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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스트라이크 외전 Lucky apple (45/45)

                                                                                                                                         

                                                                                                                                       

                                                                                                                                       

                                                                                                                                          

럭키스트라이크 외전

Lucky apple

"들어와요."

집주인의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상원은 현관 앞에 서서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보다 못한 조석희가 현관으로 가서 상원의 손을 잡아 끌었다.

"뭐해요. 들어오라니까."

"……나, 진짜 들어가도 돼?"

"내 집인데 당연하죠."

우리집도 아니고 '내'집이었다. 상원은 주춤주춤 신발을 벗더니 현관 앞 대리석에 앉아,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놓았다. 하는 김에 후배의 신발도 정리해주었다.

"왜 또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 선배."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석희가 아예 상원을 일으켜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퇴원하고 처음으로 조석희와 만난, 아니 처음으로 조석희네 집에 오게 된 상원은 황송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집에 오면서도 몇 번이나 자기가 그 집에 들어가도 되는 것이냐고 묻는 상원을 보면서 조석희는 국어책에서 보았던 자신의 상식선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괴이쩍은 인물을 떠올렸다.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은전 한 닢을 들고 손을 떨면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물어보고 다니던 등장인물이 떠올라 조석희는 짜증이 치밀었다. 상원이 짝사랑을 이룬 이 시점에서 '이 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황망하게 집을 둘러보고 있는 상원에게 자신은 은전 한 닢이 아니라 금전 백 닢을 줘도 살 수 없는 놈이라는 것을 얘기해줘야겠군, 하고 마음을 먹으며 그가 몸을 돌렸다.

"우아. 이것 봐!"

장식장 앞에서 상원이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안에 들어있던 사진을 보며 소리쳤다.

"이거 너야? 진짜? 우아, 진짜 너네."

"어릴 때 사진이 뭐 그렇게 신기해요."

"신기해. 너무 신기하다."

상원이 손가락으로 사진 위에 덧그리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넌 쭉 그 모습일 거 같거든. 어릴 때도, 앞으로도."

"저도 나이 들어요. 선배."

"응, 그건 너희 아버지 뵈니까 알 것 같아."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닮은 조석희의 아버지를 처음 보았을 때 상원은 놀라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트려야 했다. 상원의 침대 앞으로 다가온 그가 조민혁입니다. 석희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하자 상원은 새빨개진 얼굴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장담하는데, 제가 나이 들면 아버지보다 나을 걸요."

"비슷할 거 같……. 헉, 아니야. 맞아. 네가 훨씬 멋질 거야. 맞아."

상원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후배의 시선을 피해 다시 진열장의 사진에 눈을 돌렸다.

"…어라, 이거."

뿔테 안경을 쓰고 활짝 웃고 있는 한 아이를 가리키며 상원이 묻자, 조석희의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이경이 맞지?"

"네."

"……얘도 어릴 때가 있긴 하구나."

오늘 신기한 구경 많이 한다고 생각하며 상원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조석희가 다짜고짜 진열장 안에 있던 김이경의 사진을 골라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헉, 사진을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

"사진이 왜요."

"사진은 그렇게 버리면 안 되는 거야."

"아."

조석희가 쓰레기통에서 액자를 꺼내 사진을 빼더니, 이버에는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쳐넣었다.

"이렇게 버리면 되나요?"

"……."

상원은 같이 찢겨진 어린 조석희의 조각을 안타깝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조석희가 한눈을 팔 때 주워 집에 가서 조각을 맞춰야겠다는 마음에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배. 김이경이 ……그렇게 좋아요?"

"뭐?"

상원이 자다가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조석희는 계속 사나운 어조로 몰아 붙였다.

"그날 대체 왜 김이경한테 연락을 했어요. 선배, 정말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에요?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요?"

"무슨 소리야. 김이경이 우리 부모님 카드 도난신고하고 내 전화목록의 사람들 전화 다 막아버려서 아무하고도 연락이 안 닿아서 어쩔 수 없이 전화한 건데."

"……."

조석희는 일부러 김이경의 전화를 차단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못한 것일 뿐.

"내가 걔를 왜 좋아해. 내가 미쳤어? 하는 짓도 무섭잖아. 무슨 생각으로 남의 카드를 도난 신고하고 전화까지 다 막은 건지 모르겠어. 그리고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해."

상원은 아직도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카드 도난신고야 그렇다 쳐도, 핸드폰 전화번호부 목록에 있는 상대의 전화를 모두 사용금지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게 좀, 어렵긴 하죠."

애를 먹긴 했다. 상원을 어떻게든 고립시켜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작업은.

그렇게 해두면 자신에게 연락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원이 떡하니 김이경한테 연락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조석희는 정말 분노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의사의 만류를 제치고 그 먼 길까지 헬기를 빌려 날아간 것인데. ……자신을 보자마자 달아나다니. 다시 떠올려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김이경 걔도 성격이 참 별나. 안 그렇게 생겨서."

상원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조석희는 그냥 당분간 저 오해를 지속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선배. 뭐 먹을래요?"

조석희가 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며 주제를 환기시켰다. 냉장고만을 들여다 본 상원의 입이 또 한 번 벌어졌다.

"무슨 음식이 이렇게 많아? 너 여기서 혼자 산다고 하지 않았어?"

"음식해주는 사람이 해놓고 가는 거예요."

"음식 냉장고에서 다 상하겠다."

"그것도 그 사람이 알아서 처리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거 데우기만 하면 되는데, 드실래요?"

조석희가 랩으로 싸여져 있는 그라탱과 파스타를 가리키며 묻는다.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냉장고에서 접시를 꺼내어 랩을 벗겨 오븐에 넣는 모습을 보며 상원은 신기해, 하고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조석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뭐가요 라고 물었다.

"너희 집 부엌에서, 네가 요리하는 모습 보는 거. ……그냥 정말 신기하다."

"앞으로 숱하게 볼 텐데요, 뭐."

"……."

그 대답에 상원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상원은 어제 있었던 일들이 자신의 망상이나 꿈은 아니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핸드폰 통화목록에 남겨져 있는 조석희라는 이름과 통화시간을 몇 번이나 들여다 본 후에야 상원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선배. 무슨 생각해요."

"아, 아니야. 그냥……."

이런 구질구질한 얘기를 했다가 상대방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면 어쩌나 하고 상원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 집, 혼자살기 너무 넓지 않아? 청소하기도 힘들고."

"청소를 왜 제가 해요."

"……."

"음료수는 뭐 드실래요. 아, 선배 Sprite 좋아하죠."

몇 번을 들어도 조석희의 영어발음은 섹시하고 멋졌다. 상원은 어느 먼 훗날 조석희가 자신을 위해 영어동화책을 읽어주면 참 좋겠다, 하고 달디 단 백일몽을 꾸었다.

"그런데 왜 혼자 살아? 가족들은?"

"다 미국에 있죠."

"외롭지 않아? 혼자 있으면 외롭고 무섭잖아."

"……."

오븐 앞에서 팔짱을 끼고서 조석희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원의 얼굴을 한참 뜯어보았다. 저게 그 동안 자신을 지켜봐왔다는 인간이 과연 할 수 있는 발언인가 싶어서였다.

"나는 외아들이라서 부모님 집에 안 계시면 너무 심심하고 외롭던데. 그래서 밤에 텔레비전 켜놓고 잠들고 그랬어."

정규방송이 끝나고 점들이 이어진 화면이 나와도 상원은 절대 텔레비전을 끄지 않고 그 앞에서 잠이 들었다. 지지직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래도 누군가 저 잡음을 송출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아들이에요?"

"응."

"맏아들일 줄 알았는데."

"그런 얘기 많이 들어."

보통 외아들이라면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사랑을 혼자 독식하고 자라,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게 대다수일 텐데. 이래저래 신기한 성격이라고 조석희는 생각했다.

"나쁘지 않군요. 형제랍시고 누가 선배한테 달라붙어 있는 꼴도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테니."

"뭐?"

"귀찮잖아요. 그런 거."

"뭐가 귀찮아. 나는 어릴 때 형이나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기도했는데. 너는 외아들이야?"

"아니요."

조석희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말했다.

"위로 형이 둘 있고, 누나가 하나 있어요. 제가 막내에요."

"하하하, 막내라니. 왠찌 잘 어울린다."

"그거 좋은 뜻은 아니죠?"

"……."

"음, 다 되었네요."

조석희가 오븐 안에서 알맞게 데워진 음식들을 꺼내 식탁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뜨거운 것을 그냥 올리면 혹시 상하지는 않을까 은회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식탁을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쓸어보며 상원은 조석희를 바라보았다.

"드세요."

그가 상원에게 포크를 내밀었다.

"그래. 고마워."

상원이 포크를 받아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입안에 음식을 넣고 정갈하게 씹어 삼키는 상원의 모습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조석희는 물을 마셔 입맛을 정리하며, 저걸 어떻게 삼켜버릴까 생각했다. 물론 그 대상이 음식은 아니었다.

"선배. 이 집 어때요?"

"응? 아주 좋은데."

입술에 뭐라도 묻혀가며 먹으면 닦아주기라도 할 텐데 상원은 그런 면에서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젓가락 사용법도 완벽하고 테이블 매너도 훌륭했다.

"그럼 같이 사실래요?"

"컥……. 쿨럭."

그런 상원이 식탁 위에서 사레가 들려 음식을 뱉어낼 만큼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 것인가 싶어 조석희는 심기가 불편했다.

"미안. 내가 치울게."

상원이 음식물 잔해를 치우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석희가 그런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선배 말대로 저 이 큰집에서 혼자 살아서 외로워요."

"……."

"정말이에요."

외로움이라고는 한 톨도 묻어나지 않는 얼굴로 잘도 말하는구나.

조석희는 거짓말을 할 때조차 오만했다.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남을 속일 노력은 보여주지도 않는 것이다. 저건 그때 애꿎은 바퀴벌레를 잡아와 뽀순 퀴를 잡았다고 상자를 내밀 때랑 똑같은 수준이었다.

상원은 작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싶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취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집에서 자취할 돈 없어."

"상부상조하고요, 선배."

"……석희야. 저번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상부상조의 뜻은 ……."

굳게 결심한 상원이 상부상조의 뜻을 설명해주려고 하는 찰나,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나야. 뭐하고 있어? 나 근처 들렀다가 자기 생각나서 왔는데……. 어머."

복도를 가로 질러 나타난 여자가 자신보다 먼저 와 있는 손님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인 양 자연스러운 태도로 물을 꺼내 마시며, 말을 이었다.

"나 근처에 촬영하러 왔다가 들른 건데. 손님이 와 있었네? 흠……. 그럼 언제 시간 좋아?"

마치 상원이 불청객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였다. 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둥지둥 옷을 챙겨들었다.

"아, 저 금방 갈 거였어요. 나중에……."

"왜 선배가 가."

"……석희야."

"앉아 있어. 성가시게 하지 말고."

억지로 상원을 자리에 앉혀놓고 조석희는 여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여자의 손에서 물컵을 빼앗아 개수대에 던져버렸다. 한 본에 수십만 원씩 하는 글라스가 처참하게 깨지는 모습에 여자는 화들짝 놀랐다.

"넌 뭐야. 뭔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나……. 전윤미야. 기억 안 나? 이전에……."

"미친 거 아니야? 한 번 잔 거 가지고 지금 어디서 유세야. 열쇠는 왜 가져갔어?"

"네, 네가 다음에 보자고 해서, ……나는 당연히."

"내놔."

"어?"

"열쇠 내놓으라고."

조석희가 손을 내밀며 재촉했다. 그녀가 핸드백 안에서 허둥지둥 열쇠를 꺼내어 건네주자, 조석희는 현관문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가."

"자기, 나……."

"당신 한국말 못 알아들어? Fuck off. 꺼지라고."

무안함에 얼굴이 벌게진 그녀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상원은 식탁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가만히 포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예전에 한 번……, ……어디 가요."

"화장실."

화장실 간다는 사람을 말릴 수도 없고, 조석희는 짜증이 치솟았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간 상원이 그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이 되어도 나오지 않자, 그는 문 앞에 서서 문을 드드려야만 했다.

"선배. 왜 안 나와요."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성가시네. 진짜."

조석희가 주먹으로 문을 다시 세차게 두드렸다.

"나와요, 선배. 당장 나와."

그래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별도 들려오지 않았다. 욕실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열쇠 없이 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집안 정리에 손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는 조석희가 어디에 열쇠 꾸러미가 있는지 알 리가 없는 것이었다.

"문 부수고 들어갈 거예요."

마지막 협상이었다. 역시나 안에서는 묵묵 부답으로 일관했다. 잠시 뒤로 물러선 조석희는 그대로 발로 욕실 문을 걷어차 버렸다. 뻑 하고 문에 달린 경첩이 나가떨어지고 욕실 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안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던 상원이 너무 놀라 우는 것도 멈추고 조석희를 쳐다본다.

"선배 때문에 문 부서졌잖아요."

"……."

자기가 자기 발로 부숴놓고 조석희는 상원을 거침없이 탓했다.

"일어나요. 거기서 왜 청승을 떨어."

"……나 집에 갈게."

"뭐?"

"다음에 다시……."

이런 기분으로는 조석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상원은 모욕을 당하며 쫓겨나는 여자를 보며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알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조석희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도 가슴 아팠다.

"지금 집에 가시겠다?"

조석희는 물어놓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원을 번쩍 올려 어깨에 들쳐 멨다. 침실까지 걸어가면서 그는 가긴 어딜 가. 하고 사납게 한 번 더 상원을 윽박질렀다.

침대 위에 내던져진 상원은 자신의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조석희 얼굴을 보고 몸을 흠칫 떨었다.

"선배, 아까 그 여자 정말, 이전에 한 번 봤어요."

"……응."

"다른 여자 안 만나."

"……."

불안하게 흔들린 상원의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석희는 읽어낼 수 있었다.

"안 만난다고. 안 만나니까, 선배가 다 보충해."

"……그래도 돼?"

상원이 조심스럽게 눈을 돌리며 묻는다.

선량하고 예쁜 눈에 아직도 흥건하게 남아 있는 눈물이 자신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것 같아 조석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네. 그러세요. 선배가 다 보충해요."

허리를 굽혀 상원에게 키스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상원은 입술을 벌려 열심히 응해준다. 쪽, 쪽하고 이어지는 키스가 몸에 열기를 더해주었다.

조석희는 상원의 티를 벗게 하고 자신도 옷을 벗어 그대로 침대에 같이 누웠다. 바지 위를 손으로 문지르자 상원이 얕은 숨소리를 내며 조석희의 어깨에 매달렸다.

"선배, 어깨……. 괜찮아요?"

"무리 안……하면."

"알았어요."

사실 무리를 시키고 싶었다.

저 몸 안에 자신을 쑤셔 넣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흔들어 박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성으로 스스로를 통제해야겠다고 조석희는 마음먹었다.

손으로 바지 위를 만져주자 상원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눈치가 귀여워 조석희는 일부러 손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 아,……."

"왜요? 선배."

"……."

"뭐 해 줘요?"

"……바지, 벗겨줘."

조석희가 상원의 바지를 끌어내려 주었다. 속옷이 이미 뿌옇게 젖어 있는 모습에 아래가 바싹 달아오른다.

"속옷은? 속옷도 벗겨줘요?"

속옷 위로 형체가 잡힌 살덩이 모양을 덧그리며 조석희가 물었다. 상원이 보일 듯 말듯,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옷을 아래로 끌어내리자 불거져 오른 상원의 욕망을 조석희는 손으로 쥐고 흔들었다.

"……하……, 으…읏. 응……."

손만 대어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제에 대체 가긴 어딜 간다는 건지.

조석희는 상원의 몸 위에 올라타 입술을 겹치며 자신의 바지도 끌어내렸다. 상원의 허벅지에 대고 성기를 문지르자 상원이 다리를 힘껏 오므렸다.

"선배, 그렇게 안 해요. 오늘은."

"……응?"

"뒤로 넣을래."

"그치만……."

무리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석희는 뻔뻔하게 안으로 들어가길 요구했다.

"넣고 싶어. ……선배한테 넣고 싶어서 그래."

그가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자, 상원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매달리면 그는 들어주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선배도 넣어주면 좋아하잖아, ……봐. 여기 벌써 움찔거리는데."

조석희가 상원으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을 대고, 말한다. 말로 당하는 전희에 상원은 혼백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선배. 넣기만 할게. 넣고 가만히 있을게요. 응?"

그가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상원을 어른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조석희가 상원의 다리를 들어 꽉 물려 있는 구멍에 자신의 성기를 대었다. 두꺼운 귀두 끝을 밀어 넣자, 상원은 고통을 참느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 들어갔어, ……조금만 참아요."

오랜만에 넣는 것이라 넣는 입장에서도 힘이 들 정도로 빽빽했다. 하지만 일단 넣기만 하면, 힘이 든 수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황홀경이 펼쳐질 것임을 조석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상원의 허리를 붙들고 남아 있는 살덩이를 벌어진 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

상원이 허리를 비틀었다. 어지간히 아픈 모양인지 식은땀까지 흘린다.

"……, ……선배. 괜찮아요?"

이게 바로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꼴이었다. 상원이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자, 조석희가 슬쩍 허리를 추어 올렸다.

"아, ……아파."

"미안해요, 자세가 불편해서."

조석희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앞으로 놀렸다. 상원이 핫, 하고 숨을 삼킨다. 워낙 자극에 대한 반응이 민감한 사람이라 어느 정도만 해주면 알아서 따라올 것이었다.

조석희는 다시 몸을 숙여 상원의 몸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상원의 입에서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선배, 왜요? 힘들어?"

"……아니."

"그럼 왜 그렇게 헐떡거려요."

모르는 척 그는 허리를 틀어, 내벽에 빳빳하게 달아오른 살덩이를 문질렀다.

"……아, ……."

"선배 아래가 너무 조이는데요, 뺄까요?"

"……아니!"

상원이 화들짝 자신의 팔을 붙들자, 조석희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움직이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움직여."

"이렇게요?"

그는 느슨하게 허리를 돌려 내부를 휘저으며 물었다. 간질간질하게 전해지는 느낌에 몸이 달아오른 상원은 울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막……, 세게……."

"알았어요."

경험의 유무는 이런 데서 차이를 드러냈다.

조석희 역시 상원의 안에 들어가자마자 아래가 터져버릴 정도로,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그걸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상원이 경험이 없어 다행이라고, 조석희는 생각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누구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파리라도 꼬이면, 정말 성가실 테니까.

조석희는 상원의 허리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밑에 누운 상원이 색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매달렸다.

"아……, 흐……응. 아! 아…, 앗!"

"……하, 선배. 이거 다른 사람하고 하지 마."

"……응? 아……, 앗."

"다른 사람한테 주지 말라고. 절대……, 안 돼."

대체 뭘 하지 말라는 것인지 상원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조석희가 침대 다리가 흔들릴 정도로 몸을 밀어붙여, 상원의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두꺼운 살덩이가 드나들면서 상원의 욕망을 부추켜 세웠다. 더, 더 갖고 싶었다. 어깨가 욱신거리고 아래는 이미 찢어져 피가 흘렀지만, 상원은 자신의 위에 있는 조석희의 목을 끌어안았다.

조석희는 상원의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 그간 맡고 싶었던 그 향취를 마음껏 들이켰다. 아래가 욱신, 하고 엄청난 기세로 조여들더니 상원이 먼저 사정했다. 입술을 벌리고 나른하게 늘어지는 그 모습에 조석희도 참지 못하고 절정에 이르렀다.

"하아……, ……."

"……하아."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침대 위에 쓰러졌다. 옆에서 가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원의 가슴을 보는 조석희의 눈가에 즐거움이 번졌다.

"……왜."

"그냥요. 그냥, 좋아서."

"……."

못들을 것 들었다는 듯이 상원의 눈이 한껏 벌어졌다.

"왜요?"

이번엔 조석희가 물을 차례였다.

"아니, ……나도 좋아……서."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울고불고 석희야, 좋아해, 너무너무 좋아해, 를 연창하는 주제에 이런 말 한마디 했다고 또 새빨갛게 달아오르니. 원, 무리를 안 시키려야 안 시킬 수가 없잖아.

조석희는 땀으로 젖어 들러붙은 상원의 머리카락을 올려주었다.

"선배, 정말 여기서 같이 안 지낼래요?"

"어?"

"혼자 지내기에 적적해서 그래."

"……."

또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조석희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런 이상한 여자가 또 찾아올 수도 있잖아. 선배, 걱정 안 돼?"

"……돼."

걱정만 되는 게 아니라, 질투도 나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심장도 아프고, 오만 장기가 아팠다.

"그럼 선배가 감시하든지."

"해도……돼?"

조석희가 유쾌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런 스토커가 또 어디 있을까.

"하세요. 마음껏."

"고마워."

조석희가 상원을 끌어안았다.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조그만 정수리를 보며, 그는 다시는 이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선배. 아까 기분 나빴죠?"

"……."

"솔직히 말하셔도 돼요."

"……응."

"그럼 제가 선배 기분 풀어드릴 테니, 소원 하나 말씀하셔도 돼요."

"소원?"

이미 기분도 다 풀어지고, 좋다는 얘기까지 들은 이 마당에 상원은 대체 뭐가 더 필요한가 싶어 눈만 깜빡거렸다.

"나……괜찮은데."

"사람이 욕심이 그렇게 없어서 어디에 써."

기분이 나빠 보이는 조석희의 눈치를 살피던 상원이 그럼, 하고 입을 연다.

"뭔데요. 다 들어드릴게요."

밤하늘의 별을 따달라는 소원을 빌면 외국에 연락해 운석이라도 사다 줄 생각으로 대답했다.

"……영어로, 말해주면 안 돼?"

"네?"

"나, 너 영어하는 거 듣기 좋아서. 욕하는 거 말고. 아, 물론 욕하는 것도 멋지지만."

"제 발음 좀 특이하잖아요."

영국 억양에 뉴욕 억양까지 섞여, 자신이 생각해도 정체성이 모호한 영어였다.

"아니야, 정말 멋있어. 내가 들었던 영어 중에서 제일 멋지다니까."

상원이 정색을 하며 손까지 내저어 보인다.

"성우해도 좋을 것 같아. 목소리가……, 너무 좋아."

"발음 때문에 성우는 무리죠."

"난 좋아. ……네가 영어하는 것도, 그냥 말할 때도."

온몸으로 너를 좋아해, 하고 상원이 고백한다. 놀랍도록 순수한 그 열정에 조석희는 가만히 시선을 둔다.

"I will live in thy heart, die in thy lap, and be bumed in thy eyes."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그대 마음속에 살면서, 무릎 사이에서 쾌락을 맛보며, 그대 눈동자 속에 묻히고 싶구나. 셰익스피어."

"……."

무릎 사이의 쾌락만 뺐다면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인 시구였다.

"다른 걸로 해드릴까요? 선배가 원하는 단어나 문구가 있으면 다 해드리죠."

사실 그간 조석희에게 침대 맡에서 영어로 얘기해달라는 청을 한 것은 상원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부탁을 받으면 그는 귀찮아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섹스를 해버렸다.

상원이 과연 어떤 단어나 대사를 요구할지 조석희는 은근히 기대되었다. 야하고 저질스러운 단어라도 얼마든지 귓가에 속삭여 줄 텐데.

"……사과라고."

"응?"

"네 나 부를 때. 가끔 하는 그거."

"아, Apple?"

그 단어를 듣자 상원의 얼굴에 홍조가 깃든다.

"고작 듣고 싶은 단어가 이거예요?"

"아, 하나 더 있어."

"뭔데요?"

"럭키(Lucky)라고 발음 해봐."

"Lucky?"

상원이 또 보이지 않는 환희의 몸부림을 친다.

"……또 없어요?"

"응."

"……."

뭐 이런 욕심 없는 인간을 다 보았나.

그 단어 두개 듣고 헤헤거리는 상원을 조석희는 무자비하게 끌어안았다. 땀에 젖은 머리에서 달콤한 체향이 묻어났다.

"으앗"

"선배, 그러면 선배는 Lucky apple이네? 그렇죠?"

일부러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누르고 그렇게 속삭이자 상원의 얼굴이 뜨끈해진다. 조석희는 몇 번이나 같은 단어를 반복해 말해주었다. 선배 정말, Lucky 해요. Apple 같아. 선배의 두 Apple 같은 엉덩이에 넣을 수 있다니, 난 정말 Lucky 하네.

결국 상원이 조석희의 등을 끌어안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석희야, 좋아해, 하고 매달린다.

유치원에서나 배울 법한 쉬운 단어로도 상대를 흥분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조석희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스쳤다.

그는 상원의 몸을 끌어안고 한참을, 한참을 그 즐거움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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