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43/45)

"......말도 안돼"

급작스럽게 추진된 수학여행에 상원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왜 말이 안돼 수학여행가다가 비행기에서 추방당해 제주도에는 발도 못 대어본 것은 그럼 말이 되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갈아입을 옷도 없고..... 돈도 없는데"

"체육복 가져가면 되지 뭘 2박 3일 이잖아 돈이야 밥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뭔 그리 큰 돈이 필요해. 모자라면 담탱이한테 사달라고 지랄하면 그만이고" 

긍정을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는 대진이 말했다.  6반 학생들 중 누구도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수학여행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꼼꼼한 상원은 이것저것 걱정이 되었다. 

"세면도구는?"

"치약만 사서 손가락으로 닦으면 돼 세수야 물로 하면 그만이고 "

"샤워는 안해?"

가까운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 땀이 나고 먼지가 묻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6반 아이들은 샤워 그게 멍미? 

개나 주삼 하는 표정으로 상원을 바라보았다. 

"넌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냐. 그냥 가서 재밌게 놀다오면 되지"

보다 못한 동석이 상원에게 한소리 했다 즐거운 여행길인데 자신이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상원은 바로 미안하다 사과를 건넸다.

"미안 나는 그냥.... 미안해"

"됐어 인마 아무튼 체육복이나 싸"

동석의 충고를 따라 상원은 사물함에 있는 체육복을 챙겨 들었다.

"야 부모님이 뭐래? 수학여행간다니까?"

대진이 없어진 자신의 체육복을 찾고 있는 승완에게 물었다. 

승완이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미친놈이 지랄 깝싼다고 하시지"

"야 우리 아버지도 니가 수학여행을 가면 불알을 잘라서 목에 걸어주신댄다. 염병 떨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난리야. 우리 아버지 불알 짱 큰데.

그걸 어떻게 목에 걸고 다니나 몰라"

대진이 자신의 불알을 주물럭 거리며 말했다. 

부모님으로 부터 신뢰를 1g도 얻어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결국 6반 담임이 한명씩 모두 대신 전화를 걸어주기로했다. 

상원 역시 자신이 먼저 설명을 했지만 부모님의 태도는 못미덥다는 투였다. 결국 담임선생님을 바꿔드려 승낙을 받아내긴 했지만 상원은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수학여행이 결정되어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떠나게 되다니.

자신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반 애들 진짜 대단한것 같아"

"이제 알았냐"

동석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대단한 반에 들어왔으니 넌 얼마나 행운아야"

평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상원은 슬며시 웃었다 어쩐지 지금 기분 같아선 그말에 동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빨리 나가서 줄서자!"

반장인 승완이 나름의 짐을 싸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모두들 신이 난 얼굴로 교실을 나섰다. 상원은 이 얘기를 조석희에게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 그냥 하지 말자고 결론지었다 

시시콜콜 모든 것을 얘기했다가 조석희가 귀찮아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따라간다는 오해를 받아 조석희가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두려웠다. 선배를 가방에 넣어가고 싶다는 그말을 상원은 어젯밤 침대에

누워 수백 수천번 머릿속으로 돌리며 행복해 했다 자신에겐 일생에 남을 한마디였지만 조석희에게는 수면제를 가지고 가고 싶다는 뜻이었을게 분명하다. 

자신이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때 짜증섞인 눈으로 흘깃 쳐다보고 휙 지나갈 그의 모습이 상상되어 상원은 가슴이 아팠다. 

선배를 가방에 넣어가고 싶다.  는 말은 상원에게만 주어진 달콤한 캔디였다  그 캔디맛을 망치는 일 없이 혼자 몇 번이나 꺼내어 먹고 싶은 소박한 소원을

간직하고 싶었다. 

....역시 말하지 말아야겠어.

거기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조용히 떠나야겠다고 상원은 다짐했다. 다행히 갑자기 합류하게 되어 준비가 늦어진 6반은 2학년의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운동장으로 나가자 웬일로 6반 아이들이 줄을 맞추고 버스앞에 서 있었다. 웬일로 승완이 인원수를 체크하며 한명씩 버스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때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 나오며 기다리라고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나도 데려가!"

6반의 애완동물 사육담당이었다.  그의 손에는 어항과 우유곽이 들려 있었다. 

"그게 뭐야 걔들을 왜 데려가?"

"이 잔악무도한 놈아 얘들은 우리반 아니냐? 얘들도 분명 여행을 가고 싶을 거라고"

그 말에 긍정이라도 하듯 뽀순뽀순잉이 어항에서 펄떡 뛰었고 뽀순뽀순 퀴는 우유곽안에서 파르르 날개를 떨었다. 

두 애완동물의 애교에 한승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은 될 수 있으면 사육 담당이 자신에게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주길 바라며 버스에 올랐다. 먼저 올라가 있던 동서이 상원에게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상원이 자리에 앉자 그는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나누어주었다.  상원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받았다. 

버스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맹새한 대진도 입이 심심하다며 과자를 집어 먹었다.  여기저기서 과자를 꺼내 부스럭 거리며 먹는 소리가 버스안에 

퍼졌다.  6반 담임이 버스에 올라타자 한승완이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기사아쩌시 오라이"

그의 우렁찬 한마디에 버스는 천천히 희재고 운동장을 떠나고 있었다. 

"하하하하"

버스안에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상원은 정말 요 근래 가장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닦으며 달리는 관광버스 통로에서 

열연중인 반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관람했다. 

동석이 그런 상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오길 잘했지? 하고 물었다. 

"응 고마워"

상원은 자신의 짝이 일부러 수학여행에 오자고 건의한 사실을 알기에 활짝 웃어보였다.  사건의 발단이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6반 아이들은 기왕 이렇게

된거 누구보다 즐겁게 놀아주마! 하는 기세로 수학여행 길에 올랐다. 

그런데 아까부터 대진이 이상하게 조용한 것 같아 상원이 고개를 돌려 그의 자리를 확인했다. 대진은 샛노랗게 질린 얼굴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왜그래? 어디아파? 토할 것 같아?"

"..... 구멍이"

"뭐?"

"내 똥구멍이 토할 것 같대.... 시발 휴게실 언제나와"

똥구멍이 토한다는 말이 대체 뭔가하고 생각하던 상원은 그 의미를 떠올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내가 기사님께 여쭤보고 올게"

상원이 일어서려고 하자 동석이 큰 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휴게실 언제 도착해요 이 새끼 폭풍설사할 것 같대요"

동석이 대진을 정확히 가리쳤다.  대진이 이 와중에도 동석에게 두고 보자고 이를 갈며서 노려보았다.

"학생 조금만 기다려 바로 나올거야"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대답할 여유도 없는 대진은 도착하면 뛰어나갈 생각으로 발을 버스 통로에 걸치고 손잡이를 힘껏 잡았다. 

정말 얼마 달리지 않아 버스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기사아저씨가 15분 뒤에 출발하니 시간 맞춰서 잘 오라는 말을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대진은 누구보다 빨리 버스에 뛰어나가 화장실을 향해 질주했다. 

"쯧쯧 저놈 저렇게 잘 달리면서 왜 육상부를 때려쳤는지 몰라"

한때 윤대진이 촉망받던 육상 선수였음을 떠올리고 승완이 혀를 찼다. 

"아 그거 단거리 선수는 정력이 감퇴된다는 말을 듣고 때려치운 거잖아 미친놈"

동석이 손가락으로 머리 옆에 휘휘 돌려 보였다.  상원은 처음 듣는 얘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단거리 선수였어?"

"저놈 전국체전 나가서 신기록까지 세웠잖아"

"우와 대단하다"

"대단하면 뭐하냐 인생의 꿈이 포르노 회사 차리는 거라는 놈인데"

"....."

대진은 아직도 일본sod사에 가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불만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하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대단하잖아"

상원이 열심히 친구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긴 그 정도면 지극정성이긴 하지"

대진의 프르노 사랑을 알고 있는 승완도 한마디 거들었다.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지극정성이지"

"쌍 또라이 새끼"

"크크크크크"

동석과 승완이 거침없는 욕설을 해가며 부재중인 대진을 놀렸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대진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목조르기를 시도했다. 

세 사람이 엉켜서 노는 것을 본 상원은 문득 지갑안에 있는 문제집 살 돈을 떠올렸다. 

"나 잠깐 버스에 갔다올게"

"버스는 왜?"

"뭐 두고 온게 있어서"

상원은 일부러 지갑을 가지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깜짝 선물을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으에 뭐야 교과서 가지러 가는거아니지?"

2박3일 여행 일정에도 문제집과 교과서를 챙겨 넣은 상원에게 교실에서도 한 소리 날렸던 대진이 진저리를 치며 물었다. 

"아니야 잠깐 갔다 올게"

상원은 다녀 온다는 말을 남기고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뭐든 해주고 싶었다.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며 상원은 자신이 타고 온 붉은 색 버스를 눈으로 찾았다. 

".....어라"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상원은 다시 한번 천천히 버스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학여행 시즌이었기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버스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어서 

자신이 타고 온 버스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상원은 일일이 버스 앞에 쓰인 학교명을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10분을 넘게 그 금방을 찾아다녀도 도저히 자신이 타고 온 버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상원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

"....."

핸드폰은 왜 또 가방에 두고 왔던가. 

슬슬 불어오는 불운의 바람에 상원은 덜컥 겁이 났다. 아까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가봐야 겠단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사리지고 난 후였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상원은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같은 반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 가야겠단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까 버스를 찾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했는지 6반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원은 목에 걸고 있던 아이팟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버스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이 없으니 떠나지 않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다. 

아니, 잠깐 반장인 승완이 이런곳에서 인원체크를 하던 타입이던가.

"....."

과연 운동장에서 버스에 올라탄 인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상원은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필사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미아가 

되는 것은 근간에 있었던 일중 최악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때였다. .

"선배?"

느릿하고 낮은 음성에 상원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조석희였다. 사복을 입고 있는 언제나 끝내주게 멋진 조석희였다. 

"선배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렇게 묻는 조석희 표정에 역시 짜증과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상원은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 너따라온거 아냐"

그래도 일단 결백을 주장해 놓고 시작했다.

"우리반도 수학여행 왔거든 진짜야 농담아니야 학교에서 무슨 프로그램 한다고 우리반만 따로 견학 보내준다 했는데 애들이 수학여행 가지고 해서"

"그래서요"

조석희가 관심 없다는 투로 물었다. 

"....버스를 못 찾겠어"

상원은 그 한마디로 본인의 처량맞은 처지를 설명했다. 땅에 굴이라도 있으면 숨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일단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선배 바보 아니냐고 묻고 싶은데 너무 그런가?"

"...."

이미 물어봤잖아. 

"친구들은요?"

"모르겠어 전화기도 놓고 와서.... 아무도 안보이네"

"흐음"

조석희는 들고 있던 생수의 뚜껑을 열고 들이켰다. 물이 넘어가면서 목울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상원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절로 시선이 가는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생수통을 들고 있는 조석희를 힐끔거렸다. 장신인데다 모델같은  몸매와 조각상이 울고 갈 정도의 외모를 자랑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석희야 밖에서 물마시지마. 마실거면 빨대로 마셔..... 그냥 아예 돌아다니지마.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현실성 없는 소원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중에 정곡을 찔린 상원이 생각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글쎄"

대책이 없었다. 

상원은 그래도 조석희가 자신을 도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갖고 있었다. 먼저 떠난 2학년 S반의 버스가 지금 이 휴게소에 정차되어 있는 것도 자신에게

내려진 구원의 동아줄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뭐 그래요 그럼 나중에봐요"

조석희가 쿨하게 굿바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상원은 긴박해져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요"

조석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심해 보이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스쳤다.  일부러 저러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상원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부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나 데려가"

"제가 선배를 왜요"

"상부상조하자고 했잖아"

조석희가 상부상조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면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고 상원은 믿었다.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요"

"....."

아, 역시 그때 지적을 제대로 해줬어야 했나. 

"제가 선배를 아로마테라피로 사용하는 대가는 이미 치르고 있는 거 아닌가요?"

"....."

좋아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는 그것을 말하는 거겠지 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말걸 그랬다고 상원은 생각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짝사랑은 공짜인데.

"차에 태워드리면 뭘 해주실건가요"

"...네차도 아니잖아"

상원의 한마디에 조석희는 뒤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휴게소에서 동전 한 푼 없이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상원은 그를 뒤따라가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조석희가 자신의 욕구- 수면욕) 를 채우기 위해 상원의 몸에 손을 댄 적은 있지만 상원이 먼저 손을 뻗어 접촉을 시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석희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진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그 차가운 눈빛에 상원은 손도 못 떼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미...안"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상원이 황급히 손을 떼며 사과했다 조석희가 더러운 것을 떨궈내듯 다른 손으로 옷을 툭, 하고 털었다. 그 손동작에 상원은 자신의 마음

한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나간 심정이었다. 

늘 그랬다. 상원은 조석희의 사소한 행동에 기뻤고 사소한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 사이는 아니잖아요"

"응..그런가"

상원은 생판처음 보는 남이더라도 늘 친절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조석희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조석희가 조건없이 친절을 베풀어준느 

상대가 과연 있을까 싶었지만 만약 그런사람이 존재한다면 너무나 부러워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한테 뭐 해줄건 없다. ....지갑도 버스안에 두고 내리고"

"오늘 그럼 저희 숙소로 오세요"

"뭐?"

"잘됐네. 잠자리가 바뀌면 잠도 잘 안오는데"

평소에는 숙면을 취하는 사람처럼 조석희가 뻔뻔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상원은 애써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거 말곤 다른건 안돼?"

"설마 선배가 저한테 해줄수 잇는 다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나한테 필요한 건 니 몸뿐이다. 

....짝사랑 입장에서 기뻐해야 할 문장임에도 분명한데 상원은 서글픔이 느껴졌다. 

"아니 그래도.... 다른 애들도 있는데 어떻게 너희 방에서 자"

대뜸 나타난 3학년 선배가 자신들 방에서 섞여 잔다면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될까.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조석희의 옆에서. ....한 숟가락 더 보태자면

그냥 잠만 자는 것도 아닐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요즘 들어 조석희는 그냥 냄새만 맡는 정도로 끝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흥분을 하면 체향이 진해진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는 이런저런 

것들을 요구하곤 했다. 처음엔 안돼 안돼 하다가 도 돼! 돼!를 외치고 마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3학년 선배가 들어오면 다들 불편해 할거야"

"상원선배 유명하잖아요"

"...."

어떻게 유명한 것인지는 굳이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거의 모르는 사이니까 불편할 거야"

상원은 열심히 낯선 관계 사이에 동침이 얼마나 불편한지 설명했다.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잠자리까지 혹시 자다가 발이로 엉기면 참으로 민망할 것이다. 등등

가만히 듣고 있던 조석희는 상원이 설명을 끝내자 한마디로 상황을 끝내버렸다. 

"알게 뭐예요"

"하..하하"

하긴 조석희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모습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자신은 남의 이목을 신경쓰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체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하나 고심했다. 

그런 상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선배? 상원선배?"

"이경아!"

늘 교복을 입고 있던 사람과 사복을 입고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수학여행이 결정된 상원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상원은 한손에 커피를 들고 나타난 김이경에게 청상과부 보쌈하러 온 남정네 맞이하듯 반갑게 인사했다. 

"이경아 정말 반갑다"

상원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들어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난 것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상원이 

주인을 받기는 개처럼 자신을 맞이하자 김이경 역시 솔직하게 기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 선배. 정말 반가운데..... 왜 여기 계세요?"

"얘 따라..."

습관적으로 조석희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황급히 지우고 상원은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니까 우리반 버스가 여기를 따라 온건 아니고... 아무튼 우리반도 수학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

김이경이 억울한 얼굴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상원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버스를 놓쳤어 우리 반 버스"

"연락해 보셨어요? 음 고속도로에서 유턴하긴 좀 그렇겠군요"

"핸드폰도 없어"

"그럼 어차피 목적지 같으니까 저희반 버스타세요 자리는 충분해요"

김이경의 친절한 제안에 상원이 눈빛을 빛내며 정말? 하고 되물었다. 뒤에 서 있던 조석희의 눈빛이 사늘하게 바뀌었다. 순식간에 상원이 구조요청의 방향을

틀어버리자 그걸 바라보는 그의 입장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당연하죠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선배 담임선생님께도 연락드리시라고 할게요"

"응 정말 고맙다"

상원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버리는 손이 있으면 주워주는 손도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

"...!!"

상원은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움켜진 손에 놀라, 비명을 삼켰다. 이건 또 무슨 손이란 말인가. 

"선배 저희 반 버스타신다면서요"

"...아니 난 그냥 숙소로 가는 버스면 아무거나..."

아무거나, 라는 단어를 내뱉자 조석희의 눈매가 가느스름하게 변했다. 상원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을 마무리지었다. 

"상원선배 저랑 가요 아무래도 석희는 불편하지 않겠어요"

"...어 그래..."

불편한데 좋아. 그게 문제야.

상원은 아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던 조석희의 손이 아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어간것이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이. 이경아 나 석희랑 갈게. 석희한테 할 말도 있고.."

"무슨 애기요?"

김이경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상원은 진땀을 흘렸다. 그냥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는데 얘는 또 왜이러나.

"그..... 있어"

"무슨 얘기 하실지 궁금한데요 왜 후배들 차별해요 선배. 같은 학생회 후배들인데"

"아하하.... 서,석희도 학생회였어?"

"네 그냥 자문의원같은 건데 거의 참여도 안하긴 하죠"

평소였으면 조석희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어 올타구나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더해갔다 상원은 한시라도 빨리이경이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그래 응 그...하하"

웃는 것도 힘이 들었다. 어깨에 시퍼런 야구 글러브 하나 얹고 다녀야 겠구나 싶었다. 상원이 눈치 없이 웃고만 있는 이경은 포기하고 조석희쪽을 공략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가자 석희야"

조석희가 못마땅한 얼굴로 잠시 상원을 노려보더니 손을 놓아주었다. 상원은 숨을 몰아쉬며 지끈거리는 어깨를 자신의 손으로 쓸어내렸다. 

"선배 그럼 좀 이따 뵙겠네요"

"그래 이경아 좀 이따 보자"

상원은 이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조석희는 어느새 벌써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상원은 놓칠세라 후다닥 달려가 1미터의 거리를 두고 그를 쫓아갔다. 

조석희는 뒤 돌아보는 일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보통 이쯤에서 먼저타라든지 같이 타자든지 이쪽은 내선배다 라든지 하는 말을 해줄텐데 조석희에겐 그런 

배려심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버스 문 앞에서 쭈뼛거리던 상원은 큰맘 먹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자신들 학교 교복을 입고 나타난 선배의 모습에 버스에 있던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하"

나도 수학여행을 가는 길이고, 버스를 놓쳐서 어쩔 수 없이 이 버스를 탄 거라고 상원은 한 명 한명 붙들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얘기를 중얼거리며

버스 통로를 거느릴까 하다 그것도 참 보기 흉하겠다 싶어 상원은 그냥 조용히 눈으로 조석희의 모습을 찾았다. 

버스 뒷부분에 앉아 있는 조석희 모습을 발견하고 상원은 조용히 통로를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갔다. 등 뒤로 쏟아지는 의문의 시선들이 따가웠지만 그는 애써 

태연한 척 걸었다. 

"앉아도 돼?"

상원이 가방이 놓여있는 조석희 옆자리를 가리켰다. 자신이 이렇게 물어보면 당연히 가방을 치워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감고 있던 눈을 떠서 힐끗 쳐다본 후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

그 짧은 순간 상원은 많은 생각을 했다. 

애가 지금 내 얘기를 못들었나 눈에 안보이는 이어폰이라도 끼고 있는 것일까. 아님 나한테 자기네 버스를 타라고 했던 말을 기억 못하는 걸까.... 아니야,

지금 이상황이 허상일지도 몰라. 

"선배 여기 앉으세요"

상원을 알아본 학생회 후배하나가 얼른 자리하나를 마련해주었다. 상원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2학년 S반 반장이 인원체크를 하고 

지나가며 상원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원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깨가 박살나는 한이 있어도 김이경네 버스를 탈 걸. 거기에 탔으면 화기애애 웃으며 갔을텐데. 선배 음료수하나 드실래요? 선배 이거

한번 먹어보세요 하는 이경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뒤늦은 후회에 상원은ㄴ 버스 창가에 달려 있는 커튼 위에 이마를 대고 통통 머리를 찧었다.  s반 담임이 오면 앞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반장이 기사아저씨한테 인원보고를 하자 문이 닫히고 버스는 출발했다. 

"어? 선생님은?"

"선생님은 승용차로 먼저가셨어요"

"아...."

그만큼 자신의 반에 신뢰가 두터운 것이었다. 6반이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아ㅡ 그래도 지금쯤이면 내가 없어진걸 누구 하나쯤은 눈치 

챘겠구나.

상원은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싶어 그나마 안면이 있는 학생회 후배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번호를 외우고 있는 동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순간 상원은 애들이 자신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나야 상원이"

[어? 너 어딨냐?]

"나 그 버스 못탔어"

[뭐? 왜 버스를 못타]

동석의 외침에 전화기 너머에서 승완이 다급한 목소리로 버스 세워! 하고 소리 질렀다 버스의 급정거 소리까지 리얼하게 들려오는 것에 상원은 요즘 핸드폰은

통화품질도 참 좋구나 하고 감탄했다. 

"..응 아무튼 나 우리 학교 애들 다른 버스 타고 가니까 걱정하지말라고"

전화기너머에서 잔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동석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아무튼 먼저 가 있어. 뒤따라 갈게 내 전화아니니까. 이만 끊을게"

상원은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 주인에게 잘 썼다는 인사와 함께 핸드폰을 건냈다 뭘요 하고 핸드폰을 받아든 후배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상원은 다시금 침묵의 벽에

갇히고 말았다. 창문 너머로 휙휙 바뀌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선배 그 재수 옴 붙었다는 그 사람아니야?"

"그러게 원래 전국석차 100위 안에 드는데 시험보는 날 사고당해서 6반에 들어갔을걸"

"크크크 완전 저주 받았네 웬 6반"

상원은 목에 걸고 있던 아이팟 이어폰을 얼른 귀에 꽂았다 들어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거기에 일일이 반응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이쪽도 저쪽도 피곤한 일이니까. 

상원은 아이팟의 버튼을 누르며 노래를 얼른 플레이 시키려고 했다. 오늘따라 굼뜨게 바뀌는 화면이 답답했다. 

"설마 이 차도 재수 없게 사고 나는거 아냐"

정말 들어서는 안될 마지막 말이 상원의 귀에 꽂혀 버렸다 상원에게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이 직접적으로 휘말리는 일은 드물었다. 

내 불행은 옮기지 않아 오롯이 나만의 것이니까. 

상원은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거칠게 상원의 오른쪽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버렸다. 

"....?"

조석희였다. 이번엔 무슨 음악을 듣는 것인지 확인할 생각은 없는지 한쪽 이어폰 줄을 손에 쥐고 상원을 내려다 볼뿐이었다. 

"왜?"

"화 안 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어떤 의도로 묻는것인지 알수 없어상원은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화낼 필요가 없잖아"

물론 그런 말을 듣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일일이 화를 냈다간 스스로도 버티지 못한다. 상원은 조석희의 손에 들린 이어폰을 다시 받아 들 심산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석희가 피식 웃으며 이어폰을 의자에 던졌다. 그리고는 아까 모여서 수근거리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어이"

조석희가 앉아 있는 녀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상원은 그가 같은 반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저 더러운 성질머리를 자기한테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어 조 조석희"

키득거리던 아이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조석희가 표정없는 얼굴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

"상원선배 내가 타라고 했거든"

상원은 지금 자신이 잘못들은게 아닌가 싶어 한쪽 귀이ㅔ 꽂혀 있던 이어폰을 마저 벗어던졌다. 

"아 그렇구나"

"그럼 버스 사고가 나면 내 탓인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 얘기는 결국 내가 재수없다는 얘기잖아 안그래?"

조석희가 이번엔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묻는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햐얗게 질렀다. 평소에 학급내에 조석희의 행실이 

어떤지 알 수 있는 한 장면이었다. 

조석희는 상원 때문에 자신의 행운이 훼손되는 것을 싫어했다. 아얘 대놓고 불운을 옮기지 말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s반 아이들의 대화가 그런 조석희의

심기를 긁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상원은 자신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선배답게 중재해야 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갑자기 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도로 한복판에서 서버린 버스때문에 당황한 기사 아저시가 몇번이나 키를 돌리며 다시 시동을

걸려 했지만 겔겔 거리는 바람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핸드폰을 들고 급히 교통유도를 위해 밖으로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상원에게 쏟아졌다. 말없는 비난보다 두려운 것은 사람들의 앞에서 조석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원은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깨달았다. 

"핸드폰 좀 빌려줄래? 숙소 가서 줄게"

사용하진 않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위급상황을 대비해 상원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학생회 후배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떨떠름한 얼굴로 후배가 내미는 핸드폰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는 말없이 버스에서 걸어나왔다 그를 말리거나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속초까지 20km라는 안내문이 저 멀리 보였다.

상원은 뺨을 긁적거리다 걸어가기 괜찮은 거리란 결론을 내리고 일단 도로 가장자리로 걷기 시작했다. 

"선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상원은 흠짓 어깨를 떨었다. 차소리에 섞여 자신이 듣고 싶은 환청이 울린게 틀림없다. 상원은 고개를 들고 가던 길을 걸었다. 

"--!!"

등 뒤에서 우악스럽게 잡아채는 손길에 상원은 하마터면 도로 위에서 나뒹굴 뻔했다. 

"사람이 불렀는데 왜 들은 척도 안해요"

"어?,,,, 네가 왜 여깄어? 버스는?"

조석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등 뒤를 가리켰다. 희재고 2학년 S반이라고 써놓은 종이를 붙인 관광버스 한대가 둘의 옆을 지나갔다. 

"헉! 가면 어떡해 넌 태우고 가야하잖아"

상원이 버스를 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버스는 도로 끝으로 달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상원이 울상을 지으며 어떡하냐고 물었다.

"글쎄요"

"넌 왜 내렸어 그냥 타고 가면 되잖아"

"선배는 왜 내렸는데요"

"....."

자신이 내리자 거짓말처럼 버스가 씽씽달리는 모습에 상원은 다리가 아프겠지만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굳이 내가 그 불운의 근원이었음을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밝히고 싶지 않았다. 

"선배 내리자마자 시동 다시 걸리던 데요"

"...다행이네"

아픈 구석을 저렇게 정확하게 파고드는 것도 재주면 재주였다. 상원은 우물거리다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건넸다. 

"뭐가요?"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그래도 ...옮기지는 않을거야 아마"

"솔직히 소름끼치긴 하네요"

조석희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연타로 날리는 칼날에 상원의 발밑은 이미 피바다였다. 

"제가 우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뭐가"

"Luck 말이에요"

조석희의 우세한 발음에 상원은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재수 없는 선배따위 기분은 나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조석희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말을 마루리 지었다. 

"아무튼.... 내가 재수 없다는 얘기지?"

"그런 셈이죠"

"미안 나때문에 너도 고생하고 너희 반애들도 괜히 기분 상하고"

상원은 버스시동이 꺼진 순간 자신에게 쏟아지던 그 시선을 떠올렸다. 침묵 속에 싸인 비난은 더욱 참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그래도 버스가 고쳐져서 다행이다"

상원은 수학여행을 망칠 뻔했던 후배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렷다. 그러자 조석희가 뒤틀린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과연 다행일 것 같아요?"

"....어?"

"선배, 저희 집에서 절 아직까지 내쫒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세요?"

"...."

상원은 하마터면 잘생겨서 라고 대답할 뻔 한 자신의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제가 있으면 일이 잘 풀리거든요"

조석희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간 스토킹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게 역, 아니 contraposition이라고 해야하나?"

조석희가 손가락으로 좌우대칭을 바꾸는 시늉을 해보였다. 상원은 대우라는 수학용어를 자연히 머리속에 떠올렸다. 

"당연히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죠. 제가 없으면" 

조석희의 시선이 도로의 끝을 스쳤다. 오싹한 생각에 상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설마... 그러라고 내린건 아니지?"

사고나 조난등의 단어는 불길해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석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엿 먹으려고 내렸죠"

"......."

상원은 잠시라도 혹시 내걱정을 해서 내린게 아닐까 마음썼던 스스로가 미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숨을 포옥 내쉰후 상원은 조석희를 바라보았따. 

방금전 성격파탄인걸 확인했는데도 여전히 멋져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핸드폰을 후배에게 빌리긴 했지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얘기했다간 당장s,반 녀석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난동을 피울게 뻔했다. 

상원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이 문제를 타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옆에 다른 사람도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으니 상원은 상대의 의사를 물었다. 

"잘 됐죠 냄새나는 버스 슬슬 물리기도 했으니"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조석희는 도로 근처로 다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눈으로골랐다  제법 탈만하다고 생각되는 차가 접근하자 그는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은색외제차가 정확히 조석희 앞에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자동차 유리가 내려가자 상원은 그 사람들이 왜 차를 세웠는지 단박에 짐작이 되었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운전석과 뒷자석에 앉아 있었다. 

"속초"

조석희가 짧게 대답했다. 

태워달라고 부탁해야 할 입장임에도 그는 목적지가 맞지 않으면 그만 이라는 태도였다. 

"잘 됐네 타세요"

조석희는 마치 자신의 차를 타듯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히치하이킹에 상원은 두눈을 껌뻑이다가 문을 열고 뒷자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은색아우디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상원은 차에 있는 두 여자가 모두 조석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버지 소유의 별장으로 놀러가는 중이라고 목적지를 

밝힌 운전석에 앉은 아가씨는 몇번이나 조석희에게 그냥 자기 별장으로 가자는 제안을 하고 있었다. 

조석희가 딱 잘라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자 상원은 혹시 이대로 알지도 못하는 누나의 별장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은 아니가 두려워졌다. 

미국에서 유학중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두사람의 옷차림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대담했다. 상원은 일부러 몸을 틀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대화를 나누었기에 상원은 영어듣기 평가를 하는 기분으로 앉아 있어야 했다. 

"서부에 있었나 봐요"

조석희가 묻자 그녀들이 어떻게 알았냐고 깜짝 놀랐다. 

"캘리포니아 쪽 억양은 구분하기 쉬워요"

"그러는 자기는 어느쪽에 있었어?"

"뉴욕이요"

"어머 근데 자기는 발음이 독특한것 같아"

"어릴 때 영국에 있어서 발음이 좀 이상하죠 한국어 발음도 그렇고"

'아니야 멋있어!"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상원이 불쑥 던진 말에 차 안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상원은 다시 문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창밖으로시선을 돌렸다. 

그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석희의 영어발음을 듣고 있노라면 정신이 혼미해져 저도 모르게 이렇게 헛소리를 지껄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친구야? 훨씬 어려보이는데"

"선배예요"

짤막한 대답으로 조석희가 상원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선배? 세상에 피부가 이렇게 좋은데? 너 몇살이니?"

"...열아홉이요"

"세상에 피부가 매끈매끈해 부럽다"

상원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손등으로 상원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자의 부드러운 손길이 스칠 때마다 상원은 몸둘바를 몰라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그녀는 상원을 보며 Ruby(홍옥)같다며  입술을 가져다 대어 한입 무는 시늉까지 했다. 내려달라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을 만큼 상원은

단호하지 못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조석희가 몸을 틀어 그녀의 손목을 잡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hey what`s that fucking perfume you`re wearing?"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그녀가 what? 이라고 되물었다. 조석희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쥔체 특유의 느리고 살벌한 어조로 으르렁 거렸다. 

"Don`t touch that he`ll be stained with you`re stench "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옆에 앉아 있던 상원과 대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내 곧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다음순간 차가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길가에 아우디가 세워졌다. 

"....stench"

상원은 떠오를락 말락하는 단어를 다시한번 입밖으로 내었다. 

그러자 조석희가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상원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stench가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한대 얻어맞을

것 같아 상원은 그냥 집에가서 사전을 찾아야 겠따고 생각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석희와 핸드폰 번호까지 주고 받은 그녀들이 그 한마디에 당장 내리라고

차를 세운 것을 봐서 좋은 뜻은 아니라 묻고 싶었지만 다행히 아우디가 내려준 곳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부지런히 걸으면 닿을 수 있었다. 

...한시간 정도 걸었으니 아프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미안해"

뒤에서 묵묵히 걷던 상원이 불쑥 중얼거려싸. 조석희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걷는 그의 뒷모습에서 힘이 들거나 피곤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었지만

미안한것은 미안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그곳에 나타나 조석희까지 조난에 휘말려버리게 되었으니.

"다리 아프지 않아?"

상원이 물었다 앞서 걷던 조석희가 아니요 하고 짧게 대답해줬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긴, 저 경주마처럼 탄탄한 허벅지가 이 정도 거리 걷는다고 피곤을 느낄리 없지.

상원은 넋을 잃고 조석희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당장 모델로 세워도 손색이 없었다. 속된 말로 간지가 줄줄 흘렀다.  대진에게 배운 속어도 가끔 이렇게 쓸모가 있다니.

"기분 나쁘다는 말씀 안드렸나요?"

"뭐?"

"선배가 그렇게 쳐다보는거"

헉... 쟤는 뒤에도 눈이 달렸나.

"선배 가끔 보면 발정 난것 같아요"

"발.... 설마"

조석희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상원의 앞으로 성큼 걸어와 그의 뺨을 한손으로 쥐었다. 

"이게 발정난 암컷의 눈이 아니면 뭐예요"

그가 상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상원은 자신이 암컷도 아니고 발정도 안 났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뺨을 꽉 잡힌 채였기 때문에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조석희가 상원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따끔해져 상원은 자연스레 눈을 옆으로 돌렸다. 

"이정도면 좀 괜찮네"

"응? 뭐가?"

조석희는 대답대신 상원의 귀밑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숨을 길게 들이셨다. 짙은 숨결이 목덜미에 닿자 상원은 습관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조석희가 지나가던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원이 깜짝놀라서 물었다. 

"너 돈 있었어?"

조석희가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뭘 그런 질문을 하냐는 힐난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 그런데 우리 왜 한시간 동안 걸은거야?"

덕분에 앞으로 남은 한시간은 택시를 얻어타고 가면 되겠지만 지나온 시간이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택시가 두사람 앞에 서자 조석희가 차 문을 열고 들어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fucking stench"

발음 끝내준다.  하고 멍때리고 있던 상원에게 조석희가 안타면 출발할 거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상원은 부랴부랴 올라탔다. 조석희가 목적지를 말하고 

시트에 몸을 기댔다. 

상원은 벌써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 가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평생에 한번 있는 수학여행이 이렇게 가는구나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하루였지만 기억에 남을 것은 분명한 날이었다 상원은 조심스럽게 시트에 몸을 기대고 조석희처럼 

몸을 기대고 조석희처럼 두 눈을 감았다.

어마어마하게 나온 택시 요금을 보고 놀란 것은 역시 상원뿐이었다 조석희는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나머지는 가지라는 엄청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숙소 앞에서 조석희는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상원은 6반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인마! 지금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야"

"미안해"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해야 할 것 아냐"

"...미안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밥이 안 넘어가 밥이!"

"대진아 입에 고추장 묻었는데...."

대진이 손등으로 재빨리 입술을 훔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 s반 새끼들 차타고 오는건지 알고 완전 걱정했어!"

"왜 무슨일있어?"

자신의 행운에 대한 대우를 설명하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던 조석희가 떠올라 상원은 섬뜩해졌다. 

"오다가 사고 났잖아"

"사고? 안 다쳤어? 애들 괜찮아?"

"다치지는 않고 터널에서 불이 났는데 재수없게 거기 갇히는 바람에 몇 시간동안 거기 있었대 방금 도착했는걸"

상원은 기가막힌 우연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네가 하도 안와서 거기에 있는 줄 알았잖아"

"미안 사정이 생겨서 좀 늦었어"

보통은 이렇게 얘기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상원은 좀 특별한 운을 타고 났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그대로 수궁했다. 

"밥은 먹었냐? 우리는 방금 먹고 돌아왔는데"

"아니 아직"

"저기 숙소 옆으로 돌아가면 식당있거든 아직 할거니까 가서 밥 달라고 해 같이 가줄까?"

동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됐어 밥 먹는데 뭐하러 여럿이 우르르가"

피곤하긴 했지만 밥은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상원은 간단한 손발만 씻고 방을 나섰다. 가는 길에 다행히 s반 후배를 만나 핸드폰도 건네주고 음식을 

치우기 전에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혼자 구석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은 이경이 나타났다. 

"선배 지금 식사하세요?"

"응 좀 늦었어"

이경이 상원의 앞에 앉았다. 상원은 누가 자신의 밥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게 참으로 불편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이경아"

"네 선배"

"너 다른 볼일은 없고?"

학생회장이라면 수학여행 도중이라도 이것저것 잡무가 많을텐데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 밥 먹는 모습을 그경할 여우가 있냐.

"바쁜 일은 그럭저럭 다 마쳤어요"

"...그렇구나"

상원은 반찬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이경이 웃으며 말했다. 

"선배는 밥을 참 예쁘게 먹네요 입을 꼭 다물고 음식은 안보이게"

"보통이잖아 그런거"

"젓가락질도 잘하시네요"

김이경이 손가락으로 상원의 손등을 만지며 말했다. 얘가 뭘 잘못먹었나 싶었지만 후배의 손을 매몰차게 떨쳐내진 못했다. 

"선배는 참 잘 자란것 같아요"

"응?"

"볼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참 그런 상황에서도 잘 자랐구나"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은 이경의 눈가가 살짝 붉어져 있다는 것을 상원은 뒤늦게 발견했다. 

"너 술마셨니?"

"네"

상원은 약간 어긋난 행동이 술주정임을 깨닫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럼 이쪽에서도 그냥 편하게 대하자 싶어서 상원은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와 너도 술 취하긴 하는구나 너는 완벽해 보여서 절대 술주정 같은 거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술주정이요?"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경이 웃음을 터트리며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왜 웃어?"

"하하하 아니에요 술주정이란 단어가 나올지는 몰랐거든요 하하하"

상원은 애가 취해도 단단히 취했구나 싶어 물이라도 떠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가요?"

상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경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너 물마셔 물떠다 줄게"

"목 안마른데요"

"물 마시면 술 금방 깨거든"

"선배 되게 재밌는 사람인거 알아요?"

"뭐 내가? 재미?"

재수가 없다는 말을 하려다 선배니까 아무 단어나 갖다 붙인게 분명했다. 상원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재미있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어본적 없음을 떠올렸다. 

"선배 정말 재미있어요 빨리 졸업하면 좋겠다. 그럼 내 멋대로 할 수 있을텐데"

"....."

졸업하는 거량 이 멋대로 사는거랑 내가 재미있는 거랑 도대체 무슨 관계냐.

"선배는 그때도 그 자리에 계시겠죠?"

"무슨 자리?"

"지금 그 자리요"

상원은 이경이 안경쓰지 않은 인상이 매우 날카롭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뭐 그렇겠지"

상원은 어물거리며 대답하고 다시 밥을 먹었다. 

"선배 식사끝내고 저랑....."

김이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소리를 내며 울렸다. 상원은 핸드폰을 꺼내며 이경에게 미안하고 양해를 구했다. 

전화가 아니라 문자였다.  

[붉은 벽돌 건물 . 209호 지금]

"누구예요?"

상원은 깜짝 놀라서 황급히 핸드폰을 닫았다. 이경이 한층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누군데 그렇게 숨겨요?"

"아 애들이 빨리 오라고 하하 우리반도 술마신데"

상원은 속으로 얘는 밥도 안먹나 하고 조석희를 원망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밥 더 안드세요? 반이나 남겼는데"

"응 이제 배부르네"

정확히 말하면 저 문자를 확인한 순간부터 식욕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지만"

상원은 식판을 정리하고 물을 마셨다. 김이경이 안경을 손에 든채 그런 선배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상원선배"

"응?"

"술 적당히 드세요 뭐든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되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상원은 속으로 뜨금했지만 선배답게 어른스러운 태도로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자리를 떴다. 

상원이 건물안으로 들어갈때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09호는 복도의 가장 끝에 위치한 방이었다.ㅏ 

문을 노크하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울렸다 다행히 현관에는 조석희의 신발로 보이는 운동화가 하나만 놓여 있었다. 

"애들 어디 가던데"

상원이 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석희는 그런 것쯤은 관심없다는 듯 들어오기나 하라고 상원을 면박주었다.  

"왜 불렀어?"

비스듬히 누워 있던 조석희가 자신의 앞에 앉으라고 방바닥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상원은 어째서 자신이 후배앞에서 자연스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휴게소에서 제가 버스 태워드렸죠"

"...."

그래 그 버스 탄지 얼마 안되서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 버스 니 것도 아니잖아

"택시도 태워드렸죠"

"요금 반 줄게"

"돈이란 것은 필요한 순간에 없으면 소용없어요 굴지의 기업이 도산하는건 그 타이밍에 돈을 유통시키지 못한 이유예요"

"....택시 요금은 괜찮지 않을까?"

"지금 주실 수 있어요?"

"아니 방안에 지갑이...."

"선배는 지금 두번재 도산한거라구요"

저 살벌한 계산법에는 범인인 자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다고 상원은 생각했다. 

"계산은 확실히 해야죠 선배"

"저기 다른 애들도 여기서 자야 하는데 내가 여기 있으면 아무래도...."

다음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조석희가 우악스럽게 움켜진 뒷머리가 아파 눈물이 찔금 났지만 상원은 놓아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들어주지도 않을테고 노여움만 산다는 것을

그동안 숱한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저 오늘 아래가 좀 당기거든요"

상원은 그말이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냥 끌어안고 잠만 자주면 황송할텐데 조석희는 요즘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끌고 갔다.

"오늘은 그냥 자면 안돼?"

"빨리 끝내죠 애들 오기전에"

상원은 어째서 조석희가 이 시간에 자신을 불렀는지 깨달았다.  그는 애들이 학교 측의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상원은 힐끗 문가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오지 않는다고 해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는 없었다 조석희가 그런 상원의 손을 잡아 끌면서 괜찮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조석희 스스로도 자신의 한국 발음이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상원은 약간 어눌한 그 발음이 음성과 잘 어울린 다고 생가했다 저 얼굴로 조석희가 아나운서 같은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면 어울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웃긴 상상을 좀... 힉"

상원은 갑작스레 바지 안으로 손이 들어오자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틀었다.  상원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자 조석희가 어처구니 없단 얼굴로 말했다. 

"뭐야 선배 누가 보면 내가 강간하는 줄 알겠어요"

"그... 아////"

얼굴이 뜨근하게 달아오른 상원이 허리를 뒤로 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다고 순순히 물러나줄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보란 듯이 상원의 다리 사이를 힘껏 움켜쥐어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처녀도 아니면서 왜 매번 할때마다 그래요"

"...."

"아 하긴 동정이라고 했으니 일종의 처녀이긴 하네요"

말로 희롱당하는 것이 성적인 수치심을 배로 일으킨다는 사실을 상원은 조석희를 통새서 배우고 있었다. 나중에는 절대 무슨일이 있어도 여자들이 성적인 수치심을

가질 만한 말은 하지 말자고 상원은 다짐했다. 

"선배 뭐해요 왜 선배는 가만히 있어요"

"아 맞다 미안"

상원은 주섬주섬 조석희의 벨트 버클을 풀고 퍼스너를 내렸다. 

약간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살덩이가 속옷위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상원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팬티를 끌어내리고 조석희의 성기를 손바닥위에 그러쥐었다. 

상원은 조석희가 하던 대로 아래위로 손을 움직이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못된 장난을 하며 불안해 하는 것처럼 상원은 연신 몸을 떨었다. 

"너무 꽉 잡지 말고 아... 그렇게"

조석희가 상원의 어깨를 끌어안고 나지막한 소리로 욕구를 달래는 방법을 코치해주었다.  상원은 조금씩 손의 움직임을 바꿔가며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눈빛으로 조석희를 바라보았다.

"손 멈추지 말아요 .... 네 계속"

조석희의 숨결에 조금씩 달뜬 열기가 섞여 나온다. 따끈한 입술이 목덜밍 닿자 상원은 앗 하고 신음을 냈다. 

"선배 그렇게 성실한 얼굴을 하고 이럴 때는 엄청 음탕한 소리를 내는 거 알아요?"

조석희가 일부러 약한 부분을 골라 입술로 지분되기 시작했다  꾹 참으려고 했지만 이내 몸이 달아올라 상원의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조석희가 상원의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뿌옇게 끝이 젖은 성기가 다리 사이에 닿다 상원은 달칵 겁이 났다. 

"허벅지 오므려요 저번에 해봤잖아. "

상원은 그가 시키는 대로 다리를 힘껏 오므렸다 그 사이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고 조석희가 허리를 움직였다.  남녀의 성교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행위를 처음 강요 당했을때

상원은 그 자리에서 1미터는 뛰어오르며 안된다고 도리질을 쳤다. 남자의 좆도 맛있다고 빠는 주제에 헛소리 집어치우라는 조석희의 한마디로 미약한 반항은 끝나버리긴 했지만

상원은 유독 이자세가 민망하게 느껴졌다.  물론 다른 행위들이 민망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석희의 몸 아래 깔려  허벅지를 오므리고 그 사이 성기를 집어

넣고 문질러 대는 것은 수치심이 배가 되었다. 

"....응"

상원은 고개를 돌려 손등을 깨물며 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아냈다 그 위에 엎드리다시피 몸을 겹친 조석희의 배 부근에 성기가 문질러 지자. 상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선배 야한 냄새가 나는군요"

조석희가 고개를 숙여 어깨에 코를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야한 냄새가 대체 무슨 맨새냐고 묻고 싶어도 상원은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 같은 감각에 짧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응.... 아... 하아"

조석희의 팔에 매달리며 상원은 제발 이라고 애원했다. 배에 문질러지는 정도의 자극으로는 절정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상원의 사정을 최대한 늦추며 느슨한 자극을

반복했다. 상원이 자신의 아래에서 울면서 바르작거리자 조석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상원의 몸에선 말로 하기 힘든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수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식으로 욕구를 해소할 때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남자의 몸을 주물럭거리는 데에 취미는 없지만  하다보니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밋밋하기 그지없는 모범생의 얼굴을 하고 느끼는 표정 하나만큼은 음란하기 그지 없었다. 상원의 하얀 피부가 수치심으로 붉어질 때마다 그의 몸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조석희는 상원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힘껏 빨아 올렸다.  상원의 호흡이 점차 흐트러졌다.  같은 남자가 사정에 다다르지 못하는 감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면서도 조석희는

모르는 척 입술을 여기저기 지분거렸다. 

극심한 불면증 때문에 효과가 좋다는 약은 손대지 않은 것이 ㅇ없을 정도였다. 파티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대마초나 마리화나 같은 것들은 잠시의 쾌락만 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달랐다. 쾌락의 정도도 순도도 지속감도 어느 약물과 비교할 수 없었다.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상원의 몸에서는 진한 체향이 느껴졌다.  그것이 조석희에게는 온몸이 아득해질 정도의

감각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는 최대한 길게 이것을 느끼고 싶었다. 

"아... 석희야 제발... 응"

결국 상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자 조석희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몸 아래 깔려 있는 살덩이를 움켜쥐었다. 위아래로 몇 번 훑어 내려주자 상원의 허리가 튀어 오르며  절정에 이르렀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잔향에 조석희는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시며 손을 움직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었다. 

"하아...."

긴 속눈썹에 한숨이 어린 듯 파르르 떨렸다. 깜빡깜빡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모습이 유난히 앳돼 보였다. 

"선배만 재미 보고 끝내려고요"

"어?... 아, 아니야"

하다보면 먼저 절정에 오르는 것은 거의 상원이었다. 안돼 안돼 해놓고 혼자 절정에 닿아 넋이 나가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상원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다리..... 이렇게 하면 되지?"

상원이 부끄러움은 일단 뒤로하고 받은 대로 돌려주기 위해 다리를 오므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듯한 조석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배가 보통 두번할때 저는 간신히 한번 정도 하는 거네요"

"어?.....미안"

구체적으로 횟수까지 비교당하자 상원은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이런 쪽으로는 상식이 부족해 상대의 템포에 맞춰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자꾸 제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럼 앞으로는 하지 않아도...... 헉"

상원은 갑자기 야차같이 변해 자신을 노려보는 후배의 얼굴에 깜짝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실수를 한 것이 분명했다. 

"뭐야 누구는 좋아서 남자랑 이러고 잇는 줄 아세요"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네가 자꾸 손해보는 것 같다고 해서..... 미안해"

"다리 벌려요"

"응?"

"다리 벌려보라고"

평소와는 다른 주문에 상원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분위기에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찬찬히 설명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조석희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조석희가 큼직한 손을 뻗어 방금 전 흩뿌려진 정액으로 축축한 상원의 허벅지 사이에 집어 넣었다. 아까 전 허벅지 사이로 단단한 살덩이가 무자비하게 마찰이 된 터라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따끔한 통증이 전해졌다. 

"....!!"

하지만 상원이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조석희의 손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가서 닿아 있었다. 

"여기 안써봤죠?"

"...무,무슨 소리야"

"호모들은 여기에 넣거든요"

조석희가 손가락으로 엉덩이 사이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꾸욱 눌렀다. 상원이 다급하게 허리르 뒤로 빼서 도망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조석희가 무릎으로 상원의 다리를

누르자 상원은 아래에 깔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선배도 호모니까 넣어도 되잖아요"

"나, 나는 호모가 아니야"

상원의 필사적인 말에 조석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다는 듯이. 그렇게 상원을 한참 바라보던 조석희가 손을 펼쳐 배위에 뿌려져 있는 정액을 문질러 보았다. 

"뭐야 선배 그럼 이건 어쩔건데"

"...."

"조금만 만져주면 좋아서 질질 싸면서.... 호모가 아니라고?"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호모가 아니라고 하면 쳐 죽일 기세였다.  오랜기간 조석희를 지켜봐오면서 상원은 본의 아니게 그의 폭력성을 엿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아무리 조석희에 대한 사랑이 깊은 그였지만 처음 싸움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놀라서 며칠간 잠도 자지 못할 정도였다.  

사나운 조석희의 표정에 덜컥 겁이 난 상원은 결국엔 맞아 호모야 하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알겠어요"

긍정의 대답임에도 상원에겐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들리는 한마디였다. 조석희가 잔뜩 겁이 질려 굳어버린 상원의 다리를 공중에 치켜 올리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 

"으앗!"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자 상원은 패닉상태였다.  어떻게든 허리를 바닥에 닿게 하려고 몸을 허우적거렸지만 조석희가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가볍게 제압되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안돼 하지마 그러지마 석희야"

엉덩이 사이에 단단한 성기가 닿자 상원이 울먹이는 소리로 호소했다. 한손으로 바닥을 짚어 자신의 몸을 지탱하던 조석희가 한쪽 눈썹을 스윽 들어 보이며 불쾌한 낯빛을 했다. 

"선배 나 좋다며"

"...."

제대로 된 남자라면 여기서 아니야! 라고 부정했을 텐데

"선배 나 안 좋아해요?"

"좋아....해"

흘린 듯이 대답해 버린 후 상원은 울컥 치솟는 자괴감에 눈물이 날뻔했다. 정조의 위기에 처한 이 상황에서도 상대의 눈동자를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이렇게 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안된다는 거예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성적인 모럴이 지극히 낮은 조석희에게 상원의 반응은 이해의 범주에 들수 없는 것이었다.  몇번이나 서로 물고 빨고  했으니 넣는다고 별 다를

것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 쪽에서 넣어주겠다고 했는데 남자를 좋아하는 호모 주제에 거절할 이유는 애초에 없다고 조석희는 생각했다

"안될 이유가 없잖아. 내가 넣겠다는데"

"....그게 그게 미국하고 한국하고는 달라"

상원은 문화적 배경차이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조석희는 코웃음을 치며 상원의 방어막을  날려버렸다. 

"그럼 내가 지금 섹스했던 한국여자들은 알고보면 다 미국사람이다?"

"아니 그런것은 아니지만"

"좀 더 그럴듯한 이유 없어요?"

상원은 본능적으로 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석희의 다리 사이에 있는 물건을 쳐다보고 반은 진심인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무 커 , 넣으면 죽을거야"

조석희가 자신의 아래에 누워있는 상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상원은 자신의 진심이 통한 것인가 싶어 조심조심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선배"

"응?"

"차라리 다리를 벌리고 유혹을 하지 그래요?"

"어.....?"

상원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허리가 들어 올려지고 그대로 밀어 붙어졌다. 

"...!....!"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조석희는 다시 힘껏 허리를 움직였다.  상원은 허겁지겁 조석희의 팔을 붙들었다. 비명도 나오지 않는 입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 확실히 뻑뻑하긴 하군"

빠듯하게 물려오는 감각에 인상을 쓰며 조석희가 중얼거렸다.  상원이 입술을 달싹 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소리가 말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 상대의 난폭한

움직임에 부셔져 버렸다. 

"악... 아!......읏"

억지로 몸이 벌어지는 고통에 상원은 손에 잡히는 대로 힘껏 움켜쥐었다. 조석희는 자신의 팔뚝에 피가 나도록 파고든 손톱을 보며 이런 하고 혀를 찼다. 

누군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을 참아줄 성미가 그에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감수할 의향이 있었다 손으로 훑고 만지는 것 정도로는 점점 만족이 

덜해져 한번 넣어볼까 했던 것이 생각보다 맛이 좋았던 것이다. 여자들과 섹스할대 뒤로 넣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뻑뻑하기만 할 뿐이어서 감흥없이 끝냈던 것과는 달랐다. 아직은 아플 정도로 빠듯하긴 하지만 찰지게 물어오는 구멍의 감도가 제법 괜찮은 것이다. 

"...으.....아"

뿌리 끝까지 밀어넣자 아래에 갈려 있던 상원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말 아픈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상대를 배려해 여기서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조석희는 바닥을 짚고 있던 팔을 풀러 상원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고통 때문인지 상원의 몸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체향이 확 하고 풍겨져 나왔다.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했다.  조석희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상원의 엉덩이 사이로 번들거리는 성기를 밀어넣었다. 

상원이 흐느끼며 매달렸다. 

"하지...마 ....흑... 아...파"

"좀 참아봐요 ...하"

조석희가 뜨거운 몸을 부딪혀 오며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허리를 밀어 올리면서 끊임없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선배 진짜 맛있어요 그래요 허리들어봐 힘빼고..... 정말 죽여주게 조이는데.

엉망으로 울면서도 상원은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조석희의 몸을 끌어 안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다. 

"석...희야...아...!"

조석희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물어뜯자 상원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는 웃으며 상원의 허리를 한손으로 끌어안았다. 교복을 입혀놓았을 때보다 벗겨놓고

보면 훨씬 가느다란 몸이었다.  여자보다 골격이 있어 안는 맛은 덜했지만 한손에 들어오는 체구였다.  조석희는 상원의 유두를 혀로 감싸듯 문지른 후, 입술을 모아 빨아주었다. 

"응...하아"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물고 빨아주면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제법 재미있었다. 몸 이곳저곳에서 묻어나는 달큰한 내음을 맛으며 조석희는 중얼거렸다. 

"....선배 지금 야한 냄새나요"

"응...응... 읏ㅇ"

다리가 뒤엉킨 채 허리를 추어올려 뼈가 부딪혔다. 멍이 들정도로 세게 그는 상원의 몸을 파고들었다.  욕망으로 단단해진 성기가 구멍안을 가득 채웠다가 빠져나가는 아찔한 감각에

조석희는 뜨끈한 열기를 느꼈다. 

"하아..... 석희야 아파"

"쯧"

조석희가 짧게 혀를 차며 상원의 것을 손으로 잡았다.  시들어 있던 살덩이가 손바닥안에서 마찰의 힘에 기대어 슬슬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상원이 울면서 하지 말라고 매달렸다. 

그래봤자 역효과였다. 매달려오는 것으로도 아래에 피가 몰릴 만큼 진한 체향을 풍기면서 그만두라니.

조석희는 상원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허리 위에 앉게 했다.  마주보고 앉는 자세가 민망했는지 상원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힘을 주어 조석희 몸에 매달렸다. 

"꽉 잡으라고 말할 수고를 덜어주시네요"

그는 상원의 어깨를 한손으로 누르며 허리를 움직였다 

180이나 되는 남자를 자신의 몸에 얹고도 그는 힘들어 하지 않고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상원은 정말 손을 놓으면 죽을 것같은 사람처럼 조석희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상원의 몸의 줄이

끊어져 망가진 인형처럼 흔들린다. 퍽퍽 하고 부딪혀오는 살덩이의 느낌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상원이 몸을 뒤로 빼고 떨어지려고 했지만 조석희는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해...... 누, 누구 오잖아"

들킨다는 두려움에 목소리까지 떨렸다. 하지만 조석희는 태연하게 웃으며 상원의 머리를 한손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욕심을 채울 뿐이었다. 

어떻게든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한 상원은 조석희의 어깨를 때리고 가슴을 힘껏 밀어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상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석희는 옆에 있던 시트를 끌어다 그대로 상원의 몸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감싸버렸다. 

"어.... 사람 있었네 헉"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벗겨진 옷가지와 야릇한 냄새는 금방 전까지 방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한 눈에 알수 있게

해주었다. 

"...아 그"

"뭐야"

정작 당황해야 할 당사자인 조석희는 반라인 상태에서도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시트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그가

여자를 꼬여 방안으로 끌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가지러 방안에 들어왔던 아이는 그 때문에 당황해 입만 뻥끗거리고 현관에 서 있었따.ㅏ 

"구경났어?"

"...아니"

"그럼 왜 아직 거기 서있어"

"미안 나, 나갈게"

들어왔던 속도보다 몇 십배는 빠르게 문을 열고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조석희는 시트를 끌어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상원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갔어요 선배"

",,,,,,"

"갔다니까"

조석희가 손등으로 상원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그것을 신호로 상원은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전 아프다고 우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엉엉 울어댔다 조석희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치떴다. 

두려움과 서러움 고통과 안도가 뒤섞여 상원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다. 인간적인 양심이라곤 한조각도 갖추지 못한 조석희였지만  손바닥으로 상원의 등을 

토닥여주며 울음을 달래주었다.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자 그는 손을 거두고 말했다. 

"누우세요"

".....?"

"다시 해야죠 전 아직 한 번도 안 샀는데"

상원은 그제야 자신의 안에 아직도 시들지 않은 상태로 조석희의 것이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상원은 어떻게 지금 이상황에서 다시하자는 말이 나올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그럼 선배 우는 것까지 달래게 했으니 안에 쌀게요"

조석희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뇌쇄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다 진지하게 물어야 할 상대는 자신이었다. 

어쩌다 저런 인간에게 반하게 된 것인지.  이런 취급을 받고도 왜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지 ... 왜 싫으면 싫다는 말을 못하는지.

"선배 힘빼요"

뜨겁게 달아오른 귓볼에 닿은 한마디에 상원은 눈을 감고 잔혹하게 아름다운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말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뺨에 닿는 느낌에 가슴깊이 뿌듯한 행복이 전해졌다. 상원은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애초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밥을 먹으러 나간 상원이 다른 사람의 그것도 치수가 커다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밤늦게 나타나자 동석은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다. 상원은 어쩌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대충 둘러대고 이불 위에

누워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뜨거운 수학여행의 밤을 보내는데 상원이 힘없이 누워만 있자 보다 못한 대진이 같이 놀자고 그를 깨웠다. 

"...나 피곤해"

"뭐가 그렇게 피곤하냐  다같이 늙어가는 이 마당에"

상원이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을 내려 눈만 밖으로 내놓았다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듯 그의 눈에는 피곤함이 잔뜩 묻어났다. 

"아니 밥 처먹으로 혼자 어디갔다 오더니 왜 그렇게 피곤하다고 난리야"

"일이 좀 있어서...."

"혼자 노래방 갔다 온거 아냐? 목은 왜 그렇게 또 쉬었대?"

한승완이 방금전 뽑아온 따뜻한 캔커피를 상원에게 마시라고 던져주었다. 

"고마워"

"고맙긴 돈 들여 뽑은 것도 아닌데 뭐"

친구들이 모든 종류의 자판기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여러번 눈으로 목격한 상원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기 걸렸어?"

동석이 상원의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밥 먹고 와서 이렇게 비실대"

'아니 그냥 피곤해서"

상원에겐 일상이 언제나 특별했지만 오늘은 특히나 그랬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설 때만 해도 평온한 하루를 예감하고 좋았었지만 오늘만큼 이상하고 피곤한 하루도 근간에 없었다. 

갑자기 진행된 수학여행에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의 조난 멈춰버린 버스 눈 깜짝할 사이 이루어진 히치하이킹 다시 도로에 버려지고 걷고, 걷고...

조석희의 방에서 벌어졌던 오늘의 피크가 떠오르자 상원은 다시 새빨갛게 얼굴에 열이 오르고 말았다. 

"얘 열있나 본데?"

육포를 뜯으며 6번째 맥주를 따고 있던 승완이 상원의 얼굴빛을 살피며 말했다. 

"괜찮던데"

동석이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상원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주었다. 자신에게만 드러내는 동석의 자상한 면에 상원은 마음이 푸근해졌다. 

"좀 피곤해서 그래 자면 괜찮아져"

"그럼 자라 내일 놀면 되지뭐"

상원은 처음이자 마지막을 온 고교 시절의 수학여행 밤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깊은 잠에

혼곤한 의식을 맡겼다. 

죽은 듯이 자던 상원의 눈을 뜬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으아아악!!!"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방 여기저기 걸레처럼 구겨져 자던 6반 아이들은 단잠을 깨우는 괴성에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던 상원도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뭐야 시발 죽고 싶냐"

잠이 많은 한승완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

"왜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난리야"

"없어졌어"

"뭐가 없어져 병신아"

대진이 승질을 부리며 맥주 캔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 화를 버럭 내며 대진을 노려보았다. 

"던지지마 ! 녀석이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맞긴 누가 맞아, 하암 졸려 죽겠구만"

동석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말했다. 

"없어졌다고 ! 우리 마리가!"

"마리가 누군데"

그게 뉘 집 개이름이냐는 표정으로 동석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러자 소리를 지르던 사육담당이 우유팩을 펼쳐보이며 울먹거렸다. 

"뽀순뽀순 퀴 말야"

"뭐? 알렉산더 아마데우스 갈릴레이 갈릴레오 마리 앙투아네트 헤라클래스 을지문덕 뽀순뽀순 퀴가 사라졌다고?"

유일하게 뽀순뽀순 퀴의 풀네임을 외우고 있는 동석이 깜짝놀라 소리쳤다.  그러자 방안에서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우리 알렉스 어쩌냐고 승완은 소리쳤고 을지야 어디갔냐며

찾는 아이, 헤라를 찾는 대진.... 사라진 것은 한마리였지만 모두들 다른 이름으로 부르짖었다. 

"시발 어쩌다 걔가 사라진 거야?"

매일 매점에서 뺭을 사서 뽀순뽀순퀴에게 한 점씩 떼어주는동석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다른 아이들도 애완벌레를 잃어버렸단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몰라 일어나봤더니 없어졌어 아 시발 어제 먹인 오뎅이 마음에 안 들었나봐"

"그러게 내가 고기 먹이라고 했잖아"

한승완이 살벌한 얼굴로 벼락같이 사육담당을 꾸짖었다. 고기에 대한 욕심으로 뽀순뽀순퀴를 잠시 홀대했던 사육담당은 후회했지만 이미 바퀴를 잃고 우유곽 고치는 격이었다. 

"그러게 애들을 왜 여기 데려와 ! 데려오긴"

"그럼 걔들은 맨날 교실에 쳐박혀 있냐? 니들은 어쩜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냐"

사육담당학생이 울먹거리는 소리로 항변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뽀순뽀순 퀴를 찾겠다고 가방이며 이불을 헤집어 뒤졌다. 

"움직이지마 그러다 밟으면 끝나"

동석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모두들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어차피 상원은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방안 어딘가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닐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그대로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저쪽에서부터 수색해 너 너 너 저쪽을 수색하고"

동석의 명령 하에 6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색조를 짜서 바닥을 더듬어 갔다.  대진이 잠에 덜 깬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집구석이 망하려면 벌레들부터 나간다던데 우리반이 망하려나. 망조가 들었어 쯧쯧"

"우리반은 이미 망했어 병신, 깝싸지 말고 알렉산더 아마데우스 갈릴레이 갈릴레오 마리 앙투아네트 헤라클래스 을지문덕 뽀순뽀순 퀴 어디 돌아다니는지 밖에가서 찾아봐"

"아 짜증나 알겠어 헤라년 지가 사춘기면 사춘기지 집을 나가고 지랄이야"

뽀순뽀순 퀴가 암컷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대진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원은 벌떡 일어나 같이 찾겠다고 대진을 따라 나섰다. 

바퀴벌레가 돌아다닐지도 모르는데 방안에 누워 있는 것보다 밖을 찾아다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아침밥을 먹기 전까지 6반 학생들 전원이 동원되어 뽀순뽀순퀴를 찾았지만 집나간 애완 벌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오지 않은 3학년 6반 학생들은 대다수가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가뜩이나 희재고의 다른반 학생들과 비교가 되는 6반이었는데 옷차림까지

그러니  한눈에 구별이 되었다. 

상원역시 체육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어제 입었던 교복은 조석희방에서 이렇고 저런 일들을 벌려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숙소로 돌아올땐  아예 그의 

트레이닝복을 빌려야 했을 정도였다. 친구들과 학교 체육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그리 부끄럽진 않았지만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시발 짜증나"

뽀순뽀순 퀴 때문에 신경이 곧두서 있는 동석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마 잘못 눈이라도 마주치며 당장 시비를 붙여 누구라도 두들겨 팰 기세였다. 

한승완은 우울하다고 아예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뽀순뽀순 잉과 뽀순뽀순 퀴를 도맡아 키우고 있던 사육담당은 우울한 얼굴로 어항을 들고 오죽헌 내부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뽀순뽀순 잉이라도 좋은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상원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바퀴벌레 혐오증이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뽀순뽀순퀴는 어찌보면 자신에겐 은인이나 다름없는 생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6반의 

애완벌레로 살게 된 것도 자신의 말에서 비롯되었건만.

"...후우"

안타까운 마음에 상원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땅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그의 시야에 낮익은 신발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조석희가 상원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뭐예요 그건"

"응? 아아 이거"

조석희가 자신의 옷차림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상원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출발하게 된 거라서 가져올 옷이 없었거든"

"그래 보이네요"

이전까지 옷차림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조석희가 그렇게 말하자 상원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보통은 옷차림 지적을 받게 되면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냐 ! 라고 외칠법했지만 조석희는 너무도 잘난 꼴을 갖추고 있었다. 타고난 목과 얼굴은 그렇다 쳐도 센스있게 갖춰 입은 옷이 얼핏보아도 비싼 티가 폴폴 났다. 

수학여행을 온 다른 학교의 여학생들이 조석희를 힐끗 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것이 척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잘 잤어?"

"덕분에"

의미심장한 대화였지만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에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염치없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상원은 재빨리 이 어색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그럼 나는 가볼게"

"선배"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자리에 멈춘 상원은 어깨에 닿는 손의 느낌에 흠짓 하고 몸을 굳혔다. 조석희가 고개를 숙이고 나직하게 속삭여 물었다. 

"아래는 좀 괜찮아요?"

"...어응...?

입술을 뻐금거리며 상원은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조석희와 눈이 마주쳤다 남의 표정을 읽는데에 자신의 짝인 동석만큼은 아니지만

상원은 지금 조석희가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단박에 알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상대에 대한 걱정이 손톱만큼도 들어있지 않았다. 

"괜찮아"

금세 우울해진 상원은 조석희를 두고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거기에서는 아직도 뽀순뽀순 퀴의 행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년이 사춘기라서 집을 나간거라니까. 금방돌아올거야"

"아니야 집 나간 바퀴벌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거 봤어? ...우리는 다시는 뽀순뽀순 퀴를 볼 수 없을거야"

어항을 붙들고 있던 사육담당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핑퐁을 꺼내 뽀순뽀순 잉에게 던져주었다. 그모습이 얼마나 쓸쓸하던지 상원은 불쑥 의로의 말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마 꼭 찾을 수 있을거야"

"..그럴까?"

"으 응"

"후우 걔가 널 참 좋아했는데"

"....."

뽀순뽀순 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기에 상원은 바짝 얼어버렸다. 

"너만 보면 좋다고 붕붕 날았는데 우리 마리....."

"아하하하.."

상원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신사임당이 키운 섹시한 대나무를 구경하러 가자는 대진을 따라 상원은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2학년 6반 학생들이 모여 키득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대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이 후배들아"

"오! 선배님!"

"선배님들 오셨습니까"

역시 희재고 6반은 어느 반보다 단결력이 좋았다. 2학년 학생들과 대진이 상원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반겼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고 있었냐?"

"크크 존나 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형님"

대진이와 안면이 있어 보이는 후배 하나가 키득거리며 말을 꺼냈다. 

"무슨 애긴데? 야한 얘기면 하고 아니면 그냥 넣어둬"

"아 대박! 완전 대박이예요 형님"

"뭔데?"

대진이 눈을 빛내며 후배를 재촉했다.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 그 s반에 키크고 얼굴 좀 잘생겼는데 싸가지 존나 없는 새끼 아시죠? 미국에서 살다 온놈"

미국에서 살다 온 놈이란 말에 상원이 눈이 번쩍 빛났다. 그가 아는 s반에 키 크고 잘생기고 미국에서 살다온 싸가지 없는 놈은 조석희 하나였다. 

"아 그 뭐지. 이름도 싸가지 없었는데 저새끼였나?"

"조석희요"

다른 한명이 얼른 대진의 기억을 고쳐주었다. 하지만 대진은 조석희나 저새끼나 그게 그거라고 일축했다. 

"아무튼 형님 걔가 어제 대박"

"대박 뭐"

"여자를 방에 끌여들어서 막"

녀석이 손바닥 두개를 겹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낄낄거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상원은 손바닥을 마주 잡고 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 시발 장난아니다. s반에 그런 대인배가 있어?"

"걔 장난아니잖아요  저번에는 학교 앞에 가슴이 수박통만한 라틴계미녀가 차로 태워다주고 막 키스도 했잖아요"

"대박 부럽다. 정말 대박이네 이야 나도 라틴계 여자랑 한번 해봤음 소원이 없겠다."

대진이 진심 부럽다는 듯 얼굴을 하고 감탄성을 날렸다. 하지만 상원에겐 들어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외국여자를 꼬시지?"

"걔 살라살라 영어 존나 잘하잖아요"

"우리 상원이도 영어잘하는데"

대진이 옆에서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상원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나하고는 비교도  안돼. 석희는 완전 네이티브잖아"

"네이? 뭐? 무슨 티비?"

"원어민 수준이라고"

"뭐? 무슨 어민?"

"외국인 수준이라고"

상원은 대진의 수준에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외국인이란 단어는 알아들은 대진이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키가 자지가 크긴하지. 그러니 외국 여자들이 붙는거야"

"...석희 양키 아니야"

엄밀히 따지자면 서양인의 것을 능가하는 크기였지만 조석희는 검은 눈에 흑박을 가진 동양인이었다. 

"외국인이라며 그게 양키지 뭐가 양키야 서키양키 , 야 입에 착착 붙는다."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온거 뿐이야. 우리나라 사람이야"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 국적만 가진 건 아니에요"

"어?"

김이경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학생회장을 알아본 6반 학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석희 미국 시민권 있거든요  거기서 계속 살아서"

"어릴때는 영국에 있었다고 하던데?"

"어, 선배가 그건 또 어떻게 알아요? 석희랑 친해요?"

이경의 물음에 상원은 잠시 고민하다 아니 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조석희의 표현을 따르자면 상부상조하는 관계이긴 했지만 친하다는 말로 표현하긴

무리가 따르는 사이였다. 

"그런데 잘 아네요"

"그냥.... 들어서"

"아무튼 그놈은 양키라는 뜻이지?"

깔끔하게 결론짓길 원하는 대진이 물었다. 김이경이 그거 참 어렵네요 하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사고 방식이나 선배님이 서양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보자면 양키가 맞은 거 같은데 유전적으론 한국인이니"

상원은 김이경에게 네가 조석희의 대진이 서양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어찌 아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간 변태로 낙인찍히기 딱 좋은 질문이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선배님 좋을대로 생각하시죠"

김이경이 웃으며 대답하자 대진은 그럼 양키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진이 6반 후배들과 함께 신사임당이 키웠다는 야한 대나무를 뽑으러 가자 상원은 이경에게

말을 건넸다. 

"...석희랑 친한가봐?"

이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학생회 활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석희가 종종 김이경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봐왔던 상원이었다. 

"저희가 친하기 보다 집안끼리 친해요"

"집안?"

'저희 외가쪽 기업이 한국에서 하는 사업에 석희네 외가 지분이 좀 얽혀 있거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한국에서와 기업이었다. 상원은 싹싹하고 사람좋아 친근하게 느껴왔던 후배가 갑자기 일만광년은 멀어진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어릴때부터 같이 놀던 사이죠 뭐"

김이경의 어릴때 모습도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조석희의 어릴 때 모습은 더욱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상원은 어린조석희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 노력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 어릴때 같이 찍은 사진 보여드릴까요?"

"응! 볼래"

대답해 놓고도 상원은 자신이 너무 티를 낸건 아닌가 싶어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김이경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상원에게 김이경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아, 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 어제 어디 가셨던 거예요?"

"응?"

"선배 친구들이 찾으러 돌아다니시던데요? 식사 끝나고 숙소로 가신거 아니었어요?"

"...아 잠깐 누구 좀 만나고 갔어"

"누구요?"

"...누구"

상원은 이쯤이면 자신이 대답하기 곤란한 것을 눈치 챈 이경이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경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누구요? 하고 되물었다. 

"있어 너 모르는 사람"

거짓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괴로운 상원은 속으로 김이경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아, 그렇군요"

김이경이 그렇게 대답하자 상원은 다행으로 여겼다. 후배가 또 곤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하는 상원의 목을 김이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선배 오늘 주무실때 모기향 피우고 주무셔야 겠어요"

"응?"

"벌써 모기가 극성인가 봐요"

"그래?"

상원은 목덜미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이상하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그래도 아침에 승완이가 버르장머리 없는 모기가 벌써부터 깝친다고 중얼거렸던걸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간지러운 것 같지 않은데 아무래도 모기한테 심하게 물린 모양이었다. 

그때 갑자기 김이경이 허리를 숙여 상원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혀를 할짝였다. 

"헉...!!"

놀란 상원이 목을 움켜쥐고 뒷걸음질 쳤다. 이건 또 무슨 짖궂은 장난인가 싶었다. 

"모기 물린거 침 바르면 낫는다잖아요"

".....내 침 발라도 되는데"

"다른 사람 침이 더 효과적이래요"

"...어"

한번도 그런 기사는 본적 없는데.

"선배 그러면 재미있게 놀다가세요"

김이경이 웃으며 상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상원은 괜히 화끈거리는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서 윤대진이 야한 대나무를 뽑았다며 폴짝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이 괴상하고 취향이 난잡하지만 상원은 속을 알 수 없는 후배보다 이쪽이 

몇배는 편하다고  생각하며 대진을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수학여행 일정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저녁시간에는 해변가에서 자유시간을 갖게 되자 대다수의 6반 학생들은 팬티만 입고 물에 뛰어들며 괴성을 질렀다.  

아직 물에 들어가기 추운 날씨임에도 물 만난 고기들처럼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상원은 혹시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동석과 몇몇 아이들은 뽀순뽀순 퀴를 찾아보겠다고 숙소에 남았다. 

상원은 혼자 해변가를 걸으며 오래간만의 평화를 만끽했다. 뽀순뽀순 퀴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운명론을 믿는 상원은 어쩌면 뽀순뽀순 퀴는 강원도로 

이주해 살아갈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안녕....잘 살아"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향해 상원은 진심을 다해 뽀순 퀴의 안녕을 기도했다. 

"누구한테 하는 인사예요?"

"헉 석희야"

자신을 보자마자 반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겁을 하는 상원을 보고 조석희는 낯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선배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런 얼굴을 해요"

"아니야 그냥 놀라서 그래"

상원이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대답했다.  하루에 두번이나 조석희가 자신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니 그에겐 우환청심환을 먹어야 할 법한 

일이었다. 게다가 어제 그런 일을 한 후라 상대방을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몰라 상원은 평소보다 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었다. 

"받으세요"

조석희가 상원에게 종이로 된 쇼핑백을 내밀었다. 상원이 이게 뭐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조석희는 쇼핑백을 한 번 더 내밀었다.  상원은 조심스럽게  쇼핑백을

받아들고 그 안을 살펴보았다. 

"이게 뭐야?"

"옷이요"

"무슨 옷?"

"선배 옷이야"

상원은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선뜻 쇼핑백안에서 옷을 꺼내지 못했다. 조석희가 한숨을 쉬며 옷을 꺼내 상원에게 직접 내밀었다. 

"옷 좀 갈아입으라고요 계속 땀내 나는 학교 체육복 입고 다니실 거예요?"

교복은 그 모양이고 가져온 옷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옷 살 정도의 돈은 없는데"

상원이 자신이 가진 돈으로도 한 벌을 살 수 없는 브랜드의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그냥 가지세요"

"나 주는 거라고?"

"네"

"오늘은 너네 숙소로 가기 그런데 우리반 애들하고 같이 놀기로 해서"

"누가 선배한테 오래요?"

여기까지 들은 상원은 차근차근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물건을 준다. 돈을 안 받는다. 대가는 필요 없다. 

"....이거 선물이야?"

도출된 결론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도 부끄러워 옷을 움켜쥐고 있는 상원의 얼굴은 바다 너머로 지고 있는 저녁노을보다 더 빨갛게 물들었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조석희가 심상한 투로 되물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대충 골라온 옷가지에 상대방이 필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 그에겐 우스울 뿐이었다. 

"체육복 계속 입고 있으면 냄새나잖아요"

"샤워했는데...."

상원이 자신의 옷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며 대답한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고마워 석희야"

상원은 손에 쥐고 있던 옷을 곱게 접어 쇼핑백안에 넣으며 말했다. 이 옷은 아마 평생 가도 한번 입지 못할 것이다. 상대가 별다른 의미없이 건넨 것일지라도 자신에게는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

"갈아 입어요"

"응?"

"갈아입고와요 체육복 냄새 맡기 싫으니까"

상원은 어찌할 바를 몰라 옷을 손에 들고 쩔쩔맸다. 

조석희에게 자신의 체육복 냄새-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귀한 옷을 어디서 갈아입어야 할지도 몰랐다. 

"숙소까지 갔다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그때까지 조석희를 여기에 세워두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아니. 기다리라고 한다고 기다릴 조석희도 아니었다. 

"저기서 갈아입으세요"

조석희가 상원의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본 곳에는 해송이 자라고 있는 검회색 바위가 놓여 있었다. 바위 뒤로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지만 상원은 밖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달갑지 않았다. 

"저기서?"

"그럼 여기서 갈아입으시든지"

조석희의 싸늘한 반응에 상원은 하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은 편을 택했다. 파도가 세차진 않았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상원은 주머니에 넣고 있던

아이팟과 핸드폰을 조석희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미끄러지지 않게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며 바위뒤로 돌아갔다. 바다가 정면으로 보여 조금 무섭긴 했지만 상원은 얼른 갈아입고 가자는 생각에 입고 있던 

체육복 윗도리를 벗어 바위에 걸어두었다. 조석희가 준 옷을 손에 들고 상원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이걸 내게 조석희가 선물로 주다니, 조석희가 내게..... 나한테 주다니.

상원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색 니트를 얼굴에 대고 잠시 감격을 만끽했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냄새도 맡아보고 뺨에 비벼보기도 하고 가슴에 안아보기도 

했다. 니트와의 데이트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상원이 코앞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미쳐 보지 못했다. 

"...!!"

철썩 한느 소리와함께 머리서부터 쏟아지는 바닷물에 상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바닷물을 뒤집어 쓰는 순간 상원은 이 차가운바닷물에 팬티한장 입고

뛰노는 친구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도 들었다. 가벼운 니트 한장 걸치고 돌아다녀도 될만큼 따뜻한 날씨라고 해도 바다는 달랐다. 물과 모래의 비열이 달라

육지보다 바다가 한 계절 늦는다는 것을 상원은 온몸으로 체험했다. 추워서 턱이 떨려 이가 부딪혔다. 

상원은 일단 여기에서 나가야겠단 생각에 옷가지를 챙겨들고 바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새 옷으로 갈아입기는 커녕 바닷물을 뒤집어 써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나가자 조석희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상원을 바라보았다. 

"...미안"

파도가 치는 것이야 달과 지구의 인력문제라고 해도 부주의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상원은 일단 사과를 건넸다. 

"선배는 용케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가끔 나도 그 생각 들어"

맞장구 쳐놓고도 상원은 스스로가 비참해졌다.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용하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이거 일부러 사다 준건데 미안하다. 가서 빨아 입을께"

상원이 입어보지도 못하고 바닷물에 푹 적신 옷을 쥐고 말했다. 

"버려요"

"뭐?"

"소금기 닿으면 옷 못 입어요 그냥 버려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빨면 돼 괜찮아 안버려"

절대 버릴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매달려도 반드시 손에 쥔 채 지고 갈 것이 조석희에게 선물 받은 이 옷이었다. 

상원이 고집스럽게 옷을 끌어안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옷을 빼앗아 가려면 내 시체를 밟고 가라! 하는 눈빛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 쉰 조석희는 마음대로 

하라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귀하디 귀한 선물을 사수한 상원은 젖은 옷에서 물기를 짜내어 다시 쇼핑백 안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덜 젖은 체육복 윗도리를 입으며 상원은 맡겨놓은 핸드폰과 아이팟을 조석희에게 건네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다행이라고요?"

"이건 안 젖었잖아 아끼는 건데"

상원이 흰색 아이팟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사람은 고사하고 물건을 아낀다는 개념이 없는 조석희가 희한하다는 얼굴을 했다. 

"용돈 모아서 내가 산 물건이거든, 좋아하는 노래도 담겨 있고"

한달 용돈이면 아이팟 대리점 안에 있는 물건 전체를 구입할 수 있는 조석희는 대수롭지 않은 물건을 소중하게 쥐고 있는 상원을 힐긋 쳐다보고 물었다. 

"무슨 노래요?"

"에피톤 프로젝트라고"

"아 그거"

이전에 한번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석희가 말을 이었다. 

"질리지도 않아요?"

그때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한 가수의 노래만 계속 듣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난 한번 좋아하면 쉽게 질리지 않거든 음식이든 가수든 뭐든 그래서 어머니는 반찬 만드시기 편하다 하시지만"

말해놓고 상원은 이건 좀 위험하겠다 싶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좋아한다고 고백한 짝사랑 앞에서 자신의 이런 성향을 밝히는 것은 난 앞으로도 널 스토킹할거야. 라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됐어요 선배 취향인데 뭐"

깔끔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상원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든 조석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확인사실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서늘함에 상원은 아까보다 한층 더 추워진 느낌이 들었다. 

"바닷바람 참 시원하다"

이가 부딪힐 정도로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상원은 일부러 쾌할한 척 했다. 조석희가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색 윈드브레이커를 벗어 상원에게 건냈다. 

"헉 아니야 난 괜찮아"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참 시원하시겟어요"

"....."

"감기라도 걸려 바이러스 저한테 옮기지 마시고 입으시죠"

"그래 고마워"

상원은 체육복 위에 점퍼를 걸치면서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조석희가 자신에게 선물을 건네지 않나-  물에 빠졌지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지 않나- 바이러스에 옮기지 말라는 의도에서지만,

이건 다이어리에 별 7개를 그릴 수 있는 날이었다. 살다보면 이런 행운이 자신에게 오는......

"헉-!!"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상원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괴성을 냈다 조석희는 또 왜저러나 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떡하지"

"뭐가요"

"이게 다..그러면 안되는데"

상원은 울고 싶어졌다.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반대급부가 있다는 뜻인데 당장 떠오르는 것은 갑자기 사라진 뽀순뽀순 퀴였다. 

강원도에서 살 운명이라고 여기고 신경쓰지 않았던 뽀순퀴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떡하지 아 진짜 미치겠다"

상원이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자 조석희가 인상을 쓰며 재차 물었다. 

"뭐가 어쩐다는 거예요"

"......뽀순 퀴"

"네?"

"여기 데려왔거든 내가 데려온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데 걔를 잃어버려서..... 없으면 안되는데"

상원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 했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친구들과 함께 숙소에

남아 뽀순 퀴를 같이 찾을 걸 하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 왔다. 

"그게 대체 뭔데요. 개?"

"아니...... 벌레"

벌레라는 대답에 조석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긴 한마리에 몇 만원내주 수십만 원씩 하는 벌레를 애완동물이랍시고 키우는 작자들도 있으니 비슷한

맥락이려나 하고 넘겼다. 

"반에서 벌레를 키우기도 하는군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뽀순 퀴에게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자는 발언을 해서 문제를 키운 것은 자신이었다. 뽀순 퀴는 야생성을 상실해 어쩌면 지금쯤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아사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상원은 안되겠다 싶어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조석희에게 건네주었다. 

"나 숙소로 돌아가 볼게 가서 찾아야겠어"

"마음대로 하세요"

갑자기 생각난 그깟 벌레 한 마리에 저렇게 난리를 피우나 싶었지만 점퍼를 받아들였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이 옷도 빨아서 잘 입을게"

상원이 물기가 흐르는 쇼핑백을 들고 인사를 건넸다. 인적이 드문곳으로 상원을 끌고 가 저녁식사 전 가볍게 욕구를 채우려 했던 조석희는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사 모든 일에 무관심했던 그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건 그 순간 인 것은 우연이었다. 

"그런데 무슨 벌레라구요?"

모래사장을 걷고 있던 상원이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입을 열려다 멈칫하고 결심한 듯 주먹에 힘을 주길 몇 차례 반복하던 상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뽀순퀴이 종을 밝혔다. 

"....바퀴"

"네?"

상원은 그때 처음으로 조석희도 귀로 들은 현실을 부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Roach?"

경악에 찬 R발음도 멋지다 생각하며 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모래시장을 뛰어 도망 왔다. 숙소에서는 아직도 뽀순 퀴 수색작업이 한창이었다. 

뽀순 잉이 힘을 잃고 핑퐁을 거부하자 사육담당을 맡고 있는 학생은 대성통곡을 하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 그날 밤 한승완은 뽀순 퀴를 무사히 구출해 오는 자에게 졸업할 

때까지 화장실 청소 면제권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대망의 수학여행이 막을 내리고 3학년 6반 아이들을 실을 버스가 희재 고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모두들 지치고 피곤이 완연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려왔다. 

 장기자랑 구경도 마다하고 뽀순 퀴 구출작전에 나섰던 6반 학생들은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다. 반장한승완이 화장실 면제권을 내걸자 저마다 한마리씩 어디선가 바퀴벌레를

들고 나타났다가 김동석에게 날벼락을 맞아야 했다. 

"미안해"

버스에서 내린 상원이 어항을 들고 터널터널 걸어가는 사육담당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왜 네가 미안해 관리를 못한 내 잘못이지"

"아니야 내가 처음주터 그런 말을 안했다면...."

상원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욕심으로 시작되고 벌어진 것이라 믿었다.  처음부터 바퀴벌레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감정이입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조석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이건 너무 멀리 왔다. 조석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좋아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안될일이라고 믿었다.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매사 그렇게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버릇 좀 고쳐"

옆에서 지켜보던 동석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아 시발 사춘기라 그년이 집을 나간걸 어쩌겠어 아주 그냥 돌아오기만 해봐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 로치 레이드를 먹여버리고 말겠다."

상원을 거든답시고 끔찍한 발언을 해버린 대진을 동석이 주먹을 쥔 채 말없이 노려보았다. 

"후.... 강원도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상원이 뽀순 퀴의 행복을 기원했다. 물론 강원도민에게는 폐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뽀순퀴가 없어 자신에게 다시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잘 살기만 

한다면.....

"움직이지마"

동석이 매서운 눈을 하고 상원에게 나지막하게 협박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친구의 변모에 상원이 이유를 물으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동석이 다시한번 소리쳤다. 

"움직이지마! 그대로 가만히 있으란고"

상원이 동석과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맺고 끊는것이 칼같이 분명한 동석은 6반에 어울리지 않고 혼자 붕뜨는 상원을 달가워하지 않아 입학초에는 말도 걸지 못하게 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곤 햇다. 한번은 상원이 어지렵혀 있던 동석의 열려 있던 사물함을 정리해줬다가 함부로 남의 것에 손대지 말라고 집어던진 책모서리에 얼굴을 맞고 코피를 흘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상원의 진면목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동석이었다 상원은 자신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해주는 동석을 친구처럼 형처럼 의지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동석이 갑자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상원은 놀라움보다 서러움이 앞섰다. 뽀순 퀴 때문에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가슴은 그걸

따르지 못했다. 

"꼼짝도 하지마"

"....!"

동석이 자신에게 주먹을 뻗는것을 보고 상원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어떤 충격도 전해지지 않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쉭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

상원이 눈을 떴을 땐 함박 미소를 띠고 있는 동석의 얼굴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우와 애가 왜 거기가 있다냐?"

"어?"

"네 어깨에 아주 얌전히 앉아 있던데, 언제부터 거기에 붙어 있었지?"

고민을 하던 승완은 상원의 어깨와 동석의 손의 공로를 인정해 두 사람 모두 졸업 때까지 화장실 청소면제권을 줘야겠다고 선포했다. 상원은 기쁨에 찬 친구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였는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상원은 정신을 차렸다. 그가 눈을 뜨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학교 체육실 옆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실로 달려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샴푸와 비누를 이용해 3번씩 씻어낸 것이다. 원래도 꼼꼼하게 씻는 편인데다 그렇게 하고 나니 이미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한사코 데려다 주겠다고 버티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상원은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가방을 들었다. 

교실을 나서면서 상원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지금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새로운 문자 4개

[기절할 정도로 싫으면 내가 몰래 버리고 올까? 쩝 동석이가 죽이겠군]

대진의 번호였다. 상원은 웃으며 다음 문자를 확인했다. 

[내일 보자]

평상시와 같은 짧고 무뚝뚝한 동석의 문자였다. 이 짧은 문장안에 수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아는 상원은 아까 전 잠시간 친구의 진심을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차 조심하고 늦게 가지 말고 아치들 조심해 시비걸면 내 이름대 =ㅂ=]

이어지는 잔소리와 어울리지도 않는 이모티콘을 보아하니 승완이 분명했다. 하나 남은 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버튼을 누른 상원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도서관 지금]

상원은 우선 문자가 도착한 시간을 보았다. 5시 30분 벌써 35분 전에 도착한 문자였다. 상원은 그대로 복도를 달렸다. 조석희의 더러운 성격을 고려해보면 이미 떠났을게

자명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가야했다. 부르면 간다.  그것이 조석희와 약속한 사항이었다. 

복도를 지나 동관의 끝에 있는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한 상원은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쥐어 비틀어보았다. 달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조석희는 커다란 책상에 몸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붉은 햇살이 바닥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것이 어떠한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상원은 믿었다. 누군가에게 반하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그 순간에 속한

시간적 공간적 장면은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상원은 자신이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늦으셨네요"

조석희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입을 연 순간 상원은 잠시 멈추었던 시간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 미안 일이 좀 있어서"

조석희가 상원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손을 뻗어 상원의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물었다. 

"샤워했어요?"

".....응"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원은 머리카락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젖어 있어서 다행이야 이런 생각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석희가 기다리고 있어서 다행이야.

...뽀순퀴를 찾아서 다행이야.

"선배 오늘 늦게 가셔도 되죠?"

"아니 나 이미 집에 간다고 말씀드렸는데"

상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석희가 쳇, 하고 혀를 차며 인상을 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지 말걸 그랬나 하고 후회를 해봐도 이미 엎지런 진

물이었다.  

"다시 전화 거셔서 좀 늦는다고 하세요 일이 생겼다고 하면 이해해 주실거예요"

아들의 특수한 사정을 아는 부모님의 이해심을 이용하라는 꼬드김이었다. 상원은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오늘 아예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싹튼 것이다. 

하지만 조석희는 상원이 물러선 만큼 한발자국 더 다가왔다.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상원은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러 애를 썼다. 

그의 몸은 그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선배 그럼 상부상조 하도록 하죠"

"....."

또 그놈의 상부상조 타량이냐.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때 상부상조의 뜻을 다시 각인시켜 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상원에게 밀려왔다.

"선배 저한테 하나 빚졌거든요"

"옷이라면 내일 돈 가져와서 줄게"

돈을 주고 나면 선물이 아닌 게 되지만 그래도 상원은 옷을 소중하게 간직할 생각이었다.

"그거 말고요"

조석희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상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뭔데 하고 상자를 손에 든 순간 상원은 익숙한 진동을 손가락을 통해 느끼고 황급히 상자를 내려놓았다. 

"잃어버리셨다면서요"

"....."

"제가 찾아드렸으니까 저한테 빚 지신거죠"

"....석희야"

"네"

"찾았어"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후 조석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자를 들어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나직한 음색으로 그가 말했다. 

"찾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조금 전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상원은 이런 인간을 상대로 자신이 짝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싹텄다. 

"그럼 그냥 솔직하게 말하죠 선배 벗어요"

"무,무슨 소리야 갑자기"

상원이 뒷걸음질 쳤다. 조석희가 성큼 다가왔다. 

"그날 했던거요 생각보다 괜찮아서 말이에요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난단 말이지"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입맛을 다시며 조석희가 상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빨간색 경고등이 상원의 머리위에서 맹렬하게 울려댔다.  도망가라 달려라 살고 싶으면 튀어!

"나 집에 가야해"

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에는 앉아 있는 것조차 고역일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그 큰 것이 지금 상태에서 다시 들어간다면 앉아서 공부는 커녕 일상생활조타 영위하기 힘들게 분명했다. 

오매불망하던 짝사랑 상대와 몸이 닿는 것은 황송한 일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노멀한 취향을 가진 상원은 뒤를 이용해 하는 행위가 힘들었다. 

"그러게 어제 해변에서 그렇게 가지 마셨어야죠"

조금이라도 맛을 보았다면 이렇게까지 갈증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 조석희는 생각했다. 몸이 감기는 느낌이나 아는 맛은 여자보다 덜하지만 쾌감만을 두고 본다만 상원의 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찰지게 빨아들이는 구멍의 감도나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느껴지는 체향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성질의 것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안에서도 조석희는 내내 상원을 도서관으로 불러다가 그 몸에 자신의 것을 꽂아 넣고 박아대는 상상을 했다. 

30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약간 짜증이 나긴했지만 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퍼지는 달콤한 체향에 자신을 기다리게 한 것은 그냥 넘어가주자고 마음먹었다. 

"해요 선배"

잘된 일이었다. 상대는 자신이 손만 내밀면 벌벌 떨며 황송해하는 호모니 원할 때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내려다 본 상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상대는 뭐든지 서툴렀다. 처음에는 그 서투름에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아래 깔려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음란한 신음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매달려 우는 모습도 제법 괜찮았다. 저렇게 부들부들 떨면서도 상원이 결국엔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조석희는 느긋하게 웃어보였다. 

"미안 ! 나 먼저 가볼게 나중에보자!"

상원은 조석희의 어깨를 밀어내고 가방을 움켜쥔 채 그대로 도서관을 뛰어 나갔다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에 조석희는 미처 손을 쓰지 못했다. 

"Damn it."

토요일 저녁.

월요일까지는 이틀이 남아 있었다.

".....!"

교문 앞에 서 있는 조석희를 발견한 상원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차 뒤로 숨겼다 바닥에 엎드린 상원은 이 짓도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고개를 들어 살짝 다시 살펴보았지만, 교문앞에서 몸을 기대고 서 있는 조석희는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게 나라면 

좋겠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이 이중적인 생각. 

상원은 한숨을 내쉬며 조석희가 학교 안으로 어서 들어가길 바랬다. 지나가던 김이경이 그런 상원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상원은 저리가라고손을 내저으며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무슨 생각인지 김이경은 유쾌한 목소리로 크게 상원을 불렀다 

"상원선배! 거기서 뭐하세요?"

이쯤되면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무의미한 행위였기에 상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교문에 몸을 기대고 서있던 조석희가 사나운 눈을 하고 이쪽을 노려보았다. 

"선배 거기서 또 누구 렌즈라도 대신 찾아주고 계신건가요?"

"아니 그... 동전을 좀 흘려서 줍고 있었어"

상원은 있지도 않은 동전을 찾는 시늉을 해야 했다. 자꾸 이런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팬터마임의 대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선배 회의록 드릴 테니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서 좀 봬요"

"어? ...응"

저쪽에서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는 조석희를 발견한 상원은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하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느새 상원이 앞으로 다가온 조석희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선배 동전 줍고 계신데"

김이경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뿔테 안경속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김이경은 아군으로 둔다 해도 그리 큰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으로 돌리면 가장 피곤한 타입인걸 알기에 조석희는 굳이 그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했다.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닥쳐"

금요일 저녁부터 지금까지 단 1초도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라서 신경이 곤두서 있엇다. 머러질 같은 선배가 주말에 나오라는 자신의 연락을 무시하자 조석희는 아침부터 

교문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동전 줍고 있었다고?"

상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조석희는 한층 더 짜증이 치밀었다. 

"다 주었어요?"

"응"

다 못 주웠다고 하면 동전 하나에 백 대씩 후려갈길 기세였다. 

"그럼 가요"

조석희가 상원의 손목을 잡아챘다 겁에 질린 상원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이경과 눈이 마주쳤지만 번들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상원 선배"

생각에 잠겨 잇던 김이경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사람 좋은 후배에서 속을 알 수없는 후배로 변모해가는 인물이긴 했지만 상원은 지금 자신을 도와줄 유일한 상대는 

김이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이경아"

"그럼 아까 약속한거 잊지말아요"

"뭐? 그게.... 잠깐 잠깐만.."

질질 끌려가면서 상원은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힘의 차이에 소름이 돋앗다. 정말 있는 힘껏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써봐도 조석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안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 수업 들어가야해 "

"누가 듣지 말라고 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끌어안고 잠만 잘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석희가 하지말라고 말을 들을 성격도 아니었다. 

"수업 끝나고 갈게 수업끝나고"

일단 지금은 말로 조석희를 설득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상원이 눈앞에서 도망간것을 본 조석희에겐  그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선배 내가 언제 선배 계속 붙들고 있겠다고 했어?"

"...."

"잠깐만 가서 대주고 끝내면 될 거아냐 왜 이렇게 성가시게 굴어요?"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조석희의 발언에 상원은 마음이 아팠다. 선배로서, 인간으로서 위엄을 되찾고 싶었지만 이미 자신이 시작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일이었다. 

처음부터 깨끗하게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그가 자신을 필요한다는 기쁨에 젖어 결국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무리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상원은 결심했다. 

"나는....."

말을 마치기 전에 누군가 저 아래서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게 상원의 눈에 들어왔다. 김동석이었다. 

학교 건물로 올라오는 비탈길을 순식간에 달려 올라온 동석희 조석희 앞을 가로 막았다. 

"너 그때 그 새끼 아니야, 왜 또 우리 상원이 끌고 가"

"우리 상원이?"

조석희가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선배 순진한 척도 다 연기였어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상원은 눈만껌뻑 거리며 조석희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 재대로 내지 않는 앳된 표정의 선배와 눈이 마주치자 조석희는 속에서 시커먼 감정이 

확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손부터 놓고 말해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조석희의 시선이 동석에게 스윽 옮겨 갔다. 

권투를 할 때 링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읽어 내는 기술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동석이지만 조석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체격과 신장차이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닌 그 인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이 동석을 짓눌렀다. 

어째서 이런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놈이 상원과 얽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칫하면 골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석은 잔뜩 긴장하고 조석희를 노려보았다. 

"뭐야 누가 싸움을 한다는 거야!"

학생주임의 걸걸한 목소리가 살벌한 분위기 속을 파고 들었다. 살면서 저 불독이 반가워 보이는 경험도 있구나 하며 동석은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조석희는 좀 전과 별 다를 게 없는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니들 여기서 뭐해 당장 교실로 돌아가"

학생주임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들을 갈라서게 만들었다. 상원은 자신의 손목을 쥐고 있는 조석희 손을 풀려고 계속 등 뒤에서 말없는 사투를 벌렸다. 

지금 이대로 학생주임이 돌아간다면 상원은 조석희에게 끌려갈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손을 놓아달라고 큰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간 당장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다음부터가 고달파 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조석희와 싸움 벌이는 것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동석이 뒤돌아 가려던 학생주임을 불러세웠다. 

"왜 부르냐"

"상원이가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는데요"

"상원이가?"

6반의 다른 학생이라면 몰라도 상원이라면 선생들 사이에서 신임도 두터웠고 개중에는 그를 마음 깊이 동정하는 선생들도 있었다.

"우리 상원이가 무슨 일로/"

학생주임이 그중 하나였다. 

"아..하하..그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이 칼을 던져놓고 친구에게 뒤집어 씌울 줄 아는 동석이나 다른 바퀴벌레를 잡아와 놓고 그게 뽀순퀴라고 생색내는 조석희와는 다르게 상원은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했다. 

"아무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상담실로 같이 가서 얘기하자"

학생주임의 말에 조석희가 김동석을 죽일듯이 노려봤다. 

여드름이 난 꼬마녀석이 자신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기분 나빠진 것이다. 상원은 자신이 떠나고 나면 이곳이 피바다가 되리라 예감했다. 

"선생님"

상원이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상원아"

"...동석이도 같이 상담 받고 싶다고 하네요"

놀란 동석이 입모양으로 내가? 언제? 하고 묻는다. 상원이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자 눈치 빠른 그는 그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연극에 동참했다. 

"아 맞다 선생님 저도 긴히 드릴 말씀이 지금 막 생각났네요"

"그래 알았다 그럼 너도 같이 가자'

학생 주임 선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동석의 동행을 허락했다 아직도 조석희는 상원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나 갈게"

상원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조석희가 손을 놓았다. 상원이 차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조석희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 옆을 지나갈 때 조석희는 상원의 어깨에 손을대고 

허리를 숙여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중에 봐요. 선배.

학생 주임의 뒤를 쫒아가면서도 상원은 곧 닥쳐올 그 나중에 대한 공포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때문에 그는 걷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상담실을 나오자 동석은 상원의 손을 끌고 인적이 드문 복도 끝으로 데리고 갔다. 

"너 걔랑 무슨 일 있지"

동석이 다짜고자 직구를 던졌다. 

"누구"

"그 새끼 아까 아침에 봤던 놈. 무슨 일이야 빨리 안 불어?"

"그냥 아는 후배야 학생회 후배"

"너 자꾸 그따위로 은근슬쩍 넘길래? 내가 병신이냐? 그게 그냥 후배가 할 짓이야?"

동석의 호통에 상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침에 있었던 일은 아는 후배와 어쩌다 생긴 트러블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 새끼가 너 무슨 약점 잡고 협박해? 너 돈 뜯기냐?"

"아니야 절대 그런거 아니야. 석희가 왜 내 돈을 뜯어. 걔 돈 많아"

"그럼 돈 많고 허우대 멀쩡하고 s반이라는 녀석이 왜 너한테 그렇게 지랄을 해! 무슨 일이 잇으니 그런 거 아냐!"

동석의 매서운 추궁에 상원은 당황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 눈치 빠른 친구를 속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일에 상관마.

라고 말하기에도 늦은 것 같았다. 

"니가 말 안하면 승완이 한테 가서 말해서 그 새끼 우리가 죽인다."

동석은 말로 설득이 가능할지 몰라도 승완은 달랐다. 조석희가 상원에게 오늘 벌인 일이 그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연장을 들고 2학년 교실로 

찾아가 싸움을 벌일 인간이었다. 

친구가 다치는 것도 그렇다고 조석희가 다치는 것도 싫었다. 

"맘대로 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

화가 난 동석이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해"

"뭐라고?"

"내가 걔를 좋아해!"

상원의 절박한 외침에 동석은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전 자신의 귀에 전달 된 말이 의미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걔를 , 조석희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상원이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자 동석은 이녀석이 농담을 하고 잇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다. 

"그러니까 잠깐, 니 말은 니가"

동석이 손가락으로 상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걔를 좋아한다고?"

"......응"

".............."

마우스피스도 안 물고 헤드기어도 없이 타이슨에게 정통으로 얼굴을 얻어맞는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을 텐데. 

동석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땅을 노려보며 침묵을 지켰다. 상원은 그런 친구의 반응 때문에 슬슬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싸늘하게 굳어갔다. 

"그거...그놈도 알아?"

"뭐를?"

"네가 걔를 좋아하는 걸 그놈도 아냐고?"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고백도 두어번 하고 서너번 차이고 그러고도 이틀에 한번은 도서관에서 만나고.... 그런 일까지 한 상태였다.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뜨근하게 달아올라 상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석의 마음은 울화가 치밀었다. 

"걔가 그렇게 좋아?"

아무리 봐도 나쁜놈이었다. 여자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나쁜남자가 아니라 남자. 아니 인간적인 시각으로 봐도 그놈은 나쁜 놈이었다. 그럴 아는지 모르는지 상원은

그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걔는 너 좋대?"

동석이 이를 부드득 갈며 물었다. 빌어먹을 나쁜 놈이지만 상원이 좋다면 친구로서 어떻게든 참아봐야겠다고 자신을 달랜것이다. 

"...그럼 정말 좋겠다."

상원의 한숨어린 한마디에 동석의 분노가 폭발했다.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놈을 좋아해! 싫다는데 왜 좋아! 뭐가 좋아!"

"아니야 그래도 석희가 알고 보면 나쁜 놈은....."

...... 알고 봐도 나쁜놈이다. 

"그. 그래도 보기보다 자상한 면도..."

.....없었다. 

"그러니까...그러니까.... 잘생겼잖아"

필사적으로 조석희의 좋은 점을 찾아내려던 상원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짧게 짝사랑의 이유를 설명했다.  동석은 급격하게 올라오는 분노를 뒤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목덜미를 

손으로 잡고 상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좋다고? 잘생겨서? 하...하하"

기가 막히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순하고 착하지만 뚝심이 있어 다단계나 도를 믿으십니까에 넘어갈 걱정은 하지 않았건만, 이게 또 웬 횡액이란 말인가. 차라리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편이 나았다. 

그거라면 가두고 윽박질러 어떻게든 빼올수 있을 테지만 사랑에 빠진 것은 손쓸 도리가 없지 않은가. 

"후,,,, 좋아. 그래 거기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이해를 , 아니 이해 못하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고 그런데 왜 그놈이 널 그따구로 대해?"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상원도 모두 털어놓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 분을 이기지못하고 동석이 주먹으로 실습실문을 두어번 내리쳤다. 퍽퍽 소리와 함께 움푹 패는 문을 보며 상원은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안한 줄은 아냐? 그런 놈 좋아하는 게 미안한 일인 줄은 아냐?"

상원은 운이 참 없었다. 어찌나 운이 없는지 옆에서 보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동석은 그런 친구가 삐까뻔쩍하게 출세하거나 이름을 드높이며 성공하는 것까지 바라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남들처럼 행복하길 바랬는데.

"너 남자 좋아하는건 어쩔 수 없다 쳐, 근데 왜 하필 그런 놈이야"

"....미안해"

그건 정말 상원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상원이 조석희를 좋아한 시점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그는 개새끼였으니.

한참을 문에 주먹을 날리던 동석이 숨을 고르며 분노를 다스렸다. 이내 평정을 되찾았는지 동석이 상원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너 이 사실 , 한승완한테는 절대 말 하지마. 그놈은 눈돌아가면...."

"어? 니들 여기서 뭐하냐?"

한승완이었다. 

"교실 안오고 여기서 둘이 무슨 비밀 얘기를 그렇게 속닥거려?"

아침에 있을 가사실습을 위해 위생복을 걸치고 손에는 날카로운 회칼 두자루를 들고 있는 한승완이었다. 

"...왜 아침부터 칼을 들고 설치냐"

"오늘 회 뜨는 거 배운다잖아  오늘 실습 점수는 무조건 내가 일짱이다. 흐흐흐"

한승완이 양손에 쥔 회칼을 자유자재로 돌리며 나직하게 웃었다. 

"니들도 빨리 교실가서 가방 내려놓고 옷 갈아입고 와"

유쾌한 승완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동서과 상원은 복도를 걸어 나왔다. 동석은 상원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 후끈한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상원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수업끝나자 마자 도서관]

누가 보낸 것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 침울한 얼굴로 상원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자 동석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너 어디가"

"도서관 가려고"

"그래? 그럼 가서 공부 열심히해"

도서관이란 단어에 안심하는 짝에게 상원은 죄책감을 느꼈다. 

사실 지금도 조석희와는 그리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평생 피해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도서관 문이 잠겨 있어서 상원은 자신의 열쇠를 이요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s반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원은 의자에 앉아 조석희를 기다렸다. 무서웠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상원은 겁이났다 하지만 아침보다는 좀 더 냉정을 되찾았을 테니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에 마음을 가라앉힐 겸 상원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두어장쯤 넘겼을 때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눈을 가린 손 때문에 상원은 옴짝할 수 없었다. 

"장난치지마"

그래도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마음이 풀려 다행이었다. 상원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손을 풀어내려 손을 올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아침에 미안했어 하고 싶은 말이 있....."

다음 말은 입술에 의해 가로막혔다.  부딪혀온 입술이 거칠게 움직이며 숨결을 가로막았다.  눈이 가려진 채 당하는 입맞춤의 느낌은 두려움이 먼저였다. 하지만 혀가 얽히고 뜨거운 숨소리가

전해지자 상원은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그만......"

자극적인 입맞춤에 목소리가 떨렸다. 입술 사이에 두고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진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얼굴에 뭔가 딱딱한 것이 닿았지만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다. 

상원은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떼려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상대방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득해진 정신이 돌아온 것은 벼락처럼 울린 문소리 때문이었다. 

"뭐하고 있는 거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상원은 정수리에 얼음물을 끼얹은 기분이 들었다. 상원은 방금전 까지 끌어 안고 있던 누군가를 밀쳐냈다. 

"무슨 짓이야 너"

조석희가 상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선배랑 얘기중이었는데"

김이경이었다. 

상원은 아까 전 자신의 뺨에 닿은 것이 이경의 안경이었음을 깨달았다. 

"죽고 싶냐 김이경"

살벌한 음색이었다.  아침에 동석과 대치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원은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조석희를 말렸다. 

"이, 이경이가 장난친 거야. 그냥 장난친거니까"

"장난?"

"장난?!!"

두 사람이 동시에 상원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조석희쪽이 조금 더 크긴 했지만 김이경도 190을 훌쩍 넘기는 장신이었다. 하나만 있어도 압도적인

사내가 둘이나 같이 마주보고 소리를 지르니 상원은 하마터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선배랑 장난친 거 아닌데요. 어쩌죠"

김이경이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말했다. 

"그게 장난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둘다 기분 나쁘니까"

조석희가 김이경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이게 대체 무슨 재앙인가 싶어 상원은 식은땀이 흘렀지만 일단은 두사람을 떼어놓아야 겠단 생각뿐이었다. 

"이경아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그리고 석희 너도 손 놓아. 둘이 사이좋은 친구잖아"

"선배 말씀드렸잖아요 얘랑 친한 건 제가 아니라 집안이라고"

"그래도 둘이 잘 놀았잖아.잘 다니고 응?"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원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신없는 헛소리가 먹힐 인간들이 아니었다. 조석희와 김이경은.

"필요하니까 다니는 겁니다."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김이경의 싸늘한 목소리에 상원은 흠짓 놀랐다. 

"너 같은건 어차피 운이 다하면 볼 일 없으니까"

조석희가 웃은 것도 같다. 날카롭게 스며든 그 짧은 웃음 뒤에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위로 두 사람이 넘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먹을 날렸다.

조석희는 그렇다고 쳐도 김이경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니 상원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휙,하고 휘두른 주먹에 피가 튀었다. 6반에서 벌어지는 숱한 싸움을 보고 2년을 넘게 지내온 상원이었지만 이런 소름끼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두 맹수가 서로의 목줄기를

물어뜯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말려야겠단 생각에 상원은 조석희의 팔을 붙잡았다 그것이화근이었다. 애초에 상원이 싸움에 조금이라도 아는 타입이라면 절대호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김이경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기 위해 힘껏 어깨를 젖히던 반동으로 상원은 얼굴을 얻어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굴을 맞은 충격과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상원은 비명한번 지르지 못했다 얼굴을 가린 손바닥 사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what the fuck!"

조석희가 상원을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경미한 뇌진탕 증상 때문에 시야가 흐릿한 상원은 조석희의 품에 안겨 몸을 떨었다.

"fucking idiot! 미쳤어? 거질 주제도 모르고 왜 끼어들어!"

조석희가 욕설을 내뱉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며 상원의 상태를 살폈다. 바닥에 누워 있던 김이경이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 겉으로 다가왔다. 

"어디 좀 봐"

"손대지마"

조석희가 이경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

"네가 뭔대 손대라 마라야. 선배가 네거야?"

"냄새나는 손 치우라고 했다."

다시 시작되려는 2차전을 말린 것은 상원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가 눈을 몇번 감았다 뜨며 석희를 불렀다. 

"....석희야"

"......"

조석희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무릎에  누워 있는 상원을 노려보았다 성질 같아선 상원을 분이 풀릴때까지 패버리고 싶었지만 그랫다간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싸우지마 .... 아파"

상원이 새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끙,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선배 괜찮아요?"

이경이 부서져 있던 안경을 손으로 집으며 물었다. 

"아니....."

얻어맞은 곳도 아팠지만 아직도 바닥에 부딪힌 머리가 울려 깨질 것 같았다.  예의상이라도 상원은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좀 그렇긴 해도 선배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돼요?"

깨진 안경을 이리저리 살피며 김이경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원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충격으로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 구나 싶었다. 

"너도 호모였냐?"

조석희가 진저리 난다는 듯 물었다. 

"아니 난 선배가 좋은건데"

다시 한번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원은 더이상 이 상황을 환청이나 환상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경아 미안한데 다음에 얘기하자"

후배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도 그랫다. 하지만 그 대답은 가뜩이나 심기가 마뜩찮은 조석희를 자극했다. 

"뭘 다음에 얘기해 지금 얘기해요 선배"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거절할 생각이잖아"

"그건 네 생각이지 조석희"

김이경이 두 동강 난 안경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선배한테 직접 듣던지"

"좋아 "

이경이 상원의 앞에 허리를 굽히고 앉았다. 

상원은 따라가기 힘든 이 상황에 현기증을 느꼈다. 원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조석희는 차치하고라도 김이경의 변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선배 좋아해요"

"....."

얘가 왜 이래 정말.

"대답해주세요"

대답을 듣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였다.  상원은 하는 수없이 조석희의 무릎에 누워 코피를 흘리며 김이경의 고백에  대답해주었다. 

"미안,,,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꼴좋다"

상원이 좋아하는 상대가 김이경을 이죽거리며 던진 한마디였다. 그러나 이경은 그런 대답은 예상했다는 듯이 알겠어요, 하고 몸을 일으켰다. 

"저기,,,,이경아"

"괜찮아요 선배 어차피 지금은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미안해"

고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한 상원이었다. 

"원래 저도 오늘 고백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선배 얼굴 가까이서 보니 저도 모르게 저질러 버린거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입맞춤이 떠오른 상원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꼴이 또 조석희의 불편한 심기를 긁었다. 

"역겨운 볼일 다 끝났으면 꺼져"

김이경이 가방에서 회의록을 꺼내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선배 회의록 여기 두고 가요"

"...응"

현기증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원이 조석희의 무릎에 누운채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나가는 김이경의 뒤에 조석희가 fucking faggot이라고 이죽거렸다. 

상원은 faggot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fucking 이 붙었으니 욕이 분명하겠구나 하고 여겼다. 

그런데 김이경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히 알아들은 욕설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잠시 멈추어 서서 조석희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김이경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조석희 내가 충고 하나 할까"

"뭐?"

"넌 선배랑 절대 오래 못 있어 내가 장담하지"

어디에 근거를 두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김이경의 어조에는 확신이 느껴졌다. 

"꺼져!"

조석희가 손에 잡히는 책을 김이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아슬아슬 하게 책을 피한 김이경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도서관을 나섰다. 

조석희와 단 둘이 남게 된 상원은 이제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음을 직감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소해야겠다 싶어 상원은 눈을 질끈 감고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난 정말 김이경인지 몰랐어 맹세해 너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미쳤어요?"

조석희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스쳤다. 

"내가 왜 선배한테 키스를 해요"

"아...맞다 그렇지"

상원은 손에 쥐고 있는 손수건으로 코를 누르며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착각도 유분수지 , 조석희의 말대로 그가 자신에게 키스를 할 이유는 전혀 없는데.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불편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아직도 어지러워요?"

한참이 지난 후에  조석희가 물었다. 상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부딪힌 곳에 혹이 났는지 아프기는 했지만 아까처럼 현기증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일어나세요"

"아 미안 불편했겠다"

상원은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누워 있던 조석희의 다리를 바라보며 사과했다. 방금 전까지 저기에 누워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서 씻으세요 피 냄새 질색이니까"

"너는 괜찮아?"

피를 흘린 것은 상원뿐만이 아니었다. 김이경이 날린 주먹에 조석희 역시 입술이 터져 셔츠 깃에 피가 묻어 있었다. 잘 생긴 얼굴에도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발견한 상원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약 발라야 하는거 아냐/"

"아직도 코피 흘리면서 남 걱정 하게 생겼어요?"

상원이 부랴부랴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움직이니 안에 고여 있던 피가 흘러 나온 모양이었다.  코피를 닦으면서 상원은 계속 조석희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힐끔거렸다. 

그 모습에 조석희는 웃음이 났다. 

저렇게 내가 좋아서 안달인데 계속 같이 있을 수 없다니 대체 김이경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지껄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원이 씻고 오겠다고 욕실로 사라진후 조석희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두사람을 보는 순간 그는 이성에 불이 붙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맛보기도 전에 김이경이 먼저 상원의 입 안에 침범했다는 생각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매달려 입술을 벌려준 바보같은 상원에게도 화가 났다. 

그래놓고 한다는 변명이 뭐? 나인줄 알았다고? 

"shit!"

조석희는 책상앞에 놓인 의자를 발로 걷어차 버렷다. 

김이경의 목에 매달려 입을 벌리고 입술을 쪽쪽 빨고 있던 상원의 얼굴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김이경도 그렇고 아침의 그 꼬마 녀석도 그렇고 이상원을 특별히 여기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실 문이 열리고 상원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며 나왔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워 뽀얀 피부에 옅게 홍조가 어려 있었다. 

팔꿈치에 얻어맞아 부어 있는 뱜이 조석희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너는 안씻어?"

조석희는 대답하지 않고 상원의 손을 잡아 끌어 그대로 책상위에 눕혀버렸다.

"서,석희야"

당황한 상원이 조석희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그리 간단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상원의 목덜미를 힘껏 물어뜯었다. 

"아 아파!"

상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신이 좋아하는 체향에 다른 남자의 냄새가 뭍었다고 생각하니 조석희는 화를 누르지 못했다. 

"누구 맘대로 다른 놈하고 그렇게 붙어먹으래"

"내가 언제...."

"나하고는 싫다더니 그놈하고는 괜찮다는 거야?"

"아니야 그런거 아니라니까"

"키스도 잘 하던데? 아무 남자나 다 괜찮은거 아니냐고!"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조석희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조석희가 상원의 어깨를 잡은 채 몸을 돌리게 했다 책상위에 엎드린 자세에서 상원의 바지를 벗겨 버렸다. 

덜컥 겁을 먹은 상원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조석희가 뒤에서 강하게 몸을 눌러 얼굴까지 책상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 석희야"

퍼스너를 내리는 소리에 놀란 상원이 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왜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평연한 말투였다. 자신의 엉덩이 사이로 딱딱한 살덩이가 닿지 않았으면 상원은 조석희가 지금 하려는 짓이 무엇인지 연결시키지 못했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거... 안 하면 안돼?"

상원이 울상이 되어 물었다. 

"왜 싫다는 거죠? 선배 나 좋아하잖아"

"좋아해 좋아하는데.... 무서워"

"뭐가 무섭다는 건데 안 아프게 해줄게 천천히 해주면 되잖아요"

조석희는 한번도 여자에게 거절당한적이 없었다.  그가 미성년자인것을 알면서도 그녀들은 서로 그를 침대로 끌여들이지 못해 안달했다.

한번이라도 그와 해본 여자들은 그 다음번을 마다하기는 커녕 언제 볼 수 있냐고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재촉할 정도였다. 

그런데 자신을 좋아한다고 매달릴때는 언제고 지금에와서 하기 싫다고 거절하는 이유를 조석희는 도통 이해 할 수 가 없었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거예요? 사람애태우려고?"

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엉켜 있는 긴 속눈썹이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뭐가 무섭다는 거에요"

조석희가 상원의 몸위에 허리를 숙이고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교복 셔츠 아래로 들어난 둥그스름한 엉덩이에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다음번에 또 도망가면 성가실 테니 

그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선배 뭐가 무서운지 말해보라고요"

"...넣는거"

"뭐?"

"네가 넣는 거 무서워 기분도 이상하고.... 무서워"

상원이 몸을 둥글게 말고 말을 이었다. 

"배가 아프고 거기도 아프고... 이상해 무서워"

어린애 같은 상원의 투정에 조석희는 짧게 웃었다. 

"싫다는건 아니군요"

"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요"

조석희는 더이상 말을 들어줄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아까부터 상원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당겼다. 그는 자신의 것을 손에 쥐고 엉덩이 사이에 가져다 대었다. 

꽉 조여진 구멍에 대고 이미 젖어 있는 선단을 문지르자 상원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제발 이라고 흐느꼈다. 

"천천히 넣을 거니까 힘빼요"

그는 상원의 성기를 손에 가볍게 쥐었다. 몇 번 훝어주자 아래 깔린 상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성실하고 고지식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몸은 음란하기 그지 없었다.  그엄청난 캡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귀두를 밀어넣자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상원이 아프다며 빼달라고 애원했지만 조석희는 그대로 밀어 넣었다. 

",,,,,,!!"

"하아...."

반쯤 들어갔는데도 아래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느껴졌다. 

"...천천히"

상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부은 뺨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도 가련해 보였다. 조석희는 손을 뻗어 상원의 턱을 쥐고 입술을 겹쳤다.  처음엔 놀란 듯하더니 상원은 이내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입술을 빨며 입 안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상원은 끙끙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입안까지 민감한 모양이었다. 자신보다 김이경이 먼저 이 입안을 맛보았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낀 조석희는 천천히 넣겠다는 약속은 집어던지고 

그대로 뿌리끝까지 박아버렸다. 

"....!"

상원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조석희가 손바닥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지금 끝까지 다 들어갔어요"

".... 움직이... ! 아...!"

허리를 한 번 추어올리자 책상이 덜컹거리며 상원의 몸이 앞으로 움직인다. 조석희가 웃으며 손으로 다시 상원의 허리르 세우게 만들었다. 

"선배.....진짜 끝내줘요"

"석희...야.. 그만.."

상원이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조석희는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매끈한 살결을 쓸어내렸다. 상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져준 것 만으로 느낀 것이다. 

그 증거로 아래가 순간 욱신 하고 조여들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조석희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상원의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축축한 내벽에 성기를 문질러대고 찔러주자 처음엔 아프다고 울던 

상원의 숨소리가 조금씩 흐트러졌다. 

"아....흣... 아응"

",.,,,하 선배 진짜 내가 처음 맞아요?"

"흐...읏 하아 아아.."

아무리 박아 넣어도 끝없이 들어가는 느낌에 조석희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한쪽 팔로 상원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힘껏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밀어넣었다 도서관에 상원의

교성이 울려퍼졌다. 상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는 숨을 들이켰다.  머리속이 나른하게 늘어지는 달콤한 체취, 맡으면 맡을수록 이상하게 잔인한 갈증이 일었다. 

"이렇게....조이면서.... 뭐가 싫다는 거야"

"하아,,,, 석희야"

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 일부러 애를 태우려고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요사스런 몸을 하고 있으면서 처음이란 것도 영 못미더웠다. 

조석희는 한껏 허리를 뒤로 뺏다가 퍽 소리가 나게 앞으로 움직였다. 

상원이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책상위에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조석희는 그런 상원을 일으켜 세우지 않고 그 위에서 거칠게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숨통을 조여드는 압박감에 상원은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지르며 그만하라고 부탁했다. 

"뭘 그만해.... 젠장 그렇게 야한 얼굴을 하고선"

"흣....! 아...!! 하앗"

상원은 숨이 막혔다. 굵직한 남자의 살덩이가 엉덩이 안으로 들락날락 고통도 한몫했지만 몸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게다가 아까부터 아래에서 슬근슬근 올라오는 열기에

목 안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석...희야.. 아..하아"

어떻게든 해주었음 하는 마음에 상원은 애타게 그를 불렀다 열기가 엷게 밴 상원의 목소리는 조석희의 욕구를 부추길 뿐이었다. 

돌덩이로 풀을 짓이기는 단순한 행동처럼 단순하고 잔인하게 그는 허리를 흔들었다. 푹푹하고 들어갔다 나오는 성기가 안쪽의 찰진 내벽에 문질러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상원이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석희의 이름을 연신불렀다. 조석희는 그 부름에 대답하듯 빠르게 추삽질을 반복했다. 

"아....!"

붉어진 성기를 죄어오는 뜨거운 점막에 한순간 움찔 하더니 파르르 경련했다. 

앞을 내려다 보니 상원의 다리에 사출한 흔적이 훝뿌려져 있었다. 

"뭐야 선배 뒤로만 했는데 쌌잖아"

조석희가 혀를 차며 상원의 몸을 앞쪽을 보게 돌렸다. 아래가 맛물린채  체위를 바꾸자 안에 가득 들어찬 성기의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져 상원은 몸을 흠짓 떨었다. 

"난 아직 안 갔잖아요 공평하게 해야지"

책상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마주 앉은 자세에서 조석희는 상원이 자신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위아래로 엉덩이 사이를 퍽퍽 쑤셔주자 상원이 울먹거리며 아프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수그러들었던

성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체향이 짙어졌다.  조석희는 상원의 고개를 들게 하고 입을 겹쳤다 맞물린 입술에서 새어나가지 못하는 신음이 우습고 귀여웠다. 그는 일부러 상원을 애태우며 입술을 질근질근

물었다.  단단하게 부푼 귀두끝으로 입구 안쪽을 문질러 주자 상원의 허리가 들썩거린다.  조석희는 모르는 척 끈질기게 상원을 자극했다. 

결국 상원이 울면서 조석희에게 매달려 부탁했다. 

"...줘"

"뭐라고요?"

"깊이... 깊이 넣어줘"

눈물로 얼룩져 꾀죄죄해 보이는 얼굴로 말하는데도 꽤 귀여워 보인다고 조석희는 생각했다 그는 상원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알겠어요 Apple선배. 하고 속삭여주었다.  그것만으로 상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조석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상원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한계까지 성기를 박아 넣었다. 상원의 자지러지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조석희는 그의 안에 사정했다. 울컥울컥, 끝도 없이 쏟아지는 느낌에

조석희는 자신이 한동안 여자를 안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상관없었따. 하고 싶으면 이 몸에 쑤셔 넣고 싸버리면 그만이니까. 

여자들보다 체구가 좀 크긴 하지만 박고 흔드는 데 전혀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선배"

사정감으로 탁해진 음성으로 조석희가 상원을 불렀다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상원이 응? 하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옆으로 긴 눈매가 예쁘게 움직였다.  눈이 마주치자 조석희는 다시 아래가 당겨왔다.

"선배 한번만 더 해요"

상원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끝내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 허리를 숙여 그는 나지막하게 몇 마디 말을 속삭여주었다.  당신의 안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얼마나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소리를 지를때마다 얼마나 섹시한지, 그것만으로 상원은 무력하게 조석희를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석희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상원의 입안에 불어넣어주며 그는 허리를 숙였다. 

겹쳐진 그림자가 다시 열기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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