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40화 (29/45)

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실종되었다. 원체 잘 웃지도 않는 인간인데 웃음기가 멸종한 것처럼 사라져버리자 집안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럼안돼! 뽀순 멍아!"

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 위에 쌓여있던 장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조석희가 말없이 성큼 걸어가 한손으로 뽀순 멍의 목덜미를 들어올렸다. 상원이 석희의 손에서 얼른 강아지를 빼앗아 안았다. 

"주세요 버릇 고쳐야지"

"아직 강아지잖아. 애기니까 말로 타일러"

"어릴 때 두들겨 패야 기억에 남을 거 아닙니까"

어릴때 한번도 두들겨 맞아본 적 없는 사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신빙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상원이 필사적으로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뽀순멍이 석희의 신발에 똥을 쌌을 때 그는 매섭게 강아지 등짝을 후리쳤다. 그 광경을 목격한 상원은 

조석희가 개를 키웠다는 얘기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성격 나빠져 때리지마 안돼"

강아지에게 훈련을 시키려면 돌돌 만 잡지나 신문으로 코를 치는정도가 적당했다. 

이 얘기를 조석희에게 했을때 그는 어디보자 하면서 400페이지에 가까운 올 컬러 화보 잡지를 말아 가져와 내리치려 했다. 

의문이 확실시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로 상원은 조석희가 뽀순멍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조석희의 잘생긴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릇없는 개새끼가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상원이 그 강아지를 감싸고 도니 속이 뒤틀린 것이다. 

상원이 자신을 안아주자 신이 난 뽀순 멍이 혓바닥으로 주인의 목덜미를 핥았다.

"아하하 간지러워 하지마"

상원이 웃으며 뽀순 멍의 목덜미를 손으로 긁어주듯 털을 훑어주었다. 그러자 뽀순멍은 아까보다 더 격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선배"

"하하하....어?"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며 장난을 치느라 대답을 한박자 느리게 돌아온 것도 조석희의 심기를 거슬렸다. 

"확실히 닦아 개새끼 침냄새 맡게하지 말고"

그가 손으로 목덜미 부근을 가리키자 상원이 응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강아지를 끌어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저러라고 사준 개새끼가 아니었는데 

조석희는 방문너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쓰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그 재수 없는 것들보다 저 멍청한 개새끼가 무해하겠지. 하는 생각이 

그에게 손톱만한 위안을 안겨주었다. 

불행히도 그 조그만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퇴근을 하기 전에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며 상원은 최대한 일상적인 말투로 하루종일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내일 말이야. 나 어디 갔다와야 할 것 같아"

"그래요?"

바싹 긴장을 했건만 조석희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때만큼은 그의 서양적인 사고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은 뽀순 퀴의 추모식이 있는 날이었다. 날짜와 장소는 대진이 상원에게 문자로 보내주었다. 평소같으면 승완이나 동석이 챙겼을 테지만 그날 이후로 

두 사람 모두 상원에게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자신에게 말을 건네주지 않는다고 해도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상원은 오전 수업이 끝나면 바로 뽀순퀴의 추모식에 참여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너는 내일 뭐해?"

"저도 저녁에 어디 갔다 와야 해요 한 두어시간"

상원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들어 저런식의 외출이 잦았다. 

"몇 시쯤 들어와?"

"8시까지는 들어올거예요"

상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잘됐다. 그럼 뽀순 멍이 저녁 좀 챙겨주라. 시간이 좀 애매했거든"

"...."

"애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식탐을 조절못하더라고, 자율 급식이 되면 좋겠는데 부어 놓기만 하면 다 먹어 치워서 말이야"

상원이 식탁 밑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뽀순 멍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조석희가 눈썹을 찌푸렸다. 

"알게 뭐야 한끼 안먹는다고 안 죽어"

"밥주는게 뭐 어렵다고 너 예전에 개 키워봤을때 밥 한끼정도는 줘봤을꺼 아냐"

"그걸 제가 왜 줍니까. 무슨 상관이라고"

"....."

조석희가 예전에 개를 몇 번 키워봤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상원은 그제야 파악이 가능했다. 큰 저택에 개는 있었지만 나는 키우지 않았다,겠지.

"밥 먹는데 개새끼 치워요"

"뽀순 멍아 저리가 있어"

상원이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지만 뽀순멍은 자신과 놀아준다는 뜻인줄 알고 한층 더 격한 꼬리놀림을 보였다. 

"개씨끼 털날려 꺼져"

개를 몇 마리나 키워봤다는 남자가 더없이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애초에 뽀순멍에게는 상원만이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에 

잠시 으르렁거리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상원은 그저 좋다고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조석희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꼴보기 싫은 인간들 만나느니 집에서 개나 키우라고 사온 것인데 이건 키우다 못해 모시는 판국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하나에 빠지면 간도 쓸개도 

다빼주는 이상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

"뽀순 멍아 형이 밥 먹고 같이 산책 가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누구 맘대로 산책을 가요"

"응?"

"밥먹고 저랑 영화보기로 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상원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지금요"

"...석희야"

조석희는 지금 개상대로 심통을 부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선배는 개새끼랑 저랑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해요?"

"당연한 걸 왜물어"

"선배 요즘 저한테 너무 무심한 것 같아서요. 전 선배밖에 없는데 "

무덤덤한 목소리로 거짓말도 잘 늘어놓는다. 그래도 그 거짓말에 놀아나고 마는 상원은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그게, 하고 할 말을 찾는다. 

"뽀순멍이 아직 어리잖아. 잘 보살펴줘야지"

"선배 저도 어리잖아요 보살펴 주셔야죠"

한살 때부터 스스로 기저귀를 갈아 치웠을 법한 얼굴을 한 사내가 얼토당토 않는 어리광을 부렸다. 

"너 나랑 한살밖에 차이 안나"

"저한테 애정 좀 가져주세요 외로워"

"...이미 많이 갖고 있어"

상원은 자신이 가진 애정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늘 생각했다. 

"더 가져봐요."

"...그.... 이 이상은 힘들어"

이 이상이라니 그러면 자신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상원은 굳게 믿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사귀고 나니 시시해요? 먹고 보니 별거 아니다?"

"아니야! 사귀고 나니 더 좋아! 먹어보니 진짜 맛있어"

상원이 정색을 하고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조국 통일을 외쳐도 이보다 더 애절하지는 않을 기세였다. 

"진짜?"

"응 진짜"

조석희가 영어로 really,라고 묻자 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이야. 사귀고 나서 시시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조석희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상원을 관찰했다. 

"선배 나 맛있어?"

"어?"

"맛있냐고요 대답해봐"

흥분해서 얼떨결에 외친 한마디가 분위기를 끈적하게 만들었다. 상원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맛있다고 대답하면 분명 이 이후 자신의 입에 들어올 것은 음식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대답했다간 이어질 심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냥 던져본 말이에요? 그럼 저 선배한테 농락당한거네"

농락이란 단어에 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쯤되면 누가 농락을 당하는지 개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원선배 저 갖고 놀아요?"

"아니 절대 아니"

"그런데 왜 대답을 안해"

남자의 심술궂은 재촉에 상원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심을 털어놓았다. 

"맛있어. 너랑 있는 시간도 대화도 키스도 그냥 좋아. 배부르고 행복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는지 조석희가 상원에게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내가 좋아하는 단단한 허덕지 옳다구나, 

하며 상원은 빼지도 않고 가서 앉았다 

"키스할래?"

"응"

나이어린 후배의 반말도 그저 좋았다. 연애의 밀고당기기 따위 모른다. 나쁜 남자라는 것을 알고 가끔은 잠자리용 아로마테라피로 이용당하는 것도 알지만 

화가 나기는 커녕 마냥 좋았다. 

상원은 두손으로 조석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가 입술을 맛대어 오길 기다렸다. 조석희는 일부러 상원의 입술 근처만 간질이며 아이처럼 순수한 키스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다리 사이는 아까부터 단단하게 불거져 있는 상태였다. 상원도 엉덩이 부근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두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방으로 들어가자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기 일보직전의 순간이었다. 그때 상원의 발치에서 뭔가 물컹하게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석희의 발에 닿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닿은 물체가 지나치게 부드럽고 말캉했다. 

"....?"

상원의 시선이 아래로 내린 곳에는 뽀순 멍이 여느때와 다름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주 조금 그러나 평소와 치명적으로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면 상원의 다리에 매달린 채 민망한 자세로 꼬리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

"....어"

본능적으로  허리를 위 아래로 흔드는 그 모습에 상원은 할말을 잃었다. 오냐오냐 하며 키우던 강아지가 자신을 상대로 흔히 속된 말로 붕가붕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뽀순 멍의 움직임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

상원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던 조석희는 그 광경을 발견하고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뽀순 멍아.....하하.....못쓴다"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발에서 떨어트리려 했지만 뽀순멍의 허리놀림은 점점 격렬해질 뿐이었다. 본능에 눈뜬 강아지의 자연스러운 행위였지만 개를 

키워본 적 없는 상원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엉켜있을때 조석희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었다. 

"fucking...."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조석희는 거침없이 뽀순멍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들어올렸다. 우악스러운 손놀림에 놀란 뽀순멍이 

낑낑 거리며 버둥거렸다. 

"안돼 죽이면"

조석희의 더러운 성정을 아는 상원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안 죽여"

"때리지마"

"안 때려"

"...."

불안이 엄습해왔다. 조석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쪽이 한 층 더 불안을 고조시켰다. 

"죽이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는다면 대체 뭘...."

"선배는 내가 악마라도 되는지 아나봐"

조석희가 살짝 허리르 굽힌 채 고아한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인사해"

"뭐?"

간신히 그 사악한 눈길에서 빠져나온 상원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작별 인사"

손톱만큼 남아있는 관대함을 발휘한 조석희가 상원의 앞으로 끙끙거리고 있는 뽀순멍을 내밀며 말했다. 선뜻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원을 뒤로하고 

조석희는 성큼성큼 걸어가 현관앞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안돼!!!!"

찢어지는 절규가 뒤늦게 이어졌지만 매정한 현관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닫혀버렸다. 상원이 허겁지겁 뒤를 쫒아지만 조석희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다시 집으로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날려도 답문이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조석희는 정확히 30분 후 세상에서 더할나위 없이 상쾌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름다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뽀순멍을 데려오라고 소리쳤지만 조석희는 들은채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상원을 끌어안고 조석희는 좀 조용히 하라는 말만 

던질 뿐이었다.  상원은 처음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조석희에 대한 깊은 절망감과 원망을 느껴야 했다. 조석희는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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