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30화 (24/45)

"그걸 왜 선배가 맞아?"

"그렇다고 여학생이 맞게 할 수는 없잖아"

샤워를 하던 상원이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식당에서 일이 벌어지자 여학생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조석희를 바라보게 되었다. 

"선배 착한 것도 그 정도면 멍청한 겁니다"

"어때, 나야 어차피 옷도 다 버렸는데"

당신이 그걸 왜 가로막냐고 길길이 날뛰는 조석희를 간신히 끌고 나왔다. 기숙사 샤워실을 빌려 샤워를 하면서도 상원은 오늘 또 한번 

저 인간의 더러운 성격을 목도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본인은 이 정도 일어 꿈적하지 않을 정도로 조석희를 좋아하고 그때 식당에 있던 여학생들은 그 정도 일에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칠 정도로만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사랑도 병이라면 이건 중증이었다. 

"...나도 참"

'선배가 왜요?"

샤워실 밖에서 상원의 새 옷을 들고 서 있던 조석희가 물었다. 상원이 아니야 하고 머리를 헹궈냈다. 

"아직도 안끝났어요?"

조석희가 불쑥 샤워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알몸을 보인게 한두번이 아닌데도 상원은 이런 상황에서 저도모르게 몸이 움츠려 들었다. 

"그, 금방 끝나. 미안 잠깐 더 기다려줘"

기숙사에 사는 동기에게 빌린 샤워볼로 거품을 만들면서 대답했다. 몸을 닦는 와중 따끔한 시선에 뒤를 바라보자 조석희가 샤워실 문 앞에 기대어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잇었다. 

"...왜"

어색하게 떨리는 목소리. 

"뭐가요"

"아니,,,, 쳐다봐서"

"선배 지금 내가 여기서 하자고 하면 할래요?"

".....!"

들고 있던 샤워볼을 놓치고 말았다. 조석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선배 엉덩이 보이니까 아래가 당기네요"

엉덩이를 가리자니 다리 사이가 문제였다. 사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 때문에 상원의 페니스가 반쯤 일어서 있었다. 

"나가서 기다려. 바로 씻고 갈게"

"알았어요"

조석희가 순순히 물러나 주자 상원은 속도를 내 몸을 씻었다. 아래를 가라앉히기 위해 차가운 물로 몸을 헹궈냈다. 

샤워실 밖으로 나가자 조석희가 들고 있던 수건과 속옷을 건넸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사물함에 옷가지들을 상비해둔다는 얘기를 상원이 했을때 조석희는 가관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선배,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상원을 불렀다. 

티셔츠에 목을 넣으며 상원이 아무렇지 않은척 대답했다.  그는 들고 있던 수건으로 상원의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주었다. 

"선배는 원래 그렇게 재수가 없었어요?"

"...응?"

"태어나면서 부터 원래 그렇게 재수가 없었냐고요"

"...응"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불운을 일부러 입에 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거 안바뀌는 건가요?"

두사람이 사귈 무렵에 조석희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행운을 나누어주겠다고 말했다. 상원 역시 물기어린 눈으로 그래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하는 

자세로 넙죽 엎드렸다. 

하지만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석희는 여전히 억세게 운이 좋았고 상원은 여전히 더럽게 운이없었다. 

"바뀌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하하"

뒤따르는 웃음소리가 힘이 없었다. 그건 매해 비는 소원이지만 올해도하늘은 상원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모양이다. 

수건으로 상원의 머리를 닦던 그가 손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왜"

혹시나 이번 일로 인해 자신에게 질려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 상원은 덜컥 겁이났다. 조석희가 불안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원의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누, 누가 보면...."

"내가 키스하고 싶어서 하는건데 누가 뭐라 그래요"

그가 이번엔 상원의 반대편 뺨에 입을 맞추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황홀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애정을 표현해주는 것은 황홀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원의 머릿속에는 미약하게나마 이성이 흘렀다. 상원이 손을 들어 석희의 어깨를 밀어냈다. 

"이상해요"

"뭐가 또 이상해"

"선배는 여러모로 저한테 특별하신거 같아요. 아니 특이한 건가"

특별로 해줘. 특별.

상원은 간절하게 앞 단어가 선택되길 바랬다

"아 특이하다가 맞겠군요"

"하하 그렇지 내가 좀 특이하긴 하지"

웃으며 맞장구를 쳐도 웃는게 아니었다. 상원은 반찬 얼룩이 남아있는 운동화를 신었다. 눈에 뛸 정도의 얼룩은 아니었지만 냄새가 나서 석희를 거슬리게

하는건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운동화도 한컬레 더 가져다 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상원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었다.

"상원선배"

조석희가 이름까지 부르자 상원은 바싹 긴장이 되어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응 왜?"

"토끼 앞발 하나 드릴까요?"

눈을 두번 깜짝였다. 머리를 긁적거리다 상원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 토끼까 이렇게 까충깡충 뛰는 토끼를 말하는 거지?"

양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자리에서 껑충 뛰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그런 수고가 아깝지 않게 조석희는 단호한 어조로 네, 그 토끼요 하고 대꾸했다. 

"토끼를 왜? 키우자고?"

"토끼를 왜 키워요 냄새나고 더럽게"

"그, 그럼 앞발만 준다고?"

귀여운 토끼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채 앞발을 자르는 조석희의 흉악한 모습이 떠오르자 상원은 오싹해졌다. 조석희가 상원의 턱을 손으로 잡으며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

"설마 제가 그걸 잘라 준다고 생각한건 아니겠죠?"

"...아하하....하하"

잠시나마 상상했던 장면을 재빨리 지워버린 상원이지만 상대방이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똑똑한데 참 멍청하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단 말이지 선배란 사람"

"별로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아....."

말하고 나니 한층 자신이 더 멍청해진 기분이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불운을 눌러주는...."

"부적같은거?"

"네 그런거요"

상원의 시선이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이제는 그 의미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 조석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상한거 떠올리지 마세요 선배가 상상하는 그런데 가자는 거 아니니까"

조석희가 나가자고 턱짓을 했다. 상원은 옷을 챙겨입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나 기독교라서....안되는데"

너른 등에 대고 조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 봤자 조석희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뭔가 생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부적이란. 어머니가 아신다면 뒤로 넘어가실 만한 일이었다. ....사실 남자 애인 문제가 시급하긴 하지만 아니 대낮에 부적을 써주겠다고 자신을 끌고 가는 

남자의 등짝이 멋있어 보이는 자신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렴 어떠랴. 이미 나는 저 등의 노예이건만.

"같이 가"

상원은 부지런히 달려가 성큼성큼 앞장 서 걷는 석희의 옆에 섰다. 뭔가 골몰히 생각에 잠긴 그는 아무런 말없이 앞을 향해 걸었다. 

"......이게 뭐야"

"로또 라고 하죠. 한국에서는"

"알아. 이게 로또인지. 그런데 이게 뭐냐고"

상원은 자신을 학교 앞 편의점으로 데리고 온 상대방의 저의가 지극히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례함을 무릅쓰고 두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복권이요 45개 숫자 중에서 6개 고르는 거예요 무작위로"

"알아 그런데 왜 이걸 하려는 거야?"

"부적으로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언제 로또 부적으로 삼는 관습이 생긴걸까. 상원은 멀뚱하게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긴 속눈썹이 잠겼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조석희는 일부러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편의점 테이블에 마련되어 있는 볼펜을

하나 집어 들고 아무렇게나 번호를 여섯개 골랐다. 

"그냥 아무거나 골라도 돼?"

"네"

"나도 해볼까?"

조석희가 상원에게 종이와 펜을 건넸다. 상원이 테이블에 몸을 기대에 고민고민하며 여섯개의 숫자를 골랐다. 상원의 몸이 옆으로 바싹 다가오자 특유의 

달큰한 체향이 확, 하고 끼쳐온다. 

조석희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상원이 고개를 들어 왜? 하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일부러 쌀쌀맞게 대답햇다. 요즘 계속 이모양이다. 상원이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아래가 바싹 당겨 다른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같이 살아 욕구를 원할 때마다 해소하면 좀 낫겠거니 싶었는데 더 심해졌다. 

사실 그는 상원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못마땅했다. 원하면 늘 손이 닿는 거리에 있어주길 바랐다. 

"다 골랐다"

상원이 웃으며 종이를 집어 들었다."

얼굴선이 단정하고 차분한 외모인데 저렇게 웃으면 몇 살은 어려보였다. 다른 사람에게 저런 얼굴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왕따를 당해 우울한 대학생활 

4년을 마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얘기해줄까. 

"이거 한 게임에 얼마야? 나 두게임 했는데"

상원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 했다.

"됐어요"

조석희가 상원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편의점 카운터로 가져갔다. 만원짜리로 종이 두장을 모두 계산하고 로또 복권을 받아왔다. 

"여기요 선배"

"고마워"

복권을 받아든 상원은 신기하다는 듯 종이를 살펴보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거 내거 아닌데? 난 5번이랑 7번이랑..."

"이거요 이건 제가 가지죠"

조석희가 상원이 고른 로또를 자신의 지갑에 두번 접어 집어 넣었다. 

"그럼 이건 네가 고른거야?"

"네"

"와 너는 운이 좋으니까 진짜 맞을 수도 있겠다"

상원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지갑을 꺼냈다. 

"가끔 맞아요"

"...뭐?"

"가끔 맞는다고요. 1등은 아니지만 3등 같은건 거의 맞고 예전에 두어번 2등까지 맞추기도 했어요"

"뭐?!"

"1등은 안 되는거 같더라고요. 뭐 2등 해봤자 푼돈이니까"

"푸, 푼돈 이라니 잠깐 잠깐만"

상원이 편의점 벽에 붙어있는 저번 주 당첨 금액을 확인해 보다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거 당첨되면 어떡해 혹시 1등 당첨되면어떡하지"

"안 된다니까요"

"되면....!"

조석희가 상원의 앞에 붙어 있던 금액을 확인하고 픽, 하고 웃었다 .

"한국은 당첨 금액도 쥐꼬리만 하잖아요. 1등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안는데 뭐"

"저 돈이라면 인생이 바뀔수도 있어"

상원이 정색을 하자 조석희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가 이렇게 크게 웃는 경우는 드물었다. 진정으로 웃기거나 진정으로 상대방이 우습거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후자인 모양이었다. 

"설마 순진하게 일이 십억으로 사람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 하는 건가?"

"...."

"걱정마세요 그런 푼돈 생긴다고 바뀔 거 하나 없어"

도련님이 아무리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상원은 자신이 들고 있는 로또 복권이 몇 백 배는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직 발표가 나지 않았건만, 

몇 천만원 혹은 몇 십억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석희야"

"예"

조석희가 편의점 진열대에서 콘돔을 고르며 대답했다. 

"...이게 부적이야?"

"네 제가 써준 부적, 잘 간직하세요 Good luck"

오랜만에 들어본 조석희  Good luck 에 상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조석희가 기분 좋은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상원은 조석희가 고르던 콘돔을 오늘 밤 분명 쓰게 될 것이란 예감을 하며 편의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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