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50화 (34/45)

"야 막내 너 또 전화온다"

"냅둬요 조선족이 또 아직 낳지도 않은 내 아들 잡고 있다고 전화하는거예요"

의자에 앉아 무를 깎고 있던 승완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에게 핸드폰이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아 그놈 잘생겼다"

승완은 자신이 깎아놓은 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못했다. 

"승완아 잠깐 나와봐"

일년 일찍 들어왔다고 깝쳤다가 승완에게 딱 한대 맞고 그 다음날 사이좋게 친구가 되자고 울며겨자먹기로 악수를 청한 김군이 승완을 불렀다. 

"왜?"

주방의 세계에서 일년은 결코 맞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승완은 뻔뻔스럽게 자신의 선배에게 반말을 했다. 

"누가 너 찾는데?"

"여자?"

"...그럴리가"

"그럼 안 나가 . 남자가 감히 왜 날 부르고 지랄이야. 용건이 있으면 지가 쳐 와야지. 여자도 아닌 주제에 , 꺼지라고해"

남녀차별이 지독한 남자였다. 남자에게는 예의따위 차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그게....니가 가서 말할래?"

무를 깎던 손을 멈춘 승완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칼이 유난히 차게 빛났다. 김군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알았어 알았어 가서 말하고 올게"

자신의 선배가 후다닥 사라지자 승완은 자신이 깎아 놓은 무를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따 이껍질이 투명해서 글씨가 보일 정도로 깎아야 한다는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거야"

한승완은 무 껍질을 눈앞에 가져다 대어 보면서 투덜거렸다. 

"야 이녀석아 애꿏은 무는 그만 좀 깎고 감자랑 생강 좀 깎아 놔라"

지나가던 주방장이 승완을 보고 한마디 던졌다. 주방 총책임자의 말에는 승완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료를 보관해두는 냉장고로 들어가 커다란 들통을 가져왔다.

성인남자 둘이 간신히 옮길 수 있는무게를 한승완은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크나큰 장점중 하나였다. 

"아 젠장 이놈의 감자는 깎아도 갂아도 끝이 없네"

재료를 씻고 다듬는 것은 주방 막내들의 일이었다. 물론 한승완이 자신의 선배에게 우격다짐으로 넘긴 청소와 설거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찮은 일은 질색하는 한승완이 재로를 다듬는 일을 

승낙한 이유는 칼을 다루는 기술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찮은 것은 귀찮은 거였다. 

"아 귀찮아!"

그는 반쯤 깍던 감자를 내던지며 버럭 소리 질렀다. 

"저도 귀찮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승완은 자신도 모르게 칼을 움켜쥐었다. 

"뭐야 넌"

"피차 귀찮은 것은 질색이니까 대화는 금방 끝내고 가도록 하지요"

조석희였다. 그의 등 뒤로 얼굴이 파랗게 질린 김군이 서있었다. 주방 안쪽으로 방문객을 들이지 않는 것은 철칙이었다. 

"주방은 외부인 출입금지다 꺼져"

승완이 조석희에게 던진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김군이었다.

"아니 그게 나도 분명히 출입금지라고 말했는데 이분이 한사코 널 봐야 한다고..."

김군은 필사적으로 말렸을 것이다. 저 빌어먹을 조석희 새끼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그냥 뚜벅뚜벅 안에 들어왔을 테지. 

안봐도 비디오 척하면 삼천리다. 

"지가 뭔데 보고 싶다고 여길 들어와 재수 없게"

"저도 선배님 보고 싶어서 여기 들어온거 아닙니다"

선배님이란 호칭에 존대어까지 사용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상대방의 심기를 긁는 말투였다. 그걸 그대로 참아줄 용의도 업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승완이었다. 

"아 시발 뭐라는거야 빨리 꺼져 니 얼굴보면 나도 내 성질 못누르니까"

그냥 던지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예전에 조석희에게 칼을 꽂아 넣은 전적이 있는 남자였다. 

"빨리 나갈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면 되겠군요"

그러나 상대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자신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아 상대의 배에 꽂아 넣은 놈이 바로 조석희였다. 

게다가 협조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꼬락서니가 심상치않았다. 

"협조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꺼져 너랑 할말 없어"

"저는 있습니다"

한승완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도 조석희는 뒤로 물러서기는 커녕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 사이에서 김군만 어쩔줄 몰라 하며 말했다.

"그, 그러지 말고 밖에서 조용히 얘길 나누는게 어떠십니까"

김군이 재빨리 중재에 나섰지만 대치 상태에 들어간 두 사람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올리 없었다. 

"시발  난 니 할말 따위 조금도 관심 없거든"

"선배님이 제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건말건 저는 해야겠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어디있냐니 뭐가?"

"상원선배 말입니다"

"왜 그걸 나한테 물어? 상원이 한테 묻지"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승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석희가 자신에게 와서 상원의 행방을 묻고 있는데 그는 조금도 놀랍지 않은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승완은 

상원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있습니까"

"상원이한테 물으라니까"

"연락이 안되니까 선배님께 묻고 있는겁니다"

"어? 그래? 이상하다 아까 낮에 나하고는 잘만 통화했는데?"

"......"

"다시 전화해봐"

"연락 안됩니다"

"아 맞다. 상원이 전에 쓰던 핸드폰 해지시켰다고 하더라 너한테는 말 안했어?"

"...."

"너랑 어지간히 말하기 싫은가보다 크크크"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더러워질 만한 말들을 승완은 아무렇지 않게 줄줄 늘어놓았다. 평소였으면 가만히 듣고 잇지 않았겠지만 조석희는 현재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상원 선배랑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해. 누가 뭐라고 했어? 헐, 존나 어이없네, 꺼져라 좋은말로 할때"

한승완이 들고 있던 칼을 휘휘 내저으며 관대하게 말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자면 강판에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조석희새끼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기분이 좋아져 보여주는 

관대함이었다. 

물론 그 관대함이 상대방에게 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석희는 이를 사려물었다. 멱살을 움켜쥐고 당장 불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그런것에 순순히 굽힐 상대가 아니었다. 

차라리  동석이 상원의 행방을 알고있는 편이 나았다. 그쪽은 재수없긴해도 말이 통하는 인간이니까. 한승완은 꼴통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꽉 막혀 있는 최악의 꼴통.

그런 꼴통에겐 어떤 논리도 먹히지 않는다. 

"부탁드립니다"

조석희의 입에서 오늘 두번째로 부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그에게는 천지가 개벽하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그러나 조석희 자존심보다 상원을 찾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날 상원이 밤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조석희는 설마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를 시도했지만 신호음만 갔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고 한시간 내내 

통화버튼을 눌러도 상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원의 핸드폰 전원을 꺼져버렸다. 혹시 무슨일이 생긴건가 싶어 집앞으로 나가 상원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 와중에 셀수도 없이 많은 통화를 시도했지만 핸드폰 전원이 꺼져있다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새벽녘이 되어 하늘이 밝아올 즈음, 조석희는 상원이 자신의 손에서 또 한번 떠나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예전에는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화를 내서 예고라도 했지. 이번에는 나간다거나 떠난다는 뉘앙스를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급소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상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장해제를 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아. 이 사람이라면 내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아 등의 막연한 믿음. 

거기에 잔뜩 취해 있는 상대에게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고 사라진다니. 그건 배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는 상원의 집으로 연락을 해서 부모님께 아들의 행방을 돌려서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착한 후배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으니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졸지에 착한 후배가 된 조석희는 전화를 끊고 학교로 가서 상원이 수업을 

받는 인문과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상원의 모습은 수업이 끝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과사를 찾아갔다가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상원이 다음학기 휴학계를 낸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한참동안 아무런말도 하지 못했다. 

두번재 강스트라이크였다. 이젠 분노를 넘어서 비참함까지 밀려왔다. 이상원이란 인간이 대체 어디까지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일까. 

자신을 향해 내비치는 감정은 모두 연기가 아니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동거를 허락하고 몸을 섞고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은 것일가.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기 시작햇다.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씹어 삼키면서 그는 상원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상원의 주변 사람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리는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맞아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생전 처음 상대방에게 손놓고 맞아줘가면서 얻은 정보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미칠 지경이었다. 

"아 시발 감자야 혼자 껍질 벗는 능력 좀 가지면 안되겠니"

감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저 금발머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상원선배한테 할 얘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건 내 알바 아니거든, 나 감자 깎아야 하거든? 존나 중요한 일이거든, 좀 꺼져주라"

한승완이 감자를 칼끝에 꽂아 넣고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주먹을 쥔 조석희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빌어먹을 금발새낄르 피떡이 되도록 때려 상원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fucking stupid jerk I can`nt  take it anymore I could kill you......

"감자 깎아야 한다고 시발"

한승완이 들고 있던 감자를 조석희에게 던지며 으르렁거렸다. 분위기를 봐선 칼부림이 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조석희가 허리를 굽혀 자신의 발치에 구르고 있던 감자를 주워들었다. 사람의 손에 들려있는 감자가 이렇게 까지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김군은 이날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흡시 감자로 사람을 쳐죽일 기세였다. 

"....깎아 드리죠"

"뭐라고 ? 시발아?"

"깎아드리겠습니다. 감자"

"뭐?!!"

제대로 들었지만 이해를 못하는 한승완,

"그 중요하고도 중요하다는 빌어먹을 감자, 다 깎아드릴테니 상원선배 어디 있는지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승완이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과연 개싸가지 좆서퀴가 맞는 건가.  감자를 깎아줄테니 상원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혹시 저거 저놈 거죽을 뒤집어 쓴 딴놈이 아닐까. 

칼로 거죽을 확인해 볼까나. 

"너 미쳤냐?"

승완은 그나마 현실성 있는 가설을 던졌다.

"아닙니다"

조석희의 차가운목소리가 그의 온전한 이성을 뒷받침해주었다 승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각해보니 놈의 태도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조석희란 놈이 원래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고분고분 나오는 타입도 절절절절대로 아니건만,

 "그런데 니가 감자를 다 깎겠다고? 니가? 싸가지 더럽게 없고 혼자 잘난 척만 쩔어서 과일 따윈 누가 깎아주는 것만 쳐먹게 생긴 네가?"

"네"

"감자 깎아주는 아줌마 고용하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사실 그럴 작정이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눈하나 깜짝이지 않고 능숙하게 거짓으로 답했다. 

"푸하하하하하하"

한승완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던 새끼가 군대 후임으로 들어온 날의  선임의 기쁨이 이러했을까 싸가지 없는 며느리 괴된 시집살이를 시킬 생각에 신이 난 시어머니의 표정이 이렇게나 

해맑을까.  웃음이 도저히 멈추지 않는 한승완은 꺽꺽 거렸다. 

"크하하, 컥 너,,,, 네가 감자를 깎아? 감자를?"

"네"

"푸하하, 나 나 잠시만 더 좀 웃는다 크하하"

승완은 그 이후로도 박장대소를 했다. 조석희는 우두커니 서서 그가 웃음을 멈추길 기다렸다. 

"아 시발 좋아. 깎아 당장 깎아. 그런데 내가 좋다고 할 때까지 깎아"

억지였다. 애초에 시한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머리좋은 조석희가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알겠다고 짧게 대꾸했다. 승완은 옳다구나 싶었다.  자기 월급을 쏟아부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 감자를 주문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줄줄이 단서를 붙였다. 

"내일부터는 새벽부터 와서 까. 한 5시전까지는 와. 괜히 어슬렁 거리다 다른 사람들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네"

조석희의 고분고분한 대답에 승완은 점점 더 신이 났다. 

"절대로 다른 사람을 고용한다거나 하지마, 수작부리면 그대로 끝인거다"

"알겠습니다 대신 선배님도 약속지키셔야 합니다"

"그래 그래 내가 인정하는 날에 상원이 만나게 해줄게"

승완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시발놈아 백날 감자만 까다 좆이나 까라. 내가 귀하고 예쁜 우리 상원이 연락처를 너한테 넘기나. 어디한번 두고보자. 

"저기 승완아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울리는데"

직전까지 벽에 매달려 눈치를 살피던 김군이 선반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키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스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김동석? 야 , 내가 존나 웃긴... 뭐? 엥? 아... 오호! 그래 오케이 알겠다"

흥분해서 지금 이상황을 설명하려던 승완은 전화기 너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통화를 끝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식언하지 마십시오"

"식언이 뭔데"

미국에서 살다온 조석희보다 한국말이 서툰 승완이 물었다. 

"말 바꾸지 말란 말입니다"

"사나이 한승완을 우습게 아는구만"

조석희는 눈만 살짝 내리깔았다. 대단히 우스운 새끼 같으니, 의 한마디를 입안에 삼키며 

"야, 야 그런 의미에서 나 부탁하나만 해도 되겠냐?"

승완의 갑작스런 친한척에 조석희는 기분이 나빠졌다. 

"딱 한대만 맞자"

대답을 할 새도 주지 않았다. 한승완의 주먹은 정확히 조석희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혔다. 

"아아, 십년묵은 채찍이 내려가네"

"채찍이 아니라 체증인데...."

김군이 소심하게 승완의 단어를 고쳐주려 했지만 흥분한 그의 귀에는 그딴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조석희는 한손으로 오른쪽 갈비뼈 부근을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오늘 감자 다 깎아놔. 나는 밥 먹고 올테니까"

승완이 수북하게 쌓인 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흡사 콩쥐에게 일을 시키고 마을 원님의 생신 잔치에 가려는 팥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조석희는 입고 있던 셔츠의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고 승완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콩쥐의 손에 들린 칼이 살벌하게 번뜩거렸다.

"젠장 막내 어디갔어! 당장 한승완새끼 불러와"

야채 저장고 안에 들어갔던 주방장의 노기 띤 목소리가 주방에 울려퍼졌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한 승완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안으로 걸어왔다. 

"무슨일인데 그렇게 주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요"

"너, 너 이놈새끼"

주방장이 부들부들 떨며 저장고를 가리켰다. 거기에 쌓여있는 하얀 물체를 본 승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저게 대체 뭐야. 저 미친 감자무더기는 뭐냐고"

"아하하 그게..흐음"

말문이 막혓다. 

조석희와 감자계약을 맺고 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오토바이를 사려고 모아둔 돈을 털어서 감자를 대량 주문한 것이다. 하루에 그 많은 양을 다 쏟아내면 재미가 

없으니 일주일간 나눠서 해달라고 부탁까지 해놓을 요량이었다. 과연 조석희새끼가 그 많은 감자를 모두 깎아 놓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치기 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야채 저장고 반을 차지하고 있는 감자더미를 보니, 심란함이 생각보다 더 했다. 한상자에 20킬로그램하는 감자를 스무 상자 시켰으니 400킬로그램 가량이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으면 존나 징그러운 거군요. 벗은 감자라는 거"

"벗은 감자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야. 감자 주문 네가 넣었다며 이 많은 감자를 대체 어디다 쓸건데"

"글쎄요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승완이 턱을 괴며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햇다. 하지만 사고방식이 10퍽스 직소 퍼즐보다 단순한 그는 매우 간략한 해답을 내놓았다. 

"먹죠 뭐"

"...."

"삶아서 먹죠, 볶아서도 먹고 나 감자 열라 좋아하는데"

주방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며 욕지거리를 했다. 이 빌어먹을 금발 꼴통아 이 가게 사장 조카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짤라버렸을텐데.

"저 감자를 다 먹는다고?"

"두고두고 먹어요 어차피 이것도 오래 못갈테니까"

"껍질 벗겨놓은 감자가 오래 못가는 건 당연한 거지.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냐"

"아 맞다. 그렇구나"

사실 그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조석희 새끼가 저만큼의 감자껍질을 벗겨놓은 것도 기적이라 여겼다. 분명 반도 하지 않고 칼을 집어 던지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보나마나 뻔했다. 감자깎는 아주머니를 고용했겠지. 감시를 해서 다시는 수작부리지 못하게 하면 내추럴 본 싸가지 조석희 새끼는 하루도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갈게 분명했다. 

"에이 감자 그까이꺼 금방 먹잖아요. 전 삶은 감자 앉은 자리에서 열개도 먹는데요 뭐, 형님들 불러다가 한 상자씩 책임지고 먹으라고 해요 그럼 되겠네"

"야...너....."

"주방장님이 감자전도 만들어주고 그래요. 손님들 서비스로 하나씩 넣어주고 그럼 되겠네요 하하하하 그럼 전 이만 옷 갈아입으러 갑니다"

승완은 손을 흔들며 주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내일은 서른 상자쯤 주문해두고 새벽부터 나와서 감시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하지만 승완의 바람과는 달리 감자 전쟁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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