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42화 (30/45)

"어? 이상원 진짜 오랜만이다!!"

"상원이? 상원이가 왔다고?"

"진짜? 이상원왔어?"

상원이 교실로 들어서자 모여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오늘 상원에게 장소와 날짜를 알려준 대진이 허둥지둥 달려와 그를 맞이했다. 

"잘왔어 연락이 없어서 안 오는줄 알았네"

"와야지 뽀순 퀴 추모식인데"

눈치가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진이었지만 상원의 목소리가 유독 힘이 없고 표정도 좋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6반의 애완벌레였던 

뽀순 퀴의 추모식은 희재고 별관에서 열렸다. 학교에서 추모식을 여는 것을 허락했냐는 상원의 질문에 대진은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는 산뜻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너  서울대 갔다면서 어떻게 용하게 들어갔어? 답 밀려 쓰거나 유실되거나 시험보러 갔다가 사고 당하거나 그런 일 없었어?"

남들에겐 살아생전 한번 일어나기도 힘든 하지만 상원에겐 늘상 있을 법한 일들을 주르륵 나열하며 개중 한명이 물어왔다. 

"아니 다행히 운이 좋았어"

"푸하하하하 니가 운이 좋다는 말을 하니까 웃긴다"

"그러게 하하"

악의룰 두지 않고 던져진 말이었지만 상원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게 된 것도 불의의 사고 때문이었으니까. 

"시발 누가 장례식장에서 경망스럽게 쳐 웃고 지랄이야!"

교실구석에서 묵직한 일갈이 터졌다. 상원을 둘러싸고 왁자지껄했던 일행이 어느새 흩어져 그의 앞으로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졌다. 

일을 하다말고 온 것인지 흰색 주방장 복을 입고 회칼을 들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한승완의 모습은 호러 그 자체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무갂기를 

하며 그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안녕"

그날 이후로 처음 승완과 마주하게 된 상원이 인사를 건넸다. 평소였으면 우리 상원이 하고 맨발로 뛰쳐나왔을 한승완이 일부러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누가봐도 나 삐졌어, 하고 광고를 하는 유치하게 짝이 없는 제스처였다. 

한승완은 희재고 내 뿐만 아니라 근방의 학교에서도 악명을 펼치던 인간이었다. 한승완이란 이름 석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험한 일들이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콧노래를 부르는 그의 태평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 한승완이 눈에 빤히 보이는 유치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모두들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는 왜 깎고 있어?"

상원이 승완의 손에 들려 있는 무와 칼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자신에게 화가 나서 말을 건네지 않아도 한승완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라는 생각에서였다. 

승완은 상원이 서 있는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이 너"

다른 친구들과 떠들고 있던 녀석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 말이야?"

"그래 너"

한승완이 억지로 그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다 놓고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왜 무를 깎는지 이유가 궁금하지?'

"아니?"

발로 정강이를 까는 소리가 잔인하게 울렸다. 

"궁금하지?"

"그래 궁금해 뒈지겠다"

억지로 궁금증을 자아낸 승완이 무를 깎는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회를 잘 뜨려면 칼놀림이 중요하거든, 이 무가 투명해서 건너편이 보일 정도로 한번도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칼 연습을 하는거지"

",,,아 그러셔"

"오늘 밤까지 이걸 다 마스터 해놓으라는 주방장 형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지금 이 자리에서 피나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어때? 궁금증은 

좀 해결 되었나?"

"...그래"

승완이 상원이 있는 방향을 향해 마른 기침을 했다. 그제야 상원은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을 다른 친구를 붙잡고 늘어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승완다운 방법이었다. 웃음이 났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사귀는 상대를 친구들이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헤어지지 않으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을 정도니. 

게다가 뽀순 멍 사건까지 겹쳐서 사실 상원은 현재 조석희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는 그의 물음에 원래 있떤 곳에 

되돌려주고 왔다는 짧은 대답만이 돌아왔다. 

몇 년간 짝사랑해온 상대지만 그런 조석희의 행동에는 화가 났다. 

오늘도 상원은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어, 상원이 왔냐"

뒤늦게 교실로 들어온 동석이 상원에게 인사를 햇다. 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주자 상원은 감정이 복받치어 뭉클해졌다. 

그래도 역시 친구들은 끝까지......

"그럼 헤어진거지?"

추모식을 위해 모무에게 초가 하나씩 나눠지고 있었다. 초를 받아들던 상원이 방금 전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영문을 알지 못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헤어지다니? 누구하고?"

"누구는 누구. 그 빌어먹을 새끼 말고 누가 있어?"

동석이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여주며 대답했다. 

"조석희?"

"그래"

"....아니"

상원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오자마자 동석은 단호하게 등을 돌려버렸다.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동석은 상원의 짝이었다. 그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도 마지막 까지 옆에 있어주던 친구였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 친구가 자신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평소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문제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조석희는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쁜놈이

아니라고 두둔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놈일 수도 있었다. 

두둔해주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 가장 안타까웠다. 

상원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렸다 그가 우는 모습을 발견한 오늘의 사육담당 최성동이 큰소리로 외쳤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상원아 흑.....우리 뽀순 퀴 생각만 하면...흐엉엉"

그가 굵직한 울음을 터트리자 시끌벅쩍한 교실이 조용해졌다. 교실의 불을 끄고 모두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있던 터라 분위기가 단번에 숙연해졌다. 

"뽀순 퀴에게.  너는 우리의 희망, 우리의 귀염둥이 ,,,,크흑,, 우리는 너를 정말로 사랑,,,,흑흑 네가 비행을 성공했을때 ,.,,커흡"

학교 야영을 가면 사회자가 저열하게 슬픔을 자아내는 바로 그 분위기였다. 최성동이 뽀순퀴의 시체가 든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을때 슬픔은 절정에 달았다. 

상원은 그 분위기에 기대어 마음껏 슬픔을 토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상원이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던 조석희가 힐끔 시선을 던졌다. 오셨어요. 하는 물음에 응 , 하고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상원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조석희의 눈에 불쾌함이 스쳐간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상원의 문을 두드렸다. 

"저 들어가요"

안에서 수락을 하기도 전에 조석희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던 상원이 조금 놀란 눈을 하고 돌아보았다. 말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어 있는 것을 조석희는 한눈에 알아차렸다.

"울었어?"

"아니"

어색한 대답이 거짓말을 부각시켰다. 조석희는 다시한번 물었다. 

"울었어요?"

"...."

상원은 대답하지 않고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피곤했다. 집으로 돌아올때도 동석이도 승완이도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대진만 눈치를 살피다가 잘가라는 말은 툭 던졋을 뿐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상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인데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뽀순멍과 이런저런 일이 뒤엉켜 지금은 조석희와 말을 하고 싶지 않은게 상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왜 대답을 안해요?"

"나 피곤한데"

"누가 당신 피곤하냐고 물어봤어? 울었냐고 물어봤잖아요"

"안 울었어"

셔츠를 벗던 상원이 잠시 멈칫하고 조석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아직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상원이 내 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지금 이 사람이 나를 장님 취급하는 것인가. 조석희는 눈을 치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개새끼는 안돼"

"....."

"선배한테 발정난 개새끼는 나 하나로 족하잖아"

애교라면 나름 나쁜남자식 애교였다. 평소대로라면 상원이 이쯤에서 무표정을 무너트리며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가만히 눈만 꿈뻑 거릴 뿐이었다. 

그런 눈짓에는 귀찮음 마저 묻어났다. 

"석희야"

"응 선배"

그렇게 답하며 조석희는 상원의 옷을 받아 들었다. 

"나 오늘 정말 피곤해.....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잇고 싶다는 말이 의미심장한 울림을 띠었다. 옷걸이에 옷을 걸어주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아무리 기분이 좋지 못해도 상원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다고요?"

"응 혼자"

"...."

혼자라 함은 침대를 아예 홀로 쓰겠다는 말이었다. 이집으로 이사온뒤 둘이 다른 침대를 쓴 날은 하루도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 조석희에게 오늘 잘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문가에 기대 서있던 조석희가 불만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상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원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가달라고 말을 했다. 

작은 목소리지만 의지가 어린.

"주무세요 선배"

"그래"

조석희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상원은 침대에 주저앉았다. 옷을 벗는 것도 귀찮아 그대로 누워 버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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