 사람 몸에 다른 사람이 닿는 거 싫습니다.”

    차분차분하게…그러면서 독화살을 쏘는 진시우와 달리…

    나야 저런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저런 진시우를 처음 보는 한태성은 내 몸에도 전해질 만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눈에도, 네가 벌레야. 주혁이는 내가 데려가겠다. 넌 들어가서 아무나 잡고 오늘 밤 보내!”

    “그렇게는 못합니다.”

    진시우가 나의 한쪽 어깨를 잡아 당겼고, 그 덕분에 나는 중심을 잃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야만 했다.

    정말…짜증났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입니까!!”

    시끄럽다.

    “이 사람은 내가 데려가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놔둔대?!”

    도저히 안 되겠다.

    몸도 몸이지만, 귓가에 두 사람의 싸움 소리가 에코 사운드처럼 울려서 너무나 짜증이 났다.

    그래서 몸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열었다.

    “시---”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그러나 나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는 사람 하나.

    너무나 고맙다. 태산아.

    “지금 주혁이 형 놔두고 뭐하는 거야!! 형 어떤 상태인지 안보여?! 나잇살이나 적게 쳐 먹은 인간들도 아니고, 지금 애들 장난쳐?! 형, 나에게 기대.”

    태산이가 손을 뻗어서 나를 조심스럽게 안았고, 녀석과 내가 등치 차이가 제법 나지만 녀석은 덩치차이를 느끼지 못 할 만큼 편안하게 나를 부축해서 걸었다.

    태산이의 외침에 효과가 있어는 지 으르렁 거리던 두 사내는 나와 태산이 뒤를 졸졸졸 쫒아 왔는데, 그 모습의 구도를 그리니 제법 웃겨서, 나는 쿡쿡 하고 살짝 웃었다.

    몸의 여유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사장이 그렇게 말한 스위트룸에 눕혀지고, 나는 침대의 촉감에 더 몸이 근질근질해서 시트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태산이 다가와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형…BAR에서 다른, 아이라도 내가 데려올까?”

    “…아니…”

    “괴롭잖아.”

    “태산아…내가 지금 다른 사람을 안는다면…그건…그 사람에 대한 실례야…”

    “그럼 내가 안기면…안 돼?”

    “…응…”

    내 대답에 녀석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면서 물가지고 올게 라고 말했다.

    녀석이 물 가지러 간 동안,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지퍼에 가져다 댔고, 이미 축축하게 젖은 그곳을 벌려서 내 물건을 꺼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짝 손을 대면서 없는 힘이지만 아래위로 쓰다듬을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안 돼…부족해…’

    그렇게 내 몸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견딜 수 있는데, 네 몸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듯했다.

    “하아…하아…”

    “형…”

    어느새 내 앞에 물을 들고 선 태산을 보며 나는 나의 것에 손을 뗐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녀석이 가져온 물을 달라고 말 하려는데 태산이가 컵을 땅에 내려놓고 자신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 나의 페니스를 거머쥐었다.

    “앗- 태산아!”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녀석의 손이 나의 것을 쓰다듬고, 피스톤 운동 하듯이 아래위로 흔들리고 그리고 꽉 거머쥔다. 그 자극에, 몸이 사정감을 더해가고, 나는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를 팔로 나오지 않게 막은 채,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태산이의 손놀림을 느끼고 있었다.

    “…!!”

    결국 태산이의 손에 사정을 해버렸다.

    그래도 그것보다 일단 욕구 해소에 나는 만족을 느끼고 사정을 한 뒤라 나른해져서 몸이 늘어졌다.

    흐릿한 시선으로 태산을 바라보니 녀석이 자신의 손에 뿌려져있는 나의 정액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녀석이 혀로 살짝 나의 것이 잔뜩 있는 자신이 손을 핥았고, 그 모습에 나는 쇼크를 받았는데, 태산은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말하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정말이지…

    별 일을 다 겪는 구나. 지주혁-

    “하아…”

    나의 한탄 섞인 한숨…이었으면 좋겠지만, 다시 한 번 몸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앞쪽이 해결이 되니, 이제는 뒤쪽이 난리였다.

    오늘은 로터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가락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지만, 그 모습까지 태산이에게 보여 줄 수는 없어서 태산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사장에게 가서 부작용 없는지 알아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녀석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문을 열고 나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서는 아직도 두 마리의 짐승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나가려는 태산이를 붙잡아서 말했다.

    “둘에게 전해, 꺼지던가, 닥치던가.”

    아무리 호텔이지만, 민폐다.

    라고 말하자. 태산이는 웃으면서 문을 닫았다.

    태산이가 나가자마자, 나는 내 손가락을 혀로 핥아서 조금 젓게 만들고, 나의 애널에 하나를 집어넣고 움직였다.

    젠장, 당분간은 이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하…”

    만족이 되지 않는다.

    조금 더 큰 것, 조금 더 뜨거운 것이 나에게 닿았으면, 나의 안에 들어왔으면 하고 말하면서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넣고 피스톤 운동을 하듯 움직였다.

    조금 더, 깊숙이…

    조금 더, 세게…

    빨리 나를 절정으로 이끌어 주기를…

    나는 어떤 남자에게 빌지 못하고, 고작 내 손가락에 비는 것이 다였다.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달칵하고 들리는 문소리에 잠이 깨었다.

    태산이인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진시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거기서 더 건들이면…죽. 습. 니. 다.”

    워낙, 저지른 짓이 있는 지라, 진시우에게 만큼은 나의 약점이나, 맥이 풀린 모습 같은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이를 갈며 말하니 녀석이 피식 웃더니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성…이는…?”

    “두 형제, 나란히 나가더군요.”

    그래…어쩐지 조용하더라.

    “몸은…괜찮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물 가져다줄까요?”

    “아니요…더…자고 싶…”

    아까까지만 해도 흥분을 몰고 오던 최음제라는 것이 이렇게 졸린 것인가. 수면제가 따로 없구나. 싶을 정도로 졸음이 몰려왔다.

    앞에 진시우가 있고, 불안하긴 하지만, 졸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 한번, 진시우를 믿어 보기로 했다.

    “최음제 먹고, 자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 일겁니다. 그래…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야. 나는…”

    누군가의 중얼거림…누군가의 애타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치면서 잠이 들었다.

    PLUS

    “둘에게 전해, 꺼지던가, 닥치던가.”

    분명 태산이에게 전하라고 하였지만, 주혁이의 목소리는 진시우와 한태성에게 똑똑히 들렸다.

    그의 목소리-지금 한참 열이 올라 쉬어서 숨이 들어가 있는 목소리-를 듣자니 어떻게 더 떠들 수도 없고, 서로 이야기만 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시우와 태성은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의 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에서 나온 태산을 보다가, 진시우가 태산의 이상한 점을 확인하고 태산에게 다가가 태산의 손을 가로챘다.

    양손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보고 태산이를 위협적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지주혁에게 뭐 했어?!”

    다짜고짜 앞 뒤 다 자를 말이지만, 그 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확실하게 하는 태산이는 진시우에게 자신의 손을 억지로 떼면서 아프게 잡혔던 오른쪽 손목을 쓰다듬었다.

    “진시우씨가 알 필요 없지요. 형, 나 BAR에 가봐야 해”

    “??”

    태산에 말에 태성이 태산이의 손과 진시우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왜?”

    “주혁이 형이, 사장님께 부작용 없는지 알아 봐 달라고 했어.”

    쟈켓을 집어서 입고 난 후, 태산은 자신의 폰을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고 태성에게 다가갔다.

    “그럼 난 여기 있지”

    “안 돼, 나 형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같이 나가줘야겠어.”

    “뭐?! 그럼 저 새끼만 남는단 말이야!”

    자신의 형의 팔을 잡더니 질질 끌고 가던 태산은 태성의 말에 자리에서 우뚝 서서 진시우를 째려보았다.

    “진시우씨, 우리 빨리 갖다 올 테니까. 허튼짓 하면 가만 안두겠습니다.”

    네 녀석이 하는 그게 협박의 축에라도 끼는 거냐. 라고 생각하던 한태성도 역시 진시우를 한번 노려보면서 태산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호텔을 빠져나오니 곧 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하늘은 이상했다.

    만약 눈이 내린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라고 생각하던 두 남자는 이럴 때가 아니라며 BAR로 향했다.

    “그런데, 너 나에게 할 말이 뭔데?”

    “형, 주혁이형 좋아해?”

    태산이의 아무런 망설임이 없는 말에, 태성은 걷다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앞서 가던 태산이도 가만히 서서는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태산이는 생각했다. 이 어두운 밤에, 고작 작은 조명 빛에 비출 뿐이라도, 저 남자…아니, 자신의 형은 정말 멋지다고.

    “…그래,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한다.”

    한태성의 말에 태산이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잠시 긴장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

    최근에 형의 행동이 이상했으니까. 아주 많이

    “언제부터? 나보다 오래 되었어?”

    “아니, 그건 확실히 아니지만”

    “그럼, 형보다 내가 더 간절한 거 알고 있겠네? 옆에서 지켜봤잖아.”

    “그래”

    “그럼 포기해”

    “못해”

    “어째서!!”

    “나도 간절하니까!”

    “웃기지마, 그 사람 탑일때, 그 사람 매력하나 발견 못한 사람이, 이제 와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래서 망설였어, 단 일순의 호기심이 아닌가 하고, 늘 어느 때처럼 재미삼아, 즐기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고, 하지만 아니다. 아니었다. 한태산”

    “포기 정말 못해?”

    “그래”

    “그럼 형과 나는 적이야.”

    “애초에 너는 지주혁을 가지려면 많은 산을 넘어야 해, 너보다는 내가 더 유리할지도 모르지.”

    “그건 아무도 장담 못해”

    “한태산”

    “나도 포기 못해. 절대로 손에 넣을 거야. 형이라도, 절대로 뺏기지 않아.”

    태산의 너무 확고한 의지에 태성은 놀랐다.

    늘 어리광만 피우고, 자신의 보호아래 자란 남동생이 갑자기 크게 자라 남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남동생을 조금 응원해주고 싶었다.

    아마…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힘내.”

    안 그래도 힘 낼 거다!! 흥! 이라고 말하고 뒤 돌아 서서 가는 녀석을 보니 막내 티 팍팍 낸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저 녀석이 정말 ‘남자’가 된다면 무서운 적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태성이었다.

    BAR를 향해서 걷다가, 이번에는 앞서 걷던 태산이 자리에서 우뚝 서서 BAR 쪽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태성도 같은 자리에 서서 BAR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검은 코트의 사나이, 이승진이 자신의 수하(?)들로 보이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보아도, 지금 지주혁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 느낌을 받은 태산과 태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자.”

    “어, 저 새끼 마주치면 주혁이 형 있는 곳 알아내려고 할 거야.”

    태산과 태성은 슬슬 뒤로 움직이면서 이승진이 눈치 채지 못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호텔로 들어가 이미 잠들어 버린, 지주혁과 그리고 그런 지주혁을 보고 있는 진시우를 불러서 당장 호텔을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는 지주혁을 깨우려고 애썼지만, 지주혁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편안하게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기운이고 뭐고 다 빠져서 태산과 태성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진시우는 나가서 방의 문을 잠갔다.

    “조폭 따위 쳐 들어오라고 해. 지키지 뭐, 누가 내 준대?”

    태산의 말에 태성은 피식 웃으면서 그러면 되겠다고 말했고, 진시우는 속으로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저 사람 힘으로 자기 몸 스스로 충분히 지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날 밤에는 이승진이 쳐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작은 소동이 있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에 그 소동이 있었으니…그 다음날은 조용히 넘어가겠지 했건만, 그 최음제의 부작용(?)때문인지 배탈이 나서 막상 크리스마스 때는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 달락 거려야 했다.

    거기다가 아침부터 오는 문자들은 가간이었다.

    『축, 탈 버진』

    『뚫린 기분이 어때?』

    『주혁씨..ㅠㅠ.거짓말이라고 해줘!!』

    『어떤 기분이었는지 리포트 제출 할 것!』

    등등의 요상한 문자가 너무나 많이 와서 결국은 배터리를 폰에서 빼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사장에게 전화나 걸어서 그 병에 최음제 들어 있는 거 알고 준거지?! 라며 따지면서 화풀이라도 하고 싶지만, 사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그리고 정말로 최음제를 먹고 홀딱 가버려서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했다면 문제였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일단은 이 건은 조용히-일단 나 혼자의 바람으로는-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회사는 연말이라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특히 경리 쪽은 거의 시체들만 다닌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헬슥해져 있었고, 기획팀이나 마케팅팀도 머리를 부여잡고 1분이 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한 부서의 대리로서 착실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점점 쏟아져 나오는 일에 서서히 파묻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이 모든 사원들에게는 한줄기 빛이었다.

    모두 밥을 먹고 잠시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깥공기를 만끽 하며, 일을 줄여줄 생각을 하지 않는 부장의 흉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대리님은 1월 1일에 뭐 하실 거예요? 애인이랑 데이트?”

    “아니, 난 1월 1일이면 항상 해 보러 가”

    “와~ 정말요? 멋지다!!”

    “누구랑 가시는 데요?”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들, 그리고 남자 직원들의 애인이랑 가시죠? 의 질문에 하하 웃으면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정동진을 가고부터 한 번도 애인을 데려간 적이 없고 항상 나 혼자 갔었으니까.

    내가 웃으면서 한 번도 애인과 간 적이 없네, 라고 말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 지면서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티 나게 생각 안 해 줘도 되는데…

    “정말 미스터리라니까요.”

    누군가가 다른 이야기로 긴급하게 화제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두 사람의 둔한 사람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어째서, 지대리님은 그렇게 잘난 외모와 좋은 성격 가지고도 애인이 없으신 건가요?”

    그 한 사람의 말에 모두 다시 조용해진다.

    그래도 일단 답은 듣고 싶은지, 모두 일제히 나를 보며 머리 위에 각각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그 물음표가 너무나 리얼하게 내 눈에 보여서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답을 뭘 로 해야 하나 고민했다.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헤어졌다고? 아니면 속 시원하게 게이라고 말을 해? 등등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지 대리님은 제 겁니다.”

    헉-

    이게 갑자기 어디서 날아온 화살이란 말인가, 정마 정통으로 내 심장을 때렸다.

    그 이유는 아마도 목소리 주인…그리고 장신인 나를 이렇게 뒤에서 끌어안을 수 있는 인간은 우리 부서에 딱 한명 뿐이었다.

    진시우…

    난 내목을 끌어안고 있는 녀석의 팔을 풀려고 힘을 주니 녀석이 오히려 더 목을 안는 것이 아니라 조르는 듯이 힘을 주기 시작한다.

    진시우의 발언에 내 심장은 바닥으로 떨어졌건만, 다른 직원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 들였는지 어쨌는지 웃으면서 ‘시우씨라면 대리님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니 오히려 부끄러워한다고 난리였다.

    도대체 어디가!!

    그 때, 때마침 휴식이 끝나는 사내방송이 흐르고 모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투덜거리면서 일터로 돌아가는 마당에 진시우는 내 목을 놓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가고 조용해진 옥상에 뻘쭘하게 남겨진 큰 덩치의 두 사내

    그것도 한 남자는 그 덩치 큰 한 남자에게 목 졸림을 당하고 있었다.

    “1월 1일 여행갑니까?”

    아까 이야기 들었던 거군

    “들었으면서 뭘 묻습니까.”

    “혼자 갑니까? 아니면 상대가 있습니까.”

    “혼자 갑니다. 알면서 뭘 묻습니까?”

    “그럼, 제가 같이 가도 됩니까?”

    “NO. 라고 대답하지요.”

    “어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으니까요.”

    “흐음…나 안 데려가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도 안 데려 간다고 약속하면 손 풀겠습니다.”

    “애초에 같이 갈 사람도 없습니다! 이거 좀-!”

    일 하러 가야 한단 말이야! 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동시에 진시우가 손에 힘을 풀고 자신의 팔을 나에게서 떼어냈다.

    갑작스러운 허전함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자유롭게 되어서 몸이 가볍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난 그래도 약간 흐트러진 넥타이를 바로 메고 진시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농담이라도,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 마십시오.”

    “…농담?”

    내 말에 확인이라도 하듯 물어오는 녀석의 의도를 알아채서 나는 모른 척 옥상 문 쪽으로 향해 걸었다.

    “내가 한, 고백은 잊은 건가? 아니면 생각중인건가?”

    나의 뒷모습에 대고 대화를 요청하는 진시우를 나는 가뿐히 무시하고 옥상 문을 닫고 나왔다.

    어차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만약 진시우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나는 몇 번이고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작 답을 주었을 것이다. 좋은 답이든 나쁜 답이든

    그러나 아쉽게도 난 지금 진시우에게 진실이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장난 같고, 모든 것이 시비로 들리고, 보인다.

    그가 하는 말은 나에게 너무나 공격이 되기 때문에, 그가 말한 그 ‘고백’이라는 것도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가 나랑 놀기 위해 말한 핑계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 지긋지긋한 연말의 일들이 모두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퇴근 할 때, 새해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만납시다. 라는 저주 아닌 저주의 말을 하고 헤어졌다.

    진시우는 3일 전부터 이사님께 걸려서 해외 출장을 갔고, 그 덕분에 나는 설마 진시우가 따라오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한 정동진에 마음 놓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매년 묵는 모텔을 이미 예약해 두었고, 옷은 편한 것으로 입고 가자. 라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생각하고 걷는데, 주머니 속에 잠자던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형~ 나 태산이]

    “그래”

    [지금 어디야?]

    “이제 막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

    [바에 안 올 거야? 태성이 형도 와 있는데]

    “아니, 나 내일 지방 내려가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태산이 크게 ‘지방?!’을 외치자 그 옆에 있는 한태성이 같이 소리를 지르며 태산이와 함께 폰 쟁탈전을 잠시 벌이더니 끝내 태산이에게 폰을 뺏었는지 ‘여보세요? 지주혁!’을 외치기 시작한다.

    “나, 귀 멀쩡합니다. 한태성씨”

    [너 어디 가? 웬 지방? 그 빌어먹을 회사는 31일에도 일 시킨다고 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개인적으로 가는 일입니다.”

    [고향집?]

    고향은 무슨…예전에~ 부모님 다 하늘나라에 보냈는데…

    “정동진에 가는 거야. 해보려면 역시 정동진이지”

    [정동진…인가…]

    “1월 2일에 만나서 술 한 잔 하자. 한 살씩 더 먹어서 위로 주 해야지.”

    […혼자 가는 거야?]

    진시우도 그렇고, 왜 내가 누구와 가는지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건지…

    “그래, 혼자 가 볼 생각이야.”

    [그래…]

    안도의 숨인지, 아니면 걱정하는 한숨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태성의 깊은 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죽는다!]

    “큭큭, 다녀올게, 태산이에게 안부 전해 주고.”

    한태성은 계속 조심해서 다녀와라,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해라, 식으로 꼭 부모님 잔소리 하듯이 몇 번의 충고를 하고, 나의 입에서 네, 네, 라는 대답이 나올 때서야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전화를 끊고나 서야, 아, 태산이랑 한태성과 같이 가자고 한 번 말해볼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번년도는 특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역시나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들을 챙기고, 세면도구를 챙기고, 장갑과 목도리도 챙겼다.

    그러다 문뜩 거울속의 나를 보았다.

    정말 이제 내일 모레면 29이구나 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여행을 시작한 것이 20 살 때였다.

    그때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정동진에 가서 깡소주 따고 마시면서 울던 게 처음의 내 여행이었다.

    그때는 젊었는데, 이제 1년만 더 하면 30살인데 30살이나 먹은 남자가 혼자 다니는 것이 추해 보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꼭 내년에는 연인을 데려 갈 수 있도록, 새 해에 빌어야…설마 그런 소원 빈다고 새 해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옷 정리를 하고 그리고 올해 초에 샀으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쓰지 못한 디카와, 삼각대를 챙기고, 씻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8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가방을 메고 꾸벅 꾸벅 조는 경비실 아저씨를 보고 작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며 아파트 단지를 나왔다. 저 멀리 주차 되어 있는 나의 차가 보였지만, 차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여행은 역시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를 탔다.

    고속버스를 타고 정동진 가는 길에 보이는 눈들과,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늘 이런 여행을 좋아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잘 오지 못하는 나를 책망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또 다짐한다. 내년에는 전국을 좀 다녀봐야지. 라고, 그러나 그 다짐은 내년에도 하게 될 이루어 질 수 없는 다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매년 마지막 날에 정동진 가는 것만으로도 대단 한 걸까…?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정동진은 정말 추웠다.

    바닷바람도 바닷바람이지만, 날씨가 쌀쌀했다. 설마 눈이나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하다가 아까 버스에서 본 신문에서는 날씨가 좋다고 했으니 그 날씨를 믿자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정동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바닷가를 껴안고 있는 바로 이 기찻길이다. 기찻길을 밟으며 보는 정동진은 정말 끝내주게 아름답다.

    여전히…약 10년 동안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해서, 정말 태성이 말대로 고향집에 온 기분이다.

    그래도 일단 구경은 나중에 하고…숙소를…

    매년 가는 작은 모텔이 있다. 정동진역과 가까운 곳이라서 몇 걸음 걸어서 도착했고, 1년 사이에 또 나이 드신 주인아주머니를 보고 점점 젊어지시네요. 라고 말씀드리니 기분이 좋으신지 웃으신다.

    그리고 나에게 전해주는 304호의 키, 그 키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늘 내가 9년간 묵고 있는 곳이 바로 이 304호였다.

    전화상으로 예약은 하긴 했지만, 호실까지는 하지 않았는데…내가 아주머니를 보고 의아해 하자, 아주머니가 위에 온돌 따뜻하게 해 놨다고 어서 가서 좀 쉬고 밥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각박하고 조금은 냉정한 도시생활과, 사람들 틈에 끼여서 이런저런 삶에 찌들어 있다가, 이런 작은 배려에 코끝이 찡해진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그 무언가…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오래된 모텔이니 만큼 문을 여니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번년도에도 새롭게 도배를 하셨는지, 안은 너무나 깨끗하게 정돈 되어있었다.

    그리고 큰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가의 모습…

    여기에서 뜨는 해를 봐도 될 만큼 이 곳은 모텔에서 제일 좋은 방이었다.

    물론 나는 꼬박 꼬박 밖에서 보지만 말이다.

    대충 짐을 풀고, 손을 씻고, 옷을 편안하게 갈아입은 뒤에, 모텔을 나섰다.

    일단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매 시간마다 지는 해가 찍고 싶어서 디카와 삼각대를 가지고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이 디카와 폰을 가지고 이제 오늘이면 지는 올 해 마지막 해를 찍고 있었다.

    “설마…주혁씨?”

    …아니, 사진을 찍는 폼만 지고 있다. 솔직히…이 디카 산지 몇 달이나 넘었지만,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매뉴얼을 지금 당장 읽는다고 해도, 기능 파악은 힘드니, 그저 오토로 설정해서 찍고 있는 것이다.

    오토로 찍어도 그래도 너무나 색감이 예뻐서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나의 이름을 부른다.

    이곳에서, 이 정동진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어떤 사람이 나를 부른다.

    이제는 아예 나라고 확정을 지은 것 같이 “주혁씨네!” 라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누구지? 하고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 사람이 나를 덮치듯 안아 왔기 때문이다.

    “주혁씨다!! 우와, 정말 오랜만이야!!”

    “…동현?”

    “응!!!”

    정동현…정동진과 이름이 비슷하여, 정동진 생각난다고 이야기 했다가, 자신의 형 이름이 정동진이라고 이야기 했던…3년 전의 그 슬픈 눈을 한 아이…

    하지만, 지금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나를 마주보고 있는 그 아이…아니 그 어른의 눈에는 이제 슬픔보다는 행복이 쌓여 있었다.

    “정말, 정말 주혁씨네…꿈이 아니구나.”

    “그러게, 꿈이 아니구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나를 꼬옥 끌어안는 동현은, 살짝 눈물을 흘리는 듯 했다.

    눈물…

    3년 전에, 딱 한 번 나와 잠자리를 한 아이였다.

    그때는 부산에서 막 상경하여 서울에서 일 자리를 찾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였다.

    그래서 아무나 따라간 거겠지…

    그리고 낯선 땅에 와 외로워서 아무나 따라간 거겠지…

    질 나쁜 놈에게 걸려 강간당하고 골목길 구석에 버려진 동현을 지금의 BAR 사장이 데리고 왔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건 나와, 사장과 진구였다.

    다행히 게이쪽 치료 해주는 병원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몸이 완쾌가 되었을 때, 사장은 BAR에서 일을 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또 사랑에 빠진 아이…BAR의 손님을 좋아하게 된 동현은 정말 순수하게 맑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현은 보통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BAR는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잘 난’사람들만 온다, 권세, 재력, 얼굴, 모두 하나 빠지지 않는…

    동현이 좋아했던 사람은 그 세 가지를 다 가진 것도 모자라 똑똑한 두뇌에 천재라고 칭찬하는 인물이었다.

    동현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 사람은 동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멸시 했다. 얼굴 못 생긴 것을 비웃었고, 일개 종업원이라는 것을 자신의 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동현은 그 사람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느 날 동현을 안았다. 더 이상 불행해 지지 않고 잘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동현이와 함께 파티를 한 기억도 있다.

    케이크 조각 하나 자르며 축 솔로 탈출 이라고 파티를 해주었는데…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동현은 한 남자를 얻기 위한 노리개 이었을 뿐…결국 그 남자를 손에 넣고, 동현을 버리고, 동현이 울고불고 매달릴 때 내치는 것을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동현을 감싸 안다가 나도 몇 대 대신 맞았었다.

    그러나 내가 몸이 아프기 보다는 동현의 아픔이 내 가슴에 전해져서 마음이 더 아팠다.

    그래…그런 3류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정동현은…

    울고, 달래고, 다독여 줘도, 좀처럼 정신 차리지 않던 아이…살아봤자 의미 없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그러나 세상은 절대로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몇 날 며칠을 달랬다.

    마지막으로, 울겠다고, 마지막으로 울고 잊겠다고 말한 날…그 날 동현은 자신을 안아 달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여기며 안아 달라고…내가 절대로 못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안아 달라고 말을 했다.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자포자기 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거절 하지 않고, 나는 동현이의 말 그대로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 아쉽게도 내가 사랑을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대하 듯은 안아 주지 못해도, 정말 곧 깨질 유리그릇 대하듯 그렇게 소중히 안아주었다.

    나에게 안기면서 미안해…그리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동현이의 그 얼굴은 가끔 생각 날 때도 있었다.

    다행히 동현은 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정말 얼마 안가서 탈탈 털어내고-속으로는 모르겠지만- 공부 열심히 하여, 대학에 가고, 그리고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부산으로 돌아가면서 동현은 말했다.

    나를…두 번째로 사랑했다고, 두 번째 사랑은 너무나 예뻐서 다행이라고 말한 것이 동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하…그럴 때도 있었지”

    동현의 재회에 놀라는 것도 잠시, 동현은 밀린 이야기나 하자며 나를 끌고 따뜻한 카페로 들어갔고, 우리는 지금 밀린 이야기 중이다.

    성격이 정말 밝아졌다.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부정적인 것 보다는, 좋게 생각하는…긍정적적인 부분이 더 많아 진 것 같았다.

    안심…이다. 정말…

    “정말 형에게 도움 많이 받았는데…그래서 가끔 형을 생각했어, 많이 보고 싶었고, 이렇게 만나서 정말 놀랍고…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우리 운명인 것?!”

    “저기…”

    “응?”

    “동현아…”

    “응!”

    “네 옆에 있는 분…누구시니…?”

    “아!”

    아! 가 아니잖아 아! 가!!!

    아까부터, 아니 정확히는 네가 백사장에서 나를 끌어안을 때부터, 네 뒤에 전봇대처럼 서 있던 저분!

    네가 나를 끌고 카페에 들어 왔을 때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따라온 저 분!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네 옆에 앉아서, 네가 뭐 먹을지 알아서 시키는 저 분!

    “내 애인이야~ 김서진~!”

    …네 애인…을…이제 그렇게 소개 하면, 이 어색한 분위기 어쩌라고…

    “서진씨, 내가 자주 말했던, 지주혁씨-”

    동현의 말에 그 서진이라는 사람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보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내미는 명함…

    벤처기업 사장인 듯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의…?

    “나랑 서진씨, 대학에서 만났어. 이 사람 천재라~ 졸업하자마자 회사 차리더니, 지금은 직원이 50명이 넘어 하하하. 참고로 난 거기 부사장!”

    “그냥 눌러 앉은게 아니고?”

    “아닙니다. 동현씨, 실력이 우리 회사 톱입니다.”

    하하…

    내가 동현이를 조금 안 좋게 이야기 한 것이 기분이 상했는지, 서진이라는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그렇게 이야기 하였고, 동현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그만하라고 이야기 하니, 그 남자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세상 좁다는 말, 오늘 실감했어. 여기서 주혁씨를 만날 줄이야…”

    “나도 동감이야.”

    “이곳에 왜 왔어?…아, 아니다 오늘 같은 날 정동진에 왔으면 해 보려고 온 거구나? 혼자 왔어? 아니면 애인이랑?”

    “…혼자”

    “뭐얏?! 지금까지 혼자야?! 아니, 설마 나 가고 나서부터 계속 혼자?!”

    “하하…”

    “말도 안 돼-”

    동혁이 흥분하다가 쑥 기가 빠진 듯, 머리를 짚고 쓰러지는 척을 하자, 서진씨가 동현이에게 냉수를 건네준다.(이 날씨에)

    “그러고 보니, 사장형이랑 얼마 전에 통화 했을 때, 이야기 들었어, 주혁씨 바텀이라고 발표 했다며?”

    “아니…발표 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솔직히, 나 그 말 듣고, 하나도 안 놀랬어.”

    “음?”

    “그냥, 주혁씨는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긴 들었거든. BAR에서 청소 할 때,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술을 마시는 주혁씨를 볼 때면, 섹시함이 풀풀 풍기는데…그게 탑의 섹시함 보다는 바텀의 섹시함이랄까…바텀해도 괜찮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그렇구나.…”

    “그리고 생각했지. 그 동안, 맘고생 많았겠구나. 라는…분명 나 보다 더 했을 거야.”

    “하하, 그건 아니야.”

    “그런가?, 그런데, 왜 애인이 없어? 주혁씨 좋다는 사람 없어? 아니다. 주혁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어, 주혁씨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은근히 눈이 높은 데가 있으니까.”

    혼자서 중얼 중얼 거리는 동현을 보니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나 같은 떡대를 누가 좋아하려고…”

    아, 한 놈 있긴 하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기가 막혀서, 키 크고, 작은 건 상관없어, 얼굴 못생기고 잘난 건 상관없어, 좋아하는 마음이라면 그런 건쯤은 극복 할 수 있는 거야. 라고 말한 사람이 어디에 누구더라?!”

    “아…기억이 안 나네.…”

    “나이 먹더니 능청스러워 졌어 정말…주혁씨, 잘 찾아봐, 주위에 있을 거야. 멀리서 내다 보지 마. 이런 나라도…라는 생각도 버려, 주혁씨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그래? 주혁씨보다 가슴이 좁고 키 작은 사람이면 어때, 밤에만 깔려주고 낮에는 주혁씨가 넓은 가슴으로 보듬어 주면 되지? 그렇게…연인 사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같이 걸어 나가는 거야.”

    “……”

    “왜 웃어?”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난 원래 좀 성숙하잖아?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리며 오렌지 주스를 쭉쭉 빠는 녀석을 보자니 부끄러우면 고개를 돌리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곧 두 사람이 두 사람만 온 것이 아니고, 직원들과 같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곧 소집 시간이라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섭섭하지만, 두 사람 이제 곧 사무실을 서울로 옮길 것 같으니 그때 자주 보자고 약속했다.

    그때는 꼭 나에게 애인이 있어서 쌍쌍으로 만나자고 동현은 장난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난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였다.

    카페에서 나오니, 다시 매서운 바람이 뺨을 치고 지나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시계를 보니, 이제 곧 해가 질 시간이었다. 예쁜 노을을 찍고 싶어 다시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말을 하고 동현과 바이바이를 하였다.

    “서진씨”

    “응?”

    “솔직하게 말해 줘야해”

    “알았어.”

    “주혁씨, 어때? 물론 바텀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매력적이야.”

    “많이?”

    “그래, 그걸 모른다는 것이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지.”

    “대시 해온다면 사귈 수 있을 만큼?”

    “…날 시험 하는 거야?”

    “아니, 난 주혁씨를 상대로 질투는 하지 않아.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 다만 ‘남자’의 눈으로 보는 ‘주혁’씨가 궁금했을 뿐이야.”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내 눈에는 네가 더 매력적이야.”

    “고마워-”

    빨리, 주혁씨를 안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당신이 나를 위해서 바랐던 것처럼…

    올 해의 길고 길었던 해가 지고 있다.

    그 불그스름한 노을이 너무 예뻐서, 백사장에 퍼질러 앉아 계속 해서 셔터를 눌렀다.

    추위를 잊을 만큼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저 안에 내가 1년간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 담겨 있겠지, 저 해는 그것을 다 지켜보았겠지.

    많은 사람들의 감탄과, 그리고 환희와, 슬픔 속에서 배웅을 받으며 저 해는 지고만 있다.

    “너는 매번…지고, 뜨고, 그것이 일상일 텐데…내일이면 새로운 한 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거라고 생각해”

    느닷없는 목소리-

    절대로 여기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

    내 뺨에 따뜻한 캔 커피가 닿았다.

    “찾았다.”

    추운 날씨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그 사람의 입에선 잔뜩 입김이 나왔다.

    “한…”

    입이 얼어서 잘 떨어지지 않지만, 솔직히 입을 열기 싫을 정도로 추웠지만, 난 나를 보고 생긋 웃고 있는 그 남자를 보고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한태성?!”

    놀란 나는 생각하지 않고, 한태성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캔 커피를 따서 나에게 건넨다.

    얼떨결에 그 캔 커피를 받으면서도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지만, 그 답은 아무래도 내 옆에 앉은 이 사내만이 알겠지.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아…아니, 좀 놀라서.”

    “그래, 정말 놀란 토끼눈 하고 있다.”

    한태성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니 얼었던 입이 녹고, 몸 안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해가 지면 질수록 날씨는 추워지고 사람들도 하나 둘 숙소나 식당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해는 내일 뜨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음…지는 해를 찍고 싶어서 사진 찍고 있어, 20분당 한 번씩”

    “그래? 찍은 거 보여줘.”

    한태성의 말에 나는 카메라를 삼각대에서 분리하여, 보여주었다. 한태성이 한 장 한 장 버튼을 눌러 보면서 오~ 라고 내가 원하는 감탄과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점점 한 장씩 넘기면 넘길수록 분위기는 암울해져만 갔다.

    “내가 본 게 총 46장인데, 안 흔들린 건 단 세장뿐”

    “헉- 말도 안 돼!! 제대로 찍었는데?!”

    난 얼른 태성이 옆에 붙어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나는 분명 제대로 찍었고, 액정에도 잘 보이지만 한태성은 한사코 흔들렸다고 말을 하고,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결국은 한태성이 확대 버튼을 눌러 사진을 확대하여 보여주었고, 그것을 보고 나는 절망했다.

    정말 많이 흔들렸었다. 액정이 작아서 그런 것 까진 보이지 않은 것뿐, 그것도 한태성 말대로라면 화이트밸런스도 잘못 맞춰서 색감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액정에는 예뻐 보이지만 컴퓨터로 옮겨 놓으면, 다 삭제감이라고…

    “이럴 수가…”

    “후우…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지금이라도 예쁜 사진 찍을 수 있어, 삼각대 줘 봐 내가 찍어 줄 테니까.”

    “응…”

    거의 울다 시피 나는 녀석에게 삼각대와 카메라 설명서를 넘겨주었지만, 가뿐히 녀석은 카메라 설명서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원래 자기가 사용하던 디카가 있는데, 기종은 다르지만 같은 회사라서 만질 줄 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10분씩 해가 지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질 거라고, 이제부터 찍어야 한다고 사진을 열심히 찍기 시작하는 한태성은 정말 진지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사진을 몇 장 찍어서 보여주었는데, 정말 내가 아까 찍은 것과 색감도 틀리지만, 각도까지 묘하게 틀려서 너무나 예뻤다.

    “오우~ 한태성에게 이런 점이!”

    “도대체 디카를 사 놓고, 사용 안 한 거야? 사용 촉감이 새 건데”

    “어, 사놓고 사용 한 번도 안했지, 이제 좀 하려고 하니까. 어렵네, 그냥 간단한 걸로 살 걸…”

    “간단한 것이 원래 더 어려운 법이야.”

    한태성은 그래도 색감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면서 다시 한 번 이리저리 조정을 하더니,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품 안에서 따뜻하게 되어있는 커피 캔을 두 개 더 꺼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보온용”

    "큭큭“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바바리맨이 앞선 을 벌렸는데, 캔 커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고 상상을 해봐라, 한태성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금 꺼낸 캔 커피가 2개, 그리고 안에 들어있는 캔 커피가 두 개가 더 있었다.

    그 말은 즉, 한태성은 방금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참을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었거나,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 먹으려고 산 건 아닐 테고…언제부터 와있었던 거야?”

    “여기에 한 10시쯤에 도착했나.…”

    “10시?! 나보다 일찍 도착했잖아?!”

    “아, 그래?”

    “그런데, 여기 왜 온 거야? 원래 올 생각이었어?”

    “아니”

    “그럼?”

    한태성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서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지만 좀처럼 바람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아, 내가 바람을 손으로 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게 해주었다.

    “후우…네가 없으니까 울 것 같아서.”

    “뭐어~?”

    “사내가 되어 태어났으면 세 번 울어야 하는데, 울게 생겼으니, 안 울려고 내려 왔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정말이지…”

    요새 진구놈과 너무 붙어 있더니, 함께 개그맨이 되기로 작정 한 거야? 라고 투덜거리면서 나는 태성의 입에 있는 담배를 뺏어서 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몇 초 뒤에 다시 한 번 태성이 내 입에 있는 원래 자신의 담배였던 녀석을 빼서는 자신의 입에 물고 빨아들이더니, 스스로 빼서 내 입에 다시 꼽아 주었다.

    “처량 맞다.”

    덩치 큰 멀쩡한 남자 둘이서 담배 한 개비 가지고 나눠 피는 꼴이라니…

    이 모습을 보는 게, 앞에 바다뿐이라서 다행이야.

    “그럼 10시부터 어디서 뭘 했는데?”

    “찾았지.”

    “날?”

    “그래.”

    “어떻게?”

    “이 일대 모텔이란 모텔은 다 뒤지고, 한 모텔 뒤지고 바다에 와서 한 바퀴 돌고, 정말 5년간 운동할 거 오늘 다 한 것 같다.”

    운동하는 놈이면서…

    “다행히 3시쯤? 네가 묵는다는 모텔 찾았고, 거기 주인아주머니가 나갔다고 하기에, 또 열심히 백사장을 뛰어 다녔지.”

    아, 그럼- 내가 동현이랑 차 마시고 있었을 때, 한 태성은 날 찾고 있었다는 소린가?

    “한 번 더 돌고, 네가 없으면 그냥 네가 묵는 모텔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이 아주 청승맞게 앉아 있잖아? 진심으로 말 하건데, 네 그 뒷모습은 너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이 보았으면 울었을 정도로 청승맞더군.”

    “어이…”

    “하지만, 나름대로 분위기는 있었어.”

    담배가 다 타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빨려고 했지만, 한태성이 내 입에서 쏙 빼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비닐봉지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지는 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냥 올해의 반성을 좀…매년 여기에 와서 세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빌거든, 올해에는 그것을 잘 해냈나, 그런 것을 생각했어.”

    “왠지, 지주혁 답네,”

    “그런가?”

    “그래서, 이번에는 잘 해낸 것 같아?”

    “두 가지만, 아니 1,5개 정도?”

    “뭐야 그게…”

    장갑을 껴도 시린 손이, 따뜻한 커피로 인해서 조금은 괜찮다.

    그래서 조금 뒤 커피가 식을 것을 알고 있지만, 커피가 계속 따뜻하기를 바라고 있다.

    “바란 게 뭐였는데?”

    “음…웃지 마”

    “어, 손가락 걸까?”

    새끼손가락을 삐죽 내밀면서 안 웃을게 말하는 녀석을 보고 황당했다. 장갑을 안 껴서 그런지 그 손가락은 벌개서 딱 봐도 체온이 많이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새끼손가락만 꼭 붙잡아 주었다.

    “첫번째는 승진 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했지, 2월달에”

    “아, 그때…”

    “두번째는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알면서 뭘 물어? 여기에 청승맞게 혼자 앉아 있는 거 보면 몰라?”

    “그건 그렇지, 그리고 세 번째는?”

    “용기를 가지게 해주세요. 내가 바텀인거, 말 할 수 있도록- 그래야 두 번째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았거든”

    그런데, 내가 용기를 내서 말한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니,

    “그래서 1,5라는 거군”

    “그 점이 좀 아쉽네.”

    “진시우, 그 새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결론은 좋았다고 해도, 그 과정이 나쁘니”

    “나 좋아서 그랬다는데”

    “그래?…”

    “……”

    “……”

    “……”

    “…뭐얏?! 진시우가 너 좋대?!”

    갑자기 잠잠하던 한태성이 벌떡 일어나 내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도 놀랐지만, 주위에 연인들이 오순도순 잘 앉아 이다가, 한태성의 고함소리에 놀라 슬금슬금 피하는 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사람들 시선이…한태성에게는 별 상관없는 것 같지만…

    “진정해, 놀란 거 이해 하니까. 한태성 진정 해라!!”

    갑자기 털 다 새운 고양이 마냥 캬르릉 거리던 녀석이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꺼내어 피기 시작했다.

    “후우…미안하다. 흥분했다.”

    “상관은 없는데…”

    그게 무슨 그렇게 흥분할 일이라고…

    “그래서, 진시우에게 너 고백 받은 거야? 언제?”

    “음, 크리스마스 전이지”

    “이승진 만나기 전?”

    “그 후”

    “하하, 정말 미치겠구먼.”

    “네가 미칠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니, 대답은? 대답은 뭐라고 했어?”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있어야. 답을 해주지. 그래서 그냥 웃기지 말라고 발로 차 버렸다.”

    “하…하하하하, 지주혁답기는 하다만, 하하하하…진시우가 쪼~끔 동정이 된다. 하하하하…”

    심각하던 녀석이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한다.

    그러니, 덕분에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더 썰렁해 지잖아.

    이야기 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고, 그러는 사이에, 올해의 마지막 해는 점점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식당에, 그리고 어딘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서 그 해를 배웅하고, 내일이면 새로 뜰 해가 희망을 안겨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 해가 사라지는 모습을 디카로 작은 영상을 담았다.

    마음이 힘들 때 보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슬슬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 가자고 한태성이 말해서 그러자고 답해주고 디카를 챙겼다.

    근처 굴밥 집에 들어가 굴밥을 시켜먹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였다.

    혼자 왔으면, 혼자서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한태성이라도 있으니까…역시 하나보다는 둘이 좋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배를 퉁퉁 치고 있으니, 또 술이 마시고 싶다는 한태성의 말에 술꾼이 어디가나 싶어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숙소에서 마실까 했지만, 역시 추워도 밖이 최고라고 둘이서 합의를 보고, 아까 앉았던 백사장에 앉아서 맥주를 따서마셨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둠뿐이지만, 그 어둠에는 새로운 빛…달과 별이 있어 어둡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서울에서는 이제 볼 수 없는 별들이 한 아름 있어 절경이었다.

    그리고 연인들이 곳곳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까지 말이다.

    “한태성”

    “응?”

    “와줘서 고맙다. 혼자 있는 것보다, 역시 둘이 있을 때가 좋구나. 무언가 마음도 든든하고 말이야.”

    만약 혼자 있었다면, 난 지금 깡 소주나 따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외치며 울면서 땅 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지주혁…”

    “응?”

    “…나”

    “저기…”

    한태성이 굳어버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느새 뒤에서 예쁘장한 여자 두 분이 서서 긴 생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한손으로 그 휘날리는 머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우리를 보고 말을 걸어온다.

    “두 분…뿐이세요?”

    “그런데요?”

    “아…저, 괜찮으시면 함께 안하실래요? 저희들도 둘이서 왔는데, 심심해서…”

    역시, 한태성 외모 때문에 온 거구만

    정작 한태성은 그 여자들은 바라보지도 않고,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저희들은 지금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그럼 두 분 이야기 하실 때까지 저 안에 있을 테니, 불러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정말 미인이고, 착하게도 생겼지만, 미안해요 아가씨, 우리는 게이라서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둘이서 할 이야기 있다잖습니까.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군요.”

    나와 같은 말인데도, 한태성이 한 말은 ‘빨리 안가? 안가면 죽인다?!’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고, 그것을 그 아가씨도 눈치를 챘는지, 어이없게 한태성을 바라보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가버린다.

    그렇게 심한 말을 할 필요는…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태성은 벌써 맥주 캔 세 개를 아작 내고 있었다.

    뭐 워낙 술이 센 녀석이라 그 정도로는 꿈적도 안 할 녀석이지만, 이렇게 날씨도 추운 곳에서 술을 저렇게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녀석의 입과 마주대고 있는 맥주 캔을 뺏었다.

    “적당히 마셔라”

    “뭐 이정도 가지고…”

    “그래도 내일 해 못 보면 어쩌-”

    “지주혁”

    녀석에게서 뺏은 맥주를 내가 대신 마시면서 땅에 널브러져 있는 캔과 안주 봉지들을 검은색 봉지 안에 주섬주섬 담고 있을 때, 내 손목을 잡으며 한태성이 나를 부른다.

    “너, 너 말이야.”

    “?…말해-”

    “진시우의 고백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고 그랬지?”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왜…

    “그런데, 만약 내가 너에게 고백한다면, 그것도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게 되는 거냐?”

    “너…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하고 있다.”

    “야- 농담도”

    “농담으로 이런 말 할 것 같아?”

    태성이에게 잡힌 손목이 너무 아프다.

    아프게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태성과,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지 않으려는 나의 힘 싸움의 결과였다.

    나는 옆에 있는 내가 마시다 만 맥주 캔을 잡아서 한태성의 얼굴에 뿌렸다.

    그제야 녀석에게 잡힌 손이 느슨해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난도 정도껏 해!!”

    얼굴에서 맥주가 흘러 내려 한 방울, 두 방울 모래로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상관없이 한태성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 눈이 싫어서 발길을 돌려서 성큼성큼 걸었다.

    뛰고 싶지 않았다. 만약 뛴다면 도망간다고 생각할까봐, 무엇인가 무서워서 도망간다고 생각 할까봐

    그런 두려움까지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주혁- 잠시만- 장난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짓지?”

    “윽-”

    나도 정말 힘에는 빠지지 않지만, 최근 운동 좀 게을리 했다고, 이렇게 힘 차이가 나는 건지, 그에게 잡힌 어깨가 너무나 아프다. 게다가 키는 내가 더 큰데, 어째서 이렇게 이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장난이 아니라면 그런 말 쉽게 하는 게 아니야!!”

    “쉽게 하지 않았어!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너는 모를 거다. 절대로 몰라 지주혁”

    “너…내가 바텀이라고 말하니까. 아래 깔리는 계집애로 본거야? 다리 벌려주고 박게 해주는 그런 놈으로 본거냐고!!”

    “네가 그런 놈으로 보인 거라면 벌써 끝났어, 나는 벌써 너를 먹고 입 닦았단 말이다!! 그렇게 안 보였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말하는 거야.”

    녀석이 나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스륵 풀리면서 나이 등 뒤로 옮기고 나를 끌어안았다.

    “너에게, 얼마나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네가 보통 다른 바텀들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혹시나 내 마음이 호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고 괴로웠다. 너를 그런 눈으로 보는 내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네가 다른 놈들에게 웃어주는 것이 싫고, 네 주위에 계속 남자가 생기는 것이 싫다. 너는 모르지만, 얼마나 네가 많은 놈들에게 노려지고 있는지, 정말 내가 미칠 지경이야.”

    “내가…탑이었어도, 너는 이런 말을 나에게 할까? 나를 향해 그런 마음 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해봤어? 내가 탑이었다면-”

    “너는 나에게서 언제나 예외였겠지. 같은 탑을 ‘그런’눈으로 보는 것은 드물디. 드믄 일이니까. 나는 너를 그런 생각으로 하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바텀이니까 그렇다는 거 아냐, 그건…”

    그래,

    결론은 그거잖아

    너도, 진시우도

    어쩌면 내가 바텀이니까 좋아한다고 말하는…내가 탑이었으면 쳐다도 안 보았을 거면서…

    오히려 싫어하고 헐뜯었을 거면서…

    “네가 바텀이라고 발표를 해도, 네가 바텀으로 보인 건 아니야, 지금도 너를 탑으로 나는 보고 있어. 왜냐하면 네가 누군가에게 안긴 것은 본적이 없으니까. 네가 누군가에게 리드 당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너는 나도, 진시우도, 태산이도 리드를 하고 있지. 그런, 네가 바텀으로 지금 보일 것 같아?”

    “너-!”

    “난, 네가 탑이든 바텀이든 상관없어. 내가 발견한건 바텀으로서의 지주혁이 아니라, 탑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못 보았던 너의 매력을 발견해서 너를 좋아하게 된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몰라도 돼, 그래 지금은 몰라도 된다. 하지만, 내 마음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꽉 안긴- 한태성의 품 안에서, 그의 숨소리는 내 귓가에, 그리고 그의 심장소리는 내 가슴에 전해져온다.

    아직은 나에게 어렵다. 한태성이 한 말은…간단하면서도 나에게는 어려운 말이었다.

    “답은?”

    “…알았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 그러니까-”

    놓아달라고 말을 하려니, 녀석이 쿡쿡 웃으면서 더 꽈악 끌어 안아온다.

    이제는 숨이 막혀서 컥-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녀석이 계속 웃으면서 귓가에 속삭인다.

    “큰일 났다.”

    “?????”

    “올해 마지막 날, 여기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 시켜 준 것 같아서.”

    한태성의 말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어두워서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 여기는 정동진, 바닷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난 몰라!!

    한태성!!

    어떻게 숙소에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 시선과 웅성거림을 느끼자마자, 한태성의 팔에서 벗어나 녀석의 손을 끌고 숙소로 뛰었다.

    오늘 밤에는, 밖에 나가면 안 될 것 같다.

    내일 아침 되면 모두 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정말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모텔 방에 돌아오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아까 낮보다 더 따뜻하게 온도를 올리셨는지, 방이 찜질방 못지않게 후끈후끈했다.

    그러나 그 후끈함을 보자마자, 내가 숙소에 헐레벌떡 뛰어온 이유도 잊고 바닥에 굴렀다.

    “먼저 씻어, 이불 펴 놓을 테니까.”

    뒹굴뒹굴 거리는 나를 흔들어서 억지로 화장실에 한태성이 집어넣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자고 싶은데, 역시 오늘 모래바람을 너무 맞았고, 그리고 또 뛰기도 했…

    『나,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하고 있다.』

    밖에서 지금 이불을 펴고 있을, 한태성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울렸다.

    낮고, 남자 같은 음성, 진시우와는 다른- 늘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로 고백을 받는 기분은 정말…

    “으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주혁”

    난 얼른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왔다.

    온 몸을 적시고, 비누로 닦고,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탈탈 털면서 본 나의 모습

    완벽한 남자-

    하나도 귀엽지도, 몸이 날씬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그냥 밋밋한 남자

    정말 이런 놈이 좋은 거면, 한태성의 취향은 특이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건 내 스스로에 대한 욕이다. 라고 나를 혼냈다.

    - 똑똑

    [지주혁]

    “어?”

    [밖에 네가 가져온 추리닝 내 놓았으니까, 그거 입어.]

    “어…고맙다.”

    [밖에서 담배 피고 올게]

    “어…”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문 앞에 놓여 있는 추리닝과…그 위에 올려져 있는 속옷을 집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그냥 내버려두지, 왜 남의 가방을-!이 아니라 속옷까지!!!

    아 정말 오늘 왜 이렇게 한태성에게 못 볼꼴 다 보여주는 거야 대체

    난 씩씩 거리면서 팬티를 입고, 러닝을 입고, 추리닝을 입었다.

    그때 때마침 한태성이 들어와, 이번에는 자신이 씻는다고 들어간다.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이불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곳에 앉아서 TV리모컨을 들어서 TV를 켜고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조금 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한태성이 나왔고, 나왔어? 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깜짝 놀랐다. 한태성은 박스 팬티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나왔다.

    “옷은?”

    “깜박 잊고 몸만 왔다.”

    “허허…”

    추울 텐데, 라고 중얼 거리니, 이 찜질방(?)에서는 추운지도 모르겠다며, 오히려 자신은 이게 편하다고 말하면서 창가에 서서 녀석은 머리를 계속 말리고 있었다.

    난 그런 한태성을 계속 바라보았다.

    근육이 군데군데 정말 딱 알맞게 잘도 붙어 있다.

    저렇게 만들기도 힘들 텐데, 아니 태권도 사범이니까 당연 한 건가?

    “도장은 잘 되고 있어?”

    “그럭저럭,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너희 집 부자라며, 그런데-”

    “우리 집 아버지가 사이코라, 내 돈 쓸 생각마라! 라는 생각이 확고한 분이시거든, 20살 이후부터는 딱 돈을 끊어서 알아서 벌어서 살아야해 40살까지 살아남으면 재산 준다더군.”

    “하하…”

    “난 40살까지 잘 살 거고, 그러니까 너 굶어 죽일 일은 없으니까 너무 걱정마라 지주혁”

    “……무슨 헛소리야!!!”

    한태성의 말이 무슨 소린지 알고 베개를 집어 던졌더니 녀석이 가볍게 그 베개를 받고 오히려 그걸 다시 나에게 집어 던져서 나는 그 베개에 얼굴을 맞고 뒤로 넘어갔다.

    어푸푸 거리면서 베개를 치우니 어느새 내 위에 한태성이 올라타 있었다.

    “걱정 돼서 물어 본거 아니었어? 저 태권도 사범이 나를 어떻게 먹여 살릴까~ 하고 말이야.”

    “아니거든?! 그리고 나, 그런 거 안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과 같이 살게 되도, 나는 그 사람에게 의지 안 해. 물론 상대방도 나에게 의지하면 안 돼.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내 이상이야.”

    “좋은 정신이야. 지주혁씨”

    한태성의 눈이 웃으면서도 살짝 흔들린다.

    아, 그래, 나도 저런 눈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알고 있다.

    누군가와 섹스를 할 때, 문득 호텔 침대 머리말에 놓여 있는 거울을 보면 욕망이 가득한 내 눈을 나는 본적이 있다.

    “나, 너와 이제 키스 안 해”

    나의 말에 놀랐는지, 한태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껴안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너도 키스도, 껴안는 것도 하지 마”

    “그 이상은?”

    “당연히 안 돼”

    “어째서?”

    “이제 장난으로 그럴 수 없으니까.”

    “너도 조금쯤은 그런 의미가 되었다는 것이라는 거야?”

    “아니, 네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야.”

    “그럼 장난으로 받아들인 진시우와는 계속 키스 하겠다는 말?”

    “진시우와는 장난으로, 그리고 가볍게 키스 한 적 없어.”

    전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

    “정말 어렵다니까.”

    한태성이 한숨을 내쉬며, 내 위에서 비키고, 나란히 깔린 이불의 오른쪽에 누웠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TV를 끄고, 불을 끄고 왼편에 누웠다.

    왼편에 누우니 창문으로 별이 너무나 예쁘게 보였다. 한참을 그것을 바라보고 서서히 감기는 눈을 느끼고 있을 때, 이불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불속에서 한태성의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깍지로 꽉 잡은 손은, 나를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잠잘 태세였다.

    내가 놀라서 한태성을 바라보자, 한태성은 눈을 감고 있었다. 대신 입은 움직였지만…

    “손만 잡고 잘게”

    “…뭐야, 오빠 믿지야?”

    “그래, 오빠 믿지?”

    “오빠들이 그러지, 손만 잡고 잘게, 그러다가 가슴으로 손 올라가고, 그리고 더듬고, 그리고…”

    “이 오빠는 안 그런다. 신사거든”

    “그래, 오빠, 믿을게”

    내 말에 그가 쿡쿡 읏으면서 다시 잠잠해진다.

    더운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깍지 낀 손에서는 땀이 차지만, 그래도 오늘 오빠 믿기로 했으니 이렇게 자자…

    눈을 뜬 것은, 새벽 6시였다.

    알람을 맞춰 둔 것을 깜박 잊었지만, 주인아주머니께서 시간에 맞춰서 죄다 문 두드려서 깨워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말이다.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밖을 나서니, 아직 해는 뜰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아까 도착한 정동진이 종착지인 기차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정동진에 고맙게도 해 뜰 시간은 7시 15분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6시 30분이니, 밥이라도 먹고 기다리자고 한태성에게 이야기 했고, 한태서도 그러자고 말했다.

    그래도 아까부터 이 사람, 은근히 손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어제 굴 밥 먹었으니까, 오늘은-”

    “으아아아아아악!!!!”

    정말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멀리 들려오는 괴성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더불어 나와 한태성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고, 그곳에서는 아주 익숙한 인물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태산?!”

    “태산아-”

    “뭐야!!!! 왜 한태성이 여기에 있어?!”

    태산이 성큼 성큼 걸어와 나와 한태성 사이에 파고들어,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말도 안 돼.”

    “아니, 그것보다 태산아 여긴 어쩐 일이야?”

    “주혁형 보려고 왔지!! 젠장, 좀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정동진에 오는 사람 왜 그렇게 많어?! 해는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건만!! 고속버스는 고속버스대로 없지, 어쩔 수 없이 이벤트 기차 타고 왔는데- 둘이 뭐야?! 뭐냐고!!!”

    “태산아 진정…”

    “태성형~!! 이러면 반칙이야!! 새해인사 하러 오라는 아버지에게는 ‘저 도장애들과 해 보러갑니다.’라고 거짓말 해놓고서는 이러면 안 되지!! 그리고 이손 뭐야?! 안 풀어?!”

    그게…아까부터 나도 풀려고 했는데, 네 형이 안 놓아서 말이야…

    나는 곤란해 하고 있고, 태산이는 바득 바득 대들고 있고, 한태성은 입 꼬리를 울리면서 아주 즐겁게 웃는다.

    그리고는 태산이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하는 말

    “이건 말이다. 형과, 지주혁과 만리장성 쌓았다는 증거거든?”

    그…그…그…

    나도 말을 못 이어서 어버버 거리고 있는데, 태산이는 오죽했으랴, 애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태…태산아,”

    “거짓말…거짓말이지?!”

    “태산아, 괜찮아?!”

    “주혁형 거짓말이지?!”

    “당연히!! 거짓…”

    “어떻게 주혁이가 네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직 덜 자랐다니까.”

    “한태성!!! 애 정신 나간 거 안 보여?!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애 일으켜!!”

    다행히 한태성이 자기 동생에게 약간은 미안했는지,(당연히 자기 말 때문에 정신을 놓았으니 미안해해야지!!)나는 얼른 태산이를 일으켜서 부축하였다.

    아무래도 새 해를 보기는 그른 것 같고, 애를 숙소에(숙소에서도 다행히 해가 뜨는게 보이니) 데려가서 진정 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흑- 주혁형 엉덩이이이~~”

    태산아…무슨 말 하는 거야…새해 아침부터

    감기에 걸려 버렸다.

    “으으…”

    정동진에 다녀와서 바로 감기에 걸렸다.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한다. 조심한다. 했는데, 결국에는 걸린 모양이다.

    온 몸이 으슬으슬 하게 춥고, 두통도 오고, 열도 난다. 하지만. 새해 첫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어기적 회사에 거의 기어가다시피 들어가, 정신도 못 차리고 책상에 엎드려서 나 죽었소. 하고 있다.

    “지대리님, 병원 가시는 게…”

    솔직히 말해, 병원 갈 힘도 없다.

    회사에 온다고 힘을 다 써버렸다.

    “괜찮으세요?”

    “…양…은씨, 가까이…오지 말아요.…”

    감기 옮아요.…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까지 잠기는 바람에 컥컥 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건 정말 민폐다.

    그냥 회사에 나오지 말걸…사람들 신경 쓰게 만들고, 더불어 어쩌면 옮길지도 모르는데, 너무 나만 생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최대한 기침 안하려고 애썼고, 사람들 신경 안 쓰게 하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미 여직원들은 나에게 유자차, 꿀물, 그리고 약 등을 가져다주면서 먹으라고 말했고, 부장님은 죽까지 시켜 주셨는데, 영 내 몸은 책상에 딱 붙어서 절대로 안 움직여진다.

    내가 더 이상 일을 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신 과장님은 무릎담요를 가져오셔서 몇 겹이나 덮어 주시면서 그냥 자라고 말씀하셔서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팔을 베개 삼아 나중에 점심시간이 되면 조퇴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진다.

    땀이 몸에서 흘러내리고, 숨도 가파지고, 그야말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다. 이 생각뿐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서 깨우는 기분이 들었다.

    막 잠이 든 터라, 그것도 열 때문에 정신도 몽롱한 터라, 깨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나를 업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참아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업고 뛰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잠속으로 빨려갔다.

    눈을 떴을 때, 

    나에게 보인 것은, 천장이었다.

    책상이 아닌…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쩐지 얼굴과, 목이 편하더라.…

    한숨 푹 잔 것 같은데, 아직도 몸이 무거웠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상태는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누워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은 아니었다. 회사 의무실 같았다.

    예전에 두통 때문에 약 받으러 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둔 걸까?

    아니, 내가 스스로 걸어 왔나? 하하, 그런 엽기적인 일이 있을 리가…좀비처럼 ‘흐어어…’거리면서 의무실까지 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일어났어요?”

    아까…정신이 혼미할 때 들었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들려왔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 목소리에 흠칫 놀라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진시우, 그가 커튼을 걷고 나타났다.

    오른손에는 아까 부장님이 갖다 주신 죽 그릇이 보였고(일회용) 왼손에는 약봉지가 보였다.

    “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모습을 보니 딱 알겠다.

    진시우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록새록 기억나는 그 무언가들…분명, 그가 나를 업…업어서!!!!

    …아마 모든 직원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을 거다. 라고 생각을 하지만, 일단은 편안하게 잠이 들었고, 상태는 더 안 좋아졌지만, 푹 쉴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직원들에게 폐는 안 끼치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말은 해야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그가 약봉지를 내려다두고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눌러서 다시 눕힌다.

    “일어나지 마세요.”

    “아, 고맙…”

    아직까지 목소리는 반쯤 잠겨 있었다.

    “아프면서 왜 출근 한 겁니까. 그냥 집에 있지…다른 직원들에게 폐입니다.”

    그가 의자를 끌어서 앉고는 죽의 포장을 벗기면서 여전히 버릇없는 말을 뱉어내고 있지만, 그 목소리의 억양은 전과 달리 정말 많이…이런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다정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약을 먹어야 하니까, 죽 먼저 먹어야 할 텐데…일어 날 수 있겠어요?”

    난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 슬슬 두통도 오기 때문에-정확히 말해 뇌와 머리가 분리 된 느낌의 끔직스러운 두통-그냥 이 상태로 한 숨 더 자겠다고 표시를 하였다.

    그냥 눈빛과 고개로 대화 한 것뿐인데, 그가 알아들었는지, 그가 한숨을 내 쉬면서 죽을 옆에 있는 가습기 위에 올려 두고, 손을 뻗어 내 머리의 열을 재는 듯 했다.

    “아직 열이 높군요. 나중에 조퇴 할 테니 같이 병원 가죠.”

    “콜록- 콜록”

    갑자기 밀려오는 기침- 참지 못하고 한번 했더니 정말 안의 것을 다 뱉어내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진시우가 내 등을 토닥여 주면서 내가 기침하기 편하도록 해주었지만, 어떻게 하든 기침을 하는 나는 너무나 고통이었다.

    몇 분 정도 기침을 해서야 조금 진정이 되어서 숨을 몰아쉬고 다시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누웠다.

    기침을 너무해서 그런지, 아니면 목이 아파서 그런지, 목이 말라서 ‘물-’이라고 말을 하자. 진시우가 물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물을 받아도, 일어나기가 너무 싫었다.

    빨대가 있음 쪽쪽 빨아 먹겠는데, 그것도 안 되니…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진시우가 물을 마시더니 나에게 키스 하였다.

    정확히는 물 전달이지만…

    입과 입 사이에 전해오는 물의 약은 좀 작지만, 마른 입안과 목이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물 한 모금이 내 목안으로 넘어가고, 진시우가 입을 서서히 나에게서 떼면서 그의 입술이 물기에 젖어 번들번들 한 것이 묘하게 색스러워 보인다.

    하…진시우가 색스러워 보인다니, 아무래도 지금 시아가 영 아닌가 보다.

    “부족합니까? 더 드릴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싱긋 웃으면서 나에게 두 번 정도 더 물을 자신의 입으로 전해주었다.

    키스가 아닌, 단순히 물을 건네주는 행위로, 키스라고는 하나 입을 서로 부딪치는 정도의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그간이 진시우의 행동을 생각하면 말이다.

    목이 적셔지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침 넘기기도, 숨을 쉬는 것도 편해졌다.

    입을 열어 ‘아…’소리를 내보니 말하기도 쉬워진 것 같았다.

    진시우가 자리에 일어나, 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밥을 먹지 않고 약을 먹는 것은 무리겠지 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니, 참 새로웠다.

    왜 이렇게 얌전한 걸까…라며, 그가 얌전한 것에 묘하게 불안해하는 감정도 쪼끔 있었다.

    “아, 여기에 있었네, 시우씨, 이사님이 찾아요!”

    벌컥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사원이 꽤나 다급한 듯 진시우를 불렀고, 진시우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간다고 대답을 했다.

    “잠시 다녀올게요. 갔다 와서 같이 병원 가죠. 그리고 폰은 여기에 놔둘 테니, 많이 아프다 싶으면 전화 하구요. 아. 제 전화번호 등록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서, 1번으로 등록 해놨습니다. 001번 눌러서 통화 버튼 꾹 누르면 되니까. 알겠습니까?”

    “……”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약간은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가 내 손에 폰을 꼭 쥐어 주면서 의무실을 나갔고, 나는 닫혀진 문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폰을 만져보니, 정말로 그의 전화번호가 등록 되어 있었는데…

    『시우씨♡』는 뭐냐 도대체…

    하트는 뭐야…

    당장 하트를 지우고 싶었지만, 일단 패스…나중에 하자. 그렇게 정하고 이불을 끌어 올려 코까지 덮어서 눈을 감았다.

    잠이 들려는 찰나, 내 손에 꼭 잡았던, 폰이 진동을 울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한태성…

    “여…보세…요.”

    […지주혁…너 목소리 왜 그래? 잤어?]

    “음…감기…콜록…”

    [감기 걸렸어?!, 어쩐지 어제 밤에 통화 할 때 맥아리가 없더라니, 어디야? 설마 출근 한 거야?!]

    “응…”

    [너 등신이냐? 바보 아냐?!]

    “…시끄…러”

    […후우…지금 너네 회사 갈게, 병원 가자. 조퇴는?]

    “허락…맡았…”

    [알았어, 기다려-]

    오늘 하루 치, 기운으로 한태성과 대화 다 한 것 같았다.

    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푹- 하고 내 몸도 이불에 파묻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태성이 대단한 기세로 의무실에 쳐들어 왔다.

    시간을 보니, 그와 통화를 한지 20분도 채 안되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주혁- 일어 날 수 있겠어?”

    “…노력…할게…”

    한태성이 나를 부축해주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고 섰다.

    정말 감기 걸려도 이렇게 걸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내 상태는 심각했다.

    그러고 보니…이렇게 아파보는 것도 정말 몇 년 만이다.

    “이 몸을 하고 출근하다니, 네가 미쳤구나. 일찍 죽고 싶었어? 내가 죽여주리? 그리고 아프면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왜 전화를 안 해? 혼자 청승 떨어?”

    한태성이 자신의 차에 나를 태우고, 병원에 가면서 계속 내 상태를 체크하고, 이마에 열을 체크하면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그의 잔소리가 귓가에도 오지 못하고 튕길 뿐이었다.

    병원에 들어가 링거를 맞고 푹 쉬면된다고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러겠다고 의사선생님께 말하고, 병실로 갔다.

    “입원 안 해도 되겠어?”

    “됐어…그렇게…오버 할 것도 아니야…”

    그래도 아까보다는 정말 살 것 같았다.

    병원에 와서 안심이 된 건가?

    “도장…안 들어 가 봐도 돼?”

    “너랑 점심 먹으려고 잠시 나왔으니, 들어가 봐야지- 후우…링거 맞고 꼼짝없이 있어! 빨리 끝내고 데리러 올 테니까.”

    “됐…어, 알아서 갈 테니까…”

    “걱정 좀 하게 하지 마!!”

    한태성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이렇게 화낸 적이 없었는데…물론 자신도 놀랐는지, 고함을 지르고 가만히 있더니 나에게 ‘미안…’이라고 말을 한다.

    고마운 녀석…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나는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 라고 말을 하였다.

    그제야 화색이 돈 한태성은 빨리 올게! 를 외치며 병실을 빠져 나갔다.

    한태성이 나가자 병실이 조용- 해 졌다.

    잠시 링거를 맞는 것뿐인데 웬 1인실인지 정말…

    링거를 바라보았다.

    한 방울 한 방울 박자 맞춰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게 다 내 몸 안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걸까. 라고 생각도 하면서, 그 방울 떨어지는 것을 세면서 있었다.

    양 한 마리…두 마리 세듯…그렇게 세다가 잠이 들었다.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꿈이 너무나 끔찍했다.

    내가 양의 모자를 쓰고, 걸어 다니고 있는데, 저 멀리서 늑대 떼가 내가 양 인줄 알고 침을 다시면서 뛰어 오는 것이다. 특히 그중 한 마리는 완전 눈이 벌게서-미친 늑대처럼 보였다-나를 향해서 덮치듯 뛰어 오는데 정말 꿈인데도 너무 무서워서 열심히 뛰다가, 결국 앞에 있는 절벽을 보지 못하고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잠에서 깼다.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꿈이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꿈인가 현실인가, 판단하고 있을 때, 다행히 내 주머니에 들은 폰의 진동으로 난 지금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당연히 나는 한태성인 줄 알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저기…”

    [당신, 어디야?]

    “어…?”

    한태성이 아니었다.

    날이 잔뜩 서있는 낮은 울림의 목소리, 이건…

    『잠시 다녀올게요. 갔다 와서 같이 병원 가죠.』

    헉…

    “아, 그게…병원…”

    [병원 어디? 의무실 직원 말로는 남자가 데려갔다던데, 누구야?]

    아까와 확연히 틀린 목소리와, 반말,

    이미 예의라고는 저 멀리 밥 말아 먹은 진시우 특유의 예의 없는 말투

    “그건, 알거 없습니다. 걱정해줘서 감사합니다. 진시우씨”

    [한태성이야?!]

    “진시우씨”

    […한태성이군. 하…계속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아서 기분 진짜 더럽네.]

    조금은 쓸쓸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내가 잘못 들었는지 알고, 좀 더 폰에 얼굴을 붙였다.

    미세한 그의 한숨소리도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병원이라니, 그래도 다행이네. 푹 쉬어- 싸돌아다니지 말고.]

    “진시-”

    뚝- 하고 끊긴 전화는 갑자기 사람 마음을 시큼하게 만들었다.

    폰 폴더를 내리면서 얼핏 본 새 문자온 표시 때문에 문자를 보니 온통 진시우였다.

    씨발, 어디야? 부터 시작해서 너 어디야! 어디야!…그러다가 어디 쓰러져 있는 건 아니지? 젠장,- 그리고 마지막에는 만나기만 해봐 이제부터 몸에 추적기 달아 버린다. 의 협박까지 고루 고루 와 있었다. 그리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본 부재중 통화 15건…이렇게 전화가 올 때까지 몰랐다니…

    조금 미안해졌다.

    아니…조금 많이 미안해졌다.

    어느새 링거는 비어가고, 시간에 맞춰 간호사가 와서 링거를 빼주었고, 타이밍 좋게 한태성이 들어왔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고 말하는 한태성을 억지로 보내고, 나는 억지로 죽을 먹고 약을 먹은 뒤 잠이 들었다.

    내일 진시우를 만나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추적기는 달지 말라고 말이다.

    정말 어제 아파서 골골 된 것이, 거짓말 같이

    오늘 아침은 너무나 상쾌한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가벼워서 살 것 같았다.

    한 1톤 정도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가 벗어 버린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전화가 오는 한태성에게 이제 괜찮다고 말을 해서 안심 시켜주고, 출근했다.

    직원들은 아직도 나를 걱정했지만, 난 웃으면서 이제 괜찮다고 오늘 술 한 잔 하자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진시우씨는?”

    그렇다.

    벌써 아침 회의가 끝나고, 한 참 바쁠 때인데, 진시우가 보이지 않았다.

    책상이 깨끗한 것 보니, 아예 출근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 아침에 전화 왔는데, 완전 목소리가 죽어 가시던걸요. 감기 걸리신 듯해요.”

    “어머, 회사에 감기 바이러스가 도는 거야?”

    “지대리님 때문이에요~!”

    “헉, 설마-”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직원들이 감기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하필 진시우가…

    난 내 자리로 가 앉아서, 전화기를 들어서 폰을 보고 진시우의 번호를 눌렀다.

    이놈의 하트 언제 지우지?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네…]

    “저기…진시우씨? 나, 지 대리입니다만…”

    [……]

    “몸이 안 좋다고 해서…”

    [큭…걱정 해주시는…겁니까?]

    확실히 어제보다 목이 안 좋은가 보다.

    걸걸한 소리가 난다.

    “같은 회사 직원이니까 걱정하는 거야 당연하지요.”

    […네, 네…감사합니다. 하지만 걱정 안 해주셔도 됩니다. 내일이면 멀쩡해져서 출근 할 테니까요.]

    “그런 말이-!”

    또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어제부터 진시우와 통화를 하면(단 두 번뿐이지만) 왜 이렇게 전화가 뚝 끊기는지 모르겠다.

    분명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왜-

    라고 생각하면서 번뜩 떠오른 것은 어제 진시우와의 물 준다고 부딪힌 입술…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에게 감기가 옮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설마, 그런 걸로…옮기야…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 결과, 옮을 가능성이 0%는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결국…

    한손에는 어제 부장님이 사주셨던 똑같은 죽 집의 종이 가방이 들린 채로,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 진시우의 집 앞에 섰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집 현관 앞에 섰지만, 도저히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어이가 없으니까. 도대체 뭐라고 진시우에게 말을 해야 할지…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나한테 물 옮겨 주느라고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미안해서 왔습니다. 라고?…하아…정말 화술하면 주지혁 하던 내 예전 실력 다 어디간건지 한탄스러울 정도로 지금은 꽤 난감하다.

    버튼과 손가락 사이는 약 1센티 정도, 몇 번이나 침을 삼키면서 대충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할지 정하고 눈을 질끈 감고 누르려고 하는 순간,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내 머리를 치면서 열렸다.

    “알았다니- 어머”

    아프다.

    문의 맨 가에에 부딪혀서 머리가 윙~하고 울릴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신음소리는 차마 내지 못하고, 앞에 문을 갑자기 열고 나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주 귀여운 소녀였다.

    소녀…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잘못…찾아 왔나…

    진시우의 집이라면, 소녀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니라, 소년(?)이나 청년(?)이나 아저씨(?)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괜찮으세요?”

    키는 아담하고, 긴 생머리에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아담한 소녀가 큰 눈을 굴리며 괜찮으냐고 차마 아프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말했다.

    “여기, 진시우씨 집 아닙니까?”

    “아~ 오빠요~? 오빠! 손님 오셨어!”

    …오빠…

    집안 유전이구나.…좋겠다. 부럽다.

    정말 아가씨의 부모가 궁금합니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침만 꿀꺽, 그 사이에 러닝 차림의 한 남자가 정말 멀쩡한 얼굴로 걸어 나온다

    “뭐야?….”

    짜증난다는 듯이, 방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는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여동생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나만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만히-

    “오빠 손님~ 이제 안심이다. 후우-”

    소녀가 정말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싱긋 웃는다.

    그 웃음에 나도 따라서 싱긋…웃지만, 왜 옆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더 날카로워 졌을까.

    “가족인 제가 보살펴 줘야 하는데, 저 바보 오빠가 필요 없다고 해서요, 저도 지금 시간이 사실 없지만, 오빠 좀 부탁드릴게요.”

    소녀가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을 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 내 대답이 흡족했는지, 아주 예쁘게 웃으면서 복도를 뛰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화사함도 함께 가지고 가는 바람에, 지금 뻘쭘하게 서 있는 나와, 분명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진시우와의 사이에 있는 공기는 정말 어색하다 못해 뻘쭘하다.

    그래도 안 된다.

    일단 내 책임…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두 주먹 불끈 쥐고 인사를 하자. 아까 준비한 인사! 그렇게 생각하고 그를 바라보려고 하는 순간에 그가 자신의 현관문을 잡고 닫으려고 하였다.

    “가”

    길지도 않고, 뜻도 없어 보이는 저 짧은 한 단어로 진시우의 모든 마음의 모든 것이 표현되어 나에게 와 닿았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줄까.

    정말 하나하나 열 받는 녀석이다.

    난 바닥에 죽을 내려놓고, 그가 닫으려는 현관문을 꽉 잡고 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보세요. 진시우씨. 사람이 여기까지 왔으면 예의상 들어오라는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 올 거야?”

    진시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현관문을 잡고 있던 손에서 서서히 힘을 뺐다.

    내 힘으로 다시 열려진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진시우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이상한 말을 한다. 들어 올 거냐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난 그게 허락의 의미로 알고 문을 열어서 그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여전히 썰렁한 집안이다.

    얼핏 부엌을 보니, 죽이고 뭐고 차려 먹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말라있는 것 같은 싱크대, 그리고 보지 않아도 뻔 할 냉장고…

    아마 진시우를 좋아하는 여직원들이나, 게이바의 남자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면 당장 찾아와서 가정부 해주겠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 왔는데요?”

    존댓말…

    다시 존댓말 타임인가…

    난 한숨을 내쉬고 진시우에게 죽 봉투를 건네주었다.

    “닭죽입니다.…어떤 죽을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닭죽을 가져왔습니다만…”

    “저, 닭 알레르기 있습니다.”

    진시우의 그 한 마디에, 정말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맥이 탁 빠졌다고 해야 하는지…

    “어쩔 수…없겠군요. 이건, 제가 가지고 갈 수도 없으니, 아까 본 숙녀 분에게 주세요.”

    난 그 죽이 들은 종이가방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시 흐르는 침묵, 진시우는 그냥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지 모르겠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아까 전화 통화 했을 때보다는, 목소리는 괜찮은 것 같지만…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까?”

    “당연하지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방으로 걸어 들어가 이불 속에 들어가 눕는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의미 없는 말들만 잔뜩 늘어놓는 건지…

    이미 침대 속에 자신의 몸을 파묻은 채 누워있는 진시우를 보니,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정말 후회가 된다.

    어쩌지…그냥 갈까…

    “진시우씨”

    “…가려면 가세요.”

    이불속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자신 없는 듯 들렸다.

    분명 가라고 한 말인데, 왜 나를 붙잡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몇 분을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서 본 것은 내가 사온 닭 죽…이제 저녁 시간인데, 부엌 상태를 보아하니 그는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고,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양복 재킷을 벗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집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싱크대와, 항아리를 샅샅이 뒤져, 벌레 먹기 일보직전인 쌀을 찾아냈고,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진-분명 누군가가 해 놓은-다진 야채들을 꺼내 손을 보았다.

    그리고 밥을 물에 넣고 불리고…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죽을 끓였다.

    혼자서 밥을 곧잘 잘 해 먹기 때문에, 요리는 자신 있지만, 솔직히 죽을 끓인 것은 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잘 할 자신은 없었고, 그리고 진시우의 집에 나온 재료들이 영 시원찮아서 이게 과연 괜찮을까? 생각도 했지만, 다행히 냄새는 그럴듯하게 나기 시작했다.

    불을 끄고 살짝 식힐 겸 그릇을 찾아서 준비하였다.

    그릇도 먼지가 뽀얀 개, 한번 씻어줘야 했고, 다행히 건조기 겸 향균 소독하는 것이 있어서 물기를 빨리 제거해서 죽을 담을 수 있었다.

    자, 일단은 준비 끝-

    그런데…이걸 어떻게 들고 가야 하나…

    그냥, 만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상 차려서 쪽지 하나 써놓고 갈까, 아니면 그냥 깨워서 먹일까? 등등의 고민을 했지만, 죽은 식으면 맛없다.

    그건 확실 한 것이니, 일단 깨우기만 하자. 라고 생각해서 앞치마를 벗고 누워있는 진시우에게 다가갔다.

    숨 쉬는 것에 따라 진시우가 덮고 있는 이불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움직이고, 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진시우를 불렀다.

    몇 번을 불렀지만, 그가 대답이 없어,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나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몸을 움직이면서 내 쪽으로 돌린 얼굴에는 엄청난 땀이 나고 있었다.

    놀라서 머리에 손을 짚어 보니,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죽을 이 머리에 데워도 될 만큼 말이다.

    아무래도 깨워서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 정도면 사람이 거의 인사불성이 될 정도니까 말이다. 병원에 데려갈까 고민도 했지만, 일단 상태를 더 지켜보기로 하고, 난 화장실에 들어가 수건에 찬물로 적셔서 가져와 진시우의 머리에 얹혀 주었다.

    열이라도 재고 싶은데, 이 썰렁한 집에 과연 체온계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남의 집을 뒤질 수는 없으니…

    난 내 손 맛(?)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10분에 한 번씩 열이 내려가는지 안 내려가는지 체크를 하였다.

    그러다가 그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재킷에 삐죽이 나와 있는 약 봉투를 보고, 그가 병원은 다녀왔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약을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빈속에 먹으면 오히려 속이 뒤집어 질 수도 있으니…

    난 다시 부엌으로 가서, 식어버린 죽을 다시 데우고, 그릇에 다시 담아서 진시우의 방에 가져와 침대 옆에 장식장 위에 내려놓고, 진시우를 깨웠다.

    “진시우씨- 진시우씨-”

    “으음…”

    그가 다행히 정신이 든 것 같았다.

    눈을 서서히 뜨면서, 몇 번이나 내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깜박 깜박-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질끔 감더니, 눈을 서서히 뜨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짓더니 단숨에 인상을 팍 쓰면서 ‘너 안 갔어?’ 오로라를 풍기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침대에 앉아서 그에게 죽 쟁반을 내 밀었다.

    “이거 드세요. 약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신경 쓰지 마시죠.”

    이놈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그럼 아프지를 말던 가요!”

    “내가 아프던지 말든지 지대리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거야 내 탓도 있으니까!!”

    “……내 탓?”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진시우

    시치미 떼지 마 이놈아, 라고 생각을 하지만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그…어제, 물 준 것 때문에 감기 옮은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단 말입니다.”

    “하아~?”

    “…그러니까 그냥 드세요.”

    “하…하하하…뭐야, 결국은 그런 거잖아. 하하하 큭큭큭-”

    진시우가 미쳤다.

    아니, 원래 미친 것 같았지만, 오늘은 아프더니 증상이 더 심각해 보인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침대를 뒹굴 거리면서 웃더니, 숨을 몰아쉬고는 자신의 이마에 있는 젖은 수건을 집어 던지더니 다시 이불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정말 어린아이 같다.

    무언가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죽 식는단 말입니다. 먹고, 약도 먹고 주무세요!!”

    “그냥 놔두고 가!!”

    말해 무엇 하리…

    죽을 내가 입으로 먹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피곤하다.

    항상 진시우와 대화를 하면 한 10분도 안 되서 이렇게 피곤해진다.

    난 옆에 조용히 죽을 담긴 쟁반을 놔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일어나려고 했는데, 내 팔목을 누가 잡아 당겼다.

    후…아니, 이 방에 지금 진시우와 나, 둘만 있으니, 나 말고 나를 붙잡은 사람은 딱 한 사람 있지,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남자.

    그래도 손만이 삐죽이 내밀어서 내 손목을 잡고,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손으로 내 손을 꼭 잡는다.

    가라더니…

    “당신에게 물 주다가 옮긴 게 아냐, 어제 술 마시고 새벽까지 돌아 다녀서 이래.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에, 해줄 답도 없지만…무언가 말은 하고 싶지만,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진시우의 손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다시 슬금슬금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몸이 나으면, 내일, 제대로 출근 할 겁니까?”

    “…그래”

    “…그렇군요. 그럼- 저 오늘 여기서 자고 가겠습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괜찮겠지요?”

    아직 밤 10시, 지금 나가면 막차가 있긴 하지만…

    내 말에 그가 꿈틀하더니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지만, 다시 쓰러진다. 아마 빈혈일 것이다. 어제 내가 저 기분을 몇 번 느꼈으니…

    거기다가 오늘 밥도 안 먹은 것 같으니, 더 할 것이다.

    “내일, 진시우씨가 출근하셔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사님께서 내일까지 넘겨 달라고 한 기획안 있지 않습니까?”

    “당신…”

    “진시우씨가 아무리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전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제가 책임지고 낮게 해드리죠. 단 어제 저를 도와 준 것만큼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난 다시 바닥에 내려져있는 죽을 보았다.

    하아, 도대체 오늘 몇 번이나 데워야 하는 건지, 투덜거리면서 그 쟁반을 주우려는 순간에, 진시우가 내 허리를 잡고 당겨서 침대에 눕혔다.

    그에게 잡혀서 올라가는 순간에도 내가 생각한 것은 죽 안 쏟았나!! 이었지만…

    곧 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진시우가 내 위에 올라타서 내 입술을 파고들었다.

    마주한 입술이 이렇게 뜨거운데, 진시우의 몸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건만, 그는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나에게 이렇게 밀어 붙이는 건지…

    또 차일 거 뻔히 알면서…

    농밀한 혀 놀림,

    한태성보다는 못하지만, 키스에 집중하게 만들 정도의 정열은 가지고 있는 뜨거운 키스였다.

    쪽쪽 거리는 소리와 혀가 서로 맞물려 빨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한다.

    얼마 후 그가 내 입에서 떨어지고, 그의 입과 내 입 사이에서의 실타래가 우리가 방금까지 얼마나 깊은 입맞춤을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안 찹니까?”

    “…아픈 사람 상대로 기술 쓰면, 진시우씨 죽습니다.”

    “…한 번 더해도 되겠습니까?”

    “죽 먹고, 약 먹고 하시면 착하다고 칭찬의 뽀뽀는 해드리겠습니다. 이마에”

    “이마라도 좋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해준다니. 하하- 이럴 기회 두 번 없겠지요. 먹겠습니다.”

    그가 순순히 내 위에서 내려오고, 난 입술을 닦으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죽을 가지고 부엌에 가서 데워서 왔다.

    그리고 그는 순순히 죽을 먹고, 약을 먹었지만, 나에게 뽀뽀를 받을 기회는 없었다.

    아까 나를 끌어당기면서 힘을 다 썼는지, 간신히 약까지 먹고 바로 뻗었기 때문이다.

    열은 다시 올라 땀 뻘뻘 흘리며, 그는 숨을 간신히 뱉어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역시…아프면 장사도, 없다더니…

    “저기…지…주혁…”

    “??”

    “…하아…미안…당신…에 대한 거…함 부러…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그렇게 하지 않으면…나도…당신도…안 될 것 같았…는데…콜록 콜록”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을-”

    “아니, 괜찮…아, 당신…에게라면…나 다리 벌리고…당신을 받아…들이고…그래도 좋다고…진심으로…생각…했어…하지만, 나도…남자기에,…사랑하는 사람을…안고 싶어…안고 싶다. 지주혁…”

    “도대체…앞 뒤 주어 하나도 안 맞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무언가 토해내듯, 절실하게 말하고는 정신을 잃듯이 잠이 들어버린 진시우를 바라보며, 나는 그때, 진시우가 나에게 한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다른 사내에게 눈 주지 마.』

    『처음부터, 당신보고 욕정 했어. 발정 났었단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탑이라니, 기가 막히지, 솔직히 말할까? 당신이라면 안겨도 좋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첫 눈에 보고 반했어. 하지만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 인기 많은 인간 손에 넣으려면 그 만큼 싫어하는 짓 하며 눈에 들어야지 어떻게 해? 간신히 모든 놈들 다 떨쳐 버리는 짓 했더니, 오히려 더 상황이 심각해져서 타는 내 심정 당신 알아?!』

    『지주혁, 더 이상은 못 기다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안기던지, 아니면, 날 좋아해, 날 좋아해라.』

    날 좋아해라.…

    “뭐야…설마, 그 때 그 말들이…다 진심이란 말이야…?”

    정말로 나 같은 놈이 안고 싶은 거냐? 진시우?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좀처럼 현실로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곤히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우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본다고 한다손 쳐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난감하고 말이다.

    죽 그릇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테이블 위에 있는 물을 마시고, 의자에 앉아서 생각했다.

    한태성도, 진시우도, 태산이도…그리고 이승진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을 한 둘 생각하고 나니, 갑작스럽게 내 주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바텀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내 주위는 변하고 있었는데, 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내 주위에 있는 몇 몇 사람들은 변하고 있었다.

    나를 향해서-

    예전 같으면, 장난이나 농담이라고 웃어 넘겼겠지만, 나에게 고백하는 두 사람의 그 눈을 생각하자면, 절대로 농담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아…”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해야 할지…정말 모르겠다.

    이승진이나, 진시우가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자신들을 좋아하라고 말을 해도, 그게 말 한마디, 결심 한번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문제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고,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장이 뛰고 숨이 못 쉴 만큼 가슴이 아프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인데…지금 내 상태는 심장이 뛰기는커녕 싸늘하게 식었고, 가슴이 아프기는커녕 머리가 아프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는커녕 앞이 컴컴하다.

    한태성은 기다린다고 했다.

    그럼 진시우도 기다리는 걸까?

    내 답을? 내 마음을?

    하아…도대체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래도 진시우의 집에 있기에는 마음이 무겁고, 내일 아침 얼굴 보는 것도 조금 그래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내일 회사에서 마주치겠지만…그래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집을 나섰고, 내일 회사에서 어떻게 인사를 한담, 하고 고민을 했지만, 다행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날부터 진시우를 볼 수가 없었다.

    진시우는 그 날 밤 이후로 이사님과 해외출장이 잡혀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그 다음날 점심시간 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나에게 복잡한 생각만 안겨준 장본인은 아직 미국 LA에서 돌아오지를 않고 있다.

    “지대리님~ 점심 드시러 안가십니까?”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마우스로 열심히 클릭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점심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고, 사무실은 이미 다 점심을 먹으러 간 건지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사원들에게 알았다고 말을 하고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이 큰 회사가 한산 할 때는 점심시간 때이다.

    전부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던가, 아니면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던가, 지하 식당에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도 한산하여 남자 셋이 여유롭게 섰다.

    “그러고 보니, 시우씨랑 이사님 아직 안 오셨다며?”

    “그럼 그 말이 사실인가…? 지대리님 아세요?”

    “음? 뭘?”

    “해외에 지사 생기는 거 말입니다. 이사님이 그것 때문에 진시우씨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해외 지사…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부장님께서 슬쩍 그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긴 하지만…

    “결정되면 회사에서 공문 돌리던지 하겠지.”

    “그렇겠죠? 해외로 발령 안 났으면 좋겠다!”

    “난 제발 발령 나기를- 마누라 등쌀에 못 살겠다. 해방 되고파!”

    해외라…

    밖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라 엘리베이터의 가 쪽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벌써 해가 바뀐 지도 한 달이 휙 지나고,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이 지나면 곧 밖에 보이는 저 앙상한 나뭇가지들에게도 입이 나고, 다시 푸르러 지겠지. 그때가 되면 조금 따뜻해 질 거고-그 안에는 돌아오려나.…

    …음?

    “참, 지대리님, 뭐 사실 거 있으세요?”

    “……”

    나 방금 무슨 생각했지?

    “지대리님?”

    “아, 아- 음…왜 그러지?”

    대답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에서 ‘지하1층입니다.’라는 로봇음이 나오고 땡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식당이 눈앞에 들어오니, 제일 먼저 자극당한 것은 코였다. 그 맛있는 냄새에 두 사람은 배고프다고 난리였고, 그에 반해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꼼작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하지만 생각을 했다가는 무언가를 알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대리님-! 오늘은 돈가스랍니다~!”

    두 사람이 손을 흔드는 곳으로 다가가 식판을 받고, 음식을 받아서 자리에 앉아도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그 찝찝한 기분의 원인은 알 수 없으니…애써 무시하며, 두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나저나, 아까 대리님 뭐 사시려고 하신거에요? 옥션 보고 계셨잖습니까?”

    “아, 대학교 입학한 동생에게 선물 할 것을 찾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동훈씨와 상우씨는 대학 입학 때 뭘 선물 받았어?”

    “저는…돈”

    “돈 좋다! 돈만 한 건 없지, 그러고 보니 나는…아무것도 안 받은 것 같은데…”

    “지대리님은요?”

    “음…고모에게서 만년필은 받았거든”

    “만년필이라, 분위기 있는 선물이죠.”

    “특히 좋은 건요. 뜻도 성공이라는 뜻이고…”

    “흠…”

    역시 만년필로 할까…

    조금 있으면, 태산이가 드디어 대학 입학을 하게 된다.

    대학합격 선물(?)과 약속(?)은 지켰지만, 입학 선물로 하루 데이트 하자고 조르는 태산이를 보고 태성이는 버럭 화를 했지만, 나는 그러겠다고 승낙했다.

    태성이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그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나 때문이야? 아니면 주혁이 형 때문이야?’ 라는 태산이의 완벽하게 가시 돋친 말에 태성이는 완전히 무너졌다.

    동생을 잘못 키운 것 같다고 요즘 계속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내심 태산이가 대학에 들어 간 것을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는 않는다.

    그 예로 데이트 하는 날 레스토랑 티켓도 쥐어줬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티켓은 태산이가 거절했다.

    퇴근하는 길에 백화점에 가서 아까 인터넷에서 보았던, 만년필을 골라서 구입을 하고, 포장을 부탁하였다.

    포장을 기다리는 사이에, 태산이에게 전화가 와서, 내일 만나면 어디를 가고 어디를 가고 이야기를 하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약속을 했을 때는 내가 맛있는 집을 아니 데려간다고 하고, 어딜 갈 건지 정하겠다고 했지만, 태산이가 극구 거부하며, 자신이 하겠다고 하였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라며 나보고 회사에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태산이가 기특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 슬쩍 떠보니, 얼굴이 한껏 붉어져서는 하는 말이.

    [이제부터 내가 형을 리드 할 거야!]

    이었다.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잡으며 [이제 형은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라고 말을 해서 놀랐다기보다는…차마 태산이 앞에서 말은 할 수가 없었지만,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자신 있게 전화로 내일 무엇을 할 건지, 스케줄과 시간을 다 정해서 말하는 태산이를 생각하니 너무나 귀여워서 계속 입가에 웃음이 세어 나왔다.

    다행히 내 웃음기 있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내일 일정을 다 이야기하고 뿌듯해 하고 있는 녀석을 칭찬해주고,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직원이 다가와 예쁘게 포장한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포장이 구겨지지 않게, 종이가방에 담아서 운전석 옆 좌석에 놔두고 운전대를 잡았다.

    백화점에서 나오니 세상에는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으로 아침에 세상은 정말 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눈싸움하고, 눈을 굴리지만 어른들은 짜증내면서 도로를 살피고, 차를 살피고 있었다.

    평일 같으면 나 역시 짜증내고 있었겠지만, 다행히 오늘은 주말이라. 인상을 찌푸리기 보다는 새하얀 세상이 예쁘구나. 라는 제법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와 반대로, 태산이는 망연자실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만났을 때, 분위기가 안 좋더니, 결국은 날 보자마자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짠 계획표가 죄다. 밖에서 즐기는 것이라. 밤새 내린 눈에 쌓인 곳들이 모두 오늘 예약취소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데이트를 1주일 뒤로 미루자는 태산이를 진정시키고, 한 시간 동안 달래고 달래서, 점심을 먹으러 올 수가 있었다.

    원래는 근사한 스테이크를 자를 예정이었다는데, 결국 점심은 설렁탕이 되었다.

    “이게 뭐야-”

    설렁탕 안에 들어있는 면을 휘저으면서 계속 태산이는 투덜거렸다.

    “음식가지고 그러지마.”

    “맛있어?”

    “응, 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중 하나가 설렁탕이야, 돼지국밥이랑.”

    “…후우…형이 맛있다고 말하면 됐어.”

    그제야 밥그릇에 들은 밥을 떠서 설렁탕 그릇에 넣고 밥을 말아먹는 태산이를 바라보니, 그나마 마음 풀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나저나, 태산아”

    “?”

    “대학 어디로 간 거야? 전에 물어봐도 그냥 얼버무리더니”

    내 말에 한 입 가득히 설렁탕을 넣던 녀석이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더니 숟가락을 탁자에 내려놓고 몇 번 헛기침을 한다.

    “음음, 형이 나온 대학이 G대학 경영학부 맞지?”

    “그렇지.”

    “나 거기야”

    “뭐?!”

    “정말 죽도록 노력했어. 어찌나 경쟁이 심하던지. 후우…그때 생각하면 아찔”

    태산이의 말을 제대로 접수하지 못해서 어안이 벙벙한 나와 달리, 여유롭게 웃으면서 머리아팟다고 오버 제스처를 하면서 싱긋이 웃는 녀석을 보고서야 나는 현실을 접수했다.

    그때, 태성이 말을 빌어서 말하자면 2년제도 들어가기 힘든 성적- 이라고 말했는데(물론 하면 공부 엄청 잘할 거라는 말까지 하긴 했지만.)

    “한 마디 해줘. 후배를 위해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정말 멋지구나!”

    내 말에 녀석이 헤헤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콧등을 긁적이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고 다시 고개 숙이면서 헤헤 웃는 게 느껴졌다.

    “정말, 형에게 얼마나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몰라. 형에게 정말 고마워. 덕분에 대학도 가고”

    “무슨 소리야…그건 네 노력이지.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냥 거기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태산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찡해졌다.

    저런 말을 일생에 몇 번을 들을 수 있을까…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정말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한다.

    태산이의 기특한 말에 나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설렁탕을 마저 먹었다.

    설렁탕을 다 먹고 나와도 역시나 나에게 맛있는 것을 못 사준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태산이에게 내가 잘 가는 커피숍이 있다며 태산이의 팔을 잡아서 끌었다.

    아주 조용한, 평범한 커피숍이지만, 앤틱 분위기와 나무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과, 그리고 백발의 머리를 올백으로 잘 정돈한 사장님이 직접 주문을 받고, 손님들과 가끔 이야기도 하는, 그런 편안한 곳이었다.

    “굉장히 조용한 곳이네.”

    “그래- 가끔 마음 복잡할 때 오면 좋아.”

    “주혁형은, 여행이나, 이런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내 머리의 한계용량이 작아서, 가끔 비워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하하-”

    우리가 자리에 앉자 곧 점원과 사장이 와서 점원은 물을 주고 사장은 주문을 받았다.

    나는 원두커피를 태산이는 얼 그레이를 시켰고, 앉아서 우리는 대학생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가 나오고 마시면서 여자들 못지않은 끊임없는 수다를 떨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서 작은 종이가방을 꺼내서 태산이에게 주었다.

    “에? 뭐에요? 이거?”

    “선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가방을 낚아채선 종이 가방 안에 네모로 포장되어있는 것을 꺼내었다.

    미세하게 태산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태산이는 정말 조심스럽게 그 상자를 들었다.

    “뜯…뜯어봐도 되?”

    “그럼”

    조심스럽게 테이프 하나하나 손상가지 않도록 뜯던 손이 잠시 멈칫하면서 태산이는 긴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벗겨진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태산이는 정말 활짝 웃었다. 그리고 곧 다시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만년필을 꺼내 보았다.

    “비싼 거네.…브랜드가 있는 거야…”

    “그렇게 비싸진 않았어. 마침 간 날이 세일기간이라…”

    태산이가 이것저것 만년필을 돌려 보면서. 다시 조심스럽게 케이스 안에 넣는다.

    “내가 왜…브랜드고, 비싼 걸 아는지 형…알아?”

    “?”

    “형에게…만년필 받았으면 좋겠다.…그렇게 속으로 빌었거든. 그래서 괜한 희망 품고 인터넷으로 만년필 사이트 다 돌아 다녔어. 비싼 거 아니라도 좋으니까. 형이 직접 선물해주는 만년필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국은 받았네.”

    “…왜 만년필을…?”

    그냥…평범한 것일 뿐인데,

    그 의미 때문인가…?

    “나- 어려서부터, 영화나 드라마 너무 본 것 같아.”

    “…?”

    “왜 있잖아. 책에서도 그렇고, 첫사랑이 준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가, 늙어서 꺼내보면서 그때 일을 회상하는 거…난 그게 만년필이었으면 했는데…”

    “…아…”

    “형은 내 첫사랑이고, 나 대학가게 만들어준 사람이고, 내 첫 섹스의 상대자고…딱 만년필이 딱인데, 이러고 있었는데…헤헤…기쁘다.”

    “네가 기뻐해주면, 나도 기쁘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숍을 나와,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팝콘을 먹고, 나오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영화관 옆에 있는 실내 오락실에서 오랜만에 좀비들 잡아주고, 태산이가 멋지게 펌프 하는 것도 보고, 나는 고양이 인형을 뽑아서 태산이에게 안겨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라 어두워져서 피자 한판 먹으면서 우리는 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중에 태산이가 한 말…

    비록 자신이 1주일 전부터 계획했던, 멋지고, 돈 들어간 화려한 데이트가 아니지만, 평범한 여인들이 하는 데이트 같아서 너무나 기쁘다고, 계속 이렇게 형과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말하는 태산이는 1년 전에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아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얼굴이 아닌 정말 자신의 형과 꼭 닮은 눈을 하고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밤이 깊으니, 술과 담배가 당긴다.~! 라는 내 말 한마디에 태산이가 어딘가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여느 바와 같이 조금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당당하게 간판에는 게이바라고 적혀 있는 곳이었다.

    처음 보는 바지만 태산이는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가 바텐더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않는다. 우리가 늘 가는 바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였고, 사람들도 모두 조용히 대화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다.

    내가 여긴 어떻게? 라는 표정으로 태산이를 바라보니, 태산이는 ‘쉿’하면서 입을 가리면서 귓속말로 

    예전에 자신이 많이 방황할 때, 자주 왔었던 곳이라고 했다. 더불어 태성이에게는 비밀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칵테일을 시키고,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좀처럼 돌아다닌 곳이 전부 금연인 곳들이라, 담배를 제대로 피울 수가 없어서 조금 목이 타는 기분이었는데, 한 모금 빨아들이니까 정말 살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누가 들으면 담배 중독말기라고 하겠지만-

    그 사이, 태산이가 전에 이곳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온 모양인지 뒤에서 태산이의 이름을 몇몇이 불렀고, 태산이는 잠시 인사 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담배를 피면서 칵테일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칵테일은 역시 우리 바의 사장이 제일 잘 만드는 것 같다.

    “저기…”

    바텐더가 내어 준, 재떨이에 담배를 털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옆에 섰다.

    “옆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않으시라는 말도 하기도 전에 내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니, 의자를 끌어 내 옆에 앉은 사내는, 정말 헉 소리 날 정도로 미인이었다. 아니, 미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엄청난 분위기였다. 도톰한 입술하며, 약간의 찢어진 눈 꼬리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어두운 조명아래서도 티 없는 새하얀(확실히는 모르지만)피부는 정말 여러 여자들이 이 피부를 보고 울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찰랑이고 쭉 늘어지는 귀걸이를, 그리고 한쪽 귀는 간단한 큐빅만 한 그의 귓불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우리 바에서도 없는 타입으로, 많은 탑들이 노리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바에 들어오셨을 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아…”

    “일행이신 듯. 한. 분과 맨 처음에는 연인 사이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분위기를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이렇게 슬쩍 끼어들었는데, 괜찮을까요?”

    정말-

    태산이가 빠진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정말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감찬인 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지주혁입니다.”

    “주혁씨…라고 불러도 되죠?”

    “편하신 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정말 얼굴도, 몸도,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대화해보니까. 목소리도 정말 좋으시네요. 모델 안하실래요? 저, 디자이너거든요.”

    그가 자신의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나에게 건넨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샐러리맨이라서, 그 쪽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이 바에 저보다 잘나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난 그가 내민 명함을 정중히 거절하며 그에게 다시 밀었다.

    내 거절에 그가 놀란 듯 눈이 커지더니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명함을 구겨서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졌다.

    “정말 마음에 드네요.”

    “……”

    난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럼- 저와 오늘 밤- 같이 지내지 않으실래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과 같습니다. 받는 쪽입니다. 받는 쪽!- 물론 외모를 보면,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만, 난 바텀이란 말입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괜히 조용한 게이바에 폭탄을 던지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오늘 하루만 올 곳이기 때문에, 깊은 인상은 심어주고 싶지 않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서 칵테일과 담배를 번갈아 가며 마셨다(?)

    그 사이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잡고, 내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게 만들었다.

    도톰한 입술, 어떤 남자라도- 아니 어떤 게이라도 탐이 날 만한 입술-

    저런 입술이 갖고 싶다.

    나는…

    저 입술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이다.

    성형이라도 해야 할까…

    “주혁형!!”

    아, 왔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뒤에서 날이 잔뜩 서있는 태산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디자이너도 화들짝 놀란 것 같다.

    태산이의 시선의 가시가 내 등도 찔러 온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태산이의 걸음걸이는 킹콩보다 더 무서운 무게로- 치타보다 더 빠르게 다가와서 내 손을 낚아채서 태산이는 일어나라며 말을 하고 나를 데리고 나갔다.

    뒤에서 아쉬운 듯, 디자이너가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냥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한참을 태산이에게 손목이 잡힌 채로 걷다보니, 이미 불이 다 꺼진 공원이었다.

    그래도 태산이는 성큼 성큼 걷고 있었지만, 내가 손목이 아프다. 라고 말을 하자마자 태산이는 우뚝 서서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풀었다.

    “미안.”

    “아니, 미안 할 필요 없어. 내가 미안하지. 태산이 널 이용했거든.”

    “에?”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녀석이 나를 와락 끌어 안아왔다.

    아직 나보다 작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그 힘에 밀려서 뒷걸음질 치다가 주저앉았다. 다행히 뒤에 벤치가 있어서 무사히 안착했지만.

    “아까, 그 남자 누구인줄 알아?”

    “몰라. 디자이너라고 하던데.”

    “그 바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야. 얼음 성이라고 성!! 어찌나 도도하고 성격도 나쁜지, 예쁜 얼굴로 남자들 홀리게 만들면서 자기 마음은 안주는 사람이라고! 바텀 순위 매기자면 TOP1은 될 거야!”

    음…왠지 그럴 것 같았어.

    “그런 사람을 홀리다니, 정말 주혁형답다고 해야 하는지…걱정돼 죽겠어 진짜.”

    “저기, 태산아…음, 이런 말하기 창피하지만 말이야. 난 사실 아까 그 남자를 질투해.”

    “…?”

    내 말에 나를 꼬옥 껴안고 있던 태산이가 손을 풀고 나를 바라본다.

    “예쁘니까. 사랑스러우니까. 키스하고 싶은 입술을 가졌으니까. 난…같은 바텀이니까. 그 남자가 부럽다. 난 그런 외모가 아니잖아? 그래서 사실은 계속 대화하면서 질투했다.”

    “……”

    “그래, 예뻐서 좋겠다. 흥!, 허리 얇아서 좋겠다. 흥! 디자이너면 다냐! 흥흥!! 이러면서…”

    나도 내 스스로가 한심해…

    “풋…푸하하하하하하”

    그래…웃어라. 웃어

    난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아…형 왜 이렇게 귀여워- 정말 미치겠네.”

    “귀엽기는 누가 귀엽-읍-”

    태산이의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그리고 태산이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에 와 닿았다.

    혀가 얽히는 키스가 아닌, 정말 베이비 키스로 태산이는 수십 번을 내 입술에 쪽쪽 거렸다.

    “형도 키스하고 싶은 입술이야. 걱정 마- 걱정 마-”

    “너…”

    “형, 나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데- 부탁 하나 들어줘”

    태산이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 거리니 태산이는 내 품에서 일어나 의자에 똑바로 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을 툭툭 친다.

    설마…

    “앉으라고?”

    “응”

    “…에…”

    다리 부러질 텐데…

    “어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두 다리를 벌리고 태산이의 무릎위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세는…늘…태산이가 나에게 안길 때의 자세였다.

    “좋다.”

    “안 무거워?”

    “나, 요즘 운동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형의 몸무게는 거뜬히 들어. 봐- 여기 근육도 잡혔다.?”

    태산이가 짚어준 곳을 만져보니, 정말 겉으로는 안 보이는 근육이 딱 손에 잡혔다.

    난 요즘 운동을 조금 게을리 했더니, 살만 쪘는데-

    “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늘 내가 이 자세로 형을 내려다 봐야 했는데- 그때의 기분, 알 것 같아?”

    “…음…잘 모르겠는데.”

    내 말에 태산이는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럼 정말 행복하겠다.”

    “태산…”

    빨리 알아채야해? 라고 말하며 내 입술에 쪽- 소리 나게 다시 한 번 키스한 태산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태산이 무릎에서 일어나자마자, 재킷 안에 들은 폰에서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전화를 보니 발신자는 한태성이었다.

    “응-”

    [어디야?]

    “아, 술 한 잔하고 이제 집에 가려고, 넌 어딘데?”

    [바야, 와라.]

    “응- 알았…태산아?”

    [음? 태산이가 왜?]

    “잠시만, 태산아?”

    태산이가 아픈 듯 고개를 잔뜩 찡그리고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거야? 라고 물으니 연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태산아? 왜 그래?”

    [지주혁! 태산이가 왜?! 어딘데?]

    “한태성, 여기 빨리 와, 그러니까 여기가-”

    “잠시만-! 형, 태성이형 부르지마-”

    “태산아, 괜찮아?”

    “그냥…”

    “어?”

    “그냥…쥐가 난 것뿐이야.”

    “……”

    [………뭐야? 내가 지금 잘못 들었어? 쥐? 쥐났어?]

    “큭- 큭큭큭-”

    [뭐야? 뭔데? 무슨 일이야?]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 웃을 수가 없어서, 입을 막고 웃었다.

    내 웃음에 얼굴이 발개진 태산이와, 도대체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한태성은 계속 왜 그러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잠시만- 조금만 더 웃고, 태산이 쥐 풀어주고 바에 갈게,’ 라는 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나는 지금 웃고 있다.

    절룩거리는 태산이를 부축하여, 바에서 태성이를 만났다. 태성이는 ‘한심 한 놈’이라고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는데, 그 모습이 참…생소하다고 해야 할지. 예전 같았으면, ‘태산아-!!!!’하고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피식 웃자. 자신 때문에 웃는다는 것을 안건지 태성이가 술을 마시다가 나를 보며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녀석을 보고 태산이는 왜 주혁형에게 화를 내냐고 바락 바락 대들고, 그러다가 형제들의 말다툼 현장으로 번졌는데, 그 둘의 행각을 보고 바에 있던 사람들- 사장까지도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꼭 ‘저 둘 죽고 못 사는 형제사이 아니었어?’ 나는 그 질문에 답은 하지 못하고 어깨를 으쓱 거릴 뿐이었다.

    두 사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사장에게 가서 술과 안주를 받아서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혔다.

    아직까지 투덜거리고 있지만, 내가 주는 술은 잘도 받아먹는다. 원래 술이 들어가 있던 지라 곧 잠잠해졌고, 우리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오늘 태산이와의 외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었다.

    집에 돌아 왔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꽤 취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비틀 거리는 몸을 이끌고 어떻게 집에 오긴 했지만, 침대에 눕자마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넥타이를 벗고 싶은 게 그것조차 까닥할 힘이 없었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계속 숨을 내 뱉었다.

    아무래도 술이 들어가니 몸이 뜨거워지고 숨이 거칠어진다.

    열을 식히려고 움직이는 것을 거부하는 몸을 돌리니,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서랍이 눈에 보였다.

    “그러고 보니…안한지 좀 되었나…”

    몸이 달아오르다 보니, 조금 성(性)적으로 흥분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 안에서 무언가의 자극을 원하고 있는 것을 느끼긴 했고, 몸에 지금 느끼는 울렁증이, 술을 너무 과음해서 느끼는 울렁증이 아닌 뜨거운 열기에 의한 흥분의 전초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거의 기다시피 그쪽으로 다가가 서랍의 문을 열었다.

    서랍을 열자마자, 곱게 각각 자신의 케이스 안에 잠들어있는 로터들이 보였다.

    손을 뻗어 손에 잡히는 것을 하나 잡고 서랍을 닫았고, 케이스에서 로터를 꺼내 입에 물고 두 손으로는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마음은 조금 천천히-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몸이 급했다.

    로터를 보자마자 로터가 주는 쾌감을 몸이 생각이라도 난 듯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래도 일단 풀어야…’

    아무리 작은 로터라도, 빡빡하고 메마른 곳에 잘못 넣었다가는 상처가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난 내 스스로 진정하라고 달래면서 손가락에 젤을 묻혀 하나 애널에 집어넣고 움직였다.

    조금 불편한 자세지만, 얼굴을 이마에 대고 엉덩이를 들어서 서서히 조금씩 움직였고, 손가락에 묻어 있던 젤로 조금은 질척하게, 입구가 열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터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하……”

    정말 쏙- 하고 들어가 버린 로터는 안에 들어가자마자, 자리라도 잡는 듯 내 몸이 흔들릴 정도로 진동을 하면서 자신이 있을 곳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내 몸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한동안 왜 안했는지 몰라- 라고 내 스스로 자책하면서 그 느낌을 만끽했다.

    “으응-하아…”

    점점 아랫도리도 커지기 시작하고, 이번에는 두 손을 나의 것에 대고 흔들기 시작해, 곧 얼마 안가 사정하고 기운이 빠진 나는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정말- 이럴 때는 혼자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 혹은 동거인이 있다면 이런 짓은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씻…어야 하는데…”

    손이 끈적끈적하고, 몸에는 정액이 튀어 얼룩을 남겼다. 찝찝하고 찝찝했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서, 분명 내일 아침에 씻는다고 고생할 것이 뻔 하지만, 눈을 감았다.

    일단은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니 세상이 암흑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왜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지? 왜 아무도 없는 거지? 했지만 난 곧 이것이 내 꿈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온통 암흑-

    처음에는 내 모습도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난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알몸이었다. 완전히 홀딱 벗고는 지금 이 검은 공간을 열심히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꿈속이었으니 다행이지, 현실이었으면 정말 망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 그 암흑 공간을 걸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 안에 공기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그렇게 혹시나 빛이 있을까- 내 꿈이지만 정말 희한한 꿈이야- 생각하면서 걷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 그 자리에 앉아서 쉬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의 손이 나를 끌어 당겨서 안았다.

    ‘누구?!’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암흑- 그러는 가운데 그 손은- 사람의 손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완전 검은색을 띄고 있는 그 손은 보통 사람의 체온보다 훨씬 높은 체온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놔-’

    그 손이 싫었다.

    아니, 그 손의 움직임이 싫었다. 그 손의 움직임은 명백하게 섹스를 원하고 있는 손놀림이었다.

    내 가슴과, 내 유두를 쓰다듬고, 그러다가 점점 내 배꼽, 허리선, 그리고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만지면서-

    꼭…암흑에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

    검은색에- 

    아니, 강간이라고 할 수 없나, 내 몸은 너무나 솔직하게 욕망에 반응하고 있으니까.- 보통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성인 남성쯤은 쓰러트릴 힘이 있는데, 나는 지금 그 어떤 방어자세도, 공격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점점 나의 것은 커져서 만져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런 내 상태를 눈치 챘는지 그 손 움직임은 멈칫하다가, 곧 내 중심을 집중적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아…하…’

    반항할 의사도 없이 그 검은손에 유린당하고, 그 느낌을 받아들이고 문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검은손의 손가락이 나의 중심부로 침입을 시도 하고 있었다.

    ‘안…돼…’

    나의 거부 의사도 듣지 않은 채 손가락은 개수를 늘려 서서히 나를 꿰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엉덩이 골 사이로 들어오는 손가락과 다른 뜨겁고 두꺼운 것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손만 있다고…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했는데, 달랐다. 손의 주인이 있었다. 그 주인이 나를 지금 이렇게 괴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조금씩이지만, 그것이 나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고통에- 손가락과, 로터로는 비교도 안 되는 그 고통에 ‘꺽’하는 볼썽사나운 소리만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꿈일지라도, 나의 그곳은 처녀지다. 비록 로터와 손가락으로 많이 두드리기는 했으나, 그곳은 꽉 닫혀있는 곳이다. 누군가가 뚫어 주기를 기다리는 곳-

    그곳이 정체불명의 사내-설사 꿈일지라도-에게 당하는 것은 싫어서 나는 힘을 다해 그를 밀어 내려고 했지만 그가 나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다리로 나의 다리를 감아 나를 품에 가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침입을 시도-

    ‘그만해!!’

    ‘-나를 받아 들여, 지주혁’

    중저음의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리는 순간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고통을 동반한 아픔이 느껴졌다.

    “허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을 떴는데도, 불빛을 보고 있는데도, 익숙한 방 풍경을 보고 있는데도,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내 손을 들어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하고 내 얼굴을 만지고 주륵-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그리고 내 볼을 꼬집어 본 결과, 나는 지금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악몽이었는지, 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무언가 모르게 내 그곳이 꿰뚫린 마냥 욱씬 아파온다.

    안에서 로터가 진동하고 있긴 하지만, 로터로 인한 욱씬거림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째서 그런 꿈을 꾼 걸까.

    누군가와 섹스를 하는 꿈은 자주 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벼운 터치나 펠라 정도였다. 이번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아니, 그렇게 바텀 취급을 당하면서 안길‘뻔’한 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욕구…불만…인가…”

    한숨…

    그리고 갑자기 느껴지는 그 검은 손의 손길과…목소리…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 안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있는 마냥 시선이 느껴져서 기분이 나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참을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꿈에서 벗어났다고,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가 땀에 젖은 몸을 씻어 내렸다.

    샤워를 하고 나와 다시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새벽4시 밖에 되지 않았다.

    더 자고 싶었지만 더 잔다면 다시 그 꿈을 꿀 것 같아서, 컴퓨터를 켜고 ‘플마’에 접속을 하였다.

    최근에 접속하지 못한 사이, 새로운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서 하나 하나 클릭하고 읽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 중 최근 글이 5시간 전으로, 채팅방을 열었다는 글이어서 설마 이 시간에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c채팅방을 클릭해보니, 익숙한 네 개의 닉네임이 보였다.

    ++++++ [로그]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

    사파리 : 안녕하십...

    사파리 : 어라? 로그님~!

    엔지 : 로그!!!

    탐은내꺼 : 로그형..;ㅁ;...보고 싶었어!!!(안긴다.)

    로그 : 안녕하세요^^

    바이브 : 안녕하세요 로그님^^ 오랜만입니다~!!

    로그 : 바이브님도 오랜만입니다^^

    로그 : 이 밤중에 모두 뭐하시는 겁니까? 채팅방에 세분이나 계셔서 놀랐습니다.

    엔지 : 난 오늘 한잔해서 들어온 지 얼마 안됐어.

    탐은내꺼 : 엔지형의 상대자는 저였습니다.

    사파리 : 그 장소 제공자는 나였고

    로그 : 하하;; 

    바이브 : 전 밤샘이 생활화 되어있는 올바른 사내지요.

    로그 : 올바른;;

    바이브 : 로그님은 이 시간에...?

    로그 : 아, 저도 술 마시고 들어와서 잠이...들었다가, 악몽을 꿔서 깼습니다.ㅠ.ㅠ

    엔지 : 가위 눌렀어?

    로그 : 그건 아니구요...뭐랄까...좀...

    탐은내꺼 : 좀...?

    로그 : 후우...꺼림칙한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서...

    사파리 : 요새 일 너무 무리 하는 거 아니야? 쫒기는 일이 있다던가.

    로그 : 쫒기는 꿈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엔지 : 어떤 꿈인데? 우리가 상담 해 줄 수도 있잖아.ㅇ_ㅇ

    바이브 : 말씀해 보세요.

    아무래도 말을 하기에는 조금…그런 꿈이라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마음에서는 말을 하고 꿈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해서 편해지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꿈에 대한 상황과 그 목소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타자로 쳐서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로그 : ...그래서 깼는데, 아직까지 찜찜해서...

    탐은내꺼 : 욕불 인거 아니야?

    로그 : 역시..^^:

    사파리 : 이제 로그님도 슬슬 로터에서 졸업할 때가 된 거야. 

    사파리 : 그걸 로는 더 이상 만족 할 수 없는 몸이 된 거지, 

    로그 : 하아;;;

    바이브 : 바이브 추천은 제가 해 드릴게요.

    탐은내꺼 :  그래, 형~ 더 이상 형은 혼자가 아니야. 수많은 바이브들이 함께 해줄 거라고.

    로그 : 어;;;

    ========== 로그님께 엔지님께서 1:1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 ========

    로그 : 아...저 잠시만 잠수할게요.

    엔지 : 나도 잠시 잠수

    사파리 : 빨리 돌아와용~

    탐은내꺼 : 아...배고프다.

    ========== 엔지님과의 1:1대화를 수락하셨습니다. =========

    ========== 로그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

    엔지 : 로그, 미안. 

    로그 : 아...괜찮아. 무슨 일이지?

    엔지 : 있지, 음...나 이런 말하기 좀...너에게 많이 미안한대...

    로그 : 응?

    엔지 : 너, 바에 바텀인거 알게 되었다고 한지...벌써 반년 가까이 되는데 말이야...

    로그 : 응

    엔지 : 맨 처음에는 차라리 들킨 거 잘 됬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야 네가 짝을 만나고 잘 될 것 같아서

    엔지 : 우린 사실 겁쟁이들이잖아? 이렇게 모여서 겁쟁이들끼리 이야기 하면서 위로 받고...

    엔지 : 그러기 보다는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내가 바텀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겁나서...

    엔지 : 사람들이 비웃는 게 겁나서 무서워서 말 못하고 있잖아.

    엔지 : 맨 처음에 네가 아웃팅 당했다고 했을 때, 그 아웃팅 한 사람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엔지 : 나중에 생각해보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이런 생각한건 미안하지만, 진심이야.

    로그 : ...사실 나도 아웃팅 당하지 않았으면...지금도...

    엔지 : 너는 탑 일거야. 아니, 탑 행세를 하고 있겠지. 그렇지?

    로그 : 그렇지...

    엔지 : 후우...그런데 말이야. 난 그래도 네가 빨리 사람 사귀고 사랑하고 그럴 줄 알았어.

    로그 : 나 같은 덩치 큰 바텀을 누가 좋아해. 하하 바에서 미움 받고 있어- 탑들에게~!

    엔지 : 응 알 것 같아. 알고 있는데...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로그 : 엔지?

    엔지 : 망설이고 있지? 

    로그 : ?

    엔지 :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거 말이야. 네 마음에, 네 몸에 받아들이는 거 망설이고 있지 않냐고

    로그 : ....글쎄...

    엔지 :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우물쭈물 거리는 느낌이 들어.

    로그 : 갑자기...탑에서 바텀이 되려니...내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있어.

    엔지 : 그거야 그렇겠지만...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 그리고 누군가가 로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만들고.

    로그 : 그게 쉽지 않으니까...

    엔지 : 나 로그 봤을 때, 정말 완벽한 미남이라서 놀랐어.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왜

           바텀일까하는...완전 내 이상형이더라고. 정말 한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니까.

    로그 : 엔지~~~

    엔지 : 멋진 사람이야. 정말 멋진 사람이야 로그는- 분명 로그를 받아들일 사람은 그런 로그보다 100

           배는 더 멋진 사람일거야. 장담한다.

    엔지 : (말해 놓고 왠지 열 받는다.)

    로그 : ^^:

    엔지 : 그러니까. 내 말의 결론은 오늘 꾼 꿈은! 내가 보기에는 욕불이 아니라!! 마음의 망설임의 증거

           야!

    로그 : 응, 고마워.

    엔지 : 그런데- 그 목소리는 모르겠다? 아는 사람 목소리 아니었어?

    로그 : 그건 잘..^^:;;;;;;;;;

    엔지 : 헉- 우리 둘 대화하는 거 사파리형이 알았다. 어떻게 안 거야 저 영감은! 나가자.

    로그 : 앗 응

    ========== 엔지님께서 나가셨습니다. =========

    ========== 엔지님과의 1:1 대화가 종료 되었습니다. ==========

    엔지와의 대화로 무언가 알게 된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조금은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는 것이 난다거나, 몸을 이제 받아들이는 쪽이 되어서 겁이 난다기 보다는…내 자신이 어떻게 변할까봐, 혹여나 돌연 임신해버리는 여자가 되버릴까봐 무섭기도 하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마 그건, 남자로서 내 안에 있는 다른 지주혁의 마음이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고나니 그래도 조금은 편안해 졌는지, 5시에 잠들었지만 2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도 꿈에 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 부분은 문뜩 문뜩 생각이 나서 묘하게 사람을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누구지?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지 대리님-! 퇴근 안하십니까?”

    “아, 먼저 하세요.”

    “그럼 저희들 먼저 가겠습니다.!!”

    사원들이 빠져나간 빈 사무실에 앉아서 의미없이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서 생각을 했지만, 좀체 그 목소리의 주인이 생각나지 않아 급기야는 내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 그때, 책상위에 놓여 있던 폰이 울리면서 문자메시지가 왔음을 알렸다.

    [지주혁! 오늘 마시자-!]

    한태성이었다.

    정말 술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이렇게 마시자고 하니-

    술이 늘기는커녕 위가 아파서 술이 줄어들 지경인데…

    나는 투덜거리면서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의 답은 [좋지~!] 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실은 오늘은 한 잔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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