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5)
  • ▶▶▶▶▶▶▶▶▶ ※

    “부장님…제 착각일까요? 오늘따라 회사가 어수선 하군요.”

    “음…”

    나의 한마디에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던 모든 남자들…부장님의 포함하여 신입사원까지 여러 연령층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남자들은 기운이 없어 보이지만, 밖에서의 여자들은 꺅꺅 거리면서 행복하고도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보니, 여사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기분을 몇 년 전에 맛보았네만…다시 겪으리라고는…”

    “무슨 말씀이신지…”

    내 말에 부장님은 담배를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내 가슴을 꾹꾹 눌렀다.

    “자네 말일세 자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앨리트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오만 상사들의 기대를 받고 있고, 인기는 인기대로 있고, 같은 남자로서 비참도가 10000%였단 말일세! 세상에 뭐 저런 잘난 놈이 다 있나!! 하고 얼마나 재수 없어 했던지…”

    절…그렇게 생각하셨단 말입니까?

    제 기억상으로는 부장님 첫 인사가 생긋 웃으면서 ‘난 자네를 환영하네.’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다행히 성격 좋고, 겸손도 있는 올바른 젊은이라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놈과 잘 해보자. 라고 결심한 게 엊그제 같은데…또 그런 놈이 들어오다니- 우리 부서는 왜 이런 거야 진짜!!”

    우시는‘척’을 하시는 부장님을 다른 남자 사원들도 동조하여 훌쩍이기 시작한다.

    정말 보기 추하다.

    “세상사…주혁씨 같이 완벽한 놈을 보는 것은 한 놈으로 족한 대. 무슨 두 놈씩이나…”

    “이제 우리 부서도 물론이요, 회사 전체의 모든 여사원들이 우리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 분명해-!”

    그러니까. 오늘따라 남자 직원들이 이렇게 울상인 것은, 여자직원들이 활기가 띄는 것은 한 남자가 우리 부서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아마 제법 잘난 사람으로 들어오는 모양…

    한참의 한탄 속에 이사님이 내려오셨다는 소리에 모두 담배를 얼른 끄고 옷차림을 살핀 뒤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부서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머리가 벗겨진 우리 회사 이사와, 그리고 그 옆에는 광채가 난다는 말이 딱 맞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를 보고 내가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회사의 모든 남자들이여, 여사원들이 당신들을 쳐다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저 남자는 게이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남자들의 머릿속에 텔레파시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들어가도 큰일이지만 말이다.

    “진시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의, 어느 대학을 나왔고, 미국의 유학을 어떻고, 최연소 어떻고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도 남자들은 소곤거리며 ‘재수 없는 놈’을 일제히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입을 떼고 말을 하는 순간, 모두 그 낮은 저음에 매료되고 말은 듯 했다.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심하게 과장하자면 귓가에 바로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여사원들도 물론, 남자들까지 얼굴이 벌게져서는 당황하는 듯 했다.

    나 역시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나는 얼굴에 티가 나는 쪽은 아니라서 무덤덤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이사 조카라던데?”

    그 잘난 남자가 인사를 하고 잠시 회사를 둘러보게 해주겠다며 이사가 끌고 나서는 한참을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고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듣는 입장이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어떤 여사원이 한 말…

    그리고 남자 사원들의 절규 “재력까지 있단 말이냐!!!”

    가끔 살다보면, 신이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 모를 때가 있다.

    때론 공평해 보이지만 때론 너무나 불공평해 보였다.

    분명 지금 다른 남 사원들은 저 남자를 보며 인생은 불공평해. 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나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게이니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일단 불평이었다. 모든 것이 말이다.

    하물며 오늘 사내 식당의 메뉴가 카레인것도 불만인 듯 투덜거리며 열심히 진시우라는 남자의 뒷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의 수다도 무섭다지만, 가끔 이럴때면 남자들의 수다나 원한도 정말 무섭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을 때, 주머니에 들어있던 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발신자를 보니 ‘진구’녀석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

    잠시 통화 하고 온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빠져 나왔다.

    [주혁! 좋은 아침!]

    “해가 중천인데 좋은 아침은…지금 점심시간이야.”

    [흐흐…내가 어젯밤에 무리를 좀 했거든]

    나 나가고 나서 남자 낚았나 보군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 아까 말굽이가 전화 왔는데…]

    말굽이…?

    아, 한태성인가…

    (bar에서 탑10중 저번 주까지 넘버2를 했고, 별명은 말굽이, 어릴 적에 말에게 차인 적이 있어 어깨에 말굽흉터가 있어서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이번 주 주말에 자기네 별장 가자던데? 몇 명 모여서 파티 할 예정인가 보던데]

    “그 놈 나 재수 없게 생각하는데, 나 까지 초대 했을 리가 없을 텐데…?”

    [응, 널 초대할 리가 없지, 그런데 그 녀석 남동생은 널 초대했지]

    “아…태산이 말하는 건가?”

    [뭐, 너랑 약속한 거 있다고 그러던데?]

    “아아…알았어. 간다고 전해줘. 장소랑 그런 건 내 메일로 보내놓던지, 주중에는 바에 못 갈 것 같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메일로 받기로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난 것은 오늘 우리 회사 신입으로 어제 네가 그렇게 광채가 난다고 하던 젊은 놈이 들어왔다. 라고 말을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지도 모르고,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 하면 될 테니,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 그 남자가 바에 가서 우리 회사 취직했다고 이야기를 한 건지, 혹은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는 몰라도, 진구 녀석이나 그동안 알고 지내던 바텀들이 전화가 와서 난리도 아니었다.

    어느 부서냐, 친해져서 자기 좀 소개시켜다오. 등등 제법 귀찮은 전화들이 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같이 자달라고 난리더니, 이제는 잘난 놈 소개 시켜 달라니, 그것도 같은 부서지만 대화한번 못해본 그 남자를…특히 진구 녀석은 우리 회사 취직할거라고 난리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라고 말하고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한동안의 문자 테러는 계속 되었다.

    그 테러는 다행히 3일이 지나지 않아 끝났다.

    회사의 생활에서도 그 잘난 남자와는 부딪힐 일이 극히 적었다.

    기껏해야 아침 회의시간에 서로 보고 인사나 까닥 할 정도였지, 서로 사담을 나누기는커녕 같이 밥 먹은 적도 없었다.

    물론 그의 환영회는 있었지만 마침 출장을 간 터라 나는 그 환영회에 참가를 못했다.

    덕분에 회사에서 그와 어색한 것은 나뿐이었지만(그 날 이후 남자 사원들과도 친해지고 부장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였다.), 확실한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줄을 긋고 있었기 때문에 별 불편함도 없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장 파티인가…의 날이 다가왔다.

    별장이 말 그대로 저 멀리 근사한 풍경이 있는 그런 곳은 아니다. 바다가 보이고 숲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다는 저~~멀리 바다다. 확인 할 정도로만 보이고, 숲은 인공 숲으로 꾸며진 서울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펜션이었다.

    토요일에 원래 일이 없었지만 과장님을 돕느라고 출근하는 바람에, 원래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늦어서 이미 파티는 시작하고 있었고, 정원에서 굽고 있는 바비큐 냄새가 고픈 배를 자극하고 있었다.

    다행히 진구 놈이 내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고 있어서-이럴 때는 예쁘다.-얼른 그 자리에 앉아 와인부터 한잔하였다.

    역시 한태성이 저지른(?) 파티답게, 살짝 쭉 둘러보아도, 참여한 20여명의 사람들의 수준이 꽤 높았다.

    바텀들도 예쁘고 유명하고 소문난 바텀들만 골라서 데려다 놓았고, 탑들도 한 인기 하는 녀석들만 데려다 놓았다.

    그러다 보니, 바텀쪽도, 탑 쪽도 눈이 즐겁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어디를 보면서 즐거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혁 형!”

    “!!!”

    바비큐 살점을 뜯어서 입에 물려고 하는 순간에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덮치는 바람에 그만 들고 있던 고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아까운 고기를 보면서 속으로 아깝다…라는 외치고 있었지만, 오랜 탑 생활로 인해서 얻어진 버릇중 하나는 이미 발동하고 난 후였다.

    고기가 나가떨어진 포크를 접시위에 올려다 두고 내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남자의 손등을 잡고 키스를 해주었다.

    “오랜만이네.”

    “그 동안 공부 한다고 형 얼굴도 못보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하하…그래도 결과가 좋으니까. 여기에 있는 거겠지?”

    내 말에 녀석은 활짝 웃으면서 내 입술에 쪽 하고 살짝 키스하면서 빙글 빙글 웃는다.

    그리고 내 허벅지에 앉으면서 살짝 유혹스럽게 입을 벌리고는 내 입술에 깊게 키스한다. 그 모습에 저 멀리서 한태성은 소리를 지르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휘파람도 불기 시작한다.

    혀와 혀가 엉켜서 서로의 숨쉬기가 어려워질 때까지 키스하고 몸을 더듬는다. 

    “헤헤…오늘이 그 밤이야. 약속 한 밤…”

    그리고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 녀석은 후다닥 펜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마 준비를 하러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태산이가 들어가자 한태성이 손에는 가위를 들고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사뭇 호러와 같아서,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두려워 졌다.

    그러나 녀석은 내 앞에 서서 가위질만 살벌하게 할 뿐 그 가위로 나를 내친다던가. 어딘가를(?) 자른다던 가는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 쉴 뿐이었다.

    “처음인 녀석이야! 살살해!!”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리 그냥 고개만 몇 번이고 끄덕여야만 했다.

    하긴, 한태성도 알고 있다. 내가 한 약속은 한태성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1년 전에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한태성이 술에 잔뜩 취해서 바에 걸어 들어와서는 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녀석인데, 그날따라 나를 찾으면서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니 사람들도 궁금해 했고, 나 역시도 궁금해 했다.

    그리고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내 마주 편에 앉아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에게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이름이 한태산, 한태산이야 한태산!! 그런데 그 새끼도 게이라네?! 안된다고 했는데도 게이라네?! 나는 게이인데 자기는 게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법이 있냐고 덤비잖아! 그 때 정말 심장이 타 들어가는데…빌어먹을 새끼, 대학도 안 들어가고 게이바에 취직 할 거라는 거 간신히 붙잡아 뒀는데 말이야. 너 소개 시켜 달래, 한태산이가, 지주혁을 보고 싶대! 만나줘, 만나 달라고! 그리고 설득 좀 시켜주라. 게이여도 좋으니까. 대학은 들어가라고-」

    처음 보는 한태성의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한태성의 집은 부자이나, 가정사가 워낙 복잡해서 그는 남동생 말고는 그 외의 가족은 가족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그러겠다고 말을 하고 한태산을 만났다.

    한태성은 정말 모델 같은 외모라고 하면 남동생은 아이돌 같은 외모였다.

    큰 눈에, 하얀 피부를 가진 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고 기뻐했다.

    앉아서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한태성은 옆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리고 태산은 나에게 사귀어 달라고 말을 했지만, 난 정중히 거절했다. 내 거절에 놀란 것은 한태성이었고 태성은 카페를 뒤집어 버릴 만큼 화를 냈지만 일단 진정은 태산이 시키고 형보다 어리지만 정말 어른스럽게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미안…」

    「저기…그럼, 저와 자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섹스…첫 경험은 정말 잘하는 사람하고 하고 싶거든요. 주혁형 정말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도대체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은 건가? 라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 머릿속으로 어떻게 거절하지 라고 생각할 때, 옆에서 째려보는 한태성의 시선을 받아서 거절은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그럼, 대학에 붙으면, 하자. 대학 입학 선물로…」

    내 스스로 말해 놓고도, 대학 선물로는 좀 그런가? 라며 자학하고 있을 때, 녀석이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신난다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정말 1년간 볼 수가 없었다.

    한태성에게 흘러가는 말로 듣기로는 열심히 공부중이라고 들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의 반응을 봐서는 대학 붙은 것 같네, 라고 결론 내고 웃었다.

    한태성이 씩씩 거리며 다시 바비큐를 구우러 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자리에 바로 앉으려고 할 때,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배가고파서 정신없어서 누가 왔는지 몰랐는데, 진시우도 와 있을 줄은 몰랐다.

    아…어쩐지, 그래서 내가 왔을 때, 덜 시끄러웠던 거로군.

    난 그와 눈이 마주친 채로 까닥 고갯짓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서 떨어진 고기 살점은 포기하고 새 살점을 포크에 꼽았다.

    우선은 너무 배가 고프니까. 일단 배 채우고…나중에 밤일을 생각하자…

    밥들을 먹고,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밤은 깊어만 가고, 사람들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져서 옷을 벗기도 하고, 그대로 잔디에 누워서 섹스를 할 기세인 커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제재하던 한태성도 지겨워 졌는지, 방 키를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나눠 주면서 얼른 들어가서 즐겨!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303호라고 적힌 방 키를 주고는 다시 한 번 잘 부탁한다. 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말에 정말 사랑을 느꼈다.

    끔찍하게도 자신의 남동생을 아끼는구나. 라고…조금은 한태산이 부러워졌다.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형이라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조금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303호에 가니, 녀석이 샤워를 끝냈는지 가운만 입고 정자세로 침대위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왜…왜 웃어요!”

    “하하…귀여워서…”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해주면서 녀석은 투덜 투덜거린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필시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인상…

    부러웠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녀석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그런 부러움을 잔뜩 안은 말투로…나는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 나로 괜찮겠냐고, 그런 나의 물음에 녀석은 침대에 나를 앉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앗…아파…아파…”

    역시 처음이라, 좀처럼 그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도 무리해서 열 생각도 없고, 그리고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아니라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풀어주고 있지만 많이 아픈지 이미 눈에는 눈물도 맺혀 있는 녀석이 안쓰러웠다.

    “많이 아프면…관두자.”

    “그건 싫어요―! 빨리…빨리 해주세요.…”

    몇 번이나 그만두자고 말하는 나를 녀석은 고개를 세게 저으면서 그것은 절대로 싫다면서 엉덩이를 나의 것에 부딪혀 온다.

    “피가나도 좋고, 상처가 나도 좋아요. 내가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러니까- 주혁형…”

    난 한숨을 쉬고 다시 젤을 손가락에 발라서 녀석의 안에 넣었다.

    애절함…나와 다른 애절함…

    하지만 같은 느낌의 애절함인 것 같아 그 바람을 이루어 주고 싶었다.

    내가 녀석의 안에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한 30분 뒤로, 몸 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고통일 정도로 녀석은 꽉 나를 조여서 놓지 않았고 비록 움직이거나 사정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녀석은 내가 자신의 몸 안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기쁜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면서 연신 헤헤 웃었다.

    그리고 무리하게 정상위로 체위를 바꾸어서 녀석은 내 볼을 쓰다듬는다.

    “정말 행복해, 정말 행복한 기분이야 이건…좋아하는 사람이 내 몸 안에 있는 기분은…”

    그렇게 말하며 태산이는 정신을 잃었다.

    너무 놀라 녀석의 몸 안에서 나를 빼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기절한 녀석의 몸을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빼서는 화장실에 가서 수건을 물에 적시고 녀석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지만 약간 부어 오른 것 같아서, 약을 발라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쩌면 이걸로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약속을 지켰고, 녀석은 완전히 남자를 모른다.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에게 안기고 사랑을 받으라고 난 그렇게 녀석의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1시로 이미 차는 다 끊겼고, 집에 돌아갈 방법은 없는 것 같아서 거실의 소파에서나 자자 라고 정하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나오자마자, 옆방들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교성들에 깜짝 놀랐지만, 나는 일찍 끝났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슬슬 시작이니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고 소파에 앉았다.

    『정말 행복해, 정말 행복한 기분이야 이건…좋아하는 사람이 내 몸 안에 있는 기분은…』

    태산이의 말이 문득 귓가에 울린다.

    어떤 기분일까. 그 기분은…

    내 몸 안에 사랑하는 사람이 꽉 차있는 기분은…

    태산이 말대로 아파도 좋고, 상처가 나도 좋고, 피가 나도 좋으니까. 누군가가 그런 기분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다가는 아무 남자나 덮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오늘까지 쓰게 될지는 몰랐지만…”

    난 코트를 뒤져서 로터를 꺼내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 바로 마주 편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까 어설프게 흥분한 것도 있어서 그것도 풀어 줄 겸 뒤도 만족 시켜 줄 겸…

    처음에는 비참했었고, 한심 했던 이 짓도, 점점 익숙해 가는 것을 느낀다.

    잠결에 문득 바람이 들어와 눈을 깜박이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열려 있지 않았지만, 문만큼 큰 테라스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난 문을 열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 테라스의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테라스에는 한 남자가 이 추운 날에 러닝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시우였다.

    단 뒷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근육질의 몸매도 처음 보았고, 그의 뒷모습도 처음 보았지만, 나보다 키가 큰 것을 느끼고(키에 민감하다보니 얼마 차이 나지 않는 2센티도 엄청나게 크게 차이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엄청나게 졸리지만 문을 닫으려니 이 남자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 좋은 것인가 하고…

    “추우면 문 닫지 그래?”

    “아…”

    내가 너무 대놓고 고민한 건지, 어떻게 이 남자가 뒤 돌아서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살짝 당황했다.(그러나 티 나진 않는다.)

    그는 서서히 뒤를 돌아 테라스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 마주친 것은 이번으로 세 번째…

    “담배…있으면 나도 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원래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담배가 피고 싶어서, 라는 핑계도 통하지 않을 만큼 난 그의 눈을 보고 이야기 하였다.

    그런 나의 말에 그는 난간에 놓인 담배를 나에게 던진다.

    난 그 담뱃갑을 받아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그의 옆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막 일어난 터라 으스스 추워서 옷을 입었는데도 몸을 떨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먼 허공을 바라보는 듯 했다.

    바람에 타고 흘러나오는 약간의 그의 땀 냄새와 정액냄새에 그가 여기 나오기 전까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반쯤 담배를 태우고, 비벼 끈 다음 정원으로 던졌다. 불은 나지 않겠지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오려고 할 때, 그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정말 지루한 섹스를 하더군.”

    “…?”

    “아까, 방을 잘못 찾아서 본의 아니게 목격하고 말았는데, 박아 넣고 흔들면 단가?”

    “……”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섹스를 하는데…그럼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실례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무언가 간파 당한 기분…

    “그게 나의 섹스 스타일입니다. 당신에게 지루해 보였을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아닙니다. 그럼…”

    “섹스 스타일이라…그럼 그것도 섹스 스타일인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그가 담배를 땅에 떨어트려 발로 비비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눈높이를 내가 올리면서 이야기 하던 상대가 있었던가?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그의 다음 행동에 긴장했다.

    “당신…날 보는 눈이 계집이 사내를 보는 눈이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남자에게 오늘 두 번이나 허점을 찔리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다.

    물론 난 그를 보면서 야한 생각을 했다던가, 이 남자에게 안기고 싶다던가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다.

    다만…만약 내가 안기게 된다면 저런 남자면 괜찮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것이 들킨 것일까?

    아니면…

    “아까 섹스 할 때의 눈빛도, 아래에 깔린 녀석을 보는 눈빛이 계집이었어.”

    그것도 당신의 섹스 스타일?

    이라고 말하는 그의 질문에 차마 답하지 못하고, 난 그에게 실례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뒤 돌아 나왔다.

    태연 한 척 걸어 나왔지만,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쿵쾅 거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