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안돼! 왜 하필 거기야?"
주사위를 던진 여학생이 절규를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은행장을 맡은 또 다른 여학생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돈을 대출받으라고 방금 전 주사위를
던진 친구를 꼬드겼다. 상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상원오빠 차례에요"
은행장을 맡은 여학생이 주사위를 상원에게 건네주었다. 상원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주사위를 툭 던졌다.
"으하하하 형 블랙홀인데요? 3회 쉬고 가래요"
"...아이고"
상원이 앓는 소리를 하며 자신의 말을 옮겼다. 그는 주사위를 던질때마다 불운의 구렁텅이로 푹푹 빠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주변에서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장본인인 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약간 탄식을 섞어가며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옮겼다.
"상원이 형 정말 장난아니다. 어떻게 던질 때마다 그래요?"
"아, 하하하 그러게"
"신기하다 신기해 이정도면 놀라운 세상 이런거에 제보해도 될 정도인데요?"
"어머 그러게"
모두들 처음보는 상원의 특이 체질에 관심을 기울이고 모여 들었다. 이제 게임은 다들 안중에 없었다 상원이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주변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오빠 괜찮아요? 돈 다 잃었네"
"그러게 대출 받아야 하나?"
"상원오빠는 건물도 없고 땅도 별로 없어서 대출 받기도 힘들겠어요"
은행장이 안타깝다는 듯이 대답했다. 상원도 뺨을 긁적거리며 게임판을 돌아보았다. 게임을 지켜보던 한 녀석이 상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형 힘내세요, 인생 한방이잖아요"
"하하하 그런가?"
"다음번에는 분명 좋은 숫자가 나올거에요"
"파이팅!"
"오빠 힘내요"
다들 상원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넸다. 상원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가식없는 깨끗한 미소는 보는 상대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상원은 한번도 자신이 나쁜 패가 나오거나 좋지 않은 숫자가 나온 것으로 투덜대거나 짜증내지 않았다.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긴 했지만,
전적으로 자신의 불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다들 감동하고 말았다.
조석희는 멀찌감치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원과 눈이 마주치면 그는 살짝 눈짓으로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나 절대 옆으로 와서 말을 건네거나
아는 척을 하는건 아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방에서 마음 같아서는 석희 옆에 앉아있고 싶었지만 그가 바라는 것 같지 않아서 상원은 눈치만 살폈다.
"상원오빠 괜찮지 않아?"
"성격도 진짜 좋은것 같아. 말도 조근조근 엄청 다정하게 하고"
"번호 따볼까"
처음엔 조석희와 특별한 관계 때문에 쏟아졌던 관심이 지금은 온전히 이상원이란 인간에게 향해 있었따. 키도 크고 깔끔한 외모에 온화하고 다정한 성격에
매너도 좋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개망나니 6반 학생들도 일년 남짓 만에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든게 이상원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다.
상원이 어떠한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지 조석희는 현장에서 두눈으로 직접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형 이거 끝나시면 저희 방으로 가서 한잔 하실래요?"
"어 나 술 잘 못하는데 괜찮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마시다 보면 느는거지"
"오빠 그러지말고 저희랑 게임이나 해요. 쟤들이랑 술 마시면 토할 때까지 못나온다니까요"
여학생들이 상원의 팔을 붙잡고 자신들과 함께 게임을 하자고 졸랐다. 상원이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햇다. 개중 한명이 상원에게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아든 그가 자신의 번호를 누르고 있을 무렵 조석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어?"
"잠깐만"
그가 밖으로 나가자고 턱짓을 해보였다. 핸드폰에 번호를 저장해주고 있던 상원이 잠깐만 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근데 왜 석희는 상원오빠한테 선배라고 부르는거야?"
누군가 조석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고등학교 선배라서"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라 이건가?"
그말에 상원이 큰 소리로 웃었다. 청아한 향이 묻어날 것 같은 단정한 옆얼굴을 근처에 있던 여학생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나도 선배라고 부르고 싶다. 이상하게 오빠보다 더 가까운 느낌이드는데"
"에이 무슨 그냥 오빠라고 불러"
"저도 상원선배라고 불러볼래요, 그래도 되죠?"
아까부터 적극적으로 상원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여학생이 애교섞인 어조로 물었다. 상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떼려는 순간,
"안돼"
"....어?"
"넌 같은 학번 동기잖아. 오빠라고 부르던가 이상원이라고 이름 불러"
조석희였다.
어울리지 않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석희야...."
상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한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의 조석희를 올려다보았다.
"할 얘기 있어 선배"
쟤는 대체 여기까지 와서 무슨 할얘기가 있다는 건지.
중요한 얘기라면 집에 가서 하자고 하고 싶었고 별 대수롭지 않은 얘기라면 나중에 하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석희는 상원이 그런 바람을 입밖에
내기도 전에 등을 돌리고 먼저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 석희 왜 저래"
"뭐 기분 나쁜일있나"
찬바람을 일으키고 조석희가 나가버리자 방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상원은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닐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남아있는 아이들을 토닥여주고 방을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온 상원이 신발 끈을 매려고 허리를 숙였는데 조석희가 다짜고짜 그의 팔목을 잡아 끌었다.
"어?"
"빨리 와요"
"잠깐, 나 신발 끈..."
신발 끈을 묶고 따라가겠다는 말도 끝내지 못했다.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남자의 힘에 상원은 운동화 끈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다.
조석희는 상원을 건물의 가장 구석에 있는 화장실 안으로 끌고갔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기에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일까.
상원은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그의 말을 기다렸다.
"끈 묶을 거예요?"
"....아니 괜찮아"
흰색 신발 끈은 바닥에 끌려 더러워진지 오래였다. 조석희가 상원의 신발을 흘긋 내려다보고 그럼, 이라고 입을 뗀후 화장실 끝칸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한 사람이 서 있기도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려니 상원은 목덜미가 뜨근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민망함을 느꼈다.
조석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배, 라고 불렀다. 울림이 큰 화장실이라 목소리가 평소보다 달짝지근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응?"
"선배 여자한테도 흥분할 수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지금 여자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조석희가 상원의 턱을 손으로 움켜쥐고 벽으로 몰아 붙였다.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내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상원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다.
"당신, 여자하고도 돼?"
"혹시... 그, 연애 대상으로 묻는거야?"
"그래"
옆으로 길게 찢어진 상원의 눈매에 당혹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대체 왜 이 시점에서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이야기 해줘야 하는 것인지....
조석희가 빨리 말해요, 라고 한번 더 재촉했다.
"나,,, 원래 여자가 좋은 취향인데...."
"원래 남자 좋아하는거 아니고?"
"...응"
"그런데 왜 나를 좋아해?"
"어?"
"왜 나를 좋아하냐고요"
지금까지 들어본적 없는 질문이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지 어언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억지로 자신의 과 엠티에 끌고와서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화장실 칸막이로 데리고 들어와
던질 만한 질문이던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거야?"
"네"
표정을 보아하니 농담은 아닌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상대방의 저 괴이쩍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상원은 고민을 시작했다.
"아,,,그냥 운도 좋고... 멋있고 잘 생기고... 처음엔 관심이 가서 보다보니까 좋아하게됐어.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행운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감정이었다. 그것이 어쩌다 애정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상원도 알지 못했다.
"그럼 나만큼 운 좋고 멋있고 잘생긴 자식 보면 또 좋아하겠네?"
"엑? 아니야. 너만큼 운 좋은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 ...너보다 멋진 사람도 그렇고"
웅얼거리는 상원의 얼굴이 단박에 붉어졌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석희의 배배 꼬인 심사는 그 정도로 풀리지 않았다.
"여자도 좋아한다면서 남자도 되고"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제가 좋다는 건가요?"
상원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너라서 좋은거야. 딱히 남자가 좋다 이런게 아니라 그냥 너라서 좋은거야.
상원의 해맑은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석희가 살짝 인상을 쓴 채 지긋이 상대를 노려보았다.
"선배"
"응"
"나 좋아해요?"
"...응"
대답을 하면서도 상원은 가슴이 아팠다. 어떤 경우에 물어도 자신은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제 좇 빨아주세요"
"...뭐?"
"빨아 달라고요 지금"
자신이 잘 못 들은게 아닐까 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조석희는 상대가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바지
퍼스너를 내렸다.
"서, 석희야"
"해주세요 선배 나 좋아한다면서"
"좋아해 좋아는하지만..."
누가 들어올 수도 잇는 화장실 안에서 무릎을 꿇고 남자의 성기를 빠는 것과 좋아하는 문제는 영 다른 것이었다.
"좋아하는데 그것도 못해줘요? 선배 나 좋아한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이 인간에게 좋아한다는 의미가 모든 것을 해줄수 있다는 것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거랑 이거는....."
"이거는 다른 문제라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죠?"
조석희가 고개를 숙여 상원의 귓가에 입술을 바싹 가져다 대고 말했다.
"선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실망할거예요"
"....."
대체 난 너에게 몇 번을 실망했는데 너도 한번쯤은 실망하고 넘어가 주면 안되겠니.
"선배 빨아줘요"
이미 단단하게 불거져 있는 살덩이를 끄집어내어 상원의 허벅지사이에 비비며 그가 음란한 말을 지껄였다. 청바지 위로도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귓가에 닿은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평연함을 띠였다.
"빨리 해주세요"
솔직히 상원은 아직 조석희란 인간에게 느낀 실망을 모두 지우지 못한 상태였다. 못 견딜 정도로 상대가 좋으면서도 인간적인 부분에서 실망은 어쩌지 못했다.
이번 엠티 동행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였다. 조석희에게 일말의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데 인간적인 면모는 고사하고 다짜고짜 게임을 하던 자신을 화장실 구석으로 끌고와 오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숨이 났다.
이런 비인간적인 인간의 행태도, 그리고 거기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자신도,
"...입으로?"
상원이 물었다. 조석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손으로 상원의 턱을 잡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의 감촉이 뺨을 스쳤다.
상원은 눈을 감은채 입을 벌렸다. 입안 꽉 차게 들어오는 살덩이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까칠한 음모가 코끝에 닿았다.
"물고만 있을거에요?"
재촉아닌 재촉이었다.
상원은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움직여 입안에 들어와 있는 밑동을 핥았다. 조석희가 한손으로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탁한 음성으로 근느 상원에게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귀두 끝은 혀를 세우고 핥아봐요, 숨은 참고 길게 빨아주세요, 목구멍에 닿을때까지 넣어주세요 네, 그렇게.
누가 올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참아내며 상원은 자신의 연인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혀와 입을 움직였다.
"눈 떠"
조석희가 명령조로 말했지만 상원은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음란한 눈빛을 하고 있는지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선배 눈 떠 눈뜨고 내 자지 보면서 빨아줘요"
천박한 속삭임.
그 한마디에 상원은 감았던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남자의 음모였다. 검게 윤기가 흐르는 짧고 곱실곱실한 음모,
뒤로 이어져 있을 때 엉덩이 위로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조석희가 허리를 짧게 차 올렸다. 숨이 껄떡껄떡 차올랐다. 그래도 끝까지 그는 자신의 입안에 물려있는 살덩이를 뱉어내지 않았다.
조석희의 입에서 건조하고 탁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상대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흥분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정신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햇다. 상원은 신체적인 쾌감의 고조보다 정신적인 만족감을
중요시 여겼다.
이쯤하면 됐을까 싶어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한번, 눈을 깜빡거렸다. 조석희가 갑자기 상원의 팔을 움켜쥐고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또 뭘시키려고 하는걸까. 궁금증보다 두려움이 앞선 상원은 그대로 굳어 서 있었다.
"...왜 그런 표정짓는 거예요"
"내가 뭘"
"유혹하는 표정으로 남자 좇 빨면서 흥분했어요?"
조석희가 거침없이 손을 뻗어 상원의 다리 사이를 움켜쥐었다. 상원의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다. 반쯤 일어선 그곳이 자신의 음란함을 내비치는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선배"
평소와는 약간 다른 들뜬 목소리였다. 상원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왜, 하고 대꾸했다, 조석희가 조그맣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상원은 혹시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나 선배 거 하고 싶어"
"..어?"
"선배꺼 빨고 싶다고 지금"
말이 의미로 와 닿지 않는 순간이 올수도 있음을 상원은 경험하는 중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 지금 당신거 입으로 하고 싶다고..... 시발, 몇번이나 말하게 하는거야"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서 들으니 귀는 이상없다는 것이 확인되엇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말하고 있는 조석희가 미친 것인가.
"...석희야 왜그래"
상원은 솔직한 심정을 입밖에 내었다.
두 사람이 몸을 섞은지 벌써 일년 여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입으로 서비스를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조석희는 자신이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지만 자신이 남자의 것을 입에 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행동했다. 이기주의의 절정체인 그가 누군가에게
봉사를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상원은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예 포기상태였다. 그냥 같이 몸을 맞대고 비비는 것만으로도 황공무지올소다 라고 생각할 수 박에.
그런데 지금 자신의 것을 빨고 싶다니!! 그것도 화장실 구석에서!!
"내가 뭘요"
"...내가 무슨 잘못했어?"
상원은 자신이 석희의 심기를 건드려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석희가 상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피식웃었다. 선이 유려한 입술에 걸린 비웃음에
상원은 아까보다 한층 더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사람 말이 그렇게 말 같지 않나"
거기까지였다. 조석희의 친절한 설명은,
이후부터는 모든것이 행동이었다. 그는 상원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바지와 팬티를 함께 끌어내렸다. 제지할 틈도 주어지지않았다.
축축하고 뜨거운 점막에 아래가 침범당하는 감각에 상원은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조석희가 상원의 살덩이를 손에 쥐고 혀로 밑동부터 귀두부근까지 핥았다.
소름끼칠정도로 좋았지만 겁이 덜컥 나서 상원은 손으로 상대를 밀어내려고했다. 그러자 아래에 무릎을 끓고 앉아있던 조석희가 사나운 얼굴을 하고 혀를 찼다.
"가만히 있어요 버르작거리지 말고"
"...아, 아파"
"안 아프게 해줄게"
조석희의 단골맨트였다. 넣기 전에 항상하는 말,
선배 안아프게 해줄게요 살살 할게요, 아프다고 하면 넣다가 바로 뺄게요 정말로, 선배 나 믿죠? 기타 등등.
세상에 믿으면 안되는 말이 세가지 있다했다. 중국집의 지금 출발했어요 상인의 이거 하나도 안남기고 파는거에요, 그리고 남자의 오빠 믿지?
상원에게 세번째는 조석희의 선배 나 믿죠? 였다...... 못 믿어. 나 너 못믿는다. 어떻게 널 믿겠니 석희야
"선배 나 믿죠?"
"..."
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빠르고 명석한 조석희가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좋을대로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하고 하고자 하는 행위를 이어갔다.
조석희는 입을 크게 벌려 상원의 반쯤 일어선 성기를 머금었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애무가 시작되었다. 상원은 차마 그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눈을 감고 벽에 몸을 기댔다.
혀를 사용해요.
그가 항상 나른한 목소리로 던지던 한마디가 어떤의미였는지 상원은 지금 전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혀를 사용하는 것이..... 이런것이었구나.
"하아,,,아"
참으려고 해도 새된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터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벽에 기대고 서 있는 것도 간신히 였다. 몇 번의 혀놀림만으로 상원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할딱거리자 조석희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조석희는 남자의 좆 따위 입에 물고 빨 생각을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상대가 이상원이라고 할지라도, 그런데오늘은 이상하게 자신의 것을 열심히 물고 끙끙거리고
있는 상원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상할 정도로 욕구가 들끓게 된것이다.
다리가 풀린 상원이 조석희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조석희가 상원의 셔츠안으로 손을 넣어 오독하니 솟아있는 유두를 지분거렸다. 혀가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온몸에 감각이 가득 차 올랐다. 입술을 깨물어 이상한 소리가 새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
상원은 재빨리 두 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지간히 느낀 모양이었다.
조석희는 웃으며 상원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상원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지금까지 셀수 없이 몸을 겹쳐왔던지라 조석희는 상원의 몸 어디가 민감한지
눈을 감고도 정확히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음란한 말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줄줄 내뱉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말은 자처해서 내뱉지 않는 점이 이상원
다웠다. 웃음이 났다. 이상한 유쾌함이 들끓었다.
조석희는 손바닥으로 상원의 엉덩이를 감싸듯 잡고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입안에서 무게를 더하는 살덩이의 느낌과 특유의 냄새가 싫을만도 한데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더 몰아 붙이고 싶었다. 절정으로 한계까지.
"아, 아,,,,,,자,,,,"
상원이 잠깐, 이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조석희는 힘껏 빨아들여 감각을 고조시켰다. 어깨를 쥐고 있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상원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울컥 하고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조석희는 입안에 있는 정액을 그대로 삼켜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쁜 맛은 아니었다.
조석희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사정을 하고 나서도 상원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선배"
"..."
"선배 좋았어요?"
"...아....어....응"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얼마나 좋았는데?"
"...응
"얼마나 좋았는지 듣고 싶어요 선배"
"아...응"
무슨말을 물어도 응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석희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다른 사람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고 저하고만 있는게 가장 좋을만큼, 그렇게 좋았어요?"
"...응"
결국 조석희는 상원의 바지와 팬티까지 손수 입혀주는 매너로 서비스를 마무리했다.
넋이 나간다.
상원은 문장 그대로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머리로 정리가 되지 않아 한참을 지나서야 응? 하고 되묻기 일쑤였고 대화는 커녕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같이 놀러온 학생들은 갑작스런 상원의 변모에 적응되지 않아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것이 아닐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상원이 그때마다 괜찮다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거듭되는 그의 행동에 처음에 걱정을 해주던 사람들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자 말을 건네지 않게 되었다.
멀찌감치 앉아 조석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 친구들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자신의 과 엠티에 데려와 놓고서 그는 상원이 사람들에게 격리되어 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상원은 엠티에서 어떤 인간관계도 구축하지 못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상원의 상태는 여전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꿈을 꾸는 듯한 무언가에 홀린듯한.
"식사하세요"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상원은 한템포 느리게 응 하고 대답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상원의 뺨을 스쳐 이마 위를 만졌다.
"열도 없는데"
"...응?"
"얼굴이 발긋한거 같아서 열 있나 하고요"
"아니 열없어"
그렇게 대답하면서 상원은 자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 설마 야한 생각이라도 하고 계신건가"
"...!!"
"bingo?"
"아, 그,그...게"
거짓말을 못하면 둘러대는 능력이라도 있음 좋으련만,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팔을 허우적대는 상원의 모습은 방금전 발언을 긍정하는 꼴이었다.
조석희가 웃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상원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번 엠티를 기점으로 상원의 상사병이 더 심해진게 분명했다.
"선배 무슨 생각했는데요?"
"....밥이나 먹자"
상원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자포자기 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엠티를 다녀온 이후 그의 머릿속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만 무한 반복이었다. 너무나 많이 재생시켜 기억이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무슨 생각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듣고 싶어요"
마지막말은 상원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였다. 변화가 있는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상원은 처음에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했다.
"말해줘"
이번엔 얼굴을 부비었다. 상원은 자신의 허리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조각같은 얼굴 때문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맛보았다.
......착각이 아니다. 그날 이후 조석희는 애교가 늘었다. 자신이 애교를 부린다는 자각은 아직 없는 것 같지만 분명 이전보다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스킨십을
시도했다.
"벼,별로 그냥...밥먹자 식겠다"
"선배 그거 기억해요?"
"....뭐 뭘"
또 무슨 온갖 짓궂은 질문이 나올까 두려워진 상원은 식은땀이 흘렀다.
"선배가 했던말, 그날"
"그날...."
그날이라 함은, 분명 그날을 뜻하는 것이렷다.
상원의 머릿속에 그날 자신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 떠올랐다.
하아....그만, 아,,,,하악..... 따위의,
"선배 그말 진심이세요?"
"어? 진심?"
신음소리에 진심을 담을 수 있다면 그날 신음은 순도 100% 진심을 담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고 저하고만 있는게 가장 좋을만큼 그렇게 좋았단 말이요"
".....!"
"그렇게 좋으셨어요?"
"아니,그게.... 그러니까..."
넋이 나갈 정도로 좋았다는 말을 하면 밝히는 것 같아 보일까봐 상원은 열심히 주제를 돌릴 궁리를 했다.
"밥 먹어야지!"
애써 밝은 소리로 외쳤는데 조석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립서비스였어요? 그냥 했던 말에 제가 병신처럼 속은건가요?"
"좋았어! 립서비스따위 아니야, 정말 좋았어. 너무 너무 좋았어. 정말로....."
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번만 이야기 했어도 되는데 표현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정말 다른 사람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응"
사귀는 사람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 앞의 남자가 그 누구보다 중요했다.
"친구들도?"
"응"
"부모님도?"
"...응"
잠시 망설이다 대답한 상원은 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하고 중얼거렸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건 그 순간이었다. 상원의 대답을 들은 순간 조석희가
순간, 활짝, 말그대로 활짝, 웃었다.
상원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사람의 웃는 얼굴이 향기로울 수도 잇구나. 그래 석희의 웃는 얼굴을 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아니 지금 죽어야 하는건지도 몰라. 천하의
개새끼 조석희가 이렇게 다정하게 웃어주는 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테니까. 내 인생 최고의 정점을 찍은게 분명해 3초 뒤면 인생 내리막길이야. 내리막길.
"선배"
조석희가 상원의 손을 잡아끌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상원은 응 하고 대답하며 그를 올려다보앗다.
"밥먹으러 가자 선배"
"그래"
이것이 지옥으로 자신을 끌어내리는 손이라고 할지라도 백만번이고 천만번이고 잡으리라.
"밥 먹으러 가지는데 뭘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해요"
"아, 하하 아니야"
상원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조석희는 피식웃으며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상원선배"
"응?"
조석희가 상원의 밥위에 손수 명란젓을 올려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 신경 안써도 되는거죠?"
"무슨 신경?"
"선배 친구가 있건 말건 이젠 신경쓰고 싶지 않아요 다정한척하는거 힘들거든요"
"아하하하,,,,,아....하하"
하마터면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가락을 삐긋해서 그대로 밥알을 식탁위에 흩뿌릴 뻔했다. 그게 다정한 척이었다니, 두번만 더 다정했다간 정말 큰일나겠다.
"그래 이제 신경쓰지마"
"네 어차피 선배는 나만 있으면 되니까"
자신이 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것도 당사자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저하고만 살아요 앞으로, 나하고만 밥먹고 , 나하고만 놀고, 좋네 그거"
앞으로 펼쳐질 애인의 고립된 삶에 대해 논하는 조석희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거기에 홀려 상원은 정말 좋은건가 그거 라고 생각할 뻔했다.
"선배"
"어?"
"지금 프로포즈하고 있잖아요"
"....."
"프러포즈하는데 멍하게 앉아만 있으면 어쩌라고요 대답좀해봐요"
상원은 잠시 조석희의 "propose"발음을 감상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의 의미가 상원의 뇌세포를 자극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초.
"어?!...."
당신은 친구는 물론 가족들로부터도 고립시켜 나만 보게 만들겠어. 라는 살벌한 선언을 프로포즈라고 내미는 남자를 보며 상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조석희가 턱을 괴고 그런
상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얽히자 상원은 지금 이 순간을 농담이나 장난으로 넘길수 없음을 깨달았다.
저 같잖은 프로포즈를 석희는 정말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것이엇다.
절대로 이룰수 없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상원은 포기를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고백하고 잇었다.
남들이 듣는다면 미친거 아니냐고 반문할 내용의 프로포즈였다.사흘은 굶은 사람에게 내밀어진 독이 든 음식과 같았다. 먹으면 죽는다. 하지만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상원에겐 애초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사약을 받아들 준비를 하고 상원이 입을 열었는데 현관에서 벨소리가 울려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상원이 누구지? 하는 눈빛을 보내자 조석희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가 나갈게"
상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조석희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선배 돈 많은가봐요"
고도의 비꼼이었다. 언젠가 혼자 있을때 잡상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가 먹지도 못할 건강식품을 잔뜩 사들인 상원을 향한,
잡상인이나 교인이라면 자신보다 석희가 나가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상원은 반박도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1초만에 퇴치할 거라 생각했던 불청객이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주인보다 더 당당히 들어오는 낯선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낯선 얼굴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웬일이세요"
의외라는 듯 그러나 결코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어조로 조석희가 물었다.
"주말에 왜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니"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그 중요한 일이 뭔데"
"그 중요한 일이 뭔데?"
차갑고 건조한 음성으로 그녀가 자신의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감정이 배제된 듯한 태도는 그녀가 주말의 약속문제로 인해 화가 났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ㅏ
하지만 조석희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선배 식사해요"
"어?,,,,어"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상원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숟가락 쥔 손에 힘만 주었다.
"반찬 입에 안 맞아요?"
상원이 밥상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조석희가 약간 인상을 쓰고 물었다.
아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잇던 그녀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대체 언제즘 인사를 드려야 하나 눈치를 살피느라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 대해 할 말이 그것뿐이라고?"
"네"
이제나저제나 인사를 드릴 기회를 찾으며 그는 눈만 깜빡거렸다. 어물거리던 그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조석희를 힐긋 쳐다보았다.
이렇게 눈치없는 성격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색한 분위기에 질식해 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갈 무렵에야 조석희가 입을 열었다.
"여기 같이 사는 선배예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간신히 숨통이 트이는 기분으로 인사를 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적당한 거리를 둔채 그래요 하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별다른 호감도 적대도 드러내지 않고 다시 시선을 아들에게 돌렸다.
"이번 주말에 다시 시간 잡았다."
"알겠어요"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거다. 대동그룹여식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너만 기다리고 있는건 아니니까"
"알겠다고 했습니다"
대답을 하는 조석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상원은 눈치가 그리 둔한 편도 아니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임을 그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간다"
"안 나갑니다"
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준 후 걸어나갔다.
어색한 침묵이 남겨진 두 사람 사이에 던져졌다.
"저기 있잖아....."
먼저 입을 연 것은 상원이었다"
"뭐가 있어요"
조석희가 무뚝뚝하게대꾸했다. 그가 당황하거나 미안해하면 평소보다 더 차가워진다는 것을 알게된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어찌됐건 지금 이 순간의
상원에겐 그런 조석희의 태도가 매정하게만 느껴져 서러움이 더해졌다.
"그럼 없는거구나"
"뭐가요"
"너랑 나 사이에 믿음"
조석희가 짧게 혀를 찼다. 내 이럴줄 알았다는 얼굴을 하고 상원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말 안한거예요, 선배 기분나빠할게 분명하니까"
"내 생각에는.... 전후 관계에 문제가 있는것 같은데"
말을 잇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상원은 시선을 내렸다. 기분이 지독하게 좋지 않았다. 상원은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다.
"애초에 말 못할 일을 안 하면 되는거 아니야"
"별거 아니에요"
"...."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마음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상원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대체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석희야 너한테는 별거 아닐 수도 잇지만,,,,"
"아버지한테는 당분간 결혼얘기 하지 않겠다고 약속 받았어요"
당분간, 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의 문제를 남자는 애당초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원은 가만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또 다른 문제에요, 집안이 다른데"
부모님의 사이가 나쁜것은 아니지만 조석희는 외가와 친가를 엄격히 구분했다. 집안이 다르니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상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만은 그 사고방식을 반박하고 싶었다.
"집안이 다르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쉽게 설명되는 문제야?"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선배. 그냥 나가서 밥만 먹고 오는 거예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선배가 이렇게 반응할 거 아니까 일부러 말 안한 거잖아요"
근간에 그는 가끔 볼일이 있다며 두어시간씩 나갔다 돌아오곤 했다. 무슨 볼일이냐고 묻고 싶은 것을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 상대가 질려할까봐 묻지도 못하고 꾹 참았던 상원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물어볼껄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면 계속 나한테 말 안하고 나갈 생각이었어?"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상원은 상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끔 사람다워 보이지않았던 저 눈동자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상원은 알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
상원은 멀뚱히 상대를 응시했다.
자신에겐 친구와 가족도 버리라는 독점욕을 드러내더니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맞선을 보러 다닌다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커녕 당연하다는듯한 태도였다.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선배 이런걸로 며칠씩 우울해하잖아"
"....네가 신경쓰고 싶지 않았던건 아니고?"
"그것도 없잖아 있죠"
이쯤되면 화도 나지 않았다. 슬픈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니 이제는 조석희가 자신과 같은 인종이 아닐수도 잇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식사하세요"
툭 던져진 한마다.
상원은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무언가가 툭, 하고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동석이 옳았다. 조석희 이 개새끼는 세상이 두쪽이 나도 절대 인간이 되는 법이 없겠지. 자신을 특별 대우해준다고 우쭐해하던 자신이 멍청한 것이다.
조석희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상원은 조석희가 식사를 마칠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왜 안먹냐는 그의 물음에 상원은 별로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선배 화 났어요?"
"아니"
상원이 고개를 흔들자 조석희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 뒤에서 상원이 작은 목소리로 석희야, 하고 부른 후 말문을 열었다.
"난 네가 이해가 안돼"
"그래요?"
"응"
그렇게 말하고 있는 상원의 표정은 쓸쓸해보였다. 조석희는 그가 맞선 문제로 자신을 돌려서 비난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세요 한번"
별생각없이 던진 말이었다. 사람마다 입장차이가 있는것이고 그는 자신의 입장을 상원에게 이해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구태여 상원에게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상원이 한참 그를 쳐다본후 그래,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가 볼일이 있다고 잠시
나갔다 들어오겠다고 한 것은 그날 저녁 무렵 즈음이었다. 그리고 상원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